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교회(敎會) - 로버-쯔 博士(박사) (1937년 5월호)
☞ 붉은 색 테두리로 표시한 글자는 명확하지 않아서 〇로 처리했습니다.
리촤-드ㆍ로버-쯔 博士(박사)(Dr. Richard Roberts)는 英國(영국) 웨일스의 出生(출생)으로 現(현) 가나다聯合敎會(연합교회) 總會長(총회장)으로 있는 가장 偉大(위대)한 敎界指導者(교계지도자) 中(중) 한 분이다. 이 글은 1936年度(년도) 米國(미국) 인디아나폴리스에서 開催(개최)된 外國宣敎學生義勇團大會(외국선교학생의용단대회)에서 講演(강연)한 것으로서 特(특)히 우리 朝鮮敎人(조선교인)에게 주는 勸勉(권면)과 暗示(암시)가 많음을 느끼는 까닭에 抄譯(초역)하야 諸友(제우)의 一讀(일독)을 勸(권)하는 바이다. (金)
新約(신약)에서 하나님의 敎會(교회)를 가르켜 말슴한 일홈 中(중)에 가장 높고 아름다운 稱號(칭호)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그것이다. 예수 自身(자신)께서 하신 말슴을 引用(인용)하야 이 뜻을 說明(설명)한다면 「어데던지 두세 사람이 내 일홈으로 모히면 나도 그 중에 있으리라」(마 18장 20절)한 그 말슴일 것이니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 곧 「敎會(교회)」인 까닭이다.
이 말슴을 더 附演(부연)하야 說明(설명)한다면 「어데던지 두세 사람이 내 일홈으로 모히면 그들은 나의 몸이오 나는 그들의 〇이다」하는 文句(문구)가 될 것이다. 이 뫃인 두 세 사람은 普通意味(보통의미)의 두세 사람이 아니라 한마음 한뜻으로 融化(융화)된 한몸이며 이 마음 이 뜻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뜻인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敎會(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이 世上(세상)에 臨在(임재)하셔서 繼續的(계속적)으로 贖良(속량)하고 創造(창조)하시는 機關(기관)이다. 그리스도가 이 世上(세상)에 臨在(임재)하신다는 意味(의미)는 다만 不滅(불멸의 記憶(기억)으로 남아있다 기타 香(향)긔로운 融化(융화)를 펴친다거나 高貴(고귀)한 理想(이상)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漠然(막연)한 意味(의미)에서가 아니다. 勿論(물론) 이런 점(點)도 모다 事實(사실) 아닌 것이 아니나 곧 事實的(사실적) 現在社會(현재사회) 內(내)에서 形體化(형체화)한다는 뜻이니 「敎會(교회)」가 곧 그 體顯(체현)이다.
永遠(영원)한 그리스도가 肉身(육신)을 입어 世上(세상)에 나타나신 것이 곧 나사렛 예수시다. 그려고 그는 아직도 그의 거룩한 일홈을 믿는 男女(남녀)로 造成(조성)된 社會(사회) 即(즉) 敎會內(교회내)에 形體化(형체화)하야, 이 世上(세상)에 더불어 계신 것이다. 永遠(영원)한 「道(도)」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化身(화신)하야 降臨(강림)하신 것과 같이 그는 또한 信者(신자)의 社會(사회)인 敎會內(교회내)에 化身(화신)하야 臨在(임재)하신 것이다. 꼬어 監督(감독, Bishop Gorr)의 말한 바와 같이 敎會(교회)는 成肉身(성육신)한 그리스도의 延長(연장)이다.
諸君(제군)의 記憶(기억)하는 바와 같이 어느날 누가가 붓을 들어 册(책) 하나를 썼었다. 그것이 우리가 읽는 누가福音(복음), 그後(후)에 그는 그 福音册(복음책)의 續篇(속편)을 쓰려는 計劃(계획)을 세워 마츰내 「使徒行傳(사도행전)」이 된 것이다. 이 使徒行傳(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의 生涯(생애)의 續篇(속편)임과 同時(동시)에 끝마추지 못한 敎會史(교회사)의 第一篇(제일편)이다. 갈릴리와 유다에서 福音(복음)을 傳播(전파)하기 始作(시작)한 그리스도는 小亞細亞(소아세아)와 헬라와 로마에서 계속하야 가르치시고 傳播(전파)하시며 지금도 계속하야 英國(영국)과 米國(미국)과 印度(인도)와 支那(지나)와 日本(일본)에 두루 다니시며 傳(전)하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敎會(교회)의 歷史(역사)는 그리스도의 歷史(역사)이며 오고오는 世紀(세기)를 通(통)하야 씨여지는 未完結(미완결)의 史詩(사시)인 것이다.
그러나 諸君(제군) 中(중)에는 나를 向(향)하야 이런 忠告(충고)를 말할 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 神學的(신학적) 敎會觀(교회관)의 安全地帶(안전지대)에서 나려와 실상 事實(사실)에 나타난 敎會(교회)를 보라』고. 옳다, 敎會(교회)의 現狀(현상)을 볼 때 거기에는 온갓 不美(불미)한 形容詞(형용사)를 마음대로 부칠수 있을만츰 醜態(추태)가 많은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〇弱(〇약)하고 不信實(불신실)하고 分派(분파)와 分爭(분쟁)을 일삼으며 無氣力(무기력)하고 卑怯(비겁)하고 그려고 또 어떠어떠 하다고 諸君(제군)의 이런 評(평)에 對(대)하야 나는 조곰도 反駁(반박)하려 하지 안는다. 이런 것이 다 不〇(불〇)할 事實(사실)인 까닭이다. 그러나 諸君(제군)은 놀랠만한 한가지 事實(사실)은 곧 敎會(교회)가 이러한 것은 오늘뿐이 아니라 언제나 그러하였다는 그것이다. 처음 始作(시작)될 때부터 敎會(교회)는 그런 것이였다. 諸君(제군)이 만일 고린도前書(전서)를 읽어본다면 이 처음으로 거름발타는 敎會(교회)가
얼마나 많은 惡德(악덕)에 시달린 것을 알 것이다. 나는 이 고린도前書(전서)를 神學校(신학교)의 「敎會病理學敎科書(교회병리학교과서)」로 推薦(추천)할 생각이 〇〇 일어났었다.
그러면 敎會內(교회내)에 이렇게 惡德(악덕)이 많았으며 또 지금도 그러한 理由(이유)가 무엇인가? 웨 그럴가? 諸君(제군)은 벌서 그 理由(이유)를 짐작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그렇게 어려운 問題(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敎會(교회)를 造成(조성)한 各會員(각회원)들이 무슨 特別(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거저 여러분이나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였든 까닭이다. 여러분이나 내가 어떤 사람인 것은 스사로 짐작하면 알수 있을 것이다. 설익고 〇〇도 救援(구원)못받은 〇〇와 핑계와 〇弱(〇약)과 分裂(분열)과 分爭(분쟁)과 嫉妬(질투)와 惡意(악의)와 無情(무정)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우리로서 그의 거룩한 社會(사회)에 叅與(참여)할 수 있는 〇〇를 許(허)해 주신 것을 하나님께 感謝(감사)한다. 아니 이런 따위 사람들을 本〇(본〇)로 그의 聖事〇(성사〇)을 始作(시작)한 것을 감사한다. 敎會(교회)는 聖者(성자)들의 敎會(교회)가 아니며 哲學者(철학자)들의 敎會(교회)가 아니오 諸君(제군)들이나 나와 같은 罪(죄)와 허물에 무저즌 凡人(범인)의 敎會(교회)임을 감사한다.
이렇게 敎會(교회)를 構成(구성)한 材料(재료)가 너무나 貧弱(빈약)하고 不完全(불완전)한 것이니만치 교회(敎會)가 아직까지도 存在(존재)해 있다는 그 事實(사실)이 벌서 奇蹟(기적)이다. 만일 이것이 교회(敎會)가 아니고 다른 社會團體(사회단체)였었다면 벌서 그 存在(존재)의 形跡(형적)을 감춘지 오랬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諸君(제군)은 그러면, 이 「奇蹟(기적」을 무엇으로 說明(설명)하려는가?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시매 그 城(성)이 요동치 아니하도다』(詩 46:5)하는 詩篇記者(시편기자)의 말以外(이외)의 다른 說明(설명)을 求(구)할 수 없을 것이니 곧 敎會(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다른 文句(문구)로 表現(표현)한 것 뿐이다.
생각건대 中世紀(중세기) 以後(이후)에 敎會(교회)가 〇〇한 가장 큰 難關(난관)은 過去(과거) 一世紀半(일세기반)이였을 것이다. 영국(英國)에 産業革命(산업혁명)을 뒤이어 機械文明(기계문명), 物質文明(물질문명)이 勃興(발흥)함과 同時(동시)에 科學的(과학적), 唯物的(유물적) 思潮(사조)가 一般民心(일반민심)에 〇〇되여 마츰내 敎會自體(교회자체)까지 너무나 現著(현저)하게 俗化(속화)된 그것이다.
『적은 무리여, 두려워말라. 하나님 나라를 너이에게 주시려는 것이 너희 아바지의 기뻐하시는 뜻이니라』고 예수께서는 말슴하섰으나 敎會(교회)는 大衆(대중)이 모아 육적거리는 것과 會員增加(회원증가)의 統計(통계)에만 滿足(만족)을 차즈려하며 『하나님 나라는 그 所有(소유)[財物, 재물]의 豊盛(풍성)함에 있지 안으니라』한 것이 主(주)님의 말슴이였으나 敎會(교회)는 會堂(회당)치례와 人氣集中(인기집중)에 露骨的(노골적)으로 進出(진출)하였다. 그리하야 福音(복음)으로 하여곰 福音自體(복음자체)의 터우에 설 機會(기회)를 얻지 못하게 한 것이다.
同時(동시)에 敎會(교회)는 그보다도 더 深刻(심각)한 難關(난관)에 直面(직면)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곧 進化論的(진화론적) 假設(가설)과 聖經(성경)의 文學的(문학적), 歷史的(역사적) 批判運動(비판운동)이 極盛(극성)하야 聖經(성경)의 權威(권위)가 그 根本(근본)으로부터 崩壞(붕괴)되는 듯한 感(감)이 不無(불무(하였다. 그뿐아니라, 敎會內(교회내)에 分派心(분파심)이 너무나 流行(유행)되여 다만 一言半句(일언반구)의 聖經解釋差異(성경해석차이)로도 하로밤 동안에 새 敎派(교파)를 하나 創設(창설)하는 일이 頻〇(빈〇)하였다.
자 이런 內憂外患(내우외환)에 시달리는 敎會(교회)가 諸君(제군)의 期待(기대)를 滿足(만족)시키지 못할 것은 再言(재언)을 不俟(불사)할 것 아닌가? 그러나 보라 使徒時代(사도시대) 以後(이후)에 처음 있는 가장 크고도 세찬 世界宣敎運動(세계선교운동)이 또한 이 受難中(수난중)의 最近世敎會(최근세교회)에서 勃興(발흥)되지 안었는가? 그려고 지금껏 깨닷지 못했던 信者(신자)의 社會生活的意識(사회생활적의식)이 또한 이 時期(시기)에 喚起(환기)되였으며 各敎派(각교파)의 合同(합동)과 協力運動(협력운동)이 또한 分派運動(분파운동)의 뒤를 이어 이러난 것이다.
그런 까닭에 假令(가령) 歷史家(역사가)가 있어 지금부터 五百年後(5백년후)에 지금 時代(시대)의 敎會史(교회사)를 評(평)한다면 그는 아마도 우리의 時代(시대)를 有史以來(유사이래) 最大(최대)의 英雄的(영웅적) 活動時代(활동시대)라고 斷言(단언)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現存敎會(현존교회)를 너무 酷評(혹평)하는 것은 우리 自身(자신)의 너무 가까히 서 있기 때문에 部分(부분)만을 보고 全體(전체)를 보지 못하는데 그 原因(원인)이 있는줄 안다. 가령 博物館(박물관)에 가서 古代(고대)의 가장 傑作(걸작)이라는 彫像(조상)을 觀賞(관상)할 때에 바로 눈앞에서 보면 손가락이 떨어지고 全身(전신)에 破損(파손)과 금난데가 많어 불나위가 없는 것 같다가도 조곰 멀리서서 그 彫像(조상)을 全體的(전체적)으로 觀賞(관상)할때에는 姿勢(자세), 그림같은 陰影(음영) 等(등)이 諸君(제군)으로 하여곰 키-쯔와 함께 『아름다운 그것은 永遠(영원)한 기쁨이라』는 贊嘆(찬탄)을 發(발)하게 할 것이다.
敎會(교회)를 鑑賞(감상)하는데 있어서도 그런 것이다. 外面(외면)에 나타난 것이 비록 不完全(불완전)하고 拙(졸)한 것 같을지라도 全體的(전체적)으로 볼 때 언제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나는 諸君(제군)에게 말하노라. 現代(현대)의 大都市(대도시)자리에 禾黍(화서)가 油油(유유)하고 最後(최후)의 爆飛機(폭피기)기 博物館(박물관)에 保存(보존)되며 現代(현대)의 온갖 論難(논란)이 지나가고 우리의 資本主義(자본주의), 공산주의(共産主義), 팟시즘, 낫치즘 等(등)이 忘却(망각)된 歷史(역사)페지에만 남어있을 때에도 敎會(교회)만은 變(변)변함없이 땅우에서 하나님의 말슴을 傳(전)하며 왼 世上(세상)이 完美(완미)한 「그리스도의 몸」 될 때까지 그 活動(활동)이 끄치지 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