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 김재준 저작전집(전5권)에 대한 서평 - 이규호

10월 2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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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장공 金在俊김재준 著作全集저작전집(1)
韓國神學大學刊한국신학대학간 全五卷전5권
菊版국판 500면 값1500원

長空장공 金在俊김재준 목사님의 著作全集저작전집 제1권이 나왔다. 제1권은 원래 편집위원회에서 論文논문들을 모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 제1권에 담긴 長空장공 金在俊김재준 목사님의 글들은 모두 엄격한 의미에서의 神學신학 論文논문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長空장공 金在俊김재준 목사님을 形式的형식적이고 學問的학문적으로 엄격한 神學者신학자로서보다는 한 사람의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존경한다. 낡은 傳統전통에 반항하고 敎會교회와 政府정부의 權力권력에 항거할 反抗兒반항아로서의 長空장공 金在俊김재준 목사님을 우리는 사랑한다. 지성인으로서의 强點강점과 인간으로서의 弱點약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長空장공 金在俊김재준 목사님의 이 글들 속에는 그러한 反抗반항의 숨결이 그대로 담겨 있다.

“敎理교리 敎條교조의 內容내용을 그대로 是認시인하면 그것이 信仰신앙의 全部전부인 것같이 생각하는 것은 가장 巧妙교묘하게 僞裝위장한 異端이단이다. 이 異端이단은 自己자기를 誇大과대하는 교만을 가져오는 것이 特色특색이다. 그들은 信仰신앙의 內容내용을 知識的지식적으로 客觀化객관화한다. 偉大위대한 基督敎기독교의 敎理교리를 望遠鏡망원경에 비치인 天體천체와 같이 다룬다…… 그들은 ‘人間인간’된 데서 免徐면서받은 者자로 自處자처하며 自己자기보다 다른 信條신조를 가진 者자는 人間取扱인간취급하는 것까지도 拒否거부하는 形便형편이다. 하나님의 眞理진리는 自己자기네가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呪文주문인 것 같이 생각하며 나아가서는 이 巧妙교묘한 偶像崇拜者우상숭배자가 一躍일약 하나님을 守護수호하는 守護神수호신의 地位지위에 오른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尊嚴존엄하심 앞에서 敢감히 설 수 없는 罪人죄인이며 無무에 가까운 存在존재임을 深銘심명하고 남을 云謂운위할 餘有여유 없는 痛悔통회의 깨어진 心情심정을 가지는 대신에 自己驕慢자기교만과 不平불평과 惡心악심으로 惡魔的악마적 判官판관이 되어 버린다.”(P.302)

長空장공 金在俊김재준 목사님은 이와 같이 正統主義者정통주의자들과 격렬하게 싸운다. 이 冊책에 실린 大部分대부분의 글들이 그러한 싸움을 위한 글들이다. ‘逐字靈感說축자영감설과 聖書無誤說성서무오설에 對대하여’(93), ‘聖書批判성서비판의 意義의의와 그 結果결과’(104), ‘異端裁判이단재판의 聖書적성서적 根據근거’(115), ‘正統정통과 異端이단’(205), ‘개혁교회의 개혁’(275), ‘敎理교리와 信仰신앙’(301) 등은 모두 이 격렬한 싸움의 깃발이며 해방 후의 韓國敎會한국교회의 몸부림의 산 기억들이다. 인류의 문화는 그것이 객관적인 構造구조로 경화되면 그 原初적원초적인 생명을 잃어버린다. 종교도 그 예외는 아니다. 傳統전통의 껍질이 굳어지면 생명은 없어진다. 그래서 이 굳은 껍질을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비판이며 개혁이며 혁명이다. 그러나 참다운 창조적인 업적은 굳은 껍질에 반항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原初的원초적인 생명을 새롭게 전개해 나가는 데 있다. 이것이 長空장공 金在俊김재준 목사님을 이을 다음 世代세대의 課題과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課題과제의 실현을 위한 어떠한 실마리도 아직 나타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우리 나라의 일반적인 非生産性비생산성과 정신적인 不毛狀態불모상태에만 그 原因원인을 돌릴 것인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인용된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이 現象현상은 다시 한번 더 깊이 따져보면 그 속에는 더 무서운 惡魔性악마성이 숨어 있다. 그것은 倫理的윤리적 束帶속대가 풀어져 버린다는 그것이다. 即즉 敎理的교리적 眞理진리가 道德的도덕적 善선을 代身대신하며 理論이론이 實行실행을 代身대신하며 敎理교리가 산 信仰生活신앙생활을 代身대신하는 그것이다. 그리스도敎교 眞理진리는 그 本性上본성상 道德生活도덕생활과 分離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敎理的교리적 眞理진리를 위해서는 憎惡증오도 殺人살인도 敢行감행하려 한다.” 長空장공 金在俊김재준 목사님은 학문과 생활의 分離분리를 반대했다. 모든 理論이론은 그 人間인간의 삶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덕적인 열매를 가지고 그 학문적인 이론 혹은 종교적인 신앙의 정당성을 가름하자고 하게 되면 우리는 모두 어색한 입장에 빠지게 되고 對話대화는 그것으로 끝을 맺어야 한다. 더 생산적인 대화를 전개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神學思想신학사상으로서의 人道的인도적 人格主義인격주의의 長點장점과 短點단점이 모두 여기에서 분명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의 후반부에는 倫理的윤리적 열매에는 別별로 關心관심하지 않는다. 따라서 人道的인도적 人格主義인격주의와는 다른 實存主義실존주의 思想사상이 드러나 있다. ‘虛無허무와 實存실존’(350), ‘不安불안의 根底근저’(364), ‘不安불안과 絶望절망의 克服극복’(387), ‘無神論的무신론적 實存主義실존주의와 그리스도敎교 信仰신앙’(396), ‘人間인간의 矛盾모순과 逆說역설과 苦㦖고민과’(489) 등에서 實存主義실존주의의 큰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長空장공 金在俊김재준 목사님의 글들은 변증법 신학자들의 딱딱하고 엄밀한 論理展開윤리전개보다는 수필스러운 문장과 詩的시적인 표현으로 메워져 왔다. 長空장공 金在俊김재준 목사님의 글은 이러한 문장으로서는 참으로 탁월하다. 부드러운 문장과 시적인 표현으론 基督敎기독교 著述家저술가들 중에 어느 누구도 長空장공을 앞지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창한 문장의 리듬은 정확한 論理논리와 엄밀한 槪念개념, 規定규정과 문제의 철저한 분석 등을 덮어둔 채 표면을 미끄러져 내려가 버리기 쉽다.

이 책에 담겨 있는 모든 글에는 長空장공 金在俊김재준 목사님의 ‘人間인간’과 ‘삶’이 담겨 있다. 그는 아직 精神的정신적으론 매우 젊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그의 精神정신을 앞으로 살리는 길은 그의 思想사상을 超克초극하는 것일 것이다.

〈李奎浩이규호 評평〉


이규호(1926~2002). 해방 이후 『현대철학의 이해』, 『말의 힘』, 『교육과 사상』 등을 저술한 철학자. 호는 丹溪(단계). 경상남도 진주 출생. 1944년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46년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하여 1950년에 졸업하였다. 1958년부터 1962년까지 독일 에버하르트 카를스 튀빙겐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중앙대학교 철학과에서 봉직하고, 이후 1979년까지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때까지 학문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철학서를 속간하여 당시로서는 다양한 독자층을 확보하였으며, 순수철학뿐만 아니라 교육과 이념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사후인 1979년 12월 국토통일원장관에 발탁되었으며, 1980년에는 문교부장관에 취임하여 1983년 10월까지 봉직하였다. 그 후 한국교원대학교 총장(1984~1985년)을 역임하고, 1985년 1월부터 10월까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1988년까지 제22대 주일본대사를 역임한 후 학술활동을 하다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순신대학교(현 한세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김재준의 첫 글, “이혼하려는 형님네에게”

9월 29, 2026

離姻[이혼]하려는 兄[형]님네에게

학생계 잡지에 실린 글

장공 김재준은 자신의 회고록인 『범용기』 제1권에 자신의 이름으로 공개한 첫 글을 소개하고 있다. 학생계 잡지에 투고한 “離姻[이혼]하려는 兄[형]님네에게”라는 제목의 글이다. 당시 순위는 ‘天地人’의 순서로 결정하였는데 김재준의 글은 2등에 해당하는 ‘地’로 당선되었다. 학생계 제6집에 실린 글이지만 김재준은 이 글을 쓴 날자를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다(1920년 11월 18일).

『범용기』에 당시 글에 대한 회고를 기록함

『범용기 제1권』 (18) 서울 3년 – 인쇄된 첫 글 [링크 🔗]

그는 당시 사회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신지식인들의 이혼에 대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였다. 당시 사회적으로 여자의 입장에서 이혼을 당하게 되었을 때 받게 되는 운명의 비극을 언급하면서 이혼의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혼당한 「아내」란 여인의 경우는 더 큰 비극이다. 그녀는 무너진 하늘 밑, 버림받은 무덤 속에 산다. 그녀의 푸른 원한이 모든 삶에 서리를 끼어 얹는다. 그렇다면 위대한 미래를 꿈꾸는 학생으로서 자기를 하늘같이 믿고 목숨같이 아끼는 한 「인간」을 짓밟고 내쫓고서 민족이나 국가를 말할 수 있겠는가? 그건 진짜 「철면피」가 아닐 수 없다. 「이혼」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하고서 민족과 나를 말하지 말라!”

김재준의 글쓰기, ‘문행일치’(文行一致)를 향하여

그리고 김재준은 이 글을 회상하면서 글을 써 낸다는 것은 쓴 사람이 그만큼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언행일치’에서 나아가 ‘문행일치’를 강조한 부분이다. 실제로 김재준은 자신이 쓴 글이 거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조절했던 것이다.

김재준의 글이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바로 김재준이 자신이 쓴 글에서 주장한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학생계에 실린 김재준의 글 전문 소개

아래는 당시 학생계에 발표한 김재준의 글 전문이다.

【地】 離姻[이혼]하려는兄[형]님네에게 (1圓書籍券[일원서적권])

京城府公平洞五八[경성부 공평동 58]

學生 金在俊[학생 김재준]

우리 朝鮮[조선]의 婚姻制度[혼인제도] - 그야말로 極端[극단]의 非原則[비원칙], 不自然[부자연]이엇다 그럼으로 여러 名士[명사]ᄭᅴ셔 女子敎育[여자교육]의 必要[필요]와 理想的[이상적] 婚姻制度等[혼인제도등]을 提唱[제창]하야 續續實行[속속실행]하는 中[중]임은 慶賀[경하]함을 마지안는 바이올시다 그러나 거긔 ᄯᅡ라셔 厭妻症[염처증]이라는 새 病[병]이 만히 流行[유행]합니다. 그 結果[결과]는 離婚[이혼]이라는 惡毒[악독]한 手術[수술]을 밧게됨니다. 더구나 그 病[병]은 新知識[신지식] 받은 新青年[신청년]에게 만히 걸린다함은 一種注目[일종주목]할 現狀[현상]이외다.

그 原因[원인]은 여러 가지 잇겟지요마는 大部分[대부분]은 新家庭[신가정]을 ᄭᅮᆷ이려하나 其妻[기처]가 無知無識[무지무식]함으로 賢母良妻[현모양처]의 資格[자격]이 업슴을 슬혀함인듯 합니다 그런데 그 病[병]에 걸린 靑年[청년]들은 그 罪[죄]를 그의 父兄[부형]된 者[자]에게만 돌리고 自己[자기]에게는 아모 責任[책임]이 업는 듯이 生覺[생각]합니다. 一邊[일변]으로 生覺[생각]하면 그도 그럴듯함니다만은 나는 父母[부모]의 責任[책임]보담도 그 男便[남편]된 者[자] [48]


의 責任[책임]이 더 重[중]한줄 알고 이제 離婚[이혼]하려는 여러 兄[형]님네ᄭힻ 한말삼 들이려 함니다 다 兄[형]님네여 - 兄[형]님네는 두삼 理由[이유]로 離婚[이혼]하려 함닛가!? 果然[과연] 兄[형]님네의 理由[이유]가 其妻[기처]의 無識[무식]함에 잇다하면 나는 兄[형]님네의 너무도 輕薄[경박]하고 너무도 無情[무정]함을 ᄭᅮ짓지 안이치 못하겠나이다 兄[형]님네여 兄[형]님네도 피잇고 눈물잇는 人生[인생]이거던 離婚[이혼]한 後[후]의 其妻[기처]의 情狀[정상]을 生覺[생각]할지어다.

사랑하는 父母[부모]와 ᄯᅡᆺ듯한 옛집을 離別[이별]하고 다만 男便[남편] 한아를 爲[위]하야 冷冷[냉랭]하고 生疎[생소]한 他家[타가]로 차자오지 안엇는가 그리하야 父母[부모]의 代身[대신], 親戚[친척]의 代身[대신]으로 其夫[기부]를 사랑하며 其夫[기부]를 밋지안는가!? 그려는 그 精誠[정성]을 冷然[냉연]히 물리치고 도로혀 그를 侮辱[모욕]하며 그를 逼迫[핍박]하면 그는 將次[장차] 어대로 가라함인가!? 處女[처녀]가 안이니 神聖[신성]한 男便[남편]은 不可望[불가망]이오, 知識[지식]이 업스니 新青年求婚[신청년구혼]은 萬無[만무]로다. 다만 차고찬 뷘 房[방]안에 외로운 눈물로 怨讎[원수]가튼 歲月[세월]을 보낼밧게 업지안으냐!! 여러분이 만일 이를 돌보지 안으면 賊子[적자]가 안이고 무엇인가!?

新思潮[신사조]와 新知識[신지식]은 地獄[지옥]의 紹介者[소개자]요 新人物[신인물]과 新生活[신생활]은 魔鬼[마귀]의 덩어리밧게 되지 못할 것이외다.

아 – 여러 兄[형]님네는 이 世上[세상]을 건지려하는 큰 目的[목적]을 가진 者[자]가 안이오닛가!?

날개를 펼쳐 萬里[만리]를 날며 손을 들어 天柱[천주]를 잡으려는 그 사람을 건지려하는 여러분이여 무삼 面目[면목]으로 사람을 바리려 하나잇가!? 其妻[기처]가 弱[약]하거던 强[강]하게 하며 無識[무식]하거든 有識[유식]하게 하며 德[덕]이 업거든 德[덕]잇게 할지어다. 諄[순]히 갈아치며 孜孜[자자]히 引導[인도]하면 안되는 일이 업나이다.

그러면 新家庭[신가정]도 建設[건설]할 슈 잇스며 神聖[신성]한 子孫[자손]도 얻을 슈 잇스리이다.

여러분이 萬一[만일] 사람 한아도 건질 勇氣[용기]가 업다하면 社會貢獻[사회공헌]이니 무엇이니 다 巧言妄言[교언망언]에 지나지 못함이 自白[자백]되는 날이올시다. 兄[형]님네가 만일 其妻[기처]를 바린다 하면 兄[형]님네도 함ᄭᅦ 바리우는 그날이올시다. 操心[조심]하시옵쇼서

새로 結婚[결혼]하는 者[자]는 새 方式[방식]으로, 임이 結婚[결혼]한 者[자]는 가라침으로 다 함ᄭᅴ 어ᄭᅢ를 맛걸고 平和曲[평화곡]을 불으며 光明[광명]한 길을 차자 文明[문명]의 나라로 거름거름 나아갑시다(ᄭᅳᆺ)

一九二○, 一一, 一八 [1920년 11월 18일]


【評】 나 亦同感[역동감]이다. 이 論文[논문]은 其題目[기제목]부터 조타. 이 問題[문제]는 我社會當面[아사회당면]의 問題中[문제중]에 하나이다 君亦[군역]이와 갓치 ᄭᅢ다른바 恒常[항상]이 主義宣傳[주의선전]를 願[원]하며 몸소삼가 [50]

기를 바라노라

성경의 '셋(Seth)'과 이집트 신 '세트(Seth)', 과연 관련이 있을까?

9월 28, 2026

영어 성경을 읽다 보면 아담의 세 번째 아들 '셋(Seth)'과 이집트의 신 '세트(Seth)'의 스펠링이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오랜 노예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문이 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이름은 언어의 뿌리와 의미가 완전히 다른 '우연의 일치'다.

1. 어원과 본래 발음의 차이

성경의 '셋'은 원래 히브리어로 '셰트(Sheth)'다. 이는 '놓다', '지정하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파생되었으며, 가인에게 아벨을 잃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대신 지정해주신 씨"라는 구속사적인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반면, 이집트의 신은 고대 이집트어로 '세트(Set)' 또는 '수테크(Sutekh)'로 발음되었다. 사막, 폭풍, 혼돈, 파괴를 상징하는 악신이다.

이 두 이름이 같아진 이유는 번역 과정에 있다. 히브리어 '셰트'가 헬라어 성경을 거쳐 영어로 번역되고, 서구 학자들이 이집트 신을 영어로 표기할 때 끝에 'h'를 붙여 'Seth'로 적으면서 스펠링이 겹치게 된 것이다.

2. 정반대의 캐릭터 특성

만약 이스라엘이 이집트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면 캐릭터의 성격도 비슷해야 하지만, 둘은 완전히 정반대다.

성경의 셋은 타락한 가인의 족보를 벗어나 노아와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의로운 믿음의 족보'를 시작하는 경건한 인물이다.

반면 이집트의 세트는 형인 오시리스를 질투해 죽이고 시신을 훼손한 악과 혼돈의 신이다. 오히려 성경 속 인물과 비교하자면 셋보다는 동생을 시기해 죽인 '가인(Cain)'과 그 성격이 일치한다.

3. 성경 속에 남은 실제 이집트의 흔적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성경 곳곳에는 이집트 문화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모세(Moses)'나 제사장 '비느하스(Phinehas)' 같은 이름은 전형적인 이집트식 이름이다. 또한,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한 사건은 이집트의 황소 신(아피스) 숭배 문화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역사적 결과물이다.

결론

이스라엘이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의 아들 '셋'의 이름만큼은 이집트 신화와 무관한 고유의 히브리식 이름이다. 두 이름의 유사성은 서로 다른 두 언어가 영어로 번역되면서 만들어낸 흥미로운 해프닝이다.

[김상근 목사의 역사와 성서읽기 4] 평화의 집을 짓는 꿈 - 목차

9월 21, 2026

평화의 집을 짓는 꿈

- 지성과 실천사


해당 글의 제목을 클릭하면 설교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머리글 / 5


일천구백구십일년(1991년)


일천구백구십이년(1992년)


일천구백구십삼년(1993년)


일천구백구십사년(1994년)


일천구백구십오년(1995년)


일천구백구십육년(1996년)


일천구백구십칠년(1997년)


일천구백구십팔년(1998년)


설교 – 언제나 자신 없는 것 / 321

김상근 목사 연보 / 329

편집 후기 / 334

[김상근 목사의 역사와 성서 읽기] 제3권, 제4권 - 편집 후기

9월 21, 2026

편집 후기


<김상근 목사의 역사와 성서 읽기>, 그 세 번째와 네 번째 책을 펴냅니다. 제3, 4권의 설교문들도 제1, 2권의 설교문처럼 모두 <역사와 성서 읽기>란 큰 흐름의 주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의 많은 설교 원고 가운데서 ‘역사적 사건과 마주서서’ 하나님께 뜻을 묻고, 그분의 음성을 좇아서 외친 설교문만을 선별하여 시대순으로 엮어 모았습니다.

첫 번째 책인 「새벽은 밤을 지샌 가슴에 온다」(1974년~1979년)는 김 목사님이 한국기독교 장로회 수도교회에 담임목사로 취임하신 때부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하시기까지 선포한 설교문을 모은 것이고, 두 번째 책인 「땅과 하나 되는 하늘」(1980년~1984년)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이사로 활동하면서 수도교회를 사임하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무로 일하시던 때 ‘그 시대적 상황과 대결한 설교문’들을 모은 것으로서 제1, 2권 모두 2000년 6월에 펴내었습니다.

이제 세 번째 책인 「믿음은 행동이다」(1983년~1990년, 기장총회 총무 재임시 설교)와 네 번째 책인 「평화의 집을 짓는 꿈」(1991년~1998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육원장 취임부터 대한기독교서회 대표이사 취임까지의 설교)을 엮어 펴냅니다.

이로써 우리는 지난 2006년 10월, 기장 서울노회 시무목사직에서 은퇴하신 김 목사님의 32년 동안의 사역을 정리하고 기억하면서,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민족과 세계를 위한 목사님의 헌신에 조금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6번 대통령이 바뀌었습니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세상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해 전력을 다해 오신 목사님의 32년간의 에큐메니칼 여정’은 이제 ‘역사’가 될 것입니다. 교회 사역으로부터는 은퇴하셨지만 ‘에큐메니칼 여정’은 지속될 것입니다. 이 책들이 오랜 기간 동안의 교회 사역을 마무리하신 김 목사님과 가족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출간하는 두 권의 책도 앞선 두 권의 책과 마찬가지의 편집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설교가 시작되는 부분에서는 김 목사님이 <회상 노트>를 기록함으로써 ‘말씀의 선포가 결코 시대 문제와 분리될 수 없으며, 역사가 왜 말씀의 선포가 되고, 말씀의 선포가 어떻게 역사가 되는지’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각 편의 설교는 설교가 선포된 때와 장소, 그리고 성서 텍스트에 이어 ‘말씀을 향한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청중이 처한, 아니 설교자 스스로 처한 역사적 상황에서부터 말씀을 향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동안 김 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받던 후배들, 특히 지성과 실천사의 이종명 사장의 헌신적인 노력에 엮은이들의 마음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이종명 사장의 애정과 꼼꼼한 작업을 힘입어 이 두 권의 책을 출간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설교문들이 읽혀지고 선포되는 곳마다 ‘믿음이 행동이 되고’, ‘평화의 집을 짓는 꿈’이 실현되어 전적으로 새로운 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로 가르치신 그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2007년 5월

이 책을 엮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채수일 씀


이 책을 엮은 사람들

윤길수 김경남 채수일 임흥기 유원규 성해용 권오성

정지강 윤응진 나핵집 김종수 정진우 이종명

김상근 목사 연보(年譜)

9월 21, 2026

1939년

  • 10월 22일(양)에 전라북도 군산(群山)에서 김한준(金漢俊) 씨와 신영춘(辛泳春) 씨의 3남 중 차남, 6남매 중 다섯째로 출생

1946년

  • 3월 군산초등학교 입학

1950년

  • 6ㆍ25 한국전쟁 중 부친, 북의 정치보위부에 체포
  • 10월 말, 총살당한 부친 주검 찾음. 추도일을 9ㆍ28 수복 전 날로 정함

1952년

  • 2월 군산초등학교 졸업
  • 3월 군산중학교 입학

1955년

  • 3월 군산고등학교 입학

1956년

  • 군산복음교회에서 윤치병(尹恥柄) 목사에게 세례 받음

1958년

  • 2월 군산고등학교 졸업

1959년

  • 3월 장공(長空) 김재준(金在俊) 목사가 학장이었던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 전신) 입학

1963년

  • 2월 한국신학대학 졸업

1966년

  • 3월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입학

1967년

  • 5월 구경자(丘慶子)와 결혼

1968년

  • 9월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 10월 문동환(文東煥) 목사(당시 한국신학대학 교수)가 담임하고 있던 한국기독교장로회 수도교회 전도사로 부임

1969년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KNCC라 함) 평신도위원회 위원으로 교회일치운동의 첫걸음을 내딛음
  • 아들 형준(炯駿) 낳음
  • 수도교회는 교회로서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최초의 집단행동을 함. ‘3선 개헌’에 대해 토론하고 반대하기로 뜻을 모았으며, 성명서를 작성한 후 한국 교회 초유로 예배시간에 낭독하고 채택함

1971년

  • 딸 수미(秀渼)를 낳음
  • 11월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수도교회 부목사 부임

1973년

  • 12월 각 교파 소장 목사들과 유신체제 반대성명을 발표, 서울복음교회에서 사회문제와 관련한 한국 교회의 첫 단식기도 시작

1974년 

  • 수도교회 담임목사 취임
  •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목요기도회”를 동료 목사들과 함께 시작
  • 10월 KNCC 인권위원회 준비위원회 서기 피선임

1975년

  • 9월 17일 위 후원회 창립, 서기 피선임. 1979년까지 4년 동안 후원회 차원에서 인권위원회 활동에 참여

1978년

  • KNCC 제3기 인권위원회 위원. 이후 4ㆍ5ㆍ8ㆍ10기 위원, 6ㆍ7기 부위원장, 11기 위원장 등 18년 동안 인권위원회 활동

1979년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설립 이사, 부이사장

1980년 

  • KNCC 인권위원회 후원회 회장

1982년 

  • 수도교회 담임목사 사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무 취임(~1990년)
  • KNCC 실행위원 20년(1982~1991, 1995~2006년)
  • 한국기독교장로회 유지재단 상임이사(~1990년)

1984년

  • 11월 KNCC 광주사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1985년

  • KNCC 시국대책위원회 서기(1985~1988년), 위원장(1989~1990년)

1986년 

  • KNCC 고문 및 폭력 대책위원회 위원장(~1987년)
  • 2월 KBS-TV 시청료거부 기독교범국민운동본부 부위원장
  • 민주헌법실현 기독교추진위원회 집행위원회 위원장

1987년 

  • 민주헌법쟁취를 위한 국민운동본부 실행위원으로 “6월민주항쟁”에 참여
  • 『1980년대 민주화운동』 전2권을 KNCC 광주사태 진상조사위원회 진상조사보고로 최초 발간
  • (재)기독교방송 기능정상화 대책위원회 집행위원회 서기

1988년 

  • KNCC 통일교문제 연구위원회 위원장(~1989년)
  •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 이사장(~1993년)
  • (사)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 총무, 재정이사
  • 언론바로세우기 시청자연대회의 회장

1989년 

  • 언론개혁 시민연합 공동대표
  • 국민을 위한 위성방송 추진위원회 상임대표

1990년

  •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육원 원장(~1997년)

1991년 

  • KNCC 정책연구위원회 위원장
  • KNCC 언론대책위원회 위원장(~1993년)
  • 한국기독교연합회관운영이사회 이사, 이사장(1999~2001년)

1992년 

  • 남북언론문화연구원 부이사장
  • ㈜새누리신문 이사

1993년 

  • 통일시대국민회의 상임공동대표
  • 민족의 평화와통일을 위한종교인협의회 공동대표, 고문

1994년 

  • KNCC 인권위원회 위원장
  • 3월 5ㆍ18 진상규명과 항쟁정신계승 국민위원회 상임공동대표
  • 5월 13일 전두환, 노태우 등 35명을 서울중앙지검에 내란죄로 고발 294명의 고발자 대표, 고발자 피심문 받음
  • (재)시민방송 상임고문
  • (재)아우내재단 이사, 이사장(2002~2003년)

1995년 

  • 한국인권단체협의회 회장(~1996년)

1996년 

  •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
  • KNCC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1997년)
  • 12월 5ㆍ18 완전해결과 정의실현ㆍ희망을 위한 과거청산 국민위원회 상임대표
  • 5ㆍ18기념재단의 ‘윤상원상’ 수상

1997년

  • 겨레사랑북녘동포돕기 범국민운동 상임공동대표
  •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 공동대표
  •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육원 원장 사임.

1998년

  • (사)통일맞이 이사
  • (재)대한기독교서회 대표이사, 사장(~2001년)
  • KNCC 통일위원회 위원장
  • 학교법인 푸른꿈학원 이사장(~2000년)
  • (사)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고문

1999년 

  • (재)기독교방송(CBS) 발전위원회 위원장(~2000년 7월)
  • (재)기독교방송(CBS) 재단이사회 이사(~2005년 6월)
  • 3월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기획단장
  • 대통령 직속 방송개혁위원회 위원(~2000년)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2005년)
  • ‘자랑스런 군중ㆍ고인상’ 대상 수상

2000년 

  •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2003년)
  • (사)국민방송이사장
  • 한국디지털위성방송(Skylife) 이사회 의장(~2004년)

2001년

  •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위원장(2002~2003년)
  •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

2002년

  • KNCC 교회일치위원회 위원장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2004년), 후원회 회장
  • 운산 김관석 목사 기념 에큐메니칼 강좌 운영위원회 위원장
  • (재)기독교방송 재단이사회 부이사장(~2003년 1월)
  • 한국 교회 일치와 연합을 위한 18인 위원회 KNCC측 대표

2003년

  • 한국투명성기구(국제투명성기구 한국지부) 회장(~2006년), 고문
  • 2월 국민훈장 모란장 수장
  • 8월 ‘참여정부’ 출범 후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해체를 스스로 결의한 후 퇴임

2004년

  • (사)6월민주항쟁 계승사업회 대표이사장
  • 이우정 평화상운영위원회 위원
  • 법무부 감찰위원회 위원장
  • KNCC 부회장(~2005년)

2005년

  • 6ㆍ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겸 운영위원(~2006년)
  • (사)고령화사회희망재단 대표이사
  • 한국민주주의 전당 건립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발전과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
  • (사)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대표 이사장

2006년 

  • 6월민주항쟁 20년사업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
  • 남북 수해극복 특별위원회 위원장
  • 10월 목사 은퇴(서울노회)
  • 11월 KNCC 제55회 총회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발전과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의 안을 상정, 처리된 후 37년간의 한국 교회 일치운동에서 은퇴를 선언
  • 12월 15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설교 - 언제나 자신 없는것

9월 21, 2026

설교 - 언제나 자신 없는것

- “나의 설교 분석”, 「세계와 선교」 제141호(1993.12) -














1. 설교 – 언제나 자신 없는 것

내 설교를 나더러 분석하란다. 제 설교를 제가 분석하는 작업이란 도대체 어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구태여 이렇다, 저렇다 분석한다 해도 그것이 어디 객관성이 있을까? 또 제 깐에는 자기 설교가 괜찮다고, 혹은 최상의 수준이라 자평하고 있다 한들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그 반대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 설교가 참으로 형편없다고 스스로 심각하게 평가한다면 그것은 목사 생명을 끝내야 하겠기 때문이다. 또 그렇다하여 설교자로서의 혀를 잘라 버릴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의 선배나 후배들 중에는 내 설교를 묶어 책으로 펴내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제의가 있다는 것은, 솔직하게 말한다면, 내 설교가 그런 대로 괜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래 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라도 가져본 적이 없다. 책은 무슨 책이냐? 말로는 넘어갈 수 있지만 문자화하여 부끄러운 몰골을 두고두고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자제한다. 그렇게 많이 설교하고도, 또 설교할 자리를 사양하지 않고 선뜻 선뜻 나서면서도 언제나 자신이 없는 것이 설교다.

이런 말이, 설교집을 펴내는 것을 매도하는 의도로 들려지지 않아야 한다. 말로 하는 설교가 설교인 것처럼 글로 하는 설교도 설교다. 따라서 설교집을 내는 것도 설교의 한 형태다. 그러나 말로 하는 설교는 지나가 버릴 수 있지만 글로 하는 설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나는 자신이 없다는 설명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여간 나는 내 설교에 대해서 항상 부족감을 느끼고 있다. 오래 지난 원고를 들여다보면 부끄러워지기만 한다.

2. 초기 설교자평

1) 한 주간 걸린 준비

그러니까 교인들을 상대로 설교하기 시작한 것이 1970년이었다. 설교는, 한 주제로 묶어서 3-4회 계속했다. 연속 설교다. 나의 앞 설교자이셨던 문동환 목사님이 만드신 틀이다. 수도교회는 지금도 그런 식으로 설교하고 있다.

어떤 주제를 설정할 것이냐 하는 것을 고민하고 정하면 한 달 정도의 방향이 잡히게 된다. 방향이 잡혔으니 편안할 수 있을 것인데도, 주일이 지나면 서둘러 곧바로 월요일부터 다음 설교 준비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그랬다. 월요일에 시작한 준비는, 주일 새벽에 비로소 미완성 원고로 끝내지곤 했다. 일주일 내내 매달린 것이다. 한참 익숙해진 후에는 목요일 아침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금요일이 되면 쓰기 시작한다. 토요일에도 계속 쓴다. 주일 새벽 1시쯤까지 쓴다. 잠깐 자고 5시나 6시에 일어나 또 쓴다. 개작을 하는 것이다. 마음은 급하지만 잘 안된다. 이제는 더 고치고 말고 할 시간이 없어서 그만둔다. 원고지 2백 쪽쯤 쓴 것인가? 물론 아니다. 고작 사십 쪽을 쓰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

왜 그랬을까? 우선, 문동환 목사님이 설교하셨던 그 자리와 그 대상을 그대로 물려받은 중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 목사님보다 더 훌륭한 설교를 할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들어줄 만한 설교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것은 내게 큰 보약이었다. 그러나 힘들었다. 굉장히 힘들었다. 전도사로, 부목사로 목사님을 보필할 때,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 적도 없지는 않았다. 설교하고 싶은 충동 속에 빠진 적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막상 강단을 맡고 보니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어렵고 또 어려웠다.

2) 자신이 일차 대상

앞서 말한 것처럼 1970년 초에 설교를 시작했다. 군사 독재가 본격화될 때였고 경제 제일주의 정책으로 인한 인권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설교의 대상은 수도교회 교인들이었다. 물론 이런 저런 특별한 기도회, 이른바 시국 기도회의 설교도 간간이 맡았다.

그때, 나의 설교는 그 시대를 사는 젊은 성직자의 진솔한 신앙고백들이었다. 교인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교의 원리 따위는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마구 쏟아 놓았다. 그랬다. 마구였다. 놀라거나 말거나, 당황하거나 말거나 기독교는 이것이라고 마구 쏟아 뱉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회중을 향한,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나를 향한 것이었다. 내게 하는 설교였다. 내 손에 예수의 수갑을 채우는 것이었다. 내 발에 예수의 족쇄를 채우는 것이었다. 내 가슴을 예수의 불 인두로 지져대는 것이었다. 설교할 때 자주 손에 쥐가 나곤 했다.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도 느끼곤 했다. 그만큼 설교에 온 열정을 쏟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 설교를 들어준 교인들이 고맙고 훌륭하다.

설교의 대상은 일차적으로 설교자였다. 이것을 굳이 잘못되었다고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교자에게 설교할 때 회중들은 은혜를 받는다. 설교자의 진실과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3. 요새 설교 자평

1) 긴 기도 짧은 작업

나도, 이제 4반세기 동안 설교를 하여 왔기에 초기와는 퍽 다른 모양의 설교자로 변했다. 실제 쓰는 시간은 약 3시간 정도다. 목, 금, 토, 주일 새벽까지 쓰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도가 튼 것인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생각하는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줄어들지 않았다. 오래 생각한다. 길을 걸을 때나 차를 타고 이동할 때나 누구와 대화할 때나 맡은 설교를 생각하고 연관시킨다.

어떤 영상이 떠오르면, 어디서나 즉시 간단하게 메모한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성서 본문이 정해지면 일단 주석서들을 훑어본다. 빗나가는 해석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른 참고서들도 뒤적여 본다. 이 모든 것이 설교를 위한 기도다. 3시간 정도면 설교 한 편을 쓴다 하지만 실제로는 34일 걸리는 것이다. 다만 쓰는 시간이 줄어든 것일 뿐이다. 그만큼 사전 정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른바 큰 집회의 설교는 1개월 이상 걸려 준비하기도 한다. 설교를 위한 기도(=준비)는 길게 하고 쓰는 작업은 될수록 시간을 줄인다.

2) 상황에서 성서로

나는 언제나 상황에서 출발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재해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성서에서 출발하여 성서로 말해야 한다는 주장이있다. 이른바 텍스트(text)에서 컨텍스트(context)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컨텍스트를 먼저 파악한다. 설교를 듣고자 하는, 듣게 되어 있는 저들의 상황과 조건과 실존이 어떤 것인가를 깊이 통찰한다. 한 교회면 그것이 교회의 현재 상황이 될 것이다. 역사적 상황을 생각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교인들의 비교적 공통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한다면, 설교를 듣게 될 저들의 진실된 기도가 무엇일까 하는 것을 먼저 간파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파악해 내는 것이 설교자의 기도다. 그들을 내 가슴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저들의 문제가 내 문제로 되어야 한다. 저들의 고통이 내 고통이 되어야 한다. 설교자의 인카네이션(incarnation)이다. 설교를 듣게 될 저들의 자리에서 성서 본문을 택한다. 비로소 텍스트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의 말씀이거나 신약성서의 서신이거나 구약성서의 어떤 성서이거나 거의 특수한 컨텍스트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닌가? 그 삶의 상황으로 가야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러한 상황에 주신 말씀이 들리게 된다는 뜻이다. 컨텍스트를 무시한 설교 본문의 선택은 교리 강해나 일반적 교훈을 말하는 수준에 머문다. 결국 부딪침이 없는 설교가 되고 말 것이다. 예수의 설교는 교리 강해가 아니다. 보편적이고 무색무취한 것이 아니다. 거기, 바로 거기에서 불꽃을 튀기는 가르침이다. 컨텍스트와의 충돌이요 증진이다. 그런데도 영원성을 지닌다. 설교 본문은 상황—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요 가르침이다.

3) 상황적 출발의 위험과 극복

컨텍스트에 주시는 말씀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성서에 대한 광범한 지식과 바른 인식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성서 66권을 꿰차기 위해서 노력한다. 나는 물론, 성서를 여러 번 독파했다. 지금은 마치 독경하듯이 고지식하게 읽어 내려가지 않는다. 눈으로 속독한다.

그래도 회상이 가능하다. 걸리는 부분은 정독한다. 이 일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물론 바른 인식을 위해서 신학적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신간 서적을 읽기도 하고 학자들의 강의를 듣기도 한다.

여기에 문제가 없지 않다. 성서 본문이 편향적으로 선택되기 때문이다. 하다 보면 복음서를 선호하고 있다든지 예언서를 자주 택하게 된다. 반면에 잠언서 같은 성서를 택하게 되지 않는다. 디도서, 빌레몬서, 유다서 등도 여간해서 내 설교 본문이 되지 않는다. 구태여 상황을 고려할 수 없는 평범한 설교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될 수 있는 대로 잠언서 등을 택한다. 그러나 꾸준하게 내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편식이 강요된다. 어떻게 해야 성서 66권을 고르게 설교 본문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큰 과제다. 고르게 선택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성서일과에 준거한 설교를 하자는 경향에 상충한다. 성서 일과를 따르는 설교는 큰 의의를 갖는다. 긍정적인 면이 크다. 그러나 상황에서 성서로 가는 경우 성서일과를 좇지 못한다. 상황에서 성서로 가되 성서일과와 발맞추는 설교의 일치를 이루어낼 수 없을까? 내게 숙제다. 설교의 상당한 수준에 이르면 성서일과에 준하면서도 컨텍스트와의 대화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이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4. 설교 작성 실제상의 몇 가지 유의

1) 우선 쓴다.

준비가 다 되었거나 훨씬 부족하거나 쓰기 시작해야 할 시점에 이르면 우선 쓴다. 더 많은 자료를 찾다가 결국에는 시간에 쫓겨 준비해 놓은 자료조차 사용하지 못했던 경험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우선 쓴다. 쓰는 동안, 시작할 때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영감이 온다. 완성하고 보면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설교가 창작되는 것을 경험한다. 머뭇거리고 무엇을 찾고 메모하고 그러다가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시간이 되면 나는 우선 쓰고 본다.

2) 욕심을 버리고 초점을 좁힌다.

초벌 원고는 언제나 길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찾은 메시지도 여러 개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한 설교에서 다해야 훌륭한 설교를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 것을 다 듣지 못한다는 진리를 내게 몇 번이고 다진다.

줄이자. 더 줄이자. 흔히 사용하는 첫째, 둘째, 셋째도 많다. 하나의 테마면 족하다. 하나도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하면서 둘, 셋까지 가려는 유혹을 억제하곤 한다.

돌이켜 보면, 나의 초기 설교는 제법 방대했다. 그 본문에 담긴 모든 메시지를 다 캐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설교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다음 날 또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한 설교에 한 초점만 잡는다. 가능하면 그렇게 한다. 초점을 좁히려고 노력한다. 아쉽지만 그렇게 한다.

3) 예화는 피한다.

설교를 쉽게 하는 길은 예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본문의 메시지나 그 상황에 대한 설교로서의 적절한 예화란 흔할 수 없다. 주관적이고 허구적인 것이 더 많다. 성서의 말씀이 흔히 사용되는 예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내 소신이다. 그래서 나는 예화를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적절한 예화를 찾느라고 노력한다. 소설이나 수기를 틈나는 대로 읽는다. 이 부분은 내 아내의 도움에 많이 의존한다. 이야기로 듣고 무언가 잡히면 직접 읽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앞뒤는 듣고 연결되는 바로 그 대목만 직접 읽는다. 딱 들어맞는 예화는 어김없이 동원한다. 역시 은혜가 된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고 예화를 남발하지는 않는다.

4) 혼을 담는다.

논리를 전개해야 편안하다. 그래서 무슨 논문 쓰듯 하게 된다. 그래야 논리가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를 듣고자 하는 것이지 학술 강연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주석의 과정, 본문 비평을 그대로 설교에서 말하는 것은 제 만족을 위한 것일 뿐 회중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본문의 혼을 찾아서 그것을 설교에 어떻게 담아 내느냐 하는 것을 고민한다. 원고를 읽어보고 또 읽어보면서 혼이 있는가를 점검한다. 아니, 제게 혼으로 부딪혀 와야 한다. 솜털이 일어나고 머리칼이 쭈뼛이 서는가를 확인한다.

5) 짧은 문장을 쓴다.

물론 설교의 시작 부분이나 본론 부분은 설명식이 아니 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설교를 그렇게 쓰지는 않는다. 설명식이라 하더라도 이야기식으로 진행시킨다. 웅변조로 하는 것이나 선교사의 짧은 한국말 투를 흉내내는 것은 구역질이 난다. 자연스러운 이야기식 분위기를 선호한다. 그것도 장황하게 긴 것을 피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단문, 짧은 문장으로 쓴다. 그것이 힘이 있기 때문이다.

가슴에 꽂아야 하는 부분은 물론 결론 부분이다. 나는 언제나 결론 부분은 단문으로 처리한다. 단문은 예리하다. 파고드는 힘이 있다. 가슴을 움직이게 한다. 단문—단문—단문…으로 결론 부분을 손질한다.

6) 회중의 입장에서 마지막 손질을 한다.

어쨌거나 설교 원고가 다 되었다. 마지막 손질을, 이 설교를 듣게 될 회중의 입장에서 한다. 회중의 반응은 어떠할 것이며 그것은 적절하고 필요한 반응일까? 이 부분은 회중을 위해 쓴 것인가 아니면 내 양에 차지 않아 보탠 것인가? 회중의 상황, 기도, 조건에 다시 맞춘다. 회중의 가슴에 감격이 일어날 것인가를 가늠해 본다. ‘아멘!’ 이 울려질 것인가를 예측해 본다. 회중의 영혼 속에 일어나야 할 갈등을 일으킬 수 있을까를 점검한다.

설교자의 일차적인 대상이 설교자 자신이어야 한다면서도, 설교는 역시 회중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공 김재준 저작전집(전5권)에 대한 서평 - 이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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