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교회, 만우 송창근에게 길을 묻다

이 글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발행하는 [세계와 선교]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만우 송창근 목사
만우 송창근 목사

1) 들어가며


한국교회는 위기의 시대에 직면해 있습니다. 더 이상 교회의 메시지는 사회에 울림을 주지 못하고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대형교회의 세습문제, 목회자들의 성추문을 둘러싼 개인적인 일탈행위는 가장 도덕적이어야 하는 종교의 부패와 타락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회 속에서 교회는 한없는 욕망을 추구하면서 사회 속에서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오로지 성공만을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 양적으로 성장한 것만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는 오늘날 수많은 부작용을 양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 믿고 복받는다’는 것이 강조되면서 마치 복 받은 자, 성공한 자만이 올바른 신앙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갖게 하였고, 이러한 왜곡된 메시지는 기독교의 수준을 ‘값싼 은혜’를 갈망하는 저렴한 종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 현 상황이 지속되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에서 지금의 사회적 현상은 위기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말로는 ‘위기’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에 대해서 말은 ‘위기’라고 하지만, 위기 극복을 위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며 변하려는 마음가짐은 1도 없는 것이 오늘의 한국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말로는 위기라고 하지만 그 위기를 극복하려는 마음가짐 자체가 결여된 것, 이것이 가장 커다란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과는 다르게 교회는 여전히 성공만을 추구합니다. 대형교회의 문제점을 비판하면 성공하지 못한 자의 질투심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습니다. 대형교회의 세습을 욕하지만, 정작 그것은 본인들이 대형교회를 이루지 못한 열등감의 표출이라고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소위 외형적으로 성공한 교회는 위기를 위기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상황을 위기라고 본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데, 자기들이 잘나가는 것은 잘못된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변화로 인식하지 못하는 불감증은 점차 기독교를 파멸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하루 아침에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점차 멸망의 조짐이 있었지만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멸망한 것입니다. 기독교 역시 하루 아침에 몰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벌써부터 그 조짐은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를 교회에서 볼 수 없습니다. 미래학자가 향후 20년 안에 기독교 인구가 500만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어쩌면 노령화사회로 인해서 노년층이 미래 기독교인구의 절반 이상을 감당해주기 때문에 그나마 500만을 유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습니다. 


숫적인 감소가 위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매년 각 교단에서 교인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것은 기독교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날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위기를 통해서 교회는 점점 더 심각한 상황 속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비대면 예배는 그동안 익숙했던 예배의 틀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코로나 이후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는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본 글은 그 가운데 하나의 방법으로 만우 송창근 목사의 삶과 영성을 통해서 위기 극복의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2) 만우 송창근 목사의 삶과 영성


만우 송창근 목사는 1898년 10월 5일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면 웅상동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서북지역인 평안도가 홀대를 받아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함경도는 홀대조차도 하지 않는 존재감 자체가 없는 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접했던 송창근은 1910년경 북간도의 명동학교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10대 소년이었지만 나름 자신의 길을 걸어보기 위한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동학교에서 송창근은 황의돈, 장지영, 정재면, 박태환, 김철 등에게 민족주의 사상에 대해 배웠습니다. 한일합방이 일어난 즈음에 감수성이 예민했던 청소년기를 민족주의 사상이 투철한 학교에서 배웠다는 것은 향후 그의 민족목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송창근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남긴 ‘벽도 밀면 문이 된다’는 것은 그의 삶 자체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후 송창근은 개인적인 의지로 광성학교를 찾아갔고, 광성학교의 교장인 이동휘 선생을 만나 그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이동휘는 소년 송창근에게 자신의 길이 아닌 송창근만의 길을 가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후 송창근은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지만, 그 길의 출발과 계속되는 여정 속에는 이동휘 선생의 가르침이 늘 함께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송창근은 서울로 올라와서 피어선 성경학교를 다니면서(1916~1919년) 당시 민족지도자인 이상재 선생을 만나고 YMCA 활동에 참여하면서 민족의식을 한층 높여나갔습니다. 3ㆍ1운동으로 남대문교회 조사였던 함태영이 검거되었을 때 그 뒤를 이어 남대문 교회에서 조사로 사역하였습니다. 송창근의 삶을 추적해보면 늘 송창근은 자신과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항상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ㆍ1운동 이후 조선인을 위한 참다운 교역자의 부재를 절실히 느낀 송창근은 1921년 9월에 일본으로 건너갔고 먼저 문학을 공부하였으며(1922년 일본 동경 동양대학), 1923년부터 1926년까지 청산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선교사들에 의한 교육이 아닌 진정 한국 민족의 교육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송창근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미하여 1926년부터 1931년까지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샌프란시스코 신학교, 프린스톤 신학교, 웨스턴 신학교, 아이리프 신학대학). 송창근은 아이리프 신학교에서 “유대사상에 근거해서 본 바울의 믿음으로 인한 구원사상”이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단순한 학문적 자랑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학문에 대한 종합을 시도하였습니다. 1932년에 귀국한 송창근은 평양산정현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하였습니다. 송창근 목사는 신학과 목회 현장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성 교회의 설교와는 달리 지성적 성찰이 뚜렷이 드러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1936년 그는 산정현교회를 사임하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호주장로회 선교부 지원을 받아서 남부민동에 ‘성빈학사’(聖貧學舍)를 설립하였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목회를 실천하였습니다. 이러한 목회를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평생 흠모하고 사랑했던 성 프란시스의 청빈의 영성이라는 사실은 송창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는 실로 1200년대의 위대한 기독교 성인을 700년 뒤의 동방의 한국에서 재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창근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닮겠다고 결정했으면 그대로 삶속에서 실천하는 의지의 인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존경한다고 하면서, 조금만 삶이 힘들어지면 은근슬쩍 삶과 타협하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1936년에 송창근은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일경에 검거되었고, 1939년 12월에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이후 일제 검사가 다시 공소하여 2년형을 언도받았습니다. 결국 1941년 11월 17일에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감옥에서의 시련과 역경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민족의 아픔과 고난받는 자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인생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 이후에 친일의 길을 걷고 변절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그의 삶의 무게를 느낀다면 그런 가벼운 평가를 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일제의 감시를 받던 송창근은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을 때, 조선인에 의해 운영되는 신학교를 새로 세우는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승동교회의 김대현 장로가 거금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신학교 설립 운동이 가속화 되었습니다. 이때 송창근 목사는 일제의 감시를 받는 몸이기 때문에 믿을만한 사람으로 김재준 목사를 김대현 장로에게 소개하였고, 이후 김재준 목사의 헌신으로 조선신학교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조선신학교는 한신대학을 거쳐 오늘의 한신대학교에 이르렀는데, 어느 특정한 한 사람의 설립자가 아닌 김대현 장로와 송창근 목사, 김재준 목사가 함께 힘을 합하여 세운 학교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해방 직후, 조선신학교의 신학교육으로 인하여 총회에서 보수와 진보로 치열하게 대립하였는데, 송창근 목사는 장로교의 분열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와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송창근 목사는 납북되어 이후의 생사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니다. 본격적으로 신학교육을 위해 헌신하려고 했을 때 그의 건강이 그를 발목잡았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그를 괴롭혔으며, 이념이 그를 붙잡아 갔습니다.


3) 나아가며 : 위기에 대해 물어본다면, 송창근은 자신의 삶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송창근 목사의 삶과 사상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의 사상은 그의 삶을 통해서 드러났고, 그의 삶은 그의 사상을 현실에 적용하는 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우의 사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전통 속에 면면히 흘러오는 영성의 전통이었고, 종교개혁의 사상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특별히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1900년대 초중반을 살다간 만우 송창근에 의해서 기독교 전통의 영성이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한국 민족을 향해 소개되었고, 종교개혁의 전통 역시 만우 송창근을 통해서 체화되어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흔히 앵무새처럼 자신의 것은 잃어버리고 서양의 것만 무분별하게 수입하는 신학이 아니라 스스로 실험하고 그것을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도록 소화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그가 박사학위 논문에서 언급하였듯이 학문적인 욕심보다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것은 높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학문을 했다는 점은 오늘날 신학을 공부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단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나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신은 장공의 머리와 만우의 가슴이 조화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듯이, 만우의 삶은 열정이 있는 삶이었고, 자칫 냉철함만 강조될 수 있는 한신과 기장에 생명력을 심어주는 영성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창근 목사하면 프란시스의 영성만을 떠올리지만 그는 철저하게 성서를 전달하기 위해서 목회자들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소양에 대해서 다양한 학문적인 성취를 언급하였습니다. 목회자는 단지 성경만을 가르치는 성경교사가 아니라 성경이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오늘의 다양한 문화적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를 제대로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오늘날 한신의 교수들과 기장의 목회자들이 송창근의 삶에서 주의깊게 생각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송창근 목사가 많은 사람을 이끌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가깝게는 함경도 오지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는 장공 김재준 목사를 역사의 복판으로 이끌어냈고, 수많은 제자들을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끌어냈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후배들이나 제자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고, 길을 해쳐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 협력하고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은 진정 성서에서 예수님이 삶으로 보여준 가르침입니다. 제자들이 오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제자들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대학의 강단에서 학생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신학대학 교수들의 몫이라면, 현장 교회에서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올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목회자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의 위기는 기독교의 근본 메시지에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제강점기라는 오늘날보다는 훨씬 더 어려운 시기를 묵묵히 걸어나간 송창근 목사와 같은 기독교 지도자들의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오늘의 나를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보다 훨씬 어려운 시기를 온몸으로 살아낸 그들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다양한 위기의 상황 속에서 묵묵히 기독교의 메시지를 찾아나가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만우 송창근 목사는 우리 민족이 가장 힘겨운 시기를 걸어온 인물입니다. 불투명한 미래,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미래를 뚜벅뚜벅 외롭게 걸어간 것입니다. 우리가 위기의 한국교회에 대해서 송창근에게 길을 물었을 때 송창근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통해서 우리에게 대답할 것입니다. 송창근이 걸어간 길은 종교개혁자들이 걸어간 길이고, 성 프란시스가 걸어간 길이며 궁극적으로는 예수가 걸어간 길입니다. 그는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라는 찬송을 즐겨 불렀다고 합니다. 그 찬송의 가사처럼 그가 걸어간, 그리고 그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추천하는 길은 예수가 함께 걸어야만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자군 제2권 제1호 목차

십자군 제2권 제1호 목차

소화 13년 2월 - 193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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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교[架橋] - 장공


본지의 선언


선지자적 심정 – 주간


설교 : 생명의 샘 예수 – R. 레아드 박사


그리스도의 향기 – 편집실


맨처음에(창세기 4:1-26) - 김재준 신역


히브리인서연의(4) - 김재준


경건문학 : 어거스틴 참회록(4) - 김재준


소문소감 – 해외교계동정


D. L. 무디와 그 일화 - 편집자



[십자군 제2권 제1호] D. L. 무디와 그 일화 – 편집자

D. L. 무디와 그 逸話[일화]

- 編輯子[편집자]

米國[미국]의 第二十八代[제28대] 大統領[대통령]이 한번은 어느 理髮所[이발소]에 가서 理髮[이발]하는 中[중]이였다. 그 大統領[대통령] 自身[자신]의 말. 『말하자면 下等理髮館[하등이발관]인데 퍽 〇俗[〇곡]한 곧이였읍니다. 나 理髮[이발]을 시작하자 어떤 이가 들어와 내 옆 椅子[의자]에 안저서 역시 理髮[이발]하기 시작했었는데 나는 어쩐지 自然[자연] 그가 그 理髮師[이발사]하고 이야기하는 한마듸 한마듸에 귀를 기우리게 되였읍니다. 그의 말투에서 所謂[소위] 「敎訓的[교훈적] 口調[구조]」라는 것은 조곰도 찾어볼 수 없었으나 何如間[하여간] 이 理髮師[이발사]를 진정으로 생각해 준다는 것을 直感[직감]하게 되엿읍니다. 그가 理髮[이발]을 畢[필]하고 나간 다음에도 나는 일부러 그 理髮所[이발소]에서 徘徊[배회]하였읍니다. 얼마前[전]까지도 野卑[야비]한 弄談[농담]을 써가며 자랑삼아 웃고 지꺼리던 理髮師[이발사]들도 말이 없어지고 그 낮에 이상한 敬虔美[경건미]가 떠도는 것을 보았읍니다. 나도 이상한 視福[축복]을 느끼며 그 理髮所[이발소]를 나왔읍니다. 理髮師[이발사]들이나 내나 다함께 前[전]보다 한층더 높은 생각의 殿堂[전당]을 逍遙[소요]하고 있엇던 것입니다. 나는 禮拜堂[예배당]에서 나오는 氣分[기분]으로 그 理髮所[이발소]를 나왔읍니다. 그러나 그가 有名[유명]한 傳道者[전도자] 무-디 氏[씨]였던 것은 理髮師[이발사]들도 몰르고 나도 勿論[물론] 몰랐었읍니다.』

이 第二十八回[제28회] 大統領[대통령]은 우드로 윌손이였고 그의 다음 椅子[의자]에 안저 理髮[이발]하던 이는 勿論[물론] 무디 氏[씨]였다. 그러면 이 〇俗[〇곡]한 理髮所[이발소]를 불과 五[5], 六分間[6분간]에 聖所[성소]로 化[화]한 무-디 氏[씨]는 果然[과연] 어떠한 이였는가? 지금부터 그의 面貌[면모]를 그려보기로 하자.

무-디(Dwight Lyman Moody)는 一八三七年[1837년] 二月[2월] 五日[5일]에 米國[미국]의 만나츄-셋즈州[주] 東[동] 노트 ᅋᅵᆯ드에서 出生[출생]하야 一八九九年[1899년] 十二月[12월] 二十二日[22일]에 거긔서 逝去[서거]한 다시 없는 平信徒傳道者[평신도전도자]이였다. 그는 十七歲[17세]때까지 農場勞動者[농장노동자]로 지냈으며 十八歲[18세]부터 시카고市[시]에서 洋靴店[양화점] 店員[점원]으로 지내였다. 十八歲[18세] 때 그는 悔改[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었고 店員[점원]으로 있는 동안 풀리마우드 組合敎會堂會員[조합교회당회원]으로 主日學校[주일학교]를 組織引導[조직인도]하였으며 同時[동시]에 靑年傳道[청년전도]에 熱心[열심]을 다

하였다. 南北戰爭時[남북전쟁시]에는 戰線[전선]에 나가 傳道[전도]하였고 다시 시카고에 도라와 病傷兵[병상병] 看護[간호]에 盡力[진력]하였다. 一八六五年[1865년]에 시카고 基督靑年會長[기독청년회장]으로 被選[피선]되였으며 이 靑年會[청년회]에서는 廣大[광대]한 復興傳道舘[부흥전도관]을 建築[건축]하야 〇의 復興運動[부흥운동]에 提供[제공]하였다. 이 建物[건물]은 一八七二年[1872년]에 火災[화재]로 鳥有[조유]에 歸[귀]하였으나 그들은 다시 七萬弗[7만불]을 드려 大傳道舘[대전도관]을 지었다. 

무-디가 三十六歲[36세]때에 펜실베니아人[인] 생키(Ira D. Sankey)와 親交[친교]를 맺어 兩後二人[양후2인]은 一心同體[일심동체]로 聖役[성역]을 함께하였다. 쌍키는 무디보다 三歲年少者[삼세연소자]로서 銀行家[은행가]의 아들이오 祝福[축복]받은 音樂家[음악가]였다. 가는 곳마다 무-디는 說敎[설교]하고 쌍키는 노래하야 하나님의 두 팔과 같이 일하였다. 그들은 全米國[전미국]을 巡廻傳道[순회전도]하야 가는 곳마다 新生命[신생명]의 運動[운동]을 일으켰으며 다시 一八七〇年[1870년]과 一八八三年[1883년]에 英本國及蘇格團全幅[영본국급소격단전폭]에 大擧傳道[대거전도]하야 亦是[역시] 大復興[대부흥]을 일으키였다. 그들은 福音歌[복음가]를 出版[출판]하야 그 收入[수입]과 其他收入[기타수입]으로 노-트ᅋᅵᆯ트 女子神學院[여자신학원] 마운트허-몬男學校[남학교], 뻬야웯舘[관], 노트ᅋᅵᆯ드 聖經學校等[성경학교등]을 設立[설립]하였고 무-디의 著書[저서]로는 『말슴의 道[도]』 『그리스도의 再臨[재림]』 『하나님의 道[도]와 그 發見法[발견법]』 等[등]이오 其外[기외]에 幾多[기다]의 說敎集[설교집]이 있다. 그는 神學專攻[신학전공]한 이도 아니오 特別[특별]히 學校敎育[학교교육]을 받은 이도 아니었으나 그의 信仰[신앙]은 가장 健全[건전]한 正統[정통]이였으며 그의 說敎[설교]의 主題[주제]와 그의 人格全體[인격전체]는 「하나님의 사랑」에 그 中心[중심]을 두었고 敎派的[교파적]으로는 언제던지 合同[합동], 聯合[연합]의 情神[정신]에서 일하였다. 이제 그의 발자최를 더듬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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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임스江[강]의 南岸[남안] 캠버웰에서 諷刺的[풍자적]이오 批評的[비평적]인 젊은 醫學生[의학생] 하나 심심푸리 삼아 무-디의 復興會[부흥회]에 參席[참석]하였다. 긴 說敎[설교]는 질색 긴 긔도는 더군다나 질색인 이 醫學生[의학생]은 不幸[불행]하게도 이 集會[집회]에 參席[참석]하자마자 긴 祈禱[기도]꾼에게 붓잡히였다. 이 긔도꾼은 뿔랭크氏[씨]! 그는 지금 창세 以後[이후]로 現代[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하나님 聖德[성덕]을 一一[일일]히 찬송하고 인저 英國[영국]에서 떠나 世界[세계]를 一週[일주]하며 大少萬事[대소만사]에 하나님의 主意[주의]를 喚起[환기]한 후 다시 第二次[제2차] 世界一週[세계일주]를 시작하는 中[중]이였다. 그때 講壇[강단]우에 안젓던 무-디氏[씨] 이러서서 群衆[군중]을 向[향]하야 하는 말! 『뿔랭크 兄[형]님이 祈禱[기도]하시는 동안 우리 다같이 찬송가 제 八十九章[89장]불릅시다.』

이 醫學生[의학생]은 갑작이 옷깃을 바로잡고 이러안젓다. 그의 눈은 빛났다. 『이 사람 너절한 復興師[부흥사]가 아니로구나 그 勇氣[용기]와 常識[상식]이 平凡以上[평범이상]이다!』하고 혼자 感嘆[감탄]하였다. 한時間[시간] 說敎[설교]에 귀를 기우린 醫學生[의학생]은 깊히 생각하며 집으로 도라가더니 後[후]에 世界最大[세계최대]의 醫療宣敎師[의료선교사]로 라바라도의 어름에 무친 北永洋[북영양]사람들께 거룩한 偉業[위업]을 남기였다. 그의 일홈은 월프레드 티 그레펠 博士[박사](Dr. Wilfred T. Creafell)이다.

무-디는 身長六尺[신장6척] 體重三十四貫[체중34관]의 巨人[거인]이다. 그가 講壇[강단]에 나서면 爲先[위선] 그 偉容[위용]이 사람을 눌른다. 勿論[물론] 그의 靈力[영력]이 體軀[체구]의 偉大[위대]한데 있은 것은 아니나 그의 體軀[체구]가 그 靈的活動[영적활동]에 最先[최선]의 機械[기계]가 된 것은 事實[사실]이다. 그는 鋼鐵人[강철인]이었다. 無盡藏[무진장]의 活力[활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集會[집회]는 언제나 數千名[수천명]이였으며 굴레스고에서는 三萬名[3만명] 캔사스씨티에서 二萬名[2만명]을 앞에 놓고 說敎[설교]하야 多多益善[다다익선]의 大結果[대결과]를 이였다.

그가 一八九二年[1892년] 蘇格蘭[소격란]을 巡廻[순회]할 때에는 九十日[90일]동안에 九十九都市[99도시]에서 集會[집회]했으며 아츰 아홉시부터 밤 아홉시까지 쉴새없이 說敎[설교]하였다. 그러기에 그의 同志[동지]로 찬송가 引導[인도] 맡은 이라, 쌍키는 너무 急[급]해저서 하로 熱心[열심]으로 긔도하는 말 - 『오 하나님 무-디를 疲困[피곤]하게 합소서 그러챦으면 우리에게도 사람 以上[이상]의 힘을 주옵소서!』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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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故鄕[고향] 노트ᅋᅵᆯ드의 農夫[농부]들은 언제나 그를 「무-디君[군]」이라 불렀다. 언젠가 누가 「무-디 博士[박사]」라고 불러 보았으나 通用[통용]이 안되고 말었다. 그는 太西洋 저쪽에서 大英帝國[대영제국]을 뒤집어 흔들어 世界人[세계인] 欽仰[흠앙]의 焦點[초점]이 되였으나 몇칠 後[후] 故鄕[고향] 農村[농촌]에 돌아온때에는 如前[여전]히 낡은 農服[농복]을 입고 傭人[용인]들과 함께 밭갈고 닭먹이고 풀 뽑고해서 그 附近農夫[부근농부]와 조곰도 다른 틔가 없었다.  子女[자녀]들이 或[혹] 잘못한 일이 있으면 무섭게 嚴[엄]하게 책망하지만 그들이 寢臺[침대]에 잠든 때면 그는 몰래 그들의 寢臺[침대] 옆에 꿀어안저 그들을 爲[위]하야 뜨거운 긔도를 들이는 것이였다. 마운트 홀리욕 大學校長[대학교장] 메리 울리 女史[여사]가 하로는 무-디 家庭[가정]에서 朝飯[조반]을 같이 한일이 있었는데 조반 후에 무-디는 全家族[전가족]과 함께 聖經[성경] 한 章[장] 읽고 진실로 敬虔[경건]한 긔도를 들이였다. 그러나 『아-멘』하고 긔도끝나자마자 그는 그의 아들을 向[향]하야 『소가 콩밭에 들어가지 안는가 꼭 잘 봐야 한다!』 하고 말하였다. 그는 極度[극도]로 靈的[영적]이면서도 同時[동시]에 또한 極度[극도]로 人間的[인간적]이였다. 켐벨 몰갠의 말에 依[의]하면 그는 한번 네 살먹은 손녀를 안고 馬車[마차]타고 집에 오다가 車中[차중]에서 어린애가 잠들엇는데 집에 다와서도 깨나지 않으니까 그는 車夫[차부]로 하여금 말을 가만히 버끼게 하고 그애를 안은채 馬車[마차] 안에 그대로 안저 있다가 그만 자긔까지 거긔서 잠들어버리였다한다. 잠든 어린애를 안은채 잠든 그는 어린애같이 天眞[천진]스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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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ᅋᅵᆯ드에서 한 二十里(이십리, 조선리수)되는 와-윅의 조고마한 農村敎會[농촌교회]에서 牧師[목사]가 없어 講壇[강단]이 비게 된 때 무-디는 一年[일년]나마 그 敎會[교회]의 牧師[목사]일을 보아주었다. 一年後[일년후] 그 敎會[교회]에서 얼마 報酬[보수]를 들이려 한때 그는 呵呵大笑[가가대소]! 

도모지 問題[문제]도 삼지 않었다. 그에게 非人間的[비인간적]인 데가 있다면 그가 돈에 全然[전연] 無頓着[무돈착]했다는 그것일 것이다. 그의 찬송가集[집]과 說敎集[설교집]이 出版[출판]되여 數十萬弗[수십만불]의 收入[수입]이 있었으나 그는 銅錢[동전]한푼 거긔 손대이지 않었다. 그는 자긔가 물어야 할 것은 깔축없이 다물었지만 언제던지 그 自身[자신]을 위하야 收金[수금]하는 일은 절대로 용납지 않었섯다. 누구에게 말한마듸 들을 거 없이 제절로 百萬長者[백만장자]가 될것이였으나 그는 한 農夫[농부]로서 所用[소용]되는 生活費以上[생활비이상]의 아모다른 收入[수입]도 取[취]하지 않었다. 復興家[부흥가]로서 百萬長者[백만장자] 된 삘리 썬데-가 그 아들의 放蕩[방탕]으로 祝福[축복]을 〇代[〇대]하지 못한 苦憫[고민]에 比[비]하면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使者[사자]」 참 聖神[성신]의 사람이였음을 讚嘆[찬탄]하지 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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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神學校門[신학교문]이 어듸 붙엇는지도 몰랐으나 世界的[세계적] 大說敎家[설교가], 傳道者[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만나가 감초인 天上[천상]에 홀로 逍遙[소요]하며 즐긴 者[자]가 아니오 사람들 입에 그 만나를 난화 먹이는 것을 使命[사명]으로 한 者[자]였다. 그는 神學的[신학적] 辯論[변론]을 몹시 실혀하였다. 어느 때 神學的[신학적] 辯論[변론]에 熱中[열중]하는 者[자]들을 보고 『머리털 깨틀이는 實驗[실험]은 좀 그만두었으면 좋챤소?』하였다. 누가 그에게 『당신 信條[신조]가 무엇이오?』하고 물은 때 그는 『이사야 五十三章[53장]이오!』 하고 대답했다 한다. 그는 專門學校[전문학교]도 다녀보지 못한 이다. 그러나 當時[당시]의 世界的[세계적] 最大神學者[최대신학자], 푸린스톤神學校[신학교]의 아-취발드 하지 박사는 하로 敎室[교실]에서 이러케 말하였다. 『내가 만일 그 사람(무-디를 가리킴)처름 說敎[설교]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내 地位[지위]와 學職[학직]을 다 糞土[분토]같이 버리겠소.』

그는 聖經以外[성경이외]에 다른 아모것도 說敎[설교]하지 안었다. 心理學[심리학]도 無用[무용] 高等批評[고등비평]도 몰랏다. 『福音[복음]이 어떠케 罪人[죄인] 구원하는 것은 내가 四十年間[40년간] 實驗[실험]해서 잘 아는 터인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새 方法[방법]에 덥적거릴 必要[필요]가 무어 있소?』 하는 것이었다. 그가 聖經[성경]을 들고 講[강]단에 나서매 왼世上[세상]은 그의 말을 들었다. 웨 그랬는가? 聖經[성경]만은 그가 참으로 잘 工夫[공부]했고 잘 알었던 까닭이다. 그는 每日[매일] 아츰 네時[시]에 이러나 祈禱[기도]하며 聖經[성경]을 읽엇다. 聖經[성경]의 깊은 뜻을 꿰뚫러 보는 데는 아마도 그때나 이제나 그에게 匹敵[필적]할 자 없을 것이다. 그는 講壇[강단]에서 별스럽게 굴지 않었으며 怒呼[노호]하지도 안었고 暴言豪語[폭언호어]도 없었으며 演劇[연극]도 하지 안었다. 그는 노트ᅋᅵᆯ드 農夫[농부]들과 會話[회화]할때처름 單純[단순]하고 天眞[천진]하였다. 그에게는 誹謗[비방]이 없었으며 쓴말이 없었다.

한번은 어느 敎役者[교역자]가 몹시 激烈[격렬]하게 論爭的[논쟁적] 說敎[설교]하는 것을 듣고나서 그가 하는 말! 『나한번 魔鬼[마귀]에 對[대]하야 說敎[설교]를 준비했었는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온갖 惡[악]한 일홈으로 그를 불르며 내 힘자라는데까지 그를 찢고 밟고 한 셈이였지요. 그러고 내가 오늘 이 說敎[설교]만 하면 마귀라는 놈 아주 납작해 젖지 별수 있나! 하고 불

내면서 熱心[열심]으로 說敎[설교]를 했지요. 그런데 說敎[설교]가 끝난 다음에 敎人[교인]들 마음을 가만히 삶여보니깐 「듣고보니 마귀가 그러케 납분놈은 아니였구먼!」하고 마귀에게 동정하는 氣分[기분]이겠지요! 그래 그때부터 나는 그 따위 說敎[설교]는 다 치여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한답니다.』 그의 신령한 智惠[지혜]의 閃光[섬광]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만 증거하면 나는 숨기고 그리스도만 나타나니 마귀가 제절로 무서워 달아나지만 그리스도를 擁護[옹호]하노라고 내가 앞에 서고 그리스도가 내 뒤에 숨으신다면 마귀가 도망질은커녕 그 奸計[간계]로 나를 붙잡아 더 충실한 自己[자기] 종을 삼을 것은 두말없이 그럴거 아닌가? 言必稱[언필칭] 異端排擊[이단배격], 正統擁護之徒[정통옹호지도]가 率先[솔선]하야 敎會分裂[교회분열]의 主役[주역]이 되는 理由[이유]가 곧 여긔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贖罪愛[속죄애]를 各自[각자]의 生活全體[생활전체]로 證據[증거]한다면 異端[이단]은 제절로 물러갈 것이 아닌가? 異端[이단]이란 自體[자체]가 사탄에게서 난 것이라면 「異端排擊[이단배격]」이란 것도 역시 사탄의 所作[소작]이니 그는 이들을 싸움부처 敎會[교회]의 분열, 兄弟愛[형제애]의 冷却[냉각], 信仰[신앙]의 儀文化[의문화]를 達成[달성]하려는 것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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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끈임없이 그리스도만 이야기하매 사람들은 실증없이 그의 말을 들엇다. 그는 한번 요한복음 三[3]장 十六[16]절을 本文[본문]으로 하고 육일동안 계속하야 설교하였다 第七日[제7일]밤에 그는 會衆[회중]을 향하야 『친구들, 나 오늘 終日[종일] 새 本文[본문]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이처름 좋은 本文[본문]을 찾지 못했읍니다. 그래 또 이 요한 三[3]장 十六節[16절]로 도라왔소이다.』 하였다. 그러나 그가 설교하는 동안에 실타고 나간 사람은 勿論[물론] 하나도 없었다. 그가 異端排擊[이단배격]에는 甚[심]히 拙[졸]하였으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는 진실로 勇將[용장]이였다. 시카고에 世界傳覺會[세계전각회]가 열렸을 때 그는 中央音樂堂[중앙음악당]을 세내여 傳道集會[전도집회]를 計劃[계획]하였다. 集會時間[집회시간]은 아츰 九時[9시]부터 午後[오후] 六[時6시]까지였다. 다른 傳覺會[전각회] 구경 갈터인데 웬걸 모히랴! 하고 모도들 걱정하였지만 놀라지 마라! 첫날 時間[시간]도 되기전에 무-디가 들창을 열로 겨우 집안에 들어갈만치 사람들이 차고 넘치였었다. 傳覺會[전각회]의 모든 演劇[연극]과 구경거리도 이 聖經[성경]을 손에든 한사람 앞에서는 아모힘도 없었던 것이다. 演劇[연극]이야기 났으니 말이지 한번 有名[유명]한 ᅋᅩ레파우曲馬團[곡마단]이 시카고에 와서 午後[오후]와 저녁 두 번식 大興行[대흥행]을 한다고 廣告[광고]하였다. 그때 무-디는 그 興行塲主[흥행장주]에게 교섭하야 아츰 時間[시간]에 그 興行塲[흥행장]을 세내여 傳道集會[전도집회]하기로 約定[약정]하였다. 그런데 아츰 時間[시간]에 그 興行塲[흥행장]에 몰려온 群衆[군중]이 너무나 超滿員[초만원]이오 너무나 感激的[감격적]인 것을 보고 興行師[흥행사]들은 그만 그날 午後[오후]에 天幕[천막]을 거두어싯고 봇짐싸가지고 다른데로 가버리였다한다. 勿論[물론] 그들도 아츰 集會[집회]에 나와 은혜받고 갓을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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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米國[미국]에서는 天主敎[천주교]와 新敎派[신교파]와의 싸움이 가장 激烈[격렬]하던 때엿다. 그때 그의 故鄕[고향]인 노-드ᅋᅵᆯ드에 새로 天主敎堂[천주교당]이 建設[건설]되였는데 그는 그 天主敎堂建設[천주교당건설]을 爲[위]하야 꽤 많은 金錢[금전]과 風琴一座[풍금일좌]를 연보하였다. 그러나 數年後[수년후] 그 自身[자신]이 트리니타리안 禮拜堂[예배당]을 建築[건축]할 때에는 天主敎[천주교]에서 사흘동안 계속하야 돌팔매질하는 것으로 그의 親切[친절]을 報答[보답]하였다. 무-디의 눈에는 天主敎[천주교]도 新敎[신교]도 보이지 않고 다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의 靈魂[영혼]만이 보이였던 것이언마는 相對方[상대방]의 沒理解[몰이해]는 마츰내 이런 悖德[패덕]을 이르킨 것이니 遺憾[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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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는 世上[세상] 떠나기 바로 前[전]에 이러케 말하였다. 『몃칠 지나서 新聞[신문]에 「띠엘 무-디가 죽었다」는 記事[기사]가 날지라도 조곰도 믿지 말어! 나는 갈사록 더 活動的[활동적]으로 살터이니까!』 하였다. 진실로 그는 더욱 活潑[활발]하게 살어 움직인다. 이제 死後[사후]에 계속하는 그의 生活[생활]을 보자! 거즛先知者[선지자]는 죽는 날이 썩는 날이지마는 참 하나님의 先知者[선지자]는 죽엄을 通[통]하야 더욱 그 榮光[영광]을 빛내며 더욱 뚜렷한 열매를 맺어보이는 것이음으로써다. 昨年[작년]은 무-디 誕生[탄생]한 百年[백년]되는 해였다. 그의 死後[시후]의 事業[사업]이 如何[여하]? 그가 設立[설립]한 노트엘드 女子神學院[여자신학원]과 마운트허몬男學校[남학교]에 一千百名[1100명]의 在學生[재학생]이 있으며 二萬名[2만명]의 卒業生[졸업생]이 아직도 生存[생존]하야 무-디의 믿음을 傳播[전파]하고 있다. 그의 指導[지도]로 생겨난 大學生及專門學生[대학생급전문학생]으로 된 「世界宣敎學生義勇團[세계선교학생의용단]」은 五十年來[오십년래]에 米國[미국]에서만 一萬三千餘名[일만삼천여명]의 宣敎師[선교사]를 全世界[전세계]에 派送[파송]하야 지금도 活躍[활약]하고 있다.

무디의 婦人聖經班[부인성경반]에서부터 자라난 시카고의 무-디聖經學校[성경학교]에서도 二萬五千名[2만5천명]의 精兵[정병]이 靈戰[영전]의 第一線[제일선]에 나섰으며 現在[현재] 四十名專任敎授[40명전임교수]의 指導下[지도하]에서 一萬名[일만명]의 在學生[재학생]이 第一線[제일선]에 설 遺憾[유감]없는 準備[준비]와 訓練[훈련]을 받고 있다. 이 學校[학교]에는 라디오 放送局[방송국]과 聖經夜學校[성경야학교]까지 있어 聖經知識[성경지식]의 普及[보급]에 萬全[만전]을 다하는 中[중]이며 시카고의 무-디紀念禮拜堂[기념예배당]은 아모 敎派[교파]에도 屬[속]하지안코 아모 敎會法則[교회법칙]에도 매이지 안은 敎會[교회]로서 다만 悔改[회개]하고 예수들 참으로 믿는 者[자]면 누구나 그 會員[회원]으로 迎接[영접]한다. 現在[현재] 四千名[사천명]의 會員[회원] 一千七百名[1700명]의 主日學校生[주일학교생]이 있으며 富者敎人[부자교인]은 없으니 이는 禮拜堂門牌[예배당문패]에 색인 標語[표어] 「他鄕[타향] 손님과 가난한 이들 언제나 없이 환영합니다」한 것이 그 정신인 까닭인가 한다. 이 敎壇[교단]아래에서 百十四名[114명]의 宣敎師[선교사]가 特別[특별]히 가난하고 病[병]든이들 가운데로 나가 그들의 親舊[친구]가 되여있다.

聖經文書運動團[성경문서운동단]에서는 四十一年間[41년간]에 百六十一種[161종]의 信仰文書[신앙문서]를 六國語[6국어]로 一千萬部[일천만부]를 刊行頌布[간행송포]했으며 聖經[성경], 찬송가, 傳道用單行本等[전도용단행본등]은 七十萬部以上[70만부이상]이 여긔서 부 全世界[전세계]에 퍼지였다.

무-디의 感化[감화]로 主[주]께 獻身[헌신]한 사람은 반다시 牧師[목사]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中間補充者[중간보충자]들이다』 하는 것이 무-디가 늘상하는 말이였다. 즉 牧師[목사]와 平敎人[평교인]과의 사이를 메꾸는 것이 그들의 使命[사명]이란 말이다. 牧師[목사]는 聖別[성별]된 職分[직분]이니만치 아모 事業[사업]에나 分別[분별] 없이 손댈수 없으며 平敎人[평교인]은 修養[수양]과 訓鍊[훈련]이 없고 또 世俗生活[세속생활]에 汨沒[골몰]하니만치 直接奉仕[직접봉사]의 能力[능력]이 缺乏[결핍]하다. 그러므로 무-디는 스데반 빌립 等[등]과 같이 使徒[사도]와 平信徒[평신도]의 사이에 있어 社會奉仕[사회봉사]와 傳道[전도]를 兼行[겸행]할 初代敎會式[초대교회식] 獻身的[헌신적] 執事級[집사급]을 訓鍊[훈련]하려는 것이였다. 진실로 名案[명안]이다. 그러므로 무디와 關聯[관련]된 사람들은 社會各方面[사회각방면]에 들어가 그 信仰[신앙]을 實踐[실천]한다. 最近[최근]에 某英國記者[모영국기자]의 發表[발표]한 바에 依[의]하면 『론돈의 모든 慈善機關[자선기관]에서 만일 무-디와 關係[관계]된 사람들을 다 除外[제외]한다면 全[전] 론돈의 慈善機關[자선기관]은 그 〇體[〇체]를 일허버릴 것이다』 하였다. 우리에게는 더욱이 이런 訓鍊機關[훈련기관]이 必要[필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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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후에 내 願[원]하는 碑石[비석]은 두발가지고 걸어다니는 碑石[비석]이다』하고 무-디는 말하였다. 救援[구원]받은 罪人[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救援[구원]을 왼 世界[세계]에 傳[전]하는 그 두발가진 무-디의 사람들이 곳 그의 不滅[불멸]의 碑銘[비명]이다. 『聖神[성신]이 너이게 臨[임]하시면 너이가 權能[권능]을 얻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서 내 證人[증인]이 되리라』 聖神[성신]에 感激[감격]한 무-디는 偉大[위대]한 비쥰에 불타는 先知者[선지자]였다. 그러고 이 先知者[선지자]의 비쥰은 갈사록 더 크게 밝게 우리를 비최이고 있다. 

一月 十日



[십자군 제2권 제1호] 소문소감 - 해외교계동정

所聞所感[소문소감]

海外敎界動靜[해외교계동정]

『破壞捐補[파괴연보]』

콘넥티컽市[시] 組合敎會[조합교회]에서 지금까지쓰던 禮拜堂[예배당]을 헐고 그 자리에 새 禮拜堂[예배당]을 짓키로 作定[작정]하였다. 敎友[교우]들이 建築[건축]연보 거두려 도라다니는 중 그 이웃에 있는 羅馬天主敎會[라마천주교회] 神父[신부]에게도 들러 연보를 청하였다. 그 신부[신부]는 퍽 자선심이 많은 이로서 무엇이든지 좋은 事業[사업]이면 自進[자진]하야 도아주는 이였으나 이번만은 머리를 가로흔들며 『로마天主敎[천주교] 神父[신부]로서 新敎禮拜堂[신교예배당] 짓는데 도아주는 것은 敎會法[교회법]에 禁止[금지]된 일이니까 할수없다』고 대답하였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수일후에 이 神父[신부]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그속에는 相當[상당]히 많은 연보가 들어있었다. 그 편지에 있는 말 -

『나는 몃칠동안 敎會法規[교회법규]를 자세히 찾어보았으나 天主敎神父[천주교신부]로서 新敎禮拜堂[신교예배당] 허는 것을 도아주지 말라는 條文[조문]은 없었읍니다. 그래 지금 이 돈을 보내들이오니 당신네 禮拜堂[예배당]허는데 쓰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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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印度[남인도]의 敎會聯合運動[교회연합운동]』

組合敎會[조합교회], 長老敎會[장로교회], 米國改革敎會[미국개혁교회]의 三派[삼파]가 이미 聯合[연합]하야 南印度聯合敎會[남인도연합교회]를 일운 것은 이미 된 事實[사실]이어니와 今番[금번] 다시 웨슬레 監理敎會[감리교회]와 聖公會[성공회]와 이 南印度聯合敎會[남인도연합교회]와의 三派合同運動[삼파합동운동]이 거의 具體化[구체화]하여가는 中[중]이다. 兩年間[양년간] 彼此[피차] 協議[협의]한 結果[결과] 南印度聯合敎會總會[남인도연합교회총회]에서는 下記[하기] 三個條[삼개조]만 諒解[양해]되면 聯合[연합]이 實現[실현]될 것을 말하였다 (1) 平信徒 代表[평신도대표]와 敎役者代表[교역자대표]가 同等[동등]일 것 (2) 聯合[연합]하기 前[전]에 三派公同聖餐禮拜[삼파공동성찬예배]와 公同祝賀禮拜[공동축하예배]를 거행할 것 (3) 特別[특별]한 境遇[경우]에는 平信徒[평신도]에게도 聖餐禮拜式擧行權[성찬예배식거행권]을 許容[허용]할 것.

아직도 難問題[난문제]가 많으나 結局[결국] 合同[합동]이 成立[성립]될 것은 確實[확실]하다고 報道[보도]되였다. 世界敎會[세계교회]는 지금 모든 方面[방면]으로 마음을 合[합]하고 힘을 合[합]하려는 大傾向[대경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 朝鮮敎會[조선교회]에 있어서도 紛亂[분란], 獨善主義[독선주의]는 絶對[절대]로 容納[용납]하지 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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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地[성지]의 聖誕節[성탄절]』

크리스마스라 하면 흔히 우리는 흰눈속에 고요히 잠든 江山[강산]을 생각하지마는 聖地[성지] 팔레스틘의 聖誕節[성탄절]은 아주 달라서 山[산]과 들과 골자군이 모도다 푸른풀 좋은 꽃으로 덮이여있다. 聖地[성지]에는 지금 두 民族[민족]이 사는데 하나는 아라비아人[인]이오 하나는 유대人[인]이다. 그런데 아라비아人中[인중]에는 希臘正敎會員[희랍정교회원]도 많고 聖公會[성공회]와 天主敎會員[천주교회원]도 더러 있어서 크리스마스도 얼마 직히지마는 유대人[인]은 信者[신자]가 없음으로 聖誕[성탄]은 직히지 안는다. 그러나 유대人[인]들도 이때는 슈뎔절 即[즉] 마까비가 主前[주전] 一六五年[165년]에 스리아의 안티오커스 이피파니어스를 이기고 聖殿[성전]에서 偶像[우상]을 淸潔[청결]해버리고 다시 聖殿[성전]을 하나님께 奉獻[봉헌]한 날을 紀念[기념]

하는 節[절]긔임으로 히부리 學校[학교]들은 다 休業[휴업]이오 各店頭[각점두]는 八枝燈〇[팔기등〇]를 꿈여 祝賀[축하]의 意[의]를 表[표]한다. 아라비아人[인]들도 마츰 이때는 라마단月[월]임으로 禁食[금식]하며 지낸다.

事實[사실] 聖地[성지]에는 세 聖誕節[성탄절]이 이엄이엄 온다고 볼 수 있다. 天主敎人[천주교인]과 新敎人[신교인]들은 十二月[12월] 二十五日[25일]을 직힌다. 希臘正敎會[희랍정교회]에서는 自己[자기]네 舊曆[구력]대로 十二月[12월] 二十五日[25일] 직히니 現行曆[현행력]으로 말한다면 一月[1월] 七日[7일]이다. 그러고 알메니아 信者[신자]들은 一月[1월] 十九日[19일]을 聖誕節[성탄절]로 직힌다. 이렇게 날자가 달른 것이 遺憾[유감]이지만 그 祝賀[축하]하는 內容[내용]이 다 같으니 적이 慰安[위안]이 된다.

聖誕節[성탄절]이면 信者[신자]들의 行列[행열]에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떠나서 에부라다 道路[도로]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徐徐[서서]히 行進[행진]한다. 얼마 가다가 유대人[인]들이 특별히 尊敬[존경]하는 라헬의 무덤에 잠간 발을 멈추었다가 行列[행렬]은 西[서]으로 도라져 헤브론과 브어쉐바로 가는 길을 걸어간다. 그러다가 다시 南向[남향]하야 언덕으로 올라가면 거기가 옛날 榮光[영광]의 마을 베들레헴인데 그 周圍[주위]는 넓은 뜰! 보아스의 뜰이다. 쓰린 가슴 아름다운 얼골의 소유자인 異域[이역]의 젊은 寡婦[과부]들이 落穗[낙수]를 주으며 한숨쉬던 뜰도 여기오 牧童[목동]인 少年[소년] 따윋이 羊[양] 몰고 도라오든 뜰도 여기다. 

이리하야 行列[행렬]은 베들레헴 복판에 들어선다. 그리하야 네 사람이 나라니서서 지나갈 수 없을만치 좁은 골목을 걸어 그 目的地[목적지]인 誕生地禮拜堂[탄생지예배당](The Church of Nativity)으로 들어간다. 이 禮拜堂[예배당]은 東[동]쪽가에 있는 最古[최고]의 禮拜堂中[예배당중] 하나로서 콘스탄틴 帝[제]가 세운 것이오 後[후]에 改築[개축]하야 禮拜堂[예배당]으로 使用[사용]하게 될 것이다. 行列[행렬]은 이 禮拜堂[예배당]에 들어가 聖誕祝賀禮式[성탄축하예식]을 擧行[거행]하는데 그 中[중] 第一華麗壯嚴[제일화려장엄]한 禮式[예식]은 亦是[역시] 希臘正敎會[희랍정교회]의 그것이다. 그러나 이 宏壯[굉장]한 禮式[예식]에 參席[참석]하고 恍惚[황홀]한 氣分[기분]으로 흐터질때마다 人間[인간]의 가장 單純[단순]한 言行[언행]을 사랑하신 木手[목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果然[과연] 어떠하실가 하는 未安[미안]이 내마음을 눌르지 안을 수 없었다.

(뉴-아웉룩 誌特派員所記)

『牧師[목사]의 三重務[삼중무]』

론돈의 씨티 –템풀 禮拜堂[예배당]의 웨더헤드 牧師[목사](Rev. Leslie D. Weatherbead)는 說敎家[설교가]로서 有名[유명]할뿐아니라 靑年[청년]들의 「그룹」指導[지도]와 敎人[교인]의 心理學的[심리학적] 治病術[치병술]에 造詣[조예]깊은 牧師[목사]이다. 그는 말하기를 『敎會[교회]는 大衆的[대중적]으로 說敎[설교]에 置重[치중]할뿐으로서는 그 使命[사명]을 다할 수 없다. 「그룹」의 討議[토의]와 談話[담화]를 中心[중심]으로 잘아난 「同志[동지]」의 養成[양성]이 그 最大任務[최대임무] 中[중]의 하나이다. 그러고 敎人[교인]들의 心理的[심리적] 病[병]은 心理學[심리학]을 應用[응용]하야 牧師[목사]가 그 治療[치료]에 當[당]해야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야 그 自身[자신]의 이에 對[대]한 顯著[현저]한 功蹟[공적]으로 말미암아 英國[영국]의 數三神學校[수삼신학교]에서는 이 心理療法[심리요법]을 敎授科目[교수과목]으로 너케되였다. 主[주]님께서는 大衆[대중]을 向[향]하야 說敎[설교]하시고 弟子[제자]들을 「그룹」으로 난호아 「同志[동지]」訓鍊[훈련]에 힘쓰시고 또 病者[병자]를 治療[치료]하섰으니 牧者[목자]로서 「牧者長[목자장]」의 본을 딸어야 할 것은 勿論[물론]이다. 特[특]히 우리 朝鮮敎會[조선교회]에서의 不足[부족]은 이 「同志[동지]」 訓鍊[훈련]과 醫療[의료] ###



[십자군 제2권 제1호] 경건문학 : 어거스틴 참회록(4) – 장공

敬虔文學[경건문학]

어거스틴 懺悔錄(4)

長空[장공] 新譯[신역]


小學時代[소학시대] (續[속])

[十六] 『遊戱[유희]』 - 그러치만 이에서 나는 죄를 犯[범]하였나이다. 오 主[주]하나님 自然[자연]의 萬物[만물]을 創造[창조]하신 이, 處分[처분]하시는 이시며 罪[죄]는 오직 處分[처분]만 하시는 오 主[주] 나의 하나님이시여 나는 내 兩親[양친]과 내 先生[선생]들의 命令[명령]을 拒逆[거역]함으로 말미암아 罪[죄]를 犯[범]하였나이다. 이는 무슨 動機[동기]로 햇던지 間[간]에 저들이 나에게 배워준 것은 後[후]에 내가 善[선]하게 使用[사용]할 수 있었을 것임이외다. 내가 저들을 拒逆[거역]한 것은 「저들의 生命[생명]보다」 더 좋은 것을 내가 擇[택]한 까닭이 아니오라 다만 작난을 즐기며 나의 競技[경기]에 있어서 勝利[승리]의 자랑을 사랑하며 지어낸 이야기로 내 귀를 긁어 더욱 근지럽게 하려함이였나이다. 이 好奇心[호기심]은 내 눈에서 더욱더 반짝이며 어룬들이 하는 구경꺼리와 競技[경기]로 向[향]하였사옵니다. 그런데 이 구경꺼리의 「主人公[주인공]」들은 아주 높힘을 받는 이들이여서 사람들의 거의 全部[전부]가 自己[자기]네 어린이들도 다 저렇케 되었으면하고 願[원]하는 터이였나이다. 그러면서도 이 구경이 저들 「어린이들」의 공부를 방해하면 그 구경한 어린이들은 초달맛나는 것을 퍽 좋케녁이더이다. 공부식히는 「主要目的[주요목적]이」 그 구경의 主人公[주인공] 같이 되게 하려는 것이면서도 – 오, 불상히 녁이심으로 이 일을 보아주소서 主[주]여~ 그리하야 지금 당신께 呼訴[호소]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 당신께 呼訴[호소]하지 안는 者[자]들까지도 구원하소서. 그리하야 저들도 당신께 호소하게 되며 당신께서 저들을 구원하게 하옵소서.

[十七] 『重病[중병]』 - 그런데 그때 한 少年[소년]으로서의 나는 벌서 永遠[영원]한 生命[생명]에 對[대]한 것을 들었나이다. 이는 우리의 교만우에 몸굽히신 主[주] 우리 하나님의 겸손을 通[통]하야 우리에게 約束[약속]하신 것

이였사오며 또 당신을 크게 바라고 있던 내 어머니의 胎[태]로부터 主[주]의 十字架[십자가]의 표로써 封印[봉인]하시고 主[주]님의 소곰으로 소곰치신 것이였나이다. 主[주]여 당신은 보섯나이다. 내가 아직 少年[소년]이던 어느때 갑작히 胃痛[위통]이 甚[심]하야 거의 죽게 되였던 일을! 어떠케 내가 어떤 熱心[열심]과 믿음으로 내 어머니와 또한 우리들 共通[공통]의 어머니 되시는 당신 敎會[교회]의 敬虔[경건]한 念慮[염려]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이시오 내 主[주]님이신 그리스도의 洗禮[세례]를 받고저 懇求[간구]한 것을 당신은 보섯나이다. 내 하나님 당신은 나의 守護者[수호자]이시오매! 이일에 있어서 내 肉身[육신]의 어머니, 당신 믿음안에서 정결한 心情[심정]을 가진 그는 더욱이나 사랑스럽게도 내 救援[구원]을 爲[위]한 生産[생산]의 手苦[수고]를 담당 하였나이다.

그때 만일 내가 곳 完快[완쾌]하지 안었던들 그는 罪赦[죄사]함을 얻기 爲[위]하야 主[주]예수 당신을 告白[고백]하며 힘주는 聖〇[성〇]에 參與[참여]하야 나의 獻身[헌신]과 淨罪[정죄]를 더큰 苦惱[고뇌]로 분주히 예비하였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마치 내가 다시 살어난다면 또 더러워지지 안을수 없다는 듯이 나의 淨罪[정죄]는 〇延[〇연]되였었나이다. 이는 씻음 받은 後[후]에 犯[범]하는 罪汚[죄오]는 더 크고 위험한 罪實[죄실]을 가저올 것임이였나이다. 그리하야 나는 母親[모친]과 및 다른 全家族[전가족]들과 함께 信者[신자]가 되었나이다. 다만 父親[부친]만은 믿지 안으섯사오나 그렇다고 내 어머니의 나에게 向[향]한 信仰[신앙]의 權威[권위]를 抑壓[억압]하야 自己[자기]가 아직 믿지 안는 것 같이 나는 믿지 안케하려고는 하지않었었나이다. 그가 아니라, 당신, 내 하나님이 내 아바지 되기를 어머니는 眞心[진심]으로 祈願[기원]하였었나이다. 그리하야 이 일에 있어서 당신께서는 어머니를 도으서서 그로 하여곰 그의 남편을 屈服[굴복]케하였사오며 비록 男便[남편]보다 나을지라도 그에게 順從[순종]함으로 말미암아 順從[순종]하라 命[명]하신 당신에게 順從[순종]하였나이다.

[十八] 나는 당신께 祈願[기원]합니다. 내 하나님이시여! 만일 당신의 뜻일진대 그때 무슨 目的[목적]으로 나의 洗禮[세례]가 〇延[〇연]되였는지 알고서 切願[절원]하옵니다. 마치 나로 하여곰 죄짓케 하시려는 듯이 내우에 줄을 늦추신 것이 나의 잘되기 爲[위]함이였나이까? 그렇챤으면 줄은 느춰지지 안은것이였나이까? 만일 늦춰진 것이 아니라면 웨 아직도 各方面[각방면]으로부터 『그를 상관하지말어! 그는 아직

洗禮[세례]를 받지 않었으니 그의 하는대로 버려두어!』하는 「소리가」우리 귀에 울려오나이까? 그러나 肉身[육신]의 健康[건강]에 一關[일관]해서는 『그가 아직 낫지 않었으니 더 몹시 傷[상]하게 해라!』하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읍니다. 내가 그때 곳 나아서 나의 친구들과 나 自身[자신]의 精進[정진]으로 말미암아 내 靈魂[영혼]의 恢復[회복]된 健康[건강]이 이를 許與[허여]하신 당신의 守護下[수호하]에서 安全[안전]하게 지낼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겠나이까? 진실로 더욱 휼륭하였겠나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誘惑[유혹]의 큰 물결이 나의 少年期[소년기]를 뒤니어 나우에 덮여있는 듯 하였나이까! 내 어머니는 이것을 압서 보았나이다. 그리하야 일우어진 形像[형상]보다도 차라리 後日[후일]에 이르러 내가 비저질 흙덩이를 저 波浪[파랑]에 맛기는 편을 났게 녁인 것이였나이다.

[十九] 『억지로 공부』 - 는 그래도 靑年期[청년기]보다는 퍽으나 危懼[위구]가 적었던 少年期[소년기]에 있어서 나는 工夫[공부]하기를 즐기지 안었사오며 또한 이에 强制[강제]됨을 미워하였나이다. 그러나 나는 强制[강제]를 받었나이다. 이것은 나에게 잘한 것이였사오나 나는 이에 對[대]하야 잘하지 못하였나이다. 이는 强制[강제]를 받지 안으면 나는 工夫[공부]하지 안었던 까닭이옵니다. 그러나 가령 잘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억지로 해서 잘되는 일은 없나이다. 더군다나 나를 强制[강제]한 이들도 잘한 것은 아니였나이다. 잘된 것은 오직 당신 내하나님으로부터 나에게 온것이였사옵니다. 이는 저들이 强制[강제]로 나에게 가르처준 그것을 내가 어떻게 應用[응용]할데 對[대]해서는 저들은 아주 無關心[무관심]하였사옵고 다만 富者거지오 辱[욕]된 榮光[영광]인 滿足[만족]못식힐 情感[정감]의 滿足[만족]을 願[원]한 것뿐이였던 까닭이옵니다. 그러나 당신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혜시는 당신께서는 나를 鞭〇[편〇]하야 工夫[공부]식히던 그이들의 온갖 잘못을 利用[이용]하사 나의 有益[유익]이 되게하시면 工夫[공부]하기 실혀한 나 自身[자신]의 「잘못은」 당신께서 나의 刑罰[형벌]로 利用[이용]하섯나이다. 진실로 그러케 적은 아이로서 그러케도 큰 罪人[죄인]인 「나에게는」 千萬合當[천만합당]한 刑罰[형벌]이였나이다. 이리하야 잘하지 못한 이들로써 당신은 나에게 〇〇〇 주섯사오며 나 自身[자신]의 罪[죄]로써 당신은 나를 正當[정당]히 罰[벌]하였나이다. 이는 당신께서 命令[명령]하신 것이오매 그대로 되어 있는 것이온데 온갖 〇度[〇도]

〇度[〇도]없는 愛情[애정]은 그대로 그의 刑罰[형벌[이 되게 하신 것이옵니다.

[二十] 『古典文學[고전문학]의 虛妄[허망]』 - 그러나 내가 少年[소년]으로서 工夫[공부]하던 그리시아語[어]는 웨 그러케도 몹시 실혀햇사옵는지 아직도 나는 充分[충분]히 알지 못하옵니다. 〇典語[〇전어]는 小學校敎師[소학교교사]가 가르친 것이 아니옵고 所謂[소위] 文法家[문법가]라는 이들이 가르치였었나이다. 小學校[소학교]의 正科[정과]인 讀法[독법], 作文[작문], 算法[산법]은 또한 어느 그리시아語[어] 科目[과목]보다도 못하지 안케 큰집이오 罪人[죄인]같이 생각하였나이다. 그러면 이건또 어듸서 온것이오리까? 이 世上罪[세상죄]와 虛妄[허망]에서 온 것이 아니오리까? 나는 肉身[육신]이오 한번가고 다시 안오는 바람결인 까닭이 아니였사오리까? 이 小學校正科[소학교정과]는 더 確實[확실]한 學問[학문]이였사옵기에 確實[확실]히 더좋은 「學問[학문]」이였나이다. 「이 小學正科[소학정과]의 學習[학습]」으로 말미암어 내가 남쓴 글을 읽으며 내 願[원]하는 바를 써내는 能力[능력]을 얻었사오며 또 「그 能力[능력]를」 지금도 保全[보전]하고 있사옵니다.그러나 다른 科目[과목]에 있어서는 『아에니아스의 放浪[방랑]』이란 册[책]을 억지로 배우며 나 自身[자신]의 放浪[방랑]은 잊게 되었사오며 〇愛[〇애] 때문에 自殺[자살]한 女子[여자] 띠도를 爲[위]하야는 울면서도 오 내 生命[생명]인 하나님! 당신을 멀니떠나 이런 일 中[중]에서 죽어가는 悲慘[비참]한 나 自身[자신]을 爲[위]해서는 매마른 눈동자로 지내였사옵니다.



[십자군 제2권 제1호] 히부리인서연의(4) - 김재준

히부리人書演義[인서연의] (四[사])

金在俊[김재준]


此號[차호]까지의 演義內容槪要[연의내용개요]

1. 總論[총론]

[1] 基督敎[기독교]의 究極性[구극성] - 本書[본서]의 主題[주제] (1:1-4)

(1) 舊約[구약]과 新約[신약]의 兩啓示[양계시]를 對照[대조] (1-2절)

(2) 聖子[성자]의 性質[성질]과 事業[사업], 特[특]히 그의 神性[신성]과 化身[화신]에 對[대]하야 (3절)

(3) 本論[본론]으로 옴기는 始作[시작] (4절)

2. 本論[본론]

[1] 新約[신약]의 仲保者[중보자]인 聖子[성자]의 優越性[우월성]! 天使[천사]와 對照[대조] (1:5-2:18)

(1) 聖經[성경]의 證言[증언] (1:5-14)

(2) 聖子[성자]로 말미암은 新約啓示[신약계시]를 等閑視[등한시]하는 罪[죄] (2:1-4)

(3) 苦難[고난]을 通[통]하야 完成[완성]된 聖子[성자]의 人類[인류]에 對[대]한 究極的[구극적] 聖使命[성사명] (2:5-18)

[2] 舊約[구약]의 建設者[건설자]와 新約[신약]의 建設者[건설자] 對照[대조] (3-4장)

(1) 모세와 예수 (3:1-6)

① 예수의 權威[권위] (1-2절)

② 집과 그 집의 建設者[건설자] (3-4절)

③ 下人[하인]과 아들 (5-6절)

(2) 舊, 新約啓示[구, 신약계시]에 나타난 언약과 그 백성 對照[대조] (3:7-4:13)

① 믿음은 祝福[축복]의 先行條件[선행조건] (3:7-19)

② 未完成[미완성]의 約條[약조] (4:1-13)

③ 大祭司長[대제사장]에 關[관]한 敎理序論[교리서론] (4:1-13)

舊約宗敎[구약종교]의 建設者[건설자]인 모세와 新約宗敎[신약종교]의 建設者[건설자]인 예수를 對照[대조]하야 新約宗敎[신약종교]의 究極性[구극성]을 立證[입증]한 것으로서(3:1-6) 爲先[위선] 그 序論[서론]으로 「예수의 權威[권위]을 述[술]하고(1-2) 다음 모세와 예수를 對照[대조]하였다. (3-6)

聖子[성자] 그리스도의 權威[권위]와 仁慈[인자]하심 人子[인자]로 오서서 墮落[타락]한 人間[인간]에게 가까이하사 苦難[고난]을 通[통]하야 救贖[구속]하시며 大祭司長[대제사장]으로 和睦祭[화목제]를 들이신 그리스도 主[주]님이시매 우리 信者[신자]로서 어찌 그의 人格[인격]에 對[대]하야 無關心[무관심]하게 지낼 수 있으리오?

『그런고로 거룩한 兄弟[형제], 하날의 부르심을 같이 닙은 者[자]들아, 맛당히 우리 믿는 도리의 使徒[사도](使者[사자])시며 大[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히 생각하라』(3:1)한 것이다. 이 편지의 著者[저자]나 讀者[독자]나 다 信者[신자]이매 곳 하나님께서 自己[자기]의 所有[소유]로 特別[특별]히 갈라노흐신 百姓[백성]이니 「聖別[성별]」함을 닙은 者[자]들이다. 따라서 「聖兄弟[성형제]」들이며 「우으로부터 부름받은」 〇召[〇소]의 天恩[천은]에 浴[욕]한 者[자]들이다. 그러면 罔極[망극]한 恩寵[은총]을 입은 者[자]들로서 이 恩寵[은총]으로 引導[인도]한 信仰[신앙]의 「使徒[사도]」 即[즉] 「보냄을 입은 이」 아바지께서 救贖主[구속주]로 世上[세상]에 「보내신」이 聖子[성자] 예수 同時[동시]에 大祭司長[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히 생각『하지 안을수 없을 것이다. 『그』 即[즉] 예수『가 自己[자기]를 세우신 이』 即[즉] 하나님『에게 忠誠[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집』 곳 이스라엘 全民族間[전민족간]『에서 「忠誠[충성]한 것과 같으니라』 여기 「세우신 이」란 것은 「將立[장립]」 「任職[임직]」의 意[의]오 「하나님의 온집」이란 것은 「하나님이 그 中[중]에 居[거]하시는 組織[조직]된 社會[사회]」를 일음이니 舊約時代[구약시대]의 이스라엘 民族[민족] 新約時代[신약시대]에 信者[신자]로 組織[조직]된 「敎會[교회]」와 같은 것이다. 모세가 極忠極誠[극충극성]으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百姓[백성]으로 指導訓鍊[지도훈련]한 것은 民數記[민수기] 十二〇七[12장 7절]에 있는 것으로서 모세가 그 職分[직분]에 忠誠[충성]한 것 같이 예수도 또한 그 職分[직분]에 끝가지 忠誠[충성]한 것이였다. 그러므로 『예수를 깊히 생각하라』하는 것이다.

이제 그러면 職分[직분]에 「忠誠[충성]」한 點[점]으로는 모세아 예수나 彼此一般[피차일반]이라 할지라도 그 「職分[직분]의 高下[고하] 尊卑[존비]에 있어서는 이 兩者[양자](모세의 職分[직분]과 예수의 직분)는 진실로 天壤之間[천양지간]이다.

이제 모세와 예수의 職分[직분]의 尊卑[존비]를 對照[대조]한다면 모세는 「집」이오 예수는 「집짓는 이」 곳 하나님이시며(3-4) 모세는 그 집 「下人[하인]」이오 예수는 「아들」이시다(5-6)

『[三] 그는 모세보다 더욱 榮光[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세운 자가 그집보다 더욱 尊貴[존귀]한 것 같으니라 [四] 집마다 반다시 누가 세운 이가 있으니 萬物[만물]을 세우신 者[자]는 곳 하나님이시라 [五] 또한 모세는 하나님의 온집에서 사환으로 忠誠[충성]하야 將來[장래]의 말할 것을 證據[증거]하였고 [六] 그리스도는 그집맡은 

아들로 忠誠[충성]하섰으니 우리가 그집이라 다만 所望[소망]의 굿셈과 자랑함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할지라』 여기에 그 집 사환꾼인 모세가 「將來[장래]의 말할 것을 證據[증거]」했다는 것은 律法[율법]은 福音[복음]의 準備工作[준비공작]이였으므로 律法[율법]의 主導者[주도자] 모세는 메시아 그 福音[복음]이 人間[인간]에 들어와 救援完成[구원완성]할 것을 바라고 이를 豫備[예비] 豫證[예증]한 者[자]이란말이다. 그러고 예수는 그집 全體[전체]를 主官[주관]하는 主人[주인]으로 계신 「아들」이시다. 그런데 이 「집」이란 것은 무었인가? 곳 우리 信者社會[신자사회]를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 信者[신자]라할지라도 온갖 波浪[파랑]의 彼岸[피안]에 보이는 이 偉大[위대]한 天國所望[천국소망]을 밝게 보는 中[중]에서 「强硬[강경]」한 信仰心[신앙심]과 이 所望[소망]의 「자랑」을 끝까지 堅持[견지]하지 못하면 이 「하나님의 집」되는 特權[특권]을 享有[향유]할수 없는 것이다.

(2) 舊, 新約啓示[구, 신약계시]에 나타난 언약과 그 백성 對照[대조] (3:7-4:13)

① 믿음은 祝福[축복]의 先行條件[선행조건] (3:7-19)

그러면 하나님께서 親[친]히 그 中[중]에 居[거]하시는 組織[조직]된 人間社會[인간사회] 即[즉] 「하나님의 집」된 信者[신자]에게 있어서 무었보다도 몬저 要求[요구]되는 것은 곳 信仰[신앙]이다. 굿세고 膽大[담대]한 믿음, 所望[소망] 中[중]에 즐거워하는 믿음, 하나님께 絶對信賴[절대신뢰], 信徒[신도]하는 믿음이 온갖 祝福[축복]의 先行條件[선행조건]이다. 그런고로 著者[저자]는 이에 點[점]을 强調[강조]하기 爲[위]하야 舊約[구약]의 詩篇[시편] 九十三篇[93편]을 引用[인용]하야 (1) 出埃及時[출애급시]에 이스라엘 民族[민족]이 不信任[불신임], 不信徒[불신도]임으로 말미암아 받은바 廣野四十年[광야사십년]의 온갖 쓰린 經驗[경험]을 述[술]하고 三〇七-十一[3장 7-11절] (2) 以上[이상]의 事實[사실]을 一般的[일반적]으로 適用[적용]하야 當時[당시]의 信者[신자]에게 信仰堅持[신앙견지]를 効[효]하였으며(12-15절) (3) 냉종으로 이 廣野經驗[광야경험]을 더 仔細[자세]히 解釋[해석]하야 그 眞意[진의]를 깨우친 것이다(16-19절).

『그런고로 성신이 이르신 바와 같이』 舊約詩篇[구약시편] 九十五〇七-十一[95편 7-11절]에 말슴하시기를

『오늘날 너이가 만일 그(하나님)의 소리를 듣거든 [八] 너이의 마음을 완쾌케하기를 녯적에(出埃及時[출애급시]) 怒[노]하심을 격동하야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말나. [九] 거기서 너희 列祖[열조]가 나를 搜探[수탐]하야 시험하고 四十年[40년]동안에 나의 行[행]함을 보았나니라』 하나님께 對[대]하야 絶對信任[절대신임] 信徒[신도]의 念[념]이 없는 이스라엘 民衆[민중]은 늘상 하나님의 能力如何[능력여하]를 探査[탐사]하며 試驗[시험]하였다. 진실로 하나님께 對[대]한 온갖 不信任[불신임]은 그대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며 凌辱[능욕]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四十年間[40년간] 數多[수다]한 奇事[기사]와 異蹟[이적]을 行[행]하서서 그들에게 그 權能[권능]을 實證[실증]하섰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如前[여전]히 頑冥[완명], 不信[불신]이였으니 하나님의 이제 取[취]하실 態度[태도]가 무었인가? 『[十] 그런고로 내가 이 세대를 怒[노]하야 말하기를 저이가 나를 ####

惑[혹]되여 내 길을 알지 못하니 [十一] 그런고로 내가 怒[노]하야 맹세하기를 저희가 내 安息[안식]에 드러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이는 千萬合當[천만합당]한 處分[처분]이시다. 끝까지 不信任[불신임]하고 迷路[미로]를 取[취]하는 그들이였으며 하나님께서 强[강]한 決意[결의]로 「맹세」하시기를 彼等[피등]은 「내 安息[안식]」 即[즉] 가나안의 福地[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게하리라 하신것이였다. 그러면 이 詩篇[시편]은 〇千年前[〇천년전] 廣野時代[광야시대]의 이스라엘 民衆[민중]에게만 하신 말슴인가? 아니라! 「오늘날」(七칠)이란 文句[문구]가 指示[지시]하는대로, 그리스도의 福音[복음]이 傳播[전파]되여 하나님의 偉大[위대]한 權能[권능]이 天下[천하]에 들어난지 四十年[40년]이나 되는 現世代[현세대] 即[즉] 著者[저자]의 시대에 있어서도 그대로 適用[적용]되는 말슴인 것이다. 特[특]히 이 詩篇[시편](九十五〇)은 그때 猶太敎[유태교] 會堂[회당]에서 禮拜始作[예배시작]할대 開會詩篇[개회시편]으로 使用[사용]하던 것이였으니만치 언제나 새로운 詩篇[시편]이다. 그러면 『[十四] 兄弟[형제]들아 너히가 삼가 혹 너히 中[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惡[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 떠러질가 念慮[염려]할 것이오 오직 오늘이라 일캇는 동안에 每日[매일] 彼此[피차] 權勉[권면]하야 너히 中[중]에 누가 罪[죄]의 誘惑[유혹]을 받아 頑悖[완패]케됨을 免[면]케하라』 진실로 貴[귀]한 권면이다. 여기의 「兄弟[형제]들」은 다 벌서부터 믿는 信者[신자]들이다. 廣野[광야]의 이스라엘 民族[민족]도 다 「信者[신자]」였다. 그러나 저들은 다만 하나님을 觀念的[관념적] 敎理的[교리적]으로 「信認[신인]」하였을뿐이오 온갖 實際生活問題[실제생활문제]에 逢着[봉착]할 때에는 하나님을 참으로 「살아계실」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著者[저자]가 當時[당시]의 信者兄弟[신자형제]에게 主意[주의]준 것도 또한 이 點[점]에 있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 돈을 하나님보다 더 믿고 權勢[권세]를 하나님보다 더 무서워하는 「實際的無神論者[실제적무신론자]」가 되어 믿노라고 하면서도 「믿지 아니하는 惡心[악심]을 품은 者[자]」가 될가 두려워하야 「오늘날」이라는 이 「現在[현재]」에서 곳 彼此[피차] 權勉扶掖[권면부액]할 것이오 하로라도 〇延[〇연]하야 惡[악]에게 機會[기회]를 주는 일이 없게하라 하였다.

『대개 우리가 만일 시작할 때에 독실히 믿는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한가지도 그리스도를 얻은 자가 되리라』 진실로 그러하다 첫믿음은 누구나 熱烈[열렬]하다 첫사랑은 뜨겁다 그러나 오래 갈사록 믿음은 形式化[형식화]하고 職業化[직업화]하야 그 生命[생명]을 일허버린다. 그러나 항상 激動[격동]하야 첫 믿음의 生動力[생동력]이 그대로 씩씩하게 자라나게만 한다면 結局[결국]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品格[품격]으로 化[화]하야 굳게 설 수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事業[사업]과 榮光[영광]에 同參[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 詩[시] 九十五〇七-十一[95편 7-11절] 옛말슴을 좀더 仔細[자세]히 상고해보자 『[十五] 성경에 닐넛으되 「오늘날 너히가 만일 그의 소리를 듣거든 옛적에 怒[하심을 격

(三〇頁에 續)

(十七頁에서 續)

동할때와 같이 너의 마음을 완쾌케하지 말라」 하였으니』 그러면 하나님의 말슴을 『듣고』서 도로혀 하나님의 怒[노]하심을 『격동케한 者[자]가 누구냐』 『다 모세들좃차 애급에서 나온자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四十年[40년]동안에 누구를 怒[노]하였으냐? 犯罪[범죄]하야 그 屍體[시체]가 廣野[광야]에 업드러진 者[자]가 아니냐? 또 하나님께서 누구를 向[향]하야 맹세하사 그 安息[안식]에 드러오지 못하리라 하섰느냐? 곳 信徒[신도]치 아니하던 者[자]가 아니냐』 모세를 쪼차 애급에서 나온 者[자]들이니 믿기로 作定[작정]한 者[자]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實際[실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信任[신임]하지 안었으며 하나님을 信徒[신도]하지 안었으매 結局[결국] 徵罰[징벌]을 받어 曠野[광야]에 그 屍體[시체]를 남기고 安息處[안식처]인 가나안 福地[복지]는 밟어보지 못하였섰다. 그러면 여기서 發見[발견]한 眞理[진리]가 무엇인가?

『[十九] 이로보건대 뎌히가 믿지 아니함으로(信任[신임] 信從[신종]치 안음으로) 능히 들어 가지 못한 것이다』

- 다음은 四장 一절부터 -



[십자군 제2권 제1호] 맨처음에(창세기 4:1-26) - 김재준

『맨처음에』 (창세기) 四〇一-廿六[4장 1-26절]

金在俊[김재준] 謹譯[근역]


[一] 그 사람이 그의 안해 해와를 알매 그가 잉태하야 카인을 낳고 말하기를 『내가 야-웨-로 「더부러」(原意未詳) 사람을 얻었다』 하더라. [二] 그러고 다시 그가 그의 동생 하벨을 낳았는데 하벨은 양치는 자가 되고 카인은 밭가는 자가 되니라. [三] 그후에 카인은 땅의 열매를 야-웨-께 선물로 가저오고 [四] 하벨은 또한 그의 양떼의 첫 새끼들과 그 곱(脂肪[지방])을 가저오니라. 그런데 야-웨-께서 하벨과 그의 선물은 돌아보시고 [五] 카인과 그의 선물은 돌아보시지 안으시니 카인이 몹시 화가 나서(原語[원어] 「불붙어서」) 그 낯이 숙어지니라. (不平[불평]의 表現[표현]) [六] 그래 야-웨-께서 카인에게 말슴하시기를 『웨 네가 화났느냐? 웨 네낯이 숙어젔느냐? [七] 만일 네가 잘했으면 「낯이」 들리지 않겠느냐? 네가 만일 잘못했으면 죄가 문에 업드려 「였고」 있느니라. 그 (죄)의 소원이 네게 있으나 네가 그를 다스려야 하리라 (ㆍ〇處原文未詳故多異說[〇처원문미상고다이설]) [七/八] 【김재준이 표기한 절/실제 창세기의 절】카인이 그 동생 하벨에게 말하기를 『우리 들로 가자!』(古羅典譯[고라전역], 스리아譯[역], 사마리아 校正本[교정본]의 五書[오서]에 다 이 句[구]가 있음) 그리하야 저들이 들에 있을때에 카인이 이러나 그 동생 하벨에게 「달려들어」 그를 죽이니라. [八/九] 야-웨-께서 카인에게 말슴하시기를 『네 동생 하벨이 어디 있느냐?』하시매 그가 말하기를 『나는 아지 못합니다. 내가 내 동생의 파수군인가요?』 [九/十] 그(야-웨-)가 말슴하시기를 『네가 무엇했느냐? 네 동생의 피의 소리가 땅으로부터 나에게 부르짖는다! [十/十一] 그 입을 벌리고 네 손으로부터 네 동생의 피를 받은 그 땅에서 지금 너는 저주를 받었도다. [十一/十二] 네가 그 땅을 밭갈지라도 지금부터는 땅이 그 힘을 네게 내지 안을지며 너는 지상(地上_에서 류랑민, 표박자(流浪民, 漂泊者)가 될지니라』 [十二/十三] 카인이 야-웨-께 말하기를 『내 형벌이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나이다. [十三/十四] 보십시오. 오늘 나를 그 땅우에서 몰아 내시고 또 당신 안전(顔前)에서 내가 숨게 되었아오며 또 내가 지상(地上)에서 류랑민, 표박자가 되겠아온즉 누구나 나를 만나는대로 죽일것이옵니다』 [十四/十五] 그러므로 야-웨-께서 그에게 말슴하시기를 『누구던지 카인을 

죽이는 자는 그에게 七[칠]배나 원수 갚으리라』하시고 야-웨-께서 카인을 위하야 한 표를 주사 만나는 자가 그를 치지 못하게 하시니라.

[十五/十六] 그리하야 카인이 야-웨-의 안전(顔前)에서 떠나가 에덴 동쪽 녿(流浪[유랑]의 뜻) 땅에 머무(居住[거주])니라. [十六/十七] 카인이 그 안해를 알매 그가 잉태하야 해녹을 낳다. 그가 한 성읍(城邑)을 건설하고 그 아들의 일홈을 딸아 그 성읍 일홈을 해녹이라 불르니라. [十七/十八] 해녹에게 이라드가 나고 이라드가 메후야엘을 낳고 메후야엘이 메두샤엘을 낳고 메두샤엘이 ᄙᅡ멕을 낳다. [十八/十九] ᄙᅡ멕이 두 안해를 취하니 첫째의 일홈은 아다요 둘째의 일홈은 질라더라. [十九/二十] 아다가 야벨을 낳으니 그는 천막(天幕) 속에 살며 목축(牧畜)하는 자의 아비(元祖[원조])가 되었으며 [二十/廿一] 그 동생의 일홈은 유발이니 거문고와 퉁소 다투는 자(古代鉉[고대현] 管樂器[관악기]을 使用演奏[사용연주]함을 意味[의미]함)의 아비가 되니라. [廿一/廿二] 질라도 또한 두발 카인을 낳으니 구리와 철(銅鐵)의 온갖 날카로운 쟁기 맨드는 야장이였고 두발카인의 누이는 나아마더라.

[廿二/廿三] ᄙᅡ멕이 그의 두 안해에게 말하기를

『아다와 질라야 내소리 들으라

ᄙᅡ멕의 안해들아 내말을 들으라

나 상하는 사람을 내가 죽였으며

나 상하는 소년을 또한 「죽였음이라」

[廿三/廿四] 카인이 원수를 七[칠]배나 갚을진대

ᄙᅡ멕은 진실로 七十七[칠십칠]배나 할 것임일세』

[廿四/廿五] 아담이 다시 그안해를 알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일홈을 쉐드라 불르니 이는 『카인이 하벨을 죽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대신 다른 씨를 내게 두심([두심]이란 原語音[원어음][ᄉᆔ드]가 [ᄉᆐ드]와 類似音[유사음]인 까닭)이라』함이라. [廿五/廿六] 쉐드에게로 또한 아들이 나니 그가 그 일홈을 에노ᄉᆔ(語義[어의] 「사람」)라 불르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이 아이웨-의 일홈을 불르기 시작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