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6일 목요일

[십자군 제2권 제1호] 선지자적 심정 - 주간

先知者的[선지자적] 心情[심정] 

- 主幹[주간]

  • 『낙수』 1940. [바로가기]
  • 『장공김재준저작전집[전5권]』 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년, 제2권, 22~26.
  • 『김재준전집[전18권]』 한신대학출판부, 1992년, 제1권, 143~148.


『오라! 우리가 계교를 내여 예레미아를 빠지게 하자! 대개 제사장에게는 律法[율법]이 있고, 智者[지자]에게는 妙案[묘안]이 있고 선지자에게는 말슴이 있으니 이 모든 것이 없어진 것이 아닌즉 우리가 혀로써 저를 치고 그 모든 말을 듣지 말자!』[예레미야 18장 18절]한 유다의 叛逆民[반역민]들은 우리에게 하나님 말슴 맡은 직분을 가장 밝게 보여주었다. 舊約時代[구약시대]에 하나님 말슴맡은 직분은 祭司長[제사장], 智者[지자](賢人[현인]), 豫言者[예언자](先知者[선지자])의 셋이였다. 그러기에 舊約[구약]의 司祭文學[사제문학], 智慧文學[지혜문학], 豫言文學[예언문학] 等[등]은 다 이 各異[각이]한 聖職者[성직자]들의 걸어간 발자취의 記錄[기록]이다. 그러면 「祭司長[제사장]」의 한 일은 무엇이였는가? 그들은 이미 啓示[계시]된 하나님의 말슴을 整理[정리]하고 敎理化[교리화], 條文化[조문화]하야 그것을 어떤 形體[형체]안에 保存[보존]하려는 者[자]들로서 宗敎生活[종교생활]의 儀式的[의식적], 條文的[조문적] 方面[방면]을 맡은 者[자]들이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제나 過去[과거]의 權威[권위]에서 사는 사람이였으며 따라서 새 말슴 새 生命[생명]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늘상 그와 衝突[충돌]하며 그를 抑壓[억압]하려 하였다. 그리하야 이 習性[습성]이 마츰내 그들로 하여곰 待望[대망]의 메시야를 十字架[십자가]에 못 박는 데까지 이르게 한 것이였다.

그러면 「智者[지자]」들의 한 일은 무엇이였는가? 그들은 過去[과거]에 啓示[계시]된 하나님의 말슴과 온갓 人間社會[인간사회]의 實情[실정]을 洞察[통찰]하여 거긔에 숨은 어떤 原理原則[원리원칙]을 發見[발견]한 後[후] 그것으로 現社會[현사회]의 實情[실정]에 適應[적응]한 指導理論[지도이론]을 삼으려는 者[자]들이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흔히 現實的[현실적]이오 哲學的[철학적]이였으나 「靈[영]의 사람」은 아니였던 것었다.

그러나 「先知者[선지자]」는 그런 것이 아니였으니 祭司長[제사장]처름 하나님 말슴의 條文化[조문화], 儀式化[의식화]로서 滿足[만족]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啓示[계시]의 根本精神[근본정신]을 取[취]하고 그 儀文[의문]을 버리려는 것을 그 根本[근본] 義[의]를 삼었었으며 智者[지자]들처럼 哲學的[철학적], 或[혹] 實利的[실리적]으로 事物[사물]을 靜觀[정관]함을 能事[능사]로 넉인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

님의 새로운 啓示[계시]에 感激[감격]하야 그 받은 말슴으로 그 世代[세대]를 向[향]한 하나님의 「代言者[대언자]」가 되였으며 同時[동시]에 그의 넘치는 靈感[영감]을 힘닙어 未來世界[미래세계]의 메시아的[적] 理想王國[이상왕국]을 미리 보며 기뻐한 것이였다.

宗敎生活[종교생활]에는 勿論[물론] 儀式[의식]과 條文[조문]이 必要[필요]하며 哲理[철리]와 謀略[모략]도 必要[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祭司[제사]도 두시고 智者[지자]도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거륵한 生命[생명]이 潑溂[발랄]할 때에만 그 宗敎的[종교적] 價値[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오 靈的[영적] 生命[생명]이 떠난 때에는 그 儀式[의식] 그 智略[지략]은 그대로 死骸[사해]며 詭計[궤계]인 것이다. 그러면 그 「聖生命[성생명]」을 傳授[전수]하는 職分[직분]은 무엇인가? 그는 곧 先知者[선지자], 참으로 부름받은 先知者[선지자], 使命[사명]에 붓잡힌 先知者[선지자]가 곳 그 사람이다. 그러므로 大祭司長[대제사장]이시오 最大[최대]의 智者[지자]이신 그리스도께서도 그 心情[심정]은 언제나 先知者的[선지자적]이었으며 先知者[선지자]의 系統[계통]을 이어 先知者[선지자]들의 바라고 기다리던 大理想[대이상]을 成就[성취] 實現[실현]하므로 그 事業[사업]의 目的[목적]을 삼으신 것이였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로 권능이 많으신 선지자」(눅 24:19)였으며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눅 24:21)이엿던 것이다.

先知者的[선지자적] 心情[심정]! 이것은 그리스도의 心情[심정]이였음과 同時[동시]에 또한 크리스찬의 心情[심정]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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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知者[선지자]!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사명을 받들어 하날 권세로 하나님 말슴을 이 땅우에 宣布[선포]하는 하나님의 「代言者[대언자]」이다. 『獅子[사자]가 고함치거니 누가 무서워하지 안겟느냐? 主[주] 여호아께서 말슴하시거니 누가 豫言[예언]하지 안겟느냐』(아모스 3:8)고 한 아모스의 告白[고백]은 그대로 先知者的[선지자적] 使命[사명]을 明示[명시]한 것이였다. 크리스찬아! 너는 하나님의 代言者[대언자]가 아니냐? 聖經[성경]에 씨여진 하나님의 말슴이 聖神[성신]의 感化[감화]로 네 心靈[심령]에 體驗[체험]되여 다시 世上[세상]에 宣布[선포]되는 때 너는 하나님 말슴의 代言者[대언자]이며 先知者[선지자]이다. 信者[신자]가 『긔도하고 말슴 傳[전]하기에 專力[전력]을 다한』(행 6:4) 사도들의 代言者的[대언자적] 態度[태도]를 實行[실행]에 옴긴다면 그의 人格[인격]이 獨特[독특]해지지 앓으며 그의 感化[감화]가 非凡[비범]하지 안겟느냐? 이 하나님의 말슴을 내 것으로 가진 者[자]는 「天使[천사]를 審判[심판]할」(고전 6:3) 權威[권위]를 가

진 者[자]이니 하물며 世上[세상] 일이랴! 그렇컨마는 現代[현대] 우리 信者[신자]들 中[중]에는 이 하나님의 代言者[대언자] 豫言者[예언자]로서의 高貴[고귀]한 職分[직분]을 自侮[자모]하고 스사로 世俗化[세속화]하야 돈을 사랑하며 世上[세상] 權勢[권세]에 訶諂[가첨]하야 道人[도인]의 心情[심정]을 더럽히고 그 權威[권위]를 일어 마츰내 맛 일흔 소곰같이 바림을 自取[자취]하니 可嘆[가탄]할 바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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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知者[선지자]! 그는 靈感[영감]의 人[인], 거륵한 感激[감격]에 사는 사람이였다. 『여호와의 말슴이 臨[임]하시매』 그 말슴에 感激[감격]하야 敢然[감연]히 선 사람들이 곳 옛날의 先知者들이였다. 『末世[말세]에 내가 내 聖神[성신]을 萬人[만인]에게 부어 주리니 너의 子女[자녀]들은 장내일을 말할 것이오 너의 젊은이는 이상함을 보고 너의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한 요엘의 예언은 聖神[성신]의 充滿[충만]한 感動[감동]으로 말미암아 永遠[영원]을 透視[투시]하며 幻像[환상]을 보며 大夢[대몽]에 사는 크리스찬의 생활[生活]을 그대로 豫言[예언]한 것이였다. 크리스찬의 生活[생활]! 그는 곳 感激[감격]의 生活[생활]이다. 크리스찬에게서 聖愛[성애]의 感激[감격]이 식어진 때 그는 곧 生命[생명]을 일흔 者[자]이다. 그가 眞實[진실]로 그리스도의 贖罪愛[속죄애]에 感激[감격]한 바 있었다면, 그는 그리스도를 爲[위]하야 「全存在[전존재]」를 바치지 안코는 견딀 수 없을 것이다. 聖神[성신]에 感動[감동]한 者[자]는 그리스도의 救贖愛[구속애]를 體驗[체험]하는 것이며 이 거륵한 사랑을 느낀 者[자]에게는 거륵한 熱心[열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고 이 거륵한 熱心[열심]은 그로 하여곰 하나님과 사람을 爲[위]하야 全存在[전존재]를 희생하지 안코는 견듸지 못하게 한다. 이 感激[감격]은 거륵한 감격이다. 거긔에는 利害打算[이해타산], 權謀術數[권모술수], 分派作黨[분파작당] 等[등]의 不純[불순]한 熱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神秘主義者[신비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徹頭徹尾[철두철미] 理性的[이성적]이며 道德的[도덕적]이다. 그에게는 熱心[열심]이 있다. 그러나 그 熱心[열심]은 傳道[전도]하는 열심과 사랑을 實踐[실천]하며 모든 善行[선행]을 예비하는 熱心[열심] 以外[이외]의 다른 아모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 敎界[교계]에는 이 거륵한 感激[감격]이 없이도 熱心[열심]으로 일하며 또 名聲[명성]을 나타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의 熱心[열심]은 「職業的[직업적]」이며 그의 名聲[명성]은 그대로 그의 審判[심판]이 되는 것을 알어야 한다. 나는 이 「職業的[직업적] 熱心[열심]」(Professional earnestness)이란 무서운 陷穽[함정]에 對[대]하야 좀 더 說明[설명]할 義務[의무]를 느낀다. 만일 이 聖靈[성령]의 거륵한 感激[감격]이 없이 神學[신학]을 講解[강해]한다면 그 「神學校[신학교]」는 그야말

로 「牧使之法[목사지법]」을 가르치는 職業學校[직업학교]는 될지언정 「牧師[목사]」를 養成[양성]하는 거륵한 心情[심정]의 傳授處[전수처]는 아닌 것이다. 그러고 이 「牧師的[목사적] 心情[심정]」, 先知者的[선지자적] 心情[심정]을 培養[배양]하지 못하고 다만 敎理[교리], 敎條[교조]와 敎派熱[교파열]과 敎界[교계] 處身術[처신술]이나 배워 가지고 나온다면 그 「得業士[득업사]」는 진실로 寒心[한심]한 得業士[득업사]임을 切感[절감]한다. 그들이 나와서 하나님의 聖役[성역]을 맡는 때 그 注入[주입]된 方法論[방법론]에 딸아 「熱心[열심]」으로 일하야 많은 能率[능률]을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所謂[소위] 「불길은 굉장해도 뜨겁지는 않으며 雷聲[뇌성]은 굉장해도 雷光[뇌광]은 안 보인다」는 세음으로 人格[인격]의 서로 부듸치는, 生命[생명]의 感激[감격]이 거긔에 있지 못한 것이다. 이 「職業的[직업적] 熱心[열심]」의 所有者[소유자]는 敎會生活[교회생활]의 外部的[외부적] 方面[방면]에 그 活動[활동]의 中心[중심]을 두는 것이다. 그는 敎會[교회] 機關[기관]의 增設[증설]에 熱中[열중]한다. 그는 大集會[대집회]를 얻기 위하야 힘을 다한다. 그는 所謂[소위] 正統[정통] 敎理[교리]의 擁護[옹호], 「異端[이단]」의 排斥[배척]에 狂奔[광분]한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悔改[회개]하고 全存在[전존재]를 主[주]님께 바치려는 感激[감격]에 넘친 「적은 무리」의 心情[심정]에는 別[별]로 興味[흥미]를 느끼지 안는다. 새 生命[생명]의 躍動[약동]이 있어 그들의 固定[고정]된 方法[방법]과 制度[제도]에 들어맛지 안는 때면 그들은 온갓 術策[술책]으로 그 抑壓[억압]에 盡力[진력]한다. 結局[결국], 그들은 그들의 職業[직업]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며 그들의 制度[제도]와 方法[방법]을 하나님의 心情[심정]보다 더 重[중]히 여긴다. 네비어쓰 宣敎[선교] 方法[방법]을 金科玉條[금과옥조]로 직히여 能率主意[능률주의]우에 建設[건설]한 朝鮮[조선] 敎會[교회]가 必然的[필연적]으로 到達[도달]할 곳은 이 「職業的[직업적]」 「敎權的[교권적]」이란 함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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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知者[선지자]! 그는 大望[대망]에 사는 者[자]이다. 모든 先知者[선지자]들의 메시아 豫言[예언]은 곧 그들 所望[소망]의 記錄[기록]이다. 이와 같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이」 또한 우리 크리스찬의 心情[심정]이다. 그런데 이 所望[소망]이란 다만 그리스도께서 再臨[재림]하실 때 信者[신자]가 얻을 終末觀的[종말관적] 所望[소망]만 말한 것이 아니라 現實生活[현실생활]의 온갓 事爲[사위]에 있어서 언제나 落心[낙심]하거나 悲觀[비관]하지 안코 不滅[불멸]의 憧憬[동경]과 希望[희망]으로 「不死身[불사신]」的[적] 活動[활동]을 계속하는 生活[생활]의 總括的[총괄적] 表現[표현]을 이름이다. 偉大[위대]한 所望[소망]은 偉大[위대]한 幻像[환상][Vision]을 보여주며 偉大[위대]한 幻像[환상]은 偉大[위대]한 事業[사업]을 成就[성취]케 한다. 안디옥교회의 다슷 先知者[선지자]에게 보여진 世界[세계] 傳道[전도]의 偉大[위대]한 幻像[환상]은 마츰내 사울과 바나바로 하여곰 그 千秋[천추]에 다시없는 偉大[위대]한 靈的[영적] 事業[사업]의 成功[성공]을 보게 한 것이였다. 그들에게는 環境[환경]이 問題[문제]가 아니였고 行路難[행로난]이 問題[문제]가 아니였다. 유대人[인]의 

陰害[음해]와 異邦人[이방인]의 逼迫[핍박], 로마 市民[시민]들의 腐敗[부패]와 蠻人[만인]들의 迷信[미신], 執權者[집권자]의 强壓[강압], 敎會[교회]의 分裂[분열], 內憂外患[내우외환]이 層生疊出[층생첩출] 할지라도 그들은 오직 所望[소망], 所望[소망], 所望[소망]! 所望[소망] 中[중]에 進軍[진군]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벌써 그 廣大[광대]한 로마의 全版圖[전판도]의 坊坊谷谷[방방곡곡]에 한울을 뚫고 솟은 고직形[형]의 大敎堂[대교당]이 보이였으며 그들의 귀에는 가이사로부터 賤民[천민]에 이르기까지 上下[상하] 貴賤[귀천]이 다함께 禮拜[예배]에 모히라는 恩寵[은총]의 鐘[종]소리가 明白[명백]히 들리였던 것이다. 바울은 로마의 獄中[옥중]에서 그 最後[최후]를 告[고]하였으나 그의 幻像[환상]은 當時[당시]의 땅끝 西班牙[서반아]의 城砦[성채]우에 十字旗[십자기]를 세우고 있었다[롬 15:24, 28]. 이 偉大[위대]한 所望[소망]은 「五月花[5월화]」의 적은 木船[목선]을 몰아 大西洋[대서양]의 거친 물결을 눌르고 米大陸[미대륙]에 새로운 祭壇[제단]【이 단어는 『낙수』에 ‘帝國[제국]’으로 표기되어 있다】을 세웠으며 멀리 「暗黑[암흑]의 大陸[대륙]」을 向[향]하여 「曉星丸[효성환]」을 띄여 「義[의]의 太陽[태양]」의 첫 曙光[서광]을 빛나게 한 것이다. 지금 朝鮮[조선] 敎會[교회]의 문제가 무엇인가? 行路難[행로난]이 問題[문제]가 아니라 遠大[원대]한 所望[소망]에 불타는 者[자] 偉大[위대]한 幻像[환상]에 그 마음 뛰노는 者[자] 있고 없음이 問題[문제]이다. 指導者[지도자]들이 보는 幻像[환상]이 地域的[지역적]으로 朝鮮[조선]을 넘지 못하며 敎派的[교파적]으로 自敎派[자교파]를 넘지 못하고 敎理的[교리적]으로 「바리새」(分離[분리]ㆍ排他[배타])主義[주의]를 버서나지 못한다면 어느 밭에서 世界的[세계적] 傳道者[전도자]가 자라나며 누구로 말미암어 敎派聯盟[교파연맹]의 運動[운동]이 이러나며 어찌하야 聖徒[성도]의 거륵한 交際[교제], 사랑의 聯合[연합]이 이루어지랴! 그 마음속에 거륵한 幻像[환상]을 품지 못한 者[자]로서 다만 敎條[교조]와 言辯[언변]과 謀略[모략]을 材料[재료]삼아 自己中心[자기중심]의 「職業的[직업적] 熱心[열심]」에 마끼여 敎會事[교회사]를 弄絡[농락]한다면 그 結果[결과]는 必然的[필연적]으로 分爭[분쟁], 排擊[배격] 等[등]의 惡德[악덕]을 빚어낼 것이다. 이는 自己[자기] 營業[영업]의 繁榮[번영]을 위해서는 自然[자연] 그 競爭者[경쟁자]를 없이하고 自己[자기]가 그 權益[권익]을 獨占[독점]하려는 것이 職業[직업] 戰線[전선]의 原則[원칙]인 以上[이상], 그런 「職業的[직업적] 熱心[열심]」者[자]」가 二人[이인] 以上[이상] 되는 때에는 반다시 거긔에 分裂[분열], 抗戰[항전]이 있을 것인 까닭이다.


【그리하야 거륵한 靈感[영감]들이 恩寵[은총]의 感激[감격]을 노래한 찬송가出版[출판]도 그들의 눈에는 利權獲得[이권획득]의 機會[기회]로밖에 보이지 안어 마츰내 某某[모모]두 機關[기관]의 惡感情[악감정]을 스사로 廣告[광고]하고 있으며 自敎派[자교파]의 少利[소리]만에 정신이 팔려 全基督敎會的[전기독교회적] 大義名分[대의명분]을 無視[무시]하고 分裂[분열]에 分裂[분열]을 더하야 主日工課[주일공과]의 分離[분리], 聯合公議會[연합공의회]에서의 分離[분리], 敎派熱[교파열]의 高調[고조], 他敎派[타교파]의 異端視[이단시] 敎理的[교리적] 疑懼心[의구심]의 助長等[조장등] 사탄의 詭計[궤계]에 自進[자진]하야 빠지고 있다. 이것은 어느 個人[개인]이나 어느 個敎派[개교파]나 어느 上會[상회]나 어느 宣敎部機關[선교부기관]만의 잘못이 아니라 最初[최초]부터 豫言者的[예언자적] 遠大[위대]한 所望[소망]과 幻象[환상]으로 우리 敎會[교회]를 ??하지

안코 宣敎師執權主義[선교사집권주의], 事業能率本位[사업능률본위]의 近視眼的[근시안적] 宣敎方法[선교방법]을 固執[고집]해온 잘못된 指導原理[지도원리]에서 생겨난 열매임을 말하여 둔다.】 【이 부분은 『낙수』에는 삭제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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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自體[자체] 內[내]에 이런 憂患[우환]을 胚胎[배태]한 朝鮮[조선] 敎會[교회]가 이제 取[취]할 길이 무엇인가 첫재로 現[현] 指導級[지도급]에서 絶對[절대] 謙遜[겸손]과 徹底[철저]한 悔改[회개]를 보여주어야 할 것은 勿論[물론]이다. 「職業的[직업적] 自重[자중]」 「職業的[직업적] 驕慢[교만]」 「信仰的[신앙적] 自慢[자만]」을 勇敢[용감]하게 버리고 宣敎師[선교사]로부터 一般[일반] 敎人[교인]에 이르기까지 재를 무릅쓰고 主[주]님 앞에 꿀어 엎데여 赦罪[사죄]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에 不純[불순]한 動機[동기], 或[혹] 잘못된 方法[방법]으로 始作[시작]된 事業[사업]이 있으면 속임 없이 一般[일반]에 公開[공개]하야 그 是正[시정]을 天下[천하]에 訴[소]할 것이다. 그리하면 主[주]께서 或[혹] 그 크신 憐憫[연민]으로 우리에게 「새 心情[심정]」을 創造[창조]하시며 새 感激[감격]을 주실 것이거니와 그러지 않으면 갑작히 새 生命[생명]의 躍動[약동]을 期待[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둘재로는 第二世[제2세] 敎人[교인]들이 即[즉] 敎會[교회] 靑年[청년]들이 朝鮮[조선] 敎會[교회]로서의 世界的[세계적] 使命[사명]에 對[대]한 깊은 自覺[자각]을 가지고 좀 더 偉大[위대]한 所望[소망]과 幻像[환상]에 살 수 있기를 祈願[기원]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全存在[전존재]를 바치여 主[주]를 爲[위]하야 큰 꿈을 꾸며 큰일을 計劃[계획]한다면 그 熱誠[열성]과 그 感激[감격]이 그대로 朝鮮[조선] 敎會[교회] 自體[자체]를 살리는 「先知者的[선지자적]」 生命運動[생명운동]이 되여질 것이니 이를 생각할 때 마음이 뛰논다. 다만 엘닫과 메닫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神[신]으로 감동식히사 여호와의 백성이 전부 다 선지자 되는 것이 나의 원하는 바로라』(민 11:26~29)한 모세의 大發願[대발원]이 그대로 우리의 祈願[기원]이며 所望[소망]이다.

- 一月元旦[일월원단]



십자군 제2권 제1호 목차

십자군 제2권 제1호 목차 소화 13년 2월 - 1938년 2월 ☞ 각 제목을 클릭하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교[架橋] - 장공 본지의 선언 선지자적 심정 – 주간 설교 : 생명의 샘 예수 – R. 레아드 박사 그리스도의 향기 – 편집실 맨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