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희년
레위기 25장 9-13, 35-41절; 이사야 61장 1-2절 /기장 희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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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문]
희년의 전거구는 레위기 25장과 누가복음 4장 18-19절이다. 이사야서 61장 1-2절도 희년 선언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희년을 선언한지 7년이 지났다. 바로 올해가 희년이 되게 하자던 1995년이다. 올해는 해방 50년임과 동시에 분단 50년이다. 50년이 된 이 해를 ‘희년’이 되게 하자는 것은 훌륭한 발상이다.
1. 희년은 회개이며 화해다.
‘희년’의 명령이 담긴 제사 문서(P)는 바빌론으로 잡혀가 있던 포로들이 수집했던 것을 귀환 후 에스라가 편집해서 공포한 것이다. 희년 사상이 생긴 때는, 희년을 갈망했던 때는, 이국 땅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을 때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싸웠다. 결국 남도 북도 이방 나라에 의해 멸망당하게 된다. 지금 그들은 바빌론이라는 강대국에 점령당했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바빌론 땅으로 끌려 갔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대부분 지배 계층 사람이 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땅에 그냥 남아 있었다. 명망가나 종교 지도자, 정치가, 재력가들이 끌려갔다. 그들은 지금 이방 땅에 있다. 언제 자기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조차 예측할 수 없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땅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선민이라는 자신들의 신세가 처량하고 불쌍하다. 이렇게 초라할 수가 없다. 부끄러웠다.
급기야 그들은 우리가 왜 이런 신세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라가 왜 망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것이 희년 사상의 배경이다.
그들은 지난날 자기들이 어떻게 살아 왔던가를 반성해 본다. 우리가 이 꼴이 된 것은 바빌론이 강했기 때문인가, 우리의 군대가 약했기 때문인가, 국방 정책이 잘못된 때문인가를 묻는다. 아니다, 우리가 지은 죄 때문이라고 회개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만약 자기들의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속죄의 뿔나팔을 크게 불리라고 다짐한다. 그들이 불려고 했던 희년의 나팔은 속죄의 나팔이다.
“일곱째 달 열흘 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뿔나팔을 크게 불어라. 나팔을 불어, 너희가 사는 온 땅에 울려 퍼지게 하여라. 너희는 오십 년이 시작되는 이 해를 거룩한 해로 정하고, 전국의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 이 해는 너희가 유산, 곧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는 해이며, 저마다 가족에게 돌아가는 해이다. … 희년에는 씨를 뿌리지도 말고, 저절로 자란 것을 거두어서도 안 되며, 너희가 가꾸지 않은 포도나무에서 저절로 열린 포도도 따서는 안 된다”(레 25:9-13).
이것은 회개다. 희년은 회개다. 자기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뉘우치는 것이 희년이다. 희년의 나팔은 회개의 나팔이요 속죄의 나팔이다. 회개는 화해다. 온 땅에 불어야 할 뿔나팔은 회개와 속죄의 나팔이다. 이 같은 회개와 화해의 가닥이 여러 가지지만 한가닥만 살펴보자.
‘그렇다. 도저히 자기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가 망할 수밖에. 우리가 귀환한다면 그들과 함께 살 것이다. 그들을 돌보아 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회개했다. 그리고 화해를 결심했다. 레위기 25장 35절의 말씀은 바로 이 회개와 화해다. 도저히 자기 힘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을 돌보지 않은 죄를 회개한다. 귀환한다면 그들과 더불어 살겠다는 화해다.
“너희의 동족 가운데, 아주 가난해서, 도저히 자기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너의 곁에 살면, 너는 그를 돌보아 주어야 한다. 너는 그를, 나그네나 임시 거주자처럼, 너와 함께 살도록 하여야 한다”(25:35).
그들의 회개는 더욱 깊어진다. ‘그렇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절박한 사정을 틈타 돈놀이를 했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망할 수밖에. 우리가 만약 귀환할 수 있게 된다면, 절대로 다시는 그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살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회개하고 화해를 결심한다. 25장 36절 이하의 말씀도 바로 이 회개와 화해다. 절박한 사정을 틈타 돈놀이 한 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그들과 화해하겠다 하는 것이다.
“그에게서는 이자를 받아서도 안 되고, 어떤 이익을 남기려고 해서도 안된다. … 너는 그런 사람에게, 이자를 받을 목적으로 돈을 꾸어 주거나, 이익을 볼 셈으로 먹을거리를 꾸어 주어 서는 안 된다”(25:36~38).
‘급기야 그들을 종으로 사서 마구 부렸다. 그러니 우리가 포로로 끌려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귀환하여 다시 종을 부리게 된다 하더라도 50년마다 그들을 그들의 땅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회개하고 화해를 결심한다. 39절 이하의 말씀은 바로 이 회개와 화해다. 채무를 이유로 종으로 삼았던 것을 회개한다. 그들 종들과 화해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가난하게 되어서 너에게 종으로 팔려 왔어도, 너는 그를 종 부리듯 해서는 안 된다. … 너는 희년이 될 때까지만 그에게 일을 시키다가, 희년이 되면 … 자기 가족이 있는 … 땅으로 돌아가도록 하여야 한다”(25:36-38).
자기들이 만약 고국으로 돌아간다면 회개의 뿔나팔, 속죄의 뿔나팔을 온 땅에 불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들과 화해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희년은 갈등 관계에 있던 너와의 화해다. 희년의 나팔은 화해의 나팔이다. 화해의 뿔나팔이다. 귀환하면 이 화해의 뿔나팔이 온 땅에 울려 퍼지게 하리라.
2. 하나님은 이사야를 부르신다.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사람들이 급기야 석방되었다. 그들은 줄을 지어 자기 조국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정작 돌아온 후에는 바빌론 땅에서 일으켰던 회개가 증발되어 버린다. 회개하던 심정도 없어진다. 결단은 시행되지 않는다. 화해는 불발되고 만다.
이런 형편에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하나님의 영을 내려주신다. 그로 하여금 ‘희년’을 선포하게 하신다. 우리는 그 예언자가 누구였는지 알지 못한다. 학자들은 ‘제3이사야’라고 부르자고 한다. 그는 ‘희년’을 다짐했으면서도 ‘희년’의 삶을 살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희년’을 선포한다.
제3이사야의 활동 기간이 포로의 귀환 후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가 선포한 ‘희년’이 아직 바빌론에 남아 있는 이들의 석방을 뜻한다는 견해에 나는 이견을 가진다.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는 등의 대목이 포로의 완전 석방을 선언한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의 ‘희년’의 선포라 보아야 할 것이다.
제3이사아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61:1-2).
무슨 뜻인가? 바빌론으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돌아온다. 거기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돌아오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채권자들이기 때문이다. 섬겨야 할 자기들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넘겨줄 수밖에 없는 땅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막막하다. 옛날의 생활을 다시 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해방이 되었으나 그것은 지난날의 복원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결코 새 날일 수 없었다. 그들은 두려웠다. 이런 자리에 제3이사야가 희년을 선포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기쁜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상한 마음을 싸매 주는 것,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는 것,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희년’을 실행하는 것이다. 저 바빌론에서 다짐했던 내용들을 실행하는 것이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그들이, 과거에 빼앗았던 땅을, 본래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겠다고 선언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돌아오지 못하였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느냐고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자기들에 의해 상처 받은 사람들, 가슴에 슬픔을 안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 아니겠는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놀라운 선언이 현실로 나타난다고 상상해 보자. 이 선포를 듣는 사람들은 너무 너무 기쁠 것이다. 이게 웬 말인가? 이럴 수도 있나? 선포를 듣는 사람만 기쁜 것이 아니다. 선포하는 사람들도 기뻐 어쩔 줄을 모르게 될 것이다. 사람다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희년’이다.
그렇다. 이것이 ‘희년’이다. ‘희년’은 추상적인 일이 아니다. 현실이다. 피부에 와 닿는 삶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하지 않는다. 제3이사야는 희년을 일구어 내자고 외친다. 하나님께서는, 희년이 실종되고 증발되는 이 위기에, 제3이사야를 부르신다. 그로 하여금 희년을 다시 선포하게 하신다.
3. ‘1995 희년’도 회개요, 화해다
우리 역시 그렇다. 레위기나 제3이사야의 삶의 현실과 우리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우리의 희년은 무엇인가?
우리는 ‘1995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희년’을 갈망하고 있다. 세계 정세는 완전히 변했다. 냉전적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휙휙 지나가고 있다. 절대적 가치로서 50년이나 우리에게 군림했던 냉전 논리로는 도무지 설명해 낼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어느새 옛 일이 되고 만다.
사회주의의 세계적 틀이 무너졌다. 북한과 미국이 수교를 탐색한다. 북한과 일본이 관계 개선을 탐색하고 있다. 우리 남한도 그렇다. 6ㆍ25 전쟁의 배후인 러시아와 돈을 주어가며 수교를 서둘렀다. ‘침략자 오랑캐 중공’과 친해졌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군대를 파견하였던 월맹과 도 수교한다. 그 최고 권력자를 초청하여 극진하게 환대했다.
지금은 냉전 시대가 아니다. 절대 가치였던 이데올로기는 온데 간 데 없다. 그런데도 남과 북은 냉전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도, 이념이 같지 않다는 이유로 종신 수용소에 갇혀 있는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역시 이른바 비전향 장기수들이 있다. 김선명 씨를 44년째 감옥에 가두어 두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그를 세계 최장기수로 지정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보안법 사범으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전ㆍ노 대통령 때보다 지금이 더 많다. 갈등과 반목의 이년을 보내고도 아직도 부족하다는 말인가?
지난 시절, 북의 반제가, 남의 반공이 타당했다는 나름대로의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붙잡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 민족 역시 21세기의 새 도전에 직면해 있다. 21세기의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강대국 사이에 또 다른 모양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더 많은 나라들을 자기들의 경제권에 집어넣으려 한다. 더 넓은 지역을 자기들 시장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른바 ‘세계화’다.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 지배, 그리고 분단에 이어 또다시 경제적 종속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우리가 민족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후손들을 사랑한다면, 또다시 종속국으로 전락하는 길은 가지 않아야 한다. 남과 북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 함께 살 수 있어야 한다. 함께 살아가자. 민족을 생각하자.
우리가 서로에게 지나쳤다고, 당시에는 그것을 최선의 길이라 여겼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강대국이 뒤집어씌운 운명에 맹종한 것이었다고, 그래, 우리가 언제부터 공산주의자였다고, 언제부터 자본주의자였다고, 그렇게도 매몰차게 상대를 숙청하고, 감옥으로 보내고, 그 식구들까지 못살게 굴고, 죽이기까지 했단 말인가! 공산주의자를 죽이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것인데, 이른바 반동분자도 사람인데, 그렇게 무참하게 죽였더란 말인가? 너무 했다, 너무 지나쳤다, 너무 어리석었다, 너무 부끄럽다. 이렇게 반성하는 것, 이렇게 깨닫는 것, 이렇게 회개하는 것이 바로 1995년 희년이다.
희년은 회개다. 희년의 나팔은 회개의 나팔이다. 희년의 나팔은 속죄의 나팔이다. 이 나팔을 불지 못한다면 희년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너를 나의 적으로, 원수로 삼지 않겠다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한민족이요 동포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응어리진 마음을 풀자고 선언하는 것이다. 과거에 맺혔던 것들을 툴툴 털어 내는 것이다. 이제는 용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함께 더불어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것이 화해다. 남이 북에 내미는 화해다. 북이 남에 내미는 화해다.
희년의 뿔나팔은 화해의 뿔나팔이다. 화해의 나팔을 온 땅에 울려 펴지게 해야 한다. 삼천리 금수강산, 우리 강토 구석구석에 울려 퍼지게 해야 한다. 7천만 가슴마다 울려 퍼지게 해야 한다.
바빌론 포로들이 한때 그러했듯이 우리도 꽤나 신통한 생각을 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91년 12월 13일, 남의 국무총리와 북의 정무원 총리가 서명한 “남북 기본 합의서”다. 그 합의서 제1조는 “우리는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다. 남은 북의 공산주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북은 남의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난 50년 동안, 상대에 대한 존중은 고사하고 결단코 인정도 하지 않았던 것, 그럼으로써 서로 증오하고 비방하고 살해했던 것이 지나쳤다는 회개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남과 북이 화해하겠다는 결단도 들어 있다.
북의 체제를 인정한다면, 나아가 존중한다면, 국가보안법에 담긴 반통일적 요소를 고치겠다는 것 아닌가! 북도 그렇다. 남의 체제를 인정한다면, 나아가 존중한다면, ‘조선로동당 당 규약’을 개정하겠다는 것 아닌가! 이 규약은 “전국적 범위에서”,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북은 물론 남도 사회주의화하겠다는 것이다. 1991년 12월 13일에 서명된 기본 합의서는 남북이, 바로 이런 지금까지의 입장을 버리고 화해로 나아가겠다는 일대 화해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형편은 마치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왔으나 거기서 일으켰던 회개를 내동댕이친 것과 같다. 그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나? 제3이사야를 보내셨다. 그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영으로 임하셨다. 그로 하여금 ‘희년’을 선포하게 하셨다.
지금,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다. 영으로 임하신다. “희년의 나팔을 온 땅에!” 울려 퍼지게 하라 명하신다. 희년의 나팔을 불라 명하신다. 선언하라 명하신다. 통일 희년을 일구어 내라 명하신다. 통일 희년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제3이사야가 필요하다.
주께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셨다는 자의식을 가지자. 주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셨다는 확신을 가지자. 기름을 부으시고 영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다급함을 우리 가슴으로 받자. 그리고 선언하자. 주께서 우리를 보내셔서 냉전 문화를 벗어 던지게 하셨다고, 지난 50년 동안 상한 마음을 싸매 주라 하셨다고, 냉전적 심판으로 갇힌 사람들에게 석방을 선언하라 하셨다고, 화해와 통일을 저해하는 제도와 법을 남에서도 북에서도 혁파하라 하셨다고 외치자. 희년을 선포하라 하셨다고 외치자.
한국 교회여, 제3이사야로 일어서자. 기장이여, 제3이사야로 일어서자.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러분에게 기름을 부으신다. 영을 부어 주신다. 일어나자.
4. 희년은 선포다.
희년을 선포하자.
(1) 남북은 더 이상 원수가 아니라 한 민족, 한 형제라 선언하는 것이다.
남북 기본 합의서를 실현하자.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선언하자.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을 하지 아니”하겠다 하자. “국제 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하자. “의견 대립과 분쟁 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 하자. 1995년 올해 안에 기본 합의서가 현실이 되게 하자. 그래야 1995년 통일 희년이 된다.
(2) 분단과 대결 때문에 남과 북에 억류되어 있는 피해자들이 그들의 희망대로 송환되고 석방되는 것이다.
남에 억류되어 있는 비전향 장기수, 김인서, 함세환, 김영태 씨가 북으로 돌아가게 하고, 김선명 씨를 석방하자. 북에 억류되어 있는 동진호 선원과 고상문 교사가 돌아오게 하자. 최근 항로를 잘못 잡아 군사분계선을 넘어간 우성호 선원들을 돌아오게 하자. 이산 가족들이 상봉할 수 있게 하자. 1995년 올해 안에 이 일이 이루어지게 하자. 그래야 1995년이 통일 희년이 된다.
(3) 통일을 저해하는 법들을 개폐하는 것이다.
남의 국가보안법 중에, 북의 조선로동당 규약 중에 통일을 저해하는 조항이 있다. 모두 개폐하자. 1995년 올해 안에 이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1995년이 통일 희년이 된다.
(4) 8ㆍ15 50주년을 남북이 함께 기념하는 것이다.
8월 13일, 판문점에서 남북 교회가 함께 드리는 예배, 이 예배를 반드시 실현해 내자. 서로, 주 안에서 얼싸안고 지난 50년의 갈등을, 미움을, 살의를 툴툴 털어 내자. 8ㆍ15 50주년 기념식을 남북이 함께 드리자. 50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이것조차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민족의 수치다. 1995년 올해에 반드시 이 일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래야 1995년이 통일 희년이 된다.
희년은 선언이다. 선언은 현실이다. 현실이 아니 되는 선언은 선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희년의 나팔을 온 땅에 불어 댈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럴 교회를 찾고 계신다. 그럴 단체를 찾고 계신다. 그의 영을 부어 주신다. 기름을 부으신다. 희년을 일구는 구원의 사업에 함께 참여하자.
여러분! 북도 남도 대변혁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상호 연계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상호주의 원칙은 새 시대를 만들 수 없다. 화해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희년을 일구어 내지 못한다. 새 지평을 보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새 시대를 열 수 있다. 그래야 1995년 평화와 통일의 희년’을 만들 수 있다.
통일 희년은 열린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가운데 오셔서 당신의 구원 사업을 펼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룩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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