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5월 : 폭력의 거리에서 투표소로
- 1991년 5월 1일 / 연세대 원주 캠퍼스 - “공권력을 위한 기도”
- 1991년 5월 10일 / 강경대 군 빈소 - “영문 밖에 계신 주님에게로 나아가자”
- 1991년 5월 13일 / 강경대 군 입관예배 -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민주화로 가는 정로는 무엇인가? 날마다 길 위에 시위 군중이 넘친다. 너무 많이 다치고, 너무 많이 죽임을 당하고, 너무 많이 죽는다. 격랑은 너무 높았다. 민주화 투쟁, 꼭 이런 방법밖에는 없는 것인가? 죽어가는 젊은이들이 아깝고 아까웠다.
공권력은 미친 폭력이 되어 버렸다. 시위하다가 도망치던 명지대 강경대 군을 끝까지 추적했다. 그는 결국 이른바 ‘백골단’이라는 전투경찰에 의해 맞아 죽었다. 전남대 박승희, 안동대 김영균, 김기설 등이 분신을 잇는다. 나는 빈소도 쫓아 다녔다. 강경대 군의 빈소도 찾았다. 입관예배 설교를 했다.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아깝고 아까운 젊은이들이 저리 죽어가는 현실을 어찌한단 말인가!
나는 그때 쯤 폭력으로 폭력에 맞서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맞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오라는 데는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달려갔다. 우리의 투쟁 방법을 바꾸자고 했다. 폭력으로는 저 폭력을 극복해낼 수 없다고 호소했다. 민주화의 방법 또한 가장 민주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기도였다.
우리의 민주화운동은 1987년에 정점에 도달했다. ‘6월 민주항쟁’이 그 정상의 이름이다. 대통령 선거를 직선으로 바꿨지만 1987년 대선은 군부의 권력을 연장시켜 주었다. 역사는 이미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정치의 열쇠는 반 혹은 비민주 세력이 쥐고 있었다.
나는 다음 대선을 겨냥했다. 선거로 정권을 교체해야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성령께서는 언젠가는 민을 통해 정권을 바꾸는 거사, 아니, 정의를 세우시는 거사를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