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12-18] 내 사랑하는 이들이여 – 1984년 5월 27일, 김상근 목사

내 사랑하는 이들이여

1984년 5월 27일 / 빌립보서 2장 12-18절

김상근 목사


[말씀을 향한 물음]

우리는 오늘 말 그대로 역사적이고 뜻 깊은 날을 맞이하고 있다. 32년 전 5월 27일 우리 수도교회를 창립했던 바로 그날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고, 또 새로운 담임목사가 취임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기 때문이다. 이날 우리에게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주시고자 하실까? 또 나 역시 여러분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함께 마음을 모아 먼저 성서에 귀를 기울이자.


[슬라이드]
















[설교 전문]

나 개인으로는 더욱 만감이 교차하는 특별한 날이다. 나는 오늘로써 우리 수도교회와는 공적인 관계를 끝내게 된다. 오늘 새로운 담임목사가 취임함과 동시에 나와 공적인 관계는 끝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설교가 공적 입장에서 마지막 설교요 흔히 말하는 고별설교인 셈이다. 멀리 떠나기 때문이 아니라 공적으로 말하여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께 무슨 말씀을 드릴까 퍽 망설였다.

돌이켜 보면 내가 이 교회에 전도사로 온 날로부터 15년 9개월이 된다.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아이 하나도 없이 왔었는데 벌써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었다. 언제나 떠날 때면 지난 날을 후회하기 마련이다. 아쉽고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후회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왔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최선이라는 것이 만족스런 최선은 아니다. 또 지난 15년 9개월 동안 모든 것이 완벽했다는 생각도 아니다. 완전하지도 완벽하지도 못했던 최선이었지만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지금 여러분을 떠나면서, ‘여러분을 떠난다’고 말하기보다는 ‘교회를 떠나면서’ 라고 말하는 편이 오히려 좋겠다. 하여간 지금 여러분 가슴에 꼭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 성서 본문 12절 첫 머리에 “내 사랑하는 이들이여!”라고 부른 부름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대하여 특별한 점이 있었다. 피차에 허물도 없었고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끔찍하게 생각했다. 바울은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 쓰면서 누구의 도움이나 원조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가 도와주는 도움만큼은 주저함없이 받았다. 그만큼 거리가 없었다. 바울이 지금 옥에 갇혀 있는데 빌립보 교회는 그것이 안타까워 급히 모금을 해서 에바브로디도라는 대표를 뽑아 돈을 전하게 한다. 에바브로디도는 돈을 전한 후에도 그냥 남아서 바울의 옥바라지를 한다. 그만큼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졌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H내 사랑하는 이들이여!”라고 부른다. 그것은 외교적 언사가 아니다. 의례적인 언사도 아니다. 마음속에서부터 콧등이 찡한 감정을 입고 솟아나오는 진실된 표현이다.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이 가졌던 바로 그 심정으로 나는 오늘 여러분을 향하여 “내 사랑하는 이들이여!”라고 부른다. “내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 말 가운데 여러분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가 유감없이 담겨져 있다. 이 말 속에 다른 설명으로 표현할 수 없는 깊고 진한 표현이 담겨 있다. 이 말을 하고 이 말을 듣는 것 외에 다른 것이 필요치 않다. 나는 오늘 여러분 가슴속에 이 말을 심고 싶다. “내 사랑하는 이들이여!”

바울은 이제 빌립보 교인들을 아주 영영 떠나게 될지 모른다는 판단에서 몇 가지 교훈과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다. 12절 중 하반절에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해 오던 그대로”라는 권면이다. “그대로”, “내가 같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떠나 있는 지금도.” 나는 이제 공적으로는 여러분을 떠나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다. 내가 목회를 할 때뿐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목회에서 떠나 있는 때에도 “그대로” 그리스도에게 순종해 오던 그대로 순종하시기 바란다.

우리가 “순종해 오던” 것이 무엇인가? 교인을 크게 늘려 놓지 못했다. 그러나 바른 교인으로 살자는 일을 위하여 우리는 노력했다. 애쓰고 힘썼다. 특히 우리의 이기심과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자면서 몸부림쳤던 일은 잊을 수가 없다. ‘새벽의 집’을 시도해보고 그것에 함께 관심했던 지난날이 우리에게는 있다.

외형적으로 경건한 교인이 많이 생기지 못했다. 그러나 피 묻은 겸손, 타성과 인습적 경건이 아닌 순간순간 부딪쳐 오는 삶의 상황 속에서 참으로 경건한 삶을 살아보려고 몸부림쳤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았다. 수도교회상은 그 몸부림의 산물이었다. 우리는 이 일을 잊을 수가 없다.

다른 교회가 한참 교회 성장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1970년대에도 우리는 큰 교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인권과 반체제 운동에 휘말렸다. 우리는 그 어렵고 힘든 일들을 잘도 견디고 잘도 참으면서 최소한의 길을 지켜 왔다.

사직동 일대의 주민들을 모두 교인이 되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간학교, 도서실, 의료봉사 등 그들이 필요로 하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옴으로써 교회로서의 제 구실을 감당해 왔다. 지금도 우리는 장애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내고 있고, 또 더 진학을 못하는 우리 이웃들에게 기술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천만 원의 장학금을 헌금하고 있다. 매년 창립기념일에 지역봉사 헌금을 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이런 것은 우리의 자랑이다.

오손도손한 교회 분위기도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교회의 존재 의미를 그런 데 두는 것으로 자족하려는 유혹은 물리쳤다. 우리만을 위한 교회, 우리만의 교회가 되어 버리는 함정을 우리는 잘 피해 나왔다. 어떻게 기독교 교회의 본질, 본연성에 철저하게 서느냐 하는 데 우리의 관심을 두어 왔다. 교회의 터를 이곳에 잡던 일, 기독교회관에서 예배를 드리던 일, 그리고 본 교회당을 건축하던 일, 모든 일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왔다.

이것이 우리가 “순종해 오던” 일들이 아닌가? 그 길이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길’이다. 나는 이 점을 부탁한다.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해 오던 그대로 내가 같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떠나 있는 지금도 더욱 순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오”(빌 2:12).

다음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13절의 말씀이다. 우리가 만약 좁은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면, 우리가 만약 고달픈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면, 우리가 만약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이 나라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여러분 자신에게서 솟아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다. 바울은 이 점을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속에서 활동하셔서 자기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여러분에게 의욕을 일으켜 일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빌 2:13).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있는 선한 의욕을 계속하여 잘 보존하기 바란다. 그 의욕을 좇아 살기를 바란다.

다음으로 16절 상반절의 말씀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갈 뿐 아니라 “세상에서 빛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권면이다. 해가 없는 세상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해가 없다면 그 세상은 절망이요 죽음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는 해가 없다. 낮에 뜨는 해가 아니라 인간의 삶, 인생사, 인간 사회에 떠 있어야 하는 해가 없다. 참으로 그렇다. 우리의 삶에 빛이 있어야 하겠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여러분이 세상에서 빛으로 나타나시오”라고 했다. 나도 여러분께 부탁한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빛으로 나타나시오.”

다음의 말씀 16절 하반절은 바울의 독백이다. “그리하면”, 다시 말하여, 여러분이 내가 떠나 있는 때에도 예나 다름없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이웃에게 순종한다면, 여러분 속에 있는 선한 의욕을 내 것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으켜 주신 것이라 여긴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세상에서 빛으로 나타난다면, “그리하면” 내가 달음질한 것과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은 것이 될 것이라고 독백하는 것이다. “내 사랑하는 이들이여!” “수도교회 교우들이여!”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달음질한 것이 있다면, 수고한 것이 있다면, 그것들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말아 달라.

위와 같은 권면과 부탁을 바울은 가슴속에서부터, 자신의 깊은 심연에서부터, 진심으로, 참으로 진심으로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고 있다. 만약 여러분이 내 권면을 받아들여 그렇게 산다면 여러분의 믿음의 삶 위에 “내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 기쁨만이 아니라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합시다”라고 자신의 권면의 뜨거움을 강조하고 있다.

내 사랑하는 이들이여! 내 사랑하는 수도교회 교우들이여! 여러분이 지금까지 순종해온 대로 믿음을 지켜 살아주시오. 선한 의욕을 잘 보존해 주시오. 세상에서 빛으로 나타나 주시오. 꼭 그렇게 살아 주시오. 수도교회가 지금까지 순종해온 대로 순종해 사는 교회가 되게 해주시오. 선한 의욕을 잘 보존하는 교회가 되게 해주시오. 내 피를 부어야 한다면 기쁨으로 붓겠소. 내 피를 붓는 일을 오히려 기뻐할 수 있으리 만큼 간절하게 부탁한다.

오늘 오후 2시 30분에 있을 담임목사 취임식은 담임목사를 새로 모신다는 단순한 절차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부탁했던 그 부탁, 또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부탁하는 그 부탁을 받아들이는 의식이 되어야 한다. 다시 결단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신앙의 본질을 향하여 다시 응집하고 하나가 되며, 공동의 다짐을 하는 거룩한 예식이 되어야 한다.


[수도교회상]

우리의 생은 하나님이 지으시고 축복하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삶을 아집과 교만, 미움과 불신으로 병들게 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를 부르시어,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그가 하시는 구속사업에 동참하게 하신다. 우리 수도교회는 이 부르심에 겸손과 기쁨으로 응한다. 이 소중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모습의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한다.

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이 창조받은 생을 세상에 보이는 교회가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보람찬 것인지를 본다. 그리고 우리도 그의 형상대로 재창조될 수 있음을 믿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앞에 가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믿음, 소망, 사랑으로 살아, 참사랑을 찾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증거한다.

2. 우리는 인류를 병들게 하는 모든 악의 힘에 도전한다. 우리는 악의 세력이 사회의 밑바닥까지 속속들이 침투되어 있음을 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의 모든 영역에서 이 악의 세력에 도전하여야 한다. 그런데 때에 따라, 하나님은 특수한 일에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이 일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모든 교회, 단체, 종교들과 힘을 합하여 임무 수행에 전력을 다한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전위대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훈련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위대로서 맡겨진 일을 완수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훈련하는데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같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반성해보고 그의 지시에 귀를 기울이며, 스스로를 훈련할 뿐만 아니라, 같은 지게를 진 전위대로 대오를 정비한다.

4. 우리는 기능적인 제도와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실험장이 된다. 세상은 날로 기능화 되어 가고 있다. 우리도 현실에 맞는 능률적인 제도와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다. 우리는 솔직한 반성과 면밀한 검토와 합리적인 계획과 과감한 실험으로 새교회상 창조에 이바지한다.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시작하신 분도 완성하실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 그의 뜻을 따르는 겸손과 승리자의 확신으로 그의 부르심에 응한다.

1970. 1. 1.


[회상 노트] 내 사랑하는 이들이여

부활절 청년연합예배 설교가 앞의 것이고, 수도교회 고별설교가 뒤의 것이다.

내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 총무에 뜻을 둔 것은 역사와 삶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게 하겠다는 결단이었다. 1981년 기장 총회는 부끄러운 총회였다. 1980년 가을 총회는 5ㆍ18 직후였기 때문에 도무지 공포의 시간이었다 말할 수 있다. 그러나 1년이 지났는데도 1981년 총회는 예언자성을 회복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젊은 피가 끓었다. 기장 교회를 하나님의 선교의 현장에 있도록 하리라.

그때의 뜨거운 신앙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을 굴려 줄 것인가?”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우리 앞에는 물론 수많은 돌, 크고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은 돌이 널려 있다. 갈릴리의 길을 막고 있다. 그러나 그 돌이 이미 굴러져 있음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이리라. 그러기에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갈 수 있는 것이 부활신앙이리라.

총무가 되어 그렇게 하고자 했다. 불의에 맞서고 악에 도전했다. 움츠러든 기(氣)를 살려내고자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부활신앙이 바탕이었다. 나는 총무로서 언제나 선두에 섰다. 군사정권에 맞서 싸우는 맨 앞에 섰다. 기장은 가히 반정부 전선의 선도였다. 80년대 한국교회의 복음증거를 나는 두고두고 감사한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마지 않는다.

5월 27일은 수도교회 창립기념일이다. 총무로 당선된 지 1년 8개월이 지났다. 그때까지도 내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옳지 않았다. 나는 후임목사를 청빙하자고 졸랐고, 부목사로 나를 돕던 권오성 목사를 급기야 정했다. 창립기념일에 취임식을 하기로 했다. 담임목사를 청빙했으면서도 나에 대해서는 교회가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 행정적으로야 노회에서 모든 것이 정리되었지만 교회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 식구나 다름없으니 그 후에도 계속하여 교회에 나오기를 기대했고 또 그러리라 여겼다. 그러니 무슨 송별예배를 가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5월 27일 11시 예배 설교를 스스로 고별설교라 했다. 일방적으로 고별을 선언했던 것이다. 참으로 아쉬움이 컸다. 후회되지는 않았으나 아쉬웠다. 15년 9개월 동안 내 설교는 무엇이었을까? 정직하고 바른 설교를 했던가? 설교자의 정직과 고통이 여기 점점이 혼적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