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5-7] 민중ㆍ민주ㆍ민족 – 1985년 11월 22일, 김상근 목사

민중ㆍ민주ㆍ민족

이사야 1장 5-7절 / 1985년 11월 22일 / KSCF통합기념예배


[회상 노트]

‘좌경’ ‘용공’… 등은 여전히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민중ㆍ민주ㆍ민족’, ‘삼민’(三民)을 시대의 지표로 삼았다. 그러나 언론, 특히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 TV 방송이 이를 용공으로 몰아간다. 매일 밤 9시 종합 뉴스는 의례히 용공 보도로 시작했다.

학생들의 사회과학적 이해가 성서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학생들을 오히려 격려하고 싶었다. 기성세대가 학생들의 진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염원했다. 당시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기독학생총연맹(KSCF)은 기독청년회(YMCA)와 한국기독학생연합회(KSCM)가 통합한 조직이고, 그 통합기념예배에서 ‘민중ㆍ민주ㆍ민족’, 학생들이 주장하는 ‘삼민’에 대해서 설교했다. 나는 그때 KSCF의 이사장이었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이사야는 기원전 700년대에 활동한 예언자였다. 그의 시대의 특징은 흡사 지금 우리의 시대와도 같았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의 위협과 경제적 착취를 감수하며 나라의 목숨을 연명해 가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한 민족이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을 가하고 또 위협이 되어 그 위협을 막아 보겠다고 주변 강대국과 동맹을 맺곤 했다. 타민족과 동맹을 맺음으로 그들과는 소위 우방-혈맹의 관계를 가지면서도 같은 민족인 남왕국과 북왕국은 서로 원수로 대치하고 있었다.

소위 강대국은 이스라엘 민족의 남북 분단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블록을 형성하고 전쟁의 전선으로 삼고 있었다. 당시 중동 지역의 강대국은 앗시리아와 이집트였다. 이스라엘은 그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었다. 지금의 미국과 소련 사이에 우리가 끼어 있는 모양과 비슷하다. 어느 쪽이 미국에, 또 어느 쪽이 소련에 해당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남왕국은 친 앗시 리아 정책을 펴고, 북왕국은 반 앗시리아였다. 친앗시리아였던 남왕국은 앗시리아의 속국이 되고 반 앗시리아였던 북왕국은 완전히 합방이 되어 버렸다.

제 민족이 살아갈 길을 저 스스로 찾고 개척하여 나가려 하지 않는다. 강대국의 힘, 그들의 도움으로 나라의 명줄도 연장하고 왕권, 요샛말로 하면, 정권도 유지하려 했다. 앗시리아는 남왕국 유다의 경제를 장악하고 마음대로 착취해 간다. 경제적 착취에 견디지 못하여 급기야 반앗시리아 운동이 일어나면서 친 이집트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되어 유다는 앗시리아로부터 무서운 보복을 당한다. 은과 금을 모조리 빼앗긴다. 외세에 의한 민족의 존립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비극적인 것인지 이사야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머리는 상처투성이고 속은 온통 병이 들었으며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구나. 너희의 땅은 쑥밭이 되었고 도시들은 잿더미가 되었으며 애써 농사지은 것을 남이 약탈해 가도 보고만 있어야 하니 아, 허물어진 소돔처럼 쑥밭이 되고 말았구나”(1:5-7).

여기서 우리는 ‘민족’과 ‘야훼 신앙의 관계’를 본다. 야훼 신앙은 민족의 자존 자립을 본연적으로 주장한다. ‘민족’을 떠난 야훼 신앙은 없다. 야훼 신앙을 말하면서 ‘민족’을 괘념치 않는다면 그것은 성서의 야훼 신앙은 아니다.

그런데 앗시리아의 속국이 되게 된 근원적 이유는 강대국의 정책보다 차라리 내부의 분열에 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시대를 바로 보기 위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이스라엘이나 유다 모두 부를 어느 정도 이루었다. 그러나 그 부는 소수의 특권층에 독점되어 있었다. 한 편이 부해지면 부해질수록 다른 한 편 대다수의 백성들은 상대적 빈곤 의식 속에 빠졌다. 상대적 빈곤 의식 정도가 아니라 노예의 신세로 전락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은 약한 농민의 땅을 빼앗아서라도 토지를 독점한다.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집을 연달아 차지하고 땅을 차례로 사들이는 자들아! 빈터 하나 남기지 않고 온 세상을 혼자 살 듯이 차지하는 자들아!”(5:8).

빈부의 갈등은 내부 분열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정치가들, 집권자들은 정의를 펴지 않는다. 힘과 권력, 재물과 돈을 좇는다. 정의와 공평을 좇지 않는다.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악법을 제정하는 자들아, 양민을 괴롭히는 법령을 만드는 자들아, 너희가 영세민의 정당한 요구를 거절하고 내가 아끼는 백성을 천대하여 그 권리를 짓밟으며 과부들의 재산을 털고 고아들을 등쳐 먹는구나”(10:1-2).

반인권, 반민주적 현실이 내부 분열의 요인이다. 구조적 착취 아래에 있는 민중의 아픔을 여기서 보게 된다. 양민과 영세민들이 보호받기는커녕 법에 의해 빼앗기고 짓밟히는 현실이었다. 민을 위하지 않는 정치, 민을 주인으로 하지 않는 법, 민을 돌보지 않는 사회 구조의 장본인들을 가리켜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라고 외친다. 이것은 요샛말로 하면 민중과 기득권자들의 양극화 현상이었다. 이 양극화는 결국 한 민족의 응집력과 생명력을 삭탈한다. 일체 의식을 상실한 공동체는 공동체일 수가 없다. 빈부 사이에 넘지 못할 골짜기가 생기고 결국 빈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적대 의식까지 생기게 된다. 이것이 외세가 침략할 수 있는 길이 되었던 것이다.

성서는 아예 민중의 권리 회복을 하나님 사건의 동기로 증거하고 있다. 야훼 신앙은 민중의 자유, 민중이 의식하는 평등, 민중이 인정하는 평등을 필수적 존재 방식으로 삼고 있다.

이사아는 민족 자존 자립 의식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민중을 소외시키며 오히려 착취하고, 정치와 법 구조는 민을 억압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실에 그는 몸부림쳤다. 여기에서 ‘민중’, ‘민주’, ‘민족’이라는 세 개념을 발견한다. 이때에 이사야는 벗은 몸과 맨발로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닌다. 그는 외세를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역설하고 외친다. 이것이 그 당시 그 시대의 시위, 데모였다. 이러기를 3년이나 계속했다니 그는 분명히 일부 극소수 과격 학생이라고 지탄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는 기록은 성서에는 없다. 성서는 그를 하나님의 예언자라고 한다. 그 민족을 가장 사랑한 사람이라 한다. 정의로운 길을 걸어간 신앙의 모범으로 그를 배우라고 한다. ‘민중’, ‘민주’, ‘민족’은 성서의 기조다.

한국의 근세사의 지표를 누가 적시해 왔는가? 적어도 1929년 11월 3일의 학생 운동 이후 우리 민족의 지표는 기성세대가 아닌 젊은 학생들이 언제나 제시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언제나 과격으로 몰렸다. 그러나 조금만 지내 놓고 보면 그들이 제시한 그 좌표가 그 시대의 과제였으며 역사적 지표였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나는 여러분이 ‘삼민’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훌륭한 통찰이라고 찬탄한다. ‘민중, 민주, 민족’은 위에서 본 대로 성서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1983년에 전국적으로 신앙고백을 새롭게 하자는 계획을 진행시킨 일이 있었다. 전국의 평신도들을 7지역으로 나누어 재교육을 했다. 그때 사용했던 평신도용 자료 속에 “우리 민족의 현실과 교회의 사명”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거기에 이렇게 썼다.

“오늘 우리 민족의 현실을 같이 생각하면서 한국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한국 교회는 한국의 정치 사회 속에 민중, 민족, 민주의 삼민주의 확립에 노력해야 한다.”

여러분의 주장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미 교회의 공적 문서에서도 똑같은 주장을 했다. 학원 안정법이 제정되었더라면 이런 말을 하는 나는 7년 이하의 징역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신문을 보니까 학생들 앞에서 학생들 주장이 사실 옳다고 말한 민추협 부간사장 등을 구속할 방침이라고 발표되었다. 교문에서 즉시 연행하였다고 한다. 나야 연행 안할 것이지만 너무 급하고 신경질적이다. 좀 듬직하고 대륙적으로 정치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오늘 이사야서를 읽게 된 것은 ‘민중, 민족, 민주’라는 좌표가 우리와 같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사야의 젊디 젊은 신앙의 감각 때문이다. 사방 어디를 보아도 어두움이 철벽같이, 태산같이 욱여싸고 있는 상황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볼 수 있었다. 싱싱하게 젊은 이사야가 너무 좋다. 강대국의 정책, 정치 지도자의 반민중적 작태가 저렇게 시퍼렇게 옥죄고 있는데도 그 고통의 복판에서 그는 이렇게 외친다.

“내 백성아, 어서 너의 골방으로 들어가거라. 야훼께서 그 계시던 곳에서 나오시어 세상 모든 국민의 죄악을 벌하시리라. 그때, 땅은 그 위에 잦아들었던 피를 드러내고 숨겨졌던 피살자를 내놓으리라”(26:21).

“그날, 천대받는 자들은 야훼 앞에서 마냥 기쁘기만 하고 빈민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앞에서 흥겨워하리라. 폭군은 없어지고, 빈정대던 자들도 사라지고, 눈에 불을 켜고 나쁜 일을 찾아다니던 자들도 간 데 없이 되리라”(29:19-20).

“당신은 야훼, 나의 하나님, 내가 당신을 우러러 받드옵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기리옵니다. 당신은 영세민에게 도움이 되어 주시고 고생하는 빈민들에게 힘이 되어 주십니다. 소나기를 피할 곳, 더위를 막는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 그 거만한 자들의 소란을 당신께서는 억누르십니다. 그 포악한 자들의 노래를 당신께서는 막으십니다”(25:4-5).

그는 폭압과 압제의 복판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야훼께서 민족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 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리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 오, 야곱의 가문이여, 야훼의 빛을 받으며 걸어가자”(2:3-4).

이 얼마나 푸른 기상인가? 나는 오늘 여러분 대학생들에게서 저 이사야의 밝고 맑은 신앙의 숨을 보고 기뻐한다. “민주의 대지 위에 통일의 꽃을”이라고 여러분은 지금 외치고 있다. 여러분의 주변, 내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밝은 말이 나올 구석은 아무 데도 없다. 고문 이야기, 척추에서 고름이 나온다는 이야기, 발가벗기고 수모를 준다는 분격치 않을 수 없는 이야기, 밤마다 9시면 천연색 영상은 영락없이 여러분을 매도해 대고 있다. 과격, 좌경, 극렬, 급기야 적군파 등등이 밤 9시마다 여러분과 내 가슴의 기를 막히게 하는 현실, 소 싸움이니 민생 투쟁이니, 철거민 투쟁, 민정당 점거, 미문화원 점거, 우종하 군의 죽음, 남북 간의 대화와 동시에 비난과 저주…. 미국, 일본에 대한 분노, 심하면 적개심까지 생기게 하는 역사적 과거와 현실, 어찌 이 같은 현실을 가리켜 ‘민주의 대지’라 부른단 말인가? 그리고 나아가 ‘통일의 꽃이 피고야 말 것’을 내다볼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이사야의 신앙이다. 이사야의 신앙이 아니고는 이 땅, 이 현실을 ‘민주의 대지’라 부를 수가 없다. 그 신앙이 아니고는 통일의 만발한 꽃을 보아낼 수가 없다. 그러기에 청년은 위대하다. 여러분은 과연 위대하다.

나는 이 꿈이 이 민족이 나아가야 할 좌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까지 그랬듯이 지금 과격이라고 지탄받지만 민족의 좌표임이 확인될 것이다.

‘민중, 민주, 민족’, 그것은 서양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니다. 이 나라의 높은 사람들이 규정하고 있는 식의 사회주의도 아니다. 파시즘도 아니고 전체주의도 아니다. 우리의 역사에서 창출된 우리의 이념일 뿐이다. 우리의 꿈일 뿐이다. 삼민의 좌표, 거기에 통일의 꽃이 피게 해야한다. 나는 이 꿈의 실현을 확신한다. 그러기에 이미 내딛은 걸음을 그대로 걸어가자. 고난이 오고 아픔이 온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의 좌표가 아니란 말인가?

예수께서는 너희가 잠잠하면 돌들이 외칠 것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돌들이 외치는 날, 그것은 민족의 비극의 날이다. 이스라엘도 끝끝내 돌들이 외치게 되는 날 패망했다. 돌들이 외치기 전에 우리가 외쳐야 한다. 이사야가 외쳤던 말을 그대로 외치고 싶다.

“오, 우리의 젊은 동지들이여, 우리의 아우들이여, 야훼의 빛을 받으며 걸어가자.”
(어디서 인용한 글귀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혹시 그 대회의 표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