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4] 아모스의 生涯[생애]와 그 豫言[예언]

아모스의 生涯[생애]와 그 豫言[예언][1]

「落穗[낙수]」
1933년 3월 10일[2]


[원문 요약]


이 글은 1933년 김재준 목사가 구약성서의 인물 아모스의 생애와 예언을 조명한 글이다. 아모스는 드고아 출신의 목자이자 뽕나무를 기르는 가난한 평민이었으나, 타락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현실을 목도하고 예언자로 부름받게 된다. 당시 북왕국은 여로보암 2세 치하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렸으나, 이면에는 사치와 향락, 가난한 자에 대한 착취, 그리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은 불의에 침묵하고 의식주의에 빠져 기복적인 ‘여호와의 날’만을 맹목적으로 갈망했다. 이에 아모스는 벧엘로 나아가 타락한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고하고, 정의를 강같이 흐르게 하라는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한다. 이 글은 아모스가 외친 ‘하나님의 의, 사람의 죄악, 심판’이라는 세 가지 중추를 강조하며, 불의한 시대에 공의를 위해 투쟁한 예언자의 용기를 본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선포해야 함을 역설한다.


[원문 소개]


1


南王國[남왕국]의 首都[수도] 예루살렘의 南方[남방] 約[약] 十二哩[12리], 드고아의 曠野[광야]는 참으로 거친 高原[고원]이다. 2,888척[3]의 높은 지대 南西北[남서북]은 石灰巖[석회암]으로 된 山[산]들로 가로막히고 오직 동쪽만이 틔여서 十五哩[15리]나 되는 荒凉[황량] 그대로의 傾斜地[경사지]가 死海[사해]의 골짜기에 잠기고 말았다. 咀呪[저주]의 바로 다음 洞里[동리]에 사는 것 같은 느낌, 죽음과 삶의 사이가 너무나 가는 線[선]으로 가로막혀 있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곳이 곧 여기인가 한다.

여기에서 羊[양]치는 기운찬 野人[야인] 하나 넓게 발아래 널리고 뭉키고[4] 한 沙漠[사막]의 丘陵[구릉]들을 밟고 다닐 듯이 노려볼 때 그의 가슴은 난대로의 覇氣[패기]로 가득찼을 것이다. 그러나 死海[사해] 골짜구니로 치밀어 오는 濃霧[농무]섞인 찬바람[5]이 그의 몸을 소름끼치게 하고 그의 눈을 어둡게 할 때 그는 「白晝[백주]를 變[변]하여 어두운 밤이 되게 하며 바닷물을 불러 올려 땅위에 퍼붓는』(5:8)[6] 여호와의 앞에 꿇어 업디여 지극히 弱[약]한 것은 人生[인생]이라고 嘆息[탄식]섞인 讚歌[찬가]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다가 저 死海[사해] 건너편 모압의 山[산]머리들이 灰色[회색]을 띄고 於焉[어언]에 太陽[태양]이 그 막힘을 뚫고 솟아올라 그의 발아래에 燦爛[찬란]한 빛의 물결을 넘치게 할 때 그는 메시아의 새 王國[왕국]을 마음에 그리고 所望[소망]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2


아모스 그는 羊[양]치고 뽕나무[7] 기르는 한 가난한 牧者[목자]였다. 그러나 그는 이 荒凉[황량]한 高原[고원]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祖上[조상] 아부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모세를 보내어 애굽에서 自己[자기] 백성을 건져내신 힘있고 義[의]로우신 하나님 여호와와 더 가까이 이야기 할 수도 있었으며 깊이 고요히 瞑想[명상]에 잠기는 特權[특권]도 가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때때로 羊[양]털 팔러나 또는 무슨 다른 일로 北王國[북왕국]의 都市[도시] 벧엘이나 브엘쉬바 等地[등지]에 다니러 내려간다면 그의 눈에 비취이는 것, 귀에 울리는 것, 어느 것 하나 悖惡[패악]과 不義[불의] 아님이 없었을 것이매 그의 가슴에 가득찬 것은 오직 의분, 분개의 念[념]뿐이었을 것이다.

위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아래로 世上[세상]을 살필 줄 알고 그 둘의 因果[인과]를 宣明[선명]할 수 있는 이가 곧 豫言者[예언자]의[8] 資格[자격]을 가진이 일 것이니 이에 아모스는 自己[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豫言者[예언자]로서의[9] 準備[준비]를 쌓아가는 것이었는가 한다. 때에 前[전]에 없던 地震[지진], 饑饉[기근], 旱災[한재], 霜災[상재], 風災[풍재], 疾病[질병] 等[등] [4:6~10 參照[참조]] 죽음의 그림자가 뒤를 이어 닥쳐오는 것을 본 그는 普通[보통]사람처럼 그저 尋常[심상]하게[10] 지낼 수는 없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았을진대 城邑[성읍]에 災殃[재앙]이 내리겠느냐』(3:4~6 參照[참조]]고-그의 心神[심신]은 오로지 하나님께로만 쏠리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親[친]히 나타나시었다. 그에게는 異象[이상 Vision]이 이엄이엄[11] 나타나 보이였다. - 땅위에 온갖 蔬菜[소채][12]를 말끔히 갉아먹는 황충의 幻象[환상](7:1, 3)[13] 바다를 삼키고 땅을 먹으려는 무서운 불길(7:4, 5)[14] 等[등] 審判[심판]의 그림자가 歷歷[역력]히 보였으나 아모스의 請[청]대로 主[주]께서 아직 멈추신 것을 그는 감사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다림줄(準繩[준승])의 異象[이상](7:7~9)[15] 여름 實果[실과]의 異象[이상](8:1~3)[16]을 보았을때 그는 여호아의 굳은 뜻을 살폈다. 삐뚤어진 城壁[성벽]이 무너질 것과 爛熟[난숙]한 實果[실과][17]가 떨어질 것은 避[피]할 수 없는 運命[운명]인 것처럼 이미 삐뚤어지고 썩어서 主[주]앞에 不義[불의]와 亂倫[난륜]만 뵈이고 있는 北王國[북왕국]의 運命[운명]은 오직 무너짐과 終末[종말]을 告[고]할 것밖에 다른 것이 없음을 確信[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호와의 입으로 親[친]히 하신 이 消息[소식]을 들은 아모스는 敢然[감연]히 일어나 羊[양]의 무리를 뒤에 남기고 山[산]을 내려가 벧엘의 群衆[군중] 앞에 그 굳센 들 사람의 雄姿[웅자][18]를 나타내었다.


「獅子[사자]가 高喊[고함] 쳤거니
누가 무서워 하지 않을 것인가?
主[주] 여호와가 말씀하셨거니
누가 豫言[예언]하지
[19] 않을 것인가?」
- 3:8[20]


3


그러면 아모스의 눈에 비친 亡[망]할 수 밖에 없는 當時[당시]의 社會相[사회상]은 果然[과연] 어떠한 것이었던가? 앗시리아 大帝國[대제국]이 自國內[자국내]의 叛亂[반란]을 鎭靜[진정]시키느라고 그 南下政策[남하정책]을 잠깐 停止[정지]한 동안 北王國[북왕국]의 名君[명군] 여로보암 二世[2세]는 當時[당시] 疲廢[피폐]한 시리아 王國[왕국]을 逆襲[역습]하여 連戰連勝[연전연승]의 勢[세]로 前[전]에 잃었던 國土[국토]를 全部[전부] 恢復[회복]하고 後人[후인]에게 이스라엘의 救主[구주]라는 稱[칭]까지 듣게 되었다(王下[왕하] 14:27). 그리하여 政治的[정치적] 軍事的[군사적] 勝利[승리]는 物質的[물질적] 經濟的[경제적] 豊足[풍족]을 招來[초래]하였으며 따라서 사마리아는 前古[전고] 未曾有[미증유]의 「好景氣[호경기]」를 呈[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小國民[소국민]으로 氣運[기운]펴지 못하고 살던 者[자]들이 갑자기 돈 많아지고 뽑내게 되는 때 그들의 마음은 常態[상태]를 잃고 物質[물질]의 洪水[홍수]에 빠져 덤벙거리게 되었다.


「月朔[월삭]이 언제나 지날까.
우리가 곡식을 팔련다.
安息日[안식일]이 언제나 지날까.
우리는 밀을 내련다.
에바는 적게 세겔은 크게
그리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자.
銀[은]으로 가난한 者[자]를 사고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자.」
- 8장 5, 6절
[21]


이렇게 純利己的[순이기적] 動機[동기]로 手段[수단]도 方法[방법]도 가릴 것 없이 「돈」 벌기에만 汲汲[급급]한 그들은 그 모은 돈을 어떻게 쓰며 어떠한 生活[생활]을 하였는가? 저들은 여름의 避暑[피서], 겨울의 避寒[피한]을 爲[위]하여 훌륭한 石造殿[석조전]을 지어놓고(3:15)[22] 가장 貴[귀]한 香油[향유]를 몸에 붓고(6:6)[23] 다메섹 비단 방석을 깔고(3:12)[24] 象牙寢床[상아침상]에 몸을 지키며(4:4)[25] 食卓[식탁]에 山[산]같이 쌓인 어린 羊[양] 어린 송아지의 珍味[진미]도 그들의 食味[식미]를 滿足[만족]시키기에는 오히려 不足[부족]했던가 봐서(6:4)[26] 미친 피가 血管[혈관]에 넘쳐 흐름을 따라 대접으로 술을 마시고(6:6)[27] 거문고에 맞추어 野卑[야비]한 노래를 부르며(6:5)[28] 간곳마다 祭壇[제단] 옆에 典當[전당] 잡은 옷을 펴고 그위에 드러누워 罰酒[벌주]를 痛飮[통음]하고 甚至於[심지어] 아비와 아들끼리 한 女人[여인]에게 淫行[음행]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2:7, 8)[29] 말하자면 義理[의리]도 廉恥[염치]도 없고 오직 情慾[정욕]과 放縱[방종]을 마음껏 享樂[향락]하려는 것이 當時[당시] 支配階級[지배계급]의 生活相[생활상]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富[부]와 地位[지위]와 名譽[명예]를 가졌다. 그러나 어떻게? 아모스의 날카로운 눈에는 背後[배후]에 움직이는 骸骨[해골]의 무리가 歷歷[역력]히 비쳤다.

저들은 가난한 者[자]를 짓밟고 그 밀을 徵發[징발]하다시피 하였으며(5:11)[30] 義人[의인]을 虐待[학대]하며, 賂物[뇌물]을 받고 궁핍한 者[자]의 裁判[재판]을 억울하게 처리하며[31] 불공평한 도량형으로 賣買[매매]의 分量[분량]을 속이고(8:5)[32] 어려운 이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여 헐떡어리며(7:7)[33] 오직 暴惡[포악]과 劫奪[겁탈]로 그 宮[궁]을 채운(3:10)[34] 것이었다. 即[즉] 그네들은 가난한 이의 피, 賤[천]한 이의 살로 그 배를 불리며 그 집을 넓혔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現狀[현상]을 본 當時[당시]의 所謂[소위] 여호와를 믿노라는 宗敎家[종교가]들은 어떠한 態度[태도]를 가지고 있었던가? 가장 점잖고 知慧[지혜] 있는 者[자]라는 이들은 「때가 惡[악]하니 말해 무엇하랴」는 傍觀[방관], 獨善[독선], 沈默主義[침묵주의]를 지켰으며(5:13[35] 參照[참조]) 그 아래 普通[보통] 宗敎家[종교가]라는 祭司[제사], 官屬豫言者[관속예언자]의 무리는 오직 官僚的[관료적]이오 職業的[직업적]이어서(7:7~17 參照[참조]) 支配階級[지배계급]의 擁護役[옹호역] 以外[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從來[종래]의 非倫理的[비윤리적] 原始宗敎[원시종교]의 神學[신학]을 支持[지지]하여 富[부]와 榮譽[영예]는 여호와의 祝福[축복]의 結果[결과]요 貧[빈]과 賤[천]은 여호와의 咀呪[저주]의 結果[결과]이매 「誰怨誰咎[수원수구]」[36]리오 하는 態度[태도]를 가졌으며, 特[특]히 여호와의 選民[선민]인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도움으로 國富兵强[부국병강]하여 國土[국토]가 해맏 入口[입구]로부터 아라바 海[해]까지 넓혀졌으니 이것은 더 크고 더 놀랠만한 大勝利[대승리]의 날 即[즉] 「여호와의 날」에 對[대]한 前兆[전조]라 하여 「여호와의 날」 「여호와의 날」하고 말끝마다 主[주]께서 더 큰 富貴[부귀], 더 큰 侵略[침략]을 보여줄 「여호와의 날」을 함부로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의 祭壇[제단]에 祭物[제물]까지 바치기를 더욱 힘쓰라. 그리하여야 「여호와의 날」에 더 큰 富貴榮華[부귀영화]를 누리리라. 「아침마다 祭祀[제사] 지내고 每三日[매삼일]에 十分之一[십분지일]을 드리며 누룩넣은 떡을 불살라 酬恩祭[수은제]를 지내고 즐겨 드리는 祭祀[제사]를 전파하여 밖에 광포하라」(4:4, 5)[37]하는 即[즉] 祭祀[제사], 儀式主義[의식주의]를 함부로 高潮[고조]하여 그 들어오는 祭物[제물]로 自己[자기]네의 먹을 것을 불리는 것이 그네들의 能事[능사]였다.


4


이리하여 道德[도덕]과 倫理[윤리], 宗敎[종교]의 神聖[신성] 等[등]은 이미 땅에 떨어진지 오래고 義[의]와 眞理[진리]는 설 곳이 없게 되었을 때 어느 가을의 大祭日[대제일], 數千[수천]의 群衆[군중]이 벧엘의 祭壇[제단]을 둘러싸고 새 葡萄酒[포도주]에 얼근한 눈을 들어 뭉게뭉게 떠오르는 燔祭[번제]의 煙氣[연기]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난데없는 村[촌]사람 하나 群衆[군중]앞에 나서서 猶太[유태] 사투리로 「이스라엘의 輓歌[만가]」를 불렀다.


『處女[처녀] 이스라엘이 넘어짐이여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거꾸러져 自己[자기]땅에 늘어짐이여
부둥켜 일으켜줄 자 하나 없도다.』
[38]


이것이 그가 없어져 가는 北王國[북왕국]의 最後[최후]를 吊喪[조상]하는 쓰린 輓歌[만가]였다. 이어서 그의 입에서는 列邦[열방]과 및 南北王國[남북왕국]의 罪[죄]에 對[대]한 主[주]의 審判[심판]이 날카롭게 쏟아져 나왔으니(9:1~4 參照[참조]) 이 靑天霹靂[청천벽력]의 宣告[선고]를 받은 群衆[군중]들은 물 끓듯 뒤숭거렸을 것이며 더군다나 벧엘의 祭司長[제사장], 아맛시아[39]는 놀랜 나머지 一更[일경] 王[왕]에게 秦上[진상]하고 한편으로는 直接[직접] 아모스를 向[향]하여 「가서 유다땅으로 逃亡[도망]하여 거기서 밥을 먹고 頂言[정언][40]하라」(7:12)[41]고 命令[명령]하는 等[등] 愴惶罔極[창황망극][42]이었던 것이다. 이에 對[대]한 아모스의 對答[대답] 「나는 本來[본래] 先知者[선지자]도 아니며 先知者[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오. 나는 本來[본래] 牧者[목자]요 뽕나무 培養[배양]하는 者[자]로라」(7:15)[43]한 것은 自己[자기]가 職業的[직업적] 豫言者[예언자]들과[44] 그 類[유]를 달리함을 隱然中[은연중]에 諷刺[풍자]한 것이다.


5


우리는 아모스가 前後[전후] 몇 번이나 벧엘에 나타나 豫言[예언]하였는지[45] 알 수 없으나 그의 直裁簡易[직재간이]한 豫言[예언]은[46] 그 範圍[범위]가 넓어서 다메섹(1:3~5) 불네셋(1:6~8) 드로(1:9, 10) 에돔(1:11, 12) 암몸[47](1:13~15) 모압(2:1~3) 유다(2:4, 5) 및 北王國[북왕국]에 일일이 關聯[관련]되었으며 特[특]히 北王國[북왕국]에 있어서는 政治家[정치가], 實業家[실업가], 宗敎家[종교가], 一般庶民[일반서민] 等[등]에 一如[일여]히 論及[논급]되었다.[48] 

그리고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는 無智[무지]한 宗徒[종도][49]들에게는 그날이 勝利[승리]와 榮譽[영예]의 날이 아니라 「暗黑[암흑]이오 빛이 없는」(5:18)[50] 날 即[즉] 온갖 罪[죄]에 對[대]한 報復[보복]의 날임을 警告[경고]하였다.

「하나님의 義[의]」 「사람의 罪惡[죄악]」 「審判[심판]」, 이 셋은 아모스 豫言[예언]의[51] 세 가지 中樞[중추]이며 서로 連結[연결]된 고리(環[환]이다.


「公道[공도]는 물같이 흐르고
正義[정의]는 찌지않는 江[강]같이 (흐르게) 하라」 - 5:24
[52]-


는 것이 아모스의 渴望[갈망]하는 바였다.


그는 참으로 「義[의] 思慕[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름같이 한 者[자]」였다. 그는 온 世上[세상]의 政治[정치], 經濟[경제], 宗敎[종교], 敎育[교육] 等[등]의 모든 關係[관계]가 하나님의 義[의] 위에 세워지고 運行[운행]하여 지기를 바라고 그를 爲[위]하여 싸우다가 그를 爲[위]하여 죽은 者[자]이다.

이제 우리는 이 不義[불의]로 가득찬 世代[세대]에 있어서 이 義[의]의 豫言者[예언자]의[53] 勇氣[용기]를 부러워함과 同時[동시]에 이 豫言者[예언자]의[54] 義[의]를 이루어주신 그리스도의 義[의]만을 宣布[선포]하며 그를 爲[위]하여 奮鬪[분투]하며 또 生命[생명]을 버림이 마땅할 것인가 한다.


[키워드 정리]


1. 아모스의 배경과 환상 (Background and Vision of Amos)

  • 드고아 (Tekoa)
    원문: “드고아의 曠野[광야]는 참으로 거친 高原[고원]이다.”
  • 목자 (Shepherd)
    원문: “아모스 그는 羊[양]치고 뽕나무 기르는 한 가난한 牧者[목자]였다.”
  • 예언자 (Prophet)
    원문: “아모스는 自己[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豫言者[예언자]로서의 準備[준비]를 쌓아가는 것이었는가 한다.”
  • 다림줄 (Plumb Line)
    원문: “나중에 다림줄(準繩[준승])의 異象[이상] ... 을 보았을 때 그는 여호아의 굳은 뜻을 살폈다.”
  • 여름 실과 (Summer Fruit)
    원문: “爛熟[난숙]한 實果[실과]가 떨어질 것은 避[피]할 수 없는 運命[운명]인 것처럼 ... 終末[종말]을 告[고]할 것밖에 다른 것이 없음을 確信[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2. 북왕국의 시대상과 사회적 타락 (Social Context and Corruption of the Northern Kingdom)

  • 여로보암 2세 (Jeroboam II)
    원문: “北王國[북왕국]의 名君[명군] 여로보암二世[2세]는 ... 前[전]에 잃었던 國士[국토]를 全部[전부] 恢復[회복]하고”
  • 호경기 (Economic Boom)
    원문: “사마리아는 前古 未會有[미증유]의 「好景氣[호경기]」를 呈[정]하게 된 것이다.”
  • 거짓 저울 (False Balances)
    원문: “에바는 적게 세겔은 크게 그리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자.”
  • 상아 침상 (Beds of Ivory)
    원문: “象牙寝床[상아침상]에 몸을 지키며 食卓[식탁]에 산같이 쌓인 어린 羊[양] 어린 송아지의 珍味[진미]도 그들의 食味[식미]를 滿足[만족]시키기에는 오히려 不足[부족]했던가 봐서”
  • 뇌물 (Bribe)
    원문: “義人[의인]을 虐待[학대]하며, 賂物[뇌물]을 받고 궁핍한 者[자]의 裁判[재판]을 억울하게 처리하며”  

3. 종교적 부패와 심판의 선고 (Religious Corruption and Declaration of Judgment)

  • 종교가 (Religious Leaders)
    원문: “여호와를 믿노라는 宗教家[종교가]들은 ... 傍觀[방관], 獨善[독선], 沈默主義[침묵주의]를 지켰으며”
  • 여호와의 날 (Day of the Lord)
    원문: “더 크고 더 놀랄만한 大勝利[대승리]의 날 即[즉] 「여호와의 날」에 對[대]한 前兆[전조]라 하여 ... 함부로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 의식주의 (Ritualism)
    원문: “祭祀[제사], 儀式主義[의식주의]를 함부로 高潮[고조]하여 그 들어오는 祭物[제물]로 自己[자기]네의 먹을 것을 불리는 것이 그네들의 能事[능사]였다.”
  • 벧엘 (Bethel)
    원문: “數千[수천]의 群衆[군중]이 벧엘의 祭壇[제단]을 둘러싸고 ... 있을 때 난데없는 村[촌]사람 하나 群衆[군중]앞에 나서서 猶太[유태] 사투리로 「이스라엘의 輓歌[만가]」를 불렀다.”
  • 만가 (Dirge / Elegy)
    원문: “이것이 그가 없어져 가는 北王國[북왕국]의 最後[최후]를 吊喪[조상]하는 쓰린 輓歌[만가]였다.”  

4. 기득권과의 갈등 및 공의 선포 (Conflict with the Establishment and Proclamation of Justice)

  • 아맛시아 (Amaziah)
    원문: “벧엘의 祭司長[제사장], 아맛시아는 놀랜 나머지 ... 아모스를 向[향]하여 「가서 유다땅으로 逃亡[도망]하여 거기서 밥을 먹고 預言[예언]하라」고 命令[명령]하는”
  • 선지자 (Prophet)
    원문: “나는 本來[본래] 先知者[선지자]도 아니며 先知者[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오. 나는 本來[본래] 牧者[목자]요 뽕나무 培養[배양]하는 者[자]로라”
  • 하나님의 의 (Righteousness of God)
    원문: “「하나님의 義[의]」 「사람의 罪惡[죄악]」 「審判[심판]」, 이 셋은 아모스 豫言[예언]의 세 가지 中樞[중추]이며 서로 連結[연결]된 고리(環[환])이다.”
  • 공도와 정의 (Justice and Righteousness)
    원문: “公道[공도]는 물같이 흐르고 正義[정의]는 찌지않는 江[강]같이 (흐르게) 하라”
  • 그리스도의 의 (Righteousness of Christ)
    원문: “이 豫言者[예언자]의 義[의]를 이루어주신 그리스도의 義[의]만을 宣布[선포]하며 그를 為[위]하여 奮闘[분투]하며 또 生命[생명]을 버림이 마땅할 것인가 한다.”  




[각주]
1. 『신학지남』, 『낙수』, 『저작전집』에는 “預言[예언]”
2. 『신학지남』의 글 마지막에는 “(十月 十日)”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본 글이 『신학지남』1933년 11월호에 처음 실렸기 때문에 이 글은 1933년 10월 10일에 작성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3. 성서시대 ‘척(呎)’은 ‘규빗’을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888척은 2,888규빗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한 규빗이 45.6cm라고 보았을 때, 약 1,317m라고 할 수 있다.
4. ‘널리고 뭉키고’는 사막의 구릉(언덕)들이 넓게 사방으로 흩어져 펼쳐져 있으면서도, 곳곳에 뭉쳐 솟아 있는 이중적인 풍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표현이다.
5. ‘濃霧[농무] 섞인 찬바람’은 직역하면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낀 차가운 바람’이라는 의미이다.
6.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개역개정, 아모스 5:8).
7. 『신학지남』에는 “뽕나무(Fig-Mulberries)”. “뽕나무(Fig-Mulberries)”는 직역하면 ‘무화과-오디(뽕나무 열매) 나무’라는 뜻으로, 식물학적으로는 ‘돌무화과나무(Sycamore Fig, 학명: Ficus sycomorus)’를 가리킨다. 당시에 돌무화과 열매를 재배하는 일은 손이 많이 가고 열매의 가치가 낮아 주로 가난한 서민들이나 가축의 사료로 쓰였으며 아모스가 소박하고 겸손한 민중(서민) 출신의 인물이었음을 나타낸다.
8. 『신학지남』, 『낙수』, 『저작전집』에는 “預言者[예언자]의”
9. 『신학지남』, 『낙수』, 『저작전집』에는 “預言者[예언자]로서의”
10. ‘尋常[심상]하다’는 ‘예사롭거나 보통이다’라는 뜻이다.
11. ‘이엄이엄’은 ‘이어이어’, 즉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잇달아 나타나는 모양을 나타내는 우리말 옛 표현(방언 또는 고어적 감각의 어휘)이다.
12. ‘蔬菜[소채]’는 밭에서 재배하여 먹는 풋나물이나 채소(야채)를 뜻한다.
13.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 /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개역개정, 아모스 7:1-3).
14.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 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개역개정, 아모스 7:4-5).
15.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개역개정, 아모스 7:7-9).
16.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이니라 /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개역개정, 아모스 8:1-3).
17. ‘爛熟[난숙]한 實果[실과]’는 직역하면 ‘흐물거릴 정도로 아주 푹 익은 과일’을 뜻한다. 성경 및 문학적 맥락(특히 아모스서의 환상)에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와 죄악이 극에 달해, 곧 썩어 무너지거나 심판(수확)받을 때가 완전히 차버린 상태”를 상징한다.
18. ‘雄姿[웅자]’는 웅장하고 씩씩한 모습 또는 당당하고 기품 있는 태도나 자태를 의미한다.
19. 『신학지남』, 『낙수』, 『저작전집』에는 “예언[預言]하지”
20.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개역개정, 아모스 3:8).
21.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개역개정, 아모스 8:5-6).
22.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개역개정, 아모스 3:15).
23.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개역개정, 아모스 6:6).
2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개역개정, 아모스 3:12).
25. 『신학지남』에는 “(4:4)”가 없음. 내용상으로 아모스 4장 4절은 맞지 않다.
26. “상사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개역개정, 아모스 6:4). 각주 25번 『신학지남』에 (4:4)가 없는 것이 원래의 의미에 맞다고 볼 수 있다.
27.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개역개정, 아모스 6:6).
28.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개역개정, 아모스 6:5).
29.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개역개정, 아모스 2:7-8).
30.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개역개정, 아모스 5:11).
31. 『신학지남』, 『낙수』, 『저작전집』에는 “(5:12)”가 추가되어 있음.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개역개정, 아모스 5:12).
32.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개역개정, 아모스 8:5).
33. 『신학지남』, 『낙수』에는 “(2:7)”, 『저작전집』에는 “(7:7)”. 여기에서는 문맥상 “(2:7)”이 맞다. “힘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개역개정, 아모스 2:7).
34.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개역개정, 아모스 3:10).
35.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개역개정, 아모스 5:13).
36. ‘誰怨誰咎[수원수구]’는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는가”라는 뜻이다.
37.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개역개정, 아모스 4:4-5).
38. 『낙수』에는 “(5장 1절)”이 추가되어 있음. 개역개정은 아모스 5장 2절이다.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개역개정, 아모스 5:2).
39. 북이스라엘의 성소였던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Amaziah)’. 옛 문헌이나 한자식 표현에서는 ‘아맛시아’ 또는 ‘아마시야’로 자주 표기되었다. 그는 구약성경 아모스서 7장 10~17절에 등장하여 선지자 아모스에게 강하게 대립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40. 『신학지남』, 『낙수』에는 “預言[예언]”, 『저작전집』에는 “頂言[정언]”
41.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개역개정, 아모스 7:12-13).
42. ‘愴惶罔極[창황망극]’은 너무나 뜻밖의 급작스러운 상황이나 슬픔을 맞아 놀랍고 마음이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며, 그 슬픔과 절망이 끝이 없다는 뜻이다.
43. 개역개정에서는 아모스 7장 4절이다.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개역개정, 아모스 7:4).
44. 『신학지남』, 『낙수』, 『저작전집』에는 “預言者[예언자]들과”
45. 『신학지남』, 『낙수』, 『저작전집』에는 “預言[예언]하였는지”
46. 『신학지남』, 『낙수』, 『저작전집』에는 “預言[예언]은”
47. 『신학지남』, 『낙수』에는 “암몬”
48. ‘一如[일여]히 論及[논급]되었다’는 “하나같이 똑같이 언급되었다” 또는 “차별이나 변함없이 한결같이 다루어졌다”라는 뜻이다.
49. ‘宗徒[종도]’는 스승이나 진리를 진정으로 이해해서 따르는 제자가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ㆍ습관적으로 종교를 믿고 따르는 ‘우매한 신도(교인)들’을 뜻한다.
50.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개역개정, 아모스 5:18).
51. 『신학지남』, 『낙수』, 『저작전집』에는 “預言[예언]의”
52.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개역개정, 아모스 5:24).
53. 『신학지남』, 『낙수』, 『저작전집』에는 “預言者[예언자]의”
54. 『신학지남』, 『낙수』, 『저작전집』에는 “預言者[예언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