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4일 수요일

[십자군 제1권 제1호] 沈默(침묵) - 1937년 5월호

沈默(침묵)


長空


가슴에 고인

푸른 湖水[호수]

그 앞에서 나는

떨고 섰노라.

億萬年[억만년]의 秘密[비밀]을

안은 대로

죽은 듯

모르는 듯

아, 그 무섭고 찬

沈默[침묵]의 앞에

내 마음은

떨고 섰노라.





“가슴에 고인 푸른 湖水(호수)”

가슴속 ‘푸른 호수’는 생명력과 순수함, 그리고 깊이를 동시에 상징한다. 외부의 풍랑에 휩쓸리는 바다와 달리, ‘고여 있는 호수’라는 표현은 자신을 고요히 성찰하는 정적인 기도자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죽은 듯 모르는 듯”

지각을 초월한 절대적 평온을 표현하고 있다. 파동 하나 없이 매끄러운 호수의 표면은 신의 침묵을 암시한다. 이것은 인간의 감각과 이성적 판단을 뛰어넘는 ‘절대적 평온’의 상태를 의미하며, 신의 신비로운 현존을 드러낸다.


“떨고 섰노라”

존재론적 떨림. 이 시를 관통하는 핵심 동사이다. 여기서의 떨림은 단순한 심리적 공포(Fear)가 아니라, 압도적인 거룩함 앞에서 피조물이 느끼는 본질적인 ‘경외(敬畏)’의 감정이다. 1연과 3연에 반복 배치됨으로써 신 앞에 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겸허한 자세를 강조한다.


“무섭고 찬 沈默(침묵)”

신의 엄위함(Majesty)을 나타낸다. 시인은 신을 다정하고 인자한 모습으로만 가두지 않는다. ‘무섭고 차다’는 감각적 대비를 통해 세속적 욕망이나 얄팍한 지식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의 서늘한 엄위함을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다.


“億萬年(억만년)의 秘密(비밀)”

찰나의 삶을 사는 인간과 대비되는 신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시간적 배경이다. 영원한 신의 존재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절대자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비밀’ 그 자체로 이해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인간과 신의 절대적 차이는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비밀을 안은 대로”

신은 인간에게 모든 섭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시인(장공)은 그 신비로운 비밀을 억지로 파헤치려 하기보다, 그 자체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침묵 앞에 온전히 머무는 실존적 결단을 보여준다.



김재준의 신앙적 실존을 보여주는 시

이러한 인간과 신 사이의 절대적 거리감은 칼 바르트(Karl Barth)로 대변되는 신정통주의 신학의 핵심과 궤를 같이한다. 인간의 유한한 지혜로 신을 규정하려 하지 않고, ‘질적으로 다른 타자’인 신의 위엄 앞에 침묵하며 경외의 떨림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장공이 시를 통해 보여준 신앙적 실존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범용기 제3권] (161) 北美留記 第四年 1977 - Toronto에서

Toronto에서 5월 8일(일) - 어버이주일. 뉴욕의 구춘회 여사가 연합교회에 초청되어 설교했다. 5월 11일(수) - 서동준 전도사 Drive로 구춘회, 서 전도사 부인, 나 셋이서 나이아가라에 갔다. 5월 13일(금) - 구춘회 뉴욕에로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