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5일 수요일

[범용기 제3권] (192) 北美留記 第五年 1978 - “제3일” - Second Class Mail로

“제3일” - Second Class Mail로

5월 31일 – 김정근과 박세진 두 젊은 동지가 “제3일” 2종우편[1] 면허를 얻어다 줬다.



[각주]
1. Second Class Mail

[범용기 제3권] (191) 北美留記 第五年 1978 - 학자회 직후의 남은 날들에

학자회 직후의 남은 날들에

5월 27일(토) - 학자회 폐회 후에 UM 실행위원회가 모였다.

연합교회 여신우회에서 학자회 전원에게 만찬을 대접했다.

Toronto 대학교 학술원 이층에서 토론토 민건주최 강연회도 있었다. 오걸 박사와 선우학원 박사가 연사였다. 강연 후에 Hot Discussion이 벌어졌었다.

필자가 이렇게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것은 학자회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서다.

5월 28일(일) - 서독의 정하은 박사가 연합교회에서 설교했다. 밤에 이 목사 집에서 서독 사정을 자세하게 들었다. 선우 박사도 자리를 같이했다.

5월 29일 – 점심은 차순자 여사가 숙부인 차상달 선생을 위해 성찬(盛饌)을 차리고 나도 초대해 줬다.

저녁은 김인숙 여사(시인)가 차상달 내외분과 선우 박사와 나를 초대했다.

2026년 3월 24일 화요일

[범용기 제3권] (190) 北美留記 第五年 1978 - 제12회 기독학자회에서

제12회 기독학자회에서

5월 25일 - “북미주 한국기독학자회” 제12회 년차대회가 토론토 성마이클 회당에서 모였다.

“주제”는 “인권과 기독자의 책임”이다. 나는 “아침 경건회”를 인도했다.

Plenary Session[1]에서의 연제들은 아래와 같았다.

1. 노동조합과 경제관계의 투쟁

Dr. Geroge Ogle – Emory 대학 교수

2. 구약에서의 인권 개념

함성국 박사

3. 한국의 인권신학 … 강위조 박사

Penel[2]에서의 과제와 강연자들은 아래와 같다.

Penel 1. - 한국인권운동의 역사적 근원(Roots)

(1) 이조시대 법전에 나타난 전통적 인권개념

  • Dr. Wm R. Show … Pennsylvania대학 교수

(2) 동학혁명에서의 인권전통

  • 전 천도교 도령(道領) 최덕신 장군

(3) 3.1. 운동에서의 인권

  • 김희섭 박사. St. Paul United College 교수

(4) 4.19. 학생혁명에서의 인권

  • 이화수 박사. Santa Monica CA.

Penel 2. 북미주에서의 인권상황

(1) 북미주 아세아 이민의 경험

  • 이상현 … Hope College 교수

(2) 미국 흑인들의 인권투쟁

  • Mr. Woong K. Cho … Alchorn 대학 교수

Penel 3. 여성해방과 인권

(1) 가정문제 법률연구소에서 본 여성 인권운동

  • 김현순 … Columbia대학 교수
  • Sonia Strawn … 남한 가정법률연구소

(2) “여권운동”에서 본 미국 재주(在住) 한국여성의 주체성(Identity) 위기

  • 부민자 박사 … West Virginiaeo 대학교수

(3) 북미사회에서의 한국여성 직업문제

  • 장병혜 교수 … Seton Hall 대학교수. Pen. N. J.

Penel 4. 제3세계에서의 인권투쟁운동

(1) 공산국가에서의 인권개념

  • 정하은 박사 … 서독백림ㆍ한독문화원장

(2) 남미에서의 인권투쟁

  • 홍근수 박사 … St. Louis 한인교회 목사

(3) 일본교포의 인권투쟁

  • 김해천 … 토론토 건축설계사, 전 일본교포

5월 27일(토) - 아침경건회를 인도했다. 설교 제목은 “全人”이다.

평가회, 사업계획, 사무처리를 마치고 12시 15분에 점심 – 산회했다.

학자회는 언제나 유익했고 진지한 연구발표였고 서로 배우고 친교를 두텁게 한다.



[각주]
1. Plenary Session – 본회의, 전체 회의
2. Panel – 패널, 위원단, 판자, 토론참석자, 부분화

[범용기 제3권] (189) 北美留記 第五年 1978 - 고대교수 김용준 박사 만나고

고대교수 김용준 박사 만나고

5월 11일 – N.Y. 구춘회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에 Boston 대학교로부터 학술강연 특별 연사로 초청받은 고려대학 김용준 박사를 만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5월 16일 – 오후 세시 반에 이 목사와 함께 그의 차로 Buffalow에 갔다. 김용준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다.

캐나다에는 여권 관계로 입국이 안되기 때문이다.

Buffalow 공항에서 만나 시내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새로 세 시까지 본국 소식과 그의 대책을 들었다.

그는 학자로서 민주동지다. “제3일” 동인으로 4년 동안 성의를 다했다.

그의 말로서는 “‘독재정권’이 속히 무너질 것 같지도 않으니 장기전을 추진해야 한다. 학생들이 ‘데모’를 한다고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공부도 못하고 잡혀가고 고생만 죽도록 한다. 공부가 뒤떨어져서 탈락한다. 취직도 못한다. 이런 건 계산에 안맞는 일이다.…”

“장기건설에서 제일차적인 준비는 인물양성이다. 특히 최고급의 과학기술자와 민주적인 사회학자, 민주적인 정치학자, 등등의 양성이다. 학업이 우수한 민주학생을 지금부터 해외에 유학시켜야 하며 해외와 국내가 협동하여 그 길을 열어줘야 한다. 준비없이 기회만 바라는 것은 ‘도박’이지, ‘계획’이 아니다….”

밤에는 셋이서 나이아가라 야경을 탐승했다. 다리를 못 건너기 때문에 미국측 폭포와 미국측에서 보는 나이아가라만을 구경했다.

미국측 폭포는 절벽이 허물어져서 높이가 낮아졌다. 그러나 허물어져 되는대로 딩군 거암들에 부딪쳐 곤두서 치솟는 격랑[1]도 그 나름대로 장관이었다.



[각주]
1. 격랑(激浪) - 매우 높고 거센 파도

[범용기 제3권] (188) 北美留記 第五年 1978 - Colaition 평가회에

Colaition 평가회에

4월 19일(수) - 교회본부에서 Coalition 평가회가 있었다. 상철과 나도 참석했다.

Biligs가 사회했다. 나는 “명예회장”이란 명목으로 “헤드테이블” 빌링스 옆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빌링스”가 볼 일이 있어 나가면 부위원장인 상철이 사회한다.

상철은 “명사회자”란 말을 들을만큼 자연스럽고 능숙했다. Coalition Steering Commity Member 전원이 모였으나 50명(?) 가까운 V.I.P.들이었다.

상철은 오후 7시에 Toronto로 갔다.

나는 밤에 Columbia 대학 구내 Bernard Hall에서 한국인 학생회 주최 4.19기념강연을 들었다.

그들은 “합작”주의였다. 임창영과 나에게 개회사를 부탁하고 서정균과 김병서에게 강연을 부탁했었다.

영화 “한국민주운동 Documentary”도 상영한다고 했다. 한승인과 나는 도중에서 나왔다.

서정균의 강연내용은 아주 민주적이고 온건했다.

4월 20일 – 한승인 댁에서 조반과 점심을 먹고 교회본부로 갔다. 오후 5시에 김상호 박사 차로 김홍준 장로 집에 갔다.

임순만 박사가 와서 12시까지 담화했다. 유익한 하루였다.

김 장로 댁에서 잤다.

4월 21일 – 밤에 임순만, 김정순 등이 찾아 와서 민주 운동 발전책과 김대중 구출운동에 대하여 논의했다.

4월 24일(월) - 오후 한 시 비행기로 라과디아를 떠나 2:05분에 Toronto 공항에 도착했다.

경용 집에서 유숙했다.

[십자군 제1권 제2호] 주의 발자최 - 추호

주의 발자최

-秋湖[추호] 전영택

[십자군 제1권 제2호] 5쪽

꿈에라도 보고싶은 주의 발자최

그리운 그자최를 내몸소 밟과저

거룩한 발이 티끌우에 자국난

주의 발자최를 한거름 또 한거름


사모하는 그말슴 꿀같은 말슴

영원한 말슴이 고요이 울려진

요단강 잔물결 하린산 풀숲을

그음성 그자최를 삿삿치 찾과저


마지막길 걸어가신 주의 발자최

무거운 십자가 등의 지시고

이마에서 붉은피 방울방울 흘리신 

주의 발자최 이몸도 뒤따라 가음과저



[범용기 제3권] (187) 北美留記 第五年 1978 - 민주예비역 장성회 발기모임

민주예비역 장성회 발기모임

78, 4월 13일 – 7:05PM에 Toronto공항을 떠나 9:45PM에 Washington National Airport에 내렸다.

Waterfront Hotel이던가(?) 어쨌든 와싱톤에서도 일류호텔 205호실에 들었다.

임창영, 최홍희, 최덕신, 고원 그리고 대령급 사람들이 설치고 다닌다. 모두 “民協”(민협) 사람들이다.

그때사 “프로그람”을 내놓는데 어마어마하게 잡다한 행사다.

일본 동경 배동호 사무실과는 간단없는 직통전화다. 일일이 재가를 받는 모양이었다.

불쾌지수가 치솟는다.

나는 구경꾼 이상의 아무 임무도 발언도 없었다.

단상에 앉아 있었던지 알숭달숭하지만 아마도 단 위엣 “귀빈”이란 노릇은 했던 것 같다.

4월 14일 – Mayflower hotel에서 민통사무총장 이근팔 씨를 비롯한 간부급 인사들과 함께 모여, 최근에 “일본민통”에 다녀온 와싱톤 민통의장 송정률 목사의 보고담을 들었다.

그 호텔에서 잤다.

[범용기 제3권] (192) 北美留記 第五年 1978 - “제3일” - Second Class Mail로

“제3일” - Second Class Mail로 5월 31일 – 김정근과 박세진 두 젊은 동지가 “제3일” 2종우편 [1] 면허를 얻어다 줬다. [각주] 1. Second Class Mai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