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31일 화요일

[범용기 제4권] (6) 서장 - 원형(Prototype)

원형(Prototype)

(1) 인간의 원형

“인간이 타락했다”, “크리스챤이 타락했다” 등등의 말을 듣는다. 타락했다는 것은 타락이 이전의 “원형”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 “원형”이란 것은 이미 타락한 것들 중에서 비교적 나은 타입의 사람을 골라잡는다는 과정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중국에서 요[1], 순[2], 우[3], 탕[4] 등 과거의 성군(聖君)들을 이상화하여 그 과거에 황금 옷을 입히는 일이라든지, 서양 사람들이 미래에 유토피아[5]를 그리면서 그 꿈의 화려한 옷자락 속에 감싸여 감미로운 영탄[6]에 젖는다든지 하는 방향에서 발굴된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도의 차는 있을지 몰라도 인간의 타락태(態)는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원형”은 진짜 원초, 즉 타락 이전에서 찾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놀랍게도 우리는 그것을 창세기 1장에서 발견한다. 하느님이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감에 사람을 만드셨다. “자 이제 우리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를 천지만물의 관리자로 삼자” 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이다. 하느님 자신은 아니지만 그의 “이미지”다. 이것이 인간의 “원형”이다. 하느님을 닮은 존재다. 하느님은 범죄자가 아니다. 인간도 “죄인”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죽지 않으신다. 인간도 죽어야 할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인간도 영의 질서에 속해 있다. 하느님은 계시의 필요에 따라 몸으로 나타나신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 공간의 제약에 예속된 몸이 아니다. 그것은 영의 몸이다. 인간의 몸도 그 원형에 있어서 “영의 몸”이다. 역사 안에서 살다가도 어느 기간 지나면 죽음을 거치지 않고 “하늘”의 질서에 승화하는 몸이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되기 위한 원초적인 조건인 “자유”를 자기의 육적 동물적인 “자연” 질서에 바쳤다. 그래서 그는 영의 질서에서 자연 질서의 “신진대사” 법칙에로 떨어졌다. 이것을 성서에서 “타락”(Fall)이라 했다.

원형에서 추락됐다는 말이다.

[1980. 4. 23.]

(2) 크리스챤의 원형

크리스챤이 타락했다고들 한다. 그것 역시 크리스챤으로서의 “원형”에서 미끄러져 추락했다는 뜻일 것이다. 따라서 크리스챤이 “크리스챤격”을 회복한다는 것은 그 원형을 되찾고 터전삼아 삶을 재건해 가는 것을 말함일 것이다.

그 원형이 어떤 것이냐? 원래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은 초대 교회(사도 시대) 때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붙은 별명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때 거기 교인들이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서 어느 누구에게나 만날 때 인사말부터 그리스도의 평안을 묻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했기 때문에 “저것들은 그리스도쟁이다” 하고 놀려댔던 것이 신자들의 자랑스런 이름으로 정립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수가 메시아 즉 그리스도”란 것을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즉 “크리스챤”이다. 따라서 크리스챤이란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뜻이 된다. 그들의 제일차 충성 대상은 그리스도다. 우리의 삶이란 엄숙한 결단과 선택의 연속인데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크리스챤의 결단이어야 한단 말이다. 크리스챤이 세상에서 대접받을 때에는 결단 이전에 벌써 이 “별명”을 자랑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챤이 푸대접 받고 숨잖으면 생존마저 약속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문제가 아주 달라진다. 이때에는 목숨 걸고 결단하며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크리스챤의 “탄생고”라 하겠다. 수에 있어서 “다수”를 기대할 수도 물론 없다. 영원한 “마이너리티”가 그들의 운명이며 동시에 사명이다. 가령 우리의 현존사회 구조 속에서 획득욕, 지배욕, 명예욕 등등을 비웃어 버리고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옳으심을 증언하기 위해서 가정의 보금자리 대신에 감옥을 택하고 자유여행 대신에 “연행”을 택하고 “고관”[7] 대신에 “죄수”됨을 택한다면 그것은 초대 로마교인들이 “카타콤”[8]을 택한 것보다 더 어려운 선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형(形)인 경우, 그 “원형”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심판할 것이다.

[1980. 5.]

(3) KOREA의 원형

일전 어떤 모임에서 Korea를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대하여 논의가 구구하였다. “민족명”에 있어서도 일치를 보기가 어려웠다. Korea를 한국, 조선, 고려 등등으로 불러봐도 각기 제 나름대로의 표딱지가 붙어서 개운치가 않다.

민족 이름으로서도 한국민족, 조선민족, 고려민족, 백의민족, 단군겨레, 배달민족 등등이 난립되어 얼른 골라잡기 어려웠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지만 외세에 붙어 심부름 한 기록이 너무 역력하기 때문에 께름한[9] 뒷맛이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고려는 그보다 훨씬 깔끔한 통일왕국이었기에 우리는 통일된 나라의 국호를 “고려”로 해도 좋다는 생각들도 있었다. Korea란 말도 “고려”란 데서 나온 것이기에 Korea를 고려로 번역하면 자연스러운 “뉘앙스”기도 하다. 그러나 Korea의 “원형”으로 좌정하기에는 너무 조무래기 판도다. 함경북도에도 손이 안 미쳤으니 말이다. 우리는 Greater Korea를 판도의 원형으로 금그려야 한다. 그래서 고구려 전성시대의 판도를 원형으로 제시하는 분도 있었다. 그것은 한반도와 만주와 연해주를 포함하는 우리 국토였기 때문이다. 민족 이름으로서는 “배달민족”이 제일 무난하다는 결론이었다.

어쨌든 우리가 손바닥만한 남한 또는 북한에 갇혀서 조무래기 민족으로 오그러질 수는 없다. 실현성이야 있던 없던, Greater Korea를 우리 마음의 판도 안에 간직하고 그것을 염원한다는 것은 우리의 외향성을 자래우는[10] 데 영양소가 될 것이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북미주를 비롯하여 중남미, 중동, 동남아, 시베리아, 아프리카, 아라비아, 남양군도 – 세계 어디에나 못갈 데 없고, 못 살 데 없다는 뱃장으로 세계사 창조에 동참하는 세계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계적이고 그 정신이 세계 역사 조성의 “혼”이 되고 활력소가 되고 빛, 누룩, 소금이 됐다는 사실을 건등으로 봐 넘기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Korea는 Korea의 타락형이다.

[1980. 5. 5.]



[각주]
1. 요(堯) - BC 24세기경에 활동한 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제왕. 정식 이름은 당제요(唐帝堯). 고대 황금기를 다스렸으며, 공자에 의해 덕·정의(正義) 및 이타적인 희생의 영원한 본보기로 찬양되었다. 그와 떼어놓을 수 없는 사람으로 순(舜)이 있는데, 그는 요의 후계자로서 요의 두 딸과 결혼했다.
2. 순(舜) - 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상의 성왕. 정식 이름은 우제순(虞帝舜). BC 23세기경에 고대 황금시대의 제왕으로서, 공자는 그를 완전함과 찬연히 빛나는 덕의 상징으로 칭송했다. 요는 자기의 아들을 제쳐놓고 순을 새로운 통치자로 선택했다. 또한 그에게 두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주어 결혼시켰다.
3. 우(禹) -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인 하나라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전설상의 인물. 홍수를 다스려 나라를 구했다고 한다. 그의 탄생에 관한 많은 전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순 임금이 곤에게 홍수를 다스리게 하자, 곤은 둑을 쌓기 위해 하늘나라에서 식양이라는 요술 흙을 한 줌 훔쳤는데 이에 노한 상제가 그를 처형했다. 3년 후에 그동안 썩지 않았던 그의 몸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우라는 것이다. 우는 용의 도움으로 몇 년 간 열심히 일한 끝에 바다로 물길을 내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공으로 순에게 왕위를 물려받아 국호를 ‘하’라 정하고, 중국 전역을 9주로 나누어 공부를 정했다.
4. 탕(湯) - BC 18세기경에 활동한 중국의 황제. 성탕ㆍ태을이라고도 한다.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상, 즉 은(BC 18~12세기)나라를 세웠다. 역사상 실제 인물인 탕은 신분이 높은 가문의 후예였던 것으로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신화적 인물인 황제의 후예라고 한다.
5. 유토피아(Utopia) - 이상으로 그리는 가장 완벽하고 평화로운 사회
6. 영탄(詠嘆) - 마음 깊이 감동하여 탄복함
7. 고관(高官) - 직위가 높은 관리
8. 카타콤(catacomb) - 초기 그리스도교 교도의 비밀 지하 공동묘지. 교인들의 매장 장소일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피해 예배를 보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9. 께름하다 – 무언가 석연치 않아 언짢은 데가 있다.
10. 북한에서는 ‘기르다’나 ‘키우다’에 못지않게 ‘자래우다’를 문화어로 널리 사용한다. ‘자래우다’는 ‘자라다’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자래우다’는 ‘자라게 하다’를 말한다.

[십자군 제1권 제3호] 정사와 기원 : 우리 - 장공

靜思[정사]와 祈願[기원] 

長空[장공]

  • 『장공김재준저작전집(전5권)』 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년, 제5권, 29.
  • 『김재준전집(전18권)』 한신대학출판부, 1992년, 제1권, 111.
  • 『낙수』, 1940년 - [바로가기]

『우리』

요한이 예수께 엿자온대 『우리가 보니 한 사람이 主[주]의 일홈으로[1] 邪鬼[사귀]를 내어쫓거늘 저가 「우리」를 따르지 아니한 연고로 「우리」가 禁[금]하였나이다』(막 9:38) 그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의 일홈으로[1] 邪鬼[사귀]를 내쫓는데 그리스도의 愛弟子[애제자] 요한으로서 웨 그것을 禁[금]하였는가? 그가 邪鬼[사귀] 내쫓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고 그 좋은 일을 그리스도의 일홈으로[1] 行[행]한다. 本質的[본질적]으로 보아 그의 하는 일을 禁[금]할 理由[이유]가 없다. 그러나 弟子[제자]들의 禁[금]한 理由(이유)는 그 어떤 사람이 「우리」 그룹이 아니라는 點[점]에 있었던 모양이다. 弟子[제자]들은 그때 그리스도의 恩惠[은혜]를 自己[자기]네만이 獨占[독점]한줄로 알었다. 自己[자기]네가 專賣特許[전매특허] 맛흔[2] 것인 줄 알었다. 그들은 信仰統制[신앙통제]의 엄청난 野望[야망]을 達成[달성]하기 爲[위]하야 主人[주인]되는 그리스도 自身[자신]에게 엿주어 보기도 前[전]에 벌서 그 사람의 信仰生活[신앙생활]에 한 鐵甲[철갑]을 채워 놓았다. 그러고 追後承諾[추후승락]을 받으려는 것이였다. 그러나 『禁[금]하지 마라! 우리를 拒逆[거역]하지 안는 사람은 곧 우리를 爲[위]하는 사람이니라. …… 너희 속에도 소곰을 치고 서로 화목하라』 하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슴하셨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는가! 이런 血肉[혈육]에 屬[속]한 생각으로 敎會[교회]를 指導[지도]하야 分裂[분열]과 憎惡[증오]를 助長[조장]하는 일은 없는가? 「우리」 「우리」! 퍽으나 情[정]다운 말이다. 그러나 「우리」를 그리스도의 王座[왕좌]에 안치고[3] 그리스도의 代身[대신]에 우리를 내여세우면 結局[결국] 이 「우리」는 暴君[폭군]이오 「우리」의 行事[행사]는 惡政[악정]이 되는 것이다. 다만 「福音[복음]의 宣傳[선전]」 「사랑의 實行[실행]」을 爲[위]한 「우리」, 「섬기기 위한」 「우리」만 있게 하옵시고 權利[권리]잡기 爲[위]한, 信仰統制[신앙통제]를 爲[위]한 우리는 決[결]코 생기지 말게 하옵소서. 그리하야 主[주]님이 모든 데에 直接[직접] 主管[주관]하시며 모든 權勢[권세]와 榮光[영광]은[4] 主[주]님의 것으로만 있게 하옵소서.





[각주]
1. 『낙수』에는 ‘이름으로’
2. 『낙수』에는 ‘맡은’
3. 『낙수』에는 ‘앉히고’
4. 『낙수』에는 ‘榮光[영광]을’

[범용기 제4권] (5) 서장 - 자유라는 것

자유라는 것

인간이 “자유”를 원한다는 것은 인간이 이것 저것 다 갖고 있는데 거기다가 자유까지 곁들어 갖고 싶다는 분수 밖에 욕심이 아니다. 자유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기 위한 존재로서의 원초적인 조건이다. 인간이 “자유”를 잃으면 “주체” 노릇을 못한다. 자기가 객체화한다. 그래서 힘센 녀석의 종이 되기도 하고 폭력배에게 전당[1] 잡힌 전당포 물건도 된다. 어떤 깡패 두목은 무섭게 독재한다. 그러면서 “나는 선의의 독재자다”, “내가 너희를 잘 살게 해 준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차관[2]도 얻어주고 산업도 일으켜서 벼락부자 몇 놈이 생긴다. 가난뱅이가 갑자기 부자되며는, 들떠서 돈 귀한 줄 모른다. 돈 한 푼이 인간들 피의 응고체란 것을 모른다. 그래서 그 돈이 살인, 강도, 탕녀, 잡귀들 바지가락 치마자락에 흘러들거나 아니면 독재자 자신의 “도물시장”[3]에 바쳐진다. 그래도 워낙 긁어 쌓은 노적가리[4]가 크니까 그 정도로서는 바닥이 안 난다. 나라 재산이 온통 자기 사유물인줄 아는 “독재자”는 질투를 느낀다.

“네 놈이 누구 덕에 부자 됐는데! 독재하려면 돈이 한없이 든단 말야! 이리 좀 가져와!” 몇 억 실어간다. 독재자 버릇은 갈수록 나빠진다. “선의”로서는 “독재”가 안된다. 권력에 중독되고 권력중독은 돈이란 캠풀 주사를 맞아야 한다. 권력중독이나 아편중독이나 마찬가지다. “이놈아 그 주사약, 그 제조공장 할 것 없이 몽땅 갖다 바쳐…”, “안 바치면 뺏는다. 안 뺏기려면 죽는다”, “죽이고서 뺏는다.”

그래서 이병철은 삼십분 안에 문화재단이나 문화방송이니 하는 것들을 고스란히 뺏겼다. 독재자가 어떤 녀석을 살지게 잘 먹여 길렀다면 그건 자기가 필요한 경우에 잡아먹기 위한 “가축”으로서의 사육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한번 자기의 자유를 뺏기면 그 하회는 “인간상실”인 것이다.

창세기를 읽어보라. 인간은 “하나님의 이미지”로 지어졌다. 하나님은 자유다. 하나님 위에 앉아서 하나님을 이래라 저래라 할 더 “슈퍼”한 존재는 없다. 인간이 “하나님 형상”이라면 인간은 자유다. “자유” 없이 인간일 수가 없다.

하나님이 주신 인간자유는 그 자유를 갖고 하나님을 반역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순종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의 자유다. 선택의 자유가 그 근원에서 부정됐다면 그건 자유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것은 “로버트”다. 로버트나 콤퓨터가 아무리 영리해도 인간이 만지작거리는 단추며 “키이”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지 생물은 아니다.

예수가 열두 제자를 택했다. 그 중에는 가룟 유다가 섞여 있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시골 사람이었지만 유다는 도시인으로서의 “스마트”한 인간이어서 “돈”의 값어치를 알고 있었다. 그는 예수를 “은” 30에 팔았다. 그런데 예수는 그걸 눈치 챘으면서도 제재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배반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는 “유다”의 자유선택을 억제하지 않았다.

예수에게 있어서는 “인간”으로서 반역하는 유다가 기계로서 순종하는 유다보다 더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가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은 더 큰 경륜으로 그것을 인간 구원의 십자가에 포함시켰다.



[각주]
1. 전당(典當) -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맡긴 물건을 마음대로 처분하여도 좋다는 조건하에 물건을 담보로 돈을 꾸어 주거나 꾸어 씀
2. 차관(借款) - 한 나라의 정부나 기업, 은행이 외국 정부나 공적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려 옴
3. 도물(盜物) - 훔친 물건
4. 노적가리 – 곡식 때위를 한데 수북이 쌓아 둠


[십자군 제1권 제3호] 정사와 기원 : 교만 - 장공

靜思[정사]와 祈願[기원] 

長空[장공]

  • 『장공김재준저작전집(전5권)』 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년, 제5권, 28.
  • 『김재준전집(전18권)』 한신대학출판부, 1992년, 제1권, 110.
  • 『낙수』, 1940년 - [바로가기]

『교만』


에돔아!
네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絶壁[절벽]우 城砦[성채]에 머물어
높은 자리에 앉었으니
「누가 能[능]히 나를 바닥에 던지랴」고 혼자 말하도다.


네가 독수리같이 높은 데 집짓코,
별들 사이에 네 둥이를 틀지라도
거긔서 내가 너를 잡아 나리리라고
이것이 여호와의 말슴이시다(오바디아 3~4)


에돔의 驕慢[교만]에 對[대]한 警責[경책]이다. 진실로 무서운 것이 「교만」이다. 돈이 좀 있어도 교만, 地位[지위]가 조곰 높아도[1] 교만, 智識[지식]이 좀 많아도 교만, 信仰[신앙]이 좀 높아저도 교만, 그리고 이런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어도 교만만 남은 것이 우리 朝鮮[조선]사람이 아닐가 이것은 암만해도 하나님 앞에 直面[직면]하지 못하고 제 뱃굽만 나려다 보는 까닭인가 한다. 내가 진실로 全智[전지]하신[2] 하나님 앞에 섰을진대 어찌 敢(감)히 내 智識[지식]을 云謂[운위]할 생각이 나랴. 어찌 감히 내 믿음을 자랑하야 兄弟[형제]의 判官[판관]으로 自處[자처]할 생각이 나랴. 主[주]여 凡事[범사]에 謙遜[겸손]하게 합소서. 스사로[3] 별들 사이에 둥이를 틀었다가 당신의 손에 붙잡히여 땅바닥에 던져지는 무서운 審判[심판]에서 救援[구원]해 주소서. 아멘.



[각주]
1. 『낙수』에는 ‘좀 높아도’
2. 『낙수』에는 ‘전능하신’
3. 『낙수』에는 ‘스스로’

[범용기 제4권] (4) 서장 - “雜草”(잡초)의 단상

“雜草”(잡초)의 단상

수필, 수상, 단상 등등의 문학 형식은 대략 같은 부족이라 하겠다.

수필이란 것은 생각나는 대로 단숨에 내리 갈기는 것이어서 때로는 “넌픽션 소설” 같기도 하고 “수기”(手記) 같기도 하다. 일인칭으로 엮었을 때에는 “자서전” 비슷하기도 하다. 국문학 전문가로서 시조 연구에 제일인자로 치부하는 서울대학 이병기[1] 박사의 글은 개인 일기체로 엮어졌지만, 담담하고 무사(無私)하여[2] 독자를 매혹한다. 한약재 사러 봉천 갔던 얘기, 어느 친구, 만나러 갔던 얘기, 그 친구는 그럴 수 없는 사인데도 돈량[3]이나 벌었노라고 뚱뚱보가 되어 오만스레 깔보던 얘기 담박하면서도 감초 맛이 달콤한 일기체 단장들이다.

한신대 제4회 졸업생 임인수[4] 같은 사람은 내향적이고 마음 밑바닥까지 침묵의 “아비스”[5]가 가라앉은 사람이었다. 원래가 시인으로 태어난 “혼”이었지만 너무 가난해서 마감에는 “술”로 화풀이하다가 청춘에 가버린 문학의 수난자였다. 내게 대한 신의는 언제나 진실했고 지금 L.A.에 사는 김형식 씨가 첨부터 알아주는 문학친구였다. 그의 “시”도 단장적인 그리스도 찬가로 엮어졌다.

이병기 박사의 “논문”도 국문학사에서 빼지 못할 명편들이겠지만, 논문의 장황함은 학문의 자랑일지 몰라도 번거롭고 어려워서 민중에게는 기가 질린다.

그런데 “단상”은 우선 길지가 않다. “이런 글쯤이야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두 장(章) 나도 읽을 수 있어!”

둘째로 제목과 내용이 장마다 다르다. “장”마다 딴 얘기다. 그런데 그 속에 “가시”가 있어서 따끔, 맘을 찌른다. 생활의 권태가 진력나던 참이라, 따끔 찔리는 가시를 환영한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셋째로, 따끔한 바늘 끝에 미래가 찍혀 나온다.

가령 병원에서 간장 검사를 한다하자, 간장이란, 묵중해서 아파도 아프다 하질 않는다. 아픈 줄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갈구리 달린 주사바늘을 간장에 찔러 넣어 빽 돌려서 빼낸다. 간장 조직이 갈구리에 묻어나온다. 그 작은 단편이 간장 진단에 결론을 내린다. 치료 방법도 고안된다.

“단상”은 짧지만 매운 데가 있고 긴 논문보다 따끔한 요소가 생동한다.

그래서 “단상”을 쓰기 시작했다.

“짧은 글”이라면 본국 있을 때에도 썼다. “제3일”에 발표된 것만도 51편이나 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지식인의 의식 구조를 찌르는 내용이 거의 전부였다. 이제는 더 내려가 “Grass Root”[6]에 뿌리를 내린다. 말하자면 “잡초 문학”이다. 그래서 이번 단상집은 그것만으로 독립시킬 작정이다. 나도 “잡초”라는 “의식인”이기 때문에!

[1981. 5. 15.]



[각주]
1. 이병기(李秉岐, 1891~1968) - 현대의 국문학자ㆍ시조시인. 호는 가람(嘉藍). 1898년부터 고향의 사숙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당대 중국의 사상가 량치챠오[梁啓超]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을 읽고 신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한다. 1910년 전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13년 관립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재학중인 1912년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으로부터 조선어문법을 배웠다. 시조에 뜻을 두고 1926년 ‘시조회’를 발기하였고, 1928년 ‘가요연구회’로 개칭하여 시조 혁신을 제창하는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뤘으며, 광복 후 상경하여 군정청 편수관을 지냈다. 1946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1951년부터 전라북도 전시연합대학 교수, 전북대학교 문리대학장을 지내다 1956년 정년퇴임하였다.
2. 무사(無私)하다 – 사사로움이 없이 공정하다.
3. 돈량 - ‘돈냥’(얼마간의 돈, 또는 남이 가진 꽤 많은 양의 돈을 낮잡아 이르는 말)의 북한어
4. 임인수(林仁洙, 1919-1967) - 해방 이후 『땅에 쓴 글씨』를 저술한 시인, 아동문학가. 호는 현석(玄石) 또는 구촌(九村). 경기도 김포 출신으로 1944년 조선신학교를 졸업. 해방 이후 동시, 동화, 아동소설 등 아동문학작품 외에 시도 발표하면서 주로 잡지의 편집일을 보았다.
5. 어비스(abyss) - 심해, 심연(深淵), 땅의 깊이 갈라진 금, 한없이 깊은 것, 헤아릴 수 없는 것, 밑바닥
6. Grass Roots - 민중


[범용기 제4권] (3) 서장 - 短章이라는 것

短章이라는 것

한국에서는 글을 쓸 때, 集(집), 篇(편), 章(장), 節(절) 등으로 정리한다. 그것은 문장이 그 문장을 쓴 인간과의 Integrity[1]를 읽고, “파편”으로 딩굴지[2] 않게 하기 위해서다. 실에 꿰매는 작업일 것이다.

短章(단장)[3]이란 것은 그 때, 그 때에 “먹구름”을 뚫고 “반짝” 섬광을 던지고서 사라지는 순간의 생각을 낚은 글이라 하겠다.

그것은 “논문”이 아니기에 “체계”를 무시한다. “시상”은 담겨 있어도 “시” 자체는 아니기에 “型”(형)에 구애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목적행위”로 행동하는 “인간의 삶”에서 제외될 수는 없다.

“단장”은 삶을 찔르는 “바늘”(針)이다. 그것이 병 고치는 주사바늘일 수도 있다.



[각주]
1. Integrity – 진실성, 도덕성, 위상, 고결함, 온전함
2. 딩굴다 - ‘뒹굴다’(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구르다)의 비표준어
3. 단장(短章) - 짧은 문장이나 시가

2026년 3월 30일 월요일

[범용기 제4권] (2) 서장 -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해방 후 얼마 안되어 『친일문학』이란 책이 출판되었다. 크기와 부피가 “웹스터 떡슈내리”[1]만큼이나 한, 거대한 몸집이다. 거기에 일제시대에 친일한 분들의 행동기록, 단체, 주동자, 개인으로서의 회원명단 등등이 적혀 있는가 하면, 이름난 문인들의 친일작품까지 샅샅이 폭로된다. 그것은 쓰여진 그대로였고 이미 공개된 것이니만큼 어느 누구도 항의할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 사실은 사실이지만 왜 이제 와서 그런 것을 들먹이느냐고 속으로 불평하는 ‘명사’[2]들도 없지 않았다지만, 명예훼손죄로 고소한 분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어느 문호(?)의 “천황찬가”란 일문 시는 드물게 보는 명작이었다.

국내 민족운동의 거물로는 이상재[3] 영감, 윤치호[4] 선생, 최린[5] 등등이 꼽히는 것이었다. 이상재 영감은 “지사”다운 마감맺히를 남겼지만 윤치호 선생은 비극을 남겼다. 국민복[6] 차림으로 남산신궁[7]에 오르내리시고 귀족원[8] 의원으로 일본국회에 드나드셨다. 그러다가 급작스레 “해방”되어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이 입국하고 보니 그 옛 친구들을 만나려니 부끄럽고 안만나려니 어색하고 양심은 끊임없이 불안하고 – 그래서 결국에는 개성에서 자결하셨다는 풍문이었다. 그 밖에도 그 동안에 변질된 분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중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만은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나 다름없는 마감날을 물려 주셨으니 두고두고 민족의 선생이심에 틀림없겠다.

강요된 행동, 입만으로의 “쎄리프”도 문제에 오르거든 하물며 제 손으로 쓰고 인쇄물로 공개된 글이 숨겨질 리가 있겠는가. “숨겨진 것이 드러나지 않음이 없고 작은 것이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莫現乎隱莫顯乎微)[9]는 옛 어른의 말씀이 돋보인다.

우리가 이제와서 구태여 이완용[10]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의 후예는 얼마든지 있다. 실종된 “지사”들, 카멜레온의 얼굴들이 거릿바닥에 전시품처럼 너더분하다.[11]

나도 글을 써냈다는 축에 들지 못하지만, 따지고 보면 “빽넘버”와 함께 휴지통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도 많을 것 같으니 그런 “글”은 글이랄 수 없겠다. 그러면서도 고스란히 도서관 구석에 남아 천년만년 나를 대변하거나 나를 나무랄 것도 사실이다. 그 경우에 내 “글”을 속량[12]할 장본인은 “글” 보다도 나 자신의 삶과 죽음이 아니겠는가?



[각주]
1. 웹스터 사전(Webster Dictionary) - 19세기 초 노아 웹스터에 의해 편집된 사전들, 혹은 노아 웹스터의 참여와 관계없이 웹스터의 이름을 채택한 수많은 사전들을 말한다. “웹스터”는 미국에서 영어 사전의 상표가 되었었고 영어 사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2. 명사(名士) -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
3. 이상재(李商在, 1851~1927) -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계호(季皜), 호는 월남(月南). 충청남도 서천 출신. 아버지는 이희택(李羲宅)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1967년 과거에 낙방한 후, 1880년까지 당시 승지였던 박정양의 집에서 개인 비서일을 보았다. 1881년 박정양의 추천으로 신사유람단에 합류하여 일본에 가서 개화된 일본을 보고 돌아왔다. 이후 1896년 서재필, 윤치호 등과 독립협회를 조직하였고 만민공동회 의장을 맡기도 하였다. 1898년 독립협회가 해산되고 초야에 묻혔다가 1902년 6월 국체개혁을 음모하였다는 개혁당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었다가 1904년에 2월 석방되었다(이 당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국권이 빼앗긴 이후 YMCA 총무에 취임하여 사멸 직전의 청년회를 사수하였다. 1919년 3ㆍ1운동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1922년 신흥우 등 YMCA대표단을 인솔하여 북경에서 열린 세계학생기독교청년연맹에 참석하여 한국YMCA 창설에 기여하였다. 1922년 조선교육협회를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하였고, 조선민립대학기성회를 조직하여 회장이 되었다. 1924년 조선일보사 사장, 1925년 제1회 전국기자대회 의장으로 한국 언론의 진작 및 단합에 크게 기여하였다. 1927년 민족주의진영과 사회주의진영이 연합하여 신간회를 조직할 때, 창립회장으로 추대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다.
4. 윤치호(尹致昊, 1866~1945) -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 한성부 판윤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이자 정치인인 윤보선(尹潽善)의 5촌 당숙이다.
5. 최린(崔麟, 1878~1958) - 1878년 함경도 함흥 출생.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고우(故友), 도호(道號)는 여암(如庵). 일제강점기에 3ㆍ1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에 포함되었으며, 보성학교 교장(1911년), 천도교 도령(1929년), 중추원 참의(1934~1938, 1941~1945년), 매일신보사 사장(1938~1941년) 등을 지냈다. 1936년 ‘조선인 징병제 요망운동’의 발기인으로 참여해 조선에 징병제 실시를 촉구했다. 해방 후 1949년 1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세 차례 공판을 받았고 그해 4월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1958년 12월 평안북도 선천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6. 국민복 – 1940년 11월 2일, 일본 제국 정부에서 쇼와 천황의 칙령 형식을 빌려 공포한 “국민복령”(쇼와 15년 칙령 제725호)에 따라 정해진 일본 제국 내 남성을 위한 표준 제복이었다. “국민복령”은 전시의 물자 통제령 하에 있던 국민의 의복 생활을 간소ㆍ획일화하여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육군성의 주도로 만드러졌다.
7.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朝鮮神宮)은 일제 강점기에 경성부의 남산에 세워졌던 신토의 신사이다. 1925년 당시에는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 가까운 43만 제곱미터의 대지 위에 15개의 건물이 있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에 일본인들은 스스로 하늘로 돌려보냄을 의미하는 승신식을 연 뒤 해체작업을 벌였고, 10월 7일에 남은 시설을 소각하였다. 이후 조선신궁 자리에는 남산공원이 조성되었고 안중근을 기념하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이 건립되었다.
8. 귀족원(貴族院) - 일본제국 헌법에 따라 설치되어 중의원과 함께 입법부(제국의회)를 구성한 기관. 귀족원령(1889년 칙령 11호)이 정하는 바에 따라 왕족ㆍ화족(작위를 갖고 있는 사람과 그 가족)ㆍ칙임(덴노의 명으로 임명)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1947년에 폐지되었다.
9. 『중용』 제1장에 나오는 말. “莫見乎隱이며 莫顯乎微니 故로 君子愼其獨也니라”(숨겨진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으며, 작은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삼가는 것이다).
10. 이완용(李完用, 1858~1926) -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경덕(敬德), 호는 일당(一堂). 1958년 경기도 광주에서 가난한 선비 이호석의 아들로 태어났다. 11세 때 판중추부사 이호준에게 입양되었고, 13세 때 명문가문인 조병익의 딸과 혼인하였다. 25세 때 증광별시에 급제하여 관계로 진출하였다. 민비의 총애를 입고 수구파의 한 사람으로 개화파를 정적으로 삼았다. 구한말 미국과의 교류가 긴요해지고 있음을 간파하고 1887년 육영공원에 입학하여 영어를 비롯한 근대식 교육을 받았다. 1887년 알렌의 인도로 미국으로 건너가 1년간 체류하였다. 귀국 이후 대미외교의 1인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895년 친미 친러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박정양 내각이 성립되자 학부대신으로 임명되어 알렌의 이권 획득 요구에 적극 협조하였다. 1896년 알렌의 후원하에 이범진 등 친러파와 공모하여 ‘아관파천’을 성공시키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896년 7월부터 1898년 초반까지 독립협회에서 활동하였으나 각종 이권을 열강에게 넘겨진 책임으로 제명처분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승리하자 철저한 친일파로 변신하였으며,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의 외교권을 접수하기 위해 조약 체결을 강요하자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였다. ‘을사5적’ 가운데 한 명으로 이후 이토 히로부미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이토 히로부미를 ‘영원한 스승’으로 떠받들었다. 1907년 정미7조약 체결을 주도하여 ‘정미7적’ 가운데 한명으로 지탄을 받기도 했다. 1909년 12월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서 이재명의 피습을 받아 치명상을 입었으나 운좋게 살아났다. 1910년 8월 3대 통감으로 부임한 데라우치와 ‘한일병합조약’ 체결 협상을 벌이고, 동년 8월 22일 어전회의에서 순종 황제를 압박하여 합병조칙을 받아내면서 ‘경술9적’ 중 1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1910년 일본 정부로부터 합병에 관한 공로로 백작의 작위를 받았고, 1920년 후작으로 올라갔다. 1919년 3ㆍ1운동이 일어나자 『매일신보』에 경고문을 게재하여 만세운동을 ‘망동’이라 비난하고 저항운동을 중지할 것을 촉구하였다. 1926년 이재명 의사의 칼에 폐를 다친 후유증으로 앓던 해수병이 악화하여 사망하여 전라북도 익산에 묻혔으며, 정치행적과는 달리 당대의 명필로 알려져있다.
11. 너더분하다 –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어수선하다. 듣기 싫고 번거롭게 길다.
12. 속량 – 몸값을 받고 종을 놓아주어 양민이 되게 함. 남의 근심과 고난을 대신하여 받음

[범용기 제4권] (6) 서장 - 원형(Prototype)

원형(Prototype) (1) 인간의 원형 “인간이 타락했다”, “크리스챤이 타락했다” 등등의 말을 듣는다. 타락했다는 것은 타락이 이전의 “원형”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 “원형”이란 것은 이미 타락한 것들 중에서 비교적 나은 타입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