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話[실화] 永遠[영원]한 苦悶
장공
[십자군 제1권 제2호] 11쪽
‘고민’이라는 한자는 ‘苦悶’이다. 그런데 십자군의 원문에는 다음과 같이 표기되어 있다.
- 忄(마음심변) + 悶(답답할 민) : 이렇게 조합된 한자는 현존하는 표준 한자 체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중국의 고전 문헌을 망라한 사전에서는 이체자로 소개하고 있다.
- 《용감수감(龍龕手鑑)》 : 요나라 때의 자전으로, 표준자가 아닌 속자와 이체자를 대거 수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懣’의 동자로 언급된다.
- 《중화자해(中華字海)》 : 현대의 거대 자전으로, ‘忄변에 悶이 붙은 글자’를 ‘懣’과 같은 글자로 명시하고 있다.
긍정적인 입장에서는 마음의 답답함(悶)을 더 강조하고 싶었던 의지가 투영된 글자라고 볼 수 있지만, 한자의 오기(誤記)일 확률이 높다.
나는 지금 어떤 친구의 괴로운 하소연을 그대로 여러분께 말슴하렵니다. 이 아래 소개하는 말슴은 그 친구의 이야기한 그대로 쓴 것입니다.
『내가 小學校[소학교] 六[6]학년때였읍니다. 어느 三日[3일] 저녁에 우리 동리교회 기도회에 나갔다가 이상하게도 내가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읍니다. 그후로 나이 먹어 갈사록 「나는 이 몸을 주님께 바처서 그를 위해서만 일생을 지낼 것이다」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되었었읍니다. 그래서 중학교 전문학교를 마치고 신학교에 입학해서 二[2]년을 지낸후 아닌게 아니라 정말 목사까지 되어서 어느 교회의 책임을 맡었었지요.
그런데 지금부터 四年前[4년전]일입니다. 나는 우연하게도 中[중]학교시대부터 意中[의중]에 있던 사랑하는 처녀한 분을 만나게 되자 내 情熱[정열]은 것잡을 수없이 그에게로 쏠려가게 되어서 마츰내 결혼까지 하고 말었지요.
처음 몇 달 동안은 세상에 어느 누구 부럽잖게 행복스러웠지요. 그게야 내가 지금 꿈같은 이야기를 안한들 짐작하시지 못하겠읍니까? 그러나 차츰 세월이 지날사록 그의 입에서는 연방 【해독불가】
「나 목사부인 노릇 못하겠어요!」하는 원망스런 소리가 자저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좀더 자유로운 풀밭에서 당신과 나와 단둘이 춤추고 노래하며 즐기고 싶어요. 이렇게 남의 눈치만 보면서 「감옥생활」을 하는 것두 하로 이틀이지 어떻게 일생을 이렇게 지냅니까? 당신은 「목사님」이시니까 혹 다른 위로와 만족도 있겠지만 「목사부인」인 나에게는 당신을 독점못하는 「괴로움」밖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답니다」
하고 그는 내 가슴에 낯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읍니다. 나는 몹시 괴로웠읍니다. 그러나 기를 쓰고 이런 유혹을 물리쳐야 된다는 생각으로 【해독불가】
「여보 나는 하나님께 바친 몸인데 지금 그런 말슴으로 나를 괴롭게 해서야 되겠소?」하고 말은 했으나 내가 그를 너무나 사랑하는 이만치 내 마음 속에서는 갑작히 이런 충동이 생겼습니다.
「내가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잖은가? 목사만이 하나님 섬기는 사람인가? 또 목사노릇을 꾸준히 해간다심 치고라도 날마다 내 사랑하는 부인의 이렇듯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야 어떻게 화평스러운 맘으로 교인들을 위로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나는 괴로워서 눈을 감었읍니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주루루 흘렀읍니다. 처는 아직도 내 가슴에서 울고 있읍니다. 얼마 후에 그는 애원하는 낯으로 나를 쳐다보며
「당신하고 단둘이서 좀더 자유롭게 사랑을 속삭이며 하나님을 공경할 수는 없을까요? 그럭허는 이들도 많든데요. 그거 죄될가요?」하고 곁방으로 나가버렸습니다.
◇
그때부터 내게서는 화평이 떠났읍니다. 교인들이 와서 무슨 사정이야기를 해도 골이나고 누가 자조찾아와도 시끄럽기만 하였습니다. 설교를 해도 씨가 들지 않었습니다.
그렇게 얼마 지내노라니 어느 신문사에서 신문기자로 취직하지 않겠느냐?는 교섭이 오겠지요! 나는 본래전문학교 시절부터 문필로 좀 알려진 일이 있느니만치 그 신문사에서 이런 편지한 것은 거이 당연한 일이였읍니다. 마귀는 지금까지에 나를 요리조리 유혹해서 절벽제일 끄트머리까지 다려다 세워놓은 것이였읍니다. 인제는 손가락으로 살작 내 발굼치를 밀처도 나는 낙자없이 그 절벽에 곤드박질하게쯤 돼여 있는 것입니다. 이 편지는 내 발굼치를 난딱 스처가는 악마의 손가락이였던 것입니다.
「목사노릇도 구격이 맞어야지 이렇게 되고서야 목사가 다 무어야!」하며 나는 그 편지를 처에게 보였지요. 처가 어떻게 좋아할거야 내가 말안한들 모르시겠읍니까?
◇
신문기자로서의 나는 말하자면 대성공이였읍니다. 명성도 높아지고 월급도 오르고 부인 【해독 불가】 대로 받고.
이렇게 【해독 불가】
느날 처는 몹시 배아프다고 딩굴더니 그때부터 옴식을 못먹고 날마다 파리해갔읍니다. 나는 이병원 저병원 다리고 다니며 진찰시키다가 내종 제일 유명한 XXㆍXX 병원에 가서 자세히 진찰시킨 결과 「胃癌[위암]」이라는 선고를 받었습니다.
「수술은 해보겠읍니다마는 아마도 잘 날 것 같잖은데요」하는 것이 의사의 말이였읍니다.
그날 저녁 나는 처를 수술대에 보내기 전에 오래오래 이야기하였지마는 몇해전처럼 기도할 생각은 나지않었읍니다. 그만큼 나는 예수에게서 멀어졌읍니다. 우리 서로 갈라지려할 때 처는 나를 부디켜 잡으면서
「당신은 끝까지나를 사랑해주시지요? 나를 버리시지 않으시겠지요? 네?」 하며 눈물이 글성해 나를 쳐다 보았읍니다. 애처러운 최후의 애원이였어요.
「당신께 바치는 나의 사랑은 결코 변치 않겠읍니다.」 하고 나는 대답하면서 단단히 마음먹은바 있었습니다.
수술은 무사히 지냈으나
병은 날래 낫지 않었읍니다. 좋다는 일은 다해 보았지요. 그러노라니 그동안에 저금한 돈 五百圓[오백원]은 다 나가버리고 너무 걱정한 까닭에 신경이 약해저서 신문기자로서의 입장도 퍽 어렵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地位[지위]구 健康[건강]이구 財産[재산]이구 가겠거든 가거라 사랑하는 처가 건강한 몸으로 다시 나오는 날이면 이 모든 것은 한바탕 악몽(惡夢)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나는 그 날만을 기대리면서 모든 것을 참어 나갔지요.
◇
오래간만에 처의 병은 나아서 지금부터 六[육]개월전에 말숙한 새 몸으로 집에 돌아 왔읍니다. 얼마나 기뻤겠읍니까?
그런데 그날 밤 내 곁에 앉은 내 처는 이상하게 쌀쌀해요. 그러고 퍽으나 어색해하는 것 같더니만
「나는 그동안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사랑이 없이야 어떻게 삽니까? 그거야 사막(沙漠)이지요. 미안하지만 내일 이혼해주서요!」
나는 어이없어 말없이 얼마 지냈읍니다. 도무지 말할 용기가 없었어요. 집은 전당잡히고 신무사에서는 실직하고 몸은 약할대로 약해진 나로서 말숙하게 차리고 나온 그의 허영심을 무엇으로 만죽시키겠습니까?
「어떤 일이 있든지 당신은 나를 버리시지 않겠읍지요? 네」
「나는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겠읍니다」 나는 이 맹서에 충실하려고 돈, 건강, 지위를 다 바치였읍니다. 그러나 그 대신 내가 받은 보수는?
아 나는 괴롭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내 괴로움은 그에게 버림당한 자로서의 괴로움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버린 자로서의 괴로움이 더 심각(深刻)합니다. 四年[4년] 전에 버림받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얼마나 아펐을 것을 인제야 알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회개하기에는 너무나 염치없고 또 기회가 없읍니다. 나는 전에 「가룟 유다가 웨 죽었는가? 살어서 주를 위하야 다시 일하면 될것인데!」 하고 생각해 본적이 있읍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라룟 유다의 심정을 잘 알게 되었읍니다. 그가 보통 신자였더라면 그렇기도 하겠읍니다. 그러나 그가 十二[12] 제자의 하나이였기 때문에 「자살」이외에 다른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목사로서 의식적(意識的)으로 주를 버린 자의 말로가 이렇게 괴롭습니다. 지금 내 눈에는 히부리 六[6]장 六[6]절엣 말슴이 마치 호라동사진 스크린에 비최인 화제(畫題)같이 똑똑하게 보입니다.
나는 주를 버리고 세상에 나갔다가 지금 세상에 버림받고 다시 주께로도 돌아못가게된 사람입니다. 「자살」이라는 두 글자가 내 앞에 보입니다. 그러나 자살하면 무엇합니까? 영원화한 고민일 것뿐이지요! 苦悶[고민], 永遠[영원]한 苦悶[고민]! 나는 괴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