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5:8-10] 일곱 안식년 후의 희년 – 1991년 8월 18일, 김상근 목사

일곱 안식년 후의 희년

레위기 25장 8-10절 / 1991년 8월 18일


[회상 노트]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군부의 폭력으로 인해 우리 군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해 깊은 토론을 아니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에게 있어 미국은 무엇이며, 누구냐? 분단은 왜 우리에게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냐?

이미 세계는 탈냉전 시대로 성큼 나아가고 있다. 사회주의권의 종주국 소련 연방이 해체되었다. 그런데 우리 남과 북은 냉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왜이냐?

교회는 이런 자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1984년 일본 도잔소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교회의 책임과 역할을 협의했고, 1986년 스위스 글리온의 협의회에서 남과 북 교회 대표가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1988년 다시 만나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회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선언”(‘88선언’이라고 함)을 채택했으며, 이 선언은 1995년 분단 50년이 되는 해를 ‘희년’(禧年)으로 만들자고 선포했다.

1990년 역시 같은 장소에서 남ㆍ북의 교회 대표가 만났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희년은 남과 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남 안에 얼마나 많은 한(恨)이 쌓여 있는가! 이걸 진심으로 쓸어내는 노력이 있을 때 남북 화해의 진정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희년 선포는 한을 극복하자는 것이었으리라. 정신적, 형이상학적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실천! 현실 변혁! 이것이 함께 가야 했던 것이다.

구약성서의 희년은 구체적이다. 우리에게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슬라이드]
















[설교 전문]


1995년은 우리에게 ‘평화와 통일의 희년’이다. 1988년 2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 총회가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채택 발표하였다. 그 선언 속에서 분단당한 지 50년이 되는 1995년을 ‘평화와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한 것이다.

선언을 발표한 1988년 11월 25일에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 교회 지도자들이 “한반도 평화통일협의회”를 열었는데 그때 NCC 선언대로 1995년을 ‘평화와 통일의 희년’으로 삼자는 데 북쪽 교회도 합의했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 아세아교회협의회, 세계개혁교회 연맹 등 세계 교회도 1995년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희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협력할 것을 결의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정작 한반도의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냉담한 것 같다.

그리고 1990년 12월 4일에 글리온에서 다시 모임을 갖고 남북 교회가 1995년 평화와 통일의 희년을 이루기 위해 9가지 함께 할 일을 합의하였다. 1995년 희년,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우리는 선언을 채택한 1988년과 평화와 통일의 희년 1995년의 꼭 중간 시점에 와 있다. 이 시점에서 지난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국내외 약 400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서울에 모여 협의회를 가졌다. “1995 희년을 향한 기독교평화통일협의회”가 그것이다. 1995년 희년을 향하여 가고 있는 우리 자신을 중간 점검해 보고, 이후 우리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 어떻게 희년을 만들어 갈 것인가를 협의했다.

희년이란 무엇인가? 희년은 레위기에 있는 법이다. 안식년이 일곱 번 되풀이되는 49년이 끝나고 50년째 되는 해가 희년이다.

“너희는 또 일곱 해를 일곱 번 해서, 안식년을 일곱 번 세어라. 이렇게 안식년을 일곱 번 맞아 사십 구 년이 지나서 일곱째 달이 되거든 그 달 십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희년은 ‘죄’를 벗는 날이다. 보통 사람들은 죄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에 그것을 죄로 깨닫는다. 레위기에 씌어진 대로 하면 원래 남의 땅이었는데 그것을 내 소유로 만듦으로써 어떤 사람은 땅을 많이 갖고 또 어떤 사람은 땅이 없는 사람이 되게 된 것, 저가 급하다고 해서 준 빚이지만 많은 채권을 가진 사람과 많은 빚돈을 짊어지고 허덕이는 사람이 있게 된 것, 이런 것을 죄의 상태라 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현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어떤 사람은 주인이 되었지만, 종이 된 사람이 있는 현실, 온갖 권리를 향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억압을 받고 소외를 당하는 사람이 있는 현실, 이런 것이 죄 된 사회라는 것이다. 그런 사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또 무엇인가? 소출을 더 많이 내기 위해 더 풍요하게 살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파괴하고 혹사하는 것을 죄로 깨닫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들이 희년을 여는 출발이다.

그러므로 희년은 모든 죄의 상태를 원상으로 돌리는 것을 말한다. 사람 사는 사회이기 때문에 시간이 감과 동시에 온갖 관계가 얽히고 설키기 마련이다. 사회적으로 누구는 상당한 권리를 더 갖게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소외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더 부유하게 소유하는 사람이 있게 되는가 하면 가졌던 것마저 다른 사람에게 내주게 되기도 한다. 땅을 팔아넘기는 사람, 그 땅을 사는 사람, 남의 돈을 빚내어 쓴 사람, 빚 돈을 준 사람 등이 있게 마련이다. 소출을 많이 내기 위해서 땅을 혹사시키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 사회의 갈등 상태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한 현실이라 여긴다. 그러나 이런 갈등 관계를 극복하고 정의로우며 평등하며 자유한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6년마다 오는 안식년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런 갈등 상태를 다시 원래의 관계로 돌려보내는 해다. 출애굽기의 안식년 법을 보자.

“너희가 히브리 사람을 종으로 삼았을 경우에는 육 년 동안만 종으로 부리고 칠 년이 되면 보상 없이 자유를 주어 내보내라”(출 21:2).

안식년이란 그냥 노는 날이 아니다. 그냥 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6년이 지나는 동안 누구는 종이 되고 누구는 주인이 되기 마련인데 안식년에 종에게 자유를 주어 서로 자유인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얽히고 설킨 관계, 정상이 아닌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안식년이다.

이런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나고 50년이 되는 해가 희년이다. 희년은 억압적이고 절대적인 권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모든 사회적, 경제적 갈등을 극복하여 노예 된 자를 해방하고,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하며, 팔린 땅을 본래의 경작자에게 되돌려 주고, 빼앗긴 집을 본래 살던 자에게 돌려주는 해다.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공유하게 되는 해다. 얼마나 훌륭한가! 얼마나 이상적인가! 이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면 우리의 희년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의 갈등 현상은 무엇이고 얽히고 설킨 관계는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우리의 평화와 통일의 희년은 무엇인가?

우리는 본래 하나의 민족, 하나의 나라였다. 그런데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면서도 두 개의 나라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1945년 이전에 이미 두 개의 나라가 안 될 수 없을 만큼 우리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려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혹시 지식인들 중에는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했다. 모든 국민들은 해방이 되면 으레 한 나라로 독립할 줄 알았을 뿐 그 누구도 두 나라로 분단될 것을 상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분단되었고 거의 반세기를 싸워 오고 있다. 분단 초기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상대의 사상을 용납하지 않았고 박멸주의로 나갔다. 서로를 죽였을 뿐 아니라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학살해 버렸던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1947년 ‘제주도 4ㆍ3 폭동 사건’이라는 것도 그렇다. 1964년 경향신문이 수기 당선작으로 뽑은 임두홍 씨의 “내가 겪은 4ㆍ3 항쟁 - 대나오름의 기억”의 한 대목을 소개해 보겠다.

“그들의 총구는 닭과 개를 향하여 불을 뿜었고 아무 집에나 마구 들어가서 밥을 시켜 먹었고 … 젊은 여인들을 붙들어다가 욕을 보였다. … 그들은 젊은 사람만 보면 폭도라거나 혹은 빨갱이라고 하여 잡아갔다. … 걸핏하면 넓은 공지에 사람들을 집합시킨다. 그리고는 적색분자를 색출해내는 것이었다. 사소한 감정 다툼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은 빨갱이로 고발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그 집은 몰살을 당하는 판이었다. 아! 얼마나 소름끼치는 세상인가? … 제 이름자 하나 쓸 줄 모르는 그들 젊은이들이 공산주의의 어떤 이데올로기나 데모크라시의 이론을 과연 몇 번이나 생각해 보았을까! … 팔십 호의 집을 가진 용강에는 이날 제사 받는 사람이 구십 명이나 된다. 봉개리만도 명절 못지않은 제사를 드린다.”

물론 사건은 공산당이 일으킨 것이지만 그것을 확대하여 많은 양민을 죽였고 반공주의를 만들었다. 이런 짓은 북에도 있었다.

6ㆍ25는 우리가 하나의 민족 두 나라가 아니라, 두 민족 두 나라가 되게 해 버렸다. 남의 72만, 북의 360만이 죽임을 당했으니 더 이상 동족일 수가 없었다. 고아가 된 아이들, 과부가 된 아낙네들, 완전한 폐허 위에 던짐을 받은 사람들은 남을 혹은 북을 동족이라 생각할 수가 없었다. 철저히 원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두 민족이 되어 버렸다. 이 현실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희년의 출발이다.

우리에게 희년이란 우선 두 민족이 하나의 민족이 되는 것이다. 꼭 그렇게까지 안 했어도 되었는데 그렇게 해 버리고만 것을 서로 뉘우쳐야 한다. 서로 죽이는 데까지 가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런 비극에까지 간 것을 서로 뉘우쳐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6ㆍ25를 경험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반공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북도 마찬가지다. 해방 초 북한에서 온갖 박해를 받고 월남해 온 사람들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월북해 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수 이전으로, 갈라지기 이전으로, 두 민족 이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희년이다.

두 민족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를 쌓아 가야 한다.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무력으로든 경제력으로든 흡수 통합을 하려 한다면 대결 국면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 지금 세계는 냉전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여 미소 양극 체제에서 미의 일극 체제로 바뀌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미소가 대결하던 세계 정치 질서를 깨고 급기야 미국이 온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런 추세를 보면 한반도도 곧 통일이 될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그러나 대단히 역설적으로 한반도는 세계 유일의 탈냉전 시대의 냉전 지역이다. 미국은 120일 작전이니, 북이 핵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면 미는 핵공격을 할 수도 있다느니 하는 위협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북방 정책을 과감하게 시행하면서도, 북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면서도 군사비는 증액시켜야 한다고 하니 도무지 평화 지향적이 아니다.

1991년 북의 군사비가 약 53억 불, 남이 약 100억 불, 모두 150억 불이다. 우리 돈으로 10조 5천억 원에 해당한다. 이 돈이면 20평짜리 국민주택 35만 호를 지을 수 있다. 대학생 100만 명을 4년 동안 완전 무료로 가르치고도 1년분이 남는다. 20억 원짜리 학교 건물 5,250동을 짓는다. 경부고속전철 경비 10조 원 조달이 막연한데 1년 분 군사비로 충당되고 남는다. 올해 우리 총회 주제가 “칼을 쳐서 쟁기를 만들자”이다. 그래야 한다. 총을 들이대고 어떻게 한 민족이 될 수 있는가? 신뢰를, 믿음을 쌓자면 군비축소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렇게 해야 평화와 통일의 희년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희년은 실현된 적이 없는 이상이었다. 왜 하필 안식년을 일곱번 지난 50년째 되는 해를 희년으로 삼자 한 것일까? 성서에 희년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실현된 적이 있다는 기록은 한 건도 없다. 왜일까? 내 가진 권리를 쉽게 양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모은 땅, 재산을 순순히 되돌려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노예를 잘 부려먹고 그런 생활에 익숙해졌는데 안식년, 희년이 되었다고 해방을 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빚을 탕감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러니 6년이 지나고 안식년이 올 때마다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해라. 다음 안식년에도 좀더 노력해라. 그 다음 안식년에도 더더욱 노력해라.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난 50년째 되는 해를 희년으로 하라는 취지는 일곱 번쯤은 온 힘을 다 쏟아 노력해야 그 결과로 희년이 실현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노력을 쌓고서야 그 토대 위에 희년이 실현될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작은 노력을 안 한 것이다. 6년마다 오는 안식년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첫발을 내딛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50년 희년이 왔다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실현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안식년을 지키지 못했을까? 왜 첫발을 내딛지 못했을까? 그것은 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 속에 있는 이기심이고 탐욕이며, 하나님의 경륜보다 자신의 이익에 급급하는 죄를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죄 때문에 안식년도 희년도 실현해 내지 못한 것이다. 희년의 실현은 그러므로 철저히 ‘신앙의 문제’다. 바른 신앙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두 민족이 되어 버린 우리가 1995년까지 노력해서 우선 단일 민족 의식부터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이것이 희년의 첫 발걸음이다. 그러자면 용서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포용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평화를 만들려는 의지를 키워 내야 한다. 총을 조금씩 부숴 평화의 쟁기를 만드는 조심스런 실현이 필요하다. 내 것을 주는 습성도 만들어야 한다. 더 풍요하게 살려는 내 욕망을 억제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덜 풍요하더라도 함께 살고, 더불어 사는 데서 기쁨을 누리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 훈련을 쌓고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노력, 훈련, 실천, 경험을 희년, 바로 그날 한꺼번에 이루는 것이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상대를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전쟁이 포기되고 서로 얼싸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지금부터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1995년 희년을 향하여 우리는 과연 가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의 구호일 뿐인가? 우리가 지금처럼 살면 1995년이 된다 하더라도 희년이 성취될 수 없을 것만 같다. 우리에게 노력, 훈련, 실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왜 없었을까? 그것은 역시 우리의 죄 때문이다. 용서하지 않는 죄, 포용하지 않는 죄, 평화를 만들려 하지 않는 죄, 내 것을 주지 않는 이기심,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우상숭배, 이런 죄가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 이런 죄와 악 때문이다.

1995년 희년이 불과 3년밖에 남지 않았다. 어느새 우리는 분단의 삶을 46년이나 살아 버렸다. 자, 이제라도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온갖 죄를 떨쳐 버리자. 결코 용서하지 않는 죄를 떨쳐 버리자. 결코 포용하지 않는 죄를 떨쳐 버리자. 평화를 절대로 만들지 않으려는 죄를 떨쳐 버리자. 내 것은 결코 내놓지 않으려는 죄를 떨쳐 버리자.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죄를 떨쳐 버리자. 그리고 용서하는 훈련을 쌓자. 포용하는 능력을 키우자. 조금씩이라도 총을 부수는 일에 찬성하자. 평화를 만드는 연습을 하자. 내 것을 포기할 수도 있고 내 것을 줄 수도 있는 능력을 키우자. 더불어 사는 기쁨을 맛보자.

그럼으로써 희년을 향한 가능성을 쌓아 가는 것이다. 경험을 축적해 가는 것이다. 그래야 훌쩍 자란 모습으로 평화와 통일의 희년 1995년을 맞이할 수 있다. 우리가 그럼으로써 사랑하는 우리 후손들에게 갈리고 찢긴, 증오하고 살해하는 두 민족이 아니라, 사랑하고 더불어 사는 하나인 민족을 이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