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제1권 제3호] 移民群[이민군]을 생각하며
- 예레미야의 바벨론書翰[서한]을 읽음
- 金在俊[김재준]
벌서 몇 달前[전] 일이다. 나는 豆滿江[두만강] 건너는 汽車[기차]안에서 移民群[이민군]들과 섞여 앉었었다. 상투틀고 갓쓴 어룬 머리 깍고 草笠[초립] 쓴 靑年[청년] 헌데난 어린이 쪼그러진 할머니 等[등] 뒤섞인 얼골에는 希望[희망]과 不安[불안]과 無邪氣無智等[무사기무지등]이 明滅[명멸]하는 燈[등]불과 같이 껌벅이고 있었다.
「우리 인저 豆滿江[두만강]건넛제-」
「인저 만쥬로 왔제애-」
옆에 앉었던 늙은이는 유리창에 낀 뜬김을 씻어가면서 밖을 내다보더니
「아 이게 만쥬가? 山[산]세도 죠쿠 벌두 넓구나! 만쥬벌판이락하더니 정말 밭은 구십쟌캣다!」하고 五穀豐登[오곡풍등]의 꿈이나 꾸는 듯이 물고름이 窓[창]밖을 내나보고 있었다.
가만히 앉어 그들의 주고 받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어린애 같이 無智[무지]하지만 또한 어린애 같이 純眞[순진]하다. 그들은 가는 곳도 모르고 가면 어떻게 될 것도 모른다. 地理[지리]도 모른다. 政策[정책]도 모른다. 그러나 털깍는 어린 羊[양]같이 純眞[순진]하다.
「羊[양]이다 羊[양]이다」하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들은 거저 맡어가는 羊[양]이다. 그들의 前途[전도]가 잘되고 못되는 것은 全[전]혀 「牧者[목자]」에게 달린 것이다. 아 牧者[목자]! 牧者[목자]!
◇ ◇
나는 얼마 前[전]에 安圖縣[안도현] 移民[이민] 訪問旅行[방문여행]갔다온 朴敬〇[박경〇] 長老[장로]의 報告[보고]를 傍聽[방청]한 일이 있다.
朴長老[박장로]는 使徒[사도] 바울을 聯想[연상]케하는 文字[문자]그대로 全存在[전존재]를 開拓傳道[개척전도]에 밧처 일하는 분이다.
그의 心情[심정]에는 눈물이 있으나 그의 靈[영]은 希望[희망]에 빛나는 것이였다. 도무기위란 部落[부락]에서부터 바루 白頭山[백두산]밑
까지 三, 四百里[3,4백리] 골자군이에 삿삿히 끼여사는 新舊移民[신구이민]들은 慰勞[위로]받을 곳을 찾아 헤매는 무리였었다한다. 「도무기위」에는 二十部落[이십부락], 約壹千戶[약일천호]의 朝鮮[조선]사람이 살지마는 아직도 福音[복음]의 慰安[위안]을 모르고 生存[생존]하는 것이였다. 거기서 六十里[60리] 들어가 十〇家[십〇가]에 이르면 처음으로 平野[평야]가 있는데 朝鮮人部落[조선인부락] 셋이 있고 河北村[하북촌]에 自由移民約四十戶[자유이민약사십호] 居住[거주]하나 亦是[역시] 敎人[교인]은 없으며 西南〇[서남〇]에 東拓移民[동척이민] 百二十戶[백이십호] 數三[수삼]의 信者[신자]가 섞인 모양이며 거기서 江[강]을 건너면 처음으로 安圖地域[안도지역]에 들어서는데 첫동리 淸溝子[청구자]에 百十三戶[십십삼호] 있으나 信者[신자]는 한사람도 없다. 그러고 거기서 四百五里[사백오리] 가면 大甸子[대전자]에 到着[도착]한다. 이 大甸子[대전자]는 큰동리여서 四部落[사부락]으로 난호였는데 北大甸子[북대전자] 市內[시내]에 六十三戶[육십삼호]가 居住[거주]하나 福音[복음]의 씨는 아직도 뿌려지지 안었고 南大甸子[남대전자]에 移民[이민]된 百四戶中[백사호중]에 二十戶[이십호]의 信者家庭[신자가정]이 섞여있는 것은 눈물날만치 감사한 일이였다한다. 朴長老[박장로]는 이 동리에 들어서자 길에서 어떤 젊은 喪子[상자]를 만났었는데 彼此人事[피차인사]한 後[후] 來意[내의]를 말한즉 그 젊은이는 朴長老[박장로]의 손목을 웅켜잡고 한참이나 울었다한다. 「이렇게 主[주]님의 使者[사자]를 만나뵈오니 도라가신 父親[부친]을 뵙는 것 같이 반갑습니다.」 거기서 믿는 이들을 뫃아놓고 禮拜[예배]보고 主[주]님의 慰勞[위로]를 傳[전]한때 그들의 기쁨과 朴長老[박장로] 自身[자신]의 위로가 얼마나 컸었다는 것은 그의 말을 기대릴 것도 없을 것이다.
둘재區域[구역]은 「다진江[강]」 左右部落[좌우부락]인데 北流水河子[북유수하자]에 五十戶[오십호] 南流水河子[남유수하자]에 五十戶[오십호] 各各數三[각각수삼]의 信者[신자]가 있으며 南流水河子[남유수하자]에는 北靑[북청] 豐山等[풍산등]에서 今年[금년]에 移來[이래]한 同胞[동포]를이 居住[거주]하는 것이였다.
셋재區域[구역]은 大沙河子附近[대사하자부근]인데 大沙河市[대사하시]에 七十八戶[칠십팔호], 高登〇[고등〇]에 八千戶[팔천호]가 居住[거주]한다. 高登〇[고등〇]에는 信者[신자]의 有無[유무]가 未詳[미상]하나 대사하자[大沙河子]에는 大部分慶興[대부분경흥], 〇城等地[〇성등지]에서 移來[이래]한 이들로 廉在翊[염재익], 金應甲等數三[김응갑등수삼]의 信者[신자]가 있어 반가웠다.
넷재區域[구역]은 小沙河附近[소사하부근]인데 前[전]부터 來住[내주]한 同胞二十戶[동포이십호]에 信者[신자]는 한분도 없으며 洋村溝[양촌구]에는 北靑[북청], 豐山等[풍산등]에서 今年移來[금년이래]한 이들은 居住[거주]하는데 그 集團部落長[집단부락장] 崔達禹[최달우] 氏[씨]는 北靑人[북청인]으로 前執事[전집사]였었다.
安圖縣城內[안도현성내]에는 朝鮮同胞約四十戶[조선동포약사십호]에 滿鮮寫眞館主人等[만선사진관주인등] 若于[약우]의 信者[신자]가 있으며 白頭山下[백두산하] 最後[최후]의 部落[부락]인 「흑륭하자」에 八十戶[팔십호] 安圖[안도]에서 五十里[오십리] 水下兩江口[수하양강구]라는 合水處[합수처]에 在來在民四十戶[재래재민사십호]가 있으나 다 福音[복음]에 接[접]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야 安圖移民[안도이민]만 볼지라도 近年移住民[근년이주민] 千二十二戶[천이십이호] 自由及在來移住民[자유급재래이주민] 二百四十五戶[이백사십오호] 「도무거위」 移住民[이주민] 一千戶[일천호] 合二千二百六十七戶[합이천이백육십칠호]에 敎會[교회] 선 곳은 아직 한곳도 없다. 다만 數三[수삼]의 信者[신자]라도 섞여있는 곳에는 敎役者[교역자]가 도라다니며 조곰만 힘을 준다면 그이들이 中心[중심]이 되어 無難[무난]히 敎會[교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오 오직 信者[신자]의 없는 동리에도 지금은 진실로 「穀[곡]식익어 거둘 때]임을 切感[절감]
하게한다. 그들은 純眞[순진]하다 故鄕[고향]을 떠나 이리 荒地[황지]에 몸을 부치매 本國[본국]이 그립고 사람이 그리워 人情[인정]을 求[구]하고 慰勞[위로]를 찾는다. 朴長老[박장로]의 말에 依[의]하면 그는 朝鮮衣服[조선의복]을 입고 다니였는데 멀리 저구석 밭에서 일하던 이들도 이 朝鮮服[조선복] 입은 이가 길가는 것이 너무나 반가워서
「여보시오! 여보시오!」하고 길을 멈추게 한다음에는 男女[남녀]없이 달려와서 그래 어듸서 왔는가? 本國[본국]서 왔는가? 어떻게 되어서 이렇게 이 한울지경까지 찾어왔는가?하고 十年[십년] 못본 親舊[친구]나 만난 듯이 반가워하였다한다. 그러고 이런 事情[사정] 저런 事情[사정]을 털어놓고 이야기한다.
「本國[본국]서 온 것은 아니나 나는 예수 傳[전]한는 사람으로서 일부러 여러분을 찾어뵙고저 이렇게 다니노라」고 하면 「우리」를 찾어 보려고 이렇게 오시는 분도 계시단말인가고 눈물로 감사한다. 그들은 아직 純眞[순진]하다. 어떻게던지 힘써 일해서 生計[생계]를 세우려는 立志[입지]도 있다. 그러고 조곰이라도 같이 걱정해주고 같이 事情[사정]을 알어주면 그야말로 天使[천사]같이 받들려한다. 牧者[목자]를 찾는 羊[양]의 무리다. 그러나 이제그네들과 함께 울어주는 이도 없고 한마듸 勸[권]해주는 이도 없이 數年[수년]만 그대로 버려둔다면 그들은 벌서 지금의 「純眞性[순진성]」을 잃어버리고 「모소리」가 되어서 듯되어지고 게을러지고 꼬부라저서 그때에는 정말 天使[천사]가 와서 좋은 말로 勸[권]하여도 입을 찡그리고 눈을 흘기며 도라설 것이다. 그것은 그 附近[부근]에 있는 前[전]부텀의 移住民[이주민]들 〇〇이 어떻게 完全[완전]한 「貧民心理」로 化[화]해 진 것을 보아서 〇히 推測[추측]할 것이다.
安圖[안도]. 거기서 白頭山[백두산]이 二百里[이백리](朝鮮里數[조선리수]로) 그러나 눈앞에 선것같이 가깝게 보인다. 그러고 그 周圍[주위]는 一望無際[일망무제]의 「樹海[수해]! 白頭山[백두산]은 그 나무바다 복판에 서 있는 한적은 섬과 같다. 金鑛[금광]과 石炭[석탄]이 各處[각처]에 있고 初開拓地[초개척지]니만치 五穀[오곡]이 倍[배]나 더 잘된다. 一日耕[일일경]에서 玉蜀〇十五石[옥촉〇십오석]이난다. 한사람이 一戶地[일호지]는 살 수 있는데 一戶地[일호지]란 것은 二十日耕[이십일경], 그 代金[대금]은 百五十圓[백오십원]이란다. 土地[토지]가 大槪〇傾斜地[대개〇경사지]오 表土[표토]가 그리깊지 못함으로 비올때에 씻겨나리면 그리 오랫동안 沃土[옥토]로 있을 수는 없을 듯하나 百年[백년]안에는 별일 없으리라고 한다.
朴長老[박장로]는 눈물이 글성하야 말한다. 이 羊[양]들은 건사하며 그이들과 함께 눈물 흘려줄이가 우리 敎會[교회]에서 나지 안으면 이다익은 곡식, 이 靈肉[영육]으로 함께 飢渴[기갈]에 直面[직면]한 同胞[동포]를 어떻게 하겠는가?고. (文責在記者)
이 글을 적으면서 나는 龍井[용정] 東山敎會靑年[동산교회청년]들이 宣敎部와 協力[협력]하야 敎役者[교역자] 한 분을 보내기로 하였다는 消息[소식]을 듣고 主[주]께 감사한다. 그러나 아모리 적어도 일꾼들을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 實情[실정]을 審查[심사]한 이의 말이다. 할려면 힘없는 것이 아니련만 이일에 마음두는 이가 좀더 없을가?
◇ ◇
나는 지금 이 移民群[이민군]을 생각하며 에레미아의 바벨론 移住民[이주민]에게 보낸 편지를 읽는다.
「집을 짓고 거기서 살며 (五)
果樹[과수]를 심어 그 열매를 먹으라
婚姻[혼인]하야 子女[자녀]를 낳아 (六)
滅[멸]하지 않고 불게하라
내가 너희를 잡어가게한 그 나라의 (七)
幸福[행복]을 빌라. 그러고
그를 爲[위]하야 에호와께 祈禱[기도]하라.
이는 너희들의 福樂[복락]이 곧
그나라의 福樂[복락]에 맺었음이니라.
「너이게 關[관]한 내 생각은 (十一)
내가 잘 아노라-
災殃[재앙]이 아니라 平康[평강]을
그러고 오는 날의 希望[희망]을
주려 함이로라.
네가 내게 빌면 내가 들으리라 (十二)
네가 나를 찾으면 내가 만나리라.
너이가 至誠[지성]으로 나를 찾는다면
너의가 나를 찾어 만나게 되리라고
여호아께서 말슴하시더라.」
- 예레미야 29장 5-13
나는 滿洲[만주]에 온 後[후]에 비로소 예레미아의 이 편지쓸 때 心情[심정]을 잘 理解[이해]할 수 있게 되였다. 그렇다 朝鮮[조선]사람이 滿洲[만주]에 와서 愁心[수심]에 싸인 蒼白[창백]한 얼골로 本國[본국] 타령 故鄕[고향] 생각만 하고 「집시-」 放浪者[방랑자]의 心情[심정]으로 지낼 것이 아니다. 에레미아의 勸勉[권면]과 같이 집짓고 果樹[과수] 심으고 시집가고 장가들어 百年大計[백년대계]를 세우며 子子孫孫[자자손손] 傳[전하야 받을 企業[기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民族協和[민족협화], 王道樂土[왕도낙토]」 宏壯[굉장]한 標語[표어]를 羊頭狗肉[양두구육]의 着板[착판]이라고 冷笑[냉소]로운 態度[태도]로 [對]할 것이 아니라 積極的[적극적]으로 그 偉大[위대]한 理想[이상] 실[實]을 爲[위]하야 責任[책임]지고 勞力[노력]할 것이다. 滿洲國[만주국]의 安定[안정]과 展[전]을 爲[위]하야 眞心[진심]으로 祈禱[기도]할 것이다. 이는 무엇이 무니하고 理論[이론]을 캐고 떠든대야 決局[결국] 朝鮮[조선]사람의 갈곳은 이나라 밖에 없는 까닭이다. 「너이들의 福樂[복락]이 나라의 福樂[복락]에 맺었음이니라」한 예레미아의 편지가 대로 우리에게 事實[사실]인 까닭이다.
政治[정치]를 통하야 또는 經濟機關[경제기관]을 通[통]하야 朝鮮[조선]사람 生路[생로]에 많은 指導扶掖[지도부액]이 있음을 감사하지 안는바이 참말로 이 純厚[순후]한 良民[양민]들의 한사람 한사람을 붓잡고 함께 울며 함께 웃어줄 이는 「牧者[목자]」밖에 없는 줄 안다. 하나님의 기뿐消息[소식]을 傳[전]하고 그의 經綸[경륜]과 사랑과 限[한]없는 〇望[〇망]을 말하야 永遠[영원]한 基業[기업]에 그 마음의 뿌리를 박게 〇지 않으면 이 怒〇[노〇]에 시달리는 者[자]로써 破船[파선]에 이르지 〇기를 누가 保障[보장]할 수 있으랴? 여호와의 말슴이 「災殃[재앙]〇 아니라 平康[평강]과 希望[희망]을 주려함이로라 그러고 眞心[진심]으로 ?? 내게 빌면 내가 들어주리라 나를 찾으면 내가 만나주리라 ???고 滿洲[만주]에 삿삿히 널려있는 移民同胞[이민동포]들에게 이 消息[소식]을 傳[전]할 사람이 없을가? 그의 발자취는 진실로 福[복]된 거름이로다. 主人[주인]을 찾어 悲鳴[비명]을 울리는 羊[양]의 무리는 가는 곳마다 수둑합니다. 그러나 이 무리를 푸른 풀 맑은 물가에 引導[인도]할 福音[복음]의 使者[사자]는 적사오니 主[주]여 일꾼을 보내소서 牧者[목자]를 주소서.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