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까지
사도행전 1장 8절 / 1983년 9월 11일 / 수도교회
[말씀을 향한 물음]
우리는 예수의 증인인가? 부활하신 예수를 어떻게 증언하고 있는가? 세상은 우리를 예수의 증인이라 하는가? 아니면 세속의 증인이라 하는가?
[슬라이드]
[설교 전문]
내가 금번 주제의 증언을 드리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여러분과 나는 평소 생각하는 것을 서로 이해하고 돕고 기도하는 신앙고백의 차원에서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해 왔다. 내가 수도교회에서 어떤 방향의 목회를 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이해를 가졌었다. 나는 또 여러분의 사정과 여러분의 기대가 무엇인가를 간파하려고 애썼다. 그럼으로 생긴 신앙고백과 기대를 띠로 해서 우리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내가 총회로 간 후에는 여러분을 만날 기회를 만들지 못하여 대화가 뜸해지게 되니 자연히 내가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가를 여러분이 알 수가 없게 되었다. 나와 뜻을 함께 하면서 돕고 기도할 여지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 내가 여러분의 형편과 기대를 깊이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우리가 뜻에서, 신앙고백에서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금번 증언을 드리는 첫째 이유다.
9월 26일부터 제68회 총회의 위원회가 열리고 27일 오후 2시에 개회예배를 드림으로써 30일까지의 총회가 시작되게 되어 있다. 총회에서 는 큰 안건들이 처리되고 강연과 토의가 진행되지만, 총회에 가지 않는 분은 그 내용은 물론 방향조차 알 수가 없다.
특히 올해는 우리가 예장으로부터 ‘새 역사’를 선언하고 새 출발을 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이때에 ‘우리를 한국기독교장로회로 따로 불러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러한 시도를 전국 교회가 함께 하는 길이 없을까? 또 총회 기간 중에 ‘새 역사 30년’ 기념 강연이 있게 되고, 기념 예배 등이 드려지는데 이것 역시 총대들만이 참석하게 된다. 다른 분은 그러한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이 통례였다. 그래서 금번 총회의 방향과 결단을 전국 교회가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오늘부터 각 교회가 장식을 하고 같은 내용의 설교를 하도록 준비했다. 이에 우리도 맞추어 나가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여하간 나의 기도와 노력은 이런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기장과 한국 교회가 민중을 떠나지 않고 민중과 연대 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민중과 함께 사는 교회가 되도록 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교회, 특히 기장으로 하여금 민족사와 떨어져 있지 않고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며 민족을 위하여 일하게 할 것인가? 민족을 위해 일하는 교회가 되도록 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 점 역시 우리 교회에서는 수없이 증언된 점이지만 지금 우리 교단과 한국 교회 앞에 이러한 방향을 던져 놓고 있다. 여기에 대하여는 “민족을 위하여”라는 제목에서 증언을 드렸다. 내가 수도교회에서 증언하고 고백하던 바로 그것을 총회 차원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증언하고자 하는 것은 세 번째 제목인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님의 증인이 된다고 말하면 일차적으로 그것은 ‘전도’라고 생각하게 된다. 부활의 예수를 믿게 하는 행위다. 이것도 중요하다. 우리 교단의 경우 이 점이 매우 약하다. 그러나 우리도 지금 막 1천 교회를 넘어섰다. 1975년에 738개 교회였고 지금 1,042개 교회다. 약 8년 사이에 304개 교회, 1년에 38개 교회가 늘어난 셈이다. 이것도 전도의 큰 실적이다. 그러나 다른 교단에 비하면 이 점이 너무 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 교회는 30년이 지나는 동안 또 다른 교회 하나 세우지 못했다. 교인이 늘어나는 것도 거북이 걸음이다. 그러나 늘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저번 교회에는 의자가 22개 있었다. 5명씩 앉으면 110석이고 6명씩 좁혀 앉아도 132석이다. 지금은 좌석이 2배로 늘어났다. 하여간 우리가 예수 믿자는 말 한 번 못해 보았으며, 이것이 결코 잘한 것이 아닌 점도 확실하다. 이 단순한 증인 행위에 대하여 우리 각자가 각별한 각성을 해야 할 줄 안다. 우리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 믿게 할까 하는 단순 증인의 역할을 다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부탁한다.
그런데 과연 주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이것으로 족한 것인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제자들 앞에서 사라지셨다. 이것을 하늘로 올리어 가셨다고 했다. 승천하신 장면이 오늘 신약성서 본문이다. 이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증인’이다.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부활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인이 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사도행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이 죽인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처음 그리스도인이란 ‘부활한 예수’에 대한 증인들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전도의 차원, 교회에 다니지 않던 사람을 교회에 다니게 한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죄인이라 죽였는데 하나님 이 그를 살리셨다면 죽인 바로 그들이 죄인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바로 그들이 죄인이라고 하는 주장은, 그 사회에서는 권력자에게 도전하는 것이요 당시의 모든 기존의 가치에 저항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위험했다. 실제로 그들은 목숨을 내놓고 예수의 증인이 되었던 것이다. 사도행전에는 이러한 증언을 하다가 체포된 기록, 구속된 기록, 잔혹 행위를 당한 기록들로 차 있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처음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이 살고 있던 당시 사회에서는 “너희가 죽인 예수가 부활했다”, “우리는 그 부활의 증인이다”라고만 말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가 분명했다. 그런데 이 증언은 시대가 지나면서 점점 우리의 생활과 깊은 관련을 갖는 차원에서 해석되어야만 그 본래의 뜻이 살아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우리가 만약 부활하신 예수의 증인이라면 그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하는 해설적인 증인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종교적 교리 주장 이상 아무 것도 될 수 없다. 죽었던 사람이 단순히 살아났다고만 증언한다면 그렇게 위험한 일이 되지는 않는다. 그저 하나의 기적으로 돌릴 수 있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을 오늘의 시대에 아무 해석 없이 말하는 것은 적에게 도전할 때 그가 무서워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웃으면서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산다고 할 때는 거기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왜냐하면 세상은 예수를 죽일 수밖에 없을 만큼 예수와 어울릴 수가 없다. 가치와 의식, 생각과 행위가 세속적인 것의 본질과 전연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단순히 교리로서만 전하는 증인을 넘어야 예수의 증인이 된다. 예수가 부활하신 사실을 삶의 모든 차원에서 해석하여야 한다. 예수가 죽음에 지지 않고 부활하였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의 생활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증언해야 한다.
모두가 예수와는 반대되는 생활을 한다. 그것이 세속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이기고, 예수는 죽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처럼 사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증언한다는 것은 예수의 삶처럼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생각, 그의 가치관, 그의 행위로 우리 공동체를 다시 형성하는 거기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예수의 증인, 부활한 예수의 증인이 되는 일이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며 산 위에 세워진 성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다.
또한 삶의 모든 차원에서 예수가 부활의 주로서 증거되어야 한다. 가정생활에서도, 직장에서도, 경제, 사회, 정치, 도덕, 윤리 할 것 없이 모든 삶의 차원에서 부활하신 예수가 증거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냥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삶의 본, 스타일, 예수의 고백과 내용, 예수의 가치관이 우리의 삶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교회는 이 점을 그동안 강조해 왔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것이 땅 끝까지 이르러 부활한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하는 것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
예수의 삶을 본받아 특별하게 살 수 있다 해도 이 세상에서 나만 그렇게 산다는 것이 도무지 쑥스럽고 거북하다. 남의 이목에 끌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 살게 한다. 또 그렇게 살다가 손해도 보게 된다. 악착스럽게 살아도 처지는 세상에서 손해를 보아 가며 산다는 것, 물질적으로 말한다면 모으고 모아도 어려운 세상에서 모두 함께 사는 것을 지향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 땅의 삶에 어울리지 않는다. 부활하신 예수의 삶을 우리의 가슴 깊은 데서부터 스스로 거부하는 의지조차 강하다. 그렇게 삶으로 증거하려는 나와 그렇게 살 필요없지 않느냐는 나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부정하는 내가 긍정하려는 나를 압도한다.
어떻게 땅 끝까지 이르러 부활한 예수의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경우에 따라서는 세상의 권력자와 충돌하게도 된다. 시련이 오고 고난이 몰아친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에까지 이른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거의 실현성이 없다. 그 뒤끝은 나만 손해라는 명백한 결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련과 고난, 충돌을 피하는 것이 오히려 예수 증인의 지혜라고까지 믿게 되고, 악한 경우라도 충돌보다는 협력의 길을 택하게 된다. 우리의 경험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증인 생활은 어렵기만 하다.
어떻게 땅 끝까지 이르러 부활의 주님, 그의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전도 행위에 머무는 단순한 증인에서부터 삶의 모든 차원에서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부활하신 예수를 증언할 말도 있고 논리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논쟁을 하면 결코 지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 증인 행위인 전도도 못하고 있다. 더구나 해설적 삶의 증인의 길은 우리에게 멀기만 한 것이 아닌가? 우리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왜인가? 힘이 없는 것이다. 전도할 힘이 없다. 삶으로 증언할 힘이 없다.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한 예수의 미래의 기대에 부응할 힘이 없다. 이 사실을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왜 힘이 없나? 왜 무력한가?
증인이 되는 힘은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간적인 결단으로 생길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라고 한 말씀에 답이 있다. 힘이 없고 권능이 없는 것은 성령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의 충동을 억제할 만큼 내 의지가 더 강하다. 성령의 충동보다 내 편의와 안일, 내 체면과 인간적 체면을 더 크게 여긴다. 성령의 요청보다 나의 이익이 앞선다. 이렇게 해서는 성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 성령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행동적 증인의 역할은 물론 단순한 증인 노릇도 어렵다.
땅 끝까지 이르러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을 촉구하는 이 시간에 나는 여러분이 생 전체를 통하여 혹은 생의 순간순간, 성령에게 여러분 자신을 개방시키기를 촉구한다.
성령의 지시에 귀를 먼저 기울이기를 촉구한다.
여기 지금 성령의 요청이 무엇인가를 식별하고 그에 순복하게 되기를 촉구한다.
그리하면 힘이 생길 것이다. 권능이 생길 것이다. 부활의 영광스런 증인이 될 것이다.
[회상 노트]
미국으로 추방당한 김대중 선생은 매일 같이 강연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김영삼 총재는 단식으로 연금에 항의했다. 부산 미 문화원에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국의 학원 사찰은 노골적이고 대담해졌다. 급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80년 광주의 학살이 부메랑이 되어 이제는 군부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때 우리들은 민족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시작했다.
서울의 송암교회에 경찰이 난입한 사건도 발생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 서울연합회가 ‘6ㆍ3사태 19주년’을 기념하는 강연회를 열었다. 강연은 “한일협정 19년과 오늘의 한ㆍ일 관계”였다. 민족의 내일을 가늠해 보자는 것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나가는 청년들에게 경찰이 최루탄을 던지고 교회에 난입했다. 민족문제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당국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이런 와중에서 나는 9월에 있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를 준비해야 했다. 그해는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새 역사’를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새 역사 30년’ 기념 총회였다. 또 내가 준비하는 첫 총회였다. 기장이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한국 교회가 이 시대에 어떤 신앙을 고백해야 할 것인가? 총회 주제에 나의 고백을 담고자 했다.
“기장 - 민중과 함께, 민족을 위하여, 땅 끝까지”
온 총회가 이를 공유하게 되기를 갈망했다. 지(支)교회로 이어져 나가게 되기를 열망했다. 사실 총회가 어떤 고백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지교회가 이를 소화해 내지 못한다면 별 소용이 없게 된다. 지교회가 고백의 일선이다. 그러나 총회가 지향하는 고백을 시도조차 미루는 것이 지교회의 실정이었다. 이런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교회가 그럴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수도교회는 나와 호흡을 함께 하는 교회로 서 주었으면 했다. 들리는 소문은 내 기대와 같지 않았다. 다른 교회들과 다르지 않은 교회로 변해 갔다. 어느새! 아니, 더 움츠려드는 것 같았다. 안타까웠다. 나는 수도교회의 목회자였지만 목사와 교인이라는 관계 이상의 관계를 가지고자 했었다. 교인들과 동지적 관계를 갖고자 했고 어느 정도 그리된 면도 없지 않았다. 이제 수도교회의 담임목사가 아니다. 총회 총무의 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신앙고백적 후원자가 절실히 필요했다. 수도교회 교인들에게 나의 신앙고백적 후원자가 되어 달라고 호소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고백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 놓은 것은 아니다. 수도교회에서 평소 설교해 왔던 것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었다. 교인들에게는 무거운 설교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서 당황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속내를 털어 놓은 것이다.
아니! 그것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길이라 믿었기에 그리 안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