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수요일

[범용기 제4권] (27)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목사의 심정 (2)

목사의 심정 (2)

목사란 어떤 경우에는 “제한선 돌파”란 “파격”이, “상식”과 “직업도덕”과 “일반예론”을 웃어버리는 뱃장이 필요하다. 무슨 “영웅”이나 “전문가”, “목회기술자”, 사회의 VIP로서의 오만이나 “긍지”를 과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사실, 목사에게서 이런 Pride를 빼면 남는 게 뭐냐? 밤낮 “종살이”만 하란 말이냐? 허기야, 밤낮 “종 의식”으로 섬긴다면 그것 자체가 그리스도 형(型)이니만큼 하느님의 축복된 Pride가 주어질 것이고 교인과 사회인의 존경도 자연스레 흘러들 것이다. 그런 경우에 목사의 Pride는 “천작”(天爵)[1]이고 또 “인작”(人爵)[2]일게다.

빅토르 위고[3]의 “레미제라블”[4]에 나오는 감독(Bishop)의 얘기가 생각난다. 자기 나라에 사막의 메뚜기 떼처럼 덤벼들어 마구 약탈하던 야만족이 관군에게 토벌되어 패잔병 신세가 됐다. 그래서 우왕좌왕(右往左往)하다가 목마르고 배고파 교회당엘 찾아온다. 감독에게는 그를 살릴 자금이 없다. 그는 성당 제단에서 성례 때 쓰는 금잔, 금쟁반, 금접시, 금병 등등을 몽땅 자루에 넣어 짊어지고 귀금속점에 팔아 그 돈으로 먹을 것, 입을 것들을 싣고 와서 나놔 주었다.

“인간의 목숨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데, ‘성당’이 무어며 제단의 성례 그릇이 다 뭐냐?” 했다.

6ㆍ25 때, 이북 패잔병을 우리는 눈으로 봤다. 나는 그때, 전농동에 살았다. 어떤 애기병정–아마 14, 5세 됐겠지!-이 혼자 도망치는데 “군복” 그대로는 잡히는 대로 이쪽 저쪽에서 모두 죽일 테니 한복 한 벌 입어야 했다. 옥양목[5] 고의적삼을 누군가 입혀줬다. 무장 없는 애기병정은 진짜 어느 촌 “애기머슴” 꼴이었다. 병정에게는 총, 칼이 “위신”(威信)이다. 그 인간 자신이 아니라, 그에게 입혀진 군복과 무기란 말이다. 그러나 그 “위신”을 벗어버리고 고이적삼[6]을 입혀 “위장”시켜 살리는 것이 목사의 심정이겠다.

가령, 6ㆍ25 때, 어떤 공산당 패잔병이 뒤따르는 국군에게 쫓겨 목사 집에 들어와 “제발 숨겨줍쇼!” 했다면 목사가 그걸 거절했어야 할까? “이 빨갱이야! 나가라” 할 것인가? 그렇잖으면 숨겨 놓고서 국군에게 고발할 것인가? 그가 “목사”의 마음이라면 숨기고 빼돌리고 하면서 끝까지 그 목숨 살리려고 애태웠을 것이다. 국군에게 들켜서 “적을 숨겨준 죄”로 잡혀가도 목사에게는 오히려 차원 높은 긍지가 영광스레 남을 것이다. 우리는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을 생각한다. 가택수색 때, “적”의 “스파이”를 천정에 숨겨놓고서 “잠깐 들렸다가 어디론지 나갔다…”고 거짓말로 그의 목숨을 살렸다. 성경은 그를 정죄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윗” 왕통의 “근조”(近祖)로 특기했다. 목사의 도량이 “라합”보다 좁아서야 쓰겠나!

[1981. 6. 25]



[각주]
1. 천작(天爵) - 하늘이 준 벼슬이란 뜻으로, 남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한 타고난 덕행을 이르는 말
2. 인작(人爵) - 사람이 정해준 벼슬이란 뜻으로, 공경대부(公卿大夫)를 이르는 말
3.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 - 프랑스의 시인ㆍ극작가(1802~1885). 낭만주의의 거장으로, 자유주의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경향을 풍부한 상상력과 웅장하고 화려한 문체로 나타내었다. 1862년 걸작 <레 미제라블>을 완성하였다. 작품에 희곡 <에르나니>와 시 <동방의 시집>,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 따위가 있다.
4.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 프랑스의 작가 위고(Hugo, Victor Marie)가 지은 장편 소설. 주인공 장 발장의 불우한 일생을 중심으로, 사회의 박해 속에 인생을 저주하던 한 영혼(靈魂)이 깨끗한 사랑으로 인하여 구제되는 경과를 묘사하였다. 1862년에 간행되었다.
5. 옥양목(玉洋木) - 생목보다 발이 고운 무명의 하나. 빛이 희고 얇다.
6. 고이적삼 - ‘고의적삼’의 방언

2026년 4월 7일 화요일

[십자군 제1권 제3호] 『맨처음에』 창세기 1장 1절-2장 3절 - 김재준 신역

『맨처음에』 창세기 1장 1절-2장 3절

金在俊[김재준] 新譯[신역]


[一] 맨처음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어내실새 [二] 땅은 뒤섞여 형상없고 어두움이 깊은바다우에 있으며 하나님의 신이 그물우를 덮으섰는데 [三] 하나님이 말슴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곧 빛이 있더라. [四] 하나님이 빛을 보시고 좋게 여기시다.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갈라놓으시고 [五] 하나님이 그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두움을 밤이라 부르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잿날이더라.

[六] 하나님이 말슴하시기를 물사이에 궁창이 있어서 물과 물사이를 난호라하시고 [七]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서서 궁창 아랬물과 하궁창 우엣물을 갈르시니 그렇게 된지라. [八]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둘잿날이더라.

[九] 하나님이 말슴하시기를 하늘아래 있는 물이 한곳에 모이고 마른 땅이 들어나라 하시니 그렇게 된지라 [十] 하나님이 마른 땅을 육지(땅)이라 부르시고 물모인 것을 바다라 부르시니라. 하나님이 보시고 좋게 여기시다. [十一] 하나님이 말슴하시기를 땅이 풀과 씨맷는 나물과 그 종류대로 씨있는 실과 맺는 과실나무를 땅우에 나게하라 하시니 그렇게 되다. [十二] 그리하야 땅이 풀과 그 종류대로 씨 맺는 나물과 그 종류대로 씨잇는 실과 맺는 나무를 나게 하니 하나님이 보시고 좋게 여기시다. [十三]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셋잿날이더라. [十四] 하나님이 말슴하시기를 하늘 궁창 우에 밫내는 것(發先[光]體[발광체]들이 있어서 낮과 밤을 갈르며 기호(記號)가 되며 절기와 

날자와 년한이 하시고되라. [十五] 또 하늘 궁창우에 빛내는 것이 되어 땅우를 비최라 하시니 그렇게 되다. [十六] 그리하야 하나님이 두 큰 빛내는 것을 맨드사 그중 큰 빛내는 것으로 낮을 차지하게 하고 좀적은 빛내는 것으로 밤을 차지하게 하시며 또한 별들도 「만드시다」 [十七] 하나님이 저들을 하늘 궁창 우에 두어 땅우를 비최게 하시고 [十八] 낮과 밤을 차지하게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갈르게 하시니라. 하나님이 보시고 좋게 여기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넷잿날이더라.

[二十] 하나님이 말슴하시기를 물이 모여사는 생물을 숫하게 내며 새가 땅우 하늘궁창에 날라하시다. [廿一] 그리하야 하나님이 크고 괴상한 바다즘생과 및 물이 숫해 생육[生育]하는 온갖 동물들을 그 종류대로 지어내시며 또 온갖 나는 새들을 각각 그 종류대로 「지어내시니라」 하나님이 보시고 좋게 여기시다. [廿二] 하나님이 저들을 축복하시기를 「낳고 뿌러 바다를 채우며 새들은 땅우에서 많어지라」하시다. [廿三]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다섯잿날이더라.

[廿四] 하나님이 말슴하시를 땅에 그 종류대로 집즘생과 기어다니는 것(爬蟲類[파충류]와 그 비슷한 것들)들과 들즘생들을 내(産出[산출])라 하시니 그렇게 되다. [廿五] 그리하야 하나님이 각기 그 종류대로 들즘생들을 만드시고 각기 그 종류대로 집즘생들을 만드시고 또한 모든 땅우를 기여다니는 것들을 각기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라. 하나님이 보시고 좋게 여기시다. [廿六] 하나님이 말슴하시기를 우리 형상대로 우리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맨들자 그러고 그들로 하여곰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집즘생들과 왼따와 및 땅우에 기여다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하자 하시다.

[廿七]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가 지어내시다.

남자와 또 여자를 그가 지어내시다.

[廿八] 하나님이 저들을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저들께 말슴하시기를

낳고 뿌려 땅을 가득 채우라

그러고 그를 복종시키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우에 기여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다.

[廿九] 하나님이 말슴하시기를 보라 내가 왼땅우에 온갖 씨맺는 나물과 모든 나무중 씨맺는 과실나무를 네게 주었으니 이것으로 먹을 것을 삼으라 [三十] 그러고 땅의 모든 즘생들과 공중의 모든 새들과 땅우에 기여다니는 모든 생물들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먹을 것으로 「주었다」하시니 그렇게 되다. [卅一] 하나님이 그 맨드신 모든 것을 보시고 참 훌륭하게 여기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여섯잿날이더라.

【二】 [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매 [二] 일곱잿날 하나님이 그의 하신 일을 맞추시다. 그리하야 일곱잿날 그의 하신 모든 일을 끄치시고 쉬시니라. [三] 하나님이 일곱잿날을 복주시고 이를 거룩하게(聖別) 하섰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지어내여 맨드신 모든 그의 일을 쉬신 까닭이니라.



[범용기 제4권] (26)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목사의 심정 (1)

목사의 심정 (1)

목사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를 전업(全業)으로 봉사한다. “전업”이란 말은 “부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목사의 심정”은 그대로 “그리스도의 심정”이어야 할 것이다.

목사의 전공 학문은 “신학”이다. 신학적으로는 Specialist여야 한다. 신학의 분야는 넓고 깊다. 그러므로 너무 “속성”(速成)을 노려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평생을 “학도”로 지내야 한다.

목사는 “실업인”이 아니다. “돈”을 탐해서는 안된다. 언제든지 결단의 길목에 설 때에는 “그리스도냐 맘몬이냐”의 양자택일의 유혹에 직면한다. 그 순간의 선택은 “Either or”요 “Both and”가 아니다.

목사는 기술자다. 지금은 기술학적 시대다. 그러므로 목회도 기술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목회상담학, 교회치료법, 교회법전, Liturgics[1], 노인학, 사회학, 국제관계, 정치와 교회, 세계교회협의회와 개교회, 개교회와 상회 관계, 등등에 능숙해야 한다. 그래서 변천하는 세계와 함께 언제나 성실한 지도자로 앞장서야 한다.

목사는 권위주의여서는 안된다. 다만 신앙과 행위에 흠잡힐데 없으면 된다. 교회 기관 안에서도 “유명하다”는 목사가 있다. 고관들도 그를 상대로 얽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한번 높은 벼슬아치를 만나 너ㆍ나 하여 통사정할 수 있고 그 덕택에 안되던 일도 되어나온다면 그때부터 목사 자신이 “고관”이 된 기분에 놀아난다. 그래서 시시한 “천민”들은 상대하길 꺼린다. “내 그래봐도 뭔데, A Somebody인데! 그 따위 것들과 섞일 거냐?” 말하자면 “도도”해진다. 스스로를 Dignity[2]한다. 아이들 말로 하면 “잰다”.[3] 그때부터 그는 권위주의자요 섬기는 자 아니게 된다.

목사는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어려운 사람,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 외로운 사람, 문제 인간 – 모두 위로하고 격려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팔팔한데, 저이는 바보같이 비실비실해! 제가 제 몸 건사도 못하면서 뭐 큰 소리만 치면 되는 줄 아나?” 이래서는 안된단 말이다.

무엇보다도 목사는 “시인”이어야 한다. “시인”은 결코 자기를 속이지 못한다.

시에는 타산이 없다. 목사는 적어도 시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고 그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문학을 좋아해야 한다.

미술 애호도 목사에 대한 불가피한 요청이다. 목사가 서도[4]나 그림이나 동양목화나 서양화나 간에 영영 거들떠볼 의욕도 갖지 않고 쓴 오이 보듯 경멸한다면 그는 그리스도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시혼(詩魂)이 가슴에서 “샘”처럼 넘쳐흐르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목사는 다른 종교나 종파를 독단적으로 혐오하거나 잘라버리거나 냉소해서는 안된다. 전 우주 만물이 “한 생명공동체” 안에 있다. “전 인간과 문화는 우주적 사랑의 보편왕국” 이른바 “역사 안의 하느님 나라”기 때문이다.

목사는 이 우주적 “사랑공동체”의 일꾼이요, 월급 받고 고용된 삯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사의 심정”은 “기존 바운더리”를 넘어서는 데서 고귀하다.

[1981. 6. 19]



[각주]
1. Liturgics – 예배학, 전례학, 전례론
2. Dignity – 존엄, 품위, 자존감, 위엄, 품격
3. 재다 – 으스대어 뽐내거나 뻐기다
4. 서도(書道) - 글씨를 쓰는 올바른 도

[십자군 제1권 제3호] 施惠(시혜)의 聖者(성자) 알렉산드리아의 요한과 그 逸話[일화] - 편집자

施惠(시혜)의 聖者(성자) 알렉산드리아의 요한과 그 逸話[일화]

- 六一六年(616년)

- 編輯子[편집자]

『낙수』 1940. [바로가기]

『장공김재준저작전집(전5권)』 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년, 제5권, 407~414.

『김재준전집(전18권)』 한신대학출판부, 1992년, 제7권, 262~270.


구부로島(도)

地中海(지중해)의 맑은 精氣(정기)가 뭉쳐 한 섬을 이루었다면 그것은 구부로 일 것이다. 적은 섬이지만 高貴(고귀)한 存在(존재)이다. 고루시카島(도)가 殺伐(살벌)의 帝王(제왕) 나폴레온의 生地(생지)래서 有名(유명)하다면 구부로는 「勸慰子(권위자)」인 바나바를 낳은 것만으로도 섬들의 王座(왕좌)를 占(점)할 것이다. 이 同情(동정)과 慰勞(위로)의 化身(화신)인 바나바의 古鄕(고향)에서 五百年後(5백년후)에 다시 施惠(시혜)의 聖者(성자) 요한을 世上(세상)에 보낸 것은 하나님의 祝福(축복)이 連綿(연면)하야 累千代(누천대)에 뻐침을 立證(입증)하는 한 史實(사실)로 볼수 있다.

聖(성)요한은 구부로섬 아마터스의 한 富家(부가)의 아들로 태여났다. 그의 前半生(전반생)의 記錄(기록)은 別(별)로 特記(특기)할 것이 없으나 언제나 豪放活大(호방활대)하야 大人(대인)의 氣風(기풍)이 있었던 것만은 事實(사실)이다. 그러나 幸(행)이랄가 不幸(불행)이랄가 사랑하는 妻(처)와 子女(자녀)가 뒤를 이어 世上(세상)을 떠나고 그는 累巨萬(누거만)의 財産(재산)을 擁(옹)한채 依支(의지)가 없는 혼자 몸으로 남기여졌다. 지금은 텡하니 뷘 高臺廣室(고대광실)이 도리혀 그에게 孤獨(고독)과 悲哀(비애)를 난화주는 한 廢墟(폐허)에 不過(불과)하게 되었다. 그러나 本來(본래)부터 믿음의 達者(달자)이던 그는 이 運命(운명)의 戱弄(희롱)에서 大使命(대사명)을 빚어내지 않고는 마지 않었다.

『나는 지금부터 나의 조고마한 家屬(가속)을 爲(위)하야 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食口(식구)들을 爲(위)하야 살 것이다』 하고 그는 奮然(분연)히 집을 떠났다.

얼마 後(후)에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大主敎(대주교)로 被選(피선)되여 곧 任地(임지)에 나아갔다.

알렉산드리아의 聖役(성역)

到任(도임)하자 그는 部下(부하)를 불러놓고

『여기 내 主人(주인)이 몇사람이나 되는지 調査(조사)해 올려라』 하고 下命(하명)하였다.

書記(서기)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어안이 벙벙하야 서로 얼골만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主(주)님께서 가난한 사람을 섬기신 것 같이 내가 섬겨야할 가난한 兄弟(형제)들이 얼마나 되나 말이야』 하고

그는 깨우처 주었다.

아주 生計(생계)를 잃은 者(자) 七千五百名(칠천오백명)이라고 報告(보고)가 들었다. 그는 이때부터 가깍으로 이 貧民(빈민)들의 救濟(구제)에 盡力(진력)함과 同時(동시)에 돈푼이나 있노라고 奢侈逸樂(사치일락)에 耽淪(탐륜)하야 하나님도 社會(사회)도 모르고 오직 自己(자기)배를 上(상)전으로 뫼시는 一部(일부) 有産者(유산자)들께 向(향)해서는 餘地(여지)없이 峻嚴(준엄)한 책망을 나리였다. 그 때문에 그에게는 숨은 適(적)이 무던히 많어졌다.

한 周日(주일)에 두 번씩 그는 會堂(회당)밖앝 마당에 自己椅子(자기의자)를 내다놓고 그 앞에는 긴 椅子(의자) 두엇식 놓은 다음에 終日(종일) 가난한 이 어려운 일 當(당)한 이들의 忌憚(기탄)없는 하소연을 들었다. 하로는 이 老聖者(노성자)가 밖앝 椅子(의자)에 나앉아 자꾸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웨 그렇게 落淚(낙루)하십니까? 무슨 어려운 事情(사정)이 생기셨습니까?』 하고 書記(서기)는 惶恐(황공)한 낯으로 물어보았다.

『오늘은 한사람도 내게 도음 請(청)하는 이가 없구려!』 하는 것이 聖者(성자)의 對答(대답)이였다.

『다들 도음받을 必要(필요)가 없게 된 것이 겠읍지요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기뻐하십시요』 하는 書記(서기)의 慰安(위안)을 듣고서야 『그렇다면 좋으련만!』 하며 한울을 우러러 感謝(감사)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병원을 설립해놓고 여행하다가 병든 사람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아 주었다. 그러고 구제할 때면 남자에게 보담 여자에게 더 많이 주었었다한다. 그는 여자에게는 제손으로 살림해갈 힘이 더 부족하니까 더 도아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낮에 분칠하고 의복이나 별하게 차리고 와서 도와달라는 여자에게는 단돈 한푼도 주지 않으셨다.

거기 어떤 장사꾼이 있었는데 목선(木船)에 물건을 싯고 바다건너로 무역하려 다녔었는데 두 번이나 파선을 당하고 보니 아주 뷘손털고 나앉게되여 낙심하고 한숨만 쉬며 지내는 것이였다. 이것을 안 聖者(성자)는 교회 소속의 목선에다가 밀을 가득 실어주며 이제 다시 한번 가보라고 말했다. 그 상인은 너무나 감사해서 백배 사례를 하고 다시 배에 돛을 달었다. 잔잔한 바다에 순풍을 만나니 배는 하로에 千里(천리)길을 날 듯이 건너간다. 그러나 거의 다 간 때에 갑작이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물결이 용솟음치며 배는 어딘지로 모르게 밀려가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재수 없음을 한탄하며 거저 죽은 줄만 알고 돛대에 매달려 밤낮을 지냈다. 얼마 지나서 다시 바닷물이 잔잔해진 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는 무사히 영국 해안에 가 닿은 것이였다. 그때 그 지방은 흉년이 들어서 큰 야단난 때라 사람 살리라고 은이니 금

이니 할 것 없이 있는대로 바치며 밀을 사갔었다. 몇일 후에 그는 은금을 한배 가뜩싯고 집에 돌아와 聖者(성자)의 축복을 감사하였다.

한번은 아주 못살게 된 귀족 한분이 이 聖者(성자)를 찾어왔다. 聖者(성자)는 자기 회계에게 금 一百五十(일백오십)원을 드리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회계는 암만 생각해 보아도 이 거지한테 그렇게 많은 돈 주는 것은 너무한다는 생각에서 五十(오십)원만 주어 보내였다. 바로 그 이튿날 잘살기로 유명한 부인신자 한 분이 구제비 五千(오천)원을 가져와서 이 聖者(성자)에게 들였다. 이 부인이 기전에 약속하기는 구제비로 만 五千(오천)원을 바치겠다고 했었는데 이제 五千(오천)원만 가져 온 것이 이상해서 聖者(성자)는 그 이유를 물었다.

『저 어젯밤에 一(일)만 五千(오천)원을 다 준비해 두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셈인지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五千(오천)원만 있고 만원은 간데 없어요. 암만 야단을 치니 어디 찾을 수 있어야지요』 하고 그 부인은 미안한 낯으로 대답하는 것이였다.

聖者(성자)는 곧 이것이 하나님의 하신 일인줄 알고 회계를 불러서

『어저께 그 귀족에게 돈 얼마 드렸느냐?』 하고 물어 보았다. 회계는 무안해서 머리를 숙인채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聖者(성자)는 곧 사람을 보내여 그 귀족에게 물어 보았다.

『五十(오십)원을 감사히 받었읍니다』 하는 회답을 손에 든 聖者(성자)는 한숨을 쉬며 탄식하였다.

『主(주)님께 심은 것은 主(주)께서 百(백)배나 갚아 주시마 하셨는데 어저께 五十(오십)원만 드렸으니 오늘 五千(오천)원만 주시는 것이로구나!』

그때 아푸리까의 재정권을 맡은 니케타스 長官(장관)은 이 교부의 너무나 풍부 재원(豐富한 財源)과 그 구제사업에 쓰는 것이 너무나 엄청나게 큰 돈임을 알고 한쪽으로 욕심도 나고 시기도 생겼다. 마츰 여러 가지 일로 해서 그 정부의 재정에 부족이 생겼다. 니케타스 長官(장관)은 기회가 좋다고 곧 이 교부의 재산을 徵發(징발)하야 그 缺損(결손)을 메꾸려하였다. 長官(장관)은 친히 몇 사람의 부하를 데리고 이 교부를 찾어왔다. 그리하야 지금 국고금이 부족하니 담방 금고를 갖다 받치라고 서슬이 푸르러 야단 쳤다.

요한 교부는 금고를 가르치며

『여기 金庫(금고)가 있소. 그러나 그 돈은 교회 소유지 국고금은 아니오 당신이 억지로 가져가시려면 가져갈 수는 있겠지요마는 내 것이 아니니까 내가 줄 수는 없소』 하였다.

니케타스 長官(장관)은 곧 부하를 시켜 그 금고를 둘러 메

워가지고 문밖에 나섰다. 마츰 그때에 사람들이 숫한 꿀통을 메고 들어오는 데 어느 통에나 「청신한 청밀」이란 표지가 붙어 있었다. 니케타스 長官(장관)은 요한 교부를 향하야

『나 저 꿀까지 뺏들어 갈가?』 하고 농담삼아 말하였다.

『얼마 가져 가십시오』 하고 교부는 곧 손소 몇통 갖다가 짐꾸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꿀통이 아니라 여러 교회 구역에서 연보한 돈 넣은 통들인데 가져오는 길에서 도적을 만날가봐서 「청밀」이란 표지를 부쳐 운반한 것이였다. 요한 교부는 이것으로 뺏긴 현금을 보충하야 사업이 거침없이 되여감을 감사하였다.

요한 교부는 이 짐꾸릴 때에 아래와 같은 글을 써넣었다.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 않겠으며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고 主(주)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말슴은 진실하시고 거즛이 없으시다 우리 부유(蜉蝣)같은 人生(인생)으로서 감히 영원하신 하나님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 조심하야 잘가라』

그날 저녁 니케타스 長官(장관)은 식탁에 앉어서 낮에 가져온 꿀맞을 보려고 손소 짐을 풀었다. 그 속에서 나온 편지를 한참이나 읽더니

『그 교부가 인저 나하곤 단단히 틀렸어! 그 숫한 꿀통에서 요것 몇 개 주면서 이런 위협의 편지까지 쓴담!』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꿀통 뚜껑을 열었다. 그러나 꿀이 든 줄만 알았던 통속에는 번적거리는 금화(金貨)가 가뜩 담겨 있었다. 長官(장관)은 깜짝 놀라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이상한 감동을 받은 長官(장관)은 그때야 자기가 교부에게서 금고를 뺏들어 온 것이 잘못인줄 절실히 느끼고 이튿날 금고와 꿀통에 든 돈까지 말금히 도로 보내며 사과하였다.

니케타스 長官(장관)과 요한 교부와는 이제부터 퍽 사이좋게 지냈다. 그러나 정부에서 가난한 사람들께 세금을 너무 과하게 받아서 어려운 사람들이 큰 걱정 났다는 것을 알고 교부는 언젠가 정부의 잘못을 통격(痛擊)한 일이 있었다. 돈많은 사람들 중에서 전부터 요한교부를 아니꼽게 녁이던 몇 사람이 곧 니케타스 長官(장관)께 가서 요한 교부가 빈민들을 선동해 가지고 정부에 반항(反抗)한다고 몹시 불커서 중상(中傷)하였다. 니케타스 長官(장관)은 잔뜩 골이나서 불이나게 교부를 찾어와 있는 욕은 다 퍼붓고 돌아갔다. 요한 교부는 좀 마음이 언쨘어서 그날을 불쾌하게 지냈으나 해질녁에 그는 편지 한 장을 써서 니케타스 長官(장관)에게 보냈다.

『지금 해가 져갑니다』

이것이 그 편지 내용의 전부였었다. 이런 이상한 편지 받은 長官(장관)은 얼마동안 묵묵히 생각하다가 마츰내 에베소 四(4)장 二十六(26)절에 있는 『분을 내여도 죄를 범하지 말고 해지도록 분을 품지마라』 한 성경말삼에서 나온 것을 알고 곳 자긔의 경솔을 후회하고 다시 요한 교부와 친하게 지냇다.

한번은 서긔 두사람이 서로 싸와서 주먹질까지 하였음으로 교부는 두 사람을 다 함께 얼마동안 책벌했섯다. 그중 한사람은 자긔 잘못을 깨닫고 책벌을 달게 받었으나 한 사람은 요한 교부를 원망하며 교회에도 나오지 안케 되였다. 다음 주일 예배시간이 되여 집사(助祭)가 장막을 거두고 성긔(聖器) 덮은 보를 버끼는 순간 요한 교부는 문득 마태 5장 23-24엣 말슴 『예물을 제단에 들이려고 거긔 잇을 때에 네 형제가 너를 인하야 원망하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에 두고 몬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들이라』한 것이 생각낫던 것이다. 그는 집사를 식혀 교인들과 함께 보통 긔도문을 읽게 하고 자긔는 교부실에 들어가 곳 사람을 식혀서 자긔를 원망하는 그 서긔를 불러왔다. 그 사람이 들어오자 요한 교부는 곳 이러나 그의 발앞에 꿀어업데여 공손히 절하며 『내 형제여 용서하시오!』 하였다. 이 금빛 찬란한 법복 입은 대주교께서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땅에 대여 절할 때 이 죄지은 서긔는 어쩔줄 몰라 콱 주저안즈며 엉엉 울엇다 한다. 그러고 천만 용서를 빌엇다. 교부는 그를 껴안아 이르켜 눈물을 씻어 준 다음에 그 길로 회당에 들어가 다시 예배를 계속하였다.

어떤 귀족 한분은 자긔하고 의견틀린 사람 하나와 서로 원수가 되여 아모리 용서하래도 한사하고 듣지 않었엇다. 하로는 요한 교부께서 이 귀족을 일부러 청해다가 바루 제단 앞에 안치고 예배를 들이기 시작하였다.

요한 교부는 전회중을 향하야

『우리 다갓치 주긔도문을 외입시다』 하고 음성을 높여 주긔도를 인도하였다.

그는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하는 데까지 외인 다음에 딱 멈추어 버렸다. 일반 교인들도 인도 하는 이가 멈추니 다들 따라 멈추엇다. 그러나 바로 제단 밑에 앉은 이 귀족은 너무 가까이 앉은 까닭에 그런 눈치를 차리지 못하고 그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야 준 것 갓치 우리의 죄를 사하야 주옵소서』 하고 크다란 목소리로 다음 구절을 홈자 외여 버렷다. 그러고는 좀 무안해 하면서 자긔도 따라 멈추엇다. 그때 요한 교부는 장엄한 태도로 그 귀족에게 가서 

『인재 무어라고 긔도 하섯습니까?』 하고 물엇다. 그 귀족은 마치 창에 찔린 것 갓치 양심에 찔림을 받어 그 길로 나가 그 사람을 찾어 모든 잘못을 사과하였다.

교인들의 몇 사람은 예배 볼적에 성경랑독이 끗나면 곳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서는 예배 필할 때까지 저이끼리 잠담(雜談)하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어느 주일날 예배보는 중에 또 그 사람들이 슬그머니 나가는 것을 보고 요한 교부는 예배를 중지하고 뚜걱뚜걱 걸어서 밖으로 나가더니 그 사람들이 돌려 앉어 한캄 이야기하는 틈에 끼여 앉으며

『양떼 있는 곳에 목자도 있어야지!』 하고 슬그머니 웃으섯다. 그 사람들은 너무 부끄럽고 황송해서 낯을 가리우고 예배당으로 뛰여들어갓다. 그후부터는 그런 버릇이 아주 없어젔다.

이 聖者(성자)는 알렉산드리아 市(시)의 빈민촌에다가 조고막식한 집을 숫해짓고 그 안에 침대와 침구를 갓추어서 집없는 사람들이 거긔서 자게 하였다. 하로는 그가 교부 트로일러스와 함께 이 빈민촌 심방을 떠낫다. 그때 이 트로일러스 교부는 어느 은방에 있는 아주 유표한 은잔 하나가 어찌도 마음에 들었던지 그것을 사려고 금 三百圓(삼백원)을 꽁꽁묵거 주머니에 너어 가지고 다니는 중이였다. 정작 이 빈민굴에 가보니 죽게된 사람이 어찌도 많은지 참아 거저 지날 수가 없었다. 聖者(성자) 요한은 트 교부의 주머니 속에 돈 얼마 있는 줄을 잘 알고 있는 터이라

『여보게 자네 주머니에는 돈이 적잔히 들어있는 모양이네 그려 아마도 한 三百圓(삼백원) 되는 것 같은데 그걸 좀 헛처서 이 불상한 사람들을 살리게 그려!』 하였다.

트 교부는 감히 못하겠다고도 못하고 한참 망사리다가 할수 없이 그 돈 뭉치를 끄집어 내여 떨리는 손으로 이 사람 저 사람 난화주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아까워서 가슴이 막 타오르는 것 같엇다.

그때붙어 그는 머리 앞으네 하고 골을 싸맨채 밖으로 나가지도 안코 꿍꿍알코 있었다. 聖(성) 요한은 그가 외 알는다는 것을 대강 짐작하지 안는 것은 아니나 좀 자세히 알어보려는 술책으로 사람을 보내여

『오늘 저녁 우리 집에 와서 저녘 갓치 난후십시다』 하고 만찬에 청하였다.

『나 병 때문에 갈 수 없오』 하는 것이 트 교부의 회답이었다. 聖(성) 요한은 곧 돈 三百(삼백)을 주머니에 너허 가지고 트 교부를 찾어갓다. 병위문이 끝난 다음에 그는 아주 천연스럽게 주머니에서 돈 三百圓(삼백원)을 꺼내 노흐며

『참, 빈민촌으로 가치 갔었을 때 내가 자네 돈 三百圓(삼백원) 뀌 쓴 일이 있었지! 요새 몸도 고단하고 퍽 어렵게 지

냈을터인데 늦어서 안됫네』 하고 아무러찮게 이야기하였다.

이 돈 三百圓(삼백원)이 상우에 노히자마자 트 교부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아버렷다.

『아 괜찮습니다. 뭘 인저 원긔 왕성합니다』 하면서 툭툭털고 이러낫다.

『그럼 병이 나았으면 지금 우리집에 가서 저녁이나 난훕시다. 그려!』 하고 聖(성) 요한은 그를 데리고 집에 와서 만찬을 잔뜩 대접하였다. 그새 속이 타서 밥도 잘못먹고 알턴 트 교부도 지금은 마음이 탁 풀리며 저녁도 긔끈 먹엇다. 그대신 식후에는 식곤증이 나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꿈에 그는 그야말로 긔화요초 향긔로운 동산 속에 갔었는데 거긔 썩 아름다운 집이 있고 그 문패에는 「주교 트로일러스의 영원한 안식처」라고 써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너무나 조하서 입이 벌신 벌신해 처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있노라니 힌 옷을 입은 무리가 몰려와서 그전 문패를 떼여버리고 「대조교 요한이 금 三百圓(삼백원)으로 산 그의 영원한 안식처」라는 문패를 가러부치고 가버리였다. 잠이 깬 다음에 그는 머리를 숙이고 깊히 생각하며 집으로 도라갓다.

집 일꾼들 중에 한사람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만 닥쳐와서 늘 요한 교부에게 신세지고 살어왔었다. 그럼으로 그는 하로 일부러 찾어 와서

『주교님 은헤는 백골란망입니다. 어떠커면 이 은헤의 만분지일인덜 갑흘수 있겠습니까?』 하며 절하였다. 聖(성) 요한은 그 사람을 이르키며

『아니다. 이 못난 요한은 아직도 너이를 위하야 피흘리지 못했다. 감사가 다 무어냐?』 하며 진심으로 미안해 하섯다.

그 지방에 데오펜더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일생을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로 지내였다. 재산은 전부 구제사업에 써 버리고 남은 것은 오직 어린 자식 하나뿐이였다. 그는 세상 떠날 때 그 어린 자식을 불러놓고 돈 百圓(백원)을 내노흐며 『여기 남은 돈이라곤 百圓(백원)밖에 없다. 이걸 네게 물려주랴? 주님께 드리랴?』 하고 물엇다.

『主(주)님께 드립시다』 하고 어린이는 똑똑히 대답하였다.

『내 아들아 그럼 가지고 나가서 가난한 형제들께 난화 드려라』 하고 운명하셨다. 이 의인의 자식이 의지가지 없게 되였다는 소문을 들은 聖(성) 요한은 곳 그 아이를 다려오고 싶었섰으나 서틀게 서둘가다는 혹 그 결벽(潔癖)한 어린이의 자존심(自尊心)을 상할가 염녀하야 그는 자긔 서긔를 식혀 거짓 족보를 꿈여서 대주교 요한은 그애 부친하고 사촌간이라는 것을 간접으로 알게한 다음에 사람을 보내어 그애를 다려오게 하였다.

이 소년이 문안에 들어서자 聖(성) 요한은 달려나가 부듸켜 안고 입맛초며

『이게 왼 일이냐? 내 사랑하는 동생의 아들이 이럴변이 어듸 있니!』 하고 집안에 안어들이다 싶이하야 극진히 사랑하였다. 그리하야 그 아이를 거긔서 길러 장가들여 가산을 난화 주어 걱정 없이 살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私生活(사생활)은 참으로 검박하였다. 검박이라는 것 보담 비참하다고 말할 지경이였다. 그의 침상에는 다 구멍뚤린 모전 한 벌밖에 없었다. 그런데 동리 어떤 귀족이 이 형편을 알고서 훌륭한 새 모전을 사 보내였다. 그는 하롯밤을 덮어보고 곳 팔어서 구제비로 써 버렸다. 그런줄을 안 귀족은 또 다시 사보냈다. 그는 그것을 또 팔어서 구제비로 썼다. 이렇게 사보내고 팔고하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나 하여간 내종에 이 성자는 웃으며

『어듸 사보내는 사람이 못견듸나 팔어먹는 사람이 못견듸나 내기해 봅시다』 하고 말슴하섰다.

終焉(종언)

이런 이야기를 쓰랴면 끗이 없다. 하로는 니케타스 長官(장관)이 황제 폐하께 보고해서 황제 폐하께서 특히 이 성자를 보고서 청하신다고 소식이 왓다.

그리하야 니케타스 長官(장관)은 친히 자긔가 콘스탄치노불까지 함께 갈터이니 긔허 갓치 가자고 말하는 것이였다. 聖(성) 요한은 그러면 가 뵙자고 둘이서 길을 떠낫다. 그러나 그들 一行(일행)이 로데스에 이르렀을 때 이 성자에게는 하날로서의 묵시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니케타스 長官(장관)을 향하야 

『당신은 지금 나를 세상 인군께로 다려가려는 터이지만 지금 하날 인군께서 나를 불르시는 구려』 하면서 동행하는 니케타스에게 작별하였다. 그러고 배를 타고 자긔 고향인 구부로 섬에 들어가 그가 처자와 함께 전반생을 보낸 아만터의 옛집에 다닫자 곧 자는 듯이 세상을 떠낫다. 享年(향년) 六十四歲(육십사세) 알렉산드리아 大主敎(대주교)로 奉職(봉직)한지 七年(칠년)만이였다.

[史料(사료)] 구브로의 監督(감독) 레온티어스의 편즙한 그의 傳記(전기). 原材料(원재료)는 요한 主敎(주교)와 함께 일하던 神父(신부)들이 收錄(수록)한 것들이다.



[십자군 제1권 제3호] 偉大한 說敎(1) 사랑의 수고 - 스퍼-존

偉大한 說敎(1) 사랑의 수고

 - 스퍼-존


스퍼-존(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 A.D.)은 一八三四年[1834년]에 英國[영국] 켈베돈(Kelvodon)의 한 貧寒[빈한]한 牧師[목사]의 집에 태어낫다. 스퍼-존은 十六歲[16세]부터 〇敎生活[〇교생활]을 始作[시작]하야 未久[미구]에 一類說敎家[일류설교가]로 名聲[명성]을 날리여서 十九歲[19세]때에는 벌서 英京論敦[영경론돈]에서도 有名[유명]한 新公間街敎會堂牧師[신공간가교회당목사]로 청빙을 받었다. 그 敎會圓[교회원]들은 大槪[대개] 有識階級[유직계급], 富豪[부호], 貴人等[귀인등]으로서 最初[최초]에는 이 口尙乳臭[구상유취]의 少年[소년]에게 어찌 神聖尊貴[신성존귀]한 大敎會講壇[대교회강단]을 마낄 것이냐고 反對〇分[반대〇분]도 있었으며 또 就任後[취임후]에도 어듸 보쟈하는 白眼視[백안시]하는 態度[태도]를 取[취]하였었다. 그러나 就任數個月間[취임수개월간]에 벌서 全[전] 론돈의 人氣[인기]를 거의 한곳에 모히다 십히되여 敎會堂[교회당]에는 들어설 餘地[여지]가 없이 되었다. 하로 그는 說敎[설교]하는 中[중] 「믿음의 高喊[고함] 소리와 함께 예리고 城壁[성벽]은 문허졌다. 믿음의 무리 앞에서는 이 좁은 예배당벽[禮拜堂壁]은 오라지 않아 문허지리라」하고 웨치엿다. 그의 말과 함께 그 좁은 禮拜堂[예배당]은 문허저 버리고 거긔에 大[대] 中央禮拜堂[중앙예배당](The Great Metropolitan Tabernacle)이 〇〇間[〇〇간]에 높이 솟았다. 이 大敎會堂[대교회당]에는 六千五百名[육천오백명]의 坐席[좌석]이 있으나 언제나 차고 넘치였다. 그의 說敎[설교]는 日利新聞[일리신문]과 刊行本[간행본]에 印刷[인쇄]되어 坊坊曲曲[방방곡곡]에 퍼지며 퍼지는 곳마다 큰 靈的復興[영적부흥]이 이러나서 社會的[사회적] 經濟的[경제적]으로 危機[위기]에 直面[직면]한 英國[영국]에는 다시 悔改[회개]와 信仰[신앙]의 신령한 물결이 거츤 人心[인심]을 붓잡게 되었다. 그는 지금부터 四十五年前 一八八二年[1882년]에 五十八歲[58세]를 一期[일기]로 世上[세상]을 떠낫는데 그때까지 四十年間[40년간] 줄곳 이 한 敎會[교회]에서 奉職[봉직]하였다. 

이제 그의 說敎一篇[설교일편]을 紹介[소개]하려한다. 勿論[물론] 說敎[설교]의 本質[본질]은 말에 있지안코 聖神[성신]의 權能[권능]에 있느니만치 이 一篇[일편]을 읽으시는 讀者諸賢[독자제현]께 聖神[성신]께서 함께하기를 祈禱[기도]한다.


本文[본문] - 「사랑은 凡事[범사]에 참으며 凡事[범사]에 믿으며 凡事[범사]에 바라며 凡事[범사]에 견듸나니라」(고전 13:7)

사랑의 은혜,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신종하는 자로서의 제일 끝자되는 은혜올시다. 우리가 가령 모든 것을 가졌다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성신께서는 이 성경구절에 밝히 말슴하섰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이 유명한 성경구절(고전 13장)을 읽으실 때에 「하, 이것은 너무 훌륭해 특별한 성자라면 혹 이것을 실행도 할는지 모르지만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이야 거저 쳐다보고 칭찬이나 했지 그대로 할 수야 있겠나!」하고 속으로 말슴하실 이가 있을 것입니다. 決[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용할 량식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다만 어떤 몇사람이 가질 특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각자가 가지지 않으면 살지못할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쳐다볼 것이 아니라 기엏고 나가 제것을 맨들어야 살 수 있는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온갖 신령한 은혜를 다 가졌다 할지라도 이 「사랑」의 은혜가 없은 다음에는 여러분의 소위 「은혜」란 것은 「아모것도 아니라」고 분명히 말슴하지 않었습니까?

爲先[위선] 처음으로 우리의 배울 것은 이 貴[귀]한 救援[구원]은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그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은혜가 우리 타락한 인간성에서 자라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정결한 것이 정결치 못한데서 생겨나겠습니까? 이 거룩한 사랑에 이르는 영광의 구원은 믿음으로만 붓잡을 수 있으며 성신의 권능으로만 가져올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만일 「구원」이란 것을 한 소소한 인간사로 생각하야 대수롭잖은 것으로 역이신다면 이 구원의 처음이오 냉종인 「사랑」도 인간의 힘으로 될 수 있으리라고 말슴하리다. 그러나 「구원」이 하나님 자신의 가장 크신 희생으로만 되어진 것을 믿는 이는 또한 이 「사랑」하는 심정이 하나님의 주시는 驚異[경이]의 은혜임을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거룩한 사랑의 심정이 간악한 인간의 마음 속에 탄생한 것을 볼 때 우리는 「아아 하나님의 손이 인간에 임하섰다!」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에게 림하는 그 순간에 그 사람의 심정에는 「사랑」이 생겨납니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난 자니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마지못하나니라」(요일 4:7-8) 그러나 이제 나는 이 사랑을 가진 여러분께 경고하려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거룩한 사랑이 싹트는 그 순간부터 여러분에게는 무서운 전쟁이 생겨납니다. 세상은 나면서부터 저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싀긔와 증오와 분쟁과 악독으로 차고 또 넘칩니다. 여러분 사랑을 가지신 이는 마치 가시덤불속에 혼자 서 있는 백합화와 같습니다. 

이 사랑을 대적하는 원수는 헤일수 없이 많습니다. 전부올시다. 그러므로 본문에 「범사에」라고 말슴하섰습니다. 여러분은 이 「범사에」 품겨있는 온갖 事物[사물]을 一一(일일)이 헤여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께 사랑의 심정이 탄

〇〇〇〇〇 싸움을 싸워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남어있는 낡은 생명까지도 여러분의 새생명인 이 사랑을 끈임없이 방해합니다.

그러나 四面楚歌中[사면초가중]에 들어있는 외로운 「사랑」의 심정은 결코 이 싸움에 지지않습니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승리의 노래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모든 원수를 익일수 있읍니까? 하나님께서는 네가지로 말씀하섰읍니다. 

첫째로 범사에 「참으며」 하였읍니다. 모든 悖逆[패역]이 닥쳐올 때 우리는 「참어야」 하겠읍니다. 우리를 상하겠거든 그리하라 그러나 우리는 용서한다. 우리를 욕하려거든 그리하라 그러나 우리는 성내지 않겠다. 일곱 번식 七十[칠십]번 우리를 욕하고 핍박하고 모든 악하다하는 거짓말로 비방할지라도 우리는 그대로 고요히 이것을 참으리라. 이것이 사랑을 살리는 첫길이오 익이는 첫무긔외다. 둘재로 범사에 「믿으며」 하였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 측량할 수 없는 攝理[섭리]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세상이 다 악하다 할지라도 정의가 익인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믿음을 가집시다. 하나님을 믿는 나로서 알수 없는 곤고에 사로잡힐지라도 우리는 그의 섭리를 믿읍시다. 셋재로 범사에 「바라며」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유없이 악에 시달리여 냉종 죽음이 검은 손을 우리 눈앞에 펴들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 조요한 광채의 밝은 나라가 있음을 바라고 나갑시다. 그리하야 이 모든 무긔를 쓰되 하로 이틀이 아니라 범사에 「견대나니라」하였습니다. 오래오래 一生[일생]을 견듸고 또 견듸여 나갑니다. 거룩한 사랑이 우리 心情[심정]에 불탈 때 우리에게는 이 네가지 무긔가 쥐여집니다. 우리를 이사랑에서 끊을자 누구이겠읍니까?

나는 다시 딴방면으로 생각합니다. 即[즉] 이 사랑은 신자의 신앙생활의 모든 계단을 부뜰어주는 무긔라고도 볼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처음믿기로 작정하는 순간 집안과 친구와 모든 악한 세력이 통틀어 나서서 우리를 욕하고 핍박하야 못믿게 합니다. 그러나 그의 거룩한 사랑은 「범사에 참어나갑니다」 믿음이 조곰 자라 힘을 얻은 때 그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主[주]께로 인도하려합니다. 그때 그의 안에 있는 사랑의 心情[심정]은 그로하여금 「범사에 믿게 합니다」 그리하야 그 믿는 바를 증거하게 합니다. 믿음이 더욱 철저(徹底)하게 될 때 그에게는 락심할 일이 많이 보입니다. 世上[세상]이 너무 믿음 없는 것도 긔가 막히고 믿노라는 者[자]들이 너무 냉정한 것도 답답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心情[심정]은 그로하여금 「범사에 바라」’게 합니다. 그리하야 믿음을 지키여 꾸준히 걸어나가 죽음의 선을 넘을 때까지도 사랑의 심정은 그를 부뜰어 「범사에 

견대게」 합니다.

◇  ◇

以上[이상]에서 나는 하나님의 주신 거륵한 사랑이 어떻게 여러분 자신의 구원의 길을 지키여 주시는 것을 말슴하였읍니다. 지금부터는 이 사랑을 품은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向[향]하야 수고할 것을 말씀하려 합니다. 나는 아까 말씀드린 네 가지로 다시 말씀하겠읍니다.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은 「범사에 참습니다」 이 참는다는 글자는 「덮는다」는 글자입니다. 사랑은 「덮습니다」 덮어줍니다. 남의 잘못을 밝히려하지 않습니다. 그는 될수 잇는대로 그 결심을 덮어주고 가리워줍니다. 사랑하는 자는 상대자에게 무슨 결점이 있을가봐 몹시 겁냅니다. 그러나 그 있는 결점 들어내기는 몹시 가슴아파합니다. 지금 여기에 兄弟[형제]의 잘못을 발견하고 한시 바쁘게 이옷으로 달려다니며 광고하는 자가 있다면 오 그이의 심정에 사랑의 은혜가 탄생해지이다. 그러고 또 우리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잘못을 볼 때 그것을 소리놉으게 광포하고 공격함은 사랑없는 증거올시다. 우리는 그의 모든 잘못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의 녀인은 남편 다섯을 것첬으니 그리 깨끗한 과거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친절히 말슴하시고 책망으로 그것부터 들어내시지 않었읍니다.

둘째로 사랑하는 사람은 「범사에 믿습니다」 그의 상대자가 비록 믿음이 자라고 않고 덕이 없을지라도 버리지 안습니다. 그의 구원을 믿고 나갑니다. 셋재로 사랑하는 사람은 「범사에 바랍니다」 相對者[상대자]가 비록 소망이 없는 것 같을지라도 항상 그에게 소망을 가지고 나갑니다. 음행하다 잡힌 여인에게도 主[주]께서는 소망을 두시고 「도 너를 정죄하지 안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섰읍니다. 넷째로 사랑하는 사람은 「범사에 견딉니다」 이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참는 것도 한두번이오 믿는 것도 정도가 있고 바라는 것도 한정이 있지 어떻게 그리도 무조건하고 참고믿고 바라랴? 그러나 우리에게 만일 사랑이 있다면 끝까지 계속하야 「견듸어야」 합니다.

사랑은 자기희생입니다. 자기 편한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미워합니까? 나는 더 큰 친절로 당신을 대하리라 당신이 나를 욕합니까? 나는 당신을 위해 축복합니다. 사랑은 불탑니다. 사랑은 激烈[격렬]합니다. 이것은 主[주]께서 주신 구원의 표입니다. 사랑의 主[주]여 우리로 하여곰 당신의 손과 발에 박히신 사랑의 자최를 보게하소서 그러고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사랑에 불타 하나님과 사람에게 이 사랑을 실행하게 합소서. 아멘.



[범용기 제4권] (25)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능동과 창조

능동과 창조

사람들, 특히 아세아 사람들은 “대체로” 수동적인 생태로 산다. 그렇다고 예외가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말하자면 전제군주 앞에서의 諫爭(간쟁)[1]같은 것은 목숨 건 항변이니만큼 “능동적”이 아닐 수 없겠다. 그러나 근대적인 혁명에까지 밀고 나가지는 못했다. 결과로는 실패작이다. 사육신(死六臣), 생육신[2] 모두 고고한 자기 희생의 외로운 자랑만을 남긴 것이 아닐까?

“어명에는 ‘거역’이 없다!”

“대통령 ‘지시’인데 우선 따르고 봐야지! 그가 그 위치를 가진 것이 ‘찬탈’이냐 ‘합법’이냐는 논하기에 너무 늦었다. ‘이기면 군왕이오, 지면 역적’이라잖나!”

결국은 “힘”이 정의다. “힘센 놈에게 칡넝쿨처럼 감겨서 살자” 한다.

군인사회는 명령과 복종으로 통솔된다. 때로는 참모회의 같은데서 전략, 전술에 이견(異見)이 불꽃을 튀긴다. 그러나 마감 판단은 사령관의 ‘명령’이요 ‘의견’이 아니다. “이건 명령이다” 하면 그것으로 끝난다. 다음에는 전투가 있을 뿐이다. “군대화”한 “수동”이다. “군정”에 알맞은 “맨탈리티”다.

이런 현실에서 “군대”가 정부를 군대식 전투로 점령한다. “총력전”이다. “모두모두 군대처럼 되라!” “항명하면 군법으로 처단한다.” “하극상”이기 때문이다 한다.

그러나 3천만 국민은 “군인”도 아니고, 군율도 싫어한다. 우리는 “로보트”도 종도, 하인도 아니다. 우리는 “오뚝이”도 “탈바가지”도 아니다. 우리는 종로 네거리를 제멋대로 걸으련다. 내가 벌어 내 식구 살리고, 내 집 갖고, 될 수만 있으면 내 화초도 심고, 내 정원도 가꾸고 싶다. 그런데 어떤 군인이 칼 빼들고 건널목에서 눈을 부라리며 “우로 갓!” “앞으로 갓!” 하고 호통을 친다면 “저 녀석 돌았나?” “진짜 웃기네!” 밖에 뱉을 말이 없을 것 같다.

어쨌든, 군사정부란 전체 국민을 수동적으로 평준화하는 것이 “평등”이고 “안보”고 “질서”라고 생각한다. 옳든 궂든 제 말이 서잖으면 밸[3]이 뒤틀려 광증이 생기는 모양이다.

다윈[4]은 생물 진화의 요인을 외적으로 환경 즉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고, 그 더 강한 힘으로 환경을 지배하는 놈이 좋은 씨를 남겨 “진화” 된다고 했다. 그러나 “샬단”[5]은 생물 자체 안에 있는 스스로의 능동성이 새로운 창조에로 그를 밀어 올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물학적, 심리적인 Sphere에서, 약 100만 년 전에 우리 유성에 가장 운명적인 순간이 오게 됐다. “인간의 출현이다.” 인간은 전 우주의 범위와 모든 과거의 Spheres(界)를 그 존재 안에 간직하면서 그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시킬 수 없는 딴 Sphere 즉 그가 말하는 Noosphere,[6] 능동적으로 창조하는 지성계에 들어선 것이다. 그는 이제 자주, 자립, 독립된 창조하는 개체로서의 응결된 덩어리다. 자기를 초월하여 자기를 보는 불가분, 불가압의 신상이다.

수동자는 안전하면서도 비창조적이다. 능동자는 고생과 실패 속에서도 창조한다. 지금 한국의 별 같이, 불꽃 같이 폭발하는 지성들이 저급한 폭력에 눌려 창조와 진화의 행진에서 탈락된다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우주적인 범죄에 해당된다. 백만 년 걸린 하나님의 성업(聖業)을 똥 묻은 군화로 짓밟는 것이 “죄”가 아니겠는가?

[1981. 5. 17]



[각주]
1. 간쟁(諫爭) - 임금이나 윗사람에게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간절히 말함
2. 생육신(生六臣) - 조선 시대,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자 벼슬을 버림으로써 절개를 지킨 여섯 신하. 이맹전(李孟專), 조여(趙旅), 원호(元昊), 김시습(金時習), 성담수(成聃壽), 남효온(南孝溫) 또는 권절(權節)을 이른다.
3. 밸 – 성미나 자존심 또는 자기만의 생각이 자리잡은 가상의 처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속마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배짱’을 속되게 이르는 말
4. 다윈(Charles Robert Darwin) - 영국의 생물학자(1809~1882). 해군 측량선 비글호에 승선하여 남반구를 탐사하고 그 관찰 기록을 연구하여 진화론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1858년에는 저서 《종(種)의 기원》을 발표하여 자연 선택설에 의한 생물 진화론을 발표하였다.
5.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 프랑스의 신학자ㆍ고고학자ㆍ인류학자(1881~1955).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주장하였으며, 종교적 문명론과 진화론적 문명론을 전개하였다. 저서에 《현상(現象)으로서의 인간》이 있다.
6. Noosphere – 인지권(人智圈 ) - 이론생물학에서 인간의 개념적 사고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는 생물계의 일부. 과학이론가인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 블라디미르 이바노비치 베르나드스키, 에두아르 드 루아가 제시한 이 개념은 지권인 무생물계나 생물생활권인 생물계와 대립되는 지적 차원의 것이다. 인지권에 대해 인간이 생활하고 지배하며 인간의 활동에 의해 물리적인 영향을 받는 생물권의 한 부분을 인지권이라 하는데 때로 인지권과 동연개념으로 간주된다.

[범용기 제4권] (24)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死而後己(사이후이)

死而後己(사이후이)

죽은 다음에는 몰라도 죽는 순간까지는 그만두지 않는다.[1] “死六臣”(사육신)[2]의 경우, 그들의 절개는 그러하였다. 성공하든 못하든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한다. 숨질 때까지 변절은 없다. “士心(사심)”[3]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그 이상이었다. 죽기까지 한다. 죽으면서도 한다. 죽은 다음에도 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 진짜로 이긴다. 영원한 개선문이 열린다. 그때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아버지로부터 ‘아들’인 나에게 주어진다. 그래서 영원한 “이상왕”(理想王), 메시야가 “하늘나라”를 땅에 정착시킨다. 인간역사가 변질된다. “전 우주적인 사랑의 공동체”가 실현된다. 이것이 예수의 투쟁 목표였다. 이런 거대한 “플랜”은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 아니며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 “나는 이 땅에 하늘나라 터를 닦았다. 「머릿돌」을 놓았다. 나는 하늘 아버지 오른 켠, 내 직위 자리로 간다.” 그의 “육체”는 “영체”로 승화하여 우주의 영계로 올리 나랐다.

“그 동안에 너희 인간들이 할 일이 있다. 너희 인간 하나 하나가 내 영의 內在(내재)로 나를 본떠 ‘인간갱신’ 운동을 계속해라. 내 영의 불꽃이 너희 속에 이글이글 타게 되면 너희 전 존재가 영광의 횃불로 하늘에 치솟을 것이다. 그리고 불꽃은 두들기는대로 튕겨 전 세계로 퍼져 산불(山火)처럼 탈 것이다. 그 때에는 내가 너희에게 하던 말이 기억날 것이다.”

“내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기를 내가 얼마나 원했던고!”(누가 12:49).

성당의 뾰족탑은 하늘을 태우려는 땅의 불꽃이다. 땅을 태우려는 하늘의 불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그게 거꾸로 붙으니 딴 것들이 땅에 불을 지른다.

우리는 “주여 오시옵소서” 하고 사과나무 밑에 입을 벌리고 벌렁 자빠져, 언제 저 사과가 내 입에 쏙 들어오나 하고 기다린다.

예수는 아마도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고 채찍으로 후려갈길 것이다.

지금은 “혁명의 시대”라고 한다. 혁명은 하나님의 채찍이다. 심판은 먼저 교회에 나린다. 왜 그럴까. 그래도 저 피묻은 군화바닥으로 “하느님의 형상”을 밟아 짓이기는 군정 “왕초”보다는 교인이 낫지 않은가?

그러나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고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푼다. 역사는 이제 너희가 맡았다고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유언처럼 남긴 것을 배신한 죄가 있다. 그 “너희”가 누군가? 지금으로 말한다면 7억이 넘는 크리스천 인구가 아닌가? 공산주의자는 “사자” 같이 “혁명”하는데 “기독자”는 왜 밤낮 매매하고 양같이만 구는가? 역사가 “사자화”, “이리화” 하기 전에 인간화 그리스도화 하게 하라는 하늘의 “명”을 저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리스도는 오지 않은 것이 아닐까,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죽으면서도 그 “톤”(Tone)을 낮추지 않는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은 약속된다. 역사는 주어진다.

[1981. 6. 20]



[각주]
1. 사이후이(死而後已) - 죽은 뒤에야 그만둔다는 뜻으로, 살아 있는 한 끝까지 그 일에 힘씀을 이르는 말
2. 사육신(死六臣) - 조선 세조 때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잡혀 죽은 여섯 명의 충신. 곧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하위지(河緯地),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를 말한다.
3. 사심(士心) - 선비의 마음

[범용기 제4권] (27)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목사의 심정 (2)

목사의 심정 (2) 목사란 어떤 경우에는 “제한선 돌파”란 “파격”이, “상식”과 “직업도덕”과 “일반예론”을 웃어버리는 뱃장이 필요하다. 무슨 “영웅”이나 “전문가”, “목회기술자”, 사회의 VIP로서의 오만이나 “긍지”를 과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