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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에서 발행한 [십자군]과 김재준 – [십자군] 목차 수록

7월 16, 2026

북간도에서 발행한 [십자군]


김재준은 북간도에 있는 은진중학교 교유로 취임한 이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십자군」이라는 개인 잡지를 발간하였다. 평양신학교 기관지인 「신학지남」은 글을 쓰는 데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을 것이라 김재준으로서는 자신의 사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1920년대 장도빈의 밑에서 편집 실무를 했던 경험과 「신학지남」의 편집 실무의 경험이 「십자군」의 발행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1]

김재준은 1937년 5월에 「십자군」 창간호(제1권 제1호)를 발행하였다. 1938년 2월에 제2권 1호(통권 6호)를 내고 더 이상 발행할 수가 없었다. 비록 여섯 권이지만 십자군에 실린 글들은 김재준이 처음으로 자신의 사상을 온전하게 표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편 김재준은 1940년에 단행본 『落穗(낙수)』를 발행하였는데 거기에는 김재준이 「신학지남」과 「십자군」에 발표했던 글의 다수가 실려있다. 따라서 해당 글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는 『落穗(낙수)』와의 비교가 필요하다.[2]

김재준이 발행한 [십자군] 제1권 제1호 이미지


[십자군] 총 목차

☞ 각 글을 클릭하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십자군 제1권 제1호] 소화 12년 5월(1937년 5월)


[십자군 제1권 제2호] 소화 12년 6월(1937년 6월)


[십자군 제1권 제3호] 소화 12년 9월(1937년 9월)


[십자군 제1권 제4호] 소화 12년 10월(1937년 10월)


[십자군 제1권 제5호] 소화 12년 12월(1937년 12월)


[십자군 제2권 제1호] 소화 13년 2월(1938년 2월)


[십자군]의 의미


해외 유학을 통해 풍부한 신학적 식견을 갖춘 김재준이 1932년 귀국하면서 마주한 조선의 현실은 그의 신학적 사고에 거대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일제 말기의 점증하는 억압적 식민 체제와 이에 편승하거나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조선 교회의 현실은 그의 신학이 더 이상 이론적 사변에 머무를 수 없음을 깨닫게 하였다. 당시 조선 교회는 일제 식민 지배의 현실 속에서 적당히 순응하거나, 외면하여 현실도피를 하거나, 타협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내부적으로는 교권주의와 교리적 경직성에 사로잡혀 초기 선교기의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은 김재준에게 신앙의 순결성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신학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고 고통스러운 고민을 안겨주었다. 그는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현실의 불의에 침묵하는 것을 직무유기로 보았다. 특히 숭인상업학교 재직 시, 『신학지남』을 통한 보수적 교권과의 충돌은 그에게 이론적 신념이 현실의 벽 앞에서 어떻게 시험되고 단련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평양에서의 경험 이후 북간도 은진중학교에서 재직했던 시기는 김재준 사상의 실천적 면모를 더욱 심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단지 교사로서 학생을 가르치는 지성인의 역할을 넘어, 억압받는 민족의 삶의 현장, 즉 기독교적 민족운동의 현장 실천자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기독교 잡지 『십자군』의 편집인으로서 그는 암울한 시대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기독교적 관점에서 민족적 고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십자군』은 당시 청년들과 한국 교회에 민족의식과 기독교 신앙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으며, 김재준은 지면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더욱 넓게 전파하고 청년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이 시기는 김재준이 자신의 신학을 단순한 ‘지적ㆍ학문적 사유’ 수준에 머물게 하지 않고, 민중 속에서 숨 쉬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실천하는 신학’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신학이 단순한 ‘자유로운 신학 사유’를 넘어, 실제 공동체적 실천과 역사 변혁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동력으로 진화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북간도에서의 그의 활동은 이후 그가 주창할 ‘토착화된 한국 신학’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각주]
1. 주재용, “한국 신학사에 있어서의 김재준의 위치,” 484. 주재용은 「십자군」의 발행과 이후 발행하는 「제3일」을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다. 「십자군」에서는 십자가에서 부활을, 「제3일」에서는 부활에서 십자가를 본 신학을 전개하였다고 본 것이다.
2. 의도적인지 아닌지 간혹 「신학지남」의 글과 「십자군」의 글이 『낙수』에서는 수정된 부분이 많이 발견된다. 대부분 오타 수정이지만 가끔 단어를 의도적으로 바꾸거나 문장을 수정한 부분이 발견된다.

십자군 제2권 제1호 목차

4월 17, 2026

[십자군 제2권 제1호] D. L. 무디와 그 일화 – 편집자

4월 17, 2026

D. L. 무디와 그 逸話[일화]

- 編輯子[편집자]

米國[미국]의 第二十八代[제28대] 大統領[대통령]이 한번은 어느 理髮所[이발소]에 가서 理髮[이발]하는 中[중]이였다. 그 大統領[대통령] 自身[자신]의 말. 『말하자면 下等理髮館[하등이발관]인데 퍽 〇俗[〇곡]한 곧이였읍니다. 나 理髮[이발]을 시작하자 어떤 이가 들어와 내 옆 椅子[의자]에 안저서 역시 理髮[이발]하기 시작했었는데 나는 어쩐지 自然[자연] 그가 그 理髮師[이발사]하고 이야기하는 한마듸 한마듸에 귀를 기우리게 되였읍니다. 그의 말투에서 所謂[소위] 「敎訓的[교훈적] 口調[구조]」라는 것은 조곰도 찾어볼 수 없었으나 何如間[하여간] 이 理髮師[이발사]를 진정으로 생각해 준다는 것을 直感[직감]하게 되엿읍니다. 그가 理髮[이발]을 畢[필]하고 나간 다음에도 나는 일부러 그 理髮所[이발소]에서 徘徊[배회]하였읍니다. 얼마前[전]까지도 野卑[야비]한 弄談[농담]을 써가며 자랑삼아 웃고 지꺼리던 理髮師[이발사]들도 말이 없어지고 그 낮에 이상한 敬虔美[경건미]가 떠도는 것을 보았읍니다. 나도 이상한 視福[축복]을 느끼며 그 理髮所[이발소]를 나왔읍니다. 理髮師[이발사]들이나 내나 다함께 前[전]보다 한층더 높은 생각의 殿堂[전당]을 逍遙[소요]하고 있엇던 것입니다. 나는 禮拜堂[예배당]에서 나오는 氣分[기분]으로 그 理髮所[이발소]를 나왔읍니다. 그러나 그가 有名[유명]한 傳道者[전도자] 무-디 氏[씨]였던 것은 理髮師[이발사]들도 몰르고 나도 勿論[물론] 몰랐었읍니다.』

이 第二十八回[제28회] 大統領[대통령]은 우드로 윌손이였고 그의 다음 椅子[의자]에 안저 理髮[이발]하던 이는 勿論[물론] 무디 氏[씨]였다. 그러면 이 〇俗[〇곡]한 理髮所[이발소]를 불과 五[5], 六分間[6분간]에 聖所[성소]로 化[화]한 무-디 氏[씨]는 果然[과연] 어떠한 이였는가? 지금부터 그의 面貌[면모]를 그려보기로 하자.

무-디(Dwight Lyman Moody)는 一八三七年[1837년] 二月[2월] 五日[5일]에 米國[미국]의 만나츄-셋즈州[주] 東[동] 노트 ᅋᅵᆯ드에서 出生[출생]하야 一八九九年[1899년] 十二月[12월] 二十二日[22일]에 거긔서 逝去[서거]한 다시 없는 平信徒傳道者[평신도전도자]이였다. 그는 十七歲[17세]때까지 農場勞動者[농장노동자]로 지냈으며 十八歲[18세]부터 시카고市[시]에서 洋靴店[양화점] 店員[점원]으로 지내였다. 十八歲[18세] 때 그는 悔改[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었고 店員[점원]으로 있는 동안 풀리마우드 組合敎會堂會員[조합교회당회원]으로 主日學校[주일학교]를 組織引導[조직인도]하였으며 同時[동시]에 靑年傳道[청년전도]에 熱心[열심]을 다

하였다. 南北戰爭時[남북전쟁시]에는 戰線[전선]에 나가 傳道[전도]하였고 다시 시카고에 도라와 病傷兵[병상병] 看護[간호]에 盡力[진력]하였다. 一八六五年[1865년]에 시카고 基督靑年會長[기독청년회장]으로 被選[피선]되였으며 이 靑年會[청년회]에서는 廣大[광대]한 復興傳道舘[부흥전도관]을 建築[건축]하야 〇의 復興運動[부흥운동]에 提供[제공]하였다. 이 建物[건물]은 一八七二年[1872년]에 火災[화재]로 鳥有[조유]에 歸[귀]하였으나 그들은 다시 七萬弗[7만불]을 드려 大傳道舘[대전도관]을 지었다. 

무-디가 三十六歲[36세]때에 펜실베니아人[인] 생키(Ira D. Sankey)와 親交[친교]를 맺어 兩後二人[양후2인]은 一心同體[일심동체]로 聖役[성역]을 함께하였다. 쌍키는 무디보다 三歲年少者[삼세연소자]로서 銀行家[은행가]의 아들이오 祝福[축복]받은 音樂家[음악가]였다. 가는 곳마다 무-디는 說敎[설교]하고 쌍키는 노래하야 하나님의 두 팔과 같이 일하였다. 그들은 全米國[전미국]을 巡廻傳道[순회전도]하야 가는 곳마다 新生命[신생명]의 運動[운동]을 일으켰으며 다시 一八七〇年[1870년]과 一八八三年[1883년]에 英本國及蘇格團全幅[영본국급소격단전폭]에 大擧傳道[대거전도]하야 亦是[역시] 大復興[대부흥]을 일으키였다. 그들은 福音歌[복음가]를 出版[출판]하야 그 收入[수입]과 其他收入[기타수입]으로 노-트ᅋᅵᆯ트 女子神學院[여자신학원] 마운트허-몬男學校[남학교], 뻬야웯舘[관], 노트ᅋᅵᆯ드 聖經學校等[성경학교등]을 設立[설립]하였고 무-디의 著書[저서]로는 『말슴의 道[도]』 『그리스도의 再臨[재림]』 『하나님의 道[도]와 그 發見法[발견법]』 等[등]이오 其外[기외]에 幾多[기다]의 說敎集[설교집]이 있다. 그는 神學專攻[신학전공]한 이도 아니오 特別[특별]히 學校敎育[학교교육]을 받은 이도 아니었으나 그의 信仰[신앙]은 가장 健全[건전]한 正統[정통]이였으며 그의 說敎[설교]의 主題[주제]와 그의 人格全體[인격전체]는 「하나님의 사랑」에 그 中心[중심]을 두었고 敎派的[교파적]으로는 언제던지 合同[합동], 聯合[연합]의 情神[정신]에서 일하였다. 이제 그의 발자최를 더듬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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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임스江[강]의 南岸[남안] 캠버웰에서 諷刺的[풍자적]이오 批評的[비평적]인 젊은 醫學生[의학생] 하나 심심푸리 삼아 무-디의 復興會[부흥회]에 參席[참석]하였다. 긴 說敎[설교]는 질색 긴 긔도는 더군다나 질색인 이 醫學生[의학생]은 不幸[불행]하게도 이 集會[집회]에 參席[참석]하자마자 긴 祈禱[기도]꾼에게 붓잡히였다. 이 긔도꾼은 뿔랭크氏[씨]! 그는 지금 창세 以後[이후]로 現代[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하나님 聖德[성덕]을 一一[일일]히 찬송하고 인저 英國[영국]에서 떠나 世界[세계]를 一週[일주]하며 大少萬事[대소만사]에 하나님의 主意[주의]를 喚起[환기]한 후 다시 第二次[제2차] 世界一週[세계일주]를 시작하는 中[중]이였다. 그때 講壇[강단]우에 안젓던 무-디氏[씨] 이러서서 群衆[군중]을 向[향]하야 하는 말! 『뿔랭크 兄[형]님이 祈禱[기도]하시는 동안 우리 다같이 찬송가 제 八十九章[89장]불릅시다.』

이 醫學生[의학생]은 갑작이 옷깃을 바로잡고 이러안젓다. 그의 눈은 빛났다. 『이 사람 너절한 復興師[부흥사]가 아니로구나 그 勇氣[용기]와 常識[상식]이 平凡以上[평범이상]이다!』하고 혼자 感嘆[감탄]하였다. 한時間[시간] 說敎[설교]에 귀를 기우린 醫學生[의학생]은 깊히 생각하며 집으로 도라가더니 後[후]에 世界最大[세계최대]의 醫療宣敎師[의료선교사]로 라바라도의 어름에 무친 北永洋[북영양]사람들께 거룩한 偉業[위업]을 남기였다. 그의 일홈은 월프레드 티 그레펠 博士[박사](Dr. Wilfred T. Creafell)이다.

무-디는 身長六尺[신장6척] 體重三十四貫[체중34관]의 巨人[거인]이다. 그가 講壇[강단]에 나서면 爲先[위선] 그 偉容[위용]이 사람을 눌른다. 勿論[물론] 그의 靈力[영력]이 體軀[체구]의 偉大[위대]한데 있은 것은 아니나 그의 體軀[체구]가 그 靈的活動[영적활동]에 最先[최선]의 機械[기계]가 된 것은 事實[사실]이다. 그는 鋼鐵人[강철인]이었다. 無盡藏[무진장]의 活力[활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集會[집회]는 언제나 數千名[수천명]이였으며 굴레스고에서는 三萬名[3만명] 캔사스씨티에서 二萬名[2만명]을 앞에 놓고 說敎[설교]하야 多多益善[다다익선]의 大結果[대결과]를 이였다.

그가 一八九二年[1892년] 蘇格蘭[소격란]을 巡廻[순회]할 때에는 九十日[90일]동안에 九十九都市[99도시]에서 集會[집회]했으며 아츰 아홉시부터 밤 아홉시까지 쉴새없이 說敎[설교]하였다. 그러기에 그의 同志[동지]로 찬송가 引導[인도] 맡은 이라, 쌍키는 너무 急[급]해저서 하로 熱心[열심]으로 긔도하는 말 - 『오 하나님 무-디를 疲困[피곤]하게 합소서 그러챦으면 우리에게도 사람 以上[이상]의 힘을 주옵소서!』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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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故鄕[고향] 노트ᅋᅵᆯ드의 農夫[농부]들은 언제나 그를 「무-디君[군]」이라 불렀다. 언젠가 누가 「무-디 博士[박사]」라고 불러 보았으나 通用[통용]이 안되고 말었다. 그는 太西洋 저쪽에서 大英帝國[대영제국]을 뒤집어 흔들어 世界人[세계인] 欽仰[흠앙]의 焦點[초점]이 되였으나 몇칠 後[후] 故鄕[고향] 農村[농촌]에 돌아온때에는 如前[여전]히 낡은 農服[농복]을 입고 傭人[용인]들과 함께 밭갈고 닭먹이고 풀 뽑고해서 그 附近農夫[부근농부]와 조곰도 다른 틔가 없었다.  子女[자녀]들이 或[혹] 잘못한 일이 있으면 무섭게 嚴[엄]하게 책망하지만 그들이 寢臺[침대]에 잠든 때면 그는 몰래 그들의 寢臺[침대] 옆에 꿀어안저 그들을 爲[위]하야 뜨거운 긔도를 들이는 것이였다. 마운트 홀리욕 大學校長[대학교장] 메리 울리 女史[여사]가 하로는 무-디 家庭[가정]에서 朝飯[조반]을 같이 한일이 있었는데 조반 후에 무-디는 全家族[전가족]과 함께 聖經[성경] 한 章[장] 읽고 진실로 敬虔[경건]한 긔도를 들이였다. 그러나 『아-멘』하고 긔도끝나자마자 그는 그의 아들을 向[향]하야 『소가 콩밭에 들어가지 안는가 꼭 잘 봐야 한다!』 하고 말하였다. 그는 極度[극도]로 靈的[영적]이면서도 同時[동시]에 또한 極度[극도]로 人間的[인간적]이였다. 켐벨 몰갠의 말에 依[의]하면 그는 한번 네 살먹은 손녀를 안고 馬車[마차]타고 집에 오다가 車中[차중]에서 어린애가 잠들엇는데 집에 다와서도 깨나지 않으니까 그는 車夫[차부]로 하여금 말을 가만히 버끼게 하고 그애를 안은채 馬車[마차] 안에 그대로 안저 있다가 그만 자긔까지 거긔서 잠들어버리였다한다. 잠든 어린애를 안은채 잠든 그는 어린애같이 天眞[천진]스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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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ᅋᅵᆯ드에서 한 二十里(이십리, 조선리수)되는 와-윅의 조고마한 農村敎會[농촌교회]에서 牧師[목사]가 없어 講壇[강단]이 비게 된 때 무-디는 一年[일년]나마 그 敎會[교회]의 牧師[목사]일을 보아주었다. 一年後[일년후] 그 敎會[교회]에서 얼마 報酬[보수]를 들이려 한때 그는 呵呵大笑[가가대소]! 

도모지 問題[문제]도 삼지 않었다. 그에게 非人間的[비인간적]인 데가 있다면 그가 돈에 全然[전연] 無頓着[무돈착]했다는 그것일 것이다. 그의 찬송가集[집]과 說敎集[설교집]이 出版[출판]되여 數十萬弗[수십만불]의 收入[수입]이 있었으나 그는 銅錢[동전]한푼 거긔 손대이지 않었다. 그는 자긔가 물어야 할 것은 깔축없이 다물었지만 언제던지 그 自身[자신]을 위하야 收金[수금]하는 일은 절대로 용납지 않었섯다. 누구에게 말한마듸 들을 거 없이 제절로 百萬長者[백만장자]가 될것이였으나 그는 한 農夫[농부]로서 所用[소용]되는 生活費以上[생활비이상]의 아모다른 收入[수입]도 取[취]하지 않었다. 復興家[부흥가]로서 百萬長者[백만장자] 된 삘리 썬데-가 그 아들의 放蕩[방탕]으로 祝福[축복]을 〇代[〇대]하지 못한 苦憫[고민]에 比[비]하면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使者[사자]」 참 聖神[성신]의 사람이였음을 讚嘆[찬탄]하지 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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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神學校門[신학교문]이 어듸 붙엇는지도 몰랐으나 世界的[세계적] 大說敎家[설교가], 傳道者[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만나가 감초인 天上[천상]에 홀로 逍遙[소요]하며 즐긴 者[자]가 아니오 사람들 입에 그 만나를 난화 먹이는 것을 使命[사명]으로 한 者[자]였다. 그는 神學的[신학적] 辯論[변론]을 몹시 실혀하였다. 어느 때 神學的[신학적] 辯論[변론]에 熱中[열중]하는 者[자]들을 보고 『머리털 깨틀이는 實驗[실험]은 좀 그만두었으면 좋챤소?』하였다. 누가 그에게 『당신 信條[신조]가 무엇이오?』하고 물은 때 그는 『이사야 五十三章[53장]이오!』 하고 대답했다 한다. 그는 專門學校[전문학교]도 다녀보지 못한 이다. 그러나 當時[당시]의 世界的[세계적] 最大神學者[최대신학자], 푸린스톤神學校[신학교]의 아-취발드 하지 박사는 하로 敎室[교실]에서 이러케 말하였다. 『내가 만일 그 사람(무-디를 가리킴)처름 說敎[설교]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내 地位[지위]와 學職[학직]을 다 糞土[분토]같이 버리겠소.』

그는 聖經以外[성경이외]에 다른 아모것도 說敎[설교]하지 안었다. 心理學[심리학]도 無用[무용] 高等批評[고등비평]도 몰랏다. 『福音[복음]이 어떠케 罪人[죄인] 구원하는 것은 내가 四十年間[40년간] 實驗[실험]해서 잘 아는 터인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새 方法[방법]에 덥적거릴 必要[필요]가 무어 있소?』 하는 것이었다. 그가 聖經[성경]을 들고 講[강]단에 나서매 왼世上[세상]은 그의 말을 들었다. 웨 그랬는가? 聖經[성경]만은 그가 참으로 잘 工夫[공부]했고 잘 알었던 까닭이다. 그는 每日[매일] 아츰 네時[시]에 이러나 祈禱[기도]하며 聖經[성경]을 읽엇다. 聖經[성경]의 깊은 뜻을 꿰뚫러 보는 데는 아마도 그때나 이제나 그에게 匹敵[필적]할 자 없을 것이다. 그는 講壇[강단]에서 별스럽게 굴지 않었으며 怒呼[노호]하지도 안었고 暴言豪語[폭언호어]도 없었으며 演劇[연극]도 하지 안었다. 그는 노트ᅋᅵᆯ드 農夫[농부]들과 會話[회화]할때처름 單純[단순]하고 天眞[천진]하였다. 그에게는 誹謗[비방]이 없었으며 쓴말이 없었다.

한번은 어느 敎役者[교역자]가 몹시 激烈[격렬]하게 論爭的[논쟁적] 說敎[설교]하는 것을 듣고나서 그가 하는 말! 『나한번 魔鬼[마귀]에 對[대]하야 說敎[설교]를 준비했었는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온갖 惡[악]한 일홈으로 그를 불르며 내 힘자라는데까지 그를 찢고 밟고 한 셈이였지요. 그러고 내가 오늘 이 說敎[설교]만 하면 마귀라는 놈 아주 납작해 젖지 별수 있나! 하고 불

내면서 熱心[열심]으로 說敎[설교]를 했지요. 그런데 說敎[설교]가 끝난 다음에 敎人[교인]들 마음을 가만히 삶여보니깐 「듣고보니 마귀가 그러케 납분놈은 아니였구먼!」하고 마귀에게 동정하는 氣分[기분]이겠지요! 그래 그때부터 나는 그 따위 說敎[설교]는 다 치여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한답니다.』 그의 신령한 智惠[지혜]의 閃光[섬광]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만 증거하면 나는 숨기고 그리스도만 나타나니 마귀가 제절로 무서워 달아나지만 그리스도를 擁護[옹호]하노라고 내가 앞에 서고 그리스도가 내 뒤에 숨으신다면 마귀가 도망질은커녕 그 奸計[간계]로 나를 붙잡아 더 충실한 自己[자기] 종을 삼을 것은 두말없이 그럴거 아닌가? 言必稱[언필칭] 異端排擊[이단배격], 正統擁護之徒[정통옹호지도]가 率先[솔선]하야 敎會分裂[교회분열]의 主役[주역]이 되는 理由[이유]가 곧 여긔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贖罪愛[속죄애]를 各自[각자]의 生活全體[생활전체]로 證據[증거]한다면 異端[이단]은 제절로 물러갈 것이 아닌가? 異端[이단]이란 自體[자체]가 사탄에게서 난 것이라면 「異端排擊[이단배격]」이란 것도 역시 사탄의 所作[소작]이니 그는 이들을 싸움부처 敎會[교회]의 분열, 兄弟愛[형제애]의 冷却[냉각], 信仰[신앙]의 儀文化[의문화]를 達成[달성]하려는 것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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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끈임없이 그리스도만 이야기하매 사람들은 실증없이 그의 말을 들엇다. 그는 한번 요한복음 三[3]장 十六[16]절을 本文[본문]으로 하고 육일동안 계속하야 설교하였다 第七日[제7일]밤에 그는 會衆[회중]을 향하야 『친구들, 나 오늘 終日[종일] 새 本文[본문]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이처름 좋은 本文[본문]을 찾지 못했읍니다. 그래 또 이 요한 三[3]장 十六節[16절]로 도라왔소이다.』 하였다. 그러나 그가 설교하는 동안에 실타고 나간 사람은 勿論[물론] 하나도 없었다. 그가 異端排擊[이단배격]에는 甚[심]히 拙[졸]하였으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는 진실로 勇將[용장]이였다. 시카고에 世界傳覺會[세계전각회]가 열렸을 때 그는 中央音樂堂[중앙음악당]을 세내여 傳道集會[전도집회]를 計劃[계획]하였다. 集會時間[집회시간]은 아츰 九時[9시]부터 午後[오후] 六[時6시]까지였다. 다른 傳覺會[전각회] 구경 갈터인데 웬걸 모히랴! 하고 모도들 걱정하였지만 놀라지 마라! 첫날 時間[시간]도 되기전에 무-디가 들창을 열로 겨우 집안에 들어갈만치 사람들이 차고 넘치였었다. 傳覺會[전각회]의 모든 演劇[연극]과 구경거리도 이 聖經[성경]을 손에든 한사람 앞에서는 아모힘도 없었던 것이다. 演劇[연극]이야기 났으니 말이지 한번 有名[유명]한 ᅋᅩ레파우曲馬團[곡마단]이 시카고에 와서 午後[오후]와 저녁 두 번식 大興行[대흥행]을 한다고 廣告[광고]하였다. 그때 무-디는 그 興行塲主[흥행장주]에게 교섭하야 아츰 時間[시간]에 그 興行塲[흥행장]을 세내여 傳道集會[전도집회]하기로 約定[약정]하였다. 그런데 아츰 時間[시간]에 그 興行塲[흥행장]에 몰려온 群衆[군중]이 너무나 超滿員[초만원]이오 너무나 感激的[감격적]인 것을 보고 興行師[흥행사]들은 그만 그날 午後[오후]에 天幕[천막]을 거두어싯고 봇짐싸가지고 다른데로 가버리였다한다. 勿論[물론] 그들도 아츰 集會[집회]에 나와 은혜받고 갓을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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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米國[미국]에서는 天主敎[천주교]와 新敎派[신교파]와의 싸움이 가장 激烈[격렬]하던 때엿다. 그때 그의 故鄕[고향]인 노-드ᅋᅵᆯ드에 새로 天主敎堂[천주교당]이 建設[건설]되였는데 그는 그 天主敎堂建設[천주교당건설]을 爲[위]하야 꽤 많은 金錢[금전]과 風琴一座[풍금일좌]를 연보하였다. 그러나 數年後[수년후] 그 自身[자신]이 트리니타리안 禮拜堂[예배당]을 建築[건축]할 때에는 天主敎[천주교]에서 사흘동안 계속하야 돌팔매질하는 것으로 그의 親切[친절]을 報答[보답]하였다. 무-디의 눈에는 天主敎[천주교]도 新敎[신교]도 보이지 않고 다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의 靈魂[영혼]만이 보이였던 것이언마는 相對方[상대방]의 沒理解[몰이해]는 마츰내 이런 悖德[패덕]을 이르킨 것이니 遺憾[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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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는 世上[세상] 떠나기 바로 前[전]에 이러케 말하였다. 『몃칠 지나서 新聞[신문]에 「띠엘 무-디가 죽었다」는 記事[기사]가 날지라도 조곰도 믿지 말어! 나는 갈사록 더 活動的[활동적]으로 살터이니까!』 하였다. 진실로 그는 더욱 活潑[활발]하게 살어 움직인다. 이제 死後[사후]에 계속하는 그의 生活[생활]을 보자! 거즛先知者[선지자]는 죽는 날이 썩는 날이지마는 참 하나님의 先知者[선지자]는 죽엄을 通[통]하야 더욱 그 榮光[영광]을 빛내며 더욱 뚜렷한 열매를 맺어보이는 것이음으로써다. 昨年[작년]은 무-디 誕生[탄생]한 百年[백년]되는 해였다. 그의 死後[시후]의 事業[사업]이 如何[여하]? 그가 設立[설립]한 노트엘드 女子神學院[여자신학원]과 마운트허몬男學校[남학교]에 一千百名[1100명]의 在學生[재학생]이 있으며 二萬名[2만명]의 卒業生[졸업생]이 아직도 生存[생존]하야 무-디의 믿음을 傳播[전파]하고 있다. 그의 指導[지도]로 생겨난 大學生及專門學生[대학생급전문학생]으로 된 「世界宣敎學生義勇團[세계선교학생의용단]」은 五十年來[오십년래]에 米國[미국]에서만 一萬三千餘名[일만삼천여명]의 宣敎師[선교사]를 全世界[전세계]에 派送[파송]하야 지금도 活躍[활약]하고 있다.

무디의 婦人聖經班[부인성경반]에서부터 자라난 시카고의 무-디聖經學校[성경학교]에서도 二萬五千名[2만5천명]의 精兵[정병]이 靈戰[영전]의 第一線[제일선]에 나섰으며 現在[현재] 四十名專任敎授[40명전임교수]의 指導下[지도하]에서 一萬名[일만명]의 在學生[재학생]이 第一線[제일선]에 설 遺憾[유감]없는 準備[준비]와 訓練[훈련]을 받고 있다. 이 學校[학교]에는 라디오 放送局[방송국]과 聖經夜學校[성경야학교]까지 있어 聖經知識[성경지식]의 普及[보급]에 萬全[만전]을 다하는 中[중]이며 시카고의 무-디紀念禮拜堂[기념예배당]은 아모 敎派[교파]에도 屬[속]하지안코 아모 敎會法則[교회법칙]에도 매이지 안은 敎會[교회]로서 다만 悔改[회개]하고 예수들 참으로 믿는 者[자]면 누구나 그 會員[회원]으로 迎接[영접]한다. 現在[현재] 四千名[사천명]의 會員[회원] 一千七百名[1700명]의 主日學校生[주일학교생]이 있으며 富者敎人[부자교인]은 없으니 이는 禮拜堂門牌[예배당문패]에 색인 標語[표어] 「他鄕[타향] 손님과 가난한 이들 언제나 없이 환영합니다」한 것이 그 정신인 까닭인가 한다. 이 敎壇[교단]아래에서 百十四名[114명]의 宣敎師[선교사]가 特別[특별]히 가난하고 病[병]든이들 가운데로 나가 그들의 親舊[친구]가 되여있다.

聖經文書運動團[성경문서운동단]에서는 四十一年間[41년간]에 百六十一種[161종]의 信仰文書[신앙문서]를 六國語[6국어]로 一千萬部[일천만부]를 刊行頌布[간행송포]했으며 聖經[성경], 찬송가, 傳道用單行本等[전도용단행본등]은 七十萬部以上[70만부이상]이 여긔서 부 全世界[전세계]에 퍼지였다.

무-디의 感化[감화]로 主[주]께 獻身[헌신]한 사람은 반다시 牧師[목사]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中間補充者[중간보충자]들이다』 하는 것이 무-디가 늘상하는 말이였다. 즉 牧師[목사]와 平敎人[평교인]과의 사이를 메꾸는 것이 그들의 使命[사명]이란 말이다. 牧師[목사]는 聖別[성별]된 職分[직분]이니만치 아모 事業[사업]에나 分別[분별] 없이 손댈수 없으며 平敎人[평교인]은 修養[수양]과 訓鍊[훈련]이 없고 또 世俗生活[세속생활]에 汨沒[골몰]하니만치 直接奉仕[직접봉사]의 能力[능력]이 缺乏[결핍]하다. 그러므로 무-디는 스데반 빌립 等[등]과 같이 使徒[사도]와 平信徒[평신도]의 사이에 있어 社會奉仕[사회봉사]와 傳道[전도]를 兼行[겸행]할 初代敎會式[초대교회식] 獻身的[헌신적] 執事級[집사급]을 訓鍊[훈련]하려는 것이였다. 진실로 名案[명안]이다. 그러므로 무디와 關聯[관련]된 사람들은 社會各方面[사회각방면]에 들어가 그 信仰[신앙]을 實踐[실천]한다. 最近[최근]에 某英國記者[모영국기자]의 發表[발표]한 바에 依[의]하면 『론돈의 모든 慈善機關[자선기관]에서 만일 무-디와 關係[관계]된 사람들을 다 除外[제외]한다면 全[전] 론돈의 慈善機關[자선기관]은 그 〇體[〇체]를 일허버릴 것이다』 하였다. 우리에게는 더욱이 이런 訓鍊機關[훈련기관]이 必要[필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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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후에 내 願[원]하는 碑石[비석]은 두발가지고 걸어다니는 碑石[비석]이다』하고 무-디는 말하였다. 救援[구원]받은 罪人[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救援[구원]을 왼 世界[세계]에 傳[전]하는 그 두발가진 무-디의 사람들이 곳 그의 不滅[불멸]의 碑銘[비명]이다. 『聖神[성신]이 너이게 臨[임]하시면 너이가 權能[권능]을 얻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서 내 證人[증인]이 되리라』 聖神[성신]에 感激[감격]한 무-디는 偉大[위대]한 비쥰에 불타는 先知者[선지자]였다. 그러고 이 先知者[선지자]의 비쥰은 갈사록 더 크게 밝게 우리를 비최이고 있다. 

一月 十日



[십자군 제2권 제1호] 소문소감 - 해외교계동정

4월 17, 2026

所聞所感[소문소감]

海外敎界動靜[해외교계동정]

『破壞捐補[파괴연보]』

콘넥티컽市[시] 組合敎會[조합교회]에서 지금까지쓰던 禮拜堂[예배당]을 헐고 그 자리에 새 禮拜堂[예배당]을 짓키로 作定[작정]하였다. 敎友[교우]들이 建築[건축]연보 거두려 도라다니는 중 그 이웃에 있는 羅馬天主敎會[라마천주교회] 神父[신부]에게도 들러 연보를 청하였다. 그 신부[신부]는 퍽 자선심이 많은 이로서 무엇이든지 좋은 事業[사업]이면 自進[자진]하야 도아주는 이였으나 이번만은 머리를 가로흔들며 『로마天主敎[천주교] 神父[신부]로서 新敎禮拜堂[신교예배당] 짓는데 도아주는 것은 敎會法[교회법]에 禁止[금지]된 일이니까 할수없다』고 대답하였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수일후에 이 神父[신부]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그속에는 相當[상당]히 많은 연보가 들어있었다. 그 편지에 있는 말 -

『나는 몃칠동안 敎會法規[교회법규]를 자세히 찾어보았으나 天主敎神父[천주교신부]로서 新敎禮拜堂[신교예배당] 허는 것을 도아주지 말라는 條文[조문]은 없었읍니다. 그래 지금 이 돈을 보내들이오니 당신네 禮拜堂[예배당]허는데 쓰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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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印度[남인도]의 敎會聯合運動[교회연합운동]』

組合敎會[조합교회], 長老敎會[장로교회], 米國改革敎會[미국개혁교회]의 三派[삼파]가 이미 聯合[연합]하야 南印度聯合敎會[남인도연합교회]를 일운 것은 이미 된 事實[사실]이어니와 今番[금번] 다시 웨슬레 監理敎會[감리교회]와 聖公會[성공회]와 이 南印度聯合敎會[남인도연합교회]와의 三派合同運動[삼파합동운동]이 거의 具體化[구체화]하여가는 中[중]이다. 兩年間[양년간] 彼此[피차] 協議[협의]한 結果[결과] 南印度聯合敎會總會[남인도연합교회총회]에서는 下記[하기] 三個條[삼개조]만 諒解[양해]되면 聯合[연합]이 實現[실현]될 것을 말하였다 (1) 平信徒 代表[평신도대표]와 敎役者代表[교역자대표]가 同等[동등]일 것 (2) 聯合[연합]하기 前[전]에 三派公同聖餐禮拜[삼파공동성찬예배]와 公同祝賀禮拜[공동축하예배]를 거행할 것 (3) 特別[특별]한 境遇[경우]에는 平信徒[평신도]에게도 聖餐禮拜式擧行權[성찬예배식거행권]을 許容[허용]할 것.

아직도 難問題[난문제]가 많으나 結局[결국] 合同[합동]이 成立[성립]될 것은 確實[확실]하다고 報道[보도]되였다. 世界敎會[세계교회]는 지금 모든 方面[방면]으로 마음을 合[합]하고 힘을 合[합]하려는 大傾向[대경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 朝鮮敎會[조선교회]에 있어서도 紛亂[분란], 獨善主義[독선주의]는 絶對[절대]로 容納[용납]하지 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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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地[성지]의 聖誕節[성탄절]』

크리스마스라 하면 흔히 우리는 흰눈속에 고요히 잠든 江山[강산]을 생각하지마는 聖地[성지] 팔레스틘의 聖誕節[성탄절]은 아주 달라서 山[산]과 들과 골자군이 모도다 푸른풀 좋은 꽃으로 덮이여있다. 聖地[성지]에는 지금 두 民族[민족]이 사는데 하나는 아라비아人[인]이오 하나는 유대人[인]이다. 그런데 아라비아人中[인중]에는 希臘正敎會員[희랍정교회원]도 많고 聖公會[성공회]와 天主敎會員[천주교회원]도 더러 있어서 크리스마스도 얼마 직히지마는 유대人[인]은 信者[신자]가 없음으로 聖誕[성탄]은 직히지 안는다. 그러나 유대人[인]들도 이때는 슈뎔절 即[즉] 마까비가 主前[주전] 一六五年[165년]에 스리아의 안티오커스 이피파니어스를 이기고 聖殿[성전]에서 偶像[우상]을 淸潔[청결]해버리고 다시 聖殿[성전]을 하나님께 奉獻[봉헌]한 날을 紀念[기념]

하는 節[절]긔임으로 히부리 學校[학교]들은 다 休業[휴업]이오 各店頭[각점두]는 八枝燈〇[팔기등〇]를 꿈여 祝賀[축하]의 意[의]를 表[표]한다. 아라비아人[인]들도 마츰 이때는 라마단月[월]임으로 禁食[금식]하며 지낸다.

事實[사실] 聖地[성지]에는 세 聖誕節[성탄절]이 이엄이엄 온다고 볼 수 있다. 天主敎人[천주교인]과 新敎人[신교인]들은 十二月[12월] 二十五日[25일]을 직힌다. 希臘正敎會[희랍정교회]에서는 自己[자기]네 舊曆[구력]대로 十二月[12월] 二十五日[25일] 직히니 現行曆[현행력]으로 말한다면 一月[1월] 七日[7일]이다. 그러고 알메니아 信者[신자]들은 一月[1월] 十九日[19일]을 聖誕節[성탄절]로 직힌다. 이렇게 날자가 달른 것이 遺憾[유감]이지만 그 祝賀[축하]하는 內容[내용]이 다 같으니 적이 慰安[위안]이 된다.

聖誕節[성탄절]이면 信者[신자]들의 行列[행열]에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떠나서 에부라다 道路[도로]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徐徐[서서]히 行進[행진]한다. 얼마 가다가 유대人[인]들이 특별히 尊敬[존경]하는 라헬의 무덤에 잠간 발을 멈추었다가 行列[행렬]은 西[서]으로 도라져 헤브론과 브어쉐바로 가는 길을 걸어간다. 그러다가 다시 南向[남향]하야 언덕으로 올라가면 거기가 옛날 榮光[영광]의 마을 베들레헴인데 그 周圍[주위]는 넓은 뜰! 보아스의 뜰이다. 쓰린 가슴 아름다운 얼골의 소유자인 異域[이역]의 젊은 寡婦[과부]들이 落穗[낙수]를 주으며 한숨쉬던 뜰도 여기오 牧童[목동]인 少年[소년] 따윋이 羊[양] 몰고 도라오든 뜰도 여기다. 

이리하야 行列[행렬]은 베들레헴 복판에 들어선다. 그리하야 네 사람이 나라니서서 지나갈 수 없을만치 좁은 골목을 걸어 그 目的地[목적지]인 誕生地禮拜堂[탄생지예배당](The Church of Nativity)으로 들어간다. 이 禮拜堂[예배당]은 東[동]쪽가에 있는 最古[최고]의 禮拜堂中[예배당중] 하나로서 콘스탄틴 帝[제]가 세운 것이오 後[후]에 改築[개축]하야 禮拜堂[예배당]으로 使用[사용]하게 될 것이다. 行列[행렬]은 이 禮拜堂[예배당]에 들어가 聖誕祝賀禮式[성탄축하예식]을 擧行[거행]하는데 그 中[중] 第一華麗壯嚴[제일화려장엄]한 禮式[예식]은 亦是[역시] 希臘正敎會[희랍정교회]의 그것이다. 그러나 이 宏壯[굉장]한 禮式[예식]에 參席[참석]하고 恍惚[황홀]한 氣分[기분]으로 흐터질때마다 人間[인간]의 가장 單純[단순]한 言行[언행]을 사랑하신 木手[목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果然[과연] 어떠하실가 하는 未安[미안]이 내마음을 눌르지 안을 수 없었다.

(뉴-아웉룩 誌特派員所記)

『牧師[목사]의 三重務[삼중무]』

론돈의 씨티 –템풀 禮拜堂[예배당]의 웨더헤드 牧師[목사](Rev. Leslie D. Weatherbead)는 說敎家[설교가]로서 有名[유명]할뿐아니라 靑年[청년]들의 「그룹」指導[지도]와 敎人[교인]의 心理學的[심리학적] 治病術[치병술]에 造詣[조예]깊은 牧師[목사]이다. 그는 말하기를 『敎會[교회]는 大衆的[대중적]으로 說敎[설교]에 置重[치중]할뿐으로서는 그 使命[사명]을 다할 수 없다. 「그룹」의 討議[토의]와 談話[담화]를 中心[중심]으로 잘아난 「同志[동지]」의 養成[양성]이 그 最大任務[최대임무] 中[중]의 하나이다. 그러고 敎人[교인]들의 心理的[심리적] 病[병]은 心理學[심리학]을 應用[응용]하야 牧師[목사]가 그 治療[치료]에 當[당]해야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야 그 自身[자신]의 이에 對[대]한 顯著[현저]한 功蹟[공적]으로 말미암아 英國[영국]의 數三神學校[수삼신학교]에서는 이 心理療法[심리요법]을 敎授科目[교수과목]으로 너케되였다. 主[주]님께서는 大衆[대중]을 向[향]하야 說敎[설교]하시고 弟子[제자]들을 「그룹」으로 난호아 「同志[동지]」訓鍊[훈련]에 힘쓰시고 또 病者[병자]를 治療[치료]하섰으니 牧者[목자]로서 「牧者長[목자장]」의 본을 딸어야 할 것은 勿論[물론]이다. 特[특]히 우리 朝鮮敎會[조선교회]에서의 不足[부족]은 이 「同志[동지]」 訓鍊[훈련]과 醫療[의료] ###



[십자군 제2권 제1호] 경건문학 : 어거스틴 참회록(4) – 장공

4월 17, 2026

敬虔文學[경건문학]

어거스틴 懺悔錄(4)

長空[장공] 新譯[신역]


小學時代[소학시대] (續[속])

[十六] 『遊戱[유희]』 - 그러치만 이에서 나는 죄를 犯[범]하였나이다. 오 主[주]하나님 自然[자연]의 萬物[만물]을 創造[창조]하신 이, 處分[처분]하시는 이시며 罪[죄]는 오직 處分[처분]만 하시는 오 主[주] 나의 하나님이시여 나는 내 兩親[양친]과 내 先生[선생]들의 命令[명령]을 拒逆[거역]함으로 말미암아 罪[죄]를 犯[범]하였나이다. 이는 무슨 動機[동기]로 햇던지 間[간]에 저들이 나에게 배워준 것은 後[후]에 내가 善[선]하게 使用[사용]할 수 있었을 것임이외다. 내가 저들을 拒逆[거역]한 것은 「저들의 生命[생명]보다」 더 좋은 것을 내가 擇[택]한 까닭이 아니오라 다만 작난을 즐기며 나의 競技[경기]에 있어서 勝利[승리]의 자랑을 사랑하며 지어낸 이야기로 내 귀를 긁어 더욱 근지럽게 하려함이였나이다. 이 好奇心[호기심]은 내 눈에서 더욱더 반짝이며 어룬들이 하는 구경꺼리와 競技[경기]로 向[향]하였사옵니다. 그런데 이 구경꺼리의 「主人公[주인공]」들은 아주 높힘을 받는 이들이여서 사람들의 거의 全部[전부]가 自己[자기]네 어린이들도 다 저렇케 되었으면하고 願[원]하는 터이였나이다. 그러면서도 이 구경이 저들 「어린이들」의 공부를 방해하면 그 구경한 어린이들은 초달맛나는 것을 퍽 좋케녁이더이다. 공부식히는 「主要目的[주요목적]이」 그 구경의 主人公[주인공] 같이 되게 하려는 것이면서도 – 오, 불상히 녁이심으로 이 일을 보아주소서 主[주]여~ 그리하야 지금 당신께 呼訴[호소]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 당신께 呼訴[호소]하지 안는 者[자]들까지도 구원하소서. 그리하야 저들도 당신께 호소하게 되며 당신께서 저들을 구원하게 하옵소서.

[十七] 『重病[중병]』 - 그런데 그때 한 少年[소년]으로서의 나는 벌서 永遠[영원]한 生命[생명]에 對[대]한 것을 들었나이다. 이는 우리의 교만우에 몸굽히신 主[주] 우리 하나님의 겸손을 通[통]하야 우리에게 約束[약속]하신 것

이였사오며 또 당신을 크게 바라고 있던 내 어머니의 胎[태]로부터 主[주]의 十字架[십자가]의 표로써 封印[봉인]하시고 主[주]님의 소곰으로 소곰치신 것이였나이다. 主[주]여 당신은 보섯나이다. 내가 아직 少年[소년]이던 어느때 갑작히 胃痛[위통]이 甚[심]하야 거의 죽게 되였던 일을! 어떠케 내가 어떤 熱心[열심]과 믿음으로 내 어머니와 또한 우리들 共通[공통]의 어머니 되시는 당신 敎會[교회]의 敬虔[경건]한 念慮[염려]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이시오 내 主[주]님이신 그리스도의 洗禮[세례]를 받고저 懇求[간구]한 것을 당신은 보섯나이다. 내 하나님 당신은 나의 守護者[수호자]이시오매! 이일에 있어서 내 肉身[육신]의 어머니, 당신 믿음안에서 정결한 心情[심정]을 가진 그는 더욱이나 사랑스럽게도 내 救援[구원]을 爲[위]한 生産[생산]의 手苦[수고]를 담당 하였나이다.

그때 만일 내가 곳 完快[완쾌]하지 안었던들 그는 罪赦[죄사]함을 얻기 爲[위]하야 主[주]예수 당신을 告白[고백]하며 힘주는 聖〇[성〇]에 參與[참여]하야 나의 獻身[헌신]과 淨罪[정죄]를 더큰 苦惱[고뇌]로 분주히 예비하였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마치 내가 다시 살어난다면 또 더러워지지 안을수 없다는 듯이 나의 淨罪[정죄]는 〇延[〇연]되였었나이다. 이는 씻음 받은 後[후]에 犯[범]하는 罪汚[죄오]는 더 크고 위험한 罪實[죄실]을 가저올 것임이였나이다. 그리하야 나는 母親[모친]과 및 다른 全家族[전가족]들과 함께 信者[신자]가 되었나이다. 다만 父親[부친]만은 믿지 안으섯사오나 그렇다고 내 어머니의 나에게 向[향]한 信仰[신앙]의 權威[권위]를 抑壓[억압]하야 自己[자기]가 아직 믿지 안는 것 같이 나는 믿지 안케하려고는 하지않었었나이다. 그가 아니라, 당신, 내 하나님이 내 아바지 되기를 어머니는 眞心[진심]으로 祈願[기원]하였었나이다. 그리하야 이 일에 있어서 당신께서는 어머니를 도으서서 그로 하여곰 그의 남편을 屈服[굴복]케하였사오며 비록 男便[남편]보다 나을지라도 그에게 順從[순종]함으로 말미암아 順從[순종]하라 命[명]하신 당신에게 順從[순종]하였나이다.

[十八] 나는 당신께 祈願[기원]합니다. 내 하나님이시여! 만일 당신의 뜻일진대 그때 무슨 目的[목적]으로 나의 洗禮[세례]가 〇延[〇연]되였는지 알고서 切願[절원]하옵니다. 마치 나로 하여곰 죄짓케 하시려는 듯이 내우에 줄을 늦추신 것이 나의 잘되기 爲[위]함이였나이까? 그렇챤으면 줄은 느춰지지 안은것이였나이까? 만일 늦춰진 것이 아니라면 웨 아직도 各方面[각방면]으로부터 『그를 상관하지말어! 그는 아직

洗禮[세례]를 받지 않었으니 그의 하는대로 버려두어!』하는 「소리가」우리 귀에 울려오나이까? 그러나 肉身[육신]의 健康[건강]에 一關[일관]해서는 『그가 아직 낫지 않었으니 더 몹시 傷[상]하게 해라!』하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읍니다. 내가 그때 곳 나아서 나의 친구들과 나 自身[자신]의 精進[정진]으로 말미암아 내 靈魂[영혼]의 恢復[회복]된 健康[건강]이 이를 許與[허여]하신 당신의 守護下[수호하]에서 安全[안전]하게 지낼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겠나이까? 진실로 더욱 휼륭하였겠나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誘惑[유혹]의 큰 물결이 나의 少年期[소년기]를 뒤니어 나우에 덮여있는 듯 하였나이까! 내 어머니는 이것을 압서 보았나이다. 그리하야 일우어진 形像[형상]보다도 차라리 後日[후일]에 이르러 내가 비저질 흙덩이를 저 波浪[파랑]에 맛기는 편을 났게 녁인 것이였나이다.

[十九] 『억지로 공부』 - 는 그래도 靑年期[청년기]보다는 퍽으나 危懼[위구]가 적었던 少年期[소년기]에 있어서 나는 工夫[공부]하기를 즐기지 안었사오며 또한 이에 强制[강제]됨을 미워하였나이다. 그러나 나는 强制[강제]를 받었나이다. 이것은 나에게 잘한 것이였사오나 나는 이에 對[대]하야 잘하지 못하였나이다. 이는 强制[강제]를 받지 안으면 나는 工夫[공부]하지 안었던 까닭이옵니다. 그러나 가령 잘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억지로 해서 잘되는 일은 없나이다. 더군다나 나를 强制[강제]한 이들도 잘한 것은 아니였나이다. 잘된 것은 오직 당신 내하나님으로부터 나에게 온것이였사옵니다. 이는 저들이 强制[강제]로 나에게 가르처준 그것을 내가 어떻게 應用[응용]할데 對[대]해서는 저들은 아주 無關心[무관심]하였사옵고 다만 富者거지오 辱[욕]된 榮光[영광]인 滿足[만족]못식힐 情感[정감]의 滿足[만족]을 願[원]한 것뿐이였던 까닭이옵니다. 그러나 당신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혜시는 당신께서는 나를 鞭〇[편〇]하야 工夫[공부]식히던 그이들의 온갖 잘못을 利用[이용]하사 나의 有益[유익]이 되게하시면 工夫[공부]하기 실혀한 나 自身[자신]의 「잘못은」 당신께서 나의 刑罰[형벌]로 利用[이용]하섯나이다. 진실로 그러케 적은 아이로서 그러케도 큰 罪人[죄인]인 「나에게는」 千萬合當[천만합당]한 刑罰[형벌]이였나이다. 이리하야 잘하지 못한 이들로써 당신은 나에게 〇〇〇 주섯사오며 나 自身[자신]의 罪[죄]로써 당신은 나를 正當[정당]히 罰[벌]하였나이다. 이는 당신께서 命令[명령]하신 것이오매 그대로 되어 있는 것이온데 온갖 〇度[〇도]

〇度[〇도]없는 愛情[애정]은 그대로 그의 刑罰[형벌[이 되게 하신 것이옵니다.

[二十] 『古典文學[고전문학]의 虛妄[허망]』 - 그러나 내가 少年[소년]으로서 工夫[공부]하던 그리시아語[어]는 웨 그러케도 몹시 실혀햇사옵는지 아직도 나는 充分[충분]히 알지 못하옵니다. 〇典語[〇전어]는 小學校敎師[소학교교사]가 가르친 것이 아니옵고 所謂[소위] 文法家[문법가]라는 이들이 가르치였었나이다. 小學校[소학교]의 正科[정과]인 讀法[독법], 作文[작문], 算法[산법]은 또한 어느 그리시아語[어] 科目[과목]보다도 못하지 안케 큰집이오 罪人[죄인]같이 생각하였나이다. 그러면 이건또 어듸서 온것이오리까? 이 世上罪[세상죄]와 虛妄[허망]에서 온 것이 아니오리까? 나는 肉身[육신]이오 한번가고 다시 안오는 바람결인 까닭이 아니였사오리까? 이 小學校正科[소학교정과]는 더 確實[확실]한 學問[학문]이였사옵기에 確實[확실]히 더좋은 「學問[학문]」이였나이다. 「이 小學正科[소학정과]의 學習[학습]」으로 말미암어 내가 남쓴 글을 읽으며 내 願[원]하는 바를 써내는 能力[능력]을 얻었사오며 또 「그 能力[능력]를」 지금도 保全[보전]하고 있사옵니다.그러나 다른 科目[과목]에 있어서는 『아에니아스의 放浪[방랑]』이란 册[책]을 억지로 배우며 나 自身[자신]의 放浪[방랑]은 잊게 되었사오며 〇愛[〇애] 때문에 自殺[자살]한 女子[여자] 띠도를 爲[위]하야는 울면서도 오 내 生命[생명]인 하나님! 당신을 멀니떠나 이런 일 中[중]에서 죽어가는 悲慘[비참]한 나 自身[자신]을 爲[위]해서는 매마른 눈동자로 지내였사옵니다.



[십자군 제2권 제1호] 히부리인서연의(4) - 김재준

4월 17, 2026

히부리人書演義[인서연의] (四[사])

金在俊[김재준]


此號[차호]까지의 演義內容槪要[연의내용개요]

1. 總論[총론]

[1] 基督敎[기독교]의 究極性[구극성] - 本書[본서]의 主題[주제] (1:1-4)

(1) 舊約[구약]과 新約[신약]의 兩啓示[양계시]를 對照[대조] (1-2절)

(2) 聖子[성자]의 性質[성질]과 事業[사업], 特[특]히 그의 神性[신성]과 化身[화신]에 對[대]하야 (3절)

(3) 本論[본론]으로 옴기는 始作[시작] (4절)

2. 本論[본론]

[1] 新約[신약]의 仲保者[중보자]인 聖子[성자]의 優越性[우월성]! 天使[천사]와 對照[대조] (1:5-2:18)

(1) 聖經[성경]의 證言[증언] (1:5-14)

(2) 聖子[성자]로 말미암은 新約啓示[신약계시]를 等閑視[등한시]하는 罪[죄] (2:1-4)

(3) 苦難[고난]을 通[통]하야 完成[완성]된 聖子[성자]의 人類[인류]에 對[대]한 究極的[구극적] 聖使命[성사명] (2:5-18)

[2] 舊約[구약]의 建設者[건설자]와 新約[신약]의 建設者[건설자] 對照[대조] (3-4장)

(1) 모세와 예수 (3:1-6)

① 예수의 權威[권위] (1-2절)

② 집과 그 집의 建設者[건설자] (3-4절)

③ 下人[하인]과 아들 (5-6절)

(2) 舊, 新約啓示[구, 신약계시]에 나타난 언약과 그 백성 對照[대조] (3:7-4:13)

① 믿음은 祝福[축복]의 先行條件[선행조건] (3:7-19)

② 未完成[미완성]의 約條[약조] (4:1-13)

③ 大祭司長[대제사장]에 關[관]한 敎理序論[교리서론] (4:1-13)

舊約宗敎[구약종교]의 建設者[건설자]인 모세와 新約宗敎[신약종교]의 建設者[건설자]인 예수를 對照[대조]하야 新約宗敎[신약종교]의 究極性[구극성]을 立證[입증]한 것으로서(3:1-6) 爲先[위선] 그 序論[서론]으로 「예수의 權威[권위]을 述[술]하고(1-2) 다음 모세와 예수를 對照[대조]하였다. (3-6)

聖子[성자] 그리스도의 權威[권위]와 仁慈[인자]하심 人子[인자]로 오서서 墮落[타락]한 人間[인간]에게 가까이하사 苦難[고난]을 通[통]하야 救贖[구속]하시며 大祭司長[대제사장]으로 和睦祭[화목제]를 들이신 그리스도 主[주]님이시매 우리 信者[신자]로서 어찌 그의 人格[인격]에 對[대]하야 無關心[무관심]하게 지낼 수 있으리오?

『그런고로 거룩한 兄弟[형제], 하날의 부르심을 같이 닙은 者[자]들아, 맛당히 우리 믿는 도리의 使徒[사도](使者[사자])시며 大[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히 생각하라』(3:1)한 것이다. 이 편지의 著者[저자]나 讀者[독자]나 다 信者[신자]이매 곳 하나님께서 自己[자기]의 所有[소유]로 特別[특별]히 갈라노흐신 百姓[백성]이니 「聖別[성별]」함을 닙은 者[자]들이다. 따라서 「聖兄弟[성형제]」들이며 「우으로부터 부름받은」 〇召[〇소]의 天恩[천은]에 浴[욕]한 者[자]들이다. 그러면 罔極[망극]한 恩寵[은총]을 입은 者[자]들로서 이 恩寵[은총]으로 引導[인도]한 信仰[신앙]의 「使徒[사도]」 即[즉] 「보냄을 입은 이」 아바지께서 救贖主[구속주]로 世上[세상]에 「보내신」이 聖子[성자] 예수 同時[동시]에 大祭司長[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히 생각『하지 안을수 없을 것이다. 『그』 即[즉] 예수『가 自己[자기]를 세우신 이』 即[즉] 하나님『에게 忠誠[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집』 곳 이스라엘 全民族間[전민족간]『에서 「忠誠[충성]한 것과 같으니라』 여기 「세우신 이」란 것은 「將立[장립]」 「任職[임직]」의 意[의]오 「하나님의 온집」이란 것은 「하나님이 그 中[중]에 居[거]하시는 組織[조직]된 社會[사회]」를 일음이니 舊約時代[구약시대]의 이스라엘 民族[민족] 新約時代[신약시대]에 信者[신자]로 組織[조직]된 「敎會[교회]」와 같은 것이다. 모세가 極忠極誠[극충극성]으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百姓[백성]으로 指導訓鍊[지도훈련]한 것은 民數記[민수기] 十二〇七[12장 7절]에 있는 것으로서 모세가 그 職分[직분]에 忠誠[충성]한 것 같이 예수도 또한 그 職分[직분]에 끝가지 忠誠[충성]한 것이였다. 그러므로 『예수를 깊히 생각하라』하는 것이다.

이제 그러면 職分[직분]에 「忠誠[충성]」한 點[점]으로는 모세아 예수나 彼此一般[피차일반]이라 할지라도 그 「職分[직분]의 高下[고하] 尊卑[존비]에 있어서는 이 兩者[양자](모세의 職分[직분]과 예수의 직분)는 진실로 天壤之間[천양지간]이다.

이제 모세와 예수의 職分[직분]의 尊卑[존비]를 對照[대조]한다면 모세는 「집」이오 예수는 「집짓는 이」 곳 하나님이시며(3-4) 모세는 그 집 「下人[하인]」이오 예수는 「아들」이시다(5-6)

『[三] 그는 모세보다 더욱 榮光[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세운 자가 그집보다 더욱 尊貴[존귀]한 것 같으니라 [四] 집마다 반다시 누가 세운 이가 있으니 萬物[만물]을 세우신 者[자]는 곳 하나님이시라 [五] 또한 모세는 하나님의 온집에서 사환으로 忠誠[충성]하야 將來[장래]의 말할 것을 證據[증거]하였고 [六] 그리스도는 그집맡은 

아들로 忠誠[충성]하섰으니 우리가 그집이라 다만 所望[소망]의 굿셈과 자랑함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할지라』 여기에 그 집 사환꾼인 모세가 「將來[장래]의 말할 것을 證據[증거]」했다는 것은 律法[율법]은 福音[복음]의 準備工作[준비공작]이였으므로 律法[율법]의 主導者[주도자] 모세는 메시아 그 福音[복음]이 人間[인간]에 들어와 救援完成[구원완성]할 것을 바라고 이를 豫備[예비] 豫證[예증]한 者[자]이란말이다. 그러고 예수는 그집 全體[전체]를 主官[주관]하는 主人[주인]으로 계신 「아들」이시다. 그런데 이 「집」이란 것은 무었인가? 곳 우리 信者社會[신자사회]를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 信者[신자]라할지라도 온갖 波浪[파랑]의 彼岸[피안]에 보이는 이 偉大[위대]한 天國所望[천국소망]을 밝게 보는 中[중]에서 「强硬[강경]」한 信仰心[신앙심]과 이 所望[소망]의 「자랑」을 끝까지 堅持[견지]하지 못하면 이 「하나님의 집」되는 特權[특권]을 享有[향유]할수 없는 것이다.

(2) 舊, 新約啓示[구, 신약계시]에 나타난 언약과 그 백성 對照[대조] (3:7-4:13)

① 믿음은 祝福[축복]의 先行條件[선행조건] (3:7-19)

그러면 하나님께서 親[친]히 그 中[중]에 居[거]하시는 組織[조직]된 人間社會[인간사회] 即[즉] 「하나님의 집」된 信者[신자]에게 있어서 무었보다도 몬저 要求[요구]되는 것은 곳 信仰[신앙]이다. 굿세고 膽大[담대]한 믿음, 所望[소망] 中[중]에 즐거워하는 믿음, 하나님께 絶對信賴[절대신뢰], 信徒[신도]하는 믿음이 온갖 祝福[축복]의 先行條件[선행조건]이다. 그런고로 著者[저자]는 이에 點[점]을 强調[강조]하기 爲[위]하야 舊約[구약]의 詩篇[시편] 九十三篇[93편]을 引用[인용]하야 (1) 出埃及時[출애급시]에 이스라엘 民族[민족]이 不信任[불신임], 不信徒[불신도]임으로 말미암아 받은바 廣野四十年[광야사십년]의 온갖 쓰린 經驗[경험]을 述[술]하고 三〇七-十一[3장 7-11절] (2) 以上[이상]의 事實[사실]을 一般的[일반적]으로 適用[적용]하야 當時[당시]의 信者[신자]에게 信仰堅持[신앙견지]를 効[효]하였으며(12-15절) (3) 냉종으로 이 廣野經驗[광야경험]을 더 仔細[자세]히 解釋[해석]하야 그 眞意[진의]를 깨우친 것이다(16-19절).

『그런고로 성신이 이르신 바와 같이』 舊約詩篇[구약시편] 九十五〇七-十一[95편 7-11절]에 말슴하시기를

『오늘날 너이가 만일 그(하나님)의 소리를 듣거든 [八] 너이의 마음을 완쾌케하기를 녯적에(出埃及時[출애급시]) 怒[노]하심을 격동하야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말나. [九] 거기서 너희 列祖[열조]가 나를 搜探[수탐]하야 시험하고 四十年[40년]동안에 나의 行[행]함을 보았나니라』 하나님께 對[대]하야 絶對信任[절대신임] 信徒[신도]의 念[념]이 없는 이스라엘 民衆[민중]은 늘상 하나님의 能力如何[능력여하]를 探査[탐사]하며 試驗[시험]하였다. 진실로 하나님께 對[대]한 온갖 不信任[불신임]은 그대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며 凌辱[능욕]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四十年間[40년간] 數多[수다]한 奇事[기사]와 異蹟[이적]을 行[행]하서서 그들에게 그 權能[권능]을 實證[실증]하섰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如前[여전]히 頑冥[완명], 不信[불신]이였으니 하나님의 이제 取[취]하실 態度[태도]가 무었인가? 『[十] 그런고로 내가 이 세대를 怒[노]하야 말하기를 저이가 나를 ####

惑[혹]되여 내 길을 알지 못하니 [十一] 그런고로 내가 怒[노]하야 맹세하기를 저희가 내 安息[안식]에 드러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이는 千萬合當[천만합당]한 處分[처분]이시다. 끝까지 不信任[불신임]하고 迷路[미로]를 取[취]하는 그들이였으며 하나님께서 强[강]한 決意[결의]로 「맹세」하시기를 彼等[피등]은 「내 安息[안식]」 即[즉] 가나안의 福地[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게하리라 하신것이였다. 그러면 이 詩篇[시편]은 〇千年前[〇천년전] 廣野時代[광야시대]의 이스라엘 民衆[민중]에게만 하신 말슴인가? 아니라! 「오늘날」(七칠)이란 文句[문구]가 指示[지시]하는대로, 그리스도의 福音[복음]이 傳播[전파]되여 하나님의 偉大[위대]한 權能[권능]이 天下[천하]에 들어난지 四十年[40년]이나 되는 現世代[현세대] 即[즉] 著者[저자]의 시대에 있어서도 그대로 適用[적용]되는 말슴인 것이다. 特[특]히 이 詩篇[시편](九十五〇)은 그때 猶太敎[유태교] 會堂[회당]에서 禮拜始作[예배시작]할대 開會詩篇[개회시편]으로 使用[사용]하던 것이였으니만치 언제나 새로운 詩篇[시편]이다. 그러면 『[十四] 兄弟[형제]들아 너히가 삼가 혹 너히 中[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惡[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 떠러질가 念慮[염려]할 것이오 오직 오늘이라 일캇는 동안에 每日[매일] 彼此[피차] 權勉[권면]하야 너히 中[중]에 누가 罪[죄]의 誘惑[유혹]을 받아 頑悖[완패]케됨을 免[면]케하라』 진실로 貴[귀]한 권면이다. 여기의 「兄弟[형제]들」은 다 벌서부터 믿는 信者[신자]들이다. 廣野[광야]의 이스라엘 民族[민족]도 다 「信者[신자]」였다. 그러나 저들은 다만 하나님을 觀念的[관념적] 敎理的[교리적]으로 「信認[신인]」하였을뿐이오 온갖 實際生活問題[실제생활문제]에 逢着[봉착]할 때에는 하나님을 참으로 「살아계실」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著者[저자]가 當時[당시]의 信者兄弟[신자형제]에게 主意[주의]준 것도 또한 이 點[점]에 있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 돈을 하나님보다 더 믿고 權勢[권세]를 하나님보다 더 무서워하는 「實際的無神論者[실제적무신론자]」가 되어 믿노라고 하면서도 「믿지 아니하는 惡心[악심]을 품은 者[자]」가 될가 두려워하야 「오늘날」이라는 이 「現在[현재]」에서 곳 彼此[피차] 權勉扶掖[권면부액]할 것이오 하로라도 〇延[〇연]하야 惡[악]에게 機會[기회]를 주는 일이 없게하라 하였다.

『대개 우리가 만일 시작할 때에 독실히 믿는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한가지도 그리스도를 얻은 자가 되리라』 진실로 그러하다 첫믿음은 누구나 熱烈[열렬]하다 첫사랑은 뜨겁다 그러나 오래 갈사록 믿음은 形式化[형식화]하고 職業化[직업화]하야 그 生命[생명]을 일허버린다. 그러나 항상 激動[격동]하야 첫 믿음의 生動力[생동력]이 그대로 씩씩하게 자라나게만 한다면 結局[결국]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品格[품격]으로 化[화]하야 굳게 설 수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事業[사업]과 榮光[영광]에 同參[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 詩[시] 九十五〇七-十一[95편 7-11절] 옛말슴을 좀더 仔細[자세]히 상고해보자 『[十五] 성경에 닐넛으되 「오늘날 너히가 만일 그의 소리를 듣거든 옛적에 怒[하심을 격

(三〇頁에 續)

(十七頁에서 續)

동할때와 같이 너의 마음을 완쾌케하지 말라」 하였으니』 그러면 하나님의 말슴을 『듣고』서 도로혀 하나님의 怒[노]하심을 『격동케한 者[자]가 누구냐』 『다 모세들좃차 애급에서 나온자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四十年[40년]동안에 누구를 怒[노]하였으냐? 犯罪[범죄]하야 그 屍體[시체]가 廣野[광야]에 업드러진 者[자]가 아니냐? 또 하나님께서 누구를 向[향]하야 맹세하사 그 安息[안식]에 드러오지 못하리라 하섰느냐? 곳 信徒[신도]치 아니하던 者[자]가 아니냐』 모세를 쪼차 애급에서 나온 者[자]들이니 믿기로 作定[작정]한 者[자]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實際[실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信任[신임]하지 안었으며 하나님을 信徒[신도]하지 안었으매 結局[결국] 徵罰[징벌]을 받어 曠野[광야]에 그 屍體[시체]를 남기고 安息處[안식처]인 가나안 福地[복지]는 밟어보지 못하였섰다. 그러면 여기서 發見[발견]한 眞理[진리]가 무엇인가?

『[十九] 이로보건대 뎌히가 믿지 아니함으로(信任[신임] 信從[신종]치 안음으로) 능히 들어 가지 못한 것이다』

- 다음은 四장 一절부터 -



[십자군 제2권 제1호] 맨처음에(창세기 4:1-26) - 김재준

4월 17, 2026

『맨처음에』 (창세기) 四〇一-廿六[4장 1-26절]

金在俊[김재준] 謹譯[근역]


[一] 그 사람이 그의 안해 해와를 알매 그가 잉태하야 카인을 낳고 말하기를 『내가 야-웨-로 「더부러」(原意未詳) 사람을 얻었다』 하더라. [二] 그러고 다시 그가 그의 동생 하벨을 낳았는데 하벨은 양치는 자가 되고 카인은 밭가는 자가 되니라. [三] 그후에 카인은 땅의 열매를 야-웨-께 선물로 가저오고 [四] 하벨은 또한 그의 양떼의 첫 새끼들과 그 곱(脂肪[지방])을 가저오니라. 그런데 야-웨-께서 하벨과 그의 선물은 돌아보시고 [五] 카인과 그의 선물은 돌아보시지 안으시니 카인이 몹시 화가 나서(原語[원어] 「불붙어서」) 그 낯이 숙어지니라. (不平[불평]의 表現[표현]) [六] 그래 야-웨-께서 카인에게 말슴하시기를 『웨 네가 화났느냐? 웨 네낯이 숙어젔느냐? [七] 만일 네가 잘했으면 「낯이」 들리지 않겠느냐? 네가 만일 잘못했으면 죄가 문에 업드려 「였고」 있느니라. 그 (죄)의 소원이 네게 있으나 네가 그를 다스려야 하리라 (ㆍ〇處原文未詳故多異說[〇처원문미상고다이설]) [七/八] 【김재준이 표기한 절/실제 창세기의 절】카인이 그 동생 하벨에게 말하기를 『우리 들로 가자!』(古羅典譯[고라전역], 스리아譯[역], 사마리아 校正本[교정본]의 五書[오서]에 다 이 句[구]가 있음) 그리하야 저들이 들에 있을때에 카인이 이러나 그 동생 하벨에게 「달려들어」 그를 죽이니라. [八/九] 야-웨-께서 카인에게 말슴하시기를 『네 동생 하벨이 어디 있느냐?』하시매 그가 말하기를 『나는 아지 못합니다. 내가 내 동생의 파수군인가요?』 [九/十] 그(야-웨-)가 말슴하시기를 『네가 무엇했느냐? 네 동생의 피의 소리가 땅으로부터 나에게 부르짖는다! [十/十一] 그 입을 벌리고 네 손으로부터 네 동생의 피를 받은 그 땅에서 지금 너는 저주를 받었도다. [十一/十二] 네가 그 땅을 밭갈지라도 지금부터는 땅이 그 힘을 네게 내지 안을지며 너는 지상(地上_에서 류랑민, 표박자(流浪民, 漂泊者)가 될지니라』 [十二/十三] 카인이 야-웨-께 말하기를 『내 형벌이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나이다. [十三/十四] 보십시오. 오늘 나를 그 땅우에서 몰아 내시고 또 당신 안전(顔前)에서 내가 숨게 되었아오며 또 내가 지상(地上)에서 류랑민, 표박자가 되겠아온즉 누구나 나를 만나는대로 죽일것이옵니다』 [十四/十五] 그러므로 야-웨-께서 그에게 말슴하시기를 『누구던지 카인을 

죽이는 자는 그에게 七[칠]배나 원수 갚으리라』하시고 야-웨-께서 카인을 위하야 한 표를 주사 만나는 자가 그를 치지 못하게 하시니라.

[十五/十六] 그리하야 카인이 야-웨-의 안전(顔前)에서 떠나가 에덴 동쪽 녿(流浪[유랑]의 뜻) 땅에 머무(居住[거주])니라. [十六/十七] 카인이 그 안해를 알매 그가 잉태하야 해녹을 낳다. 그가 한 성읍(城邑)을 건설하고 그 아들의 일홈을 딸아 그 성읍 일홈을 해녹이라 불르니라. [十七/十八] 해녹에게 이라드가 나고 이라드가 메후야엘을 낳고 메후야엘이 메두샤엘을 낳고 메두샤엘이 ᄙᅡ멕을 낳다. [十八/十九] ᄙᅡ멕이 두 안해를 취하니 첫째의 일홈은 아다요 둘째의 일홈은 질라더라. [十九/二十] 아다가 야벨을 낳으니 그는 천막(天幕) 속에 살며 목축(牧畜)하는 자의 아비(元祖[원조])가 되었으며 [二十/廿一] 그 동생의 일홈은 유발이니 거문고와 퉁소 다투는 자(古代鉉[고대현] 管樂器[관악기]을 使用演奏[사용연주]함을 意味[의미]함)의 아비가 되니라. [廿一/廿二] 질라도 또한 두발 카인을 낳으니 구리와 철(銅鐵)의 온갖 날카로운 쟁기 맨드는 야장이였고 두발카인의 누이는 나아마더라.

[廿二/廿三] ᄙᅡ멕이 그의 두 안해에게 말하기를

『아다와 질라야 내소리 들으라

ᄙᅡ멕의 안해들아 내말을 들으라

나 상하는 사람을 내가 죽였으며

나 상하는 소년을 또한 「죽였음이라」

[廿三/廿四] 카인이 원수를 七[칠]배나 갚을진대

ᄙᅡ멕은 진실로 七十七[칠십칠]배나 할 것임일세』

[廿四/廿五] 아담이 다시 그안해를 알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일홈을 쉐드라 불르니 이는 『카인이 하벨을 죽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대신 다른 씨를 내게 두심([두심]이란 原語音[원어음][ᄉᆔ드]가 [ᄉᆐ드]와 類似音[유사음]인 까닭)이라』함이라. [廿五/廿六] 쉐드에게로 또한 아들이 나니 그가 그 일홈을 에노ᄉᆔ(語義[어의] 「사람」)라 불르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이 아이웨-의 일홈을 불르기 시작하니라.



[십자군 제2권 제1호] 그리스도의 향기 - 편집실

4월 17, 2026

그리스도의 香氣[향기]
- 勇師[용사]의 片貌[편모]

編輯室選[편집실선]

『全的奉獻[전적봉헌]』

쩨 월비 촬맨 博士[박사]가 하로는 救世軍創設者[구세군창설자] 부-스 大將[대장]을 訪問[방문]하고 그의 成功[성공]의 祕訣[비결]이 무엇인가 물었다. 부-스 大將[대장]은 얼마 주저하다가 말하기를 『지금 그 祕訣[비결]을 말슴하리다. 나와 나에게 屬[속]한 것은 全部[전부] 하나님이 가지섰읍니다. 나 보기에도 여기에는 나보다 썩 더 총명한 이가 많읍니다. 그러고 나보다 더 좋은 기회 가진이도 많읍니다. 그러나 론돈(英京[영경])의 가난한 이들이 내 心情[심정]을 붙잡은 그날부터, 또는 이 가난한 이들을 예수께서는 어떻게 처리하시리라는 幻像[환상]을 본 그날부터 나는 결심하기를 「하나님께서 윌리암 부-스와 그에게 屬[속]한 모든 것을 가지옵소서」하고 나섰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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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콘의 說敎[설교]』

黑奴解放[흑노해방]으로 有名[유명]한 米國[미국]의 아부라함 링콘 大統領[대통령]은 所謂[소위] 「아이들 說敎[설교]」를 잘했었는데 그 說敎[설교]란 이런 것이였다. 『술 먹지마라. 노름 놀지마라. 담배먹지마라. 거짓말하지마라. 남속이지마라. 동무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참것을 사랑하고, 좋은 일 하는 것을 사랑해라. 그러고 언제나 유쾌하게 지내라.』

링콘은 絶對禁酒家[절대금주가]로서 有名[유명]하다 그는 靑年[청년]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했었다. 『네 원수(敵[적])가 네입에 들어가 네 뇌수(腦[뇌])을 도적질하게 말라』고 한번은 포토맥港[항]에 가서 그렌드 大將[대장]의 軍隊[군대]를 檢閱[검열]한 때 어느 將校[장교]가 샴펜酒[주] 한 잔을 부어 링콘에게 들이며 『대통녕 각하! 이걸 잡수시면 배탄때 수질(船醉[선취])하지 않읍니다.』

링콘의 即答[즉답] 『하 그걸 먹구서 육지(陸地)에서 수질하는 사람 나 얼마던지 보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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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責任[책임]』

톨스토이 翁[옹]이 하로는 로서아 農夫[농부] 한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그 農夫[농부]에게 뭇기를 『來日[내일] 예수 재림하서서 심판하신다면 당신 어떻게 하려오?』 하였다. 그 農夫[농부]의 對答[대답] 『밭갈지요!』

米國[미국]이 英國屬地[영국속지]로 있을 때 어느 날 낮인데 갑작히 캄캄해지며 이상한 징조가 보이였다. 사람들은 심판날이 왔다고 예배당에 달녀가 긔도하며 야단이였다. 그때 콘넥티컽州議會[주의회]가 議事進行中[의사진행중]이였는데 의원들은 다들 떨며 停會[정회]하기를 청하였다. 

그때 한 사람이 嚴然[엄연]히 하는 말, 『촛

불 켜놓고 의사 진행합시다. 이게 만일 심판날이 아니면 의회를 정회식힐 아모 理由[이유]도 없는 것이오 만일 심판날이라면 우리가 우리 책임 다하는 것을 主[주]께서 보시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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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國[제국]을 실은 木船[목선]』

信仰[신앙]의 自由[자유]를 熱望[열망]하야 本國[본국]을 쪼껴 和蘭[화란]의 〇地[〇지]로 彷徨[방황]하다가 마츰내 한처은 木船[목선](五月花[오월화])에 몸을 던저 北米[북미]의 新大陸[신대륙]으로 向[향]한 百十名[110명]의 勇師[용사]들은 大西洋[대서양]의 물결을 征服[정복]하고 검은 수풀, 욱어진 새땅을 눈앞에 보게 되였다. 배가운데서의 마금 主日[주일]! 그들은 良心[양심]대로 하나님을 禮拜[예배]할 수 있는 새 天國建設[천국건설]의 具體的[구체적] 盟約[맹약]을 맺고 信仰[신앙]의 눈물과 祈禱[기도]의 敬虔[경건]으로 그 約條[약조]를 封印[봉인]하였다. 熱情[열정]의 祈禱[기도]와 찬송소리는 波〇聲[피〇성]을 눌르고 水平線[수평선]우에 끝없이 물결처퍼지었다.

『風浪中[풍랑중]에 희망의 노래

별과 바다가 和答[화답]하도다

젖은 나무의 船室[선실]을 뚤고

自由[자유]의 聖歌[성가]는 울려오도다』

이리하야 一六二〇年[1620년] 十二月[12월] 二十日[20일] 그들은 北米[북미]의 맛사츄셋즈 海岸[해안]에 上陸[상륙]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봄되기도 前[전]에 벌서 이 적은 무리의 半數[반수]는 새 땅의 흙속에 그 몸을 쉬이고 남은 半數中[반수중]에서도 病者[병자]를 看護[간호]할만츰 健康[건강]한 이는 다만 五, 六名[5, 6명]에 지나지 안었다마는 저들의 적은 배에 실고 온 信仰[신앙]의 大帝國[대제국], 自由[자유]의 王國[왕국]은 그들의 幻像[환상]에서 더욱 猛烈[맹렬]히 불타고 있었다. 그들은 지나갓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 소망, 그들의 偉大[위대]한 幻像[환상]은 世紀[세기]가 갈사록 더욱 더 뚜렷하게 그 未來[미래]를 創造[창조]하고 있다. 「五月花[오월화]」! 그것은 米國[미국]을 실코온 木船[목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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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嚴格[엄격]』

米國[미국]의 第一代[제1대] 大統領[대통령] 쬬지 와싱톤은 信仰[신앙]과 祈禱[기도]의 人[인]이오 愛情[애정]과 寬大[관대]의 人[인]이였으나 同時[동시]에 또한 퍽으나 嚴格[엄격]하였다. 特[특]히 時間[시간] 직히기로는 有名[유명]한 이여서 그의 强[강]한 點[점]이 또한 거기 있었다 한다. 或[혹] 晩餐[만찬]에 손님을 招待[초대]할 적에도 五分以上[오분이상] 더 容恕[용서]하지 안었다 한다. 만일 손님이 그 以上[이상] 더 늦게 오면 그는 그 손님에게 늘상 이렇게 말하였었다.

『우리 집 「쿡」(料理人[요리인])은 손님이 오셨나고 묻는 사람이 아니라 時間[시간]이 되는가고 묻는 사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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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데의 證言[증언]』

게-데는 獨逸[독일]이 낳은 詩聖[시성]의 한사람 그리스도 信者[신자]는 아니였으나 그의 그리스도에 對[대]한 評[평]은 正當[정당]한 것이였다. 

『만일 神[신]께서 地上[지상]에 나타나섰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人格[인격]안에 나타낫을 것이다. 人間[인간]으로서 各方面[각방면]으로 아모리 높으게 發展[발전]한다 할지라도 福音書[복음서]에 빛나는 그리스도敎[교]의 높히와 그 道德的[도덕적] 敎養[교양]을 凌駕[능가]할 수는 決[결]코 없을 것이다.』



[십자군 제2권 제1호] 설교 : 생명의 샘 예수 – R. ᄙᅦ아드 박사

4월 17, 2026

說敎[설교]

生命[생명]의 샘 예수

그리스도교회장로파세계연맹 회장/가나다연합교회 외국선교부 회계

R. ᄙᅦ아드 博士[박사]


이것은 博士[박사]께서 宣敎區域[선교구역] 視察旅行中[시찰여행중] 一月[일월] 二日[이일] 龍井東山禮拜堂[용정동산예배당]에서 하신 說敎[설교]를 記錄[기록]한 것입니다. - 記者[기자]


聖經誦讀[성경송독] 요한 4장 4-14절

本文[본문]

「절기 끝날은 큰날이라 예수께서 웨처 가라사대 사람이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사람이 나를 믿으면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리라 하시니라」 요한 7장 37절, 38절.

우리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야곱의 우물가에서 말슴하시기를 내가 생명수를 네게 주리니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오 그 물이 그속에서 샘이 되어 영생토록 목마르지 않을 것이오 그 물이 그 속에서 샘이 되어 영생토록 솟으리라」(요한 4:10-14절)고 말씀하셨고 그러고 절기 끝날에는 「사람이 목마르거든 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큰소리로 웨치섰습니다. 

[一]

나는 이번 여행중 성지 팔레스틴에서 애급가지 가본 일이 있습니다. 이 사이에는 큰 사막이 가루놓여 있습니다. 며칠 지나가는 동안 한 포기 풀, 한무들기 나무 볼 수 없고 오직 모래, 모래, 모래, 황폐한 누른 모래에 생명 가진 것은 하나도 볼 수 없었습니다. 진실로 죽음의 나라, 죽음의 땅이라는 시산한 느낌뿐이였읍니다.

그런데 한번 애급 서울 가아로에 가까이 오자 갑작히 경치는 변해젔읍니다. 종려나무가 욱어지고 四野[사야]는 기름진 채소와 과실 그러고 아름다운 꽃, 한가한 양떼로 그림 폭을 일우었으며 밀, 조 같은 곡식은 열다섯자 넘게 자라 땅바닥을 덮었읍니다. 자 이것이 웬일일가요? 바로 어저께까지 보던 그 황폐한 죽엄의 땅이 어찌하야 갑작히 이렇게도 생명이 넘치는 아름다운 땅으로 변하였을까요? 다름아니라 오직 저쪽에는 「물」이 없었고 이쪽에는 「나일江[강]」이 땅속 깊이 축여주는 까닭인 것뿐이였읍니다. 애급에 피라밋트 스핑스 우리의 눈을 놀래게 하는 이상한 것이 무던히 많지만 나는 애

급에서 「나일江[강]」처럼 아름답고 존귀한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 것이라」(에스겔 47장 9절)고 선지자 에스겔은 말했읍니다. 예수는 강물입니다. 生命[생명]의 샘입니다. 이 샘이 니르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삽니다. 이 샘이 흘러드는 社會[사회]마다 새생명이 움직이며 자랍니다.

나는 예루살렘에서 北[북]쪽으로 얼마가서 사마리아 길가에 옛말슴 일러주는 「야곱의 우물」까지 찾아가 보았읍니다. 거기서 우리는 물을 퍼마셨읍니다. 시원하고, 맑고, 장신나게하는 깊은 우물! 정말 생명샘이란 느낌이 넘쳤읍니다. 우리는 고요히 앉어 一千九百餘年前[1900여년전] 우리 主[주]님께서 여기 앉으서서 이 생명샘 이야기 하신 것을 지금 뵙는 듯이 想像[상상]했읍니다.

여기서는 그리 한재(旱災)가 만치 않다고 합니다마는 조선서는 종종 한재 때문에 퍽으나 어렵게 지내시는 것 같습니다. 농부들이 씨를 심어 연한 싹이 무럭 무럭 자라다가도 한주일, 두주일, 한달, 두달 한방울 비도 나리지 않으면 그 연한 푸른 곡식은 하로이틀 시들어지고 꼬여지고 말라져서 그 생명이 끊어질 듯 농부의 낯에는 수색이 가득하여 집니다. 그러다가 하로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떠올라 큰 비가 수千里[천리]에 퍼부어 매마른 땅 속속드리 물기운이 축여들면 시들었던 잎사귀도 새파랗게 다시 살어 결국 百[백]배千[천]배의 열매를 맺칩니다. 농부들은 다시 풍족한 양식을 얻어 기쁜 노래가 온동리에 끊지지 않습니다.

우리 세상에서 시달리고 심령에 기갈과 불안을 품은채 매마른 땅에 서 있는 인생으로서 어디가서 다시 살게하는 생명샘을 마실 수 있겠읍니까? 「사람이 목마르거든 다 내게로 오라!」고 主[주]님께서 소리높여 웨치지 않습니까? 主[주]님께로 오는 개인개인마다 새마음, 새영혼, 새생활이 창조되어 움직여 자랍니다. 主[주]님께로 나오는 사회마다 거기에는 새생명의 운동이 일어나며 새생활이 생겨나며 모든 사업이 흥성해지는 것을 역사가 력력히 증거해줍니다.

[二] 

목마른 사람이 와서 마시라 하실뿐 아니라 둘재로 「그 배에서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넘치리라」고 말슴하셨읍니다. 우리 각 개인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어 마음에 만족과 위로와 소망을 품어 즐기는 것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러나 主[주]님의 말슴은 거기에 끄친 것이 아니라 그 생명샘 마신 자는 또한 그 샘이 흘러넘쳐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할 것을 말슴하셨읍니다. 믿는 이의 산 인격을 거쳐서 主[주]님의 거륵한 생명이 죽어가는 믿음 없는 자들께 미처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믿고 즐

깁니다. 우리는 지금 생명샘물을 가슴에 지니고 있읍니다. 퍼내여 쓰고 써도 다하지 않는 源泉[원천]이 우리 심령에서 솟고 있읍니다. 우리 주위에는 목말라 입술이 타오르는 동포들이 눈이 어두어 허둥지둥 사막을 헤매며 「물」, 「물」, 「물」하고 가슴을 치며 부르짖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향하야 떨리는 손을 내밀어 물한잔만 줍시사고 우리 낯을 쳐다봅니다. 어떻게 하렵니까? 小子[소자]에게 냉수 한그릇 줄 성의도 자비심도 없겠습니까?

아라비아 사막지방에 한 추장(酋長)이 있었는데 끊없는 모래언덕을 떨리는 다리로 이리저리 거닐다가 한곳에 이르러 바위틈에서 큰 샘물이 콸콸 솟아오르는 것을 찾아내였읍니다. 그는 그물을 끌어다가 전답을 맨들고 채소를 짓코 과수를 심으며 牛羊[우양]을 길러 마츰내 큰 부자가 되었읍니다. 그러나 하로밤 그는 快快不樂[쾌쾌불낙]하야 잠을 일우지 못하였었읍니다. 그것은 그날 저녁에 그의 하인들이 한 十里[10리]되는 저쪽 사막길가에서 목말라 죽은 사람이 시체를 하나 발견한 까닭이었읍니다. 바로 十里[10리] 안팎을 지경삼고 이쪽은 생명샘 흐르는 동산 五穀百花[오곡백화]가 紅綠[홍록]을 자랑하는 生命[생명]의 樂園[낙원], 저쪽은 타오르는 모래밭 荒廢[황폐], 死滅[사멸], 滿〇〇〇한 죽음의 나라이였읍니다. 바로 문턱을 사이두고 이켠은 生命[생명]이오 저켠은 사망인 것이였읍니다. 이일을 생각하고 잠을 이루지 못한 추장은 그날 밤으로 하인을 시켜 한광주리 과실과 한 부대 물을 시체 있던 길가 초막속에 갔다놓게 하였읍니다. 다음날 목말르고 배고픈 피곤한 대상들은 그 초막속에서 신선한 과실과 물을 얻어 시들어진 물을 다시 살렸읍니다. 그 광주리 속에는 이런 글쓴 종희조각이 놓여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내 생명 있는 동안

날마다 사람마다

사막에 솟는 샘

되어지이다.』

그때부터 이 사막 길가의 초막 속에는 날마다 한광주리 과실, 한부대 물이 없은 적이 없었다합니다. 

그러면 멀리서 항상 뵙고 싶어하던 조선의 믿는 형제 자매여! 荒廢[황폐]한 사막에 一點生命[일점생명]인 「오아시스」와도 같은 여러분의 적은 무리는 이제 一千九百三十八年[1938년] 새해를 맞이하는 첫 主日[주일]을 당하야 이에서 더 좋은 새해의 표어를 또 어디서 찾으시겠습니까?

『하나님 주신 내생명 있는 동안 날마다 사람마다 사막에 솟는 샘 되어지이다.』

(文責在記者[문책재기자])



[십자군 제2권 제1호] 선지자적 심정 - 주간

4월 16, 2026

先知者的[선지자적] 心情[심정] 

- 主幹[주간]

  • 『낙수』 1940. [바로가기]
  • 『장공김재준저작전집[전5권]』 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년, 제2권, 22~26.
  • 『김재준전집[전18권]』 한신대학출판부, 1992년, 제1권, 143~148.


『오라! 우리가 계교를 내여 예레미아를 빠지게 하자! 대개 제사장에게는 律法[율법]이 있고, 智者[지자]에게는 妙案[묘안]이 있고 선지자에게는 말슴이 있으니 이 모든 것이 없어진 것이 아닌즉 우리가 혀로써 저를 치고 그 모든 말을 듣지 말자!』[예레미야 18장 18절]한 유다의 叛逆民[반역민]들은 우리에게 하나님 말슴 맡은 직분을 가장 밝게 보여주었다. 舊約時代[구약시대]에 하나님 말슴맡은 직분은 祭司長[제사장], 智者[지자](賢人[현인]), 豫言者[예언자](先知者[선지자])의 셋이였다. 그러기에 舊約[구약]의 司祭文學[사제문학], 智慧文學[지혜문학], 豫言文學[예언문학] 等[등]은 다 이 各異[각이]한 聖職者[성직자]들의 걸어간 발자취의 記錄[기록]이다. 그러면 「祭司長[제사장]」의 한 일은 무엇이였는가? 그들은 이미 啓示[계시]된 하나님의 말슴을 整理[정리]하고 敎理化[교리화], 條文化[조문화]하야 그것을 어떤 形體[형체]안에 保存[보존]하려는 者[자]들로서 宗敎生活[종교생활]의 儀式的[의식적], 條文的[조문적] 方面[방면]을 맡은 者[자]들이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제나 過去[과거]의 權威[권위]에서 사는 사람이였으며 따라서 새 말슴 새 生命[생명]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늘상 그와 衝突[충돌]하며 그를 抑壓[억압]하려 하였다. 그리하야 이 習性[습성]이 마츰내 그들로 하여곰 待望[대망]의 메시야를 十字架[십자가]에 못 박는 데까지 이르게 한 것이였다.

그러면 「智者[지자]」들의 한 일은 무엇이였는가? 그들은 過去[과거]에 啓示[계시]된 하나님의 말슴과 온갓 人間社會[인간사회]의 實情[실정]을 洞察[통찰]하여 거긔에 숨은 어떤 原理原則[원리원칙]을 發見[발견]한 後[후] 그것으로 現社會[현사회]의 實情[실정]에 適應[적응]한 指導理論[지도이론]을 삼으려는 者[자]들이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흔히 現實的[현실적]이오 哲學的[철학적]이였으나 「靈[영]의 사람」은 아니였던 것었다.

그러나 「先知者[선지자]」는 그런 것이 아니였으니 祭司長[제사장]처름 하나님 말슴의 條文化[조문화], 儀式化[의식화]로서 滿足[만족]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啓示[계시]의 根本精神[근본정신]을 取[취]하고 그 儀文[의문]을 버리려는 것을 그 根本[근본] 義[의]를 삼었었으며 智者[지자]들처럼 哲學的[철학적], 或[혹] 實利的[실리적]으로 事物[사물]을 靜觀[정관]함을 能事[능사]로 넉인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

님의 새로운 啓示[계시]에 感激[감격]하야 그 받은 말슴으로 그 世代[세대]를 向[향]한 하나님의 「代言者[대언자]」가 되였으며 同時[동시]에 그의 넘치는 靈感[영감]을 힘닙어 未來世界[미래세계]의 메시아的[적] 理想王國[이상왕국]을 미리 보며 기뻐한 것이였다.

宗敎生活[종교생활]에는 勿論[물론] 儀式[의식]과 條文[조문]이 必要[필요]하며 哲理[철리]와 謀略[모략]도 必要[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祭司[제사]도 두시고 智者[지자]도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거륵한 生命[생명]이 潑溂[발랄]할 때에만 그 宗敎的[종교적] 價値[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오 靈的[영적] 生命[생명]이 떠난 때에는 그 儀式[의식] 그 智略[지략]은 그대로 死骸[사해]며 詭計[궤계]인 것이다. 그러면 그 「聖生命[성생명]」을 傳授[전수]하는 職分[직분]은 무엇인가? 그는 곧 先知者[선지자], 참으로 부름받은 先知者[선지자], 使命[사명]에 붓잡힌 先知者[선지자]가 곳 그 사람이다. 그러므로 大祭司長[대제사장]이시오 最大[최대]의 智者[지자]이신 그리스도께서도 그 心情[심정]은 언제나 先知者的[선지자적]이었으며 先知者[선지자]의 系統[계통]을 이어 先知者[선지자]들의 바라고 기다리던 大理想[대이상]을 成就[성취] 實現[실현]하므로 그 事業[사업]의 目的[목적]을 삼으신 것이였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로 권능이 많으신 선지자」(눅 24:19)였으며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눅 24:21)이엿던 것이다.

先知者的[선지자적] 心情[심정]! 이것은 그리스도의 心情[심정]이였음과 同時[동시]에 또한 크리스찬의 心情[심정]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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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知者[선지자]!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사명을 받들어 하날 권세로 하나님 말슴을 이 땅우에 宣布[선포]하는 하나님의 「代言者[대언자]」이다. 『獅子[사자]가 고함치거니 누가 무서워하지 안겟느냐? 主[주] 여호아께서 말슴하시거니 누가 豫言[예언]하지 안겟느냐』(아모스 3:8)고 한 아모스의 告白[고백]은 그대로 先知者的[선지자적] 使命[사명]을 明示[명시]한 것이였다. 크리스찬아! 너는 하나님의 代言者[대언자]가 아니냐? 聖經[성경]에 씨여진 하나님의 말슴이 聖神[성신]의 感化[감화]로 네 心靈[심령]에 體驗[체험]되여 다시 世上[세상]에 宣布[선포]되는 때 너는 하나님 말슴의 代言者[대언자]이며 先知者[선지자]이다. 信者[신자]가 『긔도하고 말슴 傳[전]하기에 專力[전력]을 다한』(행 6:4) 사도들의 代言者的[대언자적] 態度[태도]를 實行[실행]에 옴긴다면 그의 人格[인격]이 獨特[독특]해지지 앓으며 그의 感化[감화]가 非凡[비범]하지 안겟느냐? 이 하나님의 말슴을 내 것으로 가진 者[자]는 「天使[천사]를 審判[심판]할」(고전 6:3) 權威[권위]를 가

진 者[자]이니 하물며 世上[세상] 일이랴! 그렇컨마는 現代[현대] 우리 信者[신자]들 中[중]에는 이 하나님의 代言者[대언자] 豫言者[예언자]로서의 高貴[고귀]한 職分[직분]을 自侮[자모]하고 스사로 世俗化[세속화]하야 돈을 사랑하며 世上[세상] 權勢[권세]에 訶諂[가첨]하야 道人[도인]의 心情[심정]을 더럽히고 그 權威[권위]를 일어 마츰내 맛 일흔 소곰같이 바림을 自取[자취]하니 可嘆[가탄]할 바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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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知者[선지자]! 그는 靈感[영감]의 人[인], 거륵한 感激[감격]에 사는 사람이였다. 『여호와의 말슴이 臨[임]하시매』 그 말슴에 感激[감격]하야 敢然[감연]히 선 사람들이 곳 옛날의 先知者들이였다. 『末世[말세]에 내가 내 聖神[성신]을 萬人[만인]에게 부어 주리니 너의 子女[자녀]들은 장내일을 말할 것이오 너의 젊은이는 이상함을 보고 너의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한 요엘의 예언은 聖神[성신]의 充滿[충만]한 感動[감동]으로 말미암아 永遠[영원]을 透視[투시]하며 幻像[환상]을 보며 大夢[대몽]에 사는 크리스찬의 생활[生活]을 그대로 豫言[예언]한 것이였다. 크리스찬의 生活[생활]! 그는 곳 感激[감격]의 生活[생활]이다. 크리스찬에게서 聖愛[성애]의 感激[감격]이 식어진 때 그는 곧 生命[생명]을 일흔 者[자]이다. 그가 眞實[진실]로 그리스도의 贖罪愛[속죄애]에 感激[감격]한 바 있었다면, 그는 그리스도를 爲[위]하야 「全存在[전존재]」를 바치지 안코는 견딀 수 없을 것이다. 聖神[성신]에 感動[감동]한 者[자]는 그리스도의 救贖愛[구속애]를 體驗[체험]하는 것이며 이 거륵한 사랑을 느낀 者[자]에게는 거륵한 熱心[열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고 이 거륵한 熱心[열심]은 그로 하여곰 하나님과 사람을 爲[위]하야 全存在[전존재]를 희생하지 안코는 견듸지 못하게 한다. 이 感激[감격]은 거륵한 감격이다. 거긔에는 利害打算[이해타산], 權謀術數[권모술수], 分派作黨[분파작당] 等[등]의 不純[불순]한 熱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神秘主義者[신비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徹頭徹尾[철두철미] 理性的[이성적]이며 道德的[도덕적]이다. 그에게는 熱心[열심]이 있다. 그러나 그 熱心[열심]은 傳道[전도]하는 열심과 사랑을 實踐[실천]하며 모든 善行[선행]을 예비하는 熱心[열심] 以外[이외]의 다른 아모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 敎界[교계]에는 이 거륵한 感激[감격]이 없이도 熱心[열심]으로 일하며 또 名聲[명성]을 나타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의 熱心[열심]은 「職業的[직업적]」이며 그의 名聲[명성]은 그대로 그의 審判[심판]이 되는 것을 알어야 한다. 나는 이 「職業的[직업적] 熱心[열심]」(Professional earnestness)이란 무서운 陷穽[함정]에 對[대]하야 좀 더 說明[설명]할 義務[의무]를 느낀다. 만일 이 聖靈[성령]의 거륵한 感激[감격]이 없이 神學[신학]을 講解[강해]한다면 그 「神學校[신학교]」는 그야말

로 「牧使之法[목사지법]」을 가르치는 職業學校[직업학교]는 될지언정 「牧師[목사]」를 養成[양성]하는 거륵한 心情[심정]의 傳授處[전수처]는 아닌 것이다. 그러고 이 「牧師的[목사적] 心情[심정]」, 先知者的[선지자적] 心情[심정]을 培養[배양]하지 못하고 다만 敎理[교리], 敎條[교조]와 敎派熱[교파열]과 敎界[교계] 處身術[처신술]이나 배워 가지고 나온다면 그 「得業士[득업사]」는 진실로 寒心[한심]한 得業士[득업사]임을 切感[절감]한다. 그들이 나와서 하나님의 聖役[성역]을 맡는 때 그 注入[주입]된 方法論[방법론]에 딸아 「熱心[열심]」으로 일하야 많은 能率[능률]을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所謂[소위] 「불길은 굉장해도 뜨겁지는 않으며 雷聲[뇌성]은 굉장해도 雷光[뇌광]은 안 보인다」는 세음으로 人格[인격]의 서로 부듸치는, 生命[생명]의 感激[감격]이 거긔에 있지 못한 것이다. 이 「職業的[직업적] 熱心[열심]」의 所有者[소유자]는 敎會生活[교회생활]의 外部的[외부적] 方面[방면]에 그 活動[활동]의 中心[중심]을 두는 것이다. 그는 敎會[교회] 機關[기관]의 增設[증설]에 熱中[열중]한다. 그는 大集會[대집회]를 얻기 위하야 힘을 다한다. 그는 所謂[소위] 正統[정통] 敎理[교리]의 擁護[옹호], 「異端[이단]」의 排斥[배척]에 狂奔[광분]한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悔改[회개]하고 全存在[전존재]를 主[주]님께 바치려는 感激[감격]에 넘친 「적은 무리」의 心情[심정]에는 別[별]로 興味[흥미]를 느끼지 안는다. 새 生命[생명]의 躍動[약동]이 있어 그들의 固定[고정]된 方法[방법]과 制度[제도]에 들어맛지 안는 때면 그들은 온갓 術策[술책]으로 그 抑壓[억압]에 盡力[진력]한다. 結局[결국], 그들은 그들의 職業[직업]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며 그들의 制度[제도]와 方法[방법]을 하나님의 心情[심정]보다 더 重[중]히 여긴다. 네비어쓰 宣敎[선교] 方法[방법]을 金科玉條[금과옥조]로 직히여 能率主意[능률주의]우에 建設[건설]한 朝鮮[조선] 敎會[교회]가 必然的[필연적]으로 到達[도달]할 곳은 이 「職業的[직업적]」 「敎權的[교권적]」이란 함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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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知者[선지자]! 그는 大望[대망]에 사는 者[자]이다. 모든 先知者[선지자]들의 메시아 豫言[예언]은 곧 그들 所望[소망]의 記錄[기록]이다. 이와 같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이」 또한 우리 크리스찬의 心情[심정]이다. 그런데 이 所望[소망]이란 다만 그리스도께서 再臨[재림]하실 때 信者[신자]가 얻을 終末觀的[종말관적] 所望[소망]만 말한 것이 아니라 現實生活[현실생활]의 온갓 事爲[사위]에 있어서 언제나 落心[낙심]하거나 悲觀[비관]하지 안코 不滅[불멸]의 憧憬[동경]과 希望[희망]으로 「不死身[불사신]」的[적] 活動[활동]을 계속하는 生活[생활]의 總括的[총괄적] 表現[표현]을 이름이다. 偉大[위대]한 所望[소망]은 偉大[위대]한 幻像[환상][Vision]을 보여주며 偉大[위대]한 幻像[환상]은 偉大[위대]한 事業[사업]을 成就[성취]케 한다. 안디옥교회의 다슷 先知者[선지자]에게 보여진 世界[세계] 傳道[전도]의 偉大[위대]한 幻像[환상]은 마츰내 사울과 바나바로 하여곰 그 千秋[천추]에 다시없는 偉大[위대]한 靈的[영적] 事業[사업]의 成功[성공]을 보게 한 것이였다. 그들에게는 環境[환경]이 問題[문제]가 아니였고 行路難[행로난]이 問題[문제]가 아니였다. 유대人[인]의 

陰害[음해]와 異邦人[이방인]의 逼迫[핍박], 로마 市民[시민]들의 腐敗[부패]와 蠻人[만인]들의 迷信[미신], 執權者[집권자]의 强壓[강압], 敎會[교회]의 分裂[분열], 內憂外患[내우외환]이 層生疊出[층생첩출] 할지라도 그들은 오직 所望[소망], 所望[소망], 所望[소망]! 所望[소망] 中[중]에 進軍[진군]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벌써 그 廣大[광대]한 로마의 全版圖[전판도]의 坊坊谷谷[방방곡곡]에 한울을 뚫고 솟은 고직形[형]의 大敎堂[대교당]이 보이였으며 그들의 귀에는 가이사로부터 賤民[천민]에 이르기까지 上下[상하] 貴賤[귀천]이 다함께 禮拜[예배]에 모히라는 恩寵[은총]의 鐘[종]소리가 明白[명백]히 들리였던 것이다. 바울은 로마의 獄中[옥중]에서 그 最後[최후]를 告[고]하였으나 그의 幻像[환상]은 當時[당시]의 땅끝 西班牙[서반아]의 城砦[성채]우에 十字旗[십자기]를 세우고 있었다[롬 15:24, 28]. 이 偉大[위대]한 所望[소망]은 「五月花[5월화]」의 적은 木船[목선]을 몰아 大西洋[대서양]의 거친 물결을 눌르고 米大陸[미대륙]에 새로운 祭壇[제단]【이 단어는 『낙수』에 ‘帝國[제국]’으로 표기되어 있다】을 세웠으며 멀리 「暗黑[암흑]의 大陸[대륙]」을 向[향]하여 「曉星丸[효성환]」을 띄여 「義[의]의 太陽[태양]」의 첫 曙光[서광]을 빛나게 한 것이다. 지금 朝鮮[조선] 敎會[교회]의 문제가 무엇인가? 行路難[행로난]이 問題[문제]가 아니라 遠大[원대]한 所望[소망]에 불타는 者[자] 偉大[위대]한 幻像[환상]에 그 마음 뛰노는 者[자] 있고 없음이 問題[문제]이다. 指導者[지도자]들이 보는 幻像[환상]이 地域的[지역적]으로 朝鮮[조선]을 넘지 못하며 敎派的[교파적]으로 自敎派[자교파]를 넘지 못하고 敎理的[교리적]으로 「바리새」(分離[분리]ㆍ排他[배타])主義[주의]를 버서나지 못한다면 어느 밭에서 世界的[세계적] 傳道者[전도자]가 자라나며 누구로 말미암어 敎派聯盟[교파연맹]의 運動[운동]이 이러나며 어찌하야 聖徒[성도]의 거륵한 交際[교제], 사랑의 聯合[연합]이 이루어지랴! 그 마음속에 거륵한 幻像[환상]을 품지 못한 者[자]로서 다만 敎條[교조]와 言辯[언변]과 謀略[모략]을 材料[재료]삼아 自己中心[자기중심]의 「職業的[직업적] 熱心[열심]」에 마끼여 敎會事[교회사]를 弄絡[농락]한다면 그 結果[결과]는 必然的[필연적]으로 分爭[분쟁], 排擊[배격] 等[등]의 惡德[악덕]을 빚어낼 것이다. 이는 自己[자기] 營業[영업]의 繁榮[번영]을 위해서는 自然[자연] 그 競爭者[경쟁자]를 없이하고 自己[자기]가 그 權益[권익]을 獨占[독점]하려는 것이 職業[직업] 戰線[전선]의 原則[원칙]인 以上[이상], 그런 「職業的[직업적] 熱心[열심]」者[자]」가 二人[이인] 以上[이상] 되는 때에는 반다시 거긔에 分裂[분열], 抗戰[항전]이 있을 것인 까닭이다.


【그리하야 거륵한 靈感[영감]들이 恩寵[은총]의 感激[감격]을 노래한 찬송가出版[출판]도 그들의 눈에는 利權獲得[이권획득]의 機會[기회]로밖에 보이지 안어 마츰내 某某[모모]두 機關[기관]의 惡感情[악감정]을 스사로 廣告[광고]하고 있으며 自敎派[자교파]의 少利[소리]만에 정신이 팔려 全基督敎會的[전기독교회적] 大義名分[대의명분]을 無視[무시]하고 分裂[분열]에 分裂[분열]을 더하야 主日工課[주일공과]의 分離[분리], 聯合公議會[연합공의회]에서의 分離[분리], 敎派熱[교파열]의 高調[고조], 他敎派[타교파]의 異端視[이단시] 敎理的[교리적] 疑懼心[의구심]의 助長等[조장등] 사탄의 詭計[궤계]에 自進[자진]하야 빠지고 있다. 이것은 어느 個人[개인]이나 어느 個敎派[개교파]나 어느 上會[상회]나 어느 宣敎部機關[선교부기관]만의 잘못이 아니라 最初[최초]부터 豫言者的[예언자적] 遠大[위대]한 所望[소망]과 幻象[환상]으로 우리 敎會[교회]를 ??하지

안코 宣敎師執權主義[선교사집권주의], 事業能率本位[사업능률본위]의 近視眼的[근시안적] 宣敎方法[선교방법]을 固執[고집]해온 잘못된 指導原理[지도원리]에서 생겨난 열매임을 말하여 둔다.】 【이 부분은 『낙수』에는 삭제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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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自體[자체] 內[내]에 이런 憂患[우환]을 胚胎[배태]한 朝鮮[조선] 敎會[교회]가 이제 取[취]할 길이 무엇인가 첫재로 現[현] 指導級[지도급]에서 絶對[절대] 謙遜[겸손]과 徹底[철저]한 悔改[회개]를 보여주어야 할 것은 勿論[물론]이다. 「職業的[직업적] 自重[자중]」 「職業的[직업적] 驕慢[교만]」 「信仰的[신앙적] 自慢[자만]」을 勇敢[용감]하게 버리고 宣敎師[선교사]로부터 一般[일반] 敎人[교인]에 이르기까지 재를 무릅쓰고 主[주]님 앞에 꿀어 엎데여 赦罪[사죄]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에 不純[불순]한 動機[동기], 或[혹] 잘못된 方法[방법]으로 始作[시작]된 事業[사업]이 있으면 속임 없이 一般[일반]에 公開[공개]하야 그 是正[시정]을 天下[천하]에 訴[소]할 것이다. 그리하면 主[주]께서 或[혹] 그 크신 憐憫[연민]으로 우리에게 「새 心情[심정]」을 創造[창조]하시며 새 感激[감격]을 주실 것이거니와 그러지 않으면 갑작히 새 生命[생명]의 躍動[약동]을 期待[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둘재로는 第二世[제2세] 敎人[교인]들이 即[즉] 敎會[교회] 靑年[청년]들이 朝鮮[조선] 敎會[교회]로서의 世界的[세계적] 使命[사명]에 對[대]한 깊은 自覺[자각]을 가지고 좀 더 偉大[위대]한 所望[소망]과 幻像[환상]에 살 수 있기를 祈願[기원]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全存在[전존재]를 바치여 主[주]를 爲[위]하야 큰 꿈을 꾸며 큰일을 計劃[계획]한다면 그 熱誠[열성]과 그 感激[감격]이 그대로 朝鮮[조선] 敎會[교회] 自體[자체]를 살리는 「先知者的[선지자적]」 生命運動[생명운동]이 되여질 것이니 이를 생각할 때 마음이 뛰논다. 다만 엘닫과 메닫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神[신]으로 감동식히사 여호와의 백성이 전부 다 선지자 되는 것이 나의 원하는 바로라』(민 11:26~29)한 모세의 大發願[대발원]이 그대로 우리의 祈願[기원]이며 所望[소망]이다.

- 一月元旦[일월원단]



[십자군 제2권 제1호] 본지의 선언

4월 16, 2026

本誌[본지]의 宣言[선언]


一[일], 우리는 그리스도敎[교]를 全的[전적]으로 보아 各方面[각방면]의 主張[주장]과 活動[활동]에 調和[조화]를 齎來[재래]하고저 努力[노력]한다.

二[이], 우리는 朝鮮敎會[조선교회]의 全一[전일]과 協同를 期[기]하며 統一[통일]된 朝鮮敎會[조선교회]를 通[통]하야 주[主]님께 忠誠[충성]을 다하고저 한다.

삼[三], 우리는 過去[과거]의 모든 基督敎[기독교] 遺産[유산]을 尊重[존중]하는 意味[의미]에서 偉大[위대]한 信仰[신앙]의 祖先[선조]들을 우리 敎會[교회]에 다시 살리며 同時[동시]에 現代[현대]의 偉大[위대]한 信者[신자]들과 그 理想[이상], 運動[운동] 等[등]을 紹介[소개]하야 우리 信仰[신앙]의 深化運動[심화운동]에 努力[노력]하려한다.

四[사],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自身[자신]을 總師[총사]로 모시고 福音[복음] 宣傳[선전]과 애[愛]의 實行[실행]을 軍法[군법]으로 삼으며 聖神[성신]을 參謀[참모]로 받들고, 聖經[성경]으로 武裝[무장]한, 行軍中[행군중]의 靈的[영적] 十字軍[십자군]임을 意識[의식]하는 點[점]에 있어서 聖經硏究[성경연구]와 傳道[전도]와 온갓 善[선]한 社會事業[사회사업]에 가장 忠實[충실]한 親舊[친구] 되기를 期約[기약]한다.

- 本誌[본지] 創刊號[창간호] 所載[소재]



[십자군 제2권 제1호] 架橋[가교] - 장공

4월 16, 2026

架橋[가교] 

장공


땅같이 한울같이 넓은 비준을

보는 그이라야 다리를 놓습니다.

갈라진 대지-골자군이 江우에

가고오는 핏줄을 느려놓습니다.


눈썹에 鋼鐵 마음에 그림

손에 함마든 젊은이 믿음만이

땅끝에서 땅끝까지 붉은실 느립니다.

땅과 별사이에 다리를 놓습니다.




[사도행전 10:9-10, 47-48] 경계를 넘나드는 교회 – 1996년 6월 11일, 김상근 목사

경계를 넘나드는 교회 사도행전 10장 9-16, 47-48절 / 향린교회 [회상 노트] 한국 교회의 노인화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노인들이 교회를 완전히 점령한 상태다. 엄격히 말하면 노인 문화와 노인 정서가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문화적 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