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ronto에서
6월 17일(일) - 오후 2시 연합교회에서 김익선 목사 위임식이 있었다.
노회에서 주재한다. 내가 설교했다. 제목은 “목자상(像)”이다.
79. 6. 19(화) - 서독의 이영빈[1] 부부가 토론토에 왔다. 친척 방문이란다. 이 목사와 나는 그들을 “코레아 하우스”에 초대했다.
이영빈 목사는 내가 N.Y.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처음에 교섭하던 것과는 온전히 다른 성질의 모임인데 내 이름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지요. 내가 내 양심대로 해야 할 일도 태산같은데 이용당하는 줄 알면서까지 내 이름을 내 놓아야 할 까닭은 없지 않겠오?”
옆에 앉는 이영빈 목사 부인은 “이용당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지요!” 했다.
어쨌든, 그 모임도 “태산명동 서일필”이었다.
6월 25일(월) - 선우학원 박사로부터 평양의 내 막내조카 남용의 편지와 사진이 전해졌다.
남용은 모스크바 대학을 마치고 지금 평양에서 중직에 있다는 것이다.
아들이 넷이라고 했다. 내가 평양에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오지 고향에도 가 보고, 할아버지, 할머니 성묘도 했다고 한다.
비석도 세웠단다. 비엔나 이북대사관이 하는 일이니까 신빙성은 할인할 밖에 없겠다.
나는 회답을 보내지 않았다.
7월 4일(수) - 서울 교회 신계동에 우거하는 강기철 씨가, 단권에 요약된 A. Toynbee의 “Study of History”를 자역, 자비 출판한 것을 한권 보내왔다. 호화판 장정이다.
79. 7. 7.(토) - 최홍희 장군 부부가 Korea House에서 곰탕에 정종 한 도꾸리 대접한다. 별 대답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