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세기 전반 전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프랭크 북맨(Frank Buchman)의 ‘옥스퍼드 그룹 운동(북맨 운동)’의 기원과 방법론,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종합적으로 다룬다. 북맨은 자신의 회심 체험을 바탕으로 신학적 이론이나 교리보다 삶의 실제적 변화를 강력히 주장하며 이 운동을 전개했다. 단원들은 매일 아침 ‘정사의 시간(Quiet Hour)’을 통해 신의 ‘영도(Guidance)’를 구하고, 절대 정직ㆍ순결ㆍ무사ㆍ사랑의 ‘4절대(四絶對)’를 윤리적 표준으로 삼아 죄의 공중 고백과 구체적인 배상을 실천한다. 그러나 이 운동은 우표 한 장을 사는 것까지 영도를 구하는 주관적 신비주의의 위험성, 완벽주의가 부르는 영적 교만, 신학 체계의 경시, 그리고 공중 고백이 낳는 심리적·교회적 부작용 등의 한계를 지닌다며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지식인의 심리를 꿰뚫은 신선한 전도 방식과 개인 간의 우애, 철저히 변화된 삶이라는 구체적인 회개의 열매를 맺게 한 점은 현대 교회가 겸손하게 수용하고 배워야 할 긍정적이고 실천적인 가치로 평가된다.
輓近[만근] 基督敎界[기독교계]에 있어서 世界的[세계적]으로 그 感化[감화]를 미친 問題[문제]의 二大[2대] 運動[운동]이 있으니 하나는 獨逸[독일]을 中心[중심]으로 한 칼 빠르트[1]의 신학운동이오 하나는 영미(英美)를[2] 중심으로 한 푸랭크ㆍ뿍맨[3]의 所謂[소위][4] 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이 그것이다. 世界[세계]의 基督敎界[기독교계]가 沈滯[침체]한지 오래니만치 이 運動[운동]들은 萬人[만인]의 期待[기대] 가운데 急速[급속]한 發展[발전]을 보이고 있다. 빠르트의 神學運動[신학운동] 같은 것은 우리 朝鮮[조선] 같이 比較的[비교적] 單純[단순]하고 統制[통제]된 正統神學[정통신학]을 가지고 있는 敎會[교회]에서는 別[별]로 物論[물론]에 올릴 必要[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所謂[소위] 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에 있어서는 이것이 實際[실제] 信者生活[신자생활]에 새 方面[방면]을 展開[전개]시키는 것이니만치 捨短取長[사단취장]하여서 他山[타산]의 石[석]을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意味[의미]에서 그 大略[대략]의 輪廓[윤곽]을 紹介[소개]함과 同時[동시]에 그 後[후]의 發展相[발전상]을 다시 深査批判[심사비판]하여서 實際[실제] 牧會[목회]의 參考[참고]에 供[공]코저 하는 바이다.
저들은 神學[신학]을 論[논]하지 않으며 理論[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오직 生活[생활]로 하여금 모든 것을 辨證[변증]하게 한다. 그러므로 뿍맨 運動[운동]을 正當[정당]하게 理解[이해]함에는 무엇보다도 그네들의 生活[생활]을 살필 수 밖에 他途[타도]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뿍맨主義[주의] 團圓[단원]들은 어떤 規範[규범]하에서[72] 어떤 方式[방식]의[73] 生活[생활]을[74] 하는가. 저들은 事事件件[사사건건]에 初代敎會[초대교회]를 模倣[모방]하므로 그 理想[이상]을 삼는다. 저들은 우선[75] 하나님의 뜻에 絶對服從[절대복종]하겠다는 態度[태도]로 그 生活[생활]을 始作[시작]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첫째로는 성경에 써 있는[76] 敎訓[교훈]과 우리의 生活相[생활상]을 對照[대조]해 봄으로 因[인]하여 우리 生活[생활]을 指導[지도]하시는 하나님의 大體[대체]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現代[현대]의 複雜多端[복잡다단]한 生活[생활]에 있어서는 不期[부기]의 事變[사변], 善惡[선악] 어느 것이라고도 미리 斷定[단정]할 수 없는 일, 우리의 理性[이성]으로서 判斷[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事件[사건]이 無數[무수]히 닥쳐오는 것이다. 이런 때에는 부득이[77] 하나님의 특별하신[78] 黙示[묵시]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初代敎會[초대교회]에 있어서 빌립이 광야에[79] 나아가 구스 女王[여왕]의 宦官[환관]을 만난 것이라든지 바울이 아시아 道[도]로 가지 못하고 마게도니아로 가게된 것 같은 것이 다 「特別黙示[특별묵시]」에 屬[속]한 것이다. 이 特別黙示[특별묵시]는 지금에 있어서도 하나님 앞에 自己[자기]를 아주 내어놓고 그에게 絶對[절대] 服從[복종]하려는 態度[태도]를 가진 信者[신자]에게는 조금도 例外[예외]없이 나타난다. 이것이 뿍맨團員[단원]들의 信仰[신앙]이오 또 體驗[체험]이다. 이리하여 저들은 每日[매일] 아침 또는 무슨 必要[필요]한 事件[사건]이 있을 때마다 「靜思[정사]의 時間[시간]」[Quiet hour]을 가진다. 저들은 聖經[성경]을 읽고 祈禱[기도]하고 手帖[수첩]과 鉛筆[연필]을 들고서 「靈導[영도]」(Guidance)[80]를 기다린다. 오늘 누구를 찾아볼 것인가? 무슨 일할 것인가? 이 일은 어떻게 判斷[판단]할 것인가? 等[등]에 對[대]하여 靈導[영도]를 기다려 받는대로 手帖[수첩]에 記錄[기록]해 가지고 곧 實行[실행]한다. 그러나 다만 이런 것 만에 置重[집중]한다면 結局[결국] 異敎的[이교적] 神秘主義[신비주의]의 轍[철]을 밟음에 지나지 못할 것이므로 저들은 論理的[윤리적] 要素[요소]를 高調[고조]하여 네 가지 倫理的[윤리적] 標準[표준]을 세워 가지고 自己[자기]의 良心[양심]을 點檢[점검]한다. 이 네 가지 標準[표준]이란 것은 所謂[소위] 「四絶對[4절대]」라는 것으로 「絶對正直[절대정직]」(Absolute Earnesty) 「絶對純潔[절대순결]」(Absolute Purity) 「絶對非利己[절대비이기]」(Absolute Unselfishness) 「絶對愛[절대애]」(Absolute Love)가 그것이다. 即[즉] 言思行[언사행]에 至極純眞[지극순진]하여 꿈임과 거짓이 없게 하며 性的關係[성적관계]나 金錢關係[금전관계]에 있어서 純潔無垢[순결무구]하게 하며 무슨 사업에[81] 나설 때나 운동할[82] 때 利己的[이기적] 野望[야망]을[83] 가지고 하지 말며 모든 사람, 自己[자기]의 원수까지라도 씻은 듯이 容恕[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對[대]하자는 것이다. (以上[이상] 뿍맨의 宗敎經驗[종교경험] 參照[참조])
그러면 이 標準[표준]에 비추어 보아 거리낌이 있으면 어찌할까? 이에 우리는 「罪[죄]」와 直面[직면]하게 된다. 都會[도회]의 罪[죄], 異敎徒間[이교도간]의 罪[죄], 基督敎徒間[기독교도간]의 罪[죄], 銀行[은행], 會社[사회], 工場[공장], 家庭[가정], 敎壇[교단], 大學[대학], 神學校[신학교], 가는 곳마다 罪[죄]는 그 魔手[마수]를 벌려 움켜잡고 있다. 罪[죄]는 至極狡猾[지극교활]하여 생각지 못한 틈으로 새어 들어 온다. 說敎家[설교가]는 이를 攻擊[공격]하면서 自己[자기]는 이를 征服[정복]하지 못함이 罪[죄]다. 異敎徒[이교도]는 享樂[향락]의 잔과 함께 罪[죄]를 마신다. 크리스챤은 이를 보고 苦笑[고소]하며 公公然[공공연]하게 叱責[질책]하는 것이 罪[죄]다. 罪[죄]에 對[대]하여 賢明[현명]한 忠告[충고]를 줄 수 있는 이는 極[극]히 드물다. 이를 征服[정복]하는 이 方略[방략]을 보여주는 이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寥寥[요요]하다. 罪[죄]! 「罪[죄]에서 解放[해방]되는 程度[정도]는 解放[해방]되려는 慾求[욕구]에 正比例[정비례]한다. 하나님을 思慕[사모]하는 생각이 弱[약]하기 때문에 罪[죄]의 暴君[폭군]을 모셔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萬一[만일] 全心靈[전심령]을 받들어 正義[정의]를 渴望[갈망]한다면 罪[죄]는 忽然[홀연]히 그 자취를 감출 것이다」 하고 프랭크는 말하였다. 그리하여 프랭크는 「罪[죄]를 미워하라」 「罪[죄]를 告白[고백]하라」 「罪[죄]를 버리라」하고 忠告[충고]한다. 그 中[중]에서 이 運動團圓[운동단원]들이 特[특]히 重要視[중요시]하여 힘써 實行[실행]하는 것은 「公席[공석]에서 罪[죄]를 告白[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을 實行[실행]함에는 莫大[막대]한 勇氣[용기]를 要[요]한다. 그러나 實行[실행]만 하면 罪[죄]를 이기는 데에 가장 큰 效果[효과]를 나타낸다. 于先[우선][84] 罪[죄]를 다시는 짓지 않으려는 決心[결심]이 念頭[염두]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 그것은 罪[죄]를 또 다시 짓는다면 또 다시 그 不愉快[불유쾌]한 告白[고백]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을 두려워 함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他人[타인]을 警告[경고]하는 것이 된다. 셋째로는 良心[양심]이 解放[해방]을 받고 淸潔[청결]해짐을 느끼며 平和[평화]와 喜悅[희열]을 맛보게 된다. 勿論[물론] 罪自體[죄자체]는 그리스도의 十字架[십자가]에 依[의]하여 淨潔[정결]함을 얻은 것이지마는. 이런 信仰[신앙]위에서 저들은 日常生活[일상생활] 中[중] 罪[죄]를 犯[범]한 때에는 하나님 앞에 悔改[회개]할 뿐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自白[자백]하고야 마음 놓는다. 罪[죄]를 自白[자백]할 뿐 아니라 自己[자기]의 罪過[죄과]로 말미암아 害[해]받은 相對方[상대방]에 對[대]하여 그 罪過[죄과]를 「賠償[배상]」해야 할 것을 主張[주장]한다. 罪[죄]를 容恕[용서]함은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이나 損害[손해]를 賠償[배상]하는 것은 悔改[회개]한 者[자]의 義務[의무]다. 悔改[회개]한 稅吏[세리] 사캐오가 토색한 것이 있으면 四倍[4배]로 하여 갚겠나이다 한 것이라든지 남에게 罪犯[죄범]한 것이 있으면 그 物件[물건] 代價[대가]에 五分之一[오분지일]을 더 加[가]하여 그에게 주어 賠償[배상]하라 한 民數記[민수기] 5장 6, 7절, 規例[규례]라던지가 다 이를 가르침이다. 이에 對[대]하여 프랭크는 自己[자기]의 쓰린, 그러나 기쁜 經驗[경험]을 이야기 한 것이 있다. 『中國[중국]에서도 가장 景勝[경승]의 地[지]인 揚子江岸[양자강안] 어느 谿谷[계곡]의 某[모] 中國[중국] 外交官[외교관]의 집에서 열린[85] 宗敎的[종교적] 家庭集會[가정집회]에 列席[열석]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이 景勝[경승]의 地[지]에서[86] 靈肉[영육] 아울러 喜悅[희열]과 平和[평화]에 잠겨서 이틀을 지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나는 甚[심]히 不愉快[불유쾌]해지며 「辨償[변상]」 「辨償[변상]」 「辨償[변상]」하는 생각이 소용돌이[87] 치고 있었다. 암만 이 생각을 물리치려고[88] 애써도 漸漸[점점] 더해지며 아주 못견디게 되었다. 事件[사건]은 某[모] 鐵道會社[철도회사]의 割引券[할인권] 使用[사용]에 關[관]한 것이었는데 나는 不正當[부정당]하게 特權[특권]을 獲得[획득] 使用[사용]한 것이었다. 金額[금액]을 따져가지고 辨償[변상]하려 하였으나 그 會社[회사]의 副總裁[부총재]하고는 여러번 會食[회식]까지 하고 또 尊敬[존경]받는 處地[처지]인데 그가 이것을 알면 내 面目[면목]이 무어란 말인가. 차라리 匿名[익명]의 편지와 함게 돈을 보내지 하고 편지쓰기 始作[시작]하였다. 그러나 편지 써보았자 조금도[89] 良心[양심]에 滿足[만족]이 없었다. 에라 할수 없다. 하고 赤裸裸[적나라]하게[90] 고백의[91] 편지를 써서 내 이름을 똑똑하게 署名[서명]한 다음에 小切手[소절수]와 함께 부치고야 마음이 편안하였다. 이제 이것을 이 中國[중국] 外交官[외교관]과 및 面目[면목]을 生命[생명]으로 아는 모든 中國[중국] 紳士[신사]들 앞에서 所謂[소위] 靈的[영적] 指導者[지도자]로 推仰[추앙]을 받는 내가 참아 告白[고백]할 수가 있나! 하고 얼마 躊躇[주저]하다가 主[주]의 命令[명령]인지라 結局[결국] 大勇氣[대용기]를 내여 이것을 그들 앞에 告白[고백]하였다. 告白[고백]은 그 座中[좌중]에 異樣[이양]의 感化[감화]를 일으켰다. 病[병]으로 療養[요양]왔던 某[모] 中國人[중국인]은 自己[자기]의 預金[예금] 全部[전부]를 털어내어 前[전]에 不當取得[부당취득]한 것을 淸算[청산]하고 悔改[회개]의 實蹟[실적]을 나타내었다. 中國[중국]에 와서 敎鞭[교편]잡고 있는 某[모] 瑞典婦人[서전부인]은 本國[본국]에서 僞證事件[위증사건]으로 말매암아 避身[피신]하여 이리 왔었는데 이 때에 그 關係[관계]를 全部[전부] 바로잡고 새 生活[생활]로[92] 옮기었다.[93] 그 外[외]에도 이런 實例[실례]가 數三[수삼]에 끝나는[94] 것이 아니었다. 云云[운운]』 이런 經驗[경험]으로 보아 「賠償[배상]의 實行[실행]」은 至大[지대]한 壓力[압력]을 가지고 自己[자기]와 다른 이를 그리스도에게로 밀어가는 것임을 疑心[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經路[경로]를 밟아 저들은 罪[죄]의 生活[생활]에서 떠나 새 生命[생명]의 躍動[약동]을 느끼는 새 生活[생활]노[95] 들어간다.
이것을 저들은 「改變[개변]된 生活[생활]」(Changed Life)이라고 부른다. 「改變[개변]된 生活[생활]」 即[즉] 新生[신생]을 體驗[체험]한 사람은 혼자서만 즐길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이 事實[사실]을 나눠줄[96] 義務[의무]가 있다. 이것을 「分給[분급]」(Sharing)이라 한다. 이것은 恩惠[은혜]받은 것은 간증하는 것이니 이 團員[단원]들 事業[사업]의 가장 重要[중요]한 部分[부분]이다. 저들은 몇사람씩[97] 小旅行團[소여행단]을 組織[조직]해 가지고 聖靈[성령]의 引導[인도]하는 대로 이리 저리 이 나라 저 나라 一所不住[일소불주]의 巡禮者[순례자] 生活[생활]을 하며 가는 곳마다 私的[사적] 會談[회담] 즉 「家庭集會[가정집회]」(House Party)를 연다. 사람들은 親[친]한 동무의 집에 이야기 하러 모혀오는 氣分[기분]으로 所定[소정]의 호텔이나 私家[사가]에 모여온다. 그러면 거기서는 무슨 順序[순서]를 짜가지고 法[법]대로 莊重[장중]하게 儀式的[의식적] 禮拜[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거저 通商[통상] 때와 같이 談笑[담소] 話樂[화락]하며 團員中[단원중] 누구나 조용히 靜思[정사]의 時間[시간]을 通[통]하여 靈導[영도]를 받는대로 自己[자기]의 經驗談[경험담] 또는 다른 同志[동지]의 改變[개변]된 生活[생활]을 事實[사실] 그대로 이야기한다. 이어서 두서너 사람이 各其[각기] 같은 方式[방식]의 實驗談[실험담]을 이야기하고 무슨 묻는 것이 있으면 아주 純直率直[순직솔직]하게 友情[우정]을 가지고 彼此應答[피차응답], 거기에는 雄辯術[웅변술]로 鍊鍛[연단]한 說敎[설교]도 없고 秋毫之末[추호지말]을 갈라내는 理論[이론]도 없다. 그저[98] 터놓고[99] 座談[좌담]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自然[자연]히 異常[이상]한 感化力[감화력]이 있어 參與[참여]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대로 黙過[묵과]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그들의 「經驗[경험]나누는」[100] 方式[방식]이며 이 일을 通[통]하여 聖神[성신]은 많은 사람의 生活[생활]을 改變[개변]하는 까닭에 저들은 이런 團員[단원]들을 「生活改變者[생활개변자]」(Life Changer)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複雜[복잡]한 社會[사회]에 있어서 다만 個人[개인] 個人[개인]의 生活[생활]을 現[현] 社會道德[사회도덕]에 順應[순응]하도록 改變[개변]하므로 因[인]하여 能[능]히 全的[전적]으로 새 世紀[세기]를 齋來[재래]할[101] 수 있을까[102] 또는 以上[이상]에 말한바 「四絶對[4절대]」라는 倫理的[윤리적] 標準[표준]은 社會制度[사회제도]를 全的[전적]으로 改善[개선]하기 前[전]에는 實行[실행] 不可能[불가능]이 아닌가? 하는 疑問[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저들의 社會生活[사회생활] 規範[규범]은 무엇인가? 저들은 獨特[독특]한 社會學[사회학]이나 社會的[사회적] 計劃[계획]을 세운 것이 없다. 저들의 말에 依[의]한다면 繁榮[번영]은 人生最高[인생최고]의 價値[가치]라고 생각한다거나 貧[빈]은 例外[예외]없이 道德的[도덕적]이오 富[부]는 必然的[필연적]으로 惡[악]이란다거나 하는 現代[현대]의 二大[2대] 潮流[조류]는 둘다 基督敎的[기독교적]이 아니다. 福音[복음]에 가르친 것은 簡單[간단] 明瞭[명료]하여 어길데가[103] 없다. 即[즉] 모-든 物件[물건]은 온통[104] 다 하나님께 屬[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聖慮[성려] 聖旨[성지]에 基[기]하여 하나님의 財産[재산]을 오직 그 나라와 義[의]를 爲[위]하여 賢明[현명]히 處理[처리]할 것이다. 이것은 理論[이론]으로서는 아무[105] 새맛이 없는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實踐[실천]하는 데서 生命[생명]이 넘치는 새 맛이 난다. 우리가 다 自己[자기]의 있는 자리에서 聖旨[성지]를 體[체]받아 이것을 實踐[실천]한다면 지금까지의 煩瑣[번쇄]한[106] 社會學的[사회학적] 理論[이론] 社會的[사회적] 計劃[계획]은 말없이 成就[성취]하고 말 것이라 한다. 그러고 이 團員[단원]들은 事業[사업]을 할 때 돈 때문에 사람에게 먼저 가서[107] 請[청]드는 일을 하지 않는다. 手中[수중]에 一分錢[일분전] 없을 때에도 「信仰[신앙]과 祈禱[기도]」로 이 일을 冒險[모험]한다. 저들은 이 冒險[모험]을 해서 主[주]께 버림받은 일이 없노라고 늘 證據[증거]한다. 團員[단원]들은 또한 境遇[경우]에 따라 生活費[생활비]를[108] 나누어[109] 진다. 저들은 自己[자기]네가 一大[일대] 靈的[영적] 家族[가족]에 屬[속]한 것을 늘 意識[의식]하고 한 사람이 괴로우면 全體[전체]가 괴로움을 如實[여실]히 느끼는 까닭이다.
나는 以上[이상]에서 가장 同情[동정]있는 態度[태도]로 뿍맨 運動[운동]의 全貌[전모]를 紹介[소개]한 줄 믿는다. 그러나 이 運動[운동]도 批判[비판]할 餘地[여지] 없으리만치 完全無缺[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① 우선 저들은 너무 方法論[방법론]에 치우친 點[점]이 있다. 저들의 重要團員中[중요단원중] 某[모]의 말이 「方法[방법]이 使命[사명]이요 使命[사명]이 方法[방법]이다」라고 斷言[단언]하였다. 그리하여 저들의 行[행]하는 方法[방법]이 아니고는 하나님께서 그 役事[역사]를 하시지 못할 것 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各人各色[각인각색]으로 사람은 個性[개성]이 다르다. 그러므로 主[주]께로 나아오는 길도 千千萬[천천만] 갈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큰 機械[기계]를 가지고 多量生産[다량생산]을 하시는 이가 아니다. 우리는 다 그의 手工品[수공품]이다」. 어떤 사람은 뿍맨이 닦은 길로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옛길로도[110] 올 수 있고 새 길로 혼자 허덕이며 올 수도 있는 것이다. ② 너무 主觀的[주관적]이다. 저들의 所謂[소위] 「靈導[영도]」라는 것은 勿論[물론] 可能[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靈導[영도]」는 主[주]께서 特別[특별]히 重大[중대]한 使命[사명]을 내리우실[111] 때에 나타내시는 것이오 日常生活[일상생활]의 細細[세세]한 일은 우리의 智慧[지혜]에 맡기시는 것이다. 우리의 智慧[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우리 智慧[지혜]로서 할 수 있는 일은 決[결]코 하나님께서 干涉[간섭]하시지 않으실 줄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智慧[지혜]를 聖別[성별]하여 主[주]께 바치고[112] 그 最善[최선]을 다하도록 努力[노력]할 것이다. 그러다가 아무리[113] 하여도 智慧[지혜]가 미치지[114] 않는 境遇[경우]에는 하나님의 黙示[묵시]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줄 안다. 그런데 이 그룹 사람들은 勿論[물론] 이런 信念[신념]에서 出發[출발]은 했을 것이나 事實[사실]에 있어서 너무 主觀[주관]으로 흘러간다.[115] 스노-덴(James H. Snowden)[116] 博士[박사]의 글에 보면 푸랭크는 郵票[우표] 한 장을 사도 「靈導[영도]」를 기다려서 산다고 했으니 이것이 或[혹] 酷評[혹평]일는지 모르나 그들의 所謂[소위] 「靈導[영도]」에는 이런 種類[종류]의 것이 大部分[대부분]이다. 牧師[목사]가 每日[매일] 아침 「오늘은 누구누구의 집을 訪問[방문]하오리까?」 하고 하나님께 여쭈어[117] 「靈導[영도]」를 얻은 다음에 訪問[방문]하고 「누구에게 가서는 무슨 말 하오리까?」 하고 「靈導[영도]」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主觀的[주관적]이며 그 所謂[소위] 「靈導[영도]」라는 것은 自己[자기] 投影[투영]의 誤認[오인]이 되어 結局[결국]은 하나님의 거룩한 交際[교제]를 冒瀆[모독]하는데 이르기 쉬운 것이다. 勿論[물론] 저 團員[단원]의 대部分[부분]은[118] 上類階級[상류계급]의 名士[명사]들이니만치 理智[이지]가 이미 높은 程度[정도]로 發達[발달]되었으니까 이런 危險[위험]에서 避[피]할 수도 있을 것이나 無智[무지]한 庶民[서민]에게는 至極危險[지극위험]한 方法[방법]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③ 信仰的[신앙적] 道德的[도덕적] 驕慢[교만]에 빠지기 쉽다. 正直[정직], 純潔[순결], 非利己[비이기], 愛[애]의 「四絶對[4절대]」를 그 道德的[도덕적] 標準[표준]으로 세우는 것과 그것을 참으로 所有[소유]하는 것과는 딴 問題[문제]이다. 그런데 저들은 이것을 저들이 이미 所有[소유]한 것 같이 생각하여 無意識中[무의식중]에 自慢[자만]에 빠진다. 現今[현금]에 가나다에서는 겨우 聯合[연합]된 敎會[교회]가 이 그룹 運動[운동]으로 말미암아 內的[내적] 分裂[분열]이 생겨서 적잔은 頭痛[두통]을 느끼고 있다 한다. 自己[자기]네 그룹에 들지 않으면 牧師[목사]고 長老[장로]고 할 것 없이 다 非基督敎人[비기독교인]같이 생각하며 排擊[배격]하는 例[예]가 不少[불소]하며 信仰的[신앙적] 驕慢[교만]에 빠지는 者[자]가 많다 한다. 그러므로 윌손 敎授[교수][Douglas J. Wilson][119]는 「四絶對[4절대]」만으로 不足[부족]하니 또 한가지 絶對[절대] 即[즉] 「絶對謙卑[절대겸비]」(Absolute Humility)를 더하여야 하겠다고 까지 말하였다. ④ 神學[신학]을 度外視[도외시] 함은 不健全[불건전]하다 - 저들은 敎會生長[교회생장]의 歷史[역사]를 잘못 認識[인식]하였다. 저들은 初代敎會[초대교회]와 웨슬레 復興時代[부흥시대]의 敎會[교회]만을 眼中[안중]에 두고 다른 時代[시대]의 敎會史[교회사]는 無視[무시]한다. 그러나 初代敎會[초대교회]의 潑潑[발발]한 生命[생명]을 第二[제2], 三世紀[3세기]에 輩出[배출]한 卓越[탁월]한 神學者[신학자]들이 理論的[이론적]으로 整頓[정돈]하고 擁護[옹호]하지 않았던들 그 生命[생명]이 能[능]히 자리잡힌 바를 물길을[120] 따라 흘렀을는지가 疑問[의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全的[전적]으로 公平[공평]하게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神學[신학]과 理論[이론]으로 사람을 救援[구원]하시지[121] 않는다』 한 저들의 말은 치우친 말이다. 神學[신학]은 언제나 運動[운동]의 脊髓[척수]여서 生命[생명]이 없는 것 같으나 굳게 뻗쳐[122] 全身[전신]을 지탱하는[123] 役割[역할]을 하는 것이다. 순[124] 感情[감정]만을 主唱[주창]하면 無骨虫[무골충]이 되기 쉽고 無批判的[무비판적] 神秘主義[신비주의]에 흐르기도 쉬운 것이다. 特[특]히 自己[자기]의 經驗[경험]에 置重[치중]하는 運動[운동]은 確乎[확호]한 神學體系[신학체계]를 가진 者[자]에게서만 그 健全[건전] 堅實[견실]한 效果[효과]를 期待[기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神學校[신학교] 敎授[교수] 밴ㆍ틸(Van Til)[125] 博士[박사]가 아홉가지 論點[논점]을 들어 餘地[여지]없이 이 運動[운동]을 排擊[배격]한 것도 그 主要點[주요점]이 여기 있다. ⑤ 公衆[공중] 앞에서 罪[죄]를 告白[고백]하는 것은 甚[심]히 삼갈 일이다. 이것은 어떤 때에는 德[덕]을 세우는 도움이 되나 흔히는 敎會[교회]에 큰 弊害[폐해]를 끼치는 것이다. 敎會史[교회사]에 나타난 經驗[경험]으로 볼지라도 初代敎會[초대교회]에서 이 方式[방식]을 썼었으나 차츰 建德[건덕]보다도 害[해]끼치는 일이 많으므로 主後[주후] 450年[년] 法王[법왕] 레오 一世[1세][126]는 書面[서면]으로 써서 神父[신부]의 認可[인가]를 맡은 것이 아니면 公衆[공중]앞에서 告白[고백]하지 못하게 發令[발령]하였고 그것도 갖은[127] 훼방과[128] 批評[비평]의 씨를 뿌리는 까닭에[129] 1215年[년]에는 敎會[교회]에서 公衆告白[공중고백]을 全然禁止[전연금지]하고 一年[일년]에 한번씩[130] 私的[사적] 告白[고백]을 義務的[의무적]으로 實行[실행]하게 한 것이다[131] 特[특]히 그 告白[고백]이 性的關係[성적관계]의 것인 때에는 그 弊害[폐해]가 莫大[막대]하다. 그런데 이 團員[단원]들의 告白中[고백중]에도 性的關係[성적관계]의 것이 많아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곰[132] 차마[133] 머리를 들 수 없을 만치 창피스럽게 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 푸린스톤 大學內[대학내]에서 이 運動[운동]을 指導[지도]하던 한 幹部學生[간부학생]의 證言[증언]한 바이다. 우리는 個人[개인]으로 찾아가서 잘못한 것을 謝罪[사죄]할 義務[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반듯이 公席[공석]에서 發表[발표]할 必要[필요]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懺悔[참회]의 마음으로 告白[고백]한다는 것보다 自己[자기]가 告白[고백]할 罪過[죄과] 있음을 자랑하는 態度[태도]로 뻔뻔스럽게 구는 것이랴?』
뿍맨은 現代人[현대인], 特[특]히 知識階級[지식계급]의 心理[심리]를 가장 잘 捕捉[포착]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① 그는 現代[현대]의 知識層[지식층]의[134] 사람들이 뷰-스(Views - 評論[평론])보다도 뉴스(News - 消息[소식])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新聞[신문]을 읽어도 「消息欄[소식란]」부터 보고 「論說欄[논설란]」은 맨 나중에[135] 보든지 아주 안보든지 하는 것이 現代人[현대인]의 心理狀態[심리상태]다. 그러므로 뿍맨은 「說敎[설교]」를 그만두고 「實際談[실제담]」 即[즉] 消息[소식]을 傳[전]한다. ② 實際談[실제담] 中[중]에서도 特[특]히 어떤 個人[개인]의 人格[인격]에 關係[관계]된 일 듯기를 무척 좋아 하는 것이 現代人[현대인]이다. 即[즉] 私的事件[사적 사건, Personal affairs]을 좋아한다. 어디서 火災[화재][136] 났다거나 큰 물이 졌다거나 하는 消息[소식]보다도 崔某[최모] 李某[이모]의 어떤 個人的[개인적] 事件[사건]에 더욱 興味[흥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뿍맨은 李某[이모], 金某[김모], 特[특]히 全國的[전국적] 或[혹]은 全世界的[전세계적]으로 有名[유명]한 이들, 英國貴族[영국귀족]들, 敎授[교수]들, 學生[학생]이라도 옥쓰포-드 學生[학생]들의 個人的[개인적], 私生活[사생활]의 가장 깊이 감추인 데를[137] 털어내어 이야기하게 한다. ③ 「理論[이론]보다도 生活[생활]」 - 『生活[생활]을 通[통]하여 知識[지식]』에, 『네 生活[생활]로 네 信仰[신앙]을 立證[입증]하라』하는 것이 現代人[현대인]의 부르짖음이다. 그러므로 그는 될수 있는대로 理論[이론]을 避[피]하고 實生活[실생활]을 보이려 한다. 그러므로 「生活[생활] 改變者[개변자]」 「改變[개변] 生活[생활]」 等[등] 言必稱[언필칭] 生活[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④ 그는 現代[현대] 靑年[청년]들이 基督靑年[기독청년]들까지도 무슨 「論[론]」이니 무슨 「設[설]」이니 무슨 「主義[주의]」이니 하는 紙上[지상]의 空論[공론]에 실증낸 것을 보았다. 特[특]히 基督敎界[기독교계]에 있어서도 根本主義[근본주의]니 現代主義[현대주의]니 社會的[사회적] 福音[복음]이니 하고 너무들 理論[이론]에 熱中[열중]해 왔기에 이제[138] 다들 실증낸[139] 것을 그는 잘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神學[신학]을 말하지 않고 敎派[종파]를 캐지않는 代身[대신], 一種[일종] 神秘[신비]한 靈驗[영험]을 高潮[고조]한다. ⑤ 그는 現代靑年[현대청년]이 무었에든지 抑壓[억압] 當[당]하기를 싫어하며[140] 特[특]히 儀式的[의식적] 宗敎[종교]에 反感[반감] 가지는 것을 아는 同時[동시]에 탁 터놓고[141] 장난하는[142] 뿌릿지[카드 노름]나 여기서 말하면 「마작」같은[143] 노름판에 모이기를 좋아하는 줄 안다. 그러므로 그는 敎會堂[교회당]에 오라고 廣告[광고]하는 代身[대신]에 「파-티」(家庭會談[가정회담])에 오라고 한다. 오면 禮拜堂[예배당]에 온 것처럼 不自然[부자연]스럽거나 서먹서먹한 氣分[기분]이 없고 다들 이야기하고 웃고 하여 自然[자연]히 마음에 맞아서 쉽게 感動[감동]된다. ⑥ 現代[현대]의 知識層[지식층]에서는 洗鍊[세련]된 感情[감정]을 가진 까닭에 聖潔敎會式[성결교회식]으로 손벽치고[144] 뛰놀면서 群衆心理[군중심리]를 利用[이용]하여 感情[감정]을 煽動[선동]시키는[145] 데에 反感[반감]을 가지고 野俗視[야속시]하는 줄을 그는 잘 안다. 그러므로 그는 조금이라도[146] 煽動的[선동적] 演說[연설]이나 不自然[부자연]한 言行[언행]을 하지 안는다. 『고요히 흐르는 요단江[강]물에 沐浴[목욕]시키려는[147]』 것이 그의 뜻인 것 같다. ⑦ 그는 時代[시대]를 따라서는 묵은 理想[이상]을 새 말(語[어])에 담아서 새 理想[이상]을 만드는 功效[공효]를 利用[이용]하였다. 그리하여 「祈禱[기도]와 瞑想[명상]」 代身[대신]에 「靜思[정사]의 時間[시간]」, 「靈感[영감]」 代身[대신]에 「靈導[영도]」 「悔改[회개]」 代身[대신]에 「生活改變[생활개변]」 「新生[신생]」 代身[대신]에 「改變[개변]된 生活[생활]」 傳道[전도] 代身[대신]에 「分給[분급]」 「傳道者[전도자]」 代理想[대이상]이[148] 「生活[생활] 改變者[개변자]」[149] 等[등]을 써서 事實[사실]은 오래오래 묵은 理想[이상]이지마는 淸新[청신]한 맛을 가지게 한다.
이런 點[점]으로 보아 그는 智慧[지혜]있는 者[자]임을 알겠다. 바울의 所謂[소위] 「律法[율법]있는 者[자]에게는 律法[율법]있는 者[자] 같이 하고 律法[율법]없는 者[자]에게는 律法[율법]없는 者[자]같이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게 하겠다고 애썼노라는 것이 곧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스테인리ㆍ죤스[Stanley Jones][150]의 이른바 「不可避[불가피]의 事件[사건]을 福音化[복음화]하라」(Evangelize the inevitable)는 것이 또한 이것을 意味[의미]한 것이다. 캐나다 聯合敎會[연합교회] 會員[회원]이오 神經病[신경병]과 心理解剖學[심리해부학]의 專門家[전문가]인 스티븐슨(C. H. Stevenson M.D.)[151] 博士[박사]는 뿍맨 自身[자신]의 心理狀態[심리상태]를 解剖[해부]하여 그 不健全[불건전]한 部分[부분]을 여섯 가지로 指摘[지적]한 論文[논문]을 캐나다 聯合敎會[연합교회] 機關紙[기관지]인 「뉴 아우트룩」(The New Outlook)에 發表[발표]하였다. 너무 酷評[혹평]인 것 같으나 專門家[전문가]가 아닌 우리로서는 可否[가부]를 말하기 어려우므로 그만둔다. 그러나 以上[이상]에 말한 心理學的[심리학적] 技巧[기교]가 單純[단순]히 技巧[기교]에만 그친[152] 것이 아니고 潑潑[발발]한 靈的[영적] 生命[생명]이 그 技巧[기교]를 技巧[기교]인줄도 모르게 하는 데에 이 運動[운동]의 生命[생명]이 있는 것이다.[153]
人生[인생]의 機械化[기계화]가 날로 甚[심]해가고 末梢神經[말초신경]만 쟌뜩 銳敏[예민]해져 가는 現代人[현대인]에게 이러한 靈的[영적] 運動[운동]이 있음을 충心[심]으로[154] 感謝[감사]안할 수 없는 일이다. 이 運動[운동]의 成敗[성패]는 今後[금후]의 天國運動[천국운동]에 至大[지대]한 關係[관계]가 있을 것이므로 예수의 나라와 그 義[의]를 思慕[사모]하고 사랑하는 者[자]로서는 누구나 이 運動[운동]의 成功[성공]을 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意味[의미]에서 나는 길게[155] 紹介[소개]한 것이며 이 意味[의미]에서 또한 그 短點[단점]을 指摘[지적]한 것이다. 이제 나는 우리 敎會[교회]가 이 運動[운동]에서 特[특]히 배워야 할 點[점], 이 運動[운동] 自體[자체]의 特殊[특수]한 價値[가치]라고 볼만한 點[점]을 몇 가지 들고저 한다. ① 저들이 絶對[절대] 神意[신의]에 服從[복종]하려는 態度[태도]로 主[주] 앞에서 고요히 기다리는[156] 아츰[157] 祈禱[기도]다. 우리 敎役者[교역자]가 날마다 그날의 生活[생활]을 始作[시작]하기 전에[158] 참으로 고요히 백지와[159] 같은 심령을[160] 가지고 30분 내지[161] 한 시간[162] 主[주]의[163] 손가락이 그 위에 움직이기를[164] 기대린다면[165] 그 교역자[166], 그 敎會[교회]에는 오래지 않아서 靈的[영적] 奇蹟[기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敎役者[교역자]들의 모힘에서[167] 또한 그렇게하면 彼此[피차] 새로운 友愛[우애]가 생길 것을 疑心[의심]하지 않는다. ② 個人傳道[개인전도]와 信者間[신자간]의 友愛[우애, Fellowship]다. 우리 敎會[교회]는 점차[168] 「集會[집회]」는 있으나 「友愛[우애]」는 없어진다. 거죽으로 모이나[169] 속으로 갈라지고 입으로 말하나 行實[행실]에 나타나지 않는다. 個人接觸[개인접촉]으로 말미암은[170] 傳道[전도]의 必要[필요]는 우리 朝鮮[조선] 敎會[교회]에서 累累[누누]히 說明[설명]하는 바이므로 더 말하지 않으나 그 「技巧[기교]」에 있어서는 特[특]히 이 그룹의 方式[방식]에서 參照[참조]할 바가 많은 줄 안다. ③ 生活[생활]에 나타나는 悔改[회개]의 열매다. 生活[생활]은 信仰[신앙]의 열매다. 열매 없는 나무는 베어버릴[171] 것이다. 特[특]히 저들의 「辨償[변상]」하려는 心情[심정]은 거룩한 祝福[축복]을 받기에 不足[부족]함이 없는 열매다. 그리고 權謀術數[권모술수]를 떠난 天眞[천진]한 言行思[언행사]는 聖神[성신]의 열매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 運動[운동]이 聖靈[성령]의 役事[역사]이심을 疑心[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以上[이상]에 指摘[지적]한 諸短點[제단점]과 不健全[불건전]한 點[점]에 늘 留意[유의]하여 反省[반성], 自警[자경]하지 않으면 얼마 아니하여 惡魔[악마]의 詭計[궤계]에 빠져서 敎會[교회]에 많은 혼단을 일으키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謙遜[겸손]」하게 自己[자기]들의 特殊[특수]한 使命[사명]에만 全力[전력]을 다하고 남을 평론하지[172] 않으며 다른 길로[173] 主[주]께 나아가는 者[자]를 억지로 끌어오려고[174] 하지 않고 어디까지든지 「敎會[교회]」를 奉仕[봉사]하려는 푸랜시스 敎團[교단]과 같은 團體[단체]가 된다면 우리 敎會[교회]는 이 運動[운동]으로 말미암아 큰 祝福[축복]을 받을 줄 믿는다. 말로는 神學[신학]을 超越[초월]하고 宗派[종파]를 超越[초월]한다 하지만 저희가 줄곧 저희의[175] 方式[방식]만을 固執[고집]하는 때에는 結局[결국] 새 宗派[종파]하나 생기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니 그렇지 않아도 分裂[분열]에 頭痛[두통] 알른 新敎派[신교파]에서 그리 祥瑞[상서]로운 일이라 볼 수 없는 것이다. 캐나다 聯合敎會[연합교회] 機關紙[기관지]인 「뉴-아우트룩」 主筆[주필] 크라이톤[W. B. Creighton][176] 博士[박사]는 最初[최초]부터 이 運動[운동]의 危險性[위험성]에 對[대]하여 警告[경고]하였으며 最近[최근]에 와서 캐나다의 各[각] 敎派[교파]에서 代表[대표] 三十名[30명]을 뽑아 特別委員會[특별위원회]를 組織[조직]해 가지고 敎理的[교리적], 倫理的[윤리적], 心理學的[심리학적], 敎會治理的[교회치리적], 四方面[4방면]으로 細密[세밀]히 調査[조사] 硏究[연구]하여 그 不健全[불건전]한 點[점]을 일일이[177] 指摘[지적]함과 同時[동시]에 그 讚賞[찬상]할 點[점]을 또한 公平[공평]하게 紹介[소개]하여 單行本[단행본]으로 發表[발표]하였다. 허나 筆者[필자]는[178] 아직 얻어 읽지 못하고 이글 쓰게 된 것을 遺憾[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要[요]컨대 우리는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判斷[판단]하는 것이 原則[원칙]임을 믿는 바 지금까지의 이 運動[운동]으로 보아 좋은 열매가 惡[악]한 열매보다 훨씬 더 많음을 事實[사실]로 認定[인정] 안할 수 없는 以上[이상], 이 運動[운동]의 發展[발전]과 完熟[완숙]을 祈願[기원]함과 同時[동시]에 나 自身[자신]의 恩惠[은혜]받은 바를 感謝[감사]안할 수 없는 것이다.
[각주]
1.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스위스 출신의 개혁주의 목사이자 신학자로, 20세기 기독교 신학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장 칼뱅과 더불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며, 19세기부터 이어져 온 ‘자유주의 신학’의 낙관론을 무너뜨리고 ‘신정통주의(Neo-Orthodoxy)’라는 새로운 신학적 흐름을 열었다.
↩
2. 『신학지남』, 『낙수』에는 “英米[영미]”
↩
3. 프랭크 북맨(Rev. Frank Nathan Daniel Buchman, 1878~1961)은 미국의 루터교 목사로, 20세기 전반에 걸쳐 전 세계적인 영적·도덕적 부흥을 이끈 기독교 지도자이다. 그는 옥스퍼드 그룹(Oxford Group)과 도덕재무장운동(Moral Re-Armament, MRA)의 창시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그의 가르침은 종교를 넘어 사회, 정치, 그리고 현대 심리 치유 프로그램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
4.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基謂[기위]”
↩
5. 옥스퍼드 그룹 운동(Oxford Group Movement)은 프랭크 북맨(Frank Buchman) 목사가 1920년대에 창시한 기독교 영적 부흥 및 도덕 갱신 운동이다. 초기에는 ‘제1세기 기독교 신앙 단체’(이 글에서는 ‘초대기독교신우애단’, First Century Christian Fellow-ship)로 불렸으나,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학생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부흥하자 ‘옥스퍼드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운동은 신앙이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삶의 실천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개인의 삶을 점검하는 엄격한 도덕적 기준으로 다음 네 가지를 강조했다. [절대 정직(Absolute Honesty), 절대 순결(Absolute Purity), 절대 무사/이타주의(Absolute Unselfishness), 절대 사랑(Absolute Love)]
↩
6.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미국]에서는”
↩
7. 존 키블(John Keble, 1792~1866)은 영국 성공회의 사제이자 시인, 신학자이다. 1833년, 그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행한 “국가적 배교(National Apostasy)”라는 제목의 설교가 바로 19세기 ‘옥스퍼드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는 당시 국가가 교회를 통제하려 하고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했다. 그의 신앙적 헌신을 기리기 위해 사후에 옥스퍼드 대학교 내에 ‘키블 칼리지(Keble College)’가 설립되기도 했다.
↩
8.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은 19세기 영국 종교계에서 가장 지성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이다. 키블과 함께 옥스퍼드 운동을 이끌며,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전통과 가톨릭적 유산을 성공회 안에서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논문(Tracts)을 발표했다. 성공회 사제였으나, 자신의 신학적 탐구 끝에 1845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영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후 가톨릭 추기경이 되었으며,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가톨릭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
9.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人[미국인]”
↩
10.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人士[인사]들께”
↩
11.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人[미국인]”
↩
12.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미국]”
↩
13.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作定[작정]하고”
↩
14.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準備[준비]하는”
↩
15.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自期[자기]하는”
↩
16.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스사로”
↩
17.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憤然[분연]히”
↩
18. 『신학지남』, 『낙수』에는 “敎役者及[교역자급] 平信徒[평신도]로”
↩
19. 『신학지남』, 『낙수』에는 “왼통”
↩
20.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적은”
↩
21.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적은”
↩
22.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은 “못박힌”
↩
23.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痛烈[통렬]한 情狀[정상]이”
↩
24.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隔離[격리]”
↩
25. 『신학지남』, 『낙수』에는 “채와”
↩
26.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화주구싶다는”
↩
27.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미국]의”
↩
28.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容赦[용사]해”
↩
29.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미국]에”
↩
30. 『신학지남』, 『낙수』에는 “조곰도”
↩
31. 『신학지남』, 『낙수』에는 “맑음하게”
↩
32. 『신학지남』, 『낙수』에는 “틔하나”
↩
33.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人[미국인]의”
↩
34.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호려는”
↩
35.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사람들께”
↩
36.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호는”
↩
37. 『신학지남』, 『낙수』에는 “蘇格蘭[소격란]의”
↩
38.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미국]”
↩
39. 『신학지남』, 『낙수』에는 “窮塞[궁색]한”
↩
40.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座中[좌중]은”
↩
41. 『신학지남』, 『낙수』에는 “군들은”
↩
42. 『신학지남』, 『낙수』에는 “푹은한”
↩
43.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空氣[공기]를”
↩
44.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香氣[향기]롭게”
↩
45. 『신학지남』에는 “上類人[상류인]으로서의”,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上級人[상급인]으로서의”
↩
46. 『신학지남』, 『낙수』에는 “열 때”
↩
47. 『신학지남』, 『낙수』에는 “자아내여”
↩
48. 『신학지남』, 『낙수』에는 “紋[문]의를”
↩
49.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煩瑣[번쇄]한”
↩
50.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哲學論[철학론]이나를”
↩
51. 『신학지남』, 『낙수』에는 “이저버렸다”
↩
52. 『신학지남』, 『낙수』에는 “부처두고”
↩
53. 『신학지남』, 『낙수』에는 “거저”
↩
54. 『신학지남』, 『낙수』에는 “겼고”
↩
55.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호게”
↩
56. 『신학지남』, 『낙수』에는 “거니며”
↩
57. 『신학지남』에는 “인제”, 『낙수』에는 “인저”
↩
58.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瀰漫[미만]하게”
↩
59. 『신학지남』, 『낙수』에는 “더부러”
↩
60.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10월 22일”
↩
61. 월터 윈덤 경(Sir Walter Windham, 1868~1942). 문헌의 ‘Winpham’은 Windham의 오기이다. 영국의 영웅적인 해군 장교이자 영국 초기 항공(비행) 역사의 개척자이다. 영국 왕실 통신관(King's Messenger)을 지냈으며, 세계 최초의 항공 우편 서비스를 시도한 인물로 유명하다. 노년에 북맨의 옥스퍼드 그룹 운동에 헌신하며 전 세계 순회 전도에 동행했다.
↩
62. 시드니 드루리-로우 제독(Vice-Admiral Sidney Drury-Lowe, 1871~1945). 문헌에는 ‘육군중장’으로 번역되었으나 실제로는 영국 왕립 해군의 해군 중장(Vice-Admiral) 출신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고위 장성으로, 퇴역 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에서 일하다가 옥스퍼드 그룹 운동을 접하고 영적 각성을 경험했다. 해군 제독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삶을 간증하는 모습은 당시 캐나다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
63. 에비 맥밀런 목사 부부(Rev. Ebenezer Macmillan). 남아프리카 연방 장로교회(South African Presbyterian Church)의 총회장을 지낸 스코틀랜드 출신의 저명한 성직자이다. 북맨이 192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했을 때 깊은 감명을 받고 운동에 합류하였으며, 부인이 함께 캐나다 캠페인에 동행했다.
↩
64. 프랑크 폰 크라몬(Frank von Cramon). 옛 독일제국의 귀족 영지였던 실레시아(Silesia) 출신의 독일 귀족 가문 청년이다. 그의 어머니는 제1차 세계대전 독일 육군 중장(아우구스트 폰 크라몬)의 부인인 ‘모니 폰 크라몬(Moni von Cramon)’으로, 북맨과 매우 깊은 영적 교류를 나누며 독일 내 옥스퍼드 그룹 운동을 이끌었던 핵심 인물이었다. 프랭크는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국제 단원으로 캐나다에 동행했다.
↩
65. 제임스 와트(James Watt).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딘바라) 지역에서 공산주의 노동운동을 이끌던 과격파 정치 지도자였다. 그러나 옥스퍼드 그룹을 만난 뒤 “계급투쟁과 혁명보다, 사람의 내면과 도덕이 먼저 변해야 진정한 사회 개혁이 가능하다”고 깨닫고 공산주의를 버린 뒤 기독교 신앙 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그의 간증은 1930년대 지식인들과 노동계에 극적인 사례로 자주 선전되었다.
↩
66. 릴리안 폰 헤이케렌 남작부인(Baroness Lilian von Heeckeren, 1883~1982). 화란(네덜란드)의 명문 귀족 가문 출신으로, 네덜란드 왕실의 궁정 간부였던 헤이케렌 남작의 딸이다. 네덜란드 사회의 화려한 사교계 생활을 회의적으로 느끼던 중 북맨을 만나 철저한 삶의 변화를 겪었고, 이후 옥스퍼드 그룹 운동을 네덜란드와 유럽 최고위층에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
67. 『신학지남』, 『낙수』에는 “米國[미국]의”
↩
68. 『신학지남』, 『낙수』에는 “수태”
↩
69. 『신학지남』, 『낙수』에는 “터처”
↩
70.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호인”
↩
71. 『신학지남』, 『낙수』에는 “盛況[성황]이였음을”
↩
72.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規範[규범] 下[하]에서”
↩
73. 『신학지남』, 『낙수』에는 “方式[방식]의”
↩
74. 『신학지남』, 『낙수』에는 “生活[생활]을”
↩
75. 『신학지남』, 『낙수』에는 “爲先[위선]”
↩
76. 『신학지남』, 『낙수』에는 “씨여있는”
↩
77.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不得已[부득이]”
↩
78.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特別[특별]하신”
↩
79.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曠野[광야]에”
↩
80. 『신학지남』에는 “「靈導[영도]」(Guidance)”, 『낙수』에는 “「靈導[영도]」(Cuidance)”로 표기되었는데 『낙수』가 G를 C로 오기한 것이다.
↩
81.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事業[사업]에”
↩
82. 『신학지남』, 『낙수』에는 “運動[운동]할”
↩
83. 『신학지남』, 『낙수』에는 “利己的[이기적] 野望[야망]을”
↩
84. 『신학지남』, 『낙수』에는 “爲先[위선]”
↩
85. 『신학지남』에는 “열린”, 『낙수』에는 “열닌”,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연린”
↩
86. 『신학지남』에는 “地[지]에서”, 『낙수』에는 “地[지]의서”
↩
87. 『신학지남』, 『낙수』에는 “소용도리”
↩
89. 『신학지남』, 『낙수』에는 “조곰도”
↩
90.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赤裡裡[적리리]하게”
↩
91.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告白[고백]의”
↩
92. 『낙수』에는 “生活[생활]노”,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生活[생활]도”
↩
96.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화줄”
↩
97.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몇 사람式[식]”
↩
98. 『신학지남』, 『낙수』에는 “거저”,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그져”
↩
99. 『신학지남』, 『낙수』에는 “터쳐놓고”
↩
100. 『신학지남』, 『낙수』에는 “經驗[경험]난호는”
↩
101.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齎來[재래]할”
↩
102. 『신학지남』, 『낙수』에는 “있을가”
↩
103. 『신학지남』, 『낙수』에는 “오낄데가”
↩
104. 『신학지남』, 『낙수』에는 “왼통”
↩
105. 『신학지남』, 『낙수』에는 “아모”
↩
106. 『신학지남』, 『낙수』에는 “煩瑣[번쇄]한”
↩
107. 『신학지남』, 『낙수』에는 “몬저 가서”
↩
108. 『신학지남』, 『낙수』에는 “生活費[생활비]를 서로 分擔[분담]한다. 靈驗[영험]을 난호는 때와 같은 心念[심념]으로 生活費[생활비]도”
↩
109. 『신학지남』, 『낙수』에는 “난호아”
↩
110. 『신학지남』에는 “前[전]에 길로도”, 『낙수』에는 “前[전]엣 길노도”
↩
111. 『신학지남』, 『낙수』에는 “나리우실”
↩
112. 『신학지남』에는 “바치고”, 『낙수』에는 “밭이고”
↩
113. 『신학지남』, 『낙수』에는 “아모리”
↩
114. 『신학지남』, 『낙수』에는 “및이지”
↩
116. 제임스 H. 스노든(James Henry Snowden, 1852~1936) 박사는 미국의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자로, 20세기 초반 미국 신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저명한 학자이다. 주로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위치한 웨스턴 신학교(Wester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교수를 역임했다.
↩
117. 『신학지남』, 『낙수』에는 “엿주어”
↩
118.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多部分[다부분]은”
↩
119. 더글라스 J. 윌슨(Douglas J. Wilson, Ph.D.)은 1930~1940년대 캐나다에서 활동했던 심리학 교수이자 언론인이다. 그는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University of Western Ontario)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후 몬트리올의 유력 일간지였던 ‘몬트리올 스타(Montreal Star)’의 수석 논설위원으로도 활발히 활동한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
120. 『신학지남』에는 “물곬을”, 『낙수』에는 “물뭀을”
↩
121. 『신학지남』, 『낙수』에는 “救援[구원]하지”
↩
122. 『신학지남』, 『낙수』에는 “뻐처”, 『김재준 저작전집』은 “뻗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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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신학지남』, 『낙수』에는 “支[지]탕하는”
↩
124. 『신학지남』, 『낙수』에는 “맨”
↩
125. 밴 틸 박사(Cornelius Van Til, 1895~1987)는 네덜란드계 미국인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20세기 보수적인 장로교 및 개혁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그는 미국의 명문인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수학했으나, 프린스턴이 점차 자유주의 신학으로 기울자 이에 반발하여 메이천(J. Gresham Machen) 박사 등과 함께 정통 신학을 수호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를 설립한 핵심 멤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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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교황 레오 1세(Pope Leo I, 대교황 레오, 재위 440~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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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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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毁謗[훼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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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신학지남』, 『낙수』에는 “한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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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당시 교황이었던 인노첸시오 3세(Innocent III)는 교회의 기강을 바로잡고, 이단(카타르파 등)에 대응하며,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체계적으로 규립하기 위해 공의회를 소집했다(제4차 라테란 공의회, Fourth Council of the Lateran). 이 공의회에서는 이전까지 지역마다 중구난방이었던 고백의 방식을 통일하였는데,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나이(통상 7세)에 이른 모든 가톨릭 신자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주로 부활절을 앞두고) 자신의 본당 사제에게 반드시 자신의 모든 죄를 비밀리에 고백해야 한다고 의무화했으며, 동시에 사제에게는 고해소에서 들은 신자의 죄를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고해 비밀 엄수(사크라멘툼)’ 의무를 강력히 규정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성직 박탈과 평생 수도원 유폐라는 엄벌에 처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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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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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신학지남』, 『낙수』에는 “知識層[지식층]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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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신학지남』, 『낙수』에는 “나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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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신학지남』, 『낙수』에는 “감초인 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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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신학지남』, 『낙수』에는 “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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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신학지남』, 『낙수』에는 “실症[증]낸”
↩
140. 『신학지남』, 『낙수』에는 “실혀하며”
↩
141. 『신학지남』, 『낙수』에는 “툭 틔여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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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신학지남』, 『낙수』에는 “작란하는”
↩
143. 『신학지남』, 『낙수』에는 “「麻雀[마작]」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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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신학지남』에는 “손퍽치고”, 『낙수』에는 “손펵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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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신학지남』, 『낙수』에는 “煽動[선동]식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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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신학지남』, 『낙수』에는 “조곰이라도”
↩
147. 『신학지남』, 『낙수』에는 “沐浴[목욕]식히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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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신학지남』에는 “「傳道者[전도자]」 代理想[대이상]이 「生活[생활] 改變者[개변자]」”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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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E. 스탠리 존스(Eli Stanley Jones, 1884~1973)는 미국의 감리교 목사이자 20세기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선교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스탠리 존스는 딱딱한 교리나 서양의 문화를 강요하는 대신, 상대방의 상황(불가피한 현실) 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다가감으로써 예수의 사랑을 전했던 지혜롭고 위대한 선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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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스티븐슨 박사는 1930년대 캐나다에서 활동했던 정신의학 및 심리학 전문가였다. 참고로 역사적 기록과 정황상, 당시 캐나다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의 교수였던 G. H. 스티븐슨(George Herbert Stevenson)의 첫 글자가 과거 문헌으로 번역 및 조판되는 과정에서 알파벳 ‘C’로 오기(오타)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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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신학지남』, 『낙수』에는 “끝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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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신학지남』에는 뒤에 다음 문장이 추가되어 있다. “即[즉] 生命[생명]이 技巧[기교]를 通[통]하야 能率[능솔]있게 나타난것이오 技巧自體[기교자체]가 이 運動[운동]의 原動力[원동력]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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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신학지남』, 『낙수』에는 “哀心[애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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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신학지남』, 『낙수』에는 “이 運動[운동]을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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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신학지남』, 『낙수』에는 “기대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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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신학지남』, 『낙수』에는 “아츰”
↩
158.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前[전]에”
↩
159.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白紙[백지]와”
↩
160.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心靈[심령]을”
↩
161.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乃至[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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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한 時間[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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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主[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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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신학지남』, 『낙수』에는 “그우에 움즉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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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신학지남』, 『낙수』에는 “기대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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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신학지남』, 『낙수』, 『김재준 저작전집』에는 “敎役者[교역자]”
↩
167. 『신학지남』, 『낙수』에는 “모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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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신학지남』, 『낙수』에는 “차츰”
↩
169. 『신학지남』, 『낙수』에는 “거충으로 모히나”
↩
170. 『신학지남』, 『낙수』에는 “말미암는”
↩
171. 『신학지남』, 『낙수』에는 “버혀버릴”
↩
172. 『신학지남』, 『낙수』에는 “폄론하지”
↩
174. 『신학지남』, 『낙수』에는 “臆志[억지]로 끄러오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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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신학지남』에는 “저이가 萬一[만일] 저희의”, 『낙수』에는 “저히가 줄곳 저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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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W. B. 크라이톤 박사(William Black Creighton, 1864~1946)는 20세기 초중반 캐나다 기독교계의 여론을 이끌었던 영향력 있는 목회자이자 언론인이었다. 그는 1925년 캐나다 내의 감리교, 장로교, 회중교회가 통합하여 탄생한 거대 교단인 캐나다 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의 공식 기관지(신문)인 『뉴 아웃룩』의 편집장(주필)을 오랫동안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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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신학지남』, 『낙수』에는 “一一[일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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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신학지남』, 『낙수』에는 “發表[발표]하였다하나 記者[기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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