[최진기의 역사로 보는 정당정치 - 4강] 영국 노동당의 성공과 실패 요인

6월 30, 2021

[최진기의 역사로 보는 정당정치 - 4] 영국 노동당의 성공과 실패 요인

 

노동당의 두 번의 성공

  • 노동당의 첫 번째 성공 - 클레멘트 애틀리 : 베버리지 보고서의 등장
  • 노동당의 두 번째 성공 - 토니 블레어 : 3의 길 등장

 

[노동당의 첫 번째 성공]

 

19452월 치러진 여론조사 결과 처칠 내각의 지지율은 83%였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노동당의 압승이었다. [노동당 393, 보수당 197]

 

당시 보수당(윈스턴 처칠)은 치안, 안보, 국유화, 반공 노선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노동당(클레멘트 애틀리)는 주택문제, 일자리 문제, 경제문제를 들고 나왔다.

 



클레멘트 애틀리는 노동당이었지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시 31세 나이로 자원입대하였고, 갈리폴리 전투 참여 후 소령계급으로 전역하였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전시내각에 참여하였다. (1차 세계대전 전후 노동자 계층의 노선은 무엇이었을까? 전쟁은 자본가 계급의 탐욕으로 일어난 것이므로, 노동자 계층이 참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애틀리는 전쟁 참여를 주장했던 것이다.

 

애틀리는 전쟁 영웅 출신이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낙인을 피할 수 있었고, 이후 나토 창설을 주도하였으며, 625 때 대규모 파병을 결정하였다(미국에 이어 두 번째 많은 병력을 파병하였다. 결국 파병으로 인한 재정 악화로 실각하게 된다). 그리고 안보를 위해서 독자적 핵무기 개발에 앞장섰다.

 

진보세력도 외연을 확장할 때 승리한다!

 

애틀리는 당시 우파 계열의 이슈(애국, 반공, 안보)를 선점하였고, 노선 확장을 통해 정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당시 베버리지 보고서를 쓴 베버리지는 보수 우파 경제학자로 노동자들에게 최소한도로 보장해야 할 것을 언급한 것이다.

 

[노동당의 두 번째 성공]

 

토니 블레어에 대한 별명이 ‘Tory’ 블레어라 불릴 정도로 노동자 계층이 아니라 지주 계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시의 애완견(Bush's Poodle)로 불리기도 했다. 아파트 30채 등 1000억대 재산을 보유하면서 전혀 노동자의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2005년의 총선 구호는 노동자들의 입장이 아닌 경영자의 입장인 일하는 영국이었다.

 



[3의 길]

  • 영국 노동당이 미국이 민주당과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지적은 이래서 나오는 듯하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옳지 못하다. 영국 노동당은 분명히 차별화된 정책을 갖고 있다. 그것은 3의 길이다. ‘3의 길은 좌파나 우파간의 단순한 산술적 합의나 평균적 중립이 아니다. ‘3의 길은 분명 중도 내지 중도좌파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한다. 그 가치를 전세계의 기본적인 사회 경제적 변화에 적응시켜 낡은 이데올로기적 극단에서 탈피하자는 게 목적이다.”
  • 복지감소 - 국유화 - 전쟁
  • 3의 길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노동당의 두 번의 실패 - 경제 위기가 올 때마다 정권을 내어주었다.

  • 1931- 경제대공황
  • 1979- 오일쇼크

 

[노동당의 첫 번째 실패]

 

노동당은 선거를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1923년 보수당측 총리 볼드윈이 국회를 해산시키고 총선을 진행했는데 38%로 과반 달성에 실패하고 노동당과 자유당의 연정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후 1929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1당이 되었다.

 

집권 정당인 램지 맥도널드는 경제 대공황이 닥쳤을 때,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지층의 이탈로 이후 선거에서 패배하게 된다.

 




당시 영국은 금본위제였다. 무역적자는 영국의 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경제 대국으로 미국이 부상하면서 영국의 제조업이 하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역적자가 확대되면서 실업자가 증가하게 되고, 실업수당이 증가하게 되면서 정부의 재정이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금본위제는 화폐를 많이 찍어내면 붕괴한다. 왜냐하면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상당수 자본가들이 불만을 품게 된다) 결국 영국은 미국에게서 돈을 빌리기로 하였다. 당연히 미국은 영국에게 긴축재정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것은 실업수당의 삭감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노동자들의 지지를 상실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후 선거에서 보수당이 470석의 압승을 거두게 된다.

 

산업경쟁력 상실 재정 적자 미국에 차관 요구 긴축 요구 긴축 실행, 노동자 지지 상실 선거 패배

 

돈을 찍어내지 않음으로 인해서 노동자들은 노동당이 자기네 편이 아니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위기 때에는 지지층의 결집이 필요하다)

 

[노동당의 두 번째 실패]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 1939년 출간한 존 스타인벡이 소설. 미국의 노동자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당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

  • 1961년 출간한 존 스타인벡의 소설. 명문가의 후손이나 지금은 사점 점원에 불과한 주인공이 물질적 욕구로 말미암아 도덕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그려내였다.

 

위의 소설에서 힌트를 얻어 1978~1979년 복지 예산 삭감으로 인하여 국민들이 일으켰던 혼란의 시기를 영국의 불만의 겨울라고 한다.

 

오일쇼크로 인하여 화폐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하였고, 영국 정부는 IMF에서 돈을 빌리게 되었다. 이때 IMF는 긴축 재정을 요구하게 되었고, 실업자가 증가하게 된다. 이때 영국 정부와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동결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그런데 3년 후에 정부가 다시 임금억제를 요구하게 되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졌고 결국 파업으로 이어졌다.

 



IMF 구제금융 신청 긴축재정, 임금억제 등 요구 계속되는 임금 억제 협약 거부, 파업 시작

 

선거제도가 완벽히 공평한 운동장은 아니다. 보수 세력이 정치(선거)에서 유리한 이유는 1) 지지층의 충성도가 높기 때문이며, 2) 가치 논쟁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진기의 역사로 보는 정당정치 - 3강] 영국의 정당정치 : 보수당과 자유당의 엇갈린 결말

6월 30, 2021

[최진기의 역사로 보는 정당정치 - 3] 영국의 정당정치 : 보수당과 자유당의 엇갈린 결말

 

[보수당의 위기 1]

 

나폴레옹 전쟁(1803~1815) 이후 영국은 대륙봉쇄령이 풀려서 프랑스의 농산물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때 곡물법 폐지를 놓고 지주와 자본가가 대립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아일랜드 대기근(Irish Great Famine, 1845~1852)이 발생하였다. 감자마름병에 의해 감자 수확량의 급감하면서 발생한 아일랜드 지방의 대기근 현상은 영국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이때 당시 다수당은 토리당이었고 당수는 로버트 필(1788~1855)이었다. 지주 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던 토리당임에도 불구하고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였다. 토리당은 보수당이 되었고, 휘그당은 자유당이 되었다. (보수당은 초당적 정책을 실현할 때 힘이 강해진다) 이로써 보수당이지만 국익을 우선시하는 보수당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보수당의 위기 2]

 

영국의 노동계급이 성장하면서 보수당에는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차티스트 운동이 벌어지면서 노동계층의 선거 참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선거권을 가지게 되면 당연히 보수당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867년 보수당은 자신들에게 불리할지도 모르는 도시 노동자 및 소시민의 선거참여를 보장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하였다. 이로써 100여만 명 유권자들이 증가하였는데, 대부분 도시 노동자들이었다.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벤저민(Benjamin Disraeli, 1804~1881)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 총리로 재임하면서 대영제국 확장의 중축을 맡은 인물이다. 그는 보수당은 엘리트나 어느 특정 계급의 당이 아니라, 전 국민의 당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노동자들을 위한 법을 많이 추진하였다. (보수층은 쉽사리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다)

 



19세기 후반 영국 보수당의 이데올로기는 1) 영국의 통합, 2) 대영제국 팽창주의였다. 영국의 보수당은 다음과 같은 역사의 교훈을 남겨주었다.

 

보수주의자가 내놓은 진보 정책은 진보주의자들이 내놓은 진보정책보다 위력적이다!”

 

[보수당의 위기 3]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은 1945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참패한다. 1935년 얻은 431석의 절반도 못 미치는 213석을 차지한 것이다. 이후 보수당은 오히려 급진적 정책으로 승부를 걸었고,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나아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친환경 정책을 내세우며 온정적 보수주의를 주창하기 시작하였다. (외연확대가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 보수주의자들은 늘 승리한다)

 

[자유당의 몰락]

 

반면 1800년대에는 전체 득표율의 40~60%를 얻으며 선전했던 자유당은 1923년 총선을 마지막으로 군소 정당으로 몰락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1906년 총선에서 과반수를 달성하면서(670석 중 397석 획득) 17년간 보수당의 지배를 종식하고 압승을 거뒀던 자유당은 불과 10년도 되지 않은 1918년 총선에서 36석을 얻는데 그쳤다. (1923년 총선 때 158석을 얻으며 재기를 노렸지만 이후 다시 군소정당으로 몰락하였다)

 

1918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당시에 국민대표법으로 선거권이 남자 21, 여자 30세까지 확대되었다. 이때 선거권이 확대되면서 중간계급이 자유당 지지에서 떠나기 시작했고, 노동계급의 독자 정치세력화가 시도되었다(노동당). 자유당은 선거권 확대로 인해 노동자, 중산층 그 어느 곳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자유당의 몰락에는 선거구 제도도 한 몫을 하였다. 영국의 선거제도는 전면적인 소선거구제도였는데 승자독식의 구조였다. 당시 유럽에는 사회주의 세력이 대두되면서 양 극단의 정치 세력과는 달리 중간 지대의 형성이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중대선거구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그런데 영국은 소선거구제도를 고수하였다. 이렇게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는 흐름 속에서 홀로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던 영국은 소선거구제도로 인해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자유당은 지지층의 표를 얻지 못하여 몰락하게 된 것이다.

 

자유당은 1983년 총선 때 25.4%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27.6%의 득표율을 얻은 노동당이 209명의 의석을 확보한 데 반하여 23석만 획득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노동당과 자유당이 얻은 득표율은 보수당이 얻은 득표율 42.4%를 훨씬 넘은 수치였으나 의석수에는 노동당이 397석을 얻어 과반수 이상을 획득하였다

[최진기의 역사로 보는 정당정치 - 2강] 영국의 정당정치 : 정당정치의 시작

6월 30, 2021

[최진기의 역사로 보는 정당정치 - 2] 영국의 정당정치 : 정당정치의 시작

 

영국 정당정치사의 주요 주제

  1. 영국 자유당은 왜 소멸되었는가?
  2. 영국 보수당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3. 영국 노동당은 어떻게 등장하였는가?

 

보수당의 원조가 토리(Tory) - 아일랜드어로 불량”, “도적

자유당의 원조가 휘그(whig) - 스코틀랜드어 ‘whiggamor’(모반자, 말도둑)에서 유래

 

[제임스 2세와 명예혁명]


제임스 2(1633~1701)는 찰스 1세의 아들이자 찰스 2세의 동생이다. 청교도 혁명 중에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1660년에 왕정이 복고되자 영국으로 돌아왔다. 형인 찰스 2세가 죽자 제임스 2세가 되었다. 당시 영국은 성공회가 국교였으나 제임스 2세는 가톨릭 신자였다.

 



제임스 2세는 원래 요크공이었는데, 미국의 뉴암스테르담을 뉴욕으로 바꾼 사람이다. 제임스 2세가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왕으로 세우자는 토리당과 반대하는 휘그당이 대립하게 된다. (영국에서 왕권의 안정을 추구하였던 토리당과 왕권의 힘을 약화시키려 했던 휘그당)

 

이후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났는데, 제임스 2세의 후계 탄생으로 인해 토리당과 휘그당이 연합하여 오렌지공 윌리엄을 왕으로 추대하면서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후에 루이 14세의 원조로 아일랜드에 상륙했다가 패하고 프랑스에서 죽게 된다)

 

[토리당과 휘그당의 연합의 비밀]

 

역사속에서 서로의 이익에 충돌하여 싸울 수밖에 없는 지주와 자본가의 관계가 영국에서 일시에 손을 잡는 상황이 발생된다. 프랑스와의 100년 전쟁 이후에 관세를 피해 영국으로 넘어간 플랑드르의 양복공들로 인해서 영국에서는 모직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감자가 들어오게 되고 농작물 가격이 떨어졌다. 이때 농사가 힘들어져 양을 키우는 지주들이 많이 생겼다(엔클로저운동). 시민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도시에서는 공장을 세워 기계를 돌리면서 모직공업이 발달하였다.

 

엔클로저 운동을 벌이는 지주를 젠트리라고 하고 도시에서 공장을 돌리는 자본가를 부르주아라고 한다. 이 둘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하면서 손을 잡게 되었다. 지주 계층을 대변하는 토리당과 자본가 계층을 대변하는 휘그당의 연합이 가능했던 이유는 대량의 양모가 필요했던 자본가(브루주아)와 양모를 팔아 부를 축적하고자 했던 지주(젠트리)의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연합회 제12회 총회 총대제위께 고함

한국기독교연합회 제12회 총회 총대제위께 고함 이 문서는 한국기독교연합회(N.C.C) 제12회 총회 당시 기독교장로회(기장) 대표들이 총대들에게 전하는 공식적인 입장을 담고 있다. 기장 측은 예수교장로회(예장)와의 분열 이후 회원권 행사 과정에서 겪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