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1일 토요일

[십자군 제1권 제4호] 위로의 말슴 - 김재준

위로의 말슴

- 주님을 처다보라

- 김재준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흩어저 레바논의 백향목(柏香木) 향기는 피 비린내로 변하고 시온의 꽃동산에는 鬼哭聲[귀곡성]이 啾啾[추추]하게 되었읍니다. 그러고 그 백성, 하나님의 택하신 거륵한 백성은 바벨론 강가 異域[이역]의 工事塲[공사장]에서 流謫[유적]의 生活[생활]을 지내고 있었읍니다. 


바벨론 강가에 주저앉어서
시온의 追憶[추억]에 우리는 울었노라
거기 있는 버드나무에
거문고를 우리는 걸어 뒀노라.


略奪者[약탈자]가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殘害者[잔해자]가 우리에게 좋아하라 하더니라
시온의 노래를 불러보라 하더니라-
아 그러니 어찌 異國[이국]의 땅우에서
여호아의 노래를 부를수 있을건가?


오 예루살렘아!
하마나 내가 너를 잊어 버릴진대
내 오른손이 손재조를 잊게하라
하마나 내가 너를 기억 안할진대
내 혀가 입천정에 들어붙게 하여지라.
-시 百三十七편


이 얼마나 슬픈 노래 오니까? 이 얼마나 애달픈 心情[심정]이오니까? 捕虜[포로]의 몸된 이스라엘의 무리에게서는 영광이 떠나고 노래가 막혔읍니다. 그리하야 거문고는 부질없이 버드나무에 걸려있읍니다. 성전 문턱을 흔들던 우렁찬 「할렐루야」코-러스는 이제 그 곡조를 잃었습니다. 

그네들의 마음은 상하였고 그네들의 몸은 고달펐읍니다. 그네들에게는 오직 슬픔과 落望[낙망]과 한숨이 있을 뿐이였읍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슬퍼하는 그대로 락망과 그대로 버려 두었다면 어찌되

였겠읍니까? 그네들은 결국 눈물과 함께 한숨과 함께 바벨론 모랫속으로 잠겨들고 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을 건지시기 위하야 한 使者[사자]를 보내섰읍니다. 그 使者[사자]의 使命[사명]이 무엇이였습니까? 


「너는 가서 내 백성을 安慰[안위]하라.
내 백성을 安慰[안위]하라.
善[선[한 말로 예루살렘을 위로하고
그 戰爭[전쟁]이 끝나고 그 罪[죄]를 赦[사]하였다 외치라!」
한 것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牧者[목자]같이 羊[양]의 무리를 먹이시고 팔로 어린 양을 모아 품에 품으시며 젖먹이는 암양을 인도하신다 외치라」 말하섰습니다. 

이 使命[사명]을 받은 여호아의 종은

「傷[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고 꺼지는 등불도 끄지 않으며 거리에 그 소래 들리지 않으나 그로 말미암아 眞理[진리] 안에서 公義[공의]를 萬邦[만방]에 베풀겠다」

하섰습니다. 

◇ ◇

兄弟[형제]여! 이 상한 갈대와 같은 江山[강산]을 하나님께서 安慰[안위]하신지가 몇해오니까? 이 꺼지는 燈[등]불과 같은 민족을 主[주]께서 〇〇하신지가 몇해오니까?

「지금은 권고하시는 때」 지금은 구원하시는 날입니다.

지금은 主[주]께서 형벌의 챗즉을 멈추시고 安慰[안위]의 말슴을 傳[전]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主[주]께로부터 받은 使命[사명]이 무엇이오니까? 福[복]된 消息[소식] 기쁜 소식을 傳[전]하는 것 아니오니까? 「내 百姓[백성]을 安慰[안위]하라 내 百姓[백성]을 安慰[안위]하라」 主[주]께서 우리에게 말슴하시지 안습니까?

그러나 主[주]여 내 慰勞[위로] 받기에는 이 백성은 너무나 深刻[심각]한 悲哀[비애]를 가지고 있읍니다. 내가 무슨 말로 저이들의 가슴을 풀어줄 수 있사오리까? 내가 무슨 힘으로 저이들의 고달픈 生命[생명]을 潤澤[윤택]하게 하오리까? 나는 이 백성을 위로해야 하겠읍니다. 그러나 내게는 위로할 힘이 없읍니다 하는 것이 여러분이나 나의 率直[솔직]한 告白[고백]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런 답답한 생각을 가지고 祈禱[기도]한 後[후] 다시 聖經[성경]을 폈습니다. 

「제자가 선생보다 났지 못하며 종이 상전보다 났지 못하니 弟子[제자]가 先生[선생]같고 종이 상전같으면 足[족]하니라 집주인을 벨세붑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집 식구랴」하는 主[주]님의 말슴이 내 눈앞에 뚜렷히 나타나보입니다. 主[주]님께서 그렇게 苦難[고난]을 받으섰거니 우리가 무어길래 安逸[안일]을 求[구]할 것이겠습니까? 

「主[주]님을 우러러 봅시다」

여러분 가운데 지극히 어렵고 가난한 이가 계십니까? 늙은 父母[부모]님께 냉수한그릇 드리지 못하고 어린 것들이

배곺아 우는 정경을 당한 지가 계십니까? 그 가난을 통하야 主[주]님을 최다보십시오. 主[주]께서는 榮光[영광]자리를 내여 놓으시고 종의 몸으로 오서서 우리를 爲[위]하야 四十日間[사십일간] 배곺음을 손소 경험하섰읍니다. 그는 머리를 들어 구름을 헤치고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릴 榮光[영광]의 主[주]님이였으나 그 지치신 몸을 사마리아 길가에쉬이시며 한 사마리아 女人[여인]에게 물한잔 빌어 잡수섰읍니다. 우리가 아모리 가난하기야 그래도 머리둘 곳이 있고 몸가리울 누더기라도 있지 안습니까? 그러나 主[주]께서는 우리를 위하야 가난하게 돼서서 여호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나 主[주]께서는 머리둘 곳이 없어 지내지 않으섰읍니까? 그러면 가난에 우는 여러분이여! 정신이 만일 여러분의 눈을 밝게 하실진대 눈을 들어 主[주]님을 최다보십시오. 아직도 여러분은 主[주]님보다 나으시지 않습니까?

여러분가운데 子女[자녀] 없이 慰勞[위로] 못받는 이가 계십니까? 主[주]님을 최다 보십시오. 그는 三十[삼십]이 넘었으나 가정이라곤 이루어 보시지도 않으섰읍니다. 그에게는 혈육이 없읍니다. 主[주]님 같이 살으시면 만족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사랑하는 이가 병석에 누어 날로 병세가 더하야 마츰내 그마즈막 숨결을 내쉬는때 그 애처러운 心情[심정]을 견딀수 없어 皇天[황천]이 무섭하다고 원망과 탄식으로 그날그날을 지내는 이가 계십니까? 主[주]님을 우러러 보십시다. 스캍랠드의 맥캔지博士[박사]가 자기 경험담 이야기하는 중에 이런 말슴하는 것을 들었읍니다. 하로는 교인 가운데 三十[삼십]살 장년하나가 갑작히 병이 들어 마츰내 다시 일 소망이 없어젔읍니다. 그 신혼한 부인은 안타까운 중에 그래도 남편이 믿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최후를 맞추도록 마음 준비라도 시켜야 하겠는데 말은 안나오고 울음만 북바쳐서 마츰내 맥캔지 목사를 찾어왔더랍니다.

맥 목사는 곧 알는 이를 찾어가서 기도한 후

「형님 지금 주께서 부르신다면 어떠하겠소?」

하고 물엇답니다. 그는 머리를 드리키며

「내게는 오직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주께서는 말구유에 나서서 가진 고생을 겪으시다가 내종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장 괴로운 죽엄을 당하섰읍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편히 살다가 부드러운 침상에 누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과 위로를 받으면서 세상을 떠나 주께로 가게되니 이렇게 황송한 일이 어듸있겠읍니까? 나는 감사하고 만족합니다. 목사님!」하고 대답하더랍니다. 죽엄의 침상에 누었거나 또는 죽엄의 손에 사랑하는 이를 내여 맡길 때 주님의 十字架[십자가]를 최다 보십시다. 主[주]님께서는 生命[생명]의 王[왕]이시되 우리를 위하야 죽기까지 복종하섰으니 곧 十字架[십자가]에 죽으심이였읍니다. 우리같은 罪[죄]많은 人間[인간]이 十字架[십자가]를 지고

죽은들 무슨 不平[불평]이 있으리까?

여러분 가운데 억울하게 음해와 비방과 모함에 걸리여 마음아픈 처지를 당하고 계신 이가 있읍니까? 主[주]님을 우러러 보십시다. 主[주]께서는 흠도 없고 점도없는 하나님의 어린 羊[양]으로서 두루 다니시며 善行[선행]만 남기섰것마는 마귀王[왕]이 잡혔다고 비방을 받으시며 온갖 모함을 받으섰고 내종에는 뺨을 맞고 얼굴에 침뱉기며 十字架[십자가]를 지신 동안에도 「내려오라!」는 嘲弄[조롱]의 소리를 귀아프게 들으섰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여 우리는 主[주]님께 비한다면 얼마나 많은 罪[죄]와 허물과 실수를 지니고 있는 者[자]들이오니까? 그러니 우리는 음해와 비방을 받을때마다 「아, 이 죄인은 이런 말듣고 이런 罰[벌] 當[당]하는 것이오히려 합당하오이다」하고 主[주]께 감사하며 침뱉는 이를 축복할 것이 아니겠읍니까? 노래 부르며 主[주]님의 피흘리신 발자취를 더듬어 가는 巡禮者[순례자]의 榮光[영광]이 우리에게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罪[죄]의 意識[의식]이너무 날카로워 괴로워하는 이가 계십니까? 「아, 내 손에는 兄弟[형제]를 죽인 피가 아직도 淋漓[임리]하게 흘르고 있다. 내혀는 兄弟[형제]를 咀呪[저주]하고 하나님을 冒瀆[모독]한 毒舌[독설]이 아닌가? 「아 내 罪[죄]여! 내 罪[죄]여!」하고 누터와 함께 가슴치는 이가 계십니까? 主[주]님의 十字架[십자가]를 쳐다 보십시오. 巡禮者[순레자]가 罪[죄]짐을 지고 天城[천성]을 向[향]하야 걸어 갈 때 山[산]우 十字架[십자가] 앞에 꿀어 엎데니 등에 진 죗짐이 제절로 벗겨저 저 깊이 無底抗[무저항?]으로 뎅굴뎅굴 굴러 떨어지고 왼 心神[심신]이 갑숙하야 九天[구천]에 逍遙[소요]하는 독수리의 느낌이 있었다고 요한 번연은 天路歷程[천로역정]에 記錄[기록]하지 않었습니까?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눌 피로다

이샘에 죄를 씿으면

정하게 되겠네!」

◇ ◇

지금까지 우리는 苦難[고난]을 통하야 苦難[고난]의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應分[응분]의 安慰[안위]를 찾었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苦難[고난]의 그리스도일뿐 아니라 또한 復活[부활]의 그리스도 榮光[영광]의 그리스도 勝利[승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나무에 달리신대로 계시다면 그는 아직도 저주아래 있는 이가 되겠읍니다. 그가 무덤에 그대로 계시다면 그는 死者[사자]의 班列[반열]에 屬[속]한 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으서서 모든 믿는 者[자]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섰읍니다」 그는 善[선]으로써 惡[악]을 익이시고 義[의]로써 不義[불의]를 익이시고 사랑으로 靈魂[영혼]을 征服[정복]하시고 生命[생명]으로 死亡[사망]을 삼키섰읍니다. 이 復活[부활], 榮光[영광], 勝利[승리]의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者[자]에게 무슨 슬픔 무슨 落望[낙망] 무슨 失敗[실패]가 있겠읍니까? 使徒[사도] 바울과 같이 「내게 能力[능력]

주시는 者[자] 안에서 내가 能[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외칠 수 있읍니다. 「死亡[사망]아 네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死亡[사망]아 네 쏘는 것이 어듸 있느냐? 우리로 하야곰 우리 主[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익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하고 바울은 부르짖지 않었습니까? 

그러면 兄弟[형제]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누가 能[능]히 우리를 대적하리까?」 滿洲[만주]의 荒野[황야]도 沃土[옥토]로 變[변]하고 蒙古[몽고]의 沙漠[사막]도 花園[화원]으로 變[변]할 것입니다. 그러고 萬里長城[만리장성]을 넘어 興亡盛衰[흥망성쇠]의 부질없는 물결이 넘나드는 中原[중원]의 한복판에도 生命[생명]의 江[강]물이 넘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北方[북방] 어름山[산]과 또 大洋[대양] 산호섬

저 南方[남방] 모든 나라 뭇 百姓[백성] 사는데

큰 罪惡[죄악] 犯[범]한 民族[민족] 참구원 얻으려

주 빛을 받는 우리 곧오라 부르네」

찬송가 三八一장


그러면 兄弟[형제]여 「못살겠다. 亡[망]했다. 할수 없다」하는 떠러진 생각을 그만두고 「能力[능력]주시는」 그리스도를 뫼시고 그리로부터 나리는 사랑의 恩寵[은총]에 感激[감격]하야 十字架[십자가]의 旗下[기하]에 믿음의 호심경을 붙이고 성신의 날선검을 들고 步武堂堂[보무당당] 사탄의 〇內[〇내]에 進軍[진군]할것입니다.

「小子[소자]들아 근심하지 말라! 내가 世上[세상]을 익이였노라」 主[주]님의 말슴이십니다.



십자군 제1권 제4호 목차

십자군 제1권 제4호 목차 소화 12년 10월 - 1937년 10월 ☞ 각 제목을 클릭하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간 소개 : 기도의 영력 – 십자군 주간 위로의 말슴 : 주님을 처다보라 – 김재준 제26회 총회소식을 듣고 – 주간 [전등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