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仰[신앙]」의 三重性[삼중성]
主幹
우리가 흔히 「믿음」이 어떻다, 「信仰[신앙]」이 如此[여차]하다하고 말하지마는 정작 따지고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이오?」하고 물을제 얼른 定義[정의]를 나릴만한 準備[준비]가 없는 것을 種種[종종] 發見[발견]한다. 나는 이에 對[대]하야 아래와 같은 說明[설명]을 드리고 싶다.
「信仰[신앙]이란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向[향]한 全人格的[전인격적] 活動[활동]이다」고. 이제 全人格[전인격]이란 것을 智[지], 情[정], 意[의]의 三重[삼중]으로 본다면 「信仰[신앙]」에도 三重性[삼중성]이 있다. 爲先[위선] 「信仰[신앙]」의 첫거름은 「信認[신인]」(Believe)이란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다」 「나는 예수가 그리스도신줄 믿는다」 「나는 使徒信經[사도신경]을 믿는다」 云云[운운]의 「信仰[신앙]」 即[즉] 「믿음」은 말하자면 智的承認[지적승인]에 屬[속]한다 敎理[교리], 敎條問題[교조문제]는 이 智的承認[지적승인]을 主[주]로 하고 맨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信仰[신앙]의 全部[전부]가 아닌 것은 智識[지식]이 人格[인격]의 全部[전부]가 아님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信仰[신앙]의 全部[전부]인 것 같이 생각하야 異端[이단]이니 正統[정통]이니하고 말성을 이르킨다면 그것은 極[극]히 삼가야 할 일이다.
信仰[신앙]의 둘잿점은 「信任[신임]」 或[혹] 「信賴[신뢰]」(Trust)란 것이다. 「내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다」고 하지마는 그것이 智的承認[지적승인]에 不過[불과]한 때에는 동리집영감 보듯이 無關心[무관심]하야 그리 살틀한 情誼[정의]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내 모든 問題[문제]를 마끼고 그를 信任[신임]하고 나간다는 情的活動[정적활동]이다. 情誼[정의]의 流通[유통]이다. 믿고 依支[의지]하는 人情[인정]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자면 몹시 敎理敎條[교리교조]를 따져가면서 잘믿노라고 야단치고 자랑하는 사람들 中[중]에서도 그 생활을 보면 하나님을 「信任[신임]」하는지 돈을 「信任[신임]」하는지 모를 形便[형편]엣사람이 많다. 天堂[천당], 地獄[지옥] 問題[문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依支[의지]할 밖에 없지만 政治問題[정치문제], 社會問題[사회문제], 經濟問題[경제문제] 等[등]에 있어서는 하나님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하는 態度[태도]를 公公然[공공연]하게 或[혹]은 不知不識間[부지불식간]에 가지게 된다. 이런 世代[세대]를 이르러 「믿음없는 世代[세대]」라 하신 것이다. 아부라함의 信仰成長[신앙성장]의 徑路[경로]를 더듬어 본다면 퍽
【해독 불가】
發見[발견]할 수 있다. 그가 約束[약속]의 福地[복지]를 向[향]하야 하란을 떠난때에는 거긔만 가면 큰 수가 날줄 알고 勇躍前進[용약전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가나안에 와노코보니 別[별]수 없는데다가 土着民[토착민]의 權勢[권세]가 크고 또 凶年[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쪼차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이 였으나 아직 「먹을 것」 問題解決[문제해결]에 對[대]하야 하나님을 「信任[신임]」할 程度[정도]에는 達[달]하지 못하였었다. 그는 하나님께 물어도 안보고 任意[임의]대로 焦躁[초조]하게 埃及[애급]에 나려갔다. 거긔서 좀 창피한 꼴을 當[당]하고서 도로 가나안에 온때 그는 「먹을 것」 問題[문제]에 對[대]하야 하나님을 「信任[신임]」하지 못락 것을 後悔[후회]하고 다시 여호아의 일홈을 불럿다. 그것은 「녿」과의 分家問題[분가문제]에 當[당]하야 全然[전연] 非利己的態度[비이기적태도]를 取[취]한데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나히 古稀[고희]를 지나 百歲[백세]가 將近[장근]하되 一點血肉[일점혈육]이 없는 그로서 千子萬孫[천자만손]의 約束[약속]을 그대로 믿고 그 問題[문제]를 하나님께 아주 「信任[신임]」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하나님께 물어보지안코 妻[처]의 말을 따라 妾[첩]을 두어 累千代後孫[누천대후손]에 이르기까지 兄弟鬪爭[형제투쟁]의 運命的禍根[운명적화근]을 만들어 놓앗다. 그동안 沈默[침묵]을 직히시고 보고만계시던 하나님은 오래간만에 다시 아부라함을 불러 「나는 全能[전능]한 하나님이니 네가 내 앞에서 行[행]하야 完全[완전]하라」(창 17장 1절)하는 意味深長[의미심장]한 警告[경고]를 나리섯다. 이때부터 그는 信仰[신앙]의 圓熟期[원숙기]에 들어간 것이다. 우리는 조곰 감긔 들려도 하나님, 어린애가 조곰 熱[열]이 나도 牧師[목사]님을 불러대노라고 야단이지만 정작 큰 問題[문제]를 逢着[봉착]한 때에는 不信者同樣[불신자동양]의 唐慌焦躁[당황초조]한 態度[태도]를 取[취]하지 안는가? 나는 信仰生活[신앙생활]에 있어서 「信認[신인]」보다도 이 「信任[신임]」을 더욱 많이 勸[권]하고 싶으다. 「信仰[신앙]」의 셋잿겹은 「信從[신종]」(Obedience)이다. 그러고 이 信從[신종]은 진실로 信仰生活[신앙생활]의 最高絶頂[최고절정]이오 그 核心[핵심]이고 結實[결실]이다. 이는 意志的活動[의지적활동]에 屬[속]한다. 내 意志[의지]를 하나님의 意志[의지]에 絶對順服[절대순복]식히는 것이니 이는 信仰[신앙]의 열매 곳 生活[생활]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아부라함의 信仰生活[신앙생활]이 그 完成[완성]을 告[고]한 것을 立證[입증]한 열매는 곳 獨子[독자]를 燔祭[번제]로 들이라는 하나님의 命令[명령]에 絶對順從[절대순종]한 그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最後[최후] 最高[최고]의 祝福[축복]을 나리섯다. 우리는 여러 가지 辨解[변해]와 口實[구실]로 하나님의 뜻을 信從[신종]치안코 回避[회피]하려한다.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祈禱[기도]는 이 絶對[절대] 「信從[신종]」의 表現[표현]이였다. 「내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뜻이 하날에서 일운 것 같히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主[주]를 믿고 그대로 行[행]하는 者[자] 되어지이다. 「信認[신인]」 「信任[신임]」 「信從[신종]」의 세겹 信仰[신앙]이 우리의 것이 되여지이다. 主[주]여 우리의 不足[부족]한 信仰[신앙]으로 스사로 교만하야 남을 편론하며 깔보는 일을 그만두게 하시고 오로지 謙虛[겸허]하야 主[주]님앞에서 내 不足[부족]을 自服[자복]하고 〇〇하야 最高[최고]의 目標[목표]에 달려가게 합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