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교사에 대한 몇가지 진언
[출처]
- 『낙수』 1940년, 147-152[1]
- 『장공김재준저작전집(전5권)』 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년, 제1권, 76~78.
- 『김재준전집(전18권)』 한신대학출판부, 1992년, 제1권, 65~69.
[원문 요약]
이 글은 주일학교 교사의 막중한 책임과 그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 자질에 대해 논한 글이다. 저자는 선교사 시대 이후 교회 회원의 대부분이 주일학교 출신이라는 점에서, 교사가 기독교회의 미래 운명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직분이라고 강조한다. 일반 국민교육에 비해 훈련, 보수, 시설 면에서 턱없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지성이나 도덕을 넘어 전인격적인 영성을 전수해야 하므로 교사의 자발적 헌신과 성령의 도우심이 절실하다. 교사는 첫째로 성경의 역사, 문화 등 배경지식까지 깊이 연구해야 하고, 둘째로 아동 심리에 정통하여 그들의 눈높이에서 가르쳐야 한다. 셋째로 짧은 시간을 밀도 있게 활용하는 조각가와 같은 정교한 교수 기술을 연마해야 하며, 넷째로 토마스 아놀드의 교훈처럼 고인 물이 아닌 흐르는 생명수를 먹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학도가 되어야 한다. 요컨대 지식적 준비와 더불어 아동을 향한 애정과 기도로 헌신할 때, 교사는 즉각적인 영적 희열을 맛볼 뿐 아니라 훗날 백 배의 수확을 거두게 된다.
[원문 소개]
이 글에 있어서 主日學校[주일학교]라는 것은 幼年主日學校[유년주일학교]를 말하는 것이요 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이라면 幼年主日學校[유년주일학교] 先生[선생]을 말하는 것으로 알아두기를[2] 바란다. 大體[대체] 幼年主日學校[유년주일학교]라 하면 敎會[교회] 안에서 老熟[노숙]한 이들보다도[3] 젊은이들만이 하는 일인 줄로 알며 따라서 幼年主日學校[유년주일학교] 先生[선생]이라면 좀 엔간한 靑年[청년]이면 의례 할 수 있는 줄 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옛말 마디나 해줄 수 있으면 더 없는 資格者[자격자]인 듯이 생각하는 데가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第二世[제2세] 以後[이후]의 敎會[교회]란 것은 (宣敎師時代[선교사시대]의 敎會[교회]를 第一世[제1세] 敎會[교회]라고 한다면) 主日學校[주일학교]로부터 자라난 敎人[교인]이 그 會員[회원]의 거의 全部[전부]를 占領[점령]하고 있는 現狀[현상]으로 보아서도 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은 基督敎會[기독교회]의 未來運命[미래운동]을 左右[좌우]하는 가장 重要[중요]한 職分[직분]이라 안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그 職[직]에 있는 者[자]는 모름지기[4] 自重[자중]하여 그 要職[요직]에 萬遺漏[만유루]없기를 期[기]해야 할 것도 事實[사실]이다.
國民敎育[국가교육]의 敎師[교사]는 一定[일정]한 期間[기간]의 修鍊[수련]을 畢[필]한[5] 者[자]로써 그 特殊[특수]한 職務[직무]에 關[관]한 試驗[시험]을 通過[통과]하여야 되며 合格[합격]한 그들에게는 一定[일정]한 生活費[생활비]가 提供[제공]되어 있다. 그러나 主日學校[주일학교] 敎師[교사] 採用[채용]에 있어서는 이 모든 條件[조건]을 하나도 適用[적용]할 수 없는이만치 純然[순연]히 敎師[교사] 自身[자신]의 하나님을 向[향]한 뜨거운 愛情[애정]에 呼訴[호소]할 뿐이며 그 職務[직무]를 爲[위]한 修鍊[수련]도 敎師各自[교사각자]의 自發的[자발적] 準備[준비]에 依存[의존]할 수 밖에[6] 없는 것이다.
國民敎育[국민교육]의 敎師[교사]들은 主[주]로 知識[지식]과 道德[도덕]을 傳授[전수]하면 그 責任[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主日學校[주일학교] 敎師[교사]는 宗敎[종교]를 傳授[전수]하는 것이 그 責任[책임]이니만치 知性[지성]이나 良心[양심]에 强迫的[강박적]으로 傳授[전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靈性[영성]에 訴[소]하여 그 全人格的[전인격적] 反應[반응]을 기다릴 밖에 없는 것이며 따라서 그 事業[사업]은 더욱 어렵고 專門的[전문적] 努力[노력]을 要[요]하는 것이다.
國民敎育[국민교육]의 機關[기관]은 그 建物[건물]이나 그 目的[목적]을 達成[달성]하기에 거의 遺憾[유감]없도록 되어 있으며 敎授時間[교수시간]의 充分[충분], 敎材[교재]의 整頓[정돈] 等[등]도 거의 完全[완전]에 가깝도록 準備[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主日學校[주일학교]에 있어서는 敎會[교회] 建物[건물]이 敎室[교실]로서는 不適當[부적당]한 데가 거의 全部[전부]며 敎科書[교과서]도 準備[준비]되지 못한 工課[공과]요 가르치는 時間[시간]이라곤 一週日[일주일] 한번, 그것도 다만 二十分[20분] 內外[이내]의 것에 不過[불과]하다. 그러면 國民敎育[국민교육] 보다도 數倍[수배]나 더 어려운 事業[사업]을 國民敎育[국민교육] 機關[기관]보다 比較[비교]도 안될만치 不備[불비]한 現實[현실]에서 進行[진행]시키려는 主日學校[주일학교]가 能[능]히 그 本來[본래]의 目的[목적]을 達成[달성]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聖靈[성령]의 間斷[간단]없는 協助[협조]를 懇願[간원]함과 同時[동시]에 主日學校[주일학교] 敎師[교사] 各自[각자]의 일대[7] 奮發[분발]을 促[촉]하는 所以然[소이연][8]을 發見[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難局[난국]에 處[처]한 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들에게 무엇을 要求[요구]하는가?
첫재로 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은 무엇보다도 聖經[성경]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이다. 다만 工課[공과]에 나타난 斷片的[단편적] 聖經句節[성경구절]을 읽음으로[9] 足[족]한 것이 아니다. 聖經[성경]은 歷史[역사]이기도 하며 文學[문학]이기도 하며 道德訓[도덕훈]이기도 하며 영적 지혜의 집성이기도[10] 하다.[11] 이 모든 것 보다도 성경은[12] 靈感[영감]의 書[서]며 啓示[계시]의 記錄[기록]이다.
그 뿌리와 줄기와 잎과 열매가 形形色色[형형색색]의 時代時代[시대시대]에 그 특색을[13] 드러내었으나[14] 그 中心[중심]을 通[통]하여 全體機構[전체기구]를 살린 것은 하나님의 生命[생명]이며 中心生命[중심생명]을 聖經[성경]에서 感得[감득]한 者[자]라야 비로소 聖經[성경]을 알기 시작한 자라[15] 할 것이다. 이렇게[16] 聖經[성경]을 全體的[전체적]으로 깊이 吟味[음미]하기 爲[위]해서는 聖經[성경] 그것만 읽는 것으로는 極[극]히 不足[부족]하다. 차라리 거의 不可能[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測光(측광, 싸이드 라인)이 必要[필요]한 것이다. 聖經[성경]에 나타나는 事件[사건]이나 思想[사상]을 理解[이해]하기 爲[위]한 그 當時[당시]의 地理[지리], 諸民族[제민족]의 歷史[역사], 文化[문화], 風俗[풍속], 習慣[습관], 聖經[성경] 構成[구성]의 來歷[내력] 等[등]이 絶代必要[절대필요]한 學習題目[학습제목]이 되는 것이다. 多幸[다행]히 이런 學習[학습]을 爲[위]하여 日獨書院[일독서원] 發行[발행]의 基督敎敎程叢書[기독교교정총서], 基督[기독]モノグラブ叢書[총서][17], ロゴラ書院[서원][18] 刊行[간행]의 基督敎思想叢書[기독교사상총서] 等[등]이 있어서 平信徒[평신도]의 聖經硏究[성경연구]에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와 同時[동시]에 略註聖經[약주성경]을 읽고 그 趣味[취미]와 學習程度[학습정도]를 따라 더 仔細[자세]한 註釋[주석]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로, 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은 兒童[아동]에 對[대]하여 알아야[19] 되겠다는 것이다. 以前[이전]에는[20] 兒童[아동]과 成人[성인]과의 差異[차이]는 그것이 量[양]의 差異[차이]요 質[질]의 差異[차이]가 아닌줄 알았었다. 兒童[아동]이란 것은 成人[성인]보다 몸집이 적고 智力[지력]이 不足[부족]하고 思考力[사고력]이 未及[미급]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우리는 兒童[아동]에 對[대]하여 좀더 많은 知識[지식]을 가지고 있다. 兒童[아동]에게는 兒童[아동]의 獨特[독특]한 世界[세계]가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兒童[아동]의 世界[세계]에서 어떻게[21] 생각하며 어떻게[21] 느끼며 어떻게[21] 行動[행동]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兒童[아동]의 世界[세계]에서 理解[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가르쳐야만 한다. 그렇지않으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 部門[부문]에 있어서도 兒童心理[아동심리]에 關[관]한 著書[저서]가 不少[불소]히 刊行[간행]되어 있음으로 硏究[연구]의 門[문]은 充分[충분]히 열려있는 줄로 생각한다.
셋째로, 가르치는 技術[기술]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敎師[교사]도 다른 職場[직장]의 部門[부문]에서와 같이 한 技術者[기술자]다. 많이 아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問題[문제]다. 아주 豊富[풍부]한 學識[학식]을 가지고도 極[극]히 愚劣[우열]한 敎師[교사]밖에 못되는 이가 많은 것이니 이는 그에게 가르치는 技術[기술]이 缺如[결여]한 까닭이다. 敎授時間[교수시간]은 敎師[교사]로서의 가질 수 있는 最大[최대]의 機會[기회]이다. 學生[학생]들 앞에 서는 그 時間[시간]은 敎師[교사]로서의 成敗[성패]를 決[결]하는 瞬間[순간]이다.
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의 온갓 準備[준비]와 祈禱[기도]와 敎養[교양]은 또한 이 學生[학생]들 앞에서는 二十分[20분]이나 三十分[30분]을 爲[위]하여 存在[존재]한 것이다. 이 時間[시간]에 學生[학생]들의 心靈[심령]에 거륵한 感激[감격]과 決意[결의]를 일으키느냐[22] 그렇잖으면 그저 平凡[평범] 無爲[무위]하게 忘却[망각]의 世界[세계]에 밀려가 버리고[23] 마느냐가 決定[결정]되는 것이다. 내가 敎授[교수]의 熟練工[숙련공]으로서 내 敎材[교재]를 내 學生[학생]들에게 어떻게[21] 하면 가장 有效適切[유효적절]하게 傳授[전수]할 수 있을까를 그 用語[용어], 順序[순서], 時間[시간], 重點[중점] 等[등]에 關[관]하여 마치 彫刻師[조각사]가 그 끌을 움직이듯이 遺漏[유루]없이 熟考熟練[숙고숙련]해야[24] 할 것이다. 이에 對[대]해서는 敎授法[교수법]에 關[관]한 書籍[서적]을 읽는 것도 必要[필요]하지만 各自[각자]의 識見[식견]과 經驗[경험]과 不斷[부단]의 努力[노력]에 依[의]한 熟達[숙달]이 더욱 必要[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出鱈目[출설목]」 - 되는대로 時間[시간]이나 채워버리면 그만이란 생각을 버리고 一絲不亂[일사불란]의 計劃下[계획하]에서 進行[진행]하려는 努力[노력]이 가장 緊重[긴중]한 것이다.
넷째로, 언제나 계속적으로[25] 「不斷[부단]」히 努力[노력]하는 學徒[학도]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이미 아는 것만으로도 그까짓[26] 아이들이야 못가르치랴! 하는 心理[심리]로 지내는 敎師[교사]는 停滯[정체] 無活力[무활력]한 敎師[교사]가 되어 아무[27] 感化力[감화력]도 없는 것이다. 工課[공과] 工課[공과]마다 참으로 「準備[준비]」해야 될 것이다. 저 有名[유명]한 敎育家[교육가] 「토마스ㆍ아놀드」[28] 博士[박사]는 죽는 그날까지 꾸준한 學徒[학도]였었다. 어느 때 누가 그에게 『一生[일생] 계속하여[29] 每日[매일] 가르치는 工課[공과]인데 무얼 그렇게 每[매]번 準備[준비]하느냐』고 물을때[30] 그는 그의 學生[학생]들이 『썩기쉬운 갇힌[31] 물에서 마시지 않고 涓涓[연연]히[32] 흐르는 샘줄기에서 마시게 하기 위함이라』[33]고 대답했다 한다. 진실로 모든 敎師[교사]된 者[자]의 頂門[정문]에 一針[일침]이라 안할 수 없는 말이다.
聖經[성경]과 聖經[성경]에 關[관]한 넓은 知識的[지식적] 背景[배경], 宗敎敎師[종교교사]로서의 不斷[부단]의 讀書[독서]와 思考[사고], 各工課[각공과]의 特別精密[특별정밀]한 準備[준비] 及[급] 그 傳授技術[전수기술]의 熟練[숙련] 等[등]은 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으로서 具備[구비]해야 할 必要[필요], 不可缺[불가결]의 要素[요소]임은 以上[이상]에 말한바이어니와 이런 知識的[지식적] 準備[준비]에 아울러 적어도 自己班[자기반] 兒童[아동]에 對[대]한 愛情[애정], 兒童[아동] 各自[각자]의 個性[개성]과 家庭環境[가정환경][34] 一切[일절]에 對[대]한 關心[관심], 그들 靈性[영성]의 生長[생장]을 爲[위]한 不斷[부단]의 祈禱[기도] 等[등]은 敎師[교사] 自身[자신]의 信仰生活[신앙생활]과 함께 또한 不可缺[불가결]의 心靈的[심령적] 修鍊[수련]이 되는 것이다.
이러케[16] 敎師[교사]로서 一週日[일주일]에 단 三十分[30분]이라도 自己[자기]의 最先[최선]을 다한 때 그는 다른 아무데에서도[35] 얻을 수 없는 滿足[만족]과 喜悅[희열]을 느낄 것이다. 『착하고 信實[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信實[신실]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36] 나와 함께[37] 즐거움을 누릴지어다』 하는 主[주]님의 칭찬은 먼 未來[미래]에서만 期待[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 即席[즉석]에서 어느 程度[정도]까지 體驗[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主日學校[주일학교] 先生[선생]! 그들의 손에서 未來[미래] 敎會[교회]의 興廢[흥폐]가 左右[좌우]되는 것임을 다시금 말하여 둔다. 그러고 그들의 硏究[연구]와 努力[노력]과 祈禱[기도]와 獻身[헌신]은 그들에게 맡겨진[38] 兒童[아동]들을 通[통]하여 或[혹]은 六十倍[60배], 或[혹]은 百倍[100배]의 收穫[수확]이 있을 것을 確信[확신]하는 바이며 따라서 그들의 榮譽[영예]가 天上天下[천상천하]에 빛날 것도 豫期[예기]하는 바이다. 一層[일층]의 「精進[정진]」을 바란다.
[핵심 키워드]
- 주일학교 교사: 유년 주일학교에서 아동들에게 종교와 영성을 전수하며, 기독교회의 미래 운명을 짊어지고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직분자이다.
- 제2세 교회: 선교사 시대(제1세 교회)가 지난 후, 주일학교 교육을 통해 자라난 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형성되는 미래 교회를 뜻한다.
- 영성의 전수: 단순한 지식이나 도덕의 전달과 달리, 학생의 지성이나 양심에 강박적으로 주입할 수 없고 전인격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는 종교 교육의 핵심이다.
- 단편적 성경구절: 교사가 성경의 전체 맥락을 무시한 채 공과에 적힌 구절만 단편적으로 읽는 행위로, 참된 성경 교육을 위해 지양해야 할 태도이다.
- 계시의 기록: 성경이 단순한 문학이나 역사를 넘어 하나님의 영감과 중심 생명이 담긴 책이라는 본질적 속성을 가리킨다.
- 측광(싸이드 라인): 성경의 입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교사가 반드시 학습해야 하는 당시의 지리, 역사, 문화, 풍속 등 주변 배경지식을 의미한다.
- 아동 심리: 성인과 양적인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아동만의 독특한 세계로, 눈높이 교육을 위해 교사가 필히 연구해야 할 분야이다.
- 교수 기술: 교사의 풍부한 지식을 실제 수업에서 가장 유효적절하게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감화를 일으키게 하는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전달 능력이다.
- 숙련공(조각사): 정해진 20~30분의 짧은 교수 시간 동안 용어, 순서, 시간 배분 등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치밀하게 계산하고 진행하는 전문적인 교사를 비유한 말이다.
- 출설목(出鱈目): 교수 계획 없이 무책임하고 무의미하게 되는대로 주일학교 시간을 때우려는 안일한 태도를 경계하는 용어이다.
- 부단한 학도: 자신이 이미 아는 지식에 안주하지 않고, 교사 스스로 매일 새롭게 성경과 지식을 탐구하고 훈련하는 평생 학습자의 자세를 뜻한다.
- 토마스 아놀드: 평생토록 멈추지 않고 연구하여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지식을 가르쳐야 함을 주창한 유명한 교육학자이다.
- 연연히 흐르는 샘줄기: 썩기 쉬운 '갇힌 물(고인 지식)'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매일 새롭게 갱신되어 학생들에게 생명력을 주는 교사의 지식을 비유한다.
- 심령적 수련: 성경에 대한 지식적 준비와 별개로, 아동에 대한 애정과 개인적 환경에 대한 관심, 그리고 지속적인 기도를 뜻하는 내면적 신앙 훈련이다.
- 즉석의 희열: 일주일에 단 30분이라도 교사가 최선을 다해 헌신했을 때 먼 미래가 아니라 교육 현장 당장에서 즉각적으로 느끼게 되는 영적 만족감이다.
[핵심 문장]
- “主日學校 先生은 基督教會의 未來運命을 左右하는 가장 重要한 職分이라 안할 수 없는 것이며...”
의미: 주일학교 교사가 단순히 아이들을 돌보는 부차적 역할이 아니라, 교회의 다음 세대 존립과 부흥을 직접적으로 결정짓는 핵심 존재임을 강조하는 문장이다. - “主日學校 教師 採用에 있어서는 이 모든 條件을 하나도 適用할 수 없는이만치 純然히 敎師 自身의 하나님을 向한 뜨거운 愛情에 呼訴할 뿐이며...”
의미: 일반 국민교육 교사와 달리 경제적 보상이나 체계적 훈련 시스템이 전무한 상황에서 오직 교사의 개인적 신앙과 헌신에만 기대야 하는 열악한 현실을 묘사한다. - “主日學校 教師는 宗敎를 傳授하는 것이 그 責任이니만치 知性이나 良心에 强迫的으로 傳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의미: 신앙 교육은 주입식 지식 전달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영성에 호소하여 전인격적인 변화를 끌어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임을 설명한다. - “이 모든 것 보다도 성경은 靈感의 書며 啓示의 記錄이다.”
의미: 교사가 성경을 가르칠 때 그것이 역사적, 문학적 텍스트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임을 최우선으로 인지해야 함을 뜻한다. - “中心生命을 聖經에서 感得한 者라야 비로소 聖經을 알기 시작한 자라 할 것이다.”
의미: 성경의 파편적인 구절 암기보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생명력과 진리를 깊이 깨닫는 것이 성경 교사의 진정한 출발점임을 시사한다. - “거기에는 測光(측광, 싸이드 라인)이 必要한 것이다.”
의미: 텍스트에만 매몰되지 않고 성경이 쓰여진 당시의 지리, 문화, 역사 등 입체적인 주변 배경지식을 넓게 학습해야 정확한 이해가 가능함을 강조한다. - “兒童에게는 兒童의 獨特한 世界가 있음을 알았다.”
의미: 아동이 단순히 미성숙한 어른이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인지 구조와 감성을 지녔으므로, 교사는 아동 심리를 깊이 탐구해야 함을 역설한다. - “아주 豊富한 學識을 가지고도 極히 愚劣한 敎師밖에 못되는 이가 많은 것이니 이는 그에게 가르치는 技術이 缺如한 까닭이다.”
의미: 교사 본인의 학문적 지식 수준과 학생을 잘 가르치는 능력은 비례하지 않으므로 효과적인 교수법 연마가 필수적임을 꼬집는 문장이다. - “學生들 앞에 서는 그 時間은 教師로서의 成敗를 決하는 瞬間이다.”
의미: 주중에 교사가 쌓은 모든 영성과 준비가 20~30분이라는 매우 짧은 교육 시간에 집약되어 나타나므로 그 순간의 긴장감과 중요성을 경각시킨다. - “마치 彫刻師가 그 끝을 움직이듯이 遺漏없이 熟考熟練해야 할 것이다.”
의미: 교사가 단어 하나, 순서, 시간 배분 등을 마치 조각가가 정밀하게 작품을 세공하듯 치밀하고 철저하게 계획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 “「出鱈目」 - 되는대로 時間이나 채워버리면 그만이란 생각을 버리고 一絲不亂의 計劃下에서 進行하려는 努力이 가장 緊重한 것이다.”
의미: 사전 계획 없이 무책임하게 주일학교 수업 시간을 때우는 태도를 질타하며, 철저하게 준비된 계획표에 따른 진행을 촉구한다. - “내가 이미 아는 것만으로도 그까짓 아이들이야 못가르치랴! 하는 心理로 지내는 敎師는 停滯 無活한 敎師가 되어 아무 感化도 없는 것이다.”
의미: 얄팍한 지식에 기대어 배움을 멈춘 교사는 영적 생명력을 잃고 학생들에게 어떠한 긍정적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무능한 상태가 됨을 경고한다. - “썩기 쉬운 갇힌 물에서 마시지 않고 涓涓히 흐르는 샘줄기에서 마시게 하기 위함이라.”
의미: 토마스 아놀드의 명언을 통해, 낡고 고인 지식이 아닌 교사 스스로 매일 새롭게 갱신하는 신선한 지식과 진리를 학생에게 공급해야 함을 교훈한다. - “이러케 教師로서 一週日에 단 三十分이라도 自己의 最先을 다한 때 그는 다른 아무데에서도 얻을 수 없는 滿足과 喜悅을 느낄 것이다.”
의미: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교사가 영혼을 향해 진정한 헌신을 다했을 때, 세상의 다른 일에서는 얻을 수 없는 깊은 영적 보람을 즉각 체험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 “그들의 研究와 努力과 祈禱와 獻身은 그들에게 맡겨진 兒童들을 通하여 或은 六十倍, 或은 百倍의 收穫이 있을 것을 確信하는 바이며...”
의미: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적더라도 교사의 눈물 어린 노력은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을 통해 훗날 엄청난 교회적 결실로 돌아온다는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