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6] 뿍맨 運動[운동]과 그 批判[비판]

뿍맨 운동과 그 비판

「落穗[낙수]」


[출처]

  • 『신학지남』 17권 1호, 1935. 1.
  • 『낙수』 1940년, 96-122.
  • 『장공김재준저작전집(전5권)』 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년, 제1권, 62~75.
  • 『김재준전집(전18권)』 한신대학출판부, 1992년, 제1권, 45~64.


[원문 요약]


이 글은 20세기 전반 전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프랭크 북맨(Frank Buchman)의 ‘옥스퍼드 그룹 운동(북맨 운동)’의 기원과 방법론,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종합적으로 다룬다. 북맨은 자신의 회심 체험을 바탕으로 신학적 이론이나 교리보다 삶의 실제적 변화를 강력히 주장하며 이 운동을 전개했다. 단원들은 매일 아침 ‘정사의 시간(Quiet Hour)’을 통해 신의 ‘영도(Guidance)’를 구하고, 절대 정직ㆍ순결ㆍ무사ㆍ사랑의 ‘4절대(四絶對)’를 윤리적 표준으로 삼아 죄의 공중 고백과 구체적인 배상을 실천한다. 그러나 이 운동은 우표 한 장을 사는 것까지 영도를 구하는 주관적 신비주의의 위험성, 완벽주의가 부르는 영적 교만, 신학 체계의 경시, 그리고 공중 고백이 낳는 심리적·교회적 부작용 등의 한계를 지닌다며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지식인의 심리를 꿰뚫은 신선한 전도 방식과 개인 간의 우애, 철저히 변화된 삶이라는 구체적인 회개의 열매를 맺게 한 점은 현대 교회가 겸손하게 수용하고 배워야 할 긍정적이고 실천적인 가치로 평가된다.


[원문 소개]


緖言[서언]


輓近[만근] 基督敎界[기독교계]에 있어서 世界的[세계적]으로 그 感化[감화]를 미친 問題[문제]의 二大[2대] 運動[운동]이 있으니 하나는 獨逸[독일]을 中心[중심]으로 한 칼 빠르트[1]의 신학운동이오 하나는 영미(英美)를[2] 중심으로 한 푸랭크ㆍ뿍맨[3]의 所謂[소위][4] 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이 그것이다. 世界[세계]의 基督敎界[기독교계]가 沈滯[침체]한지 오래니만치 이 運動[운동]들은 萬人[만인]의 期待[기대] 가운데 急速[급속]한 發展[발전]을 보이고 있다. 빠르트의 神學運動[신학운동] 같은 것은 우리 朝鮮[조선] 같이 比較的[비교적] 單純[단순]하고 統制[통제]된 正統神學[정통신학]을 가지고 있는 敎會[교회]에서는 別[별]로 物論[물론]에 올릴 必要[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所謂[소위] 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에 있어서는 이것이 實際[실제] 信者生活[신자생활]에 새 方面[방면]을 展開[전개]시키는 것이니만치 捨短取長[사단취장]하여서 他山[타산]의 石[석]을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意味[의미]에서 그 大略[대략]의 輪廓[윤곽]을 紹介[소개]함과 同時[동시]에 그 後[후]의 發展相[발전상]을 다시 深査批判[심사비판]하여서 實際[실제] 牧會[목회]의 參考[참고]에 供[공]코저 하는 바이다.


命名[명명]


이 運動[운동]은 英國[영국]에서는 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5]이라 하고 美國[미국]에서는[6] 뿍맨主義[주의] 或[혹] 初代基督信徒友愛團[초대기독교신도우애단, First Century Christian Fellow-ship]이라 부른다. 距今[거금] 百年前[백년전]에 키불[7] 뉴-맨[8] 等[등]의 宗敎的[종교적] 巨人[거인]이 輩出[배출]하여 옥스포-드 大學[대학]을 中心[중심]으로 所謂[소위] 「옥스포-드 運動[운동]」이란 偉大[위대]한 宗敎復興運動[종교부흥운동]을 이르킨 일이 있음은 우리의 익히 아는 바이다. 그後[후] 百年[백년]을 지낸 오늘 宗敎[종교]의 靈驗[영험]이 여이고 敎會[교회]는 자못 生氣[생기]를 잃은 感[감]이 있어 民心[민심]은 다시 心靈[심령]의 飢渴[기갈]을 느끼자 自然[자연]히 저 有名[유명]한 宗敎運動[종교운동]의 發祥地[발상지]인 옥스포-드를 쳐다보며 그 盤石[반석]에서 샘물 솟아 흐르기를 期待[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 마침 美國人[미국인][9] 뿍맨이 歷史[역사]깊은 大學[대학]에 와서 生新[생신]한 氣分[기분]을 가지고 學生[학생], 敎授[교수] 其他[기타] 上流社會[상류사회]의 人士[인사]들에게[10] 偉大[위대]한 信仰的[신앙적] 感化[감화]를 끼처 그 結果[결과]로 이 運動[운동]이 南[남]아프리카 캐나다 等地[등지]에까지 퍼졌기 때문에 남다른 期待[기대]를 가지고 이 大學[대학]을 쳐다보던 英人[영인]들은 이에 百年前[백년전]의 옥스포-드 運動[운동]을 聯想[연상]하며 이 運動[운동]을 옥스포-드 그룹 運動[운동]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運動[운동]의 淵源[연원]을 歷史的[역사적]으로 正確[정확]히 따진다면 美國人[미국인][11] 뿍맨이 英國[영국]의 옥스포-드 大學[대학]에 가서 功[공]을 세운 것이오 옥스포-드 大學[대학] 自體[자체]가 이 運動[운동] 發祥地[발상지]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이 運動[운동]을 「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이라 이름하는 이보다는 뿍맨이즘(뿍맨主義[주의])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妥當[타당]할 것이다.


뿍맨의 宗敎經驗[종교경험]


뿍맨의 主義[주의], 或[혹] 뿍맨 運動[운동]이란 것은 曾前[증전]에 美國[미국][12] 펜실베니아洲[주] 루터宗派[종파] 牧師[목사]로도 있었고 또 一時[일시]는 基督敎靑年會[기독교청년회] 總務[총무]로도 勤務[근무]하던 푸랭크ㆍ뿍맨[Rev. Frank Buchman]이란 이의 個人的[개인적] 宗敎經驗[종교경험]을 通[통]하여 誕生[탄생]하였고 또 發展[발전]한 것이니만치 우리는 于先[우선] 푸랭크ㆍ뿍맨 自身[자신]의 信仰體驗[신앙체험]을 살필 必要[필요]가 있다. 뿍맨은 極[극]히 平凡[평범]한 사람으로 어느 方面[방면]으로 보던지 아주 特出[특출]하다고 할 點[점]은 없는 人物[인물]이다. 그는 어려서 幼兒洗禮[유아세례]를 받고 基督敎家庭[기독교가정]에서 자라나 成年[성년]에 達[달]하매 例[예]에 따라 堅信禮[견신례]를 받은 順調[순조]롭고도 平凡[평범]한 信仰生活[신앙생활]을 이어 왔었다. 다만 그가 敎役者[교역자] 되기로 작정하고[13] 준비하는[14] 동안 좀 남달리 有名[유명]한 敎役者[교역자] 되려는 壯圖[장도]가 있었던 것만은 事實[사실]이다. 豫期[예기]하는[15] 바가 크니만치 그에 對[대]한 自己[자기]의 不適任[부적임]을 痛感[통감]하며 스스로[16] 煩悶[번민]한 적이 또한 많았던 것은 勿論[물론]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同窓[동창] 某[모]가 그를 評[평]하여 利己的[이기적] 野心家[야심가]라고 公公然[공공연]하게 攻擊[공격]한 일이 있었다. 이때 그는 분然[연]히[17] 일어나 내가 實生活[실생활]로서 이를 反證[반증]하여 그를 부끄럽게 하겠다 하고 그때부터 깊이 決心[결심]한 바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남들이 다 싫어 버린 第一[제일] 어려운 敎會[교회]를 맡아보게 된 것이다. 그를 청빙한 교회의 請聘書[청빙서]는 자못 奇拔[기발]한 것이어서 『俸給問題[봉급문제]는 一切[일절] 未定[미정]입니다』 하는 文句[문구]가 明記[명기]되어 있었다. 建物[건물]도 없는 敎會[교회]로서 獻金額[헌금액]은 銅錢[동전]이 大部分[대부분] 總額[총액] 十七弗[17불] 넘는 때가 없었으니 「俸給問題未定[봉급문제미정]」은 率直[솔직]한 告白[고백]임에 틀림 없었다. 그러나 뿍맨은 平素[평소]의 決定[결정]대로 信仰[신앙]으로의 冒險[모험]을 試[시]하여 自己[자기]의 非利己的[비이기적] 生活[생활]을 實現[실현]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意味[의미]에서 躊躇[주저]없이 이 敎會[교회]의 請聘[청빙]을 受諾[수락]하였다. 그는 아무데도 곁눈 팔지 않고 熱心[열심]을 품어 敎會[교회]를 섬기었다. 그러는 中[중]에 누가 自己[자기]의 新築[신축]한 거릿집 한 채를 敎會[교회] 建物[건물]로 提供[제공]하였으므로 그는 이 집을 總本營[총본영] 삼아 家庭訪問[가정방문]과 個人傳道[개인전도]에 全力[전력]을 다하였다. 이 貧弱[빈약]한 敎會[교회]는 날로 자라 얼마 後[후]에는 「善[선]한 牧者[목자]의 敎會[교회]」라는 稱號[칭호]를 듣는 有數[유수]한 大敎會[대교회]로 發展[발전]되었다. 그는 이에 敎會[교회]의 附屬事業[부속사업]을 擴張[확장]시켜 一種[일종]의 靑年寄宿舍[청년기숙사]를 경영하였는데 이것이 널리 퍼져 靑年寄宿舍組合[청년기숙사조합]까지 成立[성립]되고 나중에는 純基督敎的[순기독교적] 社會舘[사회관]이 確立[확립]됨에 이르렀다. 그 동안 그는 이 靑年[청년]들과 同居同宿[동거동숙]할 期會[기회]를 많이 가져 여기서 靑年[청년]과 壯年[장년]을 取扱[취급]하는 妙方[묘방]을 얻었다. 그러나 이렇게 事業[사업]이 擴張[확장]됨에 따라 그 經營[경영]과 統制[통제]가 또한 複雜多端[복잡다단]하게 되었음으로 이를 爲[위]하여 敎役者[교역자] 및 平信徒[평신도]로[18] 組織[조직]된 委員會[위원회]가 생기게 되어 經營方法[경영방법] 一切[일절]은 온통[19] 委員會[위원회]의 손에 옮겨지게 되었다. 五年間[5년간] 이렇게 經營[경영]해 오는 中[중] 한번은 豫算問題[예산문제]로 事業家側[실업가측]과 뿍맨과 意見[의견]이 相衝[상충]되여 結局[결국] 事業家側[사업가측] 委員[위원]의 命令[명령]에 絶對[절대] 順服[순복]하지 않으면 안될 形勢[형세]에 이르렀다. 뿍맨은 이 無理[무리]한 壓迫[압박]을 不肯[불긍]하여 斷然[단연]히 辭任[사임]하고 一種[일종]의 怨恨[원한]을 품은 채 放浪[방랑]의 生活[생활]로 옮기었다. 그는 歐羅巴[구라파] 各地[각지]를 巡遊[순유]하고 英國[영국]으로 돌아와 「켙윅」에 가서 一小敎會會集[일소교회회집]에 參席[참석]하였다. 그의 마음 가운데는 아직까지도 울분과 怨恨[원한]이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적은 敎會[교회]에 들어가 앉아있는 동안 그는 그의 心靈[심령]을 一變[일변]시키는 偉大[위대]한 信仰[신앙]의 體驗[체험]을 맛보게 된 것이다. 이제 뿍맨 自身[자신]의 經驗談[경험담]을 그대로 紹介[소개]하려 한다. 『작은[20] 村敎會[촌교회], 午後[오후]의 特別[특별] 集會[집회]였다. 그 集會[집회]에서 이야기하는 이는 한 無名[무명]의 婦人[부인]! 거기에는 雄辯術[웅변술]도 說敎學[설교학]도 없었다. 다만 單純[단순]하고 眞摯[진지]한 座談式[좌담식] 이야기였으며 聽衆[청중]은 나(뿍맨)까지 넣어서 十七名[17명]이었다. 그 婦人[부인]은 그리스도의 十字架[십자가]에 對[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이때부터 알고 있던 敎理[교리], 우리 敎會[교회]가 다 믿고 나도 늘 배워 온 敎理[교리]였다. 그러나 이것이 이날 나에게 한 偉大[위대]한 事實[사실]로 化[화]하여졌다. 나는 이 작은[21] 敎會[교회]에 들어갈 때 分裂[분열]된 心理[심리], 傲慢[오만], 利己[이기], 惡意[악의]를 가득 품고 있었다. 말하자면 基督敎[기독교] 敎職者[교직자]로서의 資格喪失者[자격상실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날 이 婦人[부인]의 單純[단순]한 談話[담화]는 나에게 十字架[십자가]를 事實[사실]로 나타내 보였다. 나는 忽然[홀연]히 十字架[십자가]에 목박힌[22] 이의 痛烈[통렬]한[23] 心魂[심혼]에 그대로 부닥치는 幻像[환상]을 보았다. 쳐다보는 主[주]의 낯에는 無限[무한]한 苦痛[고통]이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큰 深淵[심연]이 主[주]와 나 自身[자신]과의 사이에 가로 막혀 있음을 깨달았다. 幻像[환상]은 그 뿐이었다. 그러나 이때 나는 心神[심신]에 一種[일종]의 震動[진동]을 느꼈으며 强烈[강렬]한 生命[생명]의 波濤[파도]가 突然[돌연]히 내 머리에 뒤덮이는 것 같았으며 얼마 後[후]에는 眩惑的[현혹적]인 偉大[위대]한 靈的[영적] 振興感[진흥감]이 全身[전신]에 充滿[충만]하였다. 이제는 意志分裂[의지분열]의 感[감]도, 打算[타산], 論爭[논쟁]의 念[념]도, 抑鬱無情[억울무정]의 恨[한]도 雲散霧消[운산무소]되고 말았다. 그 瞬間[순간] 나에게는 全部[전부]를 받아들이려는 決心[결심]과 함께 强烈[강렬]한 感情[감정]의 물결이 지금껏 격리[24]되었던 靈的[영적] 生命[생명]의 바다로부터 내 마음 가운데로 波濤[파도]쳐 들어옴을 느꼈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 있는 間隙[간극]을 채워[25] 그 結果[결과]로 새 힘이 넘치는 새 生活[생활]을 맛보게 되었씀으로 나는 이 經驗[경험]을 어서 速[속]히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26] 慾望[욕망]에 불타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곧 이때껏 내가 惡意[악의]를 품고 있던 美國[미국]의[27] 委員[위원] 六人[6인]에게 편지로 이 經驗[경험]을 알리는 同時[동시]에 十字架[십자가] 아래에 선 나는 내 罪[죄] 밖에 다른 것 생각할 수 없음을 告白[고백]하였다. 편지마다 「榮光[영광]의 主[주]님 十字架[십자가]를 보면은」 云云[운운]의 아이작ㆍ왓즈의 詩句[시구]를 쓰고 그 아래다가 「나는 當身[당신]께 대하여 惡意[악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지금 나는 悔改[회개]합니다. 용서해[28] 주십시오. 그만 그칩니다. 年[년] 月[월] 日[일] 푸랭크 敬具[경구]」라 하였다. 이 편지에 對[대]하여 아무에게도 回答[회답]은 안왔었다. 그러나 後[후]에 알아본 바에 依[의]하면 그들은 이 편지를 읽고 많은 感銘[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後[후]에 나는 美國[미국]에[29] 돌아와서 聖誕節[성탄절] 때에 길가에서 생각지않은 中[중]에 그때 나를 第一[제일] 못견디게 굴던 번대머리 委員[위원]을 만났다. 나는 반갑게 가장 自然[자연]스럽게 「메리 크리쓰마쓰」하고 人事[인사]하였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땅에서 무슨 떨어뜨린 것이나 찾는 양을 하더니 반갑게 人事[인사]를 하고 내 마음 가운데에 조금도[30] 꾸부러진 생각이 없음을 事實[사실]로 알아주었다.』


뿍맨 運動[운동]의 發展[발전]


뿍맨은 나이보다는 퍽 젊어 보이는 中年[중년]의 快男兒[쾌남아]로 키는 훨씬 크면서도 무게 있어 보이는 人物[인물]이다. 머리는 언제나 말끔하게[31] 깎고 말숙하게 면도하고 眼鏡[안경] 쓰고 衣服凡節[의복범절]도 티하나[32] 붙지 않게 한 淸爽快活[청상쾌활]한 現代的[현대적] 美國人[미국인]의[33] 風貌[풍모]를 그대로 나타내는 사람이다. 언제나 快活[쾌활]하여 陰鬱[음울]한 氣分[기분]이 없으며 말소리는 낮으나 힘있고 特[특]히 俗語[속어]를 섞어 말할 때에 友情[우정]과 喜悅[희열]에 넘침을 느끼게 한다. 그는 自己[자기]의 經驗[경험]을 나누려는[34] 熱情[열정]을 품고 靈導[영도]를 받는대로 사람들에게[35] 體驗談[체험담]을 이야기 하였는데 거기에 큰 感化[감화]가 있어 듣는 사람마다 새 마음을 가지게 되었었다. 聖靈[성령]이 自己[자기]를 通[통]하여 막힘없이 役事[역사]하심을 깨달은 그는 곧 이에 使命[사명]을 느끼고 일하러 나섰다. 1915년으로 1919년까지에 그는 印度[인도]와 極東[극동]으로 巡廻[순회]하면서 이 證言運動[증언운동]을 試[시]하여 成果[성과]를 얻고 또 이 運動[운동]의 諸方式[제방식]을 組織的[조직적]으로 硏究陳述[연구진술]하였다. 1920年[년]과 1921年[년]에 英國[영국] 켐부릿지와 옥쓰포-드 兩[양] 大學[대학]에서 經驗[경험]을 나누는[36] 運動[운동]을 試[시]하였다. 이제 當時[당시] 이-튼 中學[중학] 敎師[교사]로 있던 (지금은 스컷트랜드의[37] 그룹 運動[운동] 指導者[지도자]) 하밀톤 氏[씨]의 參觀實話[참관실화]를 紹介[소개]하려 한다. 『우리는 二週日[2주일]에 한번씩 開催[개최]하는 哲學集會[철학집회]에 이 켐부릿지에 온 美國[미국][38] 敎授[교수]를 招待[초대]하였다. 우리는 처음은 몹시 窮寒[궁한]한[39] 氣分[기분]에 눌리어짐을 느끼었다. 哲學討論[철학토론]이니 만치 다들 몹시 꼬장꼬장한 낯으로 理論[이론]캐기에 눈을 붉히고 있었다. 밤 十一時[11시]가 되었다. 푸랭크는 그때까지 아무말 없이 앉아있었다. 그때 좌중은[40] 프랭크에게 一座[일좌]의 談話[담화]를 請[청]하였다. 聽衆[청중] 中[중] 九十[90]퍼센트는 豫備將校[예비장교]로 있는 學生[학생]이오 最高官[최고관]이 少佐[소좌]였다. 二十一[21], 二歲[2세]의 勇士[용사]로서 다들 有能[유능]의 士[사]였다. 그 中[중]에는 競技[경기], 短艇[단정] 등 選手[선수]로 大學[대학]에 牛耳[우이]를 잡고 있는 者[자]도 몇 사람 있었다. 主日[주일]날 敎會[교회]에 出席[출석]하는 이는 極少數[극소수], 거의 없다고 해도 過言[과언]이 아닐만치 少數[소수]였다. 이 군인들은[41] 포근한[42] 팔 椅子[의자]에 푹석 들어 앉아서 卷煙[권연]의 보드러운 煙氣[연기]로 室內[실내]의 공기를[43] 향기롭게[44] 하며 상급인으로서의[45] 점잖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랭크가 입을 열었을 때[46] 空氣[공기]는 一變[일변]하였다. 그는 우리가 여태껏 論議[논의]하던 理論[이론]의 실마리를 찾아내어[47] 이곳저곳 무늬를[48] 놓으면서 變化[변화]한 生活[생활]로 들어간 사람들의 事實談[사실담]을 이야기 하였다. 그 이야기는 抽象的[추상적] 神學的[신학적]인 것이 아니요 우리와 꼭 같은 人生[인생]들의 實際[실제] 變化[변화]한데 對[대]한 事實談[사실담]이기 때문에 우리의 興味[흥미]는 곧 이에 쏠리게 되였다. 그가 萬一[만일] 說敎[설교]나 向上的[향상적] 警告[경고]나 번쇄한[49] 哲學理論[철학이론]이나를[50] 말했다면 우리는 다들 鼻笑[비소]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이런 座席[좌석]에서 이런 이야기는 期待[기대] 以外[이외]의 새것, 적어도 新鮮[신선]한 것이었다. 座中[좌중]은 哲學理論[철학이론] 같은 것은 다 잊어버렸다.[51] 돌아올 때 우리는 默默[묵묵]한 가운데 各其[각기] 自己[자기]를 살피어 「그 사람 너 어떻게 생각하니?」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거기 疑問符[의문부]를 붙혀두고[52] 그쳐[53] 버리기에는 너무나 깊은 感銘[감명]을 받았다. 그 中[중] 第一[제일] 默重[묵중]한 親舊[친구]가 푸랭크를 朝飯[조반]에 請[청]하자고 하여 그대로 하였다. 우리는 그가 「兄[형]님 靈魂[성혼]은 지금 어떤 形便[형편]에 있습니까?」하고 常套的[상투적] 牧師[목사] 냄새를 피우나 하고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그런 말도 안하고 不自然[부자연]스러운 言行[언행]은 조금도 찾지 못하였다. 그는 어떤 未亡人[미망인]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 未亡人[미망인]이 그에게 對[대]하여 「下女[하녀]가 물건 훔쳐가는 건 어떻게 處置[처치]하면 좋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그의 對答[대답]은 「당신 最近[최근]의 盜賊[도적]질 하기는 언제였읍니까?」 하는 것이었다는 이야기. 우리는 異常[이상]하게 各者[각자]의 罪[죄]에 눈뜨게 되었다. 이때 켐부릿지에는 벌써 세 사람의 改心者[개심자]가 있었다. 푸랭크는 이 세 사람을 옥쓰포-드로 데려가다가 우리와 함께 週末[주말]을 지내게 하였다. 이 세 학생은 自己[자기]네의 새로운 心境[심경]을 조금도 꾸미는 것 없이 人情[인정]답고도 自然[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中[중]에 한 사람은 럭비 選手[선수]였는데 그는 옥쓰포-드의 學生[학생]들과 어깨를 끼고[54] 네모난 運動場[운동장] 周圍[주위]를 散策[산책]하며 이야기하였다. 그는 우리가 二年[2년] 동안이나 애써서 成就[성취]한 友誼[우의] 以上[이상]의 親愛[친애]와 理解[이해]를 며칠 동안에 이 옥쓰포-드 學生[학생]들과 나누게[55] 되었다. 그들이 다녀간 後[후]부터 옥쓰포-드에서는 몇 사람씩 한 덩어리 되어 運動場[운동장]을 이리저리 거닐며[56] 이 이야기만 論議[논의]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이제[57] 議論[의론]에 끄치고 말지는 않았다. 無神論者[무신론자], 不可知論者[불가지론자]들의 數人[수인]이 아주 변해버렸다. 이때부터 大學全體[대학전체]에는 一種[일종] 異常[이상]한 期待[기대]가 彌漫[미만]하게[58] 되였다. 云云[운운]』 이렇게 「風滿樓[풍만루]」 格[격]으로 靈的[영적] 飽和狀態[포화상태]에 達[달]한 이 大學[대학]에서는 「이때부터 生活改變者[생활개변자]」가 續出[속출]하며 이 學生[학생]들이 各其[각기] 흩어져 가는 곳마다 이 運動[운동]이 일어나서 數年來[수년내] 全世界的[전세계적]으로 問題[문제]된 것이다. 오늘 全世界[전세계] 大都市[대도시]치고서 이 運動[운동]이 多少[다소] 感化[감화]를 주지 않은 데가 없지마는 特[특]히 成功[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데는 南阿[남아]인데 1928年[년]에 옥쓰포-드에서 拳鬪[권투] 主將[주장]으로 있던 學生[학생]이 同志[동지] 七人[7인]과 더불어[59] 小團體[소단체]를 組織[조직]하여 가지고 主要[주요] 都市[도시]를 訪問[방문]한데서 이 運動[운동]의 感觸[감촉]을 보게 된 것이다. 그 後[후] 이 運動[운동]이 크게 發展[발전]되어서 그 結果[결과]로 人種差別[인종차별]이 第一[제일] 苛酷[가혹]한 南阿[남아]에서도 百餘[백여]의 英人[영인], 阿人[아인], 印度人[인도인], 和蘭人[화란인] 等[등]이 一齊[일제] 起立[기립]하여 主[주]안에서 아무 差別愚劣[차별우열]이 없음을 宣言[선언]하고 絶對友愛[절대우애]를 宣誓[선서]하는 等[등]의 劇的[극적] 場面[장면]까지 보게 되었다. 캐나다에는 1932年[년] 10月[월] 21日[일][60]에 몬트롤에 上陸[상륙]한 그룹의 一團[일단]으로 말미암아 이 運動[운동]이 始作[시작]되었다. 그 때의 團員[단원]들은 그야말로 齊齊[제제] 名士[명사]여서 푸랭크ㆍ뿍맨을 비롯하여 월터 윈함 卿[경, Sir Walter Winpham][61] 뜨루리로우 陸軍中將[육군중장, Vice general Drury Lowe][62] 前[전] 南阿長老敎會[남아장로교회] 總會長[총회장] 맥밀렌 牧師夫妻[목사 부처, Rev. E. Macmillan and Mrs. Macmillan][63] 실레시아의 본크래몬 氏[씨, Frank von Cramon][64] 前[전] 에딘바라의 共産主義[공산주의] 指導者[지도자] 쩨임스ㆍ와트 氏[씨, Mr. James Watt][65] 和蘭[화란]의 본 헥케렌 男爵夫人[남작부인, Baroness Lillan von Heeckeren][66] 等[등]과 옥스포-드의 男女靑年[남녀청년] 多數[다수]와 美國[미국]의[67] 男女[남녀] 等[등] 合[합] 四, 五十名[4, 50명]의 多數[다수]였다. 이때에는 벌써 이 運動[운동]이 어느 한 구석에서 되는 일이 아니오 전 世界的[전세계적]으로 큰 衝動[충동]을 준 때 이므로 캐나다 總督[총독] 以下[이하] 各新聞社[각신문사] 社會及[회사급] 敎會團體[교회단체]에서 盛大[성대]한 歡迎[환영]을 하였으며 많은 生活改變者[생활개변자]를 내어서 어떤 出版業者[출판업자]는 二十五年間[25년간] 關稅脫稅額[관세탈세액] 一萬二千弗[2만2천불]을 政府[정부]에 自白[자백] 納付[납부]한 일 其他[기타] 이 비슷한 일이 많이[68] 생기는 逸話[일화]를 남기게 되었다. 토론토日報[일보](Toronto Daily Mail)의 記事[기사]에 『三百餘名[3백여명]의 敎役者[교역자], 十數名[수십명]의 國會議員[국회의원], 二十餘名[20여명]의 第一類[제일류] 財界名士[재계명사]를 비롯하여 數千[수천]의 토론토 市民[시민]은 當夜[당야] 「킹 에드와-드」 호텔 上層集會室[상층집회실]로 雲集[운집]하였다. 터[69] 놓을 수 있는 隣室[린실]은 다 헤쳤으나 곧 立錐[입추]의 餘地[여지]가 없게 되고 길 건너便[편], 센트 쩨임스 敎堂[교당]을 열어 거기에도 瞬息間[순식간]에 門[문]어구까지 차고 넘쳤다. 그리하여 未曾有[미증유]의 大會衆[대회중]이 모여서 세班[반]에 나누어[70] 그룹員[원]들의 새 生活[생활] 찾은 單純[단순]한 이야기를 傾聽[경청]하였다. 云云[운운]』한 것을 보면 그 盛況[성황]이 어떠했음을[71]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뿍맨 運動[운동]의 內容[내용]


저들은 神學[신학]을 論[논]하지 않으며 理論[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오직 生活[생활]로 하여금 모든 것을 辨證[변증]하게 한다. 그러므로 뿍맨 運動[운동]을 正當[정당]하게 理解[이해]함에는 무엇보다도 그네들의 生活[생활]을 살필 수 밖에 他途[타도]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뿍맨主義[주의] 團圓[단원]들은 어떤 規範[규범]하에서[72] 어떤 方式[방식]의[73] 生活[생활]을[74] 하는가. 저들은 事事件件[사사건건]에 初代敎會[초대교회]를 模倣[모방]하므로 그 理想[이상]을 삼는다. 저들은 우선[75] 하나님의 뜻에 絶對服從[절대복종]하겠다는 態度[태도]로 그 生活[생활]을 始作[시작]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첫째로는 성경에 써 있는[76] 敎訓[교훈]과 우리의 生活相[생활상]을 對照[대조]해 봄으로 因[인]하여 우리 生活[생활]을 指導[지도]하시는 하나님의 大體[대체]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現代[현대]의 複雜多端[복잡다단]한 生活[생활]에 있어서는 不期[부기]의 事變[사변], 善惡[선악] 어느 것이라고도 미리 斷定[단정]할 수 없는 일, 우리의 理性[이성]으로서 判斷[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事件[사건]이 無數[무수]히 닥쳐오는 것이다. 이런 때에는 부득이[77] 하나님의 특별하신[78] 黙示[묵시]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初代敎會[초대교회]에 있어서 빌립이 광야에[79] 나아가 구스 女王[여왕]의 宦官[환관]을 만난 것이라든지 바울이 아시아 道[도]로 가지 못하고 마게도니아로 가게된 것 같은 것이 다 「特別黙示[특별묵시]」에 屬[속]한 것이다. 이 特別黙示[특별묵시]는 지금에 있어서도 하나님 앞에 自己[자기]를 아주 내어놓고 그에게 絶對[절대] 服從[복종]하려는 態度[태도]를 가진 信者[신자]에게는 조금도 例外[예외]없이 나타난다. 이것이 뿍맨團員[단원]들의 信仰[신앙]이오 또 體驗[체험]이다. 이리하여 저들은 每日[매일] 아침 또는 무슨 必要[필요]한 事件[사건]이 있을 때마다 「靜思[정사]의 時間[시간]」[Quiet hour]을 가진다. 저들은 聖經[성경]을 읽고 祈禱[기도]하고 手帖[수첩]과 鉛筆[연필]을 들고서 「靈導[영도]」(Guidance)[80]를 기다린다. 오늘 누구를 찾아볼 것인가? 무슨 일할 것인가? 이 일은 어떻게 判斷[판단]할 것인가? 等[등]에 對[대]하여 靈導[영도]를 기다려 받는대로 手帖[수첩]에 記錄[기록]해 가지고 곧 實行[실행]한다. 그러나 다만 이런 것 만에 置重[집중]한다면 結局[결국] 異敎的[이교적] 神秘主義[신비주의]의 轍[철]을 밟음에 지나지 못할 것이므로 저들은 論理的[윤리적] 要素[요소]를 高調[고조]하여 네 가지 倫理的[윤리적] 標準[표준]을 세워 가지고 自己[자기]의 良心[양심]을 點檢[점검]한다. 이 네 가지 標準[표준]이란 것은 所謂[소위] 「四絶對[4절대]」라는 것으로 「絶對正直[절대정직]」(Absolute Earnesty) 「絶對純潔[절대순결]」(Absolute Purity) 「絶對非利己[절대비이기]」(Absolute Unselfishness) 「絶對愛[절대애]」(Absolute Love)가 그것이다. 即[즉] 言思行[언사행]에 至極純眞[지극순진]하여 꿈임과 거짓이 없게 하며 性的關係[성적관계]나 金錢關係[금전관계]에 있어서 純潔無垢[순결무구]하게 하며 무슨 사업에[81] 나설 때나 운동할[82] 때 利己的[이기적] 野望[야망]을[83] 가지고 하지 말며 모든 사람, 自己[자기]의 원수까지라도 씻은 듯이 容恕[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對[대]하자는 것이다. (以上[이상] 뿍맨의 宗敎經驗[종교경험] 參照[참조])


그러면 이 標準[표준]에 비추어 보아 거리낌이 있으면 어찌할까? 이에 우리는 「罪[죄]」와 直面[직면]하게 된다. 都會[도회]의 罪[죄], 異敎徒間[이교도간]의 罪[죄], 基督敎徒間[기독교도간]의 罪[죄], 銀行[은행], 會社[사회], 工場[공장], 家庭[가정], 敎壇[교단], 大學[대학], 神學校[신학교], 가는 곳마다 罪[죄]는 그 魔手[마수]를 벌려 움켜잡고 있다. 罪[죄]는 至極狡猾[지극교활]하여 생각지 못한 틈으로 새어 들어 온다. 說敎家[설교가]는 이를 攻擊[공격]하면서 自己[자기]는 이를 征服[정복]하지 못함이 罪[죄]다. 異敎徒[이교도]는 享樂[향락]의 잔과 함께 罪[죄]를 마신다. 크리스챤은 이를 보고 苦笑[고소]하며 公公然[공공연]하게 叱責[질책]하는 것이 罪[죄]다. 罪[죄]에 對[대]하여 賢明[현명]한 忠告[충고]를 줄 수 있는 이는 極[극]히 드물다. 이를 征服[정복]하는 이 方略[방략]을 보여주는 이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寥寥[요요]하다. 罪[죄]! 「罪[죄]에서 解放[해방]되는 程度[정도]는 解放[해방]되려는 慾求[욕구]에 正比例[정비례]한다. 하나님을 思慕[사모]하는 생각이 弱[약]하기 때문에 罪[죄]의 暴君[폭군]을 모셔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萬一[만일] 全心靈[전심령]을 받들어 正義[정의]를 渴望[갈망]한다면 罪[죄]는 忽然[홀연]히 그 자취를 감출 것이다」 하고 프랭크는 말하였다. 그리하여 프랭크는 「罪[죄]를 미워하라」 「罪[죄]를 告白[고백]하라」 「罪[죄]를 버리라」하고 忠告[충고]한다. 그 中[중]에서 이 運動團圓[운동단원]들이 特[특]히 重要視[중요시]하여 힘써 實行[실행]하는 것은 「公席[공석]에서 罪[죄]를 告白[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을 實行[실행]함에는 莫大[막대]한 勇氣[용기]를 要[요]한다. 그러나 實行[실행]만 하면 罪[죄]를 이기는 데에 가장 큰 效果[효과]를 나타낸다. 于先[우선][84] 罪[죄]를 다시는 짓지 않으려는 決心[결심]이 念頭[염두]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 그것은 罪[죄]를 또 다시 짓는다면 또 다시 그 不愉快[불유쾌]한 告白[고백]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을 두려워 함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他人[타인]을 警告[경고]하는 것이 된다. 셋째로는 良心[양심]이 解放[해방]을 받고 淸潔[청결]해짐을 느끼며 平和[평화]와 喜悅[희열]을 맛보게 된다. 勿論[물론] 罪自體[죄자체]는 그리스도의 十字架[십자가]에 依[의]하여 淨潔[정결]함을 얻은 것이지마는. 이런 信仰[신앙]위에서 저들은 日常生活[일상생활] 中[중] 罪[죄]를 犯[범]한 때에는 하나님 앞에 悔改[회개]할 뿐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自白[자백]하고야 마음 놓는다. 罪[죄]를 自白[자백]할 뿐 아니라 自己[자기]의 罪過[죄과]로 말미암아 害[해]받은 相對方[상대방]에 對[대]하여 그 罪過[죄과]를 「賠償[배상]」해야 할 것을 主張[주장]한다. 罪[죄]를 容恕[용서]함은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이나 損害[손해]를 賠償[배상]하는 것은 悔改[회개]한 者[자]의 義務[의무]다. 悔改[회개]한 稅吏[세리] 사캐오가 토색한 것이 있으면 四倍[4배]로 하여 갚겠나이다 한 것이라든지 남에게 罪犯[죄범]한 것이 있으면 그 物件[물건] 代價[대가]에 五分之一[오분지일]을 더 加[가]하여 그에게 주어 賠償[배상]하라 한 民數記[민수기] 5장 6, 7절, 規例[규례]라던지가 다 이를 가르침이다. 이에 對[대]하여 프랭크는 自己[자기]의 쓰린, 그러나 기쁜 經驗[경험]을 이야기 한 것이 있다. 『中國[중국]에서도 가장 景勝[경승]의 地[지]인 揚子江岸[양자강안] 어느 谿谷[계곡]의 某[모] 中國[중국] 外交官[외교관]의 집에서 열린[85] 宗敎的[종교적] 家庭集會[가정집회]에 列席[열석]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이 景勝[경승]의 地[지]에서[86] 靈肉[영육] 아울러 喜悅[희열]과 平和[평화]에 잠겨서 이틀을 지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나는 甚[심]히 不愉快[불유쾌]해지며 「辨償[변상]」 「辨償[변상]」 「辨償[변상]」하는 생각이 소용돌이[87] 치고 있었다. 암만 이 생각을 물리치려고[88] 애써도 漸漸[점점] 더해지며 아주 못견디게 되었다. 事件[사건]은 某[모] 鐵道會社[철도회사]의 割引券[할인권] 使用[사용]에 關[관]한 것이었는데 나는 不正當[부정당]하게 特權[특권]을 獲得[획득] 使用[사용]한 것이었다. 金額[금액]을 따져가지고 辨償[변상]하려 하였으나 그 會社[회사]의 副總裁[부총재]하고는 여러번 會食[회식]까지 하고 또 尊敬[존경]받는 處地[처지]인데 그가 이것을 알면 내 面目[면목]이 무어란 말인가. 차라리 匿名[익명]의 편지와 함게 돈을 보내지 하고 편지쓰기 始作[시작]하였다. 그러나 편지 써보았자 조금도[89] 良心[양심]에 滿足[만족]이 없었다. 에라 할수 없다. 하고 赤裸裸[적나라]하게[90] 고백의[91] 편지를 써서 내 이름을 똑똑하게 署名[서명]한 다음에 小切手[소절수]와 함께 부치고야 마음이 편안하였다. 이제 이것을 이 中國[중국] 外交官[외교관]과 및 面目[면목]을 生命[생명]으로 아는 모든 中國[중국] 紳士[신사]들 앞에서 所謂[소위] 靈的[영적] 指導者[지도자]로 推仰[추앙]을 받는 내가 참아 告白[고백]할 수가 있나! 하고 얼마 躊躇[주저]하다가 主[주]의 命令[명령]인지라 結局[결국] 大勇氣[대용기]를 내여 이것을 그들 앞에 告白[고백]하였다. 告白[고백]은 그 座中[좌중]에 異樣[이양]의 感化[감화]를 일으켰다. 病[병]으로 療養[요양]왔던 某[모] 中國人[중국인]은 自己[자기]의 預金[예금] 全部[전부]를 털어내어 前[전]에 不當取得[부당취득]한 것을 淸算[청산]하고 悔改[회개]의 實蹟[실적]을 나타내었다. 中國[중국]에 와서 敎鞭[교편]잡고 있는 某[모] 瑞典婦人[서전부인]은 本國[본국]에서 僞證事件[위증사건]으로 말매암아 避身[피신]하여 이리 왔었는데 이 때에 그 關係[관계]를 全部[전부] 바로잡고 새 生活[생활]로[92] 옮기었다.[93] 그 外[외]에도 이런 實例[실례]가 數三[수삼]에 끝나는[94] 것이 아니었다. 云云[운운]』 이런 經驗[경험]으로 보아 「賠償[배상]의 實行[실행]」은 至大[지대]한 壓力[압력]을 가지고 自己[자기]와 다른 이를 그리스도에게로 밀어가는 것임을 疑心[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經路[경로]를 밟아 저들은 罪[죄]의 生活[생활]에서 떠나 새 生命[생명]의 躍動[약동]을 느끼는 새 生活[생활]노[95] 들어간다. 


이것을 저들은 「改變[개변]된 生活[생활]」(Changed Life)이라고 부른다. 「改變[개변]된 生活[생활]」 即[즉] 新生[신생]을 體驗[체험]한 사람은 혼자서만 즐길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이 事實[사실]을 나눠줄[96] 義務[의무]가 있다. 이것을 「分給[분급]」(Sharing)이라 한다. 이것은 恩惠[은혜]받은 것은 간증하는 것이니 이 團員[단원]들 事業[사업]의 가장 重要[중요]한 部分[부분]이다. 저들은 몇사람씩[97] 小旅行團[소여행단]을 組織[조직]해 가지고 聖靈[성령]의 引導[인도]하는 대로 이리 저리 이 나라 저 나라 一所不住[일소불주]의 巡禮者[순례자] 生活[생활]을 하며 가는 곳마다 私的[사적] 會談[회담] 즉 「家庭集會[가정집회]」(House Party)를 연다. 사람들은 親[친]한 동무의 집에 이야기 하러 모혀오는 氣分[기분]으로 所定[소정]의 호텔이나 私家[사가]에 모여온다. 그러면 거기서는 무슨 順序[순서]를 짜가지고 法[법]대로 莊重[장중]하게 儀式的[의식적] 禮拜[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거저 通商[통상] 때와 같이 談笑[담소] 話樂[화락]하며 團員中[단원중] 누구나 조용히 靜思[정사]의 時間[시간]을 通[통]하여 靈導[영도]를 받는대로 自己[자기]의 經驗談[경험담] 또는 다른 同志[동지]의 改變[개변]된 生活[생활]을 事實[사실] 그대로 이야기한다. 이어서 두서너 사람이 各其[각기] 같은 方式[방식]의 實驗談[실험담]을 이야기하고 무슨 묻는 것이 있으면 아주 純直率直[순직솔직]하게 友情[우정]을 가지고 彼此應答[피차응답], 거기에는 雄辯術[웅변술]로 鍊鍛[연단]한 說敎[설교]도 없고 秋毫之末[추호지말]을 갈라내는 理論[이론]도 없다. 그저[98] 터놓고[99] 座談[좌담]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自然[자연]히 異常[이상]한 感化力[감화력]이 있어 參與[참여]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대로 黙過[묵과]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그들의 「經驗[경험]나누는」[100] 方式[방식]이며 이 일을 通[통]하여 聖神[성신]은 많은 사람의 生活[생활]을 改變[개변]하는 까닭에 저들은 이런 團員[단원]들을 「生活改變者[생활개변자]」(Life Changer)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複雜[복잡]한 社會[사회]에 있어서 다만 個人[개인] 個人[개인]의 生活[생활]을 現[현] 社會道德[사회도덕]에 順應[순응]하도록 改變[개변]하므로 因[인]하여 能[능]히 全的[전적]으로 새 世紀[세기]를 齋來[재래]할[101] 수 있을까[102] 또는 以上[이상]에 말한바 「四絶對[4절대]」라는 倫理的[윤리적] 標準[표준]은 社會制度[사회제도]를 全的[전적]으로 改善[개선]하기 前[전]에는 實行[실행] 不可能[불가능]이 아닌가? 하는 疑問[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저들의 社會生活[사회생활] 規範[규범]은 무엇인가? 저들은 獨特[독특]한 社會學[사회학]이나 社會的[사회적] 計劃[계획]을 세운 것이 없다. 저들의 말에 依[의]한다면 繁榮[번영]은 人生最高[인생최고]의 價値[가치]라고 생각한다거나 貧[빈]은 例外[예외]없이 道德的[도덕적]이오 富[부]는 必然的[필연적]으로 惡[악]이란다거나 하는 現代[현대]의 二大[2대] 潮流[조류]는 둘다 基督敎的[기독교적]이 아니다. 福音[복음]에 가르친 것은 簡單[간단] 明瞭[명료]하여 어길데가[103] 없다. 即[즉] 모-든 物件[물건]은 온통[104] 다 하나님께 屬[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聖慮[성려] 聖旨[성지]에 基[기]하여 하나님의 財産[재산]을 오직 그 나라와 義[의]를 爲[위]하여 賢明[현명]히 處理[처리]할 것이다. 이것은 理論[이론]으로서는 아무[105] 새맛이 없는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實踐[실천]하는 데서 生命[생명]이 넘치는 새 맛이 난다. 우리가 다 自己[자기]의 있는 자리에서 聖旨[성지]를 體[체]받아 이것을 實踐[실천]한다면 지금까지의 煩瑣[번쇄]한[106] 社會學的[사회학적] 理論[이론] 社會的[사회적] 計劃[계획]은 말없이 成就[성취]하고 말 것이라 한다. 그러고 이 團員[단원]들은 事業[사업]을 할 때 돈 때문에 사람에게 먼저 가서[107] 請[청]드는 일을 하지 않는다. 手中[수중]에 一分錢[일분전] 없을 때에도 「信仰[신앙]과 祈禱[기도]」로 이 일을 冒險[모험]한다. 저들은 이 冒險[모험]을 해서 主[주]께 버림받은 일이 없노라고 늘 證據[증거]한다. 團員[단원]들은 또한 境遇[경우]에 따라 生活費[생활비]를[108] 나누어[109] 진다. 저들은 自己[자기]네가 一大[일대] 靈的[영적] 家族[가족]에 屬[속]한 것을 늘 意識[의식]하고 한 사람이 괴로우면 全體[전체]가 괴로움을 如實[여실]히 느끼는 까닭이다.


뿍맨 運動[운동]에 對[대]한 批判[비판]


나는 以上[이상]에서 가장 同情[동정]있는 態度[태도]로 뿍맨 運動[운동]의 全貌[전모]를 紹介[소개]한 줄 믿는다. 그러나 이 運動[운동]도 批判[비판]할 餘地[여지] 없으리만치 完全無缺[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① 우선 저들은 너무 方法論[방법론]에 치우친 點[점]이 있다. 저들의 重要團員中[중요단원중] 某[모]의 말이 「方法[방법]이 使命[사명]이요 使命[사명]이 方法[방법]이다」라고 斷言[단언]하였다. 그리하여 저들의 行[행]하는 方法[방법]이 아니고는 하나님께서 그 役事[역사]를 하시지 못할 것 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各人各色[각인각색]으로 사람은 個性[개성]이 다르다. 그러므로 主[주]께로 나아오는 길도 千千萬[천천만] 갈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큰 機械[기계]를 가지고 多量生産[다량생산]을 하시는 이가 아니다. 우리는 다 그의 手工品[수공품]이다」. 어떤 사람은 뿍맨이 닦은 길로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옛길로도[110] 올 수 있고 새 길로 혼자 허덕이며 올 수도 있는 것이다. ② 너무 主觀的[주관적]이다. 저들의 所謂[소위] 「靈導[영도]」라는 것은 勿論[물론] 可能[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靈導[영도]」는 主[주]께서 特別[특별]히 重大[중대]한 使命[사명]을 내리우실[111] 때에 나타내시는 것이오 日常生活[일상생활]의 細細[세세]한 일은 우리의 智慧[지혜]에 맡기시는 것이다. 우리의 智慧[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우리 智慧[지혜]로서 할 수 있는 일은 決[결]코 하나님께서 干涉[간섭]하시지 않으실 줄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智慧[지혜]를 聖別[성별]하여 主[주]께 바치고[112] 그 最善[최선]을 다하도록 努力[노력]할 것이다. 그러다가 아무리[113] 하여도 智慧[지혜]가 미치지[114] 않는 境遇[경우]에는 하나님의 黙示[묵시]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줄 안다. 그런데 이 그룹 사람들은 勿論[물론] 이런 信念[신념]에서 出發[출발]은 했을 것이나 事實[사실]에 있어서 너무 主觀[주관]으로 흘러간다.[115] 스노-덴(James H. Snowden)[116] 博士[박사]의 글에 보면 푸랭크는 郵票[우표] 한 장을 사도 「靈導[영도]」를 기다려서 산다고 했으니 이것이 或[혹] 酷評[혹평]일는지 모르나 그들의 所謂[소위] 「靈導[영도]」에는 이런 種類[종류]의 것이 大部分[대부분]이다. 牧師[목사]가 每日[매일] 아침 「오늘은 누구누구의 집을 訪問[방문]하오리까?」 하고 하나님께 여쭈어[117] 「靈導[영도]」를 얻은 다음에 訪問[방문]하고 「누구에게 가서는 무슨 말 하오리까?」 하고 「靈導[영도]」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主觀的[주관적]이며 그 所謂[소위] 「靈導[영도]」라는 것은 自己[자기] 投影[투영]의 誤認[오인]이 되어 結局[결국]은 하나님의 거룩한 交際[교제]를 冒瀆[모독]하는데 이르기 쉬운 것이다. 勿論[물론] 저 團員[단원]의 대部分[부분]은[118] 上類階級[상류계급]의 名士[명사]들이니만치 理智[이지]가 이미 높은 程度[정도]로 發達[발달]되었으니까 이런 危險[위험]에서 避[피]할 수도 있을 것이나 無智[무지]한 庶民[서민]에게는 至極危險[지극위험]한 方法[방법]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③ 信仰的[신앙적] 道德的[도덕적] 驕慢[교만]에 빠지기 쉽다. 正直[정직], 純潔[순결], 非利己[비이기], 愛[애]의 「四絶對[4절대]」를 그 道德的[도덕적] 標準[표준]으로 세우는 것과 그것을 참으로 所有[소유]하는 것과는 딴 問題[문제]이다. 그런데 저들은 이것을 저들이 이미 所有[소유]한 것 같이 생각하여 無意識中[무의식중]에 自慢[자만]에 빠진다. 現今[현금]에 가나다에서는 겨우 聯合[연합]된 敎會[교회]가 이 그룹 運動[운동]으로 말미암아 內的[내적] 分裂[분열]이 생겨서 적잔은 頭痛[두통]을 느끼고 있다 한다. 自己[자기]네 그룹에 들지 않으면 牧師[목사]고 長老[장로]고 할 것 없이 다 非基督敎人[비기독교인]같이 생각하며 排擊[배격]하는 例[예]가 不少[불소]하며 信仰的[신앙적] 驕慢[교만]에 빠지는 者[자]가 많다 한다. 그러므로 윌손 敎授[교수][Douglas J. Wilson][119]는 「四絶對[4절대]」만으로 不足[부족]하니 또 한가지 絶對[절대] 即[즉] 「絶對謙卑[절대겸비]」(Absolute Humility)를 더하여야 하겠다고 까지 말하였다. ④ 神學[신학]을 度外視[도외시] 함은 不健全[불건전]하다 - 저들은 敎會生長[교회생장]의 歷史[역사]를 잘못 認識[인식]하였다. 저들은 初代敎會[초대교회]와 웨슬레 復興時代[부흥시대]의 敎會[교회]만을 眼中[안중]에 두고 다른 時代[시대]의 敎會史[교회사]는 無視[무시]한다. 그러나 初代敎會[초대교회]의 潑潑[발발]한 生命[생명]을 第二[제2], 三世紀[3세기]에 輩出[배출]한 卓越[탁월]한 神學者[신학자]들이 理論的[이론적]으로 整頓[정돈]하고 擁護[옹호]하지 않았던들 그 生命[생명]이 能[능]히 자리잡힌 바를 물길을[120] 따라 흘렀을는지가 疑問[의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全的[전적]으로 公平[공평]하게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神學[신학]과 理論[이론]으로 사람을 救援[구원]하시지[121] 않는다』 한 저들의 말은 치우친 말이다. 神學[신학]은 언제나 運動[운동]의 脊髓[척수]여서 生命[생명]이 없는 것 같으나 굳게 뻗쳐[122] 全身[전신]을 지탱하는[123] 役割[역할]을 하는 것이다. 순[124] 感情[감정]만을 主唱[주창]하면 無骨虫[무골충]이 되기 쉽고 無批判的[무비판적] 神秘主義[신비주의]에 흐르기도 쉬운 것이다. 特[특]히 自己[자기]의 經驗[경험]에 置重[치중]하는 運動[운동]은 確乎[확호]한 神學體系[신학체계]를 가진 者[자]에게서만 그 健全[건전] 堅實[견실]한 效果[효과]를 期待[기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神學校[신학교] 敎授[교수] 밴ㆍ틸(Van Til)[125] 博士[박사]가 아홉가지 論點[논점]을 들어 餘地[여지]없이 이 運動[운동]을 排擊[배격]한 것도 그 主要點[주요점]이 여기 있다. ⑤ 公衆[공중] 앞에서 罪[죄]를 告白[고백]하는 것은 甚[심]히 삼갈 일이다. 이것은 어떤 때에는 德[덕]을 세우는 도움이 되나 흔히는 敎會[교회]에 큰 弊害[폐해]를 끼치는 것이다. 敎會史[교회사]에 나타난 經驗[경험]으로 볼지라도 初代敎會[초대교회]에서 이 方式[방식]을 썼었으나 차츰 建德[건덕]보다도 害[해]끼치는 일이 많으므로 主後[주후] 450年[년] 法王[법왕] 레오 一世[1세][126]는 書面[서면]으로 써서 神父[신부]의 認可[인가]를 맡은 것이 아니면 公衆[공중]앞에서 告白[고백]하지 못하게 發令[발령]하였고 그것도 갖은[127] 훼방과[128] 批評[비평]의 씨를 뿌리는 까닭에[129] 1215年[년]에는 敎會[교회]에서 公衆告白[공중고백]을 全然禁止[전연금지]하고 一年[일년]에 한번씩[130] 私的[사적] 告白[고백]을 義務的[의무적]으로 實行[실행]하게 한 것이다[131] 特[특]히 그 告白[고백]이 性的關係[성적관계]의 것인 때에는 그 弊害[폐해]가 莫大[막대]하다. 그런데 이 團員[단원]들의 告白中[고백중]에도 性的關係[성적관계]의 것이 많아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곰[132] 차마[133] 머리를 들 수 없을 만치 창피스럽게 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 푸린스톤 大學內[대학내]에서 이 運動[운동]을 指導[지도]하던 한 幹部學生[간부학생]의 證言[증언]한 바이다. 우리는 個人[개인]으로 찾아가서 잘못한 것을 謝罪[사죄]할 義務[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반듯이 公席[공석]에서 發表[발표]할 必要[필요]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懺悔[참회]의 마음으로 告白[고백]한다는 것보다 自己[자기]가 告白[고백]할 罪過[죄과] 있음을 자랑하는 態度[태도]로 뻔뻔스럽게 구는 것이랴?』


뿍맨 運動[운동]의 心理的[심리적] 技巧[기교]


뿍맨은 現代人[현대인], 特[특]히 知識階級[지식계급]의 心理[심리]를 가장 잘 捕捉[포착]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① 그는 現代[현대]의 知識層[지식층]의[134] 사람들이 뷰-스(Views - 評論[평론])보다도 뉴스(News - 消息[소식])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新聞[신문]을 읽어도 「消息欄[소식란]」부터 보고 「論說欄[논설란]」은 맨 나중에[135] 보든지 아주 안보든지 하는 것이 現代人[현대인]의 心理狀態[심리상태]다. 그러므로 뿍맨은 「說敎[설교]」를 그만두고 「實際談[실제담]」 即[즉] 消息[소식]을 傳[전]한다. ② 實際談[실제담] 中[중]에서도 特[특]히 어떤 個人[개인]의 人格[인격]에 關係[관계]된 일 듯기를 무척 좋아 하는 것이 現代人[현대인]이다. 即[즉] 私的事件[사적 사건, Personal affairs]을 좋아한다. 어디서 火災[화재][136] 났다거나 큰 물이 졌다거나 하는 消息[소식]보다도 崔某[최모] 李某[이모]의 어떤 個人的[개인적] 事件[사건]에 더욱 興味[흥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뿍맨은 李某[이모], 金某[김모], 特[특]히 全國的[전국적] 或[혹]은 全世界的[전세계적]으로 有名[유명]한 이들, 英國貴族[영국귀족]들, 敎授[교수]들, 學生[학생]이라도 옥쓰포-드 學生[학생]들의 個人的[개인적], 私生活[사생활]의 가장 깊이 감추인 데를[137] 털어내어 이야기하게 한다. ③ 「理論[이론]보다도 生活[생활]」 - 『生活[생활]을 通[통]하여 知識[지식]』에, 『네 生活[생활]로 네 信仰[신앙]을 立證[입증]하라』하는 것이 現代人[현대인]의 부르짖음이다. 그러므로 그는 될수 있는대로 理論[이론]을 避[피]하고 實生活[실생활]을 보이려 한다. 그러므로 「生活[생활] 改變者[개변자]」 「改變[개변] 生活[생활]」 等[등] 言必稱[언필칭] 生活[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④ 그는 現代[현대] 靑年[청년]들이 基督靑年[기독청년]들까지도 무슨 「論[론]」이니 무슨 「設[설]」이니 무슨 「主義[주의]」이니 하는 紙上[지상]의 空論[공론]에 실증낸 것을 보았다. 特[특]히 基督敎界[기독교계]에 있어서도 根本主義[근본주의]니 現代主義[현대주의]니 社會的[사회적] 福音[복음]이니 하고 너무들 理論[이론]에 熱中[열중]해 왔기에 이제[138] 다들 실증낸[139] 것을 그는 잘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神學[신학]을 말하지 않고 敎派[종파]를 캐지않는 代身[대신], 一種[일종] 神秘[신비]한 靈驗[영험]을 高潮[고조]한다. ⑤ 그는 現代靑年[현대청년]이 무었에든지 抑壓[억압] 當[당]하기를 싫어하며[140] 特[특]히 儀式的[의식적] 宗敎[종교]에 反感[반감] 가지는 것을 아는 同時[동시]에 탁 터놓고[141] 장난하는[142] 뿌릿지[카드 노름]나 여기서 말하면 「마작」같은[143] 노름판에 모이기를 좋아하는 줄 안다. 그러므로 그는 敎會堂[교회당]에 오라고 廣告[광고]하는 代身[대신]에 「파-티」(家庭會談[가정회담])에 오라고 한다. 오면 禮拜堂[예배당]에 온 것처럼 不自然[부자연]스럽거나 서먹서먹한 氣分[기분]이 없고 다들 이야기하고 웃고 하여 自然[자연]히 마음에 맞아서 쉽게 感動[감동]된다. ⑥ 現代[현대]의 知識層[지식층]에서는 洗鍊[세련]된 感情[감정]을 가진 까닭에 聖潔敎會式[성결교회식]으로 손벽치고[144] 뛰놀면서 群衆心理[군중심리]를 利用[이용]하여 感情[감정]을 煽動[선동]시키는[145] 데에 反感[반감]을 가지고 野俗視[야속시]하는 줄을 그는 잘 안다. 그러므로 그는 조금이라도[146] 煽動的[선동적] 演說[연설]이나 不自然[부자연]한 言行[언행]을 하지 안는다. 『고요히 흐르는 요단江[강]물에 沐浴[목욕]시키려는[147]』 것이 그의 뜻인 것 같다. ⑦ 그는 時代[시대]를 따라서는 묵은 理想[이상]을 새 말(語[어])에 담아서 새 理想[이상]을 만드는 功效[공효]를 利用[이용]하였다. 그리하여 「祈禱[기도]와 瞑想[명상]」 代身[대신]에 「靜思[정사]의 時間[시간]」, 「靈感[영감]」 代身[대신]에 「靈導[영도]」 「悔改[회개]」 代身[대신]에 「生活改變[생활개변]」 「新生[신생]」 代身[대신]에 「改變[개변]된 生活[생활]」 傳道[전도] 代身[대신]에 「分給[분급]」 「傳道者[전도자]」 代理想[대이상]이[148] 「生活[생활] 改變者[개변자]」[149] 等[등]을 써서 事實[사실]은 오래오래 묵은 理想[이상]이지마는 淸新[청신]한 맛을 가지게 한다.


이런 點[점]으로 보아 그는 智慧[지혜]있는 者[자]임을 알겠다. 바울의 所謂[소위] 「律法[율법]있는 者[자]에게는 律法[율법]있는 者[자] 같이 하고 律法[율법]없는 者[자]에게는 律法[율법]없는 者[자]같이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게 하겠다고 애썼노라는 것이 곧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스테인리ㆍ죤스[Stanley Jones][150]의 이른바 「不可避[불가피]의 事件[사건]을 福音化[복음화]하라」(Evangelize the inevitable)는 것이 또한 이것을 意味[의미]한 것이다. 캐나다 聯合敎會[연합교회] 會員[회원]이오 神經病[신경병]과 心理解剖學[심리해부학]의 專門家[전문가]인 스티븐슨(C. H. Stevenson M.D.)[151] 博士[박사]는 뿍맨 自身[자신]의 心理狀態[심리상태]를 解剖[해부]하여 그 不健全[불건전]한 部分[부분]을 여섯 가지로 指摘[지적]한 論文[논문]을 캐나다 聯合敎會[연합교회] 機關紙[기관지]인 「뉴 아우트룩」(The New Outlook)에 發表[발표]하였다. 너무 酷評[혹평]인 것 같으나 專門家[전문가]가 아닌 우리로서는 可否[가부]를 말하기 어려우므로 그만둔다. 그러나 以上[이상]에 말한 心理學的[심리학적] 技巧[기교]가 單純[단순]히 技巧[기교]에만 그친[152] 것이 아니고 潑潑[발발]한 靈的[영적] 生命[생명]이 그 技巧[기교]를 技巧[기교]인줄도 모르게 하는 데에 이 運動[운동]의 生命[생명]이 있는 것이다.[153]


뿍맨 運動[운동]의 特殊[특수]한 價値[가치]


人生[인생]의 機械化[기계화]가 날로 甚[심]해가고 末梢神經[말초신경]만 쟌뜩 銳敏[예민]해져 가는 現代人[현대인]에게 이러한 靈的[영적] 運動[운동]이 있음을 충心[심]으로[154] 感謝[감사]안할 수 없는 일이다. 이 運動[운동]의 成敗[성패]는 今後[금후]의 天國運動[천국운동]에 至大[지대]한 關係[관계]가 있을 것이므로 예수의 나라와 그 義[의]를 思慕[사모]하고 사랑하는 者[자]로서는 누구나 이 運動[운동]의 成功[성공]을 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意味[의미]에서 나는 길게[155] 紹介[소개]한 것이며 이 意味[의미]에서 또한 그 短點[단점]을 指摘[지적]한 것이다. 이제 나는 우리 敎會[교회]가 이 運動[운동]에서 特[특]히 배워야 할 點[점], 이 運動[운동] 自體[자체]의 特殊[특수]한 價値[가치]라고 볼만한 點[점]을 몇 가지 들고저 한다. ① 저들이 絶對[절대] 神意[신의]에 服從[복종]하려는 態度[태도]로 主[주] 앞에서 고요히 기다리는[156] 아츰[157] 祈禱[기도]다. 우리 敎役者[교역자]가 날마다 그날의 生活[생활]을 始作[시작]하기 전에[158] 참으로 고요히 백지와[159] 같은 심령을[160] 가지고 30분 내지[161] 한 시간[162] 主[주]의[163] 손가락이 그 위에 움직이기를[164] 기대린다면[165] 그 교역자[166], 그 敎會[교회]에는 오래지 않아서 靈的[영적] 奇蹟[기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敎役者[교역자]들의 모힘에서[167] 또한 그렇게하면 彼此[피차] 새로운 友愛[우애]가 생길 것을 疑心[의심]하지 않는다. ② 個人傳道[개인전도]와 信者間[신자간]의 友愛[우애, Fellowship]다. 우리 敎會[교회]는 점차[168] 「集會[집회]」는 있으나 「友愛[우애]」는 없어진다. 거죽으로 모이나[169] 속으로 갈라지고 입으로 말하나 行實[행실]에 나타나지 않는다. 個人接觸[개인접촉]으로 말미암은[170] 傳道[전도]의 必要[필요]는 우리 朝鮮[조선] 敎會[교회]에서 累累[누누]히 說明[설명]하는 바이므로 더 말하지 않으나 그 「技巧[기교]」에 있어서는 特[특]히 이 그룹의 方式[방식]에서 參照[참조]할 바가 많은 줄 안다. ③ 生活[생활]에 나타나는 悔改[회개]의 열매다. 生活[생활]은 信仰[신앙]의 열매다. 열매 없는 나무는 베어버릴[171] 것이다. 特[특]히 저들의 「辨償[변상]」하려는 心情[심정]은 거룩한 祝福[축복]을 받기에 不足[부족]함이 없는 열매다. 그리고 權謀術數[권모술수]를 떠난 天眞[천진]한 言行思[언행사]는 聖神[성신]의 열매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뿍맨 運動[운동]의 展望[전망]


나는 이 運動[운동]이 聖靈[성령]의 役事[역사]이심을 疑心[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以上[이상]에 指摘[지적]한 諸短點[제단점]과 不健全[불건전]한 點[점]에 늘 留意[유의]하여 反省[반성], 自警[자경]하지 않으면 얼마 아니하여 惡魔[악마]의 詭計[궤계]에 빠져서 敎會[교회]에 많은 혼단을 일으키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謙遜[겸손]」하게 自己[자기]들의 特殊[특수]한 使命[사명]에만 全力[전력]을 다하고 남을 평론하지[172] 않으며 다른 길로[173] 主[주]께 나아가는 者[자]를 억지로 끌어오려고[174] 하지 않고 어디까지든지 「敎會[교회]」를 奉仕[봉사]하려는 푸랜시스 敎團[교단]과 같은 團體[단체]가 된다면 우리 敎會[교회]는 이 運動[운동]으로 말미암아 큰 祝福[축복]을 받을 줄 믿는다. 말로는 神學[신학]을 超越[초월]하고 宗派[종파]를 超越[초월]한다 하지만 저희가 줄곧 저희의[175] 方式[방식]만을 固執[고집]하는 때에는 結局[결국] 새 宗派[종파]하나 생기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니 그렇지 않아도 分裂[분열]에 頭痛[두통] 알른 新敎派[신교파]에서 그리 祥瑞[상서]로운 일이라 볼 수 없는 것이다. 캐나다 聯合敎會[연합교회] 機關紙[기관지]인 「뉴-아우트룩」 主筆[주필] 크라이톤[W. B. Creighton][176] 博士[박사]는 最初[최초]부터 이 運動[운동]의 危險性[위험성]에 對[대]하여 警告[경고]하였으며 最近[최근]에 와서 캐나다의 各[각] 敎派[교파]에서 代表[대표] 三十名[30명]을 뽑아 特別委員會[특별위원회]를 組織[조직]해 가지고 敎理的[교리적], 倫理的[윤리적], 心理學的[심리학적], 敎會治理的[교회치리적], 四方面[4방면]으로 細密[세밀]히 調査[조사] 硏究[연구]하여 그 不健全[불건전]한 點[점]을 일일이[177] 指摘[지적]함과 同時[동시]에 그 讚賞[찬상]할 點[점]을 또한 公平[공평]하게 紹介[소개]하여 單行本[단행본]으로 發表[발표]하였다. 허나 筆者[필자]는[178] 아직 얻어 읽지 못하고 이글 쓰게 된 것을 遺憾[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要[요]컨대 우리는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判斷[판단]하는 것이 原則[원칙]임을 믿는 바 지금까지의 이 運動[운동]으로 보아 좋은 열매가 惡[악]한 열매보다 훨씬 더 많음을 事實[사실]로 認定[인정] 안할 수 없는 以上[이상], 이 運動[운동]의 發展[발전]과 完熟[완숙]을 祈願[기원]함과 同時[동시]에 나 自身[자신]의 恩惠[은혜]받은 바를 感謝[감사]안할 수 없는 것이다.


[핵심 키워드]


  • 북맨 운동(옥스포-드 그룹 운동): 프랭크 북맨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 등을 중심으로 창시하여 전 세계로 확산시킨 기독교 영적 부흥 및 도덕 갱신 운동이다.
  • 프랭크 북맨(Frank Buchman): 미국의 루터교 목사로, 십자가 환상이라는 개인적 회심 체험을 통해 이 운동의 철학과 실천 방식을 확립한 창시자이다.
  • 영도(Guidance): 일상생활과 중대한 결정 속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와 뜻을 기다려 수첩에 기록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영적 행위이다.
  • 정사의 시간(Quiet Hour): 매일 아침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영도를 받기 위해 내면을 비우고 고요히 기다리는 묵상 시간이다.
  • 4절대(四絶對): 북맨 운동이 신자들의 양심을 점검하기 위해 세운 ‘절대 정직, 절대 순결, 절대 비이기, 절대 사랑’의 네 가지 도덕적 기준이다.
  • 공중 고백: 숨겨진 죄를 모임 대중 앞에서 낱낱이 자백하여 양심의 해방을 얻으려는 실천이나, 잦은 부작용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 방식이다.
  • 배상(Restitution): 죄를 고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 자신이 타인에게 입힌 손해를 직접 찾아가 변상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이다.
  • 개변된 생활(Changed Life): 4절대의 실천과 배상을 통해 죄의 습관을 버리고 새 생명이 넘치는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상태이다.
  • 분급(Sharing): 자신이 겪은 신앙적 회심과 삶의 변화에 대한 사실적 체험담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핵심 전도 방식이다.
  • 생활 개변자(Life Changer): 분급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감화를 주고 그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성령의 통로로 쓰임받는 단원들이다.
  • 가정집회(House Party): 딱딱한 예배당이 아닌 호텔이나 개인 집에 모여 자유롭게 대화하고 간증을 나누는 이 운동 특유의 모임 방식이다.
  • 절대 겸비(Absolute Humility): 4절대를 추구하다가 영적 교만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심리학자 윌슨 교수가 추가해야 한다고 제안한 덕목이다.
  • 신학의 도외시: 구원이 신학이나 교리에 있지 않다고 주장하며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경시한 북맨 운동의 가장 불건전한 약점이다.
  • 심리적 기교: 현대인의 기호를 파악해 설교 대신 간증(뉴스)을 전하고, 딱딱한 종교어 대신 신선한 용어를 사용한 북맨의 전도 기술이다.
  • 신앙적 교만: 자신들의 운동에 동참하지 않거나 4절대를 실천하지 않는 기성 교인들을 무시하고 정죄하는 단원들의 배타적 태도이다.
  • 특별묵시: 초대교회처럼 일상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영도)가 임한다고 믿는 것으로, 종종 자기 투영의 오류를 낳았다.
  • 사적 사건(Personal affairs): 현대인들이 공적인 이론이나 뉴스보다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이나 체험 이야기에 더 쏠리는 심리적 경향성이다.
  • 방법론의 절대화: 자신들의 ‘분급’이나 ‘공중 고백’ 방식이 아니면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다고 믿는 기계적이고 편협한 태도이다.
  • 초대교회 모방: 옥스퍼드 그룹이 사사건건 기독교 초기 시대의 신앙 순수성과 방식(공중 고백 등)을 이상으로 삼아 생활에 적용하려 한 태도이다.
  • 개인 전도와 우애: 형식적인 대규모 집회를 넘어, 소그룹과 사적인 접촉을 통해 신자 간의 깊은 형제애(Fellowship)를 나누는 긍정적 측면이다.


[핵심 문장]


  • “세계의 기독교계가 침체한지 오래니만치 이 운동들은 만인의 기대 가운데 급속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의미: 당시 교회의 생명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북맨의 운동이 대중의 종교적 기갈을 채워주며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대적 배경을 설명한다.
  • “이 운동을 「옥스포드 그룹 운동」이라 이름하는 이보다는 뿍맨이즘(뿍맨주의)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의미: 옥스퍼드 대학이라는 장소적 상징성보다 프랭크 북맨 개인의 회심 체험과 지도력이 이 운동의 진정한 뿌리임을 명확히 밝히는 문장이다.
  • “나는 홀연히 십자가에 못박힌 이의 통렬한 심혼에 그대로 부닥치는 환상을 보았다.”
    의미: 북맨이 영국 촌교회에서 경험한 신비주의적 환상으로, 그가 교만과 원한을 회개하고 옥스퍼드 그룹을 창시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나타낸다.
  • “저들은 신학을 논하지 않으며 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오직 생활로 하여금 모든 것을 변증하게 한다.”
    의미: 복잡한 신학 논쟁이나 교리 공부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실천적인 삶의 변화만이 신앙을 증명할 수 있다는 이 운동의 실용주의적 본질을 보여준다.
  • “네 가지 윤리적 표준이란 것은 소위 「4절대」라는 것으로 「절대정직」 「절대순결」 「절대비이기」 「절대애」가 그것이다.”
    의미: 단원들이 매일 양심을 점검하고 영도를 분별하기 위해 세운 4가지 도덕적 완벽주의의 잣대를 제시한다.
  • “이 특별묵시는 지금에 있어서도 하나님 앞에 자기를 아주 내어놓고 그에게 절대 복종하려는 태도를 가진 신자에게는 조금도 예외 없이 나타난다.”
    의미: 성경 시대에 일어났던 신의 직접적인 지시가 현대 신자들에게도 매일 일어날 수 있다는 그들의 신비주의적 확신을 보여준다.
  • “죄에서 해방되는 정도는 해방되려는 욕구에 정비례한다.”
    의미: 인간이 전심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갈망할 때 내면의 죄악(폭군)을 몰아낼 수 있다는 북맨의 의지적 신앙관을 담고 있다.
  • “그 중에서 이 운동단원들이 특히 중요시하여 힘써 실행하는 것은 「공석에서 죄를 고백」 하는 것이다.”
    의미: 양심의 평화를 얻고 재발을 막기 위해 타인 앞에서 죄를 낱낱이 자백하는 그들의 파격적이고 논쟁적인 의식을 가리킨다.
  • “죄를 용서함은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이나 손해를 배상하는 것은 회개한 자의 의무다.”
    의미: 회개는 단순한 감정적 뉘우침을 넘어, 타인에게 끼친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현실에서 갚는 철저한 윤리적 책임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 “이것은 은혜받은 것은 간증하는 것이니 이 단원들 사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을 「분급」(Sharing)이라 한다.”
    의미: 자신이 겪은 죄로부터의 해방과 삶의 변화를 타인에게 숨김없이 나누는 행위가 이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전도 동력임을 설명한다.
  • “거기에는 웅변술로 연단한 설교도 없고 추호지말을 갈라내는 이론도 없다. 그저 탁 터놓고 좌담한다.”
    의미: 권위적이고 형식적인 전통 예배 방식에서 벗어나, 사적이고 친밀한 가정집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감화를 일으키는 특성을 묘사한다.
  • “우리의 지혜로써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하나님께서 간섭하시지 않으실 줄 믿는다.”
    의미: 사소한 일상까지 신의 묵시를 기다리는 북맨 운동의 극단성을 비판하며, 인간 이성과 상식 역시 신이 주신 선물임을 옹호하는 문장이다.
  • “정직, 순결, 비이기, 애의 「4절대」를 그 도덕적 표준으로 세우는 것과 그것을 참으로 소유하는 것과는 딴 문제이다.”
    의미: 이상적인 도덕 기준을 추구하다가 스스로 이미 완전해졌다고 착각하여 타인을 정죄하는 단원들의 영적 교만과 맹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 “하나님은 신학과 이론으로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는다 한 저들의 말은 치우친 말이다.”
    의미: 감정과 체험만을 강조하며 신학을 무시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척추와 같이 교회를 지탱하는 건강한 신학 체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 “공중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은 심히 삼갈 일이다... 흔히는 교회에 큰 폐해를 끼치는 것이다.”
    의미: 교황 레오 1세의 금지령 등 역사적 사례를 들어, 성적 범죄 등의 공개 고백이 덕을 세우기보다 타인에게 훼방과 상처의 씨앗이 됨을 경고한다.
  • “그는 현대의 지식층의 사람들이 뷰-스(평론)보다도 뉴스(소식)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의미: 사변적인 종교 이론보다 한 개인의 삶이 극적으로 변화된 실제 이야기(간증)가 지식인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는 북맨의 탁월한 심리적 통찰을 보여준다.
  • “시대에 따라서는 묵은 이상을 새 말(어)에 담아서 새 이상을 만드는 공효를 이용하였다.”
    의미: 기존의 ‘기도’나 ‘회개’ 같은 낡은 종교 용어를 ‘정사의 시간’, ‘생활개변’ 등 신선하고 현대적인 어휘로 포장하여 대중성을 확보한 기교를 뜻한다.
  • “방법이 사명이요 사명이 방법이다 라고 단언하였다.”
    의미: 옥스퍼드 그룹이 자신들의 특정한 방식(분급, 고백 등)이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방법론적 편협성과 주관주의에 갇혀 있음을 꼬집는 문장이다.
  • “절대 신의에 복종하려는 태도로 주 앞에서 고요히 기다리는 아침 기도다.”
    의미: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와 신자들이 사심을 비우고 신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구하는 북맨 운동의 영적 성찰 방식만큼은 본받아야 함을 촉구한다.
  • “좋은 열매가 악한 열매보다 훨씬 더 많음을 사실로 인정안할 수 없는 이상... 이 운동의 발전과 완숙을 기원함과 동시에...”
    의미: 논리적, 심리적 한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이 운동의 실천적 열매를 결국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결론부의 핵심 문장이다.



[각주]
1.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스위스 출신의 개혁주의 목사이자 신학자로, 20세기 기독교 신학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장 칼뱅과 더불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며, 19세기부터 이어져 온 ‘자유주의 신학’의 낙관론을 무너뜨리고 ‘신정통주의(Neo-Orthodoxy)’라는 새로운 신학적 흐름을 열었다.
2. 『신학지남』, 『낙수』에는 “英米[영미]”
3. 프랭크 북맨(Rev. Frank Nathan Daniel Buchman, 1878~1961)은 미국의 루터교 목사로, 20세기 전반에 걸쳐 전 세계적인 영적·도덕적 부흥을 이끈 기독교 지도자이다. 그는 옥스퍼드 그룹(Oxford Group)과 도덕재무장운동(Moral Re-Armament, MRA)의 창시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그의 가르침은 종교를 넘어 사회, 정치, 그리고 현대 심리 치유 프로그램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4.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基謂[기위]”
5. 옥스퍼드 그룹 운동(Oxford Group Movement)은 프랭크 북맨(Frank Buchman) 목사가 1920년대에 창시한 기독교 영적 부흥 및 도덕 갱신 운동이다. 초기에는 ‘제1세기 기독교 신앙 단체’(이 글에서는 ‘초대기독교신우애단’, First Century Christian Fellow-ship)로 불렸으나,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학생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부흥하자 ‘옥스퍼드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운동은 신앙이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삶의 실천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개인의 삶을 점검하는 엄격한 도덕적 기준으로 다음 네 가지를 강조했다. [절대 정직(Absolute Honesty), 절대 순결(Absolute Purity), 절대 무사/이타주의(Absolute Unselfishness), 절대 사랑(Absolute Love)]
6.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미국]에서는”
7. 존 키블(John Keble, 1792~1866)은 영국 성공회의 사제이자 시인, 신학자이다. 1833년, 그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행한 “국가적 배교(National Apostasy)”라는 제목의 설교가 바로 19세기 ‘옥스퍼드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는 당시 국가가 교회를 통제하려 하고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했다. 그의 신앙적 헌신을 기리기 위해 사후에 옥스퍼드 대학교 내에 ‘키블 칼리지(Keble College)’가 설립되기도 했다.
8.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은 19세기 영국 종교계에서 가장 지성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이다. 키블과 함께 옥스퍼드 운동을 이끌며,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전통과 가톨릭적 유산을 성공회 안에서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논문(Tracts)을 발표했다. 성공회 사제였으나, 자신의 신학적 탐구 끝에 1845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영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후 가톨릭 추기경이 되었으며,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가톨릭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9.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人[미국인]”
10.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人士[인사]들께”
11.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人[미국인]”
12.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미국]”
13.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作定[작정]하고”
14.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準備[준비]하는”
15.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自期[자기]하는”
16.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스사로”
17.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憤然[분연]히”
18. 『신학지남』, 『낙수』에는 “敎役者及[교역자급] 平信徒[평신도]로”
19. 『신학지남』, 『낙수』에는 “왼통”
20.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적은”
21.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적은”
22.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은 “못박힌”
23.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痛烈[통렬]한 情狀[정상]이”
24.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隔離[격리]”
25. 『신학지남』, 『낙수』에는 “채와”
26.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화주구싶다는”
27.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미국]의”
28.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容赦[용사]해”
29.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미국]에”
30. 『신학지남』, 『낙수』에는 “조곰도”
31. 『신학지남』, 『낙수』에는 “맑음하게”
32. 『신학지남』, 『낙수』에는 “틔하나”
33.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人[미국인]의”
34.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호려는”
35.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사람들께”
36.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호는”
37. 『신학지남』, 『낙수』에는 “蘇格蘭[소격란]의”
38.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미국]”
39. 『신학지남』, 『낙수』에는 “窮塞[궁색]한”
40.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座中[좌중]은”
41. 『신학지남』, 『낙수』에는 “군들은”
42. 『신학지남』, 『낙수』에는 “푹은한”
43.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空氣[공기]를”
44.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香氣[향기]롭게”
45. 『신학지남』에는 “上類人[상류인]으로서의”,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上級人[상급인]으로서의”
46. 『신학지남』, 『낙수』에는 “열 때”
47. 『신학지남』, 『낙수』에는 “자아내여”
48. 『신학지남』, 『낙수』에는 “紋[문]의를”
49.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煩瑣[번쇄]한”
50.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哲學論[철학론]이나를”
51. 『신학지남』, 『낙수』에는 “이저버렸다”
52. 『신학지남』, 『낙수』에는 “부처두고”
53. 『신학지남』, 『낙수』에는 “거저”
54. 『신학지남』, 『낙수』에는 “겼고”
55.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호게”
56. 『신학지남』, 『낙수』에는 “거니며”
57. 『신학지남』에는 “인제”, 『낙수』에는 “인저”
58.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瀰漫[미만]하게”
59. 『신학지남』, 『낙수』에는 “더부러”
60.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10월 22일”
61. 월터 윈덤 경(Sir Walter Windham, 1868~1942). 문헌의 ‘Winpham’은 Windham의 오기이다. 영국의 영웅적인 해군 장교이자 영국 초기 항공(비행) 역사의 개척자이다. 영국 왕실 통신관(King's Messenger)을 지냈으며, 세계 최초의 항공 우편 서비스를 시도한 인물로 유명하다. 노년에 북맨의 옥스퍼드 그룹 운동에 헌신하며 전 세계 순회 전도에 동행했다.
62. 시드니 드루리-로우 제독(Vice-Admiral Sidney Drury-Lowe, 1871~1945). 문헌에는 ‘육군중장’으로 번역되었으나 실제로는 영국 왕립 해군의 해군 중장(Vice-Admiral) 출신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고위 장성으로, 퇴역 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에서 일하다가 옥스퍼드 그룹 운동을 접하고 영적 각성을 경험했다. 해군 제독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삶을 간증하는 모습은 당시 캐나다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63. 에비 맥밀런 목사 부부(Rev. Ebenezer Macmillan). 남아프리카 연방 장로교회(South African Presbyterian Church)의 총회장을 지낸 스코틀랜드 출신의 저명한 성직자이다. 북맨이 192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했을 때 깊은 감명을 받고 운동에 합류하였으며, 부인이 함께 캐나다 캠페인에 동행했다.
64. 프랑크 폰 크라몬(Frank von Cramon). 옛 독일제국의 귀족 영지였던 실레시아(Silesia) 출신의 독일 귀족 가문 청년이다. 그의 어머니는 제1차 세계대전 독일 육군 중장(아우구스트 폰 크라몬)의 부인인 ‘모니 폰 크라몬(Moni von Cramon)’으로, 북맨과 매우 깊은 영적 교류를 나누며 독일 내 옥스퍼드 그룹 운동을 이끌었던 핵심 인물이었다. 프랭크는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국제 단원으로 캐나다에 동행했다.
65. 제임스 와트(James Watt).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딘바라) 지역에서 공산주의 노동운동을 이끌던 과격파 정치 지도자였다. 그러나 옥스퍼드 그룹을 만난 뒤 “계급투쟁과 혁명보다, 사람의 내면과 도덕이 먼저 변해야 진정한 사회 개혁이 가능하다”고 깨닫고 공산주의를 버린 뒤 기독교 신앙 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그의 간증은 1930년대 지식인들과 노동계에 극적인 사례로 자주 선전되었다.
66. 릴리안 폰 헤이케렌 남작부인(Baroness Lilian von Heeckeren, 1883~1982). 화란(네덜란드)의 명문 귀족 가문 출신으로, 네덜란드 왕실의 궁정 간부였던 헤이케렌 남작의 딸이다. 네덜란드 사회의 화려한 사교계 생활을 회의적으로 느끼던 중 북맨을 만나 철저한 삶의 변화를 겪었고, 이후 옥스퍼드 그룹 운동을 네덜란드와 유럽 최고위층에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67.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미국]의”
68. 『신학지남』, 『낙수』에는 “수태”
69. 『신학지남』, 『낙수』에는 “터처”
70.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호인”
71. 『신학지남』, 『낙수』에는 “盛況[성황]이였음을”
72.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規範[규범] 下[하]에서”
73. 『신학지남』, 『낙수』에는 “方式[방식]의”
74. 『신학지남』, 『낙수』에는 “生活[생활]을”
75. 『신학지남』, 『낙수』에는 “爲先[위선]”
76. 『신학지남』, 『낙수』에는 “씨여있는”
77.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不得已[부득이]”
78.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特別[특별]하신”
79.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曠野[광야]에”
80. 『신학지남』에는 “「靈導[영도]」(Guidance)”, 『낙수』에는 “「靈導[영도]」(Cuidance)”로 표기되었는데 『낙수』가 G를 C로 오기한 것이다.
81.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事業[사업]에”
82. 『신학지남』, 『낙수』에는 “運動[운동]할”
83. 『신학지남』, 『낙수』에는 “利己的[이기적] 野望[야망]을”
84. 『신학지남』, 『낙수』에는 “爲先[위선]”
85. 『신학지남』에는 “열린”, 『낙수』에는 “열닌”,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연린”
86. 『신학지남』에는 “地[지]에서”, 『낙수』에는 “地[지]의서”
87. 『신학지남』, 『낙수』에는 “소용도리”
88. 『낙수』에는 “물니치려고”
89. 『신학지남』, 『낙수』에는 “조곰도”
90.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赤裡裡[적리리]하게”
91.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告白[고백]의”
92. 『낙수』에는 “生活[생활]노”,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生活[생활]도”
93. 『낙수』에는 “옴기였다”
94.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끝이는”
95. 『낙수』에는 “生活[생활]노”
96.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화줄”
97.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몇 사람式[식]”
98. 『신학지남』, 『낙수』에는 “거저”,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그져”
99. 『신학지남』, 『낙수』에는 “터쳐놓고”
100. 『신학지남』, 『낙수』에는 “經驗[경험]난호는”
101.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齎來[재래]할”
102. 『신학지남』, 『낙수』에는 “있을가”
103. 『신학지남』, 『낙수』에는 “오낄데가”
104. 『신학지남』, 『낙수』에는 “왼통”
105. 『신학지남』, 『낙수』에는 “아모”
106. 『신학지남』, 『낙수』에는 “煩瑣[번쇄]한”
107. 『신학지남』, 『낙수』에는 “몬저 가서”
108. 『신학지남』, 『낙수』에는 “生活費[생활비]를 서로 分擔[분담]한다. 靈驗[영험]을 난호는 때와 같은 心念[심념]으로 生活費[생활비]도”
109.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호아”
110. 『신학지남』에는 “前[전]에 길로도”, 『낙수』에는 “前[전]엣 길노도”
111. 『신학지남』, 『낙수』에는 “나리우실”
112. 『신학지남』에는 “바치고”, 『낙수』에는 “밭이고”
113. 『신학지남』, 『낙수』에는 “아모리”
114. 『신학지남』, 『낙수』에는 “및이지”
115. 『낙수』에는 “흘너간다”
116. 제임스 H. 스노든(James Henry Snowden, 1852~1936) 박사는 미국의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자로, 20세기 초반 미국 신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저명한 학자이다. 주로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위치한 웨스턴 신학교(Wester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교수를 역임했다.
117. 『신학지남』, 『낙수』에는 “엿주어”
118.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多部分[다부분]은”
119. 더글라스 J. 윌슨(Douglas J. Wilson, Ph.D.)은 1930~1940년대 캐나다에서 활동했던 심리학 교수이자 언론인이다. 그는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University of Western Ontario)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후 몬트리올의 유력 일간지였던 ‘몬트리올 스타(Montreal Star)’의 수석 논설위원으로도 활발히 활동한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120. 『신학지남』에는 “물곬을”, 『낙수』에는 “물뭀을”
121. 『신학지남』, 『낙수』에는 “救援[구원]하지”
122. 『신학지남』, 『낙수』에는 “뻐처”, 『김재준 저작전집』은 “뻗혀”
123. 『신학지남』, 『낙수』에는 “支[지]탕하는”
124. 『신학지남』, 『낙수』에는 “맨”
125. 밴 틸 박사(Cornelius Van Til, 1895~1987)는 네덜란드계 미국인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20세기 보수적인 장로교 및 개혁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그는 미국의 명문인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수학했으나, 프린스턴이 점차 자유주의 신학으로 기울자 이에 반발하여 메이천(J. Gresham Machen) 박사 등과 함께 정통 신학을 수호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를 설립한 핵심 멤버이다.
126. 교황 레오 1세(Pope Leo I, 대교황 레오, 재위 440~461)
127.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가진”
128.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毁謗[훼방]과”
129. 『낙수』에는 “까닭의”
130. 『신학지남』, 『낙수』에는 “한번식”
131. 당시 교황이었던 인노첸시오 3세(Innocent III)는 교회의 기강을 바로잡고, 이단(카타르파 등)에 대응하며,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체계적으로 규립하기 위해 공의회를 소집했다(제4차 라테란 공의회, Fourth Council of the Lateran). 이 공의회에서는 이전까지 지역마다 중구난방이었던 고백의 방식을 통일하였는데,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나이(통상 7세)에 이른 모든 가톨릭 신자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주로 부활절을 앞두고) 자신의 본당 사제에게 반드시 자신의 모든 죄를 비밀리에 고백해야 한다고 의무화했으며, 동시에 사제에게는 고해소에서 들은 신자의 죄를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고해 비밀 엄수(사크라멘툼)’ 의무를 강력히 규정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성직 박탈과 평생 수도원 유폐라는 엄벌에 처하도록 하였다.
132. 『낙수』에는 “하여곰”
133.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참아”
134. 『신학지남』, 『낙수』에는 “知識層[지식층]엣”
135. 『신학지남』, 『낙수』에는 “나종에”
136. 『낙수』에는 “火災[화재]가”
137. 『신학지남』, 『낙수』에는 “감초인 데를”
138. 『신학지남』, 『낙수』에는 “인저”
139. 『신학지남』, 『낙수』에는 “실症[증]낸”
140. 『신학지남』, 『낙수』에는 “실혀하며”
141. 『신학지남』, 『낙수』에는 “툭 틔여놓고”
142. 『신학지남』, 『낙수』에는 “작란하는”
143. 『신학지남』, 『낙수』에는 “「麻雀[마작]」같은”
144. 『신학지남』에는 “손퍽치고”, 『낙수』에는 “손펵치고”
145. 『신학지남』, 『낙수』에는 “煽動[선동]식이는”
146. 『신학지남』, 『낙수』에는 “조곰이라도”
147. 『신학지남』, 『낙수』에는 “沐浴[목욕]식히려는”
148. 낙수』에는 “代身[대신]에”
149. 『신학지남』에는 “「傳道者[전도자]」 代理想[대이상]이 「生活[생활] 改變者[개변자]」”가 없음.
150. E. 스탠리 존스(Eli Stanley Jones, 1884~1973)는 미국의 감리교 목사이자 20세기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선교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스탠리 존스는 딱딱한 교리나 서양의 문화를 강요하는 대신, 상대방의 상황(불가피한 현실) 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다가감으로써 예수의 사랑을 전했던 지혜롭고 위대한 선교사였다.
151. 스티븐슨 박사는 1930년대 캐나다에서 활동했던 정신의학 및 심리학 전문가였다. 참고로 역사적 기록과 정황상, 당시 캐나다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의 교수였던 G. H. 스티븐슨(George Herbert Stevenson)의 첫 글자가 과거 문헌으로 번역 및 조판되는 과정에서 알파벳 ‘C’로 오기(오타)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52. 『신학지남』, 『낙수』에는 “끝친”
153. 신학지남』에는 뒤에 다음 문장이 추가되어 있다. “即[즉] 生命[생명]이 技巧[기교]를 通[통]하야 能率[능솔]있게 나타난것이오 技巧自體[기교자체]가 이 運動[운동]의 原動力[원동력]인 것은 아니다.”
154. 『신학지남』, 『낙수』에는 “哀心[애심]으로”
155. 『신학지남』, 『낙수』에는 “이 運動[운동]을 길게”
156. 『신학지남』, 『낙수』에는 “기대리는”
157. 『신학지남』, 『낙수』에는 “아츰”
158.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前[전]에”
159.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白紙[백지]와”
160.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心靈[심령]을”
161.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乃至[내지]”
162.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한 時間[시간]”
163.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主[주]의”
164. 『신학지남』, 『낙수』에는 “그우에 움즉이기를”
165. 『신학지남』, 『낙수』에는 “기대린다면”
166.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敎役者[교역자]”
167. 『신학지남』, 『낙수』에는 “모힘에서”
168. 『신학지남』, 『낙수』에는 “차츰”
169. 『신학지남』, 『낙수』에는 “거충으로 모히나”
170. 『신학지남』, 『낙수』에는 “말미암는”
171. 『신학지남』, 『낙수』에는 “버혀버릴”
172. 『신학지남』, 『낙수』에는 “폄론하지”
173. 『낙수』에는 “다른 길노”
174. 『신학지남』, 『낙수』에는 “臆志[억지]로 끄러오려고”
175. 『신학지남』에는 “저이가 萬一[만일] 저희의”, 『낙수』에는 “저히가 줄곳 저히의”
176. W. B. 크라이톤 박사(William Black Creighton, 1864~1946)는 20세기 초중반 캐나다 기독교계의 여론을 이끌었던 영향력 있는 목회자이자 언론인이었다. 그는 1925년 캐나다 내의 감리교, 장로교, 회중교회가 통합하여 탄생한 거대 교단인 캐나다 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의 공식 기관지(신문)인 『뉴 아웃룩』의 편집장(주필)을 오랫동안 역임했다.
177. 『신학지남』, 『낙수』에는 “一一[일일]히”
178. 『신학지남』, 『낙수』에는 “發表[발표]하였다하나 記者[기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