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30-31]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 1991년 5월 13일, 김상근 목사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요한복음 14장 30-31절 / 1991년 5월 13일 / 고 강경대 군 입관예배

김상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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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문]


성서를 쓴 많은 사람들은 갈등했다. 그것은 ‘왜 옳은 사람이 죄인들의 손에 의하여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인가’ 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차라리 갈등하지 않으셨다. 그는 자신을 옥죄어 오는 공권력의 실체를 느끼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와 더 많은 말을 하지 않겠다. 이 세상 통치자가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내게 대하여 아무런 권한도 없다.”

예수님은, 물리적으로 말하면, 공권력에 의하여 고난과 죽임을 당하신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을 그도 부인하지 않으셨다. “이 세상 통치자가 가까이 오고 있다.”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공권력의 위협과 죽임의 힘을 거기서 보고 있으셨기에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호하게 “그러나 그는(공권력) 내게 대하여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선언하신다. 공권력이 옥죄어 오고 그래서 죽게 되겠지만 그것은 결코 공권력의 승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죽이겠지만, 죽임을 당하겠지만 공권력이 나를 죽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선언이다.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만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분부하신 그대로 행할 따름이다.”

여기에 죽임을 넘어서는 예수님의 삶이 번뜩거린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분부하신 바를 그대로 행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공권력이 가까이 오고 있지만, 그래서 나를 죽일 터이지만 말이다. 다음에 하신 말씀은 더욱 비장하다.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이것은 공권력의 폭력을 피하여 도망가자는 말씀이 아니다. 그는 공권력의 심장을 향하여 가자고 하신 것이다. 결국 그는 공권력의 중심인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셨고 거기서 죽임을 당하셨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 경대를 입관하기 위하여 여기 둘러섰다. 싸늘하게 누워 있는 그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되는가? 예수께서 느끼셨던 폭력적 공권력, 바로 그것을 본다. 그를 해친 공권력의 실체를 본다. 난무했던 쇠파이프를 본다. 그래서 쓰러진 경대, 그래서 싸늘하게 주검으로 누워 있는 사랑하는 우리의 자식 경대를 본다.

그러나 경대도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말씀을 단호하게 외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나를 친 공권력은 내게 아무런 권한도 없다.’ 이 선언이 들리지 않는가? 경대는 쓰러졌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는 선언이다. 경대는 관에 덮이지만 결코 관속에 있지 않다는 선언이다. 미친 공권력이 경대를 죽였지만 그것은 이미 경대를 죽일 아무런 권한도 없다는 선언이다.

왜인가? 넋두리 선언이 아니다. 주님께서 죽음에 갇히지 않으시고 2천 년을 이어오며 진리를 행하고 계시다는 엄연한 사실이 그 선언을 완전하게 뒷받침한다. 경대는 죽음에 갇히지 않는다.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느냐는 갈등은 필요없다. 경대는 천으로 만으로 십만으로 백만으로 아니 수천만으로 우리 역사 속에 살 것이다.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경대는 죽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분부하신 바가 그를 통하여, 수백만의 경대를 통하여 지금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경대는 죽지 않았다. 슬퍼할 수밖에 없는 경대의 부모님, 누나, 혈육의 식구들이여! 경대는 죽지 않았다. 수만으로 살아있는 경대가 여기 있지 않은가! 거리에, 학교에 있지 않은가! 그들이 내일 여기 신촌에, 시청 앞에 당당하게 서지 않겠는가! 박종철과 함께, 이한열과 함께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있지 않겠는가! 혈육의 식구들이여 ! 슬퍼하지 말자. 눈물을 닦고 살아난 경대를 보자. 쏟아져 나오는 경대를 보자.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미친 공권력의 심장부는 멀지 않다. 죽음으로 사는 예수의 삶을 살아내자.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유, 평화, 정의, 민주, 통일, 사랑을 기어코 이루어 낼 것이다.

이제, 슬프나 당찬 마음으로, 죽임을 당했으나 이김으로, 자식을 잃었으나 얻음으로 그의 관을 덮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