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교회사관과 민중교회사관
민경배 교수는 선교사관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한계, “한국교회쪽의 고백과 증언이 고려되지 못한 것”을 극복하는 것으로 기독교사 연구를 시작하였다.
“교회사를 한국교회를 주체로 해서 취급하는, 한국민족교회사의 서술 방법이 따로 확립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사관에서 비로소 한국교회의 체험과 삶의 기복이 혈맥처럼 파동쳐 올 것이며 우리들 자신의 생과 신앙의 교섭관계가 역력히 뭉클하게 호소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방면에 아직 이렇다 할 학적 노작이 없음을 한으로 여긴다.”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개정판)』, 20-21.】
그의 사관은 ‘민족교회사관’(民族敎會史觀)으로 정리된다. 한국 기독교사의 주체를 한국교회로 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한국교회가 민족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했고 그 문제를 풀어나갔느냐 하는 점을 역사 서술의 주된 내용으로 삼았다.
... 특히 자신의 민족교회사관을 “민족교회사 방법론은 교회가 민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에큐메니칼한 사명을 전제하고, 그 성립과 전개에서 민족의 교회로서 구형된 정신과 과정을 주체로 역사를 일괄하는 것”【민경배, “제2세기의 한국교회사학,” 『기독교사상』 제330호 (1986.6), 50.】이라고 스스로 규정한 바 있고 무엇보다 교회와 민족, 혹은 종교와 사회의 연결원리를 ‘내연(內燃)’과 ‘외연(外延)’이라는 독창적인 체계로 이해한 점은 기독교사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원리를 제공한 것으로 그가 남긴 최대의 업적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한국 기독교사를 단순한 제도의 변천사 내지는 사건의 나열로 보지 않고 속에서 불타는 기독교 신앙의 내연(內燃) 체험의 외연(外延) 현상으로 봄으로 한국 기독교사가 한층 생명력있고 주체성 있는 역사로 서술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민경배의 ‘민족교회사관’의 한계
“그의 내연-외연 도식의 적용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외연의 범위를 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외세에 국한시키려는 경향이다. 따라서 한국사회 내부의 문제들 그리고 외세와의 정치적 대결에 초점이 두어짐으로써 한국사회 내부의 광범위한 사회 경제적 요인들은 초점거리에서 벗어나고 만다. 이런 경향에서 볼 때 민경배가 말하는 민족교회사관은 이장식의 표현대로 ‘민중부재의 정체체제 중심의 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김흥수, “교회사 서술 방법의 새로운 시각,” 「한국기독교사연구」 제24호 (1989.2), 6; 이장식, “한국신학사상의 사적 고찰,” 『역사와 신학』, (주재용ㆍ서광선 편, 한국신학연구소, 1987), 79.】
민경배 교수가 ‘민족교회사관’ 설정의 근거로 삼고 있는 ‘외연-내연’의 원리로 모든 기독교사 사건과 인물을 해석하는 데엔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다. ‘내연-외연’의 해석원리에 의해 한국 기독교사에 서술될 수 있는 영역은 민족의식을 소유하고 있었거나 신앙체험을 신학화할 수 있는 의식계층일 것은 자명하다. 그의 한국기독교사가 엘리트ㆍ지식계층 중심으로 서술된 것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따라서 1970년대 이후 생성되기 시작한 민중신학자들로부터 ‘민중부재의 역사’로 지적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민중교회사관
민경배 교수의 ‘민족교회사관’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민중신학자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아직 ‘민중교회사관’에 입각한 한국 기독교사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주재용(朱在鏞) 교수가 “한국 기독교 백년사 – 민중사관의 입장에서의 분석과 비판”(1979)이란 논문을 발표한 후 꾸준히 강연이나 단편적인 글들을 통해 ‘민중교회사관’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 실체 파악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민중신학이 한국 기독교사 연구에 끼친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한국 기독교사의 주체를 엘리트ㆍ지식계층이 아닌 민중계층의 평신도, 무명의 헌신적 기독교인들로 보아야 한다는 의식의 전환 하나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 결과, 종래의 한국 기독교사가 정치ㆍ제도ㆍ목회자 중심의 것이었으나 요즈음에 이르러 지금까지 소외되었거나 무시되었던 기층(基層) 교인들의 신앙과 활동, 교파 우월의식에 의해 변방으로 몰렸던 단체와 인물들의 역할이 재평가되면서 보다 총체적인 한국 기독교사 서술이 시도되고 있다는 점은 민중신학의 영향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다양한 교회사의 실험들
김양선 목사의 실증적 역사서술의 맥을 이었다고 할 수 있는 오윤태(吳允台)ㆍ김광수(金光洙) 목사, 한국 기독교사의 주체를 평신도 측면에서 해석하려 노력한 결과 ‘토박이사관’이란 독창적인 사관을 창출해낸 전택부(全澤鳧) 장로, 감리교회사 자료를 실증적으로 정리해 낸 이성삼(李成森) 교수, 3ㆍ1운동에 대한 선교사 자료를 발굴ㆍ정리한 송길섭(宋吉燮) 교수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각자 서술의 방법론, 자료 추적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민족’ 문제를 저변에 깔고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외에 일반 신학 내지는 서양 교회사를 전공하면서 한국 기독교사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 학자들도 있었다. 서양 교회사를 전공했던 이장식(李章植)ㆍ이영헌(李永獻)ㆍ주재용(朱在鏞)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의 참여로 한국 기독교사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은 물론이다.
☞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편, 『한국기독교의 역사 1(개정판)』 (서울: 기독교문사, 2011),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