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는다는 것
“내가 너를 내 백성의 심판자로 세웠다.
그들을 눈여겨 보고 그들 행동을 쪼개 보라.
그들 모두가 더 없이 목 곧은 반역자다.
중상모략의 행상인이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썩었다.
풀무는 세찬 바람을 뿜어도
납찌꺼기(Lead)는 매양 남는다.
「제련」이 무슨 소용이냐
악한 것들은 꼼짝도 안 하는데.”
(예레미야 6:27, 28)[1]
이 구절은 요시야[2] 왕의 종교개혁에 대한 비판인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의 부패성이란 인간의 고질이다. 칼빈이 “인간성”의 전적부패(Total Depravity)를 기독교 교리로 중요시한 것은 잘못이랄 수 없겠다.
개인 자유가 개인 부패를 촉진한다. 그래서 그 자유를 박탈한다. 그러면 그 개인은 박탈자의 “사냥개”로 부패한다.
개인을 “전체인”으로 만들면 그 체제가 그 개인을 바르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다북쑥[3]이 삼밭에 끼어 자라면 붙들지 않아도 꼿꼿해진다는 논조다. 그래서 체제만능 만전체제를 만든다. 그 다음 순간에 “체제”만 남고 “인간”은 없다. 체제라는 “몰록”[4] 신은 인간을 먹고 사는 우상이다.
비교적 선한 개인들이 비교적 선한 체제를 만든다. 그래도 그 속에 “납찌꺼기”는 남는다. 그러길래 “至聖(지성)”인 개인도 없고 이상적 사회, 유토피아[5]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참회의 시간을 갖고 사람 앞에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그래서 비판하고 비판받고 토의하고 중론을 따른다. 그래서 겨우 큰 허물없이 임무를 감당한다. 그것이 민주질서다.
너희 못난 것들이 아무리 많이 모여, 밤낮 난상공의[6]해서 결정한다 해도 못난 결론밖에 나올 게 무어냐? 그 시간과 그 정력으로 우선 잘난 사람들 하라는 대로나 해라, 그러면 너희도 잘난 사람 구실을 하게 된다. 내가 다 맡아 해 주마! 그래서 독재자가 등장한다. 일이란 것은 그가 도맡는다. 다른 인간들은 할 일이 없다. 독창적으로 자유로 할 일이 없단 말이다. 먹고 살아야 하겠으니 시키는 대로 한다. 못난 것 노릇하려니 분하다. 분해도 풀 데가 없다. 에라, 되는대로 되자. 그래서 썩는다. 독재자는 썩인다. 썩이는 동안에 자기도 썩는다. 그래서 썩여서 먹고 먹고서 썩는다. 독재정치와 부패정치는 인간부패의 전매청이다.
[197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