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 KCCE 總會(총회)를 참관하고
- 반병섭(서울 동원교회 목사)
장로회보 제3권 3호(1959년 3월 10일 발행), 8-9, 12쪽
이 글은 1959년 장로회보(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회보)에 실린 글로서,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와 한국기독교교육협회(KCCE) 총회에서 벌어진 교단 간의 갈등과 연합 사업의 실태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필자인 반병섭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의 회원권 인정 문제를 두고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가 보여준 강압적인 태도와 이기적인 행보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예장이 기장의 회수 표기 수정을 무리하게 요구하며 회의장에서 퇴장하는 등 교단 우월주의에 빠져 연합의 정신을 훼손했음을 지적한다. 또한, 기독교 교육 사업에서도 예장이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소홀히 했던 이중적인 모습을 폭로하며 한국 교계의 분열상에 대한 개탄을 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글은 진정한 에큐메니칼 운동을 저해하는 독선적인 교권 정치를 고발하며 한국 기독교 연합 사업이 나아가야 할 험난한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연합 사업에 참여하는 교단들이 진정한 연합 정신을 지키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자료이다.
1. 원문 읽기
형!
그동안도 퍽으나 서울소식이 궁금 하시지요. 일년에 한번도 겨우 서울을 다녀 갈가 말가 하는 형에게 있어서는 한달에 한번씩이나마 이 회보를 통하여 얻는 교계의 소식이 기다려진다고 하시던 말씀이 지금 생각납니다.
이번 서울에서 열린 NCC, KCCE 총회는 특히 연합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형에게 있어서는 그 결과가 퍽으나 궁금하실 줄 알아 나는 지금 그 본대로를 적어 보내려고 합니다.
NCC총회는 예정대로 二月 十日(2월 10일) 열시반 서울감리교 남산(南山)교회에서 열렸었습니다.
개회예배만은 어디에서나 보는대로 아름다운 찬미며, 거룩한 기도, 신령한 설교로 끝나고, 「어떨까?」하는 총회 회의가 시작 되어 서기가 회원을 점명하자 「회장」하고 발언(發言)을 청하는 예장측 대표로 인하여 전투(?)의 서전(序戰)이 시작된 셈이었습니다.
당당한 회원으로 회석중앙에 뻐젓이 자리잡고 앉아 있는 것이 퍽으나도 맘 마땅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기장이 회수(回數)를 갈아가지고 왔느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실은 작년 총회 때 기장을 가입 시켜놓고도 예장은 또 하나의 애매한 조건을 붙였는데 그것이 회수를 갈도록 「권고」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회수를 갈고 안간 것으로 회원자격이 문제될 바 아닌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임에도, 회수를 갈아가지고 오지 않으면 회원이 될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 해보려는 심산이었으나 김창근 회장이 「그것은 이따가 총무보고에 나올 것이니 이 회 점명은 진행합시다」하면서 예장의 트집을 막아 버렸읍니다.
형!
이쯤되고 보면 회의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는 참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회의는 회원점명이 끝나고 회장이 개회를 선언(宣言)함으로 이남규 목사 외 11명의 기장대표는 완전히 회원권을 발동할 수가 있게되었습니다.
기장을 대표하여 이남규 총회장이 인사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기장이 오래동안 바라던 NCC의 회원이 되게된 것은 우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요, 아래로는 회원 여러분의 사랑이며 특히 예장 형님들의 너그러운 마음의 결과라고―
모든 회원은 박수로 기장을 환영하였읍니다. 이 박수에는 예장 회원들의 손바닥도 같이 마주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까지 해놓고서 예장은 총무의 사업보고도, 일체의 다른 순서도 기장의 회수 문제가 예장의 뜻대로 되지 안으면 진행할 수 없다고 맹렬히 발언 하였습니다.
그러나 타교파(他敎派)의 의견은 NCC가 「권고」하자는 것이었는데, 회수를 「갈아야만 한다」는 절대조건이 아닌 이상 그것은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타일렀으나 「우리는 총회의 결의가 있으니 기장이 회수를 갈지 않으면 이 자리에 같이 앉아 있을 수 없다」고 대교파의 위세(威勢)를 당당히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럴때면 타회원(他會員)은 물론이지만은 방청석에서까지도 예장의 지나친 태도에 정떠러지는 표정(表情)이 지어집니다.
기장에서는 그래도 참고 견디며 입을 다물고(할말이 태산같았는데)있었습니다. 끝끝내 회수에 대한 기장의 태도를 밝히라고 고집하기에 이남규 총회장은 두 차례나 「회원 여러분들의 의사를 존중히하여 심심 고려하겠다」고 해명했습니다.
「갈겠다」고 확답을 못하는 이유도 우리측 다른 회원으로 하여 충분히 설명되었읍니다. 총회장이나 총대들이 「갈겠다」고 했다해서 그것이 그대로 총회에 통과되느냐? 하는 논점에서와 「예수교」를 「기독교장로회」로 개칭하는 것만으로도 교회 재산을 재판하는 법정에서 기장은 완전히 타교파라고 몰고 있는데 이제 그러한 재판에 이용(利用)하지 않겠다는 예장측(법적으로 효력이 발생할) 공약(公約)이 없이 어떻게 우리의 회수를 갈겠느냐 하는 이유가 또 있는 것이었습니다.
실은 우리가 회수를 갈아논 다음에 「보라 이름도 다르고 회수도 다르니 이는 완전히 타교파가 아니냐 그러니 네 것은 내 것이다」고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할수 있겠습니까?
형!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런 회의를 보고 있노라면 불화가 터지고 맙니다. 형이 조용한 촌에 있으시면서 이런 꼴들을 직접 보지 않으시는 것도 오히려 다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오전회의는 이런 싸움질을 하다가 정회하고 말았습니다.
오후회의는 三교파(감, 성, 구)조정위원의 안(案) 즉, 「예장은 기장이 회수를 갈무로서 이것을 법정에 이용(利用)하지 아니할 것을 공약(公約)한다 그리고 「기장은 회수를 가는데 총대들이 그 총회에서 적극 노력할 것을 공약한다」는 안에 대하여 예장측은 거부해버리는 것이었으나 기장측에서는 어디까지나 NCC의 원만한 운영을 위하여 이같은 조정안(調整案)을 수락함으로서 그 안이 회원의 절대다수로 통과 되었습니다.
「기장은 회수를 가는데 총대들이 적극 노력할 것을 공약한다」는 안이 정식(正式)으로 감리교 송정율 대표로하여 동의로 채택되자 예장은 맹렬히 「이같은 안이 통과 되면 예장은 총퇴장 하겠다」고 공갈 했음에도 「자기들의 뜻대로 안되면 퇴장한다」는 것이나 「자기들의 총회의 결의가 이러니 여기서도 그 결의대로 해야한다」는 그런 건방진 수작이 어디 있느냐고 들은체 만체 「가하시면 손 드시요」 절대다수의 손으로 통과 되자 예장은 우루루 퇴장하는 것이 였읍니다.
형!
퇴장을 하다니, 점잔은 목사님들이 큼직한 성경책을 끼고 위풍있게 퇴장하는 모습이란, 나로서는 도저히 그 퇴장하는 명분을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실상, 예장 안에도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지(支持)하는 측과 그것을 반대하는 NAE파가 있어 의견(意見)이 맞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사실인즉 제대로 된셈이지요, 왜냐하면 우리 기장을 예장이 이단(異端)이라 해서 내몰던 이유가 에큐메니칼운동을 지지한다고 해서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이때까지 에큐메니칼을 반대하는 예장은 에큐메니칼운동체인 NCC에 가담하여 일을 했고, 그것을 지지하는 기장은 NCC 문밖에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장이 퇴장하고 기장이 그자리에 앉았으니 제대로 됐다는 말입니다.
형!
이래던 저래던 기장이 이름을 간다던가 회수를 가는 문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예장)이 재판하는데 이용할까바 두려워서가만이 아니라 원칙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형!
형은 곧잘 나를 「반병신」이라고 놀려 대지요. 성이 반(潘)가인데가 이름까지 병섭(炳燮)이니 반병신이란 별명이 붙을만도 합니다. 그래도 나는 그 이름이 무엇인지, 애착이 있어 지금까지 그대로 두고 그 이름 석자를 사랑합니다.
하물며, 어떻게 교단의 이름을, 더욱이나 70년의 역사를 가진 이름을 고칠 수가 있을까요. 「예수교」를 「기독교」라고 고친 것은 고친 것이 아니라 우리말에 맞도록 바로 잡아논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이름이야 갈수 있겠지요. 실에 있어서 이름을 가는 일이란 사람에게 있어서나 다른 단체에서도 볼수 있읍니다마는 나이(年齡)야 어떻게 갑니까?
내가 만약 35세라는 나이를 고쳐서 다섯살이요, 하고 세상에 나타난다면 아마 형은 「미친놈」하고 내 정신 상태를 의심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예장의 요구(要求)도 너무나 어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형!
어느 영화 제목이 「산하(山河)는 요원하다」더니 실로 우리 한국의 연합사업이란 참으로 요원 합니다.
예장이 퇴장한 후 회의를 계속하자는 측과 예장의 참석을 권유하면서 그동안 정회하자는 양론(兩論)이 있었습니다.
어느 한교파의 비협력으로 인하여 NCC의 기능이 다만 하로라도 중지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니 회의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강했으나 그래도 한국 NCC사업의 원활을 위하여 NCC 실행위원회로 하여 예장을 권유하기로 하고 일단 정회하였습니다.
유호준 총무는 눈물을 흘리며 이같은 불상사를 개탄하면서 사의(辭意)를 표했으며 김창근 회장도 사의를 표했었으나 그것이 허락될리는 만무했습니다.
그러니까, 임원선거니, 사업계획이니, 모든 회의는 하나도 하지 못하고 옥신 각신 하다가 헤여진 판국이었습니다.
결국 시시한 소식을 형에게 주는 이 시시한 글을 쓴 셈이군요.
형!
KCCE는 어떻게 됐느냐고요, 그것이야 뻔한 일이지요. 가입이 된 NCC에서 예장이 야단 법석인데, 작년에 가입도 못된 KCCE에, 전 회원수의 과반수를 차지한 예장이 기장 가입을 가표할수 있겠서요.
NCC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기장 가입(加入)을 말하자고 예장이 주장했습니다.
KCCE가 NCC의 예속단체가 아닌이상 NCC운운하는 것은 상식밖의 일이 아니겠읍니까? 형.
KCCE란 단체는 아직도 기독교 교육이 황무지 같은 한국교회에서 어떻케하면 힘과 마음을 합해가며 기독교교육의 소기의 성과를 거두겠느냐 하는 기관입니다.
이런 기관에 열과 성의를 가지고 가입(加入)하겠다는 당당한 교파, (NCC, CWS에 가입된) 7백여 교회를 갖인 단체를 가입시키지 않는 법이 어데있겠습니까?
이런 비난을 막아낼 길이 없었음인지 가입은 시키되 회원권은 실행위원회에 일임하도록 하는 안을 가결하게 된 것입니다.
그 실행위원회라는 것이 예장판인데, 그래 그것이 양심(良心)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겠습니까
기장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명백했었습니다. 「가입이냐」 「가입 청원철회」냐 두 가지 중에 하나였었읍니다
형!
참 우스운 일입니다. 이때까지 기장은 KCCE에 가입은 되지 않았었지마는 실에 있어서 예장보다도 많이 협조(協助)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좋은 예로서는 기장(캐나다선교회)은 꼬박 꼬박 부담금을 지불했고, 주일학교공과도 KCCE판을 사용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예장의 좋은 대조가 됩니다. 예장은 3년간이나 그 부담금을 한푼도 납부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주일학교공과는 자기네가 따로 출판하여 겉으로는 협조하는체 하면서도 총무(總務)자리나 노리고 실속있는 알맹이는 통채로 삼키는, 실로 가증한 일을 실증으로 남기고도 권리는 혼자 주장하니 큰일이란 말입니다.
가나다선교부를 대표하여 참석했던「로스」 선교사는 기장을 가입시키지않는 KCCE에는 회원도 될수 없고 협조(돈)도 할수 없다고, 기장을 가입시키는 날 사람도 오고 협조(돈)도 하겠다고 하며 자리에서 물러 나오고 말았읍니다.
형!
이 이상 더 무슨 말을 쓰리이까 한국의 연합사업이 예장이라는 교파의 독선(獨善)과 독단(獨斷)때문에 비정상적으로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벌서 세계가 다 주지 하는 바이지마는 나는 이번 이 기회를 통하여 그것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형! 이 기회에 예장의 갈길을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신교안에서 극소수의 사람들이 ICC와 NAE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이 에큐메니칼 운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형은 잘 아십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 있어서 NAE의 중요(重要) 간부가 예장 총회를 움지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예장 안에 NAE팀과 에큐메니칼 팀이 대립되어 있는 한 예장의 만사(萬事)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장이 깨끗하게 NAE 노선을 탈퇴하던가 불연이면 NAE의 노선을 단절하던가 그렇지 않으면 NAE파는 갈라지고 고려파고 가고, 에큐메니칼팀은 우리 기장하고 합해 버리던가.
형!
이제는 펜을 놓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형이 언젠가 주장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웨? NCC니, KCCE니, CWS니, AIV니 이러한 연합기구의 회원의 수(數)가 교파에 따라서 정원(定員)이 다르냐고, 그 모순을 지적하시던 말입니다.
연합사업을 하자는 기관인데, 왜? 어떤 교파는 20명이요 어떤 교파는 열명이요, 다섯이오, 한명이요 하고 수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밝혀 노았느냐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수(多數)의 횡패(?)가 아니 일어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손이 아니면 가결을 못하고, 그 손이 아니면 임원도 못되는 판이니 NCC는 돌아오는 6월까지 정회할 수 밖에 없고, KCCE는 기장가입이 좌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2. 1959년 당시의 상황
1959년 2월에 열린 NCC와 KCCE 총회는 한국 기독교계 내 교파 간의 극심한 갈등, 특히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사이의 대립이 표면화된 현장이었다. 주요 쟁점은 기장의 NCC 회원권 인정 문제와 ‘회수(回數)’ 산정 방식이었으며, 이는 단순한 절차적 논의를 넘어 교회 재산을 둘러싼 법적 분쟁과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노선 차이와 직결되어 있었다.
- NCC 총회: 예장은 기장의 회수 변경을 회원권의 절대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타 교파들의 중재안이 통과되자 이에 불복하며 총퇴장하였다. 이로 인해 NCC의 기능이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 KCCE 총회: 기장의 높은 기여도에도 불구하고, 예장의 반대로 인해 기장의 가입이 실행위원회로 일임되는 등 사실상 저지되었다.
- 결론적 시사점: 대교파인 예장의 독단적 운영과 내부적 노선 갈등(에큐메니칼 대 NAE)이 한국 기독교 연합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저해하는 핵심 요소로 지적되었다.
1) NCC 총회: 회원권과 ‘회수(回數)’를 둘러싼 격돌
1959년 2월 10일 남산감리교회에서 열린 NCC 총회는 개회 직후부터 예장 측의 문제 제기로 인해 난항을 겪었다.
(1) 주요 쟁점: 회수(回數) 변경 요구
예장 측은 기장이 NCC 회원으로 참여하기 위한 조건으로 ‘회수(총회 개최 횟수)를 새로 바꿀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는 기장이 예장으로부터 분리된 후 독자적인 회수를 사용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 예장의 입장: 기장이 회수를 새로 갈아오지 않으면 회원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이를 총회의 결의 사항으로 내세워 압박했다.
- 기장의 입장: 회수 산정은 회원 자격의 본질적 요건이 아니며, 이미 작년 총회에서 가입이 허용된 상태임을 강조했다. 특히 회수를 변경할 경우, 법정에서 기장을 완전히 타 교파로 몰아 교회 재산을 차지하려는 예장의 전략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염려했다.
(2) 중재안과 예장의 총퇴장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등 3개 교파 조정위원들이 제시한 중재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예장 : 기장이 회수를 변경하더라도 이를 교회 재산 관련 법정 소송에 이용하지 않을 것을 공약함
- 기장 : 기장 총대들은 본교단 총회에서 회수를 변경하도록 적극 노력할 것을 공약함
기장 측은 연합사업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이 안을 수락했으나, 예장 측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감리교 송정율 대표의 동의로 해당 안이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되자, 예장 측 대표들은 일제히 회의장에서 퇴장하며 파행을 초래했다.
2) KCCE 총회: 기여와 권리의 불균형
기독교 교육 연합기구인 KCCE 총회에서도 기장의 가입 문제는 예장의 반대에 부딪혔다.
(1) 기장과 예장의 협조도 대조
반병섭의 참관록은 기장과 예장이 연합사업에 임하는 태도의 극명한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 기장(캐나다 선교회): 가입 전임에도 불구하고 부담금을 성실히 납부했으며, 주일학교 공과로 KCCE 판을 사용하는 등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협조해 왔다.
- 예장: 3년간 부담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으며, 주일학교 공과도 자체 출판하여 사용하면서도 조직 내 권리(총무직 등)와 기득권만을 주장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2) 캐나다 선교부의 항의
캐나다 선교부 대표 로스(Ross) 선교사는 “기장을 가입시키지 않는 KCCE에는 회원으로 참여할 수도, 재정적 협조도 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회의장을 이탈함으로써, 예장의 독단에 대한 국제적인 항의 의사를 표시했다.
3) 1959년 당시 한국 기독교 연합사업의 구조적 문제점
본 글은 당시 연합사업이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분석하고 있다.
(1) 예장 내부의 노선 갈등 (에큐메니칼 vs NAE)
예장 내부에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지지하는 측과 이를 반대하는 NAE(복음주의협의회)파가 공존하고 있다. NAE파가 예장 총회를 주도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체인 NCC 내에서 에큐메니칼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동상이몽’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 의사결정 구조의 모순
연합기구의 회원 수가 교파의 규모에 따라 차등 배정되는 시스템이 ‘다수의 횡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특정 대교파(예장)의 찬성 없이는 임원 선출이나 사업 계획 확정이 불가능한 구조가 연합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4) 당시 관찰자인 반병섭의 제언
본 글의 저자인 반병섭 목사는 당시 상황을 “산하는 요원하다”는 표현으로 요약하며, 한국 기독교 연합사업의 앞날이 순탄치 않음을 시사했다.
- 예장의 독선 비판: 예장이 70년 역사를 가진 교단의 이름을 변경하라고 요구하거나, 나이(연령)와 같은 역사를 부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강조했다.
- 정상화의 조건: 예장이 NAE 노선을 탈퇴하여 에큐메니칼 노선을 명확히 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노선에 따라 교단이 분리되어야만 연합사업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1959년의 NCC와 KCCE 총회는 교파 이기주의와 법적 재산권 분쟁이 신앙적 연합의 가치를 압도해버린 한국 교회사의 고통스러운 단면을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된다.
4. 진정한 연합사업이 되려면
우리는 상식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기독교 연합사업은 다수결로 해결될 수는 없다. 만약 연합사업에서 다수결의 원칙만 고수한다면 대형 교단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되어버릴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원래의 원칙이라면 모든 참가 교단이 동일한 회원수를 파송해야 하지만 오늘날 NCCK는 거기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예장통합, 감리교, 기장이 NCCK의 주요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반병섭)가 지적한 것처럼 연합사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는 혈안이 되어 지분을 요구하지만 공동으로 분담해야 하는 재정적인 의무는 소홀한 것이 과거 예장만의 모습은 아니라는 사실이 오늘날의 연합사업을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 같다.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재난에 대처하는 모습에서도 연합의 정신이 남아있다면 각 교단이 모금한 헌금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통해 ‘한국의 교회’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이미지를 보여준다면, 교파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분담금만 간신이 내고 있으면서 연합사업에 참여한다는 민망한 모습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