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장 아가씨들 도우려고
평화시장 노조사건 돕기 위해 목요기도회에서 $1,000. – 필라델피아 김순경 교수 $1,000. – 송금했다고 보고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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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 노조사건 돕기 위해 목요기도회에서 $1,000. – 필라델피아 김순경 교수 $1,000. – 송금했다고 보고해 왔다.
김정준 박사가 서독에서 열린 세계구약학자 학회에 초청되어 갔다가 귀국 도중에 뉴욕에 들렀다.
반가운 만남이다. 한신민주투쟁운동 실태에 대하여 자세하게 들었다. 김마태[1] 박사 댁에서 유숙했다.
7월 27일(수) - 오전 11시에 전재금 차로 공항에. 12시 20분에 토론토에 내렸다.
7월 30일 – 일본 “민통” 배동호 씨가 세계민주운동 대표자회의에 나를 초청했다.
최홍희 장군이 누차 들러 동행을 권했다.
8월 1일(월) - “일본민통”에서 정식 초청장이 왔다. 나는 “초청해 주신 것은 고마우나, 사정상 참석할 수는 없다고 통고했다.”
중간교섭역인 최홍희 장군에게 전화로 알렸다. 그도 양해했다.
8월 20일(토) - 와싱톤 “민통” 대회에서 참석초청이 여러 번 전화로 왔지만 못간다고 했다.
9월 16일(금) - 뉴욕 구춘회에게 나의 동경민통대회 관계 “신상담화”를 써 보냈다.
경위를 묻는 분들에게 주어 번거로운 설명에 대신하라는 뜻에서다.
7월 22일 – 와싱톤의 장성남 씨가 위암수술로 위독 상태라는 전화가 왔다. 즉석에서 주머니를 털어 낸 헌금 1천 몇백 불을 이승만 박사가 갖고 와싱톤에로 급행했다.
그는 아직 맑은 정신으로 감사했다는 보고가 왔다.
7월 22일(금) - 아침 9시 반에 토론토 공항을 떠나 12시 15분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내렸다. 김윤철 장로가 맞이해 줬다.
김윤철 장로 댁에서 저녁식사 후 그의 안내로 “스토니 포인트” 수양관에 갔다.
“교회와 국가”란 주제로 목요기도회원 중심의 수양강좌를 연 것이었다. 오전에 한 강좌 - “정교분리”에 대하여, 오후에 한 강좌는 ‘성서와 정치’ 시원찮은 강연이었을 것이다.
전경연 박사가 서독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의 동생(의사)를 만나기 위해 뉴욕에 들렀다가 이 수양회에 찾아왔다. 그의 강연도 있어서 유익했다.
그는 지금 한국신학대학에 복직되어 부임하는 길이란다.
수양회는 유익했다고들 한다. 동지로서의 사랑이 허물도 덮어, 좋게 받아줬기 때문일 것이다.
7월 1일(금) - Canada의 생일날이다. 각 주에서 축하 Party하는 광경이 T.V.로 방송된다.
모든 국민이 자발적으로 “애국”하도록 된 이 나라의 민주정치가 부러웠다.
6월 24일(금) - 북미주 한인민주단체연합운동을 결성회의를 St. Louis에서 갖게 됐다.
12시에 St. Louis 도착. 회의장인 Traveler’s Lodge 366호실에 들었다. 개회는 오후 6시 반이다.
6월 25일(토) - 회의 시작.
선우학원 박사 사회.
대표자 인원수는 “실행부”랄 수 있는 7인 위원회에서 정했는데 L.A. 8인, 뉴욕지방 8인, 와싱톤 5인, 토론토 5인, 보스톤 2인, 센트루이스 2인, 달라스ㆍ휴스톤 1인이었다.
대표선출 방법은 각 지방 민주단체에서 자치적으로 선출하여 사무국에 명단을 제출하여 등록하고 사무국으로부터 정식 대표증이 오면 그것으로 대회장에서 대표로 인정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뉴욕지방에서의 임창영 씨 그룹과 L.A. 지방에서의 반 김상돈 그룹 인사들 수십 명이 방청인으로 회집했다.
선우학원 회장은 방청자들에게 자유발언을 허락하여 오전 중은 그들의 발언으로 메워졌다. 그들의 발언 요지는 지금까지의 대회준비 과정이었던 등록절차를 백지로 돌리고 오늘 현장에 모여온 사람들을 전부 정회원으로 인정하여 이 시점에서부터 창립총회를 열자는 것이었다.
뉴욕대표 8인 중 네 사람은 그들 중에서 선출되어 있었기에 그 중 한 분인 최석남 장군으로 정식 제안하게 했다.
“여기 모인 사람 전원을 정식회원으로 받기를 제안합니다” 한다. 재청이 있었다.
선우회장은 투표에 부쳤다. 그러나 그들이 투표권 가진 정식회원이 되기를 원해서 제안했다는 그 자체가 그들이 정식회원 아님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 되었다. 그러니까 사무국에 등록된 회원만으로 투표했다. 물론 절대다수로 그들의 제안은 부결됐다.
오후 속개할 때에는 그들 중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선우박사 사회로 남은 회무를 신속 처결[1]했다.
헌장채택, 임원선거, 워악삽[2] 등이 끝날 무렵에 이용운 제독이 나타났다. 연락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24일 밤을 새어가며 별도조직을 진행시켜서 이제는 그들로서의 조직과 인선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이름은 “민협”이란 약칭이오 최고의장은 임창영 박사라고 한다.
그런데 자기 생각으로는 이제라도 UM쪽에서 대표의장직을 임창영 씨에게 드릴 수 있다면 재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인다. 모두들 불쾌했다. 이미 비밀리에 딴 이름의 조직체까지 만들어 놓고서 무슨 전승국이 전패국에 강요하는 강화조약 같은 조건을 전해온다는 것은 오만무례도 분수를 넘는 것이었다.
“우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다시 오려거든 언제든지 오라. 그러나 모든 일에 민주주의 만국공통회의 기준과 그 정상적인 선거질서를 통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다시 오지 않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정식 투표로 결정했다. 중앙집행위 의장에는 내 이름이 또 나왔다. 사무국장 : 한승인[3], 총무 : 이승만, 서기 겸 회계 : 구춘회, 섭외 : 림병규였다.
이것은 사무국에서 새 기구가 정식으로 재편될 때까지의 임시 조치였다.
평화시장 아가씨들 도우려고 평화시장 노조사건 돕기 위해 목요기도회에서 $1,000. – 필라델피아 김순경 교수 $1,000. – 송금했다고 보고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