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근 목사 연보(年譜)

9월 21, 2026

1939년

  • 10월 22일(양)에 전라북도 군산(群山)에서 김한준(金漢俊) 씨와 신영춘(辛泳春) 씨의 3남 중 차남, 6남매 중 다섯째로 출생

1946년

  • 3월 군산초등학교 입학

1950년

  • 6ㆍ25 한국전쟁 중 부친, 북의 정치보위부에 체포
  • 10월 말, 총살당한 부친 주검 찾음. 추도일을 9ㆍ28 수복 전 날로 정함

1952년

  • 2월 군산초등학교 졸업
  • 3월 군산중학교 입학

1955년

  • 3월 군산고등학교 입학

1956년

  • 군산복음교회에서 윤치병(尹恥柄) 목사에게 세례 받음

1958년

  • 2월 군산고등학교 졸업

1959년

  • 3월 장공(長空) 김재준(金在俊) 목사가 학장이었던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 전신) 입학

1963년

  • 2월 한국신학대학 졸업

1966년

  • 3월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입학

1967년

  • 5월 구경자(丘慶子)와 결혼

1968년

  • 9월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 10월 문동환(文東煥) 목사(당시 한국신학대학 교수)가 담임하고 있던 한국기독교장로회 수도교회 전도사로 부임

1969년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KNCC라 함) 평신도위원회 위원으로 교회일치운동의 첫걸음을 내딛음
  • 아들 형준(炯駿) 낳음
  • 수도교회는 교회로서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최초의 집단행동을 함. ‘3선 개헌’에 대해 토론하고 반대하기로 뜻을 모았으며, 성명서를 작성한 후 한국 교회 초유로 예배시간에 낭독하고 채택함

1971년

  • 딸 수미(秀渼)를 낳음
  • 11월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수도교회 부목사 부임

1973년

  • 12월 각 교파 소장 목사들과 유신체제 반대성명을 발표, 서울복음교회에서 사회문제와 관련한 한국 교회의 첫 단식기도 시작

1974년 

  • 수도교회 담임목사 취임
  •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목요기도회”를 동료 목사들과 함께 시작
  • 10월 KNCC 인권위원회 준비위원회 서기 피선임

1975년

  • 9월 17일 위 후원회 창립, 서기 피선임. 1979년까지 4년 동안 후원회 차원에서 인권위원회 활동에 참여

1978년

  • KNCC 제3기 인권위원회 위원. 이후 4ㆍ5ㆍ8ㆍ10기 위원, 6ㆍ7기 부위원장, 11기 위원장 등 18년 동안 인권위원회 활동

1979년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설립 이사, 부이사장

1980년 

  • KNCC 인권위원회 후원회 회장

1982년 

  • 수도교회 담임목사 사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무 취임(~1990년)
  • KNCC 실행위원 20년(1982~1991, 1995~2006년)
  • 한국기독교장로회 유지재단 상임이사(~1990년)

1984년

  • 11월 KNCC 광주사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1985년

  • KNCC 시국대책위원회 서기(1985~1988년), 위원장(1989~1990년)

1986년 

  • KNCC 고문 및 폭력 대책위원회 위원장(~1987년)
  • 2월 KBS-TV 시청료거부 기독교범국민운동본부 부위원장
  • 민주헌법실현 기독교추진위원회 집행위원회 위원장

1987년 

  • 민주헌법쟁취를 위한 국민운동본부 실행위원으로 “6월민주항쟁”에 참여
  • 『1980년대 민주화운동』 전2권을 KNCC 광주사태 진상조사위원회 진상조사보고로 최초 발간
  • (재)기독교방송 기능정상화 대책위원회 집행위원회 서기

1988년 

  • KNCC 통일교문제 연구위원회 위원장(~1989년)
  •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 이사장(~1993년)
  • (사)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 총무, 재정이사
  • 언론바로세우기 시청자연대회의 회장

1989년 

  • 언론개혁 시민연합 공동대표
  • 국민을 위한 위성방송 추진위원회 상임대표

1990년

  •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육원 원장(~1997년)

1991년 

  • KNCC 정책연구위원회 위원장
  • KNCC 언론대책위원회 위원장(~1993년)
  • 한국기독교연합회관운영이사회 이사, 이사장(1999~2001년)

1992년 

  • 남북언론문화연구원 부이사장
  • ㈜새누리신문 이사

1993년 

  • 통일시대국민회의 상임공동대표
  • 민족의 평화와통일을 위한종교인협의회 공동대표, 고문

1994년 

  • KNCC 인권위원회 위원장
  • 3월 5ㆍ18 진상규명과 항쟁정신계승 국민위원회 상임공동대표
  • 5월 13일 전두환, 노태우 등 35명을 서울중앙지검에 내란죄로 고발 294명의 고발자 대표, 고발자 피심문 받음
  • (재)시민방송 상임고문
  • (재)아우내재단 이사, 이사장(2002~2003년)

1995년 

  • 한국인권단체협의회 회장(~1996년)

1996년 

  •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
  • KNCC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1997년)
  • 12월 5ㆍ18 완전해결과 정의실현ㆍ희망을 위한 과거청산 국민위원회 상임대표
  • 5ㆍ18기념재단의 ‘윤상원상’ 수상

1997년

  • 겨레사랑북녘동포돕기 범국민운동 상임공동대표
  •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 공동대표
  •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육원 원장 사임.

1998년

  • (사)통일맞이 이사
  • (재)대한기독교서회 대표이사, 사장(~2001년)
  • KNCC 통일위원회 위원장
  • 학교법인 푸른꿈학원 이사장(~2000년)
  • (사)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고문

1999년 

  • (재)기독교방송(CBS) 발전위원회 위원장(~2000년 7월)
  • (재)기독교방송(CBS) 재단이사회 이사(~2005년 6월)
  • 3월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기획단장
  • 대통령 직속 방송개혁위원회 위원(~2000년)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2005년)
  • ‘자랑스런 군중ㆍ고인상’ 대상 수상

2000년 

  •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2003년)
  • (사)국민방송이사장
  • 한국디지털위성방송(Skylife) 이사회 의장(~2004년)

2001년

  •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위원장(2002~2003년)
  •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

2002년

  • KNCC 교회일치위원회 위원장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2004년), 후원회 회장
  • 운산 김관석 목사 기념 에큐메니칼 강좌 운영위원회 위원장
  • (재)기독교방송 재단이사회 부이사장(~2003년 1월)
  • 한국 교회 일치와 연합을 위한 18인 위원회 KNCC측 대표

2003년

  • 한국투명성기구(국제투명성기구 한국지부) 회장(~2006년), 고문
  • 2월 국민훈장 모란장 수장
  • 8월 ‘참여정부’ 출범 후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해체를 스스로 결의한 후 퇴임

2004년

  • (사)6월민주항쟁 계승사업회 대표이사장
  • 이우정 평화상운영위원회 위원
  • 법무부 감찰위원회 위원장
  • KNCC 부회장(~2005년)

2005년

  • 6ㆍ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겸 운영위원(~2006년)
  • (사)고령화사회희망재단 대표이사
  • 한국민주주의 전당 건립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발전과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
  • (사)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대표 이사장

2006년 

  • 6월민주항쟁 20년사업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
  • 남북 수해극복 특별위원회 위원장
  • 10월 목사 은퇴(서울노회)
  • 11월 KNCC 제55회 총회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발전과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의 안을 상정, 처리된 후 37년간의 한국 교회 일치운동에서 은퇴를 선언
  • 12월 15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설교 - 언제나 자신 없는것

9월 21, 2026

설교 - 언제나 자신 없는것

- “나의 설교 분석”, 「세계와 선교」 제141호(1993.12) -














1. 설교 – 언제나 자신 없는 것

내 설교를 나더러 분석하란다. 제 설교를 제가 분석하는 작업이란 도대체 어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구태여 이렇다, 저렇다 분석한다 해도 그것이 어디 객관성이 있을까? 또 제 깐에는 자기 설교가 괜찮다고, 혹은 최상의 수준이라 자평하고 있다 한들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그 반대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 설교가 참으로 형편없다고 스스로 심각하게 평가한다면 그것은 목사 생명을 끝내야 하겠기 때문이다. 또 그렇다하여 설교자로서의 혀를 잘라 버릴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의 선배나 후배들 중에는 내 설교를 묶어 책으로 펴내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제의가 있다는 것은, 솔직하게 말한다면, 내 설교가 그런 대로 괜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래 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라도 가져본 적이 없다. 책은 무슨 책이냐? 말로는 넘어갈 수 있지만 문자화하여 부끄러운 몰골을 두고두고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자제한다. 그렇게 많이 설교하고도, 또 설교할 자리를 사양하지 않고 선뜻 선뜻 나서면서도 언제나 자신이 없는 것이 설교다.

이런 말이, 설교집을 펴내는 것을 매도하는 의도로 들려지지 않아야 한다. 말로 하는 설교가 설교인 것처럼 글로 하는 설교도 설교다. 따라서 설교집을 내는 것도 설교의 한 형태다. 그러나 말로 하는 설교는 지나가 버릴 수 있지만 글로 하는 설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나는 자신이 없다는 설명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여간 나는 내 설교에 대해서 항상 부족감을 느끼고 있다. 오래 지난 원고를 들여다보면 부끄러워지기만 한다.

2. 초기 설교자평

1) 한 주간 걸린 준비

그러니까 교인들을 상대로 설교하기 시작한 것이 1970년이었다. 설교는, 한 주제로 묶어서 3-4회 계속했다. 연속 설교다. 나의 앞 설교자이셨던 문동환 목사님이 만드신 틀이다. 수도교회는 지금도 그런 식으로 설교하고 있다.

어떤 주제를 설정할 것이냐 하는 것을 고민하고 정하면 한 달 정도의 방향이 잡히게 된다. 방향이 잡혔으니 편안할 수 있을 것인데도, 주일이 지나면 서둘러 곧바로 월요일부터 다음 설교 준비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그랬다. 월요일에 시작한 준비는, 주일 새벽에 비로소 미완성 원고로 끝내지곤 했다. 일주일 내내 매달린 것이다. 한참 익숙해진 후에는 목요일 아침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금요일이 되면 쓰기 시작한다. 토요일에도 계속 쓴다. 주일 새벽 1시쯤까지 쓴다. 잠깐 자고 5시나 6시에 일어나 또 쓴다. 개작을 하는 것이다. 마음은 급하지만 잘 안된다. 이제는 더 고치고 말고 할 시간이 없어서 그만둔다. 원고지 2백 쪽쯤 쓴 것인가? 물론 아니다. 고작 사십 쪽을 쓰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

왜 그랬을까? 우선, 문동환 목사님이 설교하셨던 그 자리와 그 대상을 그대로 물려받은 중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 목사님보다 더 훌륭한 설교를 할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들어줄 만한 설교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것은 내게 큰 보약이었다. 그러나 힘들었다. 굉장히 힘들었다. 전도사로, 부목사로 목사님을 보필할 때,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 적도 없지는 않았다. 설교하고 싶은 충동 속에 빠진 적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막상 강단을 맡고 보니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어렵고 또 어려웠다.

2) 자신이 일차 대상

앞서 말한 것처럼 1970년 초에 설교를 시작했다. 군사 독재가 본격화될 때였고 경제 제일주의 정책으로 인한 인권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설교의 대상은 수도교회 교인들이었다. 물론 이런 저런 특별한 기도회, 이른바 시국 기도회의 설교도 간간이 맡았다.

그때, 나의 설교는 그 시대를 사는 젊은 성직자의 진솔한 신앙고백들이었다. 교인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교의 원리 따위는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마구 쏟아 놓았다. 그랬다. 마구였다. 놀라거나 말거나, 당황하거나 말거나 기독교는 이것이라고 마구 쏟아 뱉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회중을 향한,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나를 향한 것이었다. 내게 하는 설교였다. 내 손에 예수의 수갑을 채우는 것이었다. 내 발에 예수의 족쇄를 채우는 것이었다. 내 가슴을 예수의 불 인두로 지져대는 것이었다. 설교할 때 자주 손에 쥐가 나곤 했다.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도 느끼곤 했다. 그만큼 설교에 온 열정을 쏟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 설교를 들어준 교인들이 고맙고 훌륭하다.

설교의 대상은 일차적으로 설교자였다. 이것을 굳이 잘못되었다고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교자에게 설교할 때 회중들은 은혜를 받는다. 설교자의 진실과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3. 요새 설교 자평

1) 긴 기도 짧은 작업

나도, 이제 4반세기 동안 설교를 하여 왔기에 초기와는 퍽 다른 모양의 설교자로 변했다. 실제 쓰는 시간은 약 3시간 정도다. 목, 금, 토, 주일 새벽까지 쓰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도가 튼 것인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생각하는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줄어들지 않았다. 오래 생각한다. 길을 걸을 때나 차를 타고 이동할 때나 누구와 대화할 때나 맡은 설교를 생각하고 연관시킨다.

어떤 영상이 떠오르면, 어디서나 즉시 간단하게 메모한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성서 본문이 정해지면 일단 주석서들을 훑어본다. 빗나가는 해석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른 참고서들도 뒤적여 본다. 이 모든 것이 설교를 위한 기도다. 3시간 정도면 설교 한 편을 쓴다 하지만 실제로는 34일 걸리는 것이다. 다만 쓰는 시간이 줄어든 것일 뿐이다. 그만큼 사전 정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른바 큰 집회의 설교는 1개월 이상 걸려 준비하기도 한다. 설교를 위한 기도(=준비)는 길게 하고 쓰는 작업은 될수록 시간을 줄인다.

2) 상황에서 성서로

나는 언제나 상황에서 출발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재해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성서에서 출발하여 성서로 말해야 한다는 주장이있다. 이른바 텍스트(text)에서 컨텍스트(context)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컨텍스트를 먼저 파악한다. 설교를 듣고자 하는, 듣게 되어 있는 저들의 상황과 조건과 실존이 어떤 것인가를 깊이 통찰한다. 한 교회면 그것이 교회의 현재 상황이 될 것이다. 역사적 상황을 생각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교인들의 비교적 공통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한다면, 설교를 듣게 될 저들의 진실된 기도가 무엇일까 하는 것을 먼저 간파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파악해 내는 것이 설교자의 기도다. 그들을 내 가슴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저들의 문제가 내 문제로 되어야 한다. 저들의 고통이 내 고통이 되어야 한다. 설교자의 인카네이션(incarnation)이다. 설교를 듣게 될 저들의 자리에서 성서 본문을 택한다. 비로소 텍스트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의 말씀이거나 신약성서의 서신이거나 구약성서의 어떤 성서이거나 거의 특수한 컨텍스트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닌가? 그 삶의 상황으로 가야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러한 상황에 주신 말씀이 들리게 된다는 뜻이다. 컨텍스트를 무시한 설교 본문의 선택은 교리 강해나 일반적 교훈을 말하는 수준에 머문다. 결국 부딪침이 없는 설교가 되고 말 것이다. 예수의 설교는 교리 강해가 아니다. 보편적이고 무색무취한 것이 아니다. 거기, 바로 거기에서 불꽃을 튀기는 가르침이다. 컨텍스트와의 충돌이요 증진이다. 그런데도 영원성을 지닌다. 설교 본문은 상황—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요 가르침이다.

3) 상황적 출발의 위험과 극복

컨텍스트에 주시는 말씀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성서에 대한 광범한 지식과 바른 인식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성서 66권을 꿰차기 위해서 노력한다. 나는 물론, 성서를 여러 번 독파했다. 지금은 마치 독경하듯이 고지식하게 읽어 내려가지 않는다. 눈으로 속독한다.

그래도 회상이 가능하다. 걸리는 부분은 정독한다. 이 일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물론 바른 인식을 위해서 신학적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신간 서적을 읽기도 하고 학자들의 강의를 듣기도 한다.

여기에 문제가 없지 않다. 성서 본문이 편향적으로 선택되기 때문이다. 하다 보면 복음서를 선호하고 있다든지 예언서를 자주 택하게 된다. 반면에 잠언서 같은 성서를 택하게 되지 않는다. 디도서, 빌레몬서, 유다서 등도 여간해서 내 설교 본문이 되지 않는다. 구태여 상황을 고려할 수 없는 평범한 설교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될 수 있는 대로 잠언서 등을 택한다. 그러나 꾸준하게 내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편식이 강요된다. 어떻게 해야 성서 66권을 고르게 설교 본문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큰 과제다. 고르게 선택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성서일과에 준거한 설교를 하자는 경향에 상충한다. 성서 일과를 따르는 설교는 큰 의의를 갖는다. 긍정적인 면이 크다. 그러나 상황에서 성서로 가는 경우 성서일과를 좇지 못한다. 상황에서 성서로 가되 성서일과와 발맞추는 설교의 일치를 이루어낼 수 없을까? 내게 숙제다. 설교의 상당한 수준에 이르면 성서일과에 준하면서도 컨텍스트와의 대화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이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4. 설교 작성 실제상의 몇 가지 유의

1) 우선 쓴다.

준비가 다 되었거나 훨씬 부족하거나 쓰기 시작해야 할 시점에 이르면 우선 쓴다. 더 많은 자료를 찾다가 결국에는 시간에 쫓겨 준비해 놓은 자료조차 사용하지 못했던 경험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우선 쓴다. 쓰는 동안, 시작할 때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영감이 온다. 완성하고 보면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설교가 창작되는 것을 경험한다. 머뭇거리고 무엇을 찾고 메모하고 그러다가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시간이 되면 나는 우선 쓰고 본다.

2) 욕심을 버리고 초점을 좁힌다.

초벌 원고는 언제나 길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찾은 메시지도 여러 개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한 설교에서 다해야 훌륭한 설교를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 것을 다 듣지 못한다는 진리를 내게 몇 번이고 다진다.

줄이자. 더 줄이자. 흔히 사용하는 첫째, 둘째, 셋째도 많다. 하나의 테마면 족하다. 하나도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하면서 둘, 셋까지 가려는 유혹을 억제하곤 한다.

돌이켜 보면, 나의 초기 설교는 제법 방대했다. 그 본문에 담긴 모든 메시지를 다 캐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설교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다음 날 또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한 설교에 한 초점만 잡는다. 가능하면 그렇게 한다. 초점을 좁히려고 노력한다. 아쉽지만 그렇게 한다.

3) 예화는 피한다.

설교를 쉽게 하는 길은 예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본문의 메시지나 그 상황에 대한 설교로서의 적절한 예화란 흔할 수 없다. 주관적이고 허구적인 것이 더 많다. 성서의 말씀이 흔히 사용되는 예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내 소신이다. 그래서 나는 예화를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적절한 예화를 찾느라고 노력한다. 소설이나 수기를 틈나는 대로 읽는다. 이 부분은 내 아내의 도움에 많이 의존한다. 이야기로 듣고 무언가 잡히면 직접 읽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앞뒤는 듣고 연결되는 바로 그 대목만 직접 읽는다. 딱 들어맞는 예화는 어김없이 동원한다. 역시 은혜가 된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고 예화를 남발하지는 않는다.

4) 혼을 담는다.

논리를 전개해야 편안하다. 그래서 무슨 논문 쓰듯 하게 된다. 그래야 논리가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를 듣고자 하는 것이지 학술 강연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주석의 과정, 본문 비평을 그대로 설교에서 말하는 것은 제 만족을 위한 것일 뿐 회중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본문의 혼을 찾아서 그것을 설교에 어떻게 담아 내느냐 하는 것을 고민한다. 원고를 읽어보고 또 읽어보면서 혼이 있는가를 점검한다. 아니, 제게 혼으로 부딪혀 와야 한다. 솜털이 일어나고 머리칼이 쭈뼛이 서는가를 확인한다.

5) 짧은 문장을 쓴다.

물론 설교의 시작 부분이나 본론 부분은 설명식이 아니 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설교를 그렇게 쓰지는 않는다. 설명식이라 하더라도 이야기식으로 진행시킨다. 웅변조로 하는 것이나 선교사의 짧은 한국말 투를 흉내내는 것은 구역질이 난다. 자연스러운 이야기식 분위기를 선호한다. 그것도 장황하게 긴 것을 피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단문, 짧은 문장으로 쓴다. 그것이 힘이 있기 때문이다.

가슴에 꽂아야 하는 부분은 물론 결론 부분이다. 나는 언제나 결론 부분은 단문으로 처리한다. 단문은 예리하다. 파고드는 힘이 있다. 가슴을 움직이게 한다. 단문—단문—단문…으로 결론 부분을 손질한다.

6) 회중의 입장에서 마지막 손질을 한다.

어쨌거나 설교 원고가 다 되었다. 마지막 손질을, 이 설교를 듣게 될 회중의 입장에서 한다. 회중의 반응은 어떠할 것이며 그것은 적절하고 필요한 반응일까? 이 부분은 회중을 위해 쓴 것인가 아니면 내 양에 차지 않아 보탠 것인가? 회중의 상황, 기도, 조건에 다시 맞춘다. 회중의 가슴에 감격이 일어날 것인가를 가늠해 본다. ‘아멘!’ 이 울려질 것인가를 예측해 본다. 회중의 영혼 속에 일어나야 할 갈등을 일으킬 수 있을까를 점검한다.

설교자의 일차적인 대상이 설교자 자신이어야 한다면서도, 설교는 역시 회중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태복음 20:8-15] 하늘 나라는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 1998년 12월 6일, 김상근 목사

9월 20, 2026

하늘 나라는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마태복음 20장 8-15절 / 이화여대 대학교회


[회상 노트]

선거에 의한, 민주적인 최초의 정권 교체를 이루어낸 기쁨은 잠시였다.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획기적인 조처들이 감행되었다. 부실화한 은행과 기업들을 퇴출시킨다. 모든 기업이 이른바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다름 아닌 집단 퇴직이다.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이게 뭔가?

민주적 정부,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정권은 민중의 아픔과 고통을 감싸 주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권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을 더 깊은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지금 거리로 내몰린 이들은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킨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는 데 표를 보탰을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힘은 과연 무엇이었나? 지금은 또 어떤 힘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고 있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힘은 너무 크고 절대적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반동의 힘이다. 어찌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올 수 없다. 예수께서도 전혀 불가능한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고 세계의 반동을 수용해서는 안 된다. 세계의 반동성과 우리 기독교인들의 사명을 다짐하고 싶었다.

교회는 현실 정치를 훈수해서는 안 된다. 정도(正道)를 설교할 뿐이다. 다른 가치를 선포할 뿐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치인은 교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실현해 내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 교회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 그러나 바른 예언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다. 나는 그때 이런 보수주의자였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우리는 바야흐로 20세기의 종착점에 이르러 있다. 그리고 계절로 보면 예수 오심의 의미를 다시 새기고 우리를 고쳐 세우는 대강절에 들어와 있다.

우리는 참으로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다. 지난 몇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격동의 복판에 있다. 이 변화, 이 격동의 진실이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의 목표점, 혹은 끝점은 과연 하나님의 나라일까?

도대체 20세기란 인류에게 무엇이었나? 인류에게 무엇이었던가라고 표현했지만 이런 식의 자문은 진실을 추상화시킬 위험이 있다. ‘나에게, 우리 민족에게, 가진 자인 나에게, 못 가진 자인 나에게 무엇이었느냐’고 자문해야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전체를 놓고 보면 정의를 향해 발전한 한세기였다. 그러나 20세기 내내 강대국의 반동이 있었다. 전반기에는 무력으로, 후반기에는 이데올로기로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다스렸다. 각각 명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피지배국의 자리에서 보면 그것은 부정의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우리는 20세기 전반기를 식민지로, 후반기를 민족 분단으로 고통을 강요당했고 지금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파쇼주의의 퇴치나 반공이라는 명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서 죽임을 당한 개인이 얼마며, 그들에게 그것을 최고선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차라리 강대국들의 세계 지배의 수단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을 향한 반동이었다. 여기서 인권의 문제가 대두되게 되었던 것이다.

무력의 지배도, 이데올로기의 지배도 반세기를 넘기지 못했다. 무력화되고 말았다. 이것은 역사의 발전이다. 하나님께서 지배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의 행사요 하나님의 구원사다. 인간의 반동을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이다.

지금 세계는 무력의 시대가 아니다.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도 아니다. 지금 세계를 갑자기 지배하고 있는 철학은 ‘신자유주의’다. 그 수단은 세계화며 자유 시장경제며 국제 경쟁력이며 무한 경쟁이다. 이것들은 신자유주의의 규칙들이다

모든 조직은 경쟁력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품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품질 향상으로만은 부족하다. 원가를 절감해야 한다. 그래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능이 뒤지는 노동자는 물론이고 기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산성 제고를 위해서 퇴출을 강요받게 된

다. 이러한 강압에서 비켜설 수 있는 조직은 없다. 말하자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이 파도에 휩쓸려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20세기의 전쟁 그리고 이데올로기 갈등 속으로 모두가 내몰렸던 것과 같다.

어떻게 하면 모든 조직이 다같이 승리할 수 있는 것인가? 모든 기업, 각각의 기업이 똑같이 인원을 감축하고, 생산성을 높이고 그래서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면, 그 모든 기업이 다같이 승리하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른바 win-win이 될 수 있는가?

무한 경쟁은 win-win을 보장하지 않는다. 모두의 승리를 끌어내 주는 룰이 아니다. 모두의 이김이 아니라 모두의 패배가 예약되어 있다. 설령 지금 경쟁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이긴 순간, 다음의 경쟁을 위해서 다시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 다시 구조 조정에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개인과 개인의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경쟁이 강요된다. 개인의 인격이나 가정의 보존이나 사회의 안정 따위는 고려되지 못한다. 퇴출당한 사람,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의 삶의 질은 심각하게 훼손당한다. 실직자의 자리에서 그 고통을 생각해 보라. 그 가정을 생각해 보라. 노숙자의 처지는 또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20세기의 끝점, 21세기의 초입에 선 우리는 이 불행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온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다. 다른 차원의 인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20세기 전반, 전쟁의 명분은 반파쇼였다. 그로부터의 인류의 해방이었다. 20세기 후반, 이데올로기 갈등의 명분은 반공, 혹은 반제였다. 그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지금의 세계화의 명분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의 종착점은 무엇인가? 무슨 해방인가? 해방이라는 명분을 타고 강대국들이 세계 지배 구조를 만들어 낸 그 반동은 없는 것인가?

얼마 전만 해도 ‘20:80의 사회’라는 개념은 지구 자원의 80%를  20%의 사람들이 소유하고, 반대로 80%의 사람들은 지구 자원의 겨우 20%로 살아가고 있다는 부정의를 고발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오게 될 것이라는 ‘20:80의 사회’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오직 20%의 사람들만이 일자리를 가지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고, 나머지 80%의 사람들은 실업자로 전락하게 된다는 뜻이다. 앞으로의 사회는 20%의 자기 실현 그룹과 그들에게 종속되는 80%의 종속군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세계는 이렇게 가고 있다.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오늘의 철학은 과연 정당한가? 자본주의의 세계화, 자유 시장경제, 무한 경쟁이라는 가치관은 정당한가? 우리가 갈망하는 하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것인가? 예수께 묻자. 하늘 나라는 무엇인가? 하늘 나라를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는가?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 세계화 등이 하늘 나라의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무어라고 대답하시는가?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고 하신다. 하늘 나라는 이러이러한 포도원 주인과 같다. 포도원 주인의 철학, 가치관과 실천이 있는 것이 하늘 나라와 같다는 말씀이다.

주인은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다. 하루에 한 데나리온으로 일꾼들과 합의하고 자기 포도원으로 보낸다. 9시에 다시 나가서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자 그들에게도 자기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한다. 12시와 오후 3시에도 그렇게 한다. 오후 5시에 나가 본다. 역시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왜 이러고 있느냐고 묻는다.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 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답이다. 주인은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라고 포도원으로 보낸다. 저녁이 되었다. 주인은 관리인에게 임금 지불을 지시한다. 맨 나중에 온 사람부터 시작하여 맨 처음에 온 사람들에게까지 품삯을 치르라 한다.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들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다. 맨 처음에 온 사람들은 자기들은 좀더 받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한 데나리온을 받게 된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지금 예수의 이 가르침의 주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주제는 ‘하늘 나라’다. 하늘 나라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다. ‘하늘 나라는 위의 포도원 주인과 같다.’는 것이 예수의 설명이다.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하늘 나라는 위에 말씀하신 사회와 같다는 것이다.

포도원 주인이 이루어 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원 고용이다. 전원 고용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늘 나라와 같다는 것이다. 근사치적 하늘 나라다. 능력 있는 사람만 일하게 되는 사회가 아니다. 일은 자기 실현의 기회다. 이 기회가 누구에게는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제외되지 않는다. 전원 고용이다.

포도원 주인의 특징적 행위는 공평한 생활급의 실현이다. 이것이 근사치적 하늘 나라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른 아침에 온 사람과 오후 5시부터 일한 사람 사이에 임금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에 익숙한, 경쟁에 익숙한 우리는 이런 상식에 이의를 가질 수가 없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은 하루의 생활비만큼 똑같이 나누어 준다.

포도원 주인의 의도가 더 중요하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의 보장이다. 모두가 함께 일하고 그것을 함께 기뻐하게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포도원이다.

모두가 일할 기회를 가지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함께 일하는 세상, 사회가 근사치적 하늘 나라다. 포도원 주인의 목적은 고용을 창출하는 데만 있지 않다. 생활급을 보장해 주고자 하는 데만 있지 않다. 좋은 포도원을 만드는 것도 동시적인 목적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좋은 세상,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하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데 장애가 되는 사람이 있다. 5시에 합류한 일꾼을 환영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눔을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눔의 기쁨이 없는 사람이다. 맨 먼저 오게 된 사람들은 주인에게 투덜거린다. ‘여러 악조건과 싸워 온 우리를 나중에 합류한 사람과 똑같이 대우한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온종일 빈둥거릴 수밖에 없는 사람의 고통과 그들이 일을 얻게 되었을 때의 감격을 알지 못한다. 그것을 공유할 여유가 없다.

그들의 신은 경쟁이다. 그들의 목표는 자신의 승리다. 남보다 잘됨이다.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가 아니다. 모두의 공동 승리가 아니다. win-win이 아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받아들일 준비와 여유가 없다. 이런 가치 의식을 불식하라고 포도원 주인은 그에게 요구한다.

오늘의 세계, 오늘의 사회는 예수의 가르침에 역행하고 있다. 20:80의 사회는 하늘 나라에 역행하는 것이다. 퇴출과 해고의 불안이 차 있는 사회는 하늘 나라에 역행하는 사회다. 삶의 질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는 하늘 나라에 역행하는 사회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의 대세다.

하늘 나라는 무엇인가? 저 포도원 주인과 같은 이상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여야 하겠다. 이 가치를 설교하자. 이 이상을 가르치자. 포도원 주인과 같은 사회 정신을 이루어 내자. 이것은 또다시 하나님의 주권의 실현이다. 20% 인간의 반동에 대한 하나님의 해방의 역사다. 이를 받아들이기 바란다. 작고 큰 실현이 있기를 바란다.

[디모데전서 4:1-8] 경건의 연습과 허탄한 신화 – 1998년 9월 22일, 김상근 목사

9월 20, 2026

경건의 연습과 허탄한 신화

디모데전서 4장 1-8절 / 공주세광교회 / 1998년 9월 22일


[회상 노트]

공주 세광교회가 교외 한적한 곳으로 교회를 옮기고 거기에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교회당을 건축했다. 그리고 이상호 목사의 담임목사 취임과 장로와 권사 임직식을 가진다. 특히 이 목사는 기거할 거처가 없는 장애우와 함께 사는 교회를 하겠다고 했다. 가상하고 고마웠다. 어느 목사가 이리 하겠다 하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했다. 사실 그랬다. 혹 이것도 위장된 반(反)성직자 수단이 되어서는 정말 안 되는데. 나는 진심으로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나를 그에게 비추어 부끄러움을 확인했다.

교회의 민중성 지속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개인이나 마찬가지로 신분 상승과 좀더 나은 조건을 얻기 위해 매진한다. 어떤 권(權)이라도 가지면 그것은 곧 민중 현실을 망각하는 지렛목이 되기 일수다. 가짐 - 성취와 잊음은 정비례한다. 가짐과 잊음은 정비례한다. 가짐과 민중성은 반비례한다.

나는 어느새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민중성 - 민중지향성을 배반하지 않으려고 몸부림했다. 나의 실존 깊이에서는 갈등하고 부딪힘이 깊었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세광교회가 세워진 지 14년이다. 드디어 교회당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다. 네 분의 권사님이 더해지고 첫 장로를 임직하게 되었다. 세광교회가 기어코 조직 교회가 되고 이상호 목사님께서 담임 목사로 취임하게 되었다. 세광교회 교인 여러분에게는 물론이요 여기 이 예배에 참예한 우리 모두의 감격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세광교회는 큰 교회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생명이 약속되어 있을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교회당 하나, 우람한 교회당 하나 갖지 못한 주제에 불우 아동 선교니 장애인 선교니 개척 교회 지원이니 해외 선교니 문서 선교니 하면 교인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오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여기에 생명이 약속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 경건 자체에 미치지는 못했을지라도 경건의 훈련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망령되고 허탄한 관심을 물리치고 있기 때문이다. 경건함에 이르도록 자기를 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금 봉독해 드린 디모데에게 보낸 첫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쓰고 있다.

“그대는 믿음의 말씀과 그대가 지금까지 좇아온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아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될 것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물리치십시오. 경건함에 이르도록 자기를 훈련하십시오. …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세광교회와 이상호 목사 그리고 이 교회 교인 여러분이 오늘의 이 교회를 이렇게 지속하고 있는 것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거부해 온 것이다. 그것은 경건에 이르도록 자기를 훈련한 것이다. 여러분의 경건 훈련은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줄 것이다.

목사는 목회자다. 목회자란 어떤 기능을 전제한다. 교회 교인들을 잘 돌보고 그 교인들을 잘 조직하여 교회를 크게 하는 전문 교회 경영자를 연상하게 한다. 성공한 목사라 할 때는 교회를 크게 성장시킨 목사라는 뜻을 가진다. 교회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평신도들도 목사에게 교회 성장을 요구한다. 신학교 교수들도 교회를 성장시키는 능력과 기술을 가르치도록 요구받고 있다. 순수 신학을 강의하는 선생님은 “선생님, 선생님이 지금 가르치시는 내용은 현실 교회에 적합하지 않습니다.”라는 핀잔을 학생들로부터 받는 일이 허다하다.

세태가 이러하니 우리 목사들은 교회의 성장에 급급하게 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가끔 성공한 목사들을 만난다. 대교회 목사다. 그 교회에 가서 설교하기도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주님께서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을 꾸짖으신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이 하는 행실은 모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 잔치에서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즐기고, 장터에서 인사 받기와 사람들이 자기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기를 즐긴다. …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채운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마 23:25-28).

저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에게서 보게 되었던 행태를 오늘날 우리 목사들에게서 보게 되지 않는가? 좀 그럴듯한 일을 하게 되면 세상에 나팔을 분다. 수재민을 돕는 헌금도 사진 찍어 방송하는 데를 골라낸다. 어떤 모임에서나 높은 자리를 탐낸다. 좀 이름 있다 하는 목사들은 그러하다.

어느 집회에서 목사들이 다투어 단상 의자를 차지하고 앉는 바람에 정작 기도를 맡은 목사님은 일반 회중석에 앉았다가 기도하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인사받기를 즐기고 먼저 인사하려 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것도 ‘나, 기도한다.’라고 광고한다. 섬기려 하지 않는다. 더구나 종이 되려 하지도 않는다. 거만하고 탐욕스럽고 방자하다. 이런 행태가 우리 목사들, 특히 유명하다는 목사들에게 있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인가? 그렇게 거드름을 피워야 인정받는다. 유명해진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지도자들을 가리켜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하신다.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 네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아라. … 너는 자선을 베풀 때에는, 네 오른손이 무엇을 하는지를 네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마 6:1-4).

“너희는 금식할 때에 … 슬픈 기색을 나타내지 말아라. …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지 말고, 보이지 않는 데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서 보시게 하여라”(6:16-18).

“너희 사이에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20, 24, 28절).

이런 목사, 이런 장로, 이런 권사, 이런 교회를 주님께서는 찾고 계신다. 의로운 일을 하되 남에게 보이 려는 의도를 갖지 않는다. 자선을 베풀어도 아무도 모르게 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 기도할 때도 조용히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게 한다. 섬기고 종이 된다. 이런 지도자를 찾는다. 결코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왜 그럴까?

그렇게 해 가지고는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큰 교회, 재력 있는 교회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일까? 이것이 우리의 경험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나팔을 불지 않는 목사는 인정을 받지 못하기 일쑤다.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 목사는 인정을 받지 못하기 일쑤다. 탐욕을 부리고 방자하게 굴어야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성직자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리하지 않으려 하는 애씀이 경건의 연습이다. 경건의 훈련이다. 허탄한 신화를 버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상호 목사는 경건을 애써 훈련하고 연습하는 것을 나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목사는 전문 경영인이기에 앞서 종교인이요 신앙인이다. 그에게 깊음이 있고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 생명이 있어야 한다.

오늘 장로로 임직하게 되는 장진배 집사님, 권사가 되시는 네 분 집사님, 이 교회를 사랑하라. 그리고 목사님을 존경하라. 큰 교회를 요구하기보다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 가라. 경건의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준다.

[마태복음 4:17] 회개와 역사의 전진 – 1998년 8월 6일, 김상근 목사

9월 20, 2026

회개와 역사의 전진

마태복음 4장 17절 / 5ㆍ18구속자석방기도회 / 1998년 8월 6일


[회상 노트]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의 첫 조각이 우리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종필 씨를 국무총리로 삼겠다고 했을 때 우리 모두는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건국 이래 선거에 의한 첫 정권 교체에 거는 국민,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 민주화 세력의 기대에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국민의 정부’는 개혁으로 가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DJP라고 하는 연합으로 탄생한 정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절대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김대중의 ‘대중경제’를 펼 조건이 못 되었다. 아마 ‘대중경제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의 실의는 깊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오랜 연구 소산이요 신념이었다. ‘국제금융기구’(IMF)의 도움과 그들이 내놓은 요구를 수용해서야 그 국가 부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핵심적 요구는 신자유주의 수용이었다. 과거 청산은 고사하고 양심수 석방조차 녹녹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권이 하는 일이 도무지 못마땅했다. 그러나 나는 정권의 한계와 대통령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나는 우리 민주화 세력과 정권 사이에 서서 당기고 밀고 끌면서 우리가 기대하고 바랐던 우리의 비전을 현실화시키고자 애썼다. 혹은 정권을 힐책하고, 혹은 격려하고, 혹은 싸우고, 혹은 대화했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거의 반년이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8ㆍ15 광복절에 양심수를 크게 석방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정보는 그렇지 않았다. ‘구속자 석방을 위한 기도회’를 다시 하자 한다. 착잡했다. 날 더러 설교하란다. 설교했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기독교의 역사관은 궁극적으로는 낙관론이다. 그러나 역사는 잘못된 것을 청산함으로 전진한다. 역사에 있어서의 청산을 우리 기독교 언어로 말하면 ‘회개’다. 방금 봉독한 말씀,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는 무슨 뜻인가? 하늘 나라가 다가왔으니 회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회개함으로 하늘 나라가 다가오는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하늘 나라란 언제나 코앞에 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그 하늘나라는 없는 것이다.

오늘의 잘못된 역사를 청산할 때 역사는 전진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의 전진은 없다. 역사에는 시(是)와 비(非)가 언제나 함께 있기 마련이다. 모든 것이 몽땅 옳은 현재도 없고, 몽땅 그른 현재도 없다. 시와 비가 함께 있다. 시를 세우고 비를 청산하는 것이 역사의 창조요 전진이다.

우리는 건국 50년 동안 역사의 청산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건국 초기의 역사의 청산은 무엇이었나? 독립투사, 일제에 항거했던 민초들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었다. 일제 아래에서 그들은 억압을 받아야 했고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들을 제 값으로 평가하는 것이 해방이었어야 했다. 그것이 회개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던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정치적 조건의 불가피성이 그것이었다. 친일 세력이 온 나라를 틀어잡고 있었다. 사회, 경제, 문화, 사법, 교육, 종교, 체육, 어떤 영역도 그들의 손 밖에 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들을 제쳐놓고 나라를 세울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는 두려움을 가질 만했다. 그래서 일본 저항 세력을 나라의 중심에 세우지 못하고 친일 세력, 부일 세력을 역사의 주역이 되게 했던 것이다.

이 나라 역사의 전진이었을 리가 없었다. ‘시’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고 ‘비’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 회개가 없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올 수 없었다. 청산하면, 회개하면, 거기, 바로 거기에 있을 하늘 나라를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역사는 5ㆍ16으로 이어졌고 5공, 6공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역사의 회개를 위한 투쟁이었다. 정권 교체를 갈망했던 것은 역사의 청산, 하늘 나라를 여기에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건국 50년 만에 처음으로 정권의 교체를 이루어냈다.

현 정권은 많은 역사 청산을 시도하고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구속자를 석방하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소 자기가 집권하면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겠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나는 평소에 밝혀 왔던 그의 소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1. 나는 비전향 장기수들은 모두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냉전 시대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직 지나가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 한다면 지나가게 해야 한다고 내 표현을 정정하겠다. ‘비전향 장기수’는 지난 시대의 유물이다. 새 시대를 열려고 한다면 지난 시대의 유물은 벗어 던져야 한다.

2) 그들은 모두 장기수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나이가 많아졌다. 구속 당시의 그 사람이 아니 다. 30년, 40년을 철장 속에 가두어 둔다는 것은 비인도적이다. 어느 나라든 장기수가 있다는 것은 그 나라의 부끄러움이다. 역사가 변화하지 않고 그 세력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3) 비전향자니, 전향자니 하는 것이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시대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는 사상의 자유를 감당할 만큼 힘을 가졌다. 물론 사상의 자유가 곧 범법의 자유는 아니다. 나와 다른 사상을 범법으로 몰던 시대는 청산해야 한다.

4) 더구나 날조된 사상범이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가 아닌데 공산주의자로 몰린 것도 억울한데, 그래서 10년 이상씩이나 옥살이를 한 것도 억울한데, 공산주의자였는데 이제는 돌아섰다고 하라니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성공회대학교의 신영복 교수도 이른바 비전향 장기수다. 그러나 그는 건강한 시민, 건강한 국민, 국민을 지도하는 지도자의 삶을 살고 있다. 한 사람의 양심의 자유라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회개요 청산이다.

모든 비전향 장기수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석방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여기에 다가온 하늘 나라를 활짝 열게 되기를 바란다.

2. 모든 양심수는 조건 없이 석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지난 시기의 양심수는 피동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실정법을 어겼다고 하더라도 그 시기의 정치 상황이 그렇게 몰고 간 바가 없지 않다.

지난 시기에 당국의 허가 없이 북한으로 달려간 학생들이 있었다. 많은 경우 반통일적인 정부와의 투쟁 수단이었다. 북한을 다녀온 젊은이들을 만나보라. 그것은 대정부 투쟁이었지 사상적 행동은 아니었다. 폭력을 행사한 경우도 그렇다. 상황이 폭력을 유도했고 폭력 행사가 불가 피하다고 판단케 했던 바가 없지 않았다. 양심수로 분류되는 모든 구속자를 석방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역사의 청산이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그들이 바뀐 시대, 바뀌어야 하는 시대에서도 그대로 감옥에 있다면 해방 후의 역사적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다. 석방은 회개다. 청산이다. 다가와 있는 하늘 나라를 활짝 열게 되기를 바란다.

3. 이른바 준법 서약서 제출을 석방의 조건으로 하는 것을 나는 반대한다.

전향서를 폐지한 것은 잘한 것이다. 또 마음에도 없는 글을 일정한 양식에 따라 쓰게 하던 것을 폐하고 자유롭게 쓰되 준법하겠다는 내용을 담으면 된다고 한 것도 잘한 것이다.

1) 그러나 준법 서약서 요구는 양심수들에게 갈등을 일으킨다. 법을 어긴 적이 없는데, 따라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괴로워하는 그에게 앞으로는 법을 지키겠다는 뜻의 글을 쓰라는 것은 양심의 갈등을 일으킬 뿐이다. 전향서를 쓸 이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전향서를 쓰게 되었을 때 일으키는 갈등과 같은 것이다. 민주화의 동지들에게 훈장을 주지는 못할 망정 괴로운 덫을 씌울 수는 없다.

2) 동지들 사이에 분열이 생기게 한다. 쓴 사람과 쓰지 않은 사람을 갈라놓는다. 자칫 쓴 사람은 투항자요 쓰지 않은 사람은 지사라는 분열 구조가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동지들을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소지를 제공한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3) 물론 나는 기회가 있는 대로 양심수들에게 준법 서약서를 쓰고 나오라고 권한다. 준법 서약서 요구는 잘못된 것이나 그 동기는 풀자는 것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준법 서약서라도 받지 않으면 석방할 수가 없는 현실이고 그리되면 개혁의 가능성도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양심을 억압하자거나 괴로움을 주자는 발상으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되면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한다.

비전향 장기수와 양심수의 전원 석방, 준법 서약서의 철폐를 온전하게 이행하지 못하는 정부의 한계를 한편 이해한다.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박준규 씨를 국회의장으로 세우고, 김종필 씨를 총리로 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무엇인가? 박준규 씨가 국회의장에 당선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총리의 인준을 바라는 마음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국민의 현실이다. 국민의 판단이다. 국민의 표다. 갖가지 선거에서 유신 본당과 국민회의가 손을 굳게 잡고서야 유신 잔당을 이길 수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아직 국민의 다수는 개혁의 편이 아니다. 보수의 편이다. 자민련 없는 김대중 정권은 금새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나는 이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탄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기술을 용인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회개를 미루면 안 된다. 척결을 주저하면 안 된다. 개혁을 포기하면 안 된다. 지난 시기의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는 것이 시대의 회개다. 역사의 척결이다. 그것이 양심수 개혁이다. 현실을 내세워 저 건국 초기와 같이 친일, 부일 세력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집권 5년 내내 반개혁 세력의 볼모로 지난다면 정권 교체의 의미는 크게 퇴색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주장이 현실성 없는 주장으로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또한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1천만 기독 신자들을 개혁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오늘의 우리 성직자들의 몫이다. 교인이 개혁으로 나아가고 그것을 토대로 국민을 변화시켜야 한다. 국민을 변화시키는 일도 우리의 몫이다. 국민이 개혁을 지지하게 하는 일도 우리의 몫이다. 이 정부가 개혁으로 가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일도 우리의 몫이다. 이 몫을 우리가 감당하지 않으면 결국 친일, 부일 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반개혁 세력과 엉거주춤한 동거를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초의 정권 교체는 의미 없이 깃발을 내리고 말 것이다.

우리는 오늘 구속자 석방을 기도하고 외친다. 그러나 그것은 구속자 석방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하늘 나라-역사의 전진-역사의 창조를 목표로 한다. 구속자 석방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역사 창조로 이어질 때, 하늘 나라로 이어질 때 더 온전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전진을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되 개혁으로 가고, 그렇기에 그 정부를 국민이 지지할 수 있게 만들자. 이것 은특정인을 지지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역사를 전진케 하자는 것이다. 철저한 회개가 현실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할 때 역사는 전진한다. 그럴 때 ‘국민의 정부’다. 그것이 회개다. 하늘 나라가 다가와 있다.

김상근 목사 연보(年譜)

1939년 10월 22일(양)에 전라북도 군산(群山)에서 김한준(金漢俊) 씨와 신영춘(辛泳春) 씨의 3남 중 차남, 6남매 중 다섯째로 출생 1946년 3월 군산초등학교 입학 1950년 6ㆍ25 한국전쟁 중 부친, 북의 정치보위부에 체포 10월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