偉大한 說敎(1) 사랑의 수고
- 스퍼-존
스퍼-존(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 A.D.)은 一八三四年[1834년]에 英國[영국] 켈베돈(Kelvodon)의 한 貧寒[빈한]한 牧師[목사]의 집에 태어낫다. 스퍼-존은 十六歲[16세]부터 〇敎生活[〇교생활]을 始作[시작]하야 未久[미구]에 一類說敎家[일류설교가]로 名聲[명성]을 날리여서 十九歲[19세]때에는 벌서 英京論敦[영경론돈]에서도 有名[유명]한 新公間街敎會堂牧師[신공간가교회당목사]로 청빙을 받었다. 그 敎會圓[교회원]들은 大槪[대개] 有識階級[유직계급], 富豪[부호], 貴人等[귀인등]으로서 最初[최초]에는 이 口尙乳臭[구상유취]의 少年[소년]에게 어찌 神聖尊貴[신성존귀]한 大敎會講壇[대교회강단]을 마낄 것이냐고 反對〇分[반대〇분]도 있었으며 또 就任後[취임후]에도 어듸 보쟈하는 白眼視[백안시]하는 態度[태도]를 取[취]하였었다. 그러나 就任數個月間[취임수개월간]에 벌서 全[전] 론돈의 人氣[인기]를 거의 한곳에 모히다 십히되여 敎會堂[교회당]에는 들어설 餘地[여지]가 없이 되었다. 하로 그는 說敎[설교]하는 中[중] 「믿음의 高喊[고함] 소리와 함께 예리고 城壁[성벽]은 문허졌다. 믿음의 무리 앞에서는 이 좁은 예배당벽[禮拜堂壁]은 오라지 않아 문허지리라」하고 웨치엿다. 그의 말과 함께 그 좁은 禮拜堂[예배당]은 문허저 버리고 거긔에 大[대] 中央禮拜堂[중앙예배당](The Great Metropolitan Tabernacle)이 〇〇間[〇〇간]에 높이 솟았다. 이 大敎會堂[대교회당]에는 六千五百名[육천오백명]의 坐席[좌석]이 있으나 언제나 차고 넘치였다. 그의 說敎[설교]는 日利新聞[일리신문]과 刊行本[간행본]에 印刷[인쇄]되어 坊坊曲曲[방방곡곡]에 퍼지며 퍼지는 곳마다 큰 靈的復興[영적부흥]이 이러나서 社會的[사회적] 經濟的[경제적]으로 危機[위기]에 直面[직면]한 英國[영국]에는 다시 悔改[회개]와 信仰[신앙]의 신령한 물결이 거츤 人心[인심]을 붓잡게 되었다. 그는 지금부터 四十五年前 一八八二年[1882년]에 五十八歲[58세]를 一期[일기]로 世上[세상]을 떠낫는데 그때까지 四十年間[40년간] 줄곳 이 한 敎會[교회]에서 奉職[봉직]하였다.
이제 그의 說敎一篇[설교일편]을 紹介[소개]하려한다. 勿論[물론] 說敎[설교]의 本質[본질]은 말에 있지안코 聖神[성신]의 權能[권능]에 있느니만치 이 一篇[일편]을 읽으시는 讀者諸賢[독자제현]께 聖神[성신]께서 함께하기를 祈禱[기도]한다.
本文[본문] - 「사랑은 凡事[범사]에 참으며 凡事[범사]에 믿으며 凡事[범사]에 바라며 凡事[범사]에 견듸나니라」(고전 13:7)
사랑의 은혜,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신종하는 자로서의 제일 끝자되는 은혜올시다. 우리가 가령 모든 것을 가졌다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성신께서는 이 성경구절에 밝히 말슴하섰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이 유명한 성경구절(고전 13장)을 읽으실 때에 「하, 이것은 너무 훌륭해 특별한 성자라면 혹 이것을 실행도 할는지 모르지만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이야 거저 쳐다보고 칭찬이나 했지 그대로 할 수야 있겠나!」하고 속으로 말슴하실 이가 있을 것입니다. 決[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용할 량식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다만 어떤 몇사람이 가질 특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각자가 가지지 않으면 살지못할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쳐다볼 것이 아니라 기엏고 나가 제것을 맨들어야 살 수 있는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온갖 신령한 은혜를 다 가졌다 할지라도 이 「사랑」의 은혜가 없은 다음에는 여러분의 소위 「은혜」란 것은 「아모것도 아니라」고 분명히 말슴하지 않었습니까?
爲先[위선] 처음으로 우리의 배울 것은 이 貴[귀]한 救援[구원]은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그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은혜가 우리 타락한 인간성에서 자라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정결한 것이 정결치 못한데서 생겨나겠습니까? 이 거룩한 사랑에 이르는 영광의 구원은 믿음으로만 붓잡을 수 있으며 성신의 권능으로만 가져올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만일 「구원」이란 것을 한 소소한 인간사로 생각하야 대수롭잖은 것으로 역이신다면 이 구원의 처음이오 냉종인 「사랑」도 인간의 힘으로 될 수 있으리라고 말슴하리다. 그러나 「구원」이 하나님 자신의 가장 크신 희생으로만 되어진 것을 믿는 이는 또한 이 「사랑」하는 심정이 하나님의 주시는 驚異[경이]의 은혜임을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거룩한 사랑의 심정이 간악한 인간의 마음 속에 탄생한 것을 볼 때 우리는 「아아 하나님의 손이 인간에 임하섰다!」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에게 림하는 그 순간에 그 사람의 심정에는 「사랑」이 생겨납니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난 자니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마지못하나니라」(요일 4:7-8) 그러나 이제 나는 이 사랑을 가진 여러분께 경고하려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거룩한 사랑이 싹트는 그 순간부터 여러분에게는 무서운 전쟁이 생겨납니다. 세상은 나면서부터 저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싀긔와 증오와 분쟁과 악독으로 차고 또 넘칩니다. 여러분 사랑을 가지신 이는 마치 가시덤불속에 혼자 서 있는 백합화와 같습니다.
이 사랑을 대적하는 원수는 헤일수 없이 많습니다. 전부올시다. 그러므로 본문에 「범사에」라고 말슴하섰습니다. 여러분은 이 「범사에」 품겨있는 온갖 事物[사물]을 一一(일일)이 헤여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께 사랑의 심정이 탄
〇〇〇〇〇 싸움을 싸워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남어있는 낡은 생명까지도 여러분의 새생명인 이 사랑을 끈임없이 방해합니다.
그러나 四面楚歌中[사면초가중]에 들어있는 외로운 「사랑」의 심정은 결코 이 싸움에 지지않습니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승리의 노래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모든 원수를 익일수 있읍니까? 하나님께서는 네가지로 말씀하섰읍니다.
첫째로 범사에 「참으며」 하였읍니다. 모든 悖逆[패역]이 닥쳐올 때 우리는 「참어야」 하겠읍니다. 우리를 상하겠거든 그리하라 그러나 우리는 용서한다. 우리를 욕하려거든 그리하라 그러나 우리는 성내지 않겠다. 일곱 번식 七十[칠십]번 우리를 욕하고 핍박하고 모든 악하다하는 거짓말로 비방할지라도 우리는 그대로 고요히 이것을 참으리라. 이것이 사랑을 살리는 첫길이오 익이는 첫무긔외다. 둘재로 범사에 「믿으며」 하였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 측량할 수 없는 攝理[섭리]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세상이 다 악하다 할지라도 정의가 익인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믿음을 가집시다. 하나님을 믿는 나로서 알수 없는 곤고에 사로잡힐지라도 우리는 그의 섭리를 믿읍시다. 셋재로 범사에 「바라며」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유없이 악에 시달리여 냉종 죽음이 검은 손을 우리 눈앞에 펴들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 조요한 광채의 밝은 나라가 있음을 바라고 나갑시다. 그리하야 이 모든 무긔를 쓰되 하로 이틀이 아니라 범사에 「견대나니라」하였습니다. 오래오래 一生[일생]을 견듸고 또 견듸여 나갑니다. 거룩한 사랑이 우리 心情[심정]에 불탈 때 우리에게는 이 네가지 무긔가 쥐여집니다. 우리를 이사랑에서 끊을자 누구이겠읍니까?
나는 다시 딴방면으로 생각합니다. 即[즉] 이 사랑은 신자의 신앙생활의 모든 계단을 부뜰어주는 무긔라고도 볼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처음믿기로 작정하는 순간 집안과 친구와 모든 악한 세력이 통틀어 나서서 우리를 욕하고 핍박하야 못믿게 합니다. 그러나 그의 거룩한 사랑은 「범사에 참어나갑니다」 믿음이 조곰 자라 힘을 얻은 때 그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主[주]께로 인도하려합니다. 그때 그의 안에 있는 사랑의 心情[심정]은 그로하여금 「범사에 믿게 합니다」 그리하야 그 믿는 바를 증거하게 합니다. 믿음이 더욱 철저(徹底)하게 될 때 그에게는 락심할 일이 많이 보입니다. 世上[세상]이 너무 믿음 없는 것도 긔가 막히고 믿노라는 者[자]들이 너무 냉정한 것도 답답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心情[심정]은 그로하여금 「범사에 바라」’게 합니다. 그리하야 믿음을 지키여 꾸준히 걸어나가 죽음의 선을 넘을 때까지도 사랑의 심정은 그를 부뜰어 「범사에
견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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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上[이상]에서 나는 하나님의 주신 거륵한 사랑이 어떻게 여러분 자신의 구원의 길을 지키여 주시는 것을 말슴하였읍니다. 지금부터는 이 사랑을 품은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向[향]하야 수고할 것을 말씀하려 합니다. 나는 아까 말씀드린 네 가지로 다시 말씀하겠읍니다.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은 「범사에 참습니다」 이 참는다는 글자는 「덮는다」는 글자입니다. 사랑은 「덮습니다」 덮어줍니다. 남의 잘못을 밝히려하지 않습니다. 그는 될수 잇는대로 그 결심을 덮어주고 가리워줍니다. 사랑하는 자는 상대자에게 무슨 결점이 있을가봐 몹시 겁냅니다. 그러나 그 있는 결점 들어내기는 몹시 가슴아파합니다. 지금 여기에 兄弟[형제]의 잘못을 발견하고 한시 바쁘게 이옷으로 달려다니며 광고하는 자가 있다면 오 그이의 심정에 사랑의 은혜가 탄생해지이다. 그러고 또 우리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잘못을 볼 때 그것을 소리놉으게 광포하고 공격함은 사랑없는 증거올시다. 우리는 그의 모든 잘못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의 녀인은 남편 다섯을 것첬으니 그리 깨끗한 과거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친절히 말슴하시고 책망으로 그것부터 들어내시지 않었읍니다.
둘째로 사랑하는 사람은 「범사에 믿습니다」 그의 상대자가 비록 믿음이 자라고 않고 덕이 없을지라도 버리지 안습니다. 그의 구원을 믿고 나갑니다. 셋재로 사랑하는 사람은 「범사에 바랍니다」 相對者[상대자]가 비록 소망이 없는 것 같을지라도 항상 그에게 소망을 가지고 나갑니다. 음행하다 잡힌 여인에게도 主[주]께서는 소망을 두시고 「도 너를 정죄하지 안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섰읍니다. 넷째로 사랑하는 사람은 「범사에 견딉니다」 이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참는 것도 한두번이오 믿는 것도 정도가 있고 바라는 것도 한정이 있지 어떻게 그리도 무조건하고 참고믿고 바라랴? 그러나 우리에게 만일 사랑이 있다면 끝까지 계속하야 「견듸어야」 합니다.
사랑은 자기희생입니다. 자기 편한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미워합니까? 나는 더 큰 친절로 당신을 대하리라 당신이 나를 욕합니까? 나는 당신을 위해 축복합니다. 사랑은 불탑니다. 사랑은 激烈[격렬]합니다. 이것은 主[주]께서 주신 구원의 표입니다. 사랑의 主[주]여 우리로 하여곰 당신의 손과 발에 박히신 사랑의 자최를 보게하소서 그러고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사랑에 불타 하나님과 사람에게 이 사랑을 실행하게 합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