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2:14-27] 몸의 지체 – 1989년 6월 11일, 김상근 목사

몸의 지체

고린도전서 12장 14-27절 / 1989년 6월 11일 / 능동교회


[회상 노트]

한국 교회라는 큰 단위에서 보면 한국기독교장로회는 분명히 특별한 색을 가진 교단이다. 우리와 다른 교단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기장 안에도 이런저런 교회가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배척과 아집, 교만이 자리하게 된다. 한 교회 안에도 갖가지 형태의 교인이 있다.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의 신앙고백은 분명하다. 나 자신이 나를 일반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이. 교회가 나를 이미 규정하고 있다. 나와 같지 않은 신앙행태를 내심 못마땅해 하는 것이 사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척하고 나아가서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 색, 한 성향만으로 ‘몸’을 이룰 수 없다는 이 보편적 진리가 항상 나의 좁음을 질책한다. 어떻게 ‘나와 다른 너’를 받아들여 조화와 유기성(有機性. Organism)을 담보해 낼 것인가? 교단의 일체성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 것인가?

한국기독교장로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와 구별하여 ‘새 역사’를 선언한 날을 기념하여 ‘총회 선교주일’을 마련했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당회장 목사님에게 신학 연수의 기회를 드린 일은 대단히 잘하신 일이다. 아마 상당한 수련을 쌓고 돌아오실 것이고, 그것은 목사님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여러분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더구나 목사님이 안계신 동안에도 교회가 건실하다는 것은 우리 능동교회의 자랑이 될 것이며 그동안 쌓은 신앙의 덕과 훈련의 결과라고 믿어 감사를 드린다. 교회를 이렇게 잘 보존해 가면서도 목사님을 그리워한다면 여러분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잘 자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당회원, 제직, 온 교회 교인들 그리고 부목사님의 노고에 대하여 감사드린다.

오늘은 우리 총회 전 교회가 우리 교단을 생각하고 교단의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는 총회 선교주일이다. 추 목사님께서 영국에서 저에게 벌써 오래 전에 편지를 보내 오늘 자기 교회에서 설교해 달라는 부탁을 주셨다. 사실 오늘은 제가 모처럼 여러 교회로부터 설교 요청을 받는 날인데 훨씬 전에 추 목사님의 예약이 있어서 능동교회로 오게 되었다. 여기서도 추 목사님 의 용의주도함을 볼 수 있다.

오늘을 총회 선교주일로 정한 데는 유래가 있다. 원래 우리나라의 장로교는 하나였다. 그런데 1951년부터 진보적인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자들과 그들의 가르침에 동의하는 학생들을 교단에서 제거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진보적 신학이라는 것은 그 이후 약 20년쯤 지난 후에는 그들 스스로 받아들인 정도의 것이었다.

하여간 그런 움직임은 급기야 1953년 제38회 총회에서 김재준 목사님의 목사직을 박탈하고 축출하는 데까지 나가게 되었다. 이에 항의하고 그 불법성을 지적하며 6월 10일에 호헌 총회로 모였는데 그것이 곧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시작이었고 한국 장로교의 새 역사를 출발시킨 날이 되었다. 그래서 6월 둘째 주일을 총회 선교주일로 지키고 기장의 기장됨과 우리의 소명을 다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각각 그 지체입니다”(27절)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이 말씀은 여러분은 역시 각 인격이지만 그러나 그 각 인격들이 한 큰 인격, 즉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그것이 곧 교회라는 말씀이다. 각 지체가 합하여 통일을 이룰 때 몸이 된다. 지체가 있더라도 그것이 유기적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은 그냥 팔이거나 다리거나 눈이거나 귀일 뿐이다. 몸은 아니다.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고 조화와 유기적인 통일을 이룰 때 몸이 되는 것이다.

또 지체는 다양하고, 있어야 할 지체가 고루 있을 때 건강하고 온전한 몸을 이룬다. 한두 가지 지체만 있다든지 심하게 말하여 한 가지 지체만 있다면, 즉 눈과 팔 등만 있다든지, 혹은 다리만 있다면 절대로 온전한 몸을 이룰 수 없다. 사람의 몸에 온갖 지체가 있어서, 또 그것이 조화와 유기적 통일을 이루어서야 건강하고 온전한 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진리다.

우리 능동교회도 같은 원리를 갖고 있다. 이 교회에는 팔의 기능, 눈의 역할, 눈, 코, 입, 머리, 뇌, 심장, 허파 등 수많은 지체가 있어야 한다. 내가 눈의 역할을 한다고 하여 모두가 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나 같아야 하고 내가 하는 일을 모두가 해야 한다고 억지를 쓴다면 이 교회는 온전하고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낼 수 없게 된다. 각 지체가 알게 모르게 이런 기능, 저런 역할을 담당할 때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어 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작다고 생각되는 지체,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버리기 쉬운 지체에 대해서까지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명심해야 한다. 세상에서는 알아주지 않는 사람도 교회에서는 소중한 식구로 인정하는 것이다. 큰 자국을 내는 지체만 소중한 것이 아니다. 아무 역할도 못 하는 것 같은 지체에 대해서도 깊은 배려와 관심을 가질 때 바른 교회가 된다는 진리를 깊이 새겨야 한다. 성서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몸 가운데서 비교적 약하다고 보이는 지체가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그런 것들을 더욱 귀한 것으로 입히고 보기 흉한 것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 줍시다.”

우리 교단 전체를 보아도 그러하다. 이런 교회도 있고 저런 교회도 있다. 이런 기능을 하는 교회도 있고 저런 기능을 하는 교회도 있다. 전도를 열심히 하는 교회도 있고 봉사 활동을 하는 교회도 있으며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교회도 있다. 또 그런 일을 직접 하는 교회도 있고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교회도 있다.

여러 지체가 모여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이라면 자기를 내세우기보다 상대를 인정하고, 감독하기보다 봉사하는 풍토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내가 너를 인정하고 나와 다르다 하더라도 포용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지체를 더욱 인정하고 포용하여야 한다. 서로 인정하지 않고 포용하지 않으면 결국 그것은 각각일 뿐 한몸은 아니다.

상호 인정과 포용의 원리는 조화와 유기적 통일의 원리를 전제한다. 인정한다는 것은 소극적일 수 있다. 너와 나는 다르다, 그러니 너는 너대로 있고 나도 나대로 있으면 고만이라는 태도는 인정하는 것은 되지만 적극적으로 다른 것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것은 못 된다. 다른 성격, 다른 기능이 서로 보완하고 조화를 이룰 때 그것은 각각이 아니고 유기적으로 통일된 몸이 된다. 조화로운 연결이 되어야 건강한 몸이 되는 것과 같다. 건강한 몸이 될 때 건강한 성격, 개성이 생기게 된다.

왜 봉사만 하느냐고, 왜 전도만 하느냐고, 왜 사회 참여만 강조하느냐고 서로를 비난하거나 반드시 내가 하는 일만을 너도 해야 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봉사, 전도, 그리고 사회 참여가 조화를 이루어 한몸으로 통일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전도에 열심인 교회는 봉사하느라 전도에 열심일 수 없는 교회의 전도의 몫을 담당하는 자세로 상대와 조화해야 한다. 사회 봉사에 적극적인 교회는 역사 참여에 적극적인 교회의 봉사의 몫을 담당한다는 자세로 상대와 조화해야 한다. 또한 역사 참여에 적극적인 교회는 전도와 봉사에 적극적인 교회의 역사 참여의 몫을 담당한다는 자세로 상대와 조화해야 한다. 이렇게 나갈 때 그 교단이 건강하고 온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가 그 시대의 교회에 요망하는 선교 과제가 있는 법이기 때문에 시대의 요청에 따라 교회의 기능 중 어떤 기능이 강조되게 된다. 그것이 그 당시 그 교단의 성격이 되는 것이다.

목회자에 대해서도 그렇다. 목사는 꼭 이래야 된다고 내가 기준을 정하고 거기에 맞추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가 눈이거나 손이거나 전도에 열심이거나 성실하게 지체의 역할을 하면 받아들이고 도와야 한다. 나와 똑같으라고 하는 것은 몸을 이루려는 자세가 아니다.

자, 여러분의 교회는 서로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상대방과 다르니 너를 나같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서 조화를 이루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서 한 몸으로 통일되어 그리스도의 건강하고 온전한 몸을 이루기를 바란다. 보잘 것 없다고 느껴지는 형제를 더 받아들여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내기 바란다.

나는 우리 기장 교단이 서로 인정하고 포용하며 조화를 이루고 결국 유기적 통일체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나가기를 갈망한다. 우리 교단에 수없이 많은 약한 지체가 있다. 그 약한 지체를 한 몸의 지체로 받아들인다면 그 지체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아껴야 할 것이다.

오늘 총회 선교주일 헌금을 하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이 헌금은 강원노회를 위해 주로 사용하려 한다. 강원노회는 우리 총회에서 가장 약한 노회 중의 하나다. 당회가 있는 교회가 겨우 11개 교회가 되었을 뿐이다. 이 노회 안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사용하도록 할 것이다. 이것이 약한 지체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구체적 실천이다.

우리 기장 교회가, 지체가 다양하지만 조화를 이루도록 여러분께서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 결국 한 몸 그리스도의 건강하고 온전한 몸을 이루어 내도록 기도하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능동교회의 지체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다. 능동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지체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다. 지체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시기 바란다.

몸의 지체로서 서로를 받아들이며 조화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 현존하기를 바란다.

약한 지체를 더욱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높은 신앙의 경지에 이르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