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記的[전기적]으로 본 예레미아의 內面生活[내면생활]
「落穗[낙수]
1933년 6월 10일
- [신학지남] 1933년 9월, 43-51쪽
- [낙수] 1940년, 51-69쪽
- [장공 김재준 저작전집] 제1권, 1971년, 39-48쪽
- [김재준전집] 제1권, 1992년, 13-26쪽
[원문 요약]
장공 김재준 목사의 〈전기적으로 본 예레미야의 내면생활〉은 유다의 멸망이라는 비극적 역사 속에서 예레미야가 걸어간 영적·내면적 여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주전 626년, 아나돗 출신의 예레미야는 신적 소명을 받고 선지자 사역을 시작한다. 요시아 왕의 신명기 종교개혁 당시 그는 개혁의 본질에 동의하며 참여했으나, 점차 율법주의와 성전 신앙이 형식화·미신화되는 현상을 목도하고 ‘환멸의 비애’를 겪는다.
이후 거짓 선지자들의 조소, 민족의 배척, 심판 성취의 지연으로 인해 내적 신정론적 고뇌와 겟세마네와 같은 고통을 겪지만, 기도를 통해 거룩한 인격으로 정화된다. 주전 605년 갈게미쉬 전투 이후 그의 심판 예언은 역사적으로 성취되었고, 그는 마침내 외형적ㆍ국가적 종교를 넘어 인간의 마음에 법을 새기는 ‘새 언약’을 선포한다. 이로써 예레미야는 내면적ㆍ도덕적ㆍ개인적 종교로의 전환을 이루며 기독교의 길을 예비한 대선지자로 우뚝 서게 된다.
[원문 소개]
다윗王業[왕업]이 바야흐로 기울어져 가는 저녁, 눈물과 피와 힘으로 짜내인 예레미아의 一生[일생]은 너무나 深刻[심각]하고 多端[다단][1]하였다. 그리하여[2] 탄식없이 읽을 수 없는 것이 그의 豫言詩[예언시]이다.[3] 그러나 그의 豫言詩[예언시]를[4] 材料[재료]로 하고 系統[계통]선 傳記[전기]를 쓰려는 것은 決[결]코 容易[용이]한 일이 아님을 나는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제 未備[미비]하나마 뜻 두었던 것이니 써 이 大豫言者[대예언자]의[5] 片影[편영][6]이나마 나타낼 수 있으면 幸甚[행심][7]일까 하고 붓을 든 것이다.
[1]
앗시리아의 平原[평원]에 감도는 低氣壓[저기압]이 刻一刻[각일각][8]으로 가나안福地[복지]를[9] 向[향]하여 나아오는 것을 유다의 一寒村[일한촌][10] 아나돗의 靑年詩人[청년시인] 예레미아는 거의 直感的[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貴人[귀인]의 피를 이은 그의 마음은 모르는 체하고 지낼 수 없었다. 다윗왕때로부터 내려온 貴[귀]한 家族的[가족적] 傳統[전통]과 썩을 대로 썩은 現下[현하]의 國情[국정]과를 서로 比較[비교]해 보고서는 그 差[차]의 너무나 현격한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先輩[선배] 豫言者[예언자][11] 特[특]히 호세아의 불같이 뜨거운 豫言詩[예언시]가[12] 그의 가슴에 깊은 感懷[감회]를 일으켰을 것은 勿論[물론]이었을 것이다. 때때로 거친 유다광야를 거니는 그는 最後[최후]로[13] 한번 우렁차게 외치고도 싶었을 것이나 그에게는 아직도 그렇게 自信[자신]이 생기지 않았었다. 그는 아직도 客觀的[객관적] 權威者[권위자]인 여호와의 召命[소명]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2]
때는 主前[주전] 626년 늦은 겨울 萬相[만상]이 다 자는데 혼자 깨인듯이 꽃피인 아몬나무[14]를 바라보며 거친 유다 광야를 거니는 그에게는 갑자기 「너를 배안에 形成[형성]하기 前[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네가 그의 胎[태]에서 나오기 前[전]에 내가 너를 聖別[성별]했으며 萬國[만국]의 豫言者[예언자]로[15] 내가 너를 任命[임명]하였다」(1:4, 5)[16]
하는 엄숙한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젊은이인 그에게는 너무나 莊嚴[장엄]하고 기대에 넘치는 召命[소명]이었음에 그는 억색(臆塞)[17]한 마음으로 辭退[사퇴]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손은 벌써 그를 붙잡고 놓지 않음을 어찌하랴.
[3]
「쇠기둥」, 「구리담」의 約束[약속][18]과 함께 그는 豫言者[예언자]의[19] 生活[생활]을 始作[시작]하였다. 當時[당시] 「庶民[서민]의 宗敎[종교]」인 바알, 아쉬타데 崇拜[숭배]는 論理的[논리적][20] 宗敎[종교]인 여호와의 예배까지도 極度[극도]로 타락시켜서 山[산]위나 나무밑 가는곳마다 邪神淫祠[사신음사][21], 거기서 떠드는 淫湯[음탕]한 誦歌[송가]소리는 밤낮으로 이 豫言者[예언자]의[22] 귀를 괴롭게 하였었다. (2:2~3:23 參照[참조])
靑年[청년]들에서 흔히 보는 節制[절제]없는 信念[신념]과 興奔[흥분]을 가지고 그는 이 더러워진 백성에게 내릴 懲罰[징벌]을 宣言[선언]하였다. 끓어 넘치는 가마같이 北方[북방]으로 부터 밀려오는 兵亂[병란]!
「들으라! 단에서 달려오는 斥候[척후]!
에부라임 언덕에서 오는 凶報[흉보]의 前哨[전초]!
百姓[백성]들에게 警告[경고]하라 보아라 저들이 온다.
알게하라 예루살렘에!」[23]
「내 창자여 내 창자여 오 내 괴로움이여!
오 내 가슴이여!
내 心臓[심장]이 너무나 뛰놀매
걷잡을 길 없구나
저 북소리 내 귀에 들리네
저 戰爭[전쟁]의 경종소리.」
- 3:19[24]
〈註〉 스킨너(Skinner)는 이 詩[시]와[25] 그의 다른 유사한 시를[26] 比較硏究[비교연구]한 結果[결과] 이 詩[시]는 特[특]히 過度[과도]의 興奔[흥분]과 想像的[상상적] 氣分[기분]을 나타냄을 指摘[지적]하고 따라서 極初期[극초기]의 作[작]임을 말하였다. 그리고 이 兵亂[병란]은 스구디아 侵略[침략](626 B.C.)[27]이었다고 한다. (Prophecy and Religion p. 44ff)
그는 이 風前[풍전]의 燈火[등화]같은 自國[자국]의 運命[운명]을 보고 懲罰[징벌]의 宣告[선고]를 내리면서도 속마음은 限[한]없이 아팠을 것이다. 그리하여 상상컨대 다시 들밖에 나가 北[북]으로 에부라임의 連山[연산], 東[동]으로 요단의 溪谷[계곡], 그 건너便[편] 길르앗의 高原[고원]을 바라보며 깊은 감상에[28] 잠긴 때 그에게는 「混沌[혼돈]」의 비젼(Vision)이 보였었을까 한다.
「내가 땅을 보았다. 그러나 아 混沌[혼돈]!
하늘을- 그러나 아 빛이 없더라.
내가 언덕을 보았다- 그러나 아 저들은 떨었다.
그리고 모든 山[산]들은 몸부림치더라.
내가 보았다- 그러나 아 사람이라곤 없었다.
그리고 空中[공중]의 온갖 새들도 다 날아가 버렸더라.
내가 곡식밭을 보았다- 그러나 「사막」!
그리고 그의 모든 都市[도시]는 허물어져 버렸더라.」
- 4:23~26[29]
「混沌[혼돈]과 荒廢[황폐]」 이것을 눈앞에 보면서도 그는 一縷[일루][30]의 希望[희망]을 가지고 國家的[국가적] 悔改[회개]를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예루살렘에 다니러 온 그는 于先[우선][31] 그 社會[사회] 각층의 實情[실정]을 探査[탐사]하였다.
그는 어디서 하나 義[의]를 行[행]하며 眞理[진리]를 찾는 者[자]를 만나 볼런가 해서 거리를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은 것은 오직 歷史的[역사적] 事變[사변]을 通[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攝理[섭리]에 全然没覺[전연몰각]한, 「그 낯을 바윗돌 같이 굳세게 하며 돌아오기를 拒絶[거절]」하는 者[자]들이었다. 그는 다시 발을 돌이켜 敎養[교양]있는 所謂[소위] 指導者層[지도자층]을 찾아 보았으나 그 亦是[역시] 조금도 다를것 없는 沒覺無道[몰각무도]한 者[자]들이었다. (5:14[32] 參照[참조])고 嘆息[탄식]하였다.
이렇게도 각 階級[계급]을 通[통]하여 極度[극도]의 腐敗[부패]와[33] 無能[무능]을 보였음에 그는 오직 홀로 街頭[가두]에 외치는 반향없는 소리노릇을 하였을 것이다. 「悔改[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俗塵[속진]에 메인 인생의 귀를 울리기에는 너무나 유다른 말인가 한다.
[4]
이렇게 하기를 5년! 때는 主前[주전] 621년 봄 聖殿[성전]구석에서 모세의 옛 율법책을 發見[발견]했다는 所聞[소문]이 地方[지방]의 구석구석까지 퍼지게 되며 그때 유월절을 利用[이용]하여 一世[일세] 明君[명군] 요시아王[왕]의 主裁下[주재하]에 全國的[전국적] 會議[회의]가 열리었다. 그리하여 전고미증유(前古未會有)의 壯嚴[장엄], 崇高[숭고]한[34] 유월절을 지키었다는 代表者[대표자]들의 傳言[전언]은 곧 사람들의 한결같은 話題[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政府[정부]로부터의 疾風怒濤的[질풍노도적][35] 종교숙청운동이[36] 일어나 聖殿[성전]의 淨化[정화], 邪神淫祠[사신음사]의 破壞[파괴], 地方[지방]에 널려있는 여호와 祭壇[제단]의 破棄[파기]와 禮拜[예배]의 集中[집중] 그리고 高貴[고귀]한 倫理的[윤리적] 生活[생활]의 提唱[제창]! 이런 偉大[위대]한 改革運動[개혁운동]이 놀랄만치 迅速[급속]히 進行[진행]되고 있었다.
이 世紀的[세기적][37] 改革運動[개혁운동]을 본 예레미아는 果然[과연] 어떠한 態度[태도]를 가졌을까? 學者[학자]들 사이에 많은 興味[흥미]를 일으키는, 아직도 歸結[귀결]을 짓지 못한 問題[문제]의 하나이다.
그가 果然[과연] 이 運動[운동]에 直接參加[직접참가]한 與否[여부]는 未知[미지]의 일이라 할지라도 全然[전연] 傍觀的[방관적] 態度[태도]를 取[취]했으리라고는 到低[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컨대 그와같이 熱烈[열렬]한 預言者[예언자]로서 그렇게 큰 宗敎運動[종교운동]을 그저 冷情[냉정]하게 袖手傍觀[수수방관]했으리라는 것은 그의 性格上[성격상]으로 보아서나 그의 預言者的[예언자적] 使命[사명]으로 보아서나 도무지 不合理[불합리]한 推斷[추단]이라 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이 運動[운동]에 贊意[찬의]를 表[표]했거나 或[혹]은 反對[반대]를 表明[표명]했을 것이다.
그가 運動[운동]에[38] 贊意[찬의]를 表[표]했으리리는 것이 大多數學者[대다수학자]의 말하는 바인데 이제 그 理由[이유]를 列擧[열거]한다면 (一) 于先[우선][39] 이 運動[운동]의 根本的情神[근본적정신] 적어도 바알 宗敎[종교]의 撲滅[박멸]이라는 消極的[소극적] 方面[방면]에 있어서는 예레미아의 情神[정신]과 符合[부합]되는 것이며 또 이 律法[율법]의 倫理的[윤리적] 宗敎的[종교적] 敎訓[교훈]도 範圍[범위]는[40] 좁다 할지라도 決[결]코 預言者[예언자]의 敎訓[교훈]보다 低劣[저열]한 것이 아니며, (二) 더군다나 그의 요시아王[왕]에 對[대]한 높은 讚詞[찬사](22:15, 16),[41] (三) 621~608年[년]까지에 그가 比較的[비교적] 沈默[침묵]을 지킨 것, (四) 改革運動[개혁운동]의 中心人物[중심인물]인 샤반一家[일가]가 그에게 바친 꾸준한 忠誠[충성](36:10~20) 이런 것들이다. 그가 決[결]코 改革運動[개혁운동]을 公公然[공공연]하게 反對[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贊意[찬의]를 表[표]했다는 것을 暗示[암시]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뿐만아니라 그의 故鄕[고향] 아니돗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까지 한 理由[이유]도 亦是[역시] 그가 그 地方祭司[지방제사]의 直系[직계]이면서 그 地方[지방]의 여호와 祭壇[제단]을 破壞[파괴]하는 데 直接贊同[직접찬동]했다는 것을 憤激[분격]해 한 所行[소행]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그가 유다 모든 城邑[성읍]과 예루살렘에서 傳播[전파]했다는 所謂[소위] 「이 언약」(This Covenant)(11:8)이 그때 宣布[선포]한 申命記原本[신명기원본]이었다는 것은 그다지 不當[부당]한 推斷[추단][42]이 아닌 줄 안다. 勿論[물론] 이 部分[부분]은 예레미아의 自作[자작]이 아니오, 申命記的[신명기적] 加筆[가필]이라는 것은 文體[문체]와[43] 內容[내용]을 보아 是認[시인]안 할 수 없는 事實[사실]이나 本是[본시] 예레미아書[서]가 그의 書記[서기]로 있는 그리고 申命記運動[신명기운동]과 密接[밀접]한 關係[관계]를 가진 바룩의 手記[수기]한 것이며 예레미야의 自作[자작]이 아니라 할지라도 예레미아의 宣布[선포]한 事實[사실]에 照[조]하여 그의 容許[용허]를 얻어 바룩이 스스로 써넣을 수도 있는 것이니 自作與否[자작여부]는 그다지 큰 問題[문제]될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모든 證左[증좌]로 보아 예레미아가 改革運動[개혁운동]에 參與[참여]했다는 것을 認定[인정]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가 그저 政府[정부]나 祭司長[제사장]의 指揮[지휘]를 받아 一個[일개]의 使喚[사환]처럼 움직였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 이는 그의 性格上[성격상]으로 보든지 그의 豫言者的[예언자적][44] 權威[권위]로 보든지 決[결]코 妥當[타당]치 못한 推斷[추단]인 까닭이다. 생각컨대 이때에 그는 預言者[예언자]의 權威[권위]로 이 運動[운동]에 對[대]한 여호와의 是認[시인]을 宣言[선언]하고 그윽히 그 하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5]
그 本鄕[본향] 사람들의 可憎[가증]한 陰謀[음모]를 겨우 벗어난 예레미아는 沈默[침묵]과 瞑想[명상]과 祈禱[기도]로 近十年[근십년]동안의 고요한 生活[생활]을 이어 갔었다. 요시아王[왕]의 賢政[현정]과 宗敎改革[종교개혁]의 運動[운동]에 그윽한 期待[기대]를 가지고 고요히 그러나 날카롭게 모든 경구을[45] 살피면서 그는 마음조리는 沈默[침묵]을 지켜온 것이다.
「庶民[서민]의 宗敎[종교]」 이것은 그렇게 容易[용이]하게 없어질 것이 아니었다. 도끼를 들어 그 나무를 베어 넘어뜨릴 수 있었으나 그 뿌리는 너무나 깊히 庶民[서민]의 마음속에 뻗히어 있었던 것이다. 改革運動[개혁운동]은 期待[기대]하던 效果[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數[수]없는 地方[지방]의 失業祭司[실업제사]들은 首都[수도]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다. 이 祭司群[제사군]의 生活[생활]을 保障[보장]하려면 不得不[부득불] 祭物[제물]을 많이 받아 들여야 할 것이며 祭物[제물]이 불어나려면 儀式[의식]의 必要[필요]를 高潮[고조]하고 律法[율법]과 聖殿[성전]에 對[대]한 狂信的[광신적] 態度[태도]를 助長[조장]하여야 할 것은 當然[당연]한 추세이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宗敎[종교]는 또 다시 儀式[의식]과 미신에 빠져서 그 道德的[도덕적] 生命[생명]은 窒息狀態[질식상태]에 들고 말았던 것이다.
[6]
예레미야의 瞑想[명상]이 이 宗敎改革[종교개혁]의 隨落[수락]에[46] 미쳤을 때 그의 가슴은 極度[극도]로 침울하였다. 申命記法典[신명기법전]이 아무리 훌륭하고 여호와의 聖意[성의]에 符合[부합]된다 할지라도 因緣[인연]없는 百姓[백성]들은 마치 戰場[전장]에서 날뛰는 말처럼 걷잡을 수 없이 제 마음대로 달아나고(8:6)[47] 간교한 書記官[서기관]들은 그들의 거짓 붓을 들어 祭物[제물]의 種類[종류]만 添記[첨기]하고 있다.
民衆[민중]은 날로 聖殿[성전]과 律法[율법]에 對[대]한 미신으로 빠져 들어가고 欺瞞[기만]과 犯罪[범죄]가 兄弟[형제]사이에 公公然[공공연]하게 늘어가되 저들은[48] 「토라(律法冊)가 우리에게 있으니 平安[평안]은 우리의 것이라」고 壯談[장담]한다.
聖殿[성전]은 바알의 祭壇[제단]을 代身[대신]하여 「物神[물신]」이 되고 律法[율법]은 바알을 代身[대신]하여 偶像[우상]이 되어간대도 過言[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고요한 생각이 이에 미치자 그는 預言者的[예언자적] 義憤[의분]에 못이겨 이렇게 부르짖었는가 한다.
「어떻게 너희가 말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智慧[지혜]있노라
여호와의 법전(Torah)이 우리에게 있노라고
보아라 書記官[서기관]들의 거짓 붓이
이것을 거짓되게 하고 말았다.」[49]
當時[당시]에 記錄[기록]된 여호와의 法典[법전]이라면[50] 申命記[신명기]밖에 없었을 것이며 이것이 예레미야가 申命記[신명기] 運動[운동]에 對[대]한 一種[일종]의 失望[실망]을 말한 것이라 함은 그리 不當[부당]한 論斷[논단]이 아닐 것이다.
[7]
이러한 危機[위기]에 므긷도로부터 悲報[비보]가 날라왔다. 다윗후에 처음보는 明君[명군] 요시야王[왕]은 棺[관]속 옛사람으로[51] 궁중에 돌아오게 되었다. 공포와 混亂[혼란], 음산과 미신, 首都[수도]의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웠다.
나훔의 니느웨에 對[대]한 預言[예언][52]이 成就[성취]된 것을 본 거짓 預言者[예언자]들은 이사야의 「시온 불가침」의 預言[예언]을 狂信[광신]하고 오히려 樂觀的[낙관적] 預言[예언]만 말하고 있었으나 참된 預言者[예언자]에게는 오직 慘劇[참극]만 豫感[예감][53]되었었다.
悲劇[비극]의 王子[왕자] 여호와 아하쓰[54], 새 임금 여오야김[55], 시온의 기울어지는 王業[왕업]은 走馬燈[주마등]같이 展開[전개]되었다. 그러나 事態[사태]는 오직 이 悲嘆[비탄]의 預言者[예언자]에게 무거운 짐을 하나씩 둘씩 더하는 것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오- 내 머리가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샘(泉[천])되었던들!
내 百姓[백성]의 殺戮[살육]을 爲[위]해
밤과 낮을 울고나 지낼 것을」[56]
悲嘆[비탄]이 그 極[극]에 達[달]한 때 그는
「오- 내가 저 사막에
길손의 居處[거처]나 가졌던들
차라리 내 百姓[백성]을 떠나
아주 가 버리고나 말 것을」[57]
이 悲痛[비통]은 萬代[만대]를 通[통]하여 뜻있는 이로 하여금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게 하는 深刻[심각]한 場面[장면]의 하나이거니와 그렇다고 그가 아주 주저앉은 것은 勿論[물론] 아니었다. 그에게는 새로운 서광이 비치며 새로운 힘이 생기기 始作[시작]하였다. 이 말할 수 없는 苦痛[고통]은 새 眞理[진리]의 탄생을 爲[위]한 괴로움이었던가 한다. 그는 이 申命記運動[신명기운동]에 對[대]한 「幻滅[환멸]의 悲哀[비애]」랄까를 通[통]하여 儀式主義[의식주의]의 아주 無意味[무의미]한 것과 여호와 宗敎[종교]와 道德生活[도덕생활]의 絶對不可分的[절대불가분적] 關係[관계]와 여호와와 그 禮拜者[예배자]와의 사이에 있는 「言約[언약]」의 精神化[정신화]에 한 躍進的[약진적] 理解[이해]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8]
그에게는 다시 한번 일어나 싸움할 때가 왔다. 그는 聖殿門[성전문] 어구에 서서 儀式主義[의식주의]와 聖殿狂信者[성전광신자]들을 向[향]하여 가장 날카로운 宣言[선언]을 내렸다.
「여호와가 말씀하시기를
이런 잘못 引導[인도]하는 말을 믿지말라 「여호와의 聖殿[성전], 여호와의 聖殿[성전], 여호와의 聖殿[성전]이 이것이라」고… 무엇이란 말이냐. 도적질하고 殺人[살인]하며 姦淫[간음]하며 盟誓[맹서]하며 바알에게 祭祀[제사]하고 그리고서는 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는 救援[구원]을 얻었다고 - 이런 가증한 일을 犯[범]하려고! 너희는 내 집을 强盜[강도]의 소굴로 여기느냐」[58]
이 勇敢[용감]한 挑戰[도전]은 勿論[물론] 貧心[빈심][59]이 가득한 王[왕]과 祭司[제사]들이며 迷路[미로]에 든 狂信輩[광신배]들의 激怒[격노]를 샀을 것이다. 特[특]히 그는 아직도 預言者[예언자]로서의 權威[권위]가 確立[확립]되지 못한 初期[초기]이었음으로 조소 능욕 비난의 소리가 公[공]으로 私[사]로 그에게 퍼부어졌을 것이며 어떤 者[자]는 그의 첫 宣言[선언]인 北方[북방]으로의 兵亂[병란]이 成就[성취] 안된 것을 들어 증거삼아 非難[비난]도 했을 것이다.
[9]
이렇게하여 當時[당시]의 指導階級[지도계급]과 正面衝突[정면충돌]한 그는 받은 것이 오직 凌辱[능욕]과 冒瀆[모독]이었다. 東洋人[동양인]의 軟[연]한 感情[감정]을 가진 그는 또 다시 疑惑[의혹]과 苦憫[고민]에 잠기게 되었다. 그가 믿는 여호와는 惡[악]을 罰[벌]하고 善[선]을 賞[상]하는 全能[전능]하고 義[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惡人[악인]의 勢力[권세]은 善[선]을 누르고 뻗쳐 나가는 데, 오직 하나 여호와의 使者[사자]인 그는 홀로 웃음거리 밖에 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무슨 일이냐.
그의 마음의 振子[진자]는 멀리 그의 出生[출생]에까지 돌아갔다. 왜 내가 태어났느냐.
「너를 배안에 形成[형성]하기 前[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네가 그의 胎[태]에서 나오기 前[전]에 내가 너를 聖別[성별]하였다.」[60]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아-얼마나 큰 祝福[축복]이냐. 그러나 지금까지의 生活[생활]은 어떠한가 悲哀[비애], 嘲笑[조소], 凌辱[능욕]의 연쇄가 아닌가. (20:7, 8 參照[참조])[61]
「咀呪[저주]받아라 내 난날-
내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은
祝福[축복]에서 떠나라.」[62]
「내가 오늘 너를 세워 - 鐵[철]기둥 구리담이 되게 하리니
- 저희가 싸우나 이기지 못하리라.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니라.」[63]
이것이 預言者[예언자]로서 召命[소명]받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實狀[실상]은 어떠한가. 여호와의 말씀은 끊임없는 恥辱[치욕]을 招致[초치][64]한 것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여호와는 自己[자기]가 모독을 받고 自己[자기]의 使者[사자]가 恥辱[치욕]을 當[당]하게 하시기 鳥[위]하여 預言者[예언자]를 세우셨는가? 萬無[만무]한 일이다. 그러면 차라리 預言[예언]을 그만두자. 그리하여 여호와에게 辱[욕]을 돌리지않고 그의 使者[사자]에게 부끄러움을 더하지 않고 百姓[백성]들에게 죄를 더하지 않게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당신이 나를 속이셨소이다. 여호와여! 그리고 나는 속았오이다.」[65]
그러나 여호와의 神[신]으로 불타는 그의 內的[내적] 衝動[충동]은 마치 피어 오르는 숯불을 가슴에 담고 뼈속에 넣은 것같아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자기 衝突[충돌]과 矛盾[모순]에 苦憫[고민]하는 그는 여호와를 부르며 모든 惡法[악법]에 對[대]한 복수를 懇願[간원]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正義感[정의감]을 만족시키고 따라서 苦憫[고민]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自然人[자연인]의 本能的[본능적] 衝動[충동]을 苦執[고집]함으로 因[인]하여 義[의]의 문제를 解決[해결]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안될 일이다.
때가 지남을 따라 그에게는 다시 고요한 理性[이성]과 거룩한 양심이 恢復[회복]되었다. 그의 批評[비평]의 눈은[66] 다른 사람에게서 떠나 自己[자기]에게로 옮기게 되었다. 果然[과연] 나는 絶對[절대]로 義[의]롭고 다른 사람만이 不義[불의]한 것이었는가. 나의 理性[이성]은 여호와의 秘義[비의]와 窮極[궁극]의 目的[목적]까지도 解得[해득]할 수 있을만치 맑아지고 깨끗한가. 그리고 내 마음의 척도는 여호와의 마음을 잴만치 正確[정확]하고 또 거룩한가. 그가 自己[자기] 마음의 깊은 속을 고요히 들여다 보았을 때 그는 謙遜[겸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무엇보다도 믿지 못할것은 마음이다.
그리고 또 病[병]들었나니
누가 能[능]히 알리오.」[67]
마음을 살피고 생각을 시험하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라(17:10 參照[참조])[68]고 그는 謙遜[겸손]하게 여호와앞에 꿇어 업디어 그의 祭壇[제단]위에 赤裸裸[적나라]한 自己[자기]의 生活[생활]을 펼쳐놓고 祈願[기원]을 드리었다.
「당신은 나의 찬송이오매.
고쳐주옵소서 여호와여!
그리하면 내가 낫겠나이다.
구원해주옵소서.
그리하면 내가 救援[구원]받겠나이다.」[69]
그는 이제 그의 性格[성격]과 私生活[사생활]에 貴[귀]한 것과 賤[천]한 것이 섞여 있음을 自認[자인]하였으나 豫言者的[예언자적] 公生涯[공생애]에 있어서는 決[결]코 私意[사의]로 한것이 없음을 여호와 앞에 呼訴[호소]하며 그의 憐憫[연민]을 求[구]하게 되었다.
「내 입에서 나온말이
당신앞에 그대로 놓여 있소이다.
나에게 두려움이 되지 말아 주소서.
患難[환난]때에 당신은 나의 避亂處[피난처]로소이다.」[70]
이렇게 하여 겟세마네의 쓴잔은 지나갔다. 여호와의 慰勞[위로]와 憐憫[연민]은 그에게 다시금 이슬같이 내리었다.
「네가 萬一[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돌이키리라.
그리하여 내 앞에 서게하리라.
네가 萬一[만일] 값싼 것이 섞이지 않은
貴[귀]한 것을 말한다면
내 입같이 네가 되리라」[71]
「내가 너를 이 百姓[백성]들 앞에
銅城[동성]같이 굳세게 하리니
저희가 너를 向[향]해 싸울지라도
이기지 못하리라.」[72]
[10]
自然[자연]의 衝動[충동]이 聖靈[성령]으로 淨化[정화]된 거룩한 人格[인격]은 참으로 銅城[동성]같이 움직임이 없었다. 그는 또다시 聖殿[성전]에 서서 罪惡[죄악]으로 가득한 聖殿[성전]과[73] 首都[수도]에 내릴 審判[심판]을 宣告[선고]하였다. (26:46)[74]
祭司[제사]와 民衆[민중]은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75]하고 외치며[76] 「一濟[일제]히 몰려들었다」[77](九절)[78] 그러나 이제 그는 感傷的[감상적] 詩人[시인] 노릇하기에는 너무나 굳세고 높았었으며 世人[세인]은 그의 敵[적]노릇하기에는 너무나 弱[약]했었다. 그는 고요한 그러나 確信[확신]에서 나오는 힘있는 목소리로
「보아라 나는 여기 너의 손에 있으니 너의 願[원]하는대로 무엇이든지 하여라. 그러나 너희가 나를 죽이면 한 무고한 피를 너희 머리위에, 또 이 都市[도시]에 더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두어야 하리라. 이는 眞實[진실]로 여호와가 내려보내셔서[79]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말해 들린 까닭이다.」(26:14,15)[80]고 對答[대답]하였다.
[11]
北方[북방]으로부터의 兵禍[병화]를 豫言[예언]한지[81] 二十年[이십년], 아직도 그 成就[성취]를 보지못한 그는 거짓말쟁이, 믿지못할 豫言者[예언자]라고[82] 嘲笑[조소]와 凌辱[능욕]을 밥먹듯 하고 있었다. 들리는 말은 「어디 여호와의 말씀이 있느냐 곧 臨[임]하게 해 보아라」(17:14)[83] 하는 愚弄[우롱]의 소리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을 疑心[의심]하지 않았다. 때는 二十年[이십년]을 지난 주전[84] 605~604년 갈디아와 애급의 두 獅子[사자]는 앗시리아란 죽은 고기덩이를 가운데 놓고 갈게미쉬에서 最後[최후]의 決鬪[결투]를 試[시]하였다. 그리하여 後者[후자]의 패주와 함께 北方[북방]의 끓는 가마는 마침내 地中海[지중해]가로 넘쳐 쏟아지게 되었다. 北方兵禍[북방병화]의 豫言[예언]이[85] 여호와의 말씀되기에 不足[부족]한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聖殿[성전]과 首都[수도]가 滅亡[멸망] 하리란 豫言[예언]이[86] 妄發[망발]이라던 者[자]들이 지금 어디 있느냐. 이때부터 예레미아는 得意[득의]의 豫言者[예언자]이었으며[87] 따라서 여호와에 對[대]한 確信[확신]이 날로 더하고 國家將來[국가장래]에 對[대]한 통찰이 더욱 明哲[명철]하게 되었다.
[12]
몰려치는 暴風雨[폭풍우]가운데 있어서 그는 참으로 鐵住[철주], 銅城[동성]같은 存在[존재]이었다. 不義[불의] 橫暴[횡폭]한 王[왕]을 책망하며 썩어지고 俗化[속화]한 祭司[제사]들을 꾸짖으며 自意[자의]로 豫言[예언]하는[88] 거짓 豫言者[예언자]들과[89] 싸우며 귀머거리 같은 庶民[서민]들을 爲[위]해 嘆息[탄식]하며 淺見短慮[천견단려]의 政客[정객]을 敎導[교도][90]하는 피와 눈물로 짜내인 多端[다단]한 平生[평생]도 이제 허사였던가 주전 587년 反逆[반역]의 族屬[족속][91] 유다는 北方[북방]으로 잡혀가고 여호와의 新婦[신부]같은 聖都[성도]는 荒廢[황폐]한 옛터만 남기게 되었다. 暴風雨[폭풍우]는 지나갔다. 막은 닫히었다.
[13]
그윽히 屬望[속망]하던[92] 異國[이국]의 治者[치자] 그달리아[93]가 미즈바에서 凶劒[흉검]에 넘어진後[후] 이 老豫言者[노예언자]의[94] 靈的[영적] 經驗[경험]은 그 절정에 達[달]했으니 곧 「새 言約[언약]의 豫言[예언][95]」이 그것이다.
「내가 내 法律[율법]을 저희속에 두고 저들의 마음속에 새기리라, 그리고 나는 저희의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 百姓[백성]이 되리라, 그때는 각사람이 서로 또 각기 그 이웃을 向[향]하여 여호와를 알라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적은 者[자]로부터 큰 者[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내가 저희 不義[불의]를 容恕[용서]하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리라」[96]
[14][97]
이리하여 不純[불순]한 儀式的[의식적] 國家的[국가적] 宗敎[종교]는 道德的[도덕적] 靈的[영적] 個人的[개인적] 宗敎[종교]로 淨化[정화]되어서 그리스도의 길을 豫備[예비]하였다.[98] 우리는 이제 神[신]의 遠大[위대]한 經輪[경륜]을 讚嘆[찬탄]함과 同時[동시]에 不世出[불세출]의 大豫言者[대예언자][99] 예레미야의 一生[일생]을 앙모하여 마지 않는다.
[키워드 정리]
1. 소명과 초기 사역 (Call & Early Ministry)
- 전기적 접근 (Biographical Approach)
원문: “그러나 그의 豫言詩[예언시]를 材料[재료]로 하고 系統[계통]선 傳記[전기]를 쓰려는 것은 決[결]코 容易[용이]한 일이 아님을 나는 새삼스럽게 느꼈다.” - 아나돗 (Anathoth)
원문: “유다의 一寒村[일한촌] 아나돗의 靑年詩人[청년시인] 예레미아는 거의 直感的[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 호세아 (Hosea)
원문: “先輩[선배] 豫言者[예언자] 特[특]히 호세아의 불같이 뜨거운 豫言詩[예언시]가 그의 가슴에 깊은 感懷[감회]를 일으켰을 것은 勿論[물론]이었을 것이다.” - 소명 (Divine Call)
원문: “너를 배안에 形成[형성]하기 前[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네가 그의 胎[태]에서 나오기 前[전]에 내가 너를 聖別[성별]했으며 萬國[만국]의 豫言者[예언자]로 내가 너를 任命[임명]하였다” - 쇠기둥과 구리담 (Iron Pillars & Bronze Walls)
원문: “「쇠기둥」, 「구리담」의 約束[약속]과 함께 그는 豫言者[예언자]의 生活[생활]을 始作[시작]하였다.”
2. 위기, 개혁, 환멸 (Crisis, Reform & Disillusionment)
- 혼돈의 비전 (Vision of Chaos)
원문: “깊은 감상에 잠긴 때 그에게는 「混沌[혼돈]」의 비젼(Vision)이 보였었을까 한다. … 내가 땅을 보았다. 그러나 아 混沌[혼돈]! 하늘을- 그러나 아 빛이 없더라.” - 종교숙청운동 (Religious Reformation)
원문: “그리고는 政府[정부]로부터의 疾風怒濤的[질풍노도적] 종교숙청운동이 일어나 聖殿[성전]의 淨化[정화], 邪神淫祠[사신음사]의 破壞[파괴], 地方[지방]에 널려있는 여호와 祭壇[제단]의 破棄[파기]와 禮拜[예배]의 集中[집중] 그리고 高貴[고귀]한 倫理的[윤리적] 生活[생활]의 提唱[제창]!” - 요시아 왕에 대한 찬사 (Praise for King Josiah)
원문: “더군다나 그의 요시아王[왕]에 對[대]한 높은 讚詞[찬사](22:15, 16)” - 이 언약 (This Covenant)
원문: “그리고 그가 유다 모든 城邑[성읍]과 예루살렘에서 傳播[전파]했다는 所謂[소위] 「이 언약」(This Covenant)(11:8)이 그때 宣布[선포]한 申命記原本[신명기원본]이었다는 것은 그다지 不當[부당]한 推斷[추단]이 아닌 줄 안다.” - 서기관들의 거짓 붓 (False Pen of the Scribes)
원문: “보아라 書記官[서기관]들의 거짓 붓이 이것을 거짓되게 하고 말았다.”
3. 내면의 갈등과 영적 정화 (Inner Conflict & Spiritual Purification)
- 환멸의 비애 (Sorrow of Disillusionment)
원문: “그는 이 申命記運動[신명기운동]에 對[대]한 「幻滅[환멸]의 悲哀[비애]」랄까를 通[통]하여 儀式主義[의식주의]의 아주 無意味[무의미]한 것과 여호와 宗敎[종교]와 道德生活[도덕생활]의 絶對不可분의 關係[관계]와 여호와와 그 禮拜者[예배자]와의 사이에 있는 「言約[언약]」의 精神化[정신화]에 한 躍進的[약진적] 理解[이해]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 성전 광신 (Temple Fanaticism)
원문: “이런 잘못 引導[인도]하는 말을 믿지말라 「여호와의 聖殿[성전], 여호와의 聖殿[성전], 여호와의 聖殿[성전]이 이것이라」고…” - 마음의 병 (Corrupted Heart)
원문: “무엇보다도 믿지 못할것은 마음이다. 그리고 또 病[병]들었나니 누가 能[능]히 알리오.” - 겟세마네 (Gethsemane)
원문: “이렇게 하여 겟세마네의 쓴잔은 지나갔다. 여호와의 慰勞[위로]와 憐憫[연민]은 그에게 다시금 이슬같이 내리었다.” - 정화된 인격 (Purified Character)
원문: “自然[자연]의 衝動[충동]이 聖靈[성령]으로 淨化[정화]된 거룩한 人格[인격]은 참으로 銅城[동성]같이 움직임이 없었다.”
4. 역사적 성취와 새 언약 (Historical Fulfillment & New Covenant)
- 갈게미쉬 (Carchemish)
원문: “주전 605~604년 갈디아와 애급의 두 獅子[사자]는 앗시리아란 죽은 고기덩이를 가운데 놓고 갈게미쉬에서 最後[최후]의 決鬪[결투]를 試[시]하였다.” - 득의의 예언자 (Fulfilling Prophet)
원문: “이때부터 예레미아는 得意[득의]의 豫言者[예언자]이었으며 따라서 여호와에 對[대]한 確信[확信]이 날로 더하고 國家將來[국가장래]에 對[대]한 통찰이 더욱 明哲[명철]하게 되었다.” - 그달리아 (Gedaliah)
원문: “그윽히 屬望[속망]하던 異國[이국]의 治者[치자] 그달리아가 미즈바에서 凶劒[흉검]에 넘어진後[후] 이 老豫言者[노예언자]의 靈的[영적] 經驗[경험]은 그 절정에 達[달]했으니” - 새 언약 (New Covenant)
원문: “내가 내 法律[율법]을 저희속에 두고 저들의 마음속에 새기리라, 그리고 나는 저희의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 百姓[백성]이 되리라” - 영적ㆍ개인적 종교 (Spiritual & Individual Religion)
원문: “이리하여 不純[불순]한 儀式的[의식적] 國家的[국가적] 宗敎[종교]는 道德的[도덕적] 靈的[영적] 個人的[개인적] 宗敎[종교]로 淨化[정화]되어서 그리스도의 길을 豫備[예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