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집을 짓는 꿈
에베소서 2장 14-22절 / 1992년 3월 2일 / 기장 총회 교육원
[회상 노트]
기장 총회 교육원의 봄 학기 개강 설교다. 당시만 해도 꽤 많은 지도력들이 교육원을 찾았다. 나는 그들을 한 띠로 묶어내고자 했다. 기장의 지도자 상을 만들고, 그들이 한 목표와 한 신앙고백으로 함께 나아가게 되기를 소망했다.
교육원을 찾는 목회자들은 대부분 도시의 민중교회나 농촌 교회 담임자들이다. 밀리고 밀려서 거기서 목회하게 된 것이리라는 예단을 나는 거부했다. 그것 또한 그의 신앙고백이요 기장에서 배운 신학의 결과라고 우기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도 현실적인 결핍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혹 후회하게 된다. 그 목회 현장을 떠날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하게 된다. 이들에게 신앙적 확신이 없다면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기장에서, 기장 교회를 목회하겠다고 결심한 순간 우리에게는 곤궁과 왜소와 결핍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능히 감내할 더 높은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사실 기장이 총회 차원으로 운영하고 있는 ‘최저생활보장제’는 한 띠를 만들고 함께 사는 동역(同役)의 큰 구상이었다. 그리고 일종의 보완책을 생각한 것이었다. 공산(共産)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할 수 있는 초대 교회의 모델을 흉내내 보고자 했던 것이다. 모든 교역자가 자기가 받은 사례비의 1/10 십일조 중 반을 총회에 낸다. 이것을 재원으로 하여, 총회가 정한 그 해의 교역자 최저 생활비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비를 받는 교역자의 사례비 차액을 보전하는 제도였다. 보람있는 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지난 1년 동안 함께 기도하고 공부했던 동역자 여러분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여러분과 더불어 공부하던 선교신학대학원 과정 23명, 여자 전도사 과정 30명은 지난 달 24일에 졸업하였다. 그중 몇 분은 여교역자 계속교육 과정에 들어와 다시 우리와 공부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1992학년도는 선교신학대학원 과정에 33명, 여자 전도사 과정에 35명, 여교역자 계속교육 과정에 17명이 입학하였다.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여러분과 더불어 함께 살아갈 1년, 혹은 2년을 우리는 설렘과 기대로 맞이하고 있다. 올해 우리 교육원이 생긴 이후 가장 많은 식구를 갖게 되었다. 교육원 식구가 약 170명에 이르게 된 것이다. 교육에 응하게 될 교회 지도자들은 여러분뿐이 아니다.
올 1년, 우리 170여 명을 기본으로 교육원 교육에 참가하게 될 믿음의 식구들은 1천 명이 넘을 것이라 예상된다. 1천 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이곳 교육원을 향하여 오고 있는 것을 당겨 상상해 보자. 오늘 이 예배의 첫 순서의 표현처럼 몰려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슴 뿌듯한 일이기도 하며 또 동시에 우리 교육원 직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여기 모인 우리는 어떻게 보면 그들 1천여 명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냥 여기 온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각각 오게 된 동기가 다르겠으나 사실 그 깊이에 있는 출발점은 하나다. 그것은 ‘소명’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불타는 마음이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에, 바른 교회, 바른 목회자, 바른 선교 요원으로 서야 하겠다는 진실이다. 이런 것이 이곳을 향한 출발점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분은 그래서 여기 몰려온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 결국 우리가 어떤 결실을 거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가? 1, 2년을 살면서 결국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집을 짓게 되기를 바란다. 주님의 몸인 하나님의 집이다. 온 세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집이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최후적인 비전이다. 구원의 완성이다.
방금 봉독한 에베소서는 물론 이방인들에게 쓴 편지다.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가 모퉁잇돌이 되고 사도와 예언자들이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집을 짓는 것이라고 이방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설혹 예전에 원수 사이였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희생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원수 관계는 완전히 해소된 것이라고 설교한다. 이제는 하나의 민족이요 한몸이라고 선포해 버린다.
우리는 원수 되었던 사람들이 모여온 것도 아니요 이방인이거나 유대인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가 진지하게 진실되게 받아야할 대목이 있다. 새삼스럽지만 또다시 거듭하여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진리가있다. 그것은 우리를 여기에 오게 하신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가 각각 맡고 있는 일이나 앞으로 감당할 과제들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각각이 아니다. 서로 통하고 연결되어 있다. 그 통함과 연결은 거대한 집, 잘 설계된 집을 연상하게 한다. 이 집의 머릿돌은 예수 그리스도다. 이 집의 기초는 사도와 예언자들이다. 이 집의 이름은 ‘하나님의 집’이요 또는 ‘평화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어떻게 이 집을 지을 것인가? 잠시 후 우리는 주님께서 베푸시는 성찬에 초청을 받게 된다. 주님께서도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을 모으시고 자신을 주신다고 선언하셨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몸을 상징하여 빵을, 피를 상징하여 포도주를 주셨던 것이다. 성찬을 받는 것은 곧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받는 것이다. 주님을 진실되게 받는다면 우리는 감히 하나님의 집을 짓는 재목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받아먹고 마신다는 것을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진실되게 주님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하는 공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공부요 그를 다시 받아먹고 마시는 공부다. 사도의 신앙이 무엇이며 예언자의 삶이 무엇인가? 그것이 곧 우리의 신앙이요 예언자의 삶이 되게 하는 공부다.
만약 우리가 진실되게 주님을 받아들인다면, 예수를 받은 우리가 그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예수에 게 바탕을 두지 않고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그를 받아들인다면 그의 눈으로 보게 된다. 그의 행동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를 깎고 다듬자. 마치 집의 건축에 소용될 재목을 깎고 다듬듯이 서로 연결될 수 있게 깎고 다듬자. 생긴 대로, 제 교리와 아집과 독선대로 독존하여 갱신과 개혁을 거부하면 집 지을 재목이 될 수 없다. 깎고 다듬자. 그것이 교육이며 훈련이며 기도다.
우리는 그럼으로써 서로 연결되게 되는 것이다. 신앙과 고백이 연결되고 삶과 행동이 연결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가 그저 나 한 사람이 조금 더 배우게 되는 데 머물지 말자. 우리의 연결이 커져서 한국 교회를 더 새롭게 하는 운동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우리는 작은 재목이라 스스로 생각할지라도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면 우리가 짓는 집이 더 커진다. 그 집은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다. 그 집의 이름은 ‘평화’다. 우리는 신앙의 동지요 개혁의 동지다. 다시 20-22절의 말씀을 듣자.
“여러분도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세운 터 위에 세워졌으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그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커져서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을 이루어 가는 것이며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건물을 이루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집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 한 부르심으로 여기 나아왔으니 우리가 서로 연결되는 꿈을 가지자. 우리의 연결이 더욱 단단해져서 점점 커지는 꿈을 가지자. 큰 집, 큰 건물을 이루는 꿈을 가지자. 그 건물이 하나님의 집이요 평화의 집이 되는 꿈을 가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