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7일 금요일

[십자군 제2권 제1호] D. L. 무디와 그 일화 – 편집자

D. L. 무디와 그 逸話[일화]

- 編輯子[편집자]

米國[미국]의 第二十八代[제28대] 大統領[대통령]이 한번은 어느 理髮所[이발소]에 가서 理髮[이발]하는 中[중]이였다. 그 大統領[대통령] 自身[자신]의 말. 『말하자면 下等理髮館[하등이발관]인데 퍽 〇俗[〇곡]한 곧이였읍니다. 나 理髮[이발]을 시작하자 어떤 이가 들어와 내 옆 椅子[의자]에 안저서 역시 理髮[이발]하기 시작했었는데 나는 어쩐지 自然[자연] 그가 그 理髮師[이발사]하고 이야기하는 한마듸 한마듸에 귀를 기우리게 되였읍니다. 그의 말투에서 所謂[소위] 「敎訓的[교훈적] 口調[구조]」라는 것은 조곰도 찾어볼 수 없었으나 何如間[하여간] 이 理髮師[이발사]를 진정으로 생각해 준다는 것을 直感[직감]하게 되엿읍니다. 그가 理髮[이발]을 畢[필]하고 나간 다음에도 나는 일부러 그 理髮所[이발소]에서 徘徊[배회]하였읍니다. 얼마前[전]까지도 野卑[야비]한 弄談[농담]을 써가며 자랑삼아 웃고 지꺼리던 理髮師[이발사]들도 말이 없어지고 그 낮에 이상한 敬虔美[경건미]가 떠도는 것을 보았읍니다. 나도 이상한 視福[축복]을 느끼며 그 理髮所[이발소]를 나왔읍니다. 理髮師[이발사]들이나 내나 다함께 前[전]보다 한층더 높은 생각의 殿堂[전당]을 逍遙[소요]하고 있엇던 것입니다. 나는 禮拜堂[예배당]에서 나오는 氣分[기분]으로 그 理髮所[이발소]를 나왔읍니다. 그러나 그가 有名[유명]한 傳道者[전도자] 무-디 氏[씨]였던 것은 理髮師[이발사]들도 몰르고 나도 勿論[물론] 몰랐었읍니다.』

이 第二十八回[제28회] 大統領[대통령]은 우드로 윌손이였고 그의 다음 椅子[의자]에 안저 理髮[이발]하던 이는 勿論[물론] 무디 氏[씨]였다. 그러면 이 〇俗[〇곡]한 理髮所[이발소]를 불과 五[5], 六分間[6분간]에 聖所[성소]로 化[화]한 무-디 氏[씨]는 果然[과연] 어떠한 이였는가? 지금부터 그의 面貌[면모]를 그려보기로 하자.

무-디(Dwight Lyman Moody)는 一八三七年[1837년] 二月[2월] 五日[5일]에 米國[미국]의 만나츄-셋즈州[주] 東[동] 노트 ᅋᅵᆯ드에서 出生[출생]하야 一八九九年[1899년] 十二月[12월] 二十二日[22일]에 거긔서 逝去[서거]한 다시 없는 平信徒傳道者[평신도전도자]이였다. 그는 十七歲[17세]때까지 農場勞動者[농장노동자]로 지냈으며 十八歲[18세]부터 시카고市[시]에서 洋靴店[양화점] 店員[점원]으로 지내였다. 十八歲[18세] 때 그는 悔改[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었고 店員[점원]으로 있는 동안 풀리마우드 組合敎會堂會員[조합교회당회원]으로 主日學校[주일학교]를 組織引導[조직인도]하였으며 同時[동시]에 靑年傳道[청년전도]에 熱心[열심]을 다

하였다. 南北戰爭時[남북전쟁시]에는 戰線[전선]에 나가 傳道[전도]하였고 다시 시카고에 도라와 病傷兵[병상병] 看護[간호]에 盡力[진력]하였다. 一八六五年[1865년]에 시카고 基督靑年會長[기독청년회장]으로 被選[피선]되였으며 이 靑年會[청년회]에서는 廣大[광대]한 復興傳道舘[부흥전도관]을 建築[건축]하야 〇의 復興運動[부흥운동]에 提供[제공]하였다. 이 建物[건물]은 一八七二年[1872년]에 火災[화재]로 鳥有[조유]에 歸[귀]하였으나 그들은 다시 七萬弗[7만불]을 드려 大傳道舘[대전도관]을 지었다. 

무-디가 三十六歲[36세]때에 펜실베니아人[인] 생키(Ira D. Sankey)와 親交[친교]를 맺어 兩後二人[양후2인]은 一心同體[일심동체]로 聖役[성역]을 함께하였다. 쌍키는 무디보다 三歲年少者[삼세연소자]로서 銀行家[은행가]의 아들이오 祝福[축복]받은 音樂家[음악가]였다. 가는 곳마다 무-디는 說敎[설교]하고 쌍키는 노래하야 하나님의 두 팔과 같이 일하였다. 그들은 全米國[전미국]을 巡廻傳道[순회전도]하야 가는 곳마다 新生命[신생명]의 運動[운동]을 일으켰으며 다시 一八七〇年[1870년]과 一八八三年[1883년]에 英本國及蘇格團全幅[영본국급소격단전폭]에 大擧傳道[대거전도]하야 亦是[역시] 大復興[대부흥]을 일으키였다. 그들은 福音歌[복음가]를 出版[출판]하야 그 收入[수입]과 其他收入[기타수입]으로 노-트ᅋᅵᆯ트 女子神學院[여자신학원] 마운트허-몬男學校[남학교], 뻬야웯舘[관], 노트ᅋᅵᆯ드 聖經學校等[성경학교등]을 設立[설립]하였고 무-디의 著書[저서]로는 『말슴의 道[도]』 『그리스도의 再臨[재림]』 『하나님의 道[도]와 그 發見法[발견법]』 等[등]이오 其外[기외]에 幾多[기다]의 說敎集[설교집]이 있다. 그는 神學專攻[신학전공]한 이도 아니오 特別[특별]히 學校敎育[학교교육]을 받은 이도 아니었으나 그의 信仰[신앙]은 가장 健全[건전]한 正統[정통]이였으며 그의 說敎[설교]의 主題[주제]와 그의 人格全體[인격전체]는 「하나님의 사랑」에 그 中心[중심]을 두었고 敎派的[교파적]으로는 언제던지 合同[합동], 聯合[연합]의 情神[정신]에서 일하였다. 이제 그의 발자최를 더듬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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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임스江[강]의 南岸[남안] 캠버웰에서 諷刺的[풍자적]이오 批評的[비평적]인 젊은 醫學生[의학생] 하나 심심푸리 삼아 무-디의 復興會[부흥회]에 參席[참석]하였다. 긴 說敎[설교]는 질색 긴 긔도는 더군다나 질색인 이 醫學生[의학생]은 不幸[불행]하게도 이 集會[집회]에 參席[참석]하자마자 긴 祈禱[기도]꾼에게 붓잡히였다. 이 긔도꾼은 뿔랭크氏[씨]! 그는 지금 창세 以後[이후]로 現代[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하나님 聖德[성덕]을 一一[일일]히 찬송하고 인저 英國[영국]에서 떠나 世界[세계]를 一週[일주]하며 大少萬事[대소만사]에 하나님의 主意[주의]를 喚起[환기]한 후 다시 第二次[제2차] 世界一週[세계일주]를 시작하는 中[중]이였다. 그때 講壇[강단]우에 안젓던 무-디氏[씨] 이러서서 群衆[군중]을 向[향]하야 하는 말! 『뿔랭크 兄[형]님이 祈禱[기도]하시는 동안 우리 다같이 찬송가 제 八十九章[89장]불릅시다.』

이 醫學生[의학생]은 갑작이 옷깃을 바로잡고 이러안젓다. 그의 눈은 빛났다. 『이 사람 너절한 復興師[부흥사]가 아니로구나 그 勇氣[용기]와 常識[상식]이 平凡以上[평범이상]이다!』하고 혼자 感嘆[감탄]하였다. 한時間[시간] 說敎[설교]에 귀를 기우린 醫學生[의학생]은 깊히 생각하며 집으로 도라가더니 後[후]에 世界最大[세계최대]의 醫療宣敎師[의료선교사]로 라바라도의 어름에 무친 北永洋[북영양]사람들께 거룩한 偉業[위업]을 남기였다. 그의 일홈은 월프레드 티 그레펠 博士[박사](Dr. Wilfred T. Creafell)이다.

무-디는 身長六尺[신장6척] 體重三十四貫[체중34관]의 巨人[거인]이다. 그가 講壇[강단]에 나서면 爲先[위선] 그 偉容[위용]이 사람을 눌른다. 勿論[물론] 그의 靈力[영력]이 體軀[체구]의 偉大[위대]한데 있은 것은 아니나 그의 體軀[체구]가 그 靈的活動[영적활동]에 最先[최선]의 機械[기계]가 된 것은 事實[사실]이다. 그는 鋼鐵人[강철인]이었다. 無盡藏[무진장]의 活力[활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集會[집회]는 언제나 數千名[수천명]이였으며 굴레스고에서는 三萬名[3만명] 캔사스씨티에서 二萬名[2만명]을 앞에 놓고 說敎[설교]하야 多多益善[다다익선]의 大結果[대결과]를 이였다.

그가 一八九二年[1892년] 蘇格蘭[소격란]을 巡廻[순회]할 때에는 九十日[90일]동안에 九十九都市[99도시]에서 集會[집회]했으며 아츰 아홉시부터 밤 아홉시까지 쉴새없이 說敎[설교]하였다. 그러기에 그의 同志[동지]로 찬송가 引導[인도] 맡은 이라, 쌍키는 너무 急[급]해저서 하로 熱心[열심]으로 긔도하는 말 - 『오 하나님 무-디를 疲困[피곤]하게 합소서 그러챦으면 우리에게도 사람 以上[이상]의 힘을 주옵소서!』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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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故鄕[고향] 노트ᅋᅵᆯ드의 農夫[농부]들은 언제나 그를 「무-디君[군]」이라 불렀다. 언젠가 누가 「무-디 博士[박사]」라고 불러 보았으나 通用[통용]이 안되고 말었다. 그는 太西洋 저쪽에서 大英帝國[대영제국]을 뒤집어 흔들어 世界人[세계인] 欽仰[흠앙]의 焦點[초점]이 되였으나 몇칠 後[후] 故鄕[고향] 農村[농촌]에 돌아온때에는 如前[여전]히 낡은 農服[농복]을 입고 傭人[용인]들과 함께 밭갈고 닭먹이고 풀 뽑고해서 그 附近農夫[부근농부]와 조곰도 다른 틔가 없었다.  子女[자녀]들이 或[혹] 잘못한 일이 있으면 무섭게 嚴[엄]하게 책망하지만 그들이 寢臺[침대]에 잠든 때면 그는 몰래 그들의 寢臺[침대] 옆에 꿀어안저 그들을 爲[위]하야 뜨거운 긔도를 들이는 것이였다. 마운트 홀리욕 大學校長[대학교장] 메리 울리 女史[여사]가 하로는 무-디 家庭[가정]에서 朝飯[조반]을 같이 한일이 있었는데 조반 후에 무-디는 全家族[전가족]과 함께 聖經[성경] 한 章[장] 읽고 진실로 敬虔[경건]한 긔도를 들이였다. 그러나 『아-멘』하고 긔도끝나자마자 그는 그의 아들을 向[향]하야 『소가 콩밭에 들어가지 안는가 꼭 잘 봐야 한다!』 하고 말하였다. 그는 極度[극도]로 靈的[영적]이면서도 同時[동시]에 또한 極度[극도]로 人間的[인간적]이였다. 켐벨 몰갠의 말에 依[의]하면 그는 한번 네 살먹은 손녀를 안고 馬車[마차]타고 집에 오다가 車中[차중]에서 어린애가 잠들엇는데 집에 다와서도 깨나지 않으니까 그는 車夫[차부]로 하여금 말을 가만히 버끼게 하고 그애를 안은채 馬車[마차] 안에 그대로 안저 있다가 그만 자긔까지 거긔서 잠들어버리였다한다. 잠든 어린애를 안은채 잠든 그는 어린애같이 天眞[천진]스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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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ᅋᅵᆯ드에서 한 二十里(이십리, 조선리수)되는 와-윅의 조고마한 農村敎會[농촌교회]에서 牧師[목사]가 없어 講壇[강단]이 비게 된 때 무-디는 一年[일년]나마 그 敎會[교회]의 牧師[목사]일을 보아주었다. 一年後[일년후] 그 敎會[교회]에서 얼마 報酬[보수]를 들이려 한때 그는 呵呵大笑[가가대소]! 

도모지 問題[문제]도 삼지 않었다. 그에게 非人間的[비인간적]인 데가 있다면 그가 돈에 全然[전연] 無頓着[무돈착]했다는 그것일 것이다. 그의 찬송가集[집]과 說敎集[설교집]이 出版[출판]되여 數十萬弗[수십만불]의 收入[수입]이 있었으나 그는 銅錢[동전]한푼 거긔 손대이지 않었다. 그는 자긔가 물어야 할 것은 깔축없이 다물었지만 언제던지 그 自身[자신]을 위하야 收金[수금]하는 일은 절대로 용납지 않었섯다. 누구에게 말한마듸 들을 거 없이 제절로 百萬長者[백만장자]가 될것이였으나 그는 한 農夫[농부]로서 所用[소용]되는 生活費以上[생활비이상]의 아모다른 收入[수입]도 取[취]하지 않었다. 復興家[부흥가]로서 百萬長者[백만장자] 된 삘리 썬데-가 그 아들의 放蕩[방탕]으로 祝福[축복]을 〇代[〇대]하지 못한 苦憫[고민]에 比[비]하면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使者[사자]」 참 聖神[성신]의 사람이였음을 讚嘆[찬탄]하지 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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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神學校門[신학교문]이 어듸 붙엇는지도 몰랐으나 世界的[세계적] 大說敎家[설교가], 傳道者[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만나가 감초인 天上[천상]에 홀로 逍遙[소요]하며 즐긴 者[자]가 아니오 사람들 입에 그 만나를 난화 먹이는 것을 使命[사명]으로 한 者[자]였다. 그는 神學的[신학적] 辯論[변론]을 몹시 실혀하였다. 어느 때 神學的[신학적] 辯論[변론]에 熱中[열중]하는 者[자]들을 보고 『머리털 깨틀이는 實驗[실험]은 좀 그만두었으면 좋챤소?』하였다. 누가 그에게 『당신 信條[신조]가 무엇이오?』하고 물은 때 그는 『이사야 五十三章[53장]이오!』 하고 대답했다 한다. 그는 專門學校[전문학교]도 다녀보지 못한 이다. 그러나 當時[당시]의 世界的[세계적] 最大神學者[최대신학자], 푸린스톤神學校[신학교]의 아-취발드 하지 박사는 하로 敎室[교실]에서 이러케 말하였다. 『내가 만일 그 사람(무-디를 가리킴)처름 說敎[설교]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내 地位[지위]와 學職[학직]을 다 糞土[분토]같이 버리겠소.』

그는 聖經以外[성경이외]에 다른 아모것도 說敎[설교]하지 안었다. 心理學[심리학]도 無用[무용] 高等批評[고등비평]도 몰랏다. 『福音[복음]이 어떠케 罪人[죄인] 구원하는 것은 내가 四十年間[40년간] 實驗[실험]해서 잘 아는 터인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새 方法[방법]에 덥적거릴 必要[필요]가 무어 있소?』 하는 것이었다. 그가 聖經[성경]을 들고 講[강]단에 나서매 왼世上[세상]은 그의 말을 들었다. 웨 그랬는가? 聖經[성경]만은 그가 참으로 잘 工夫[공부]했고 잘 알었던 까닭이다. 그는 每日[매일] 아츰 네時[시]에 이러나 祈禱[기도]하며 聖經[성경]을 읽엇다. 聖經[성경]의 깊은 뜻을 꿰뚫러 보는 데는 아마도 그때나 이제나 그에게 匹敵[필적]할 자 없을 것이다. 그는 講壇[강단]에서 별스럽게 굴지 않었으며 怒呼[노호]하지도 안었고 暴言豪語[폭언호어]도 없었으며 演劇[연극]도 하지 안었다. 그는 노트ᅋᅵᆯ드 農夫[농부]들과 會話[회화]할때처름 單純[단순]하고 天眞[천진]하였다. 그에게는 誹謗[비방]이 없었으며 쓴말이 없었다.

한번은 어느 敎役者[교역자]가 몹시 激烈[격렬]하게 論爭的[논쟁적] 說敎[설교]하는 것을 듣고나서 그가 하는 말! 『나한번 魔鬼[마귀]에 對[대]하야 說敎[설교]를 준비했었는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온갖 惡[악]한 일홈으로 그를 불르며 내 힘자라는데까지 그를 찢고 밟고 한 셈이였지요. 그러고 내가 오늘 이 說敎[설교]만 하면 마귀라는 놈 아주 납작해 젖지 별수 있나! 하고 불

내면서 熱心[열심]으로 說敎[설교]를 했지요. 그런데 說敎[설교]가 끝난 다음에 敎人[교인]들 마음을 가만히 삶여보니깐 「듣고보니 마귀가 그러케 납분놈은 아니였구먼!」하고 마귀에게 동정하는 氣分[기분]이겠지요! 그래 그때부터 나는 그 따위 說敎[설교]는 다 치여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한답니다.』 그의 신령한 智惠[지혜]의 閃光[섬광]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만 증거하면 나는 숨기고 그리스도만 나타나니 마귀가 제절로 무서워 달아나지만 그리스도를 擁護[옹호]하노라고 내가 앞에 서고 그리스도가 내 뒤에 숨으신다면 마귀가 도망질은커녕 그 奸計[간계]로 나를 붙잡아 더 충실한 自己[자기] 종을 삼을 것은 두말없이 그럴거 아닌가? 言必稱[언필칭] 異端排擊[이단배격], 正統擁護之徒[정통옹호지도]가 率先[솔선]하야 敎會分裂[교회분열]의 主役[주역]이 되는 理由[이유]가 곧 여긔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贖罪愛[속죄애]를 各自[각자]의 生活全體[생활전체]로 證據[증거]한다면 異端[이단]은 제절로 물러갈 것이 아닌가? 異端[이단]이란 自體[자체]가 사탄에게서 난 것이라면 「異端排擊[이단배격]」이란 것도 역시 사탄의 所作[소작]이니 그는 이들을 싸움부처 敎會[교회]의 분열, 兄弟愛[형제애]의 冷却[냉각], 信仰[신앙]의 儀文化[의문화]를 達成[달성]하려는 것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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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끈임없이 그리스도만 이야기하매 사람들은 실증없이 그의 말을 들엇다. 그는 한번 요한복음 三[3]장 十六[16]절을 本文[본문]으로 하고 육일동안 계속하야 설교하였다 第七日[제7일]밤에 그는 會衆[회중]을 향하야 『친구들, 나 오늘 終日[종일] 새 本文[본문]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이처름 좋은 本文[본문]을 찾지 못했읍니다. 그래 또 이 요한 三[3]장 十六節[16절]로 도라왔소이다.』 하였다. 그러나 그가 설교하는 동안에 실타고 나간 사람은 勿論[물론] 하나도 없었다. 그가 異端排擊[이단배격]에는 甚[심]히 拙[졸]하였으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는 진실로 勇將[용장]이였다. 시카고에 世界傳覺會[세계전각회]가 열렸을 때 그는 中央音樂堂[중앙음악당]을 세내여 傳道集會[전도집회]를 計劃[계획]하였다. 集會時間[집회시간]은 아츰 九時[9시]부터 午後[오후] 六[時6시]까지였다. 다른 傳覺會[전각회] 구경 갈터인데 웬걸 모히랴! 하고 모도들 걱정하였지만 놀라지 마라! 첫날 時間[시간]도 되기전에 무-디가 들창을 열로 겨우 집안에 들어갈만치 사람들이 차고 넘치였었다. 傳覺會[전각회]의 모든 演劇[연극]과 구경거리도 이 聖經[성경]을 손에든 한사람 앞에서는 아모힘도 없었던 것이다. 演劇[연극]이야기 났으니 말이지 한번 有名[유명]한 ᅋᅩ레파우曲馬團[곡마단]이 시카고에 와서 午後[오후]와 저녁 두 번식 大興行[대흥행]을 한다고 廣告[광고]하였다. 그때 무-디는 그 興行塲主[흥행장주]에게 교섭하야 아츰 時間[시간]에 그 興行塲[흥행장]을 세내여 傳道集會[전도집회]하기로 約定[약정]하였다. 그런데 아츰 時間[시간]에 그 興行塲[흥행장]에 몰려온 群衆[군중]이 너무나 超滿員[초만원]이오 너무나 感激的[감격적]인 것을 보고 興行師[흥행사]들은 그만 그날 午後[오후]에 天幕[천막]을 거두어싯고 봇짐싸가지고 다른데로 가버리였다한다. 勿論[물론] 그들도 아츰 集會[집회]에 나와 은혜받고 갓을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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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米國[미국]에서는 天主敎[천주교]와 新敎派[신교파]와의 싸움이 가장 激烈[격렬]하던 때엿다. 그때 그의 故鄕[고향]인 노-드ᅋᅵᆯ드에 새로 天主敎堂[천주교당]이 建設[건설]되였는데 그는 그 天主敎堂建設[천주교당건설]을 爲[위]하야 꽤 많은 金錢[금전]과 風琴一座[풍금일좌]를 연보하였다. 그러나 數年後[수년후] 그 自身[자신]이 트리니타리안 禮拜堂[예배당]을 建築[건축]할 때에는 天主敎[천주교]에서 사흘동안 계속하야 돌팔매질하는 것으로 그의 親切[친절]을 報答[보답]하였다. 무-디의 눈에는 天主敎[천주교]도 新敎[신교]도 보이지 않고 다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의 靈魂[영혼]만이 보이였던 것이언마는 相對方[상대방]의 沒理解[몰이해]는 마츰내 이런 悖德[패덕]을 이르킨 것이니 遺憾[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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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는 世上[세상] 떠나기 바로 前[전]에 이러케 말하였다. 『몃칠 지나서 新聞[신문]에 「띠엘 무-디가 죽었다」는 記事[기사]가 날지라도 조곰도 믿지 말어! 나는 갈사록 더 活動的[활동적]으로 살터이니까!』 하였다. 진실로 그는 더욱 活潑[활발]하게 살어 움직인다. 이제 死後[사후]에 계속하는 그의 生活[생활]을 보자! 거즛先知者[선지자]는 죽는 날이 썩는 날이지마는 참 하나님의 先知者[선지자]는 죽엄을 通[통]하야 더욱 그 榮光[영광]을 빛내며 더욱 뚜렷한 열매를 맺어보이는 것이음으로써다. 昨年[작년]은 무-디 誕生[탄생]한 百年[백년]되는 해였다. 그의 死後[시후]의 事業[사업]이 如何[여하]? 그가 設立[설립]한 노트엘드 女子神學院[여자신학원]과 마운트허몬男學校[남학교]에 一千百名[1100명]의 在學生[재학생]이 있으며 二萬名[2만명]의 卒業生[졸업생]이 아직도 生存[생존]하야 무-디의 믿음을 傳播[전파]하고 있다. 그의 指導[지도]로 생겨난 大學生及專門學生[대학생급전문학생]으로 된 「世界宣敎學生義勇團[세계선교학생의용단]」은 五十年來[오십년래]에 米國[미국]에서만 一萬三千餘名[일만삼천여명]의 宣敎師[선교사]를 全世界[전세계]에 派送[파송]하야 지금도 活躍[활약]하고 있다.

무디의 婦人聖經班[부인성경반]에서부터 자라난 시카고의 무-디聖經學校[성경학교]에서도 二萬五千名[2만5천명]의 精兵[정병]이 靈戰[영전]의 第一線[제일선]에 나섰으며 現在[현재] 四十名專任敎授[40명전임교수]의 指導下[지도하]에서 一萬名[일만명]의 在學生[재학생]이 第一線[제일선]에 설 遺憾[유감]없는 準備[준비]와 訓練[훈련]을 받고 있다. 이 學校[학교]에는 라디오 放送局[방송국]과 聖經夜學校[성경야학교]까지 있어 聖經知識[성경지식]의 普及[보급]에 萬全[만전]을 다하는 中[중]이며 시카고의 무-디紀念禮拜堂[기념예배당]은 아모 敎派[교파]에도 屬[속]하지안코 아모 敎會法則[교회법칙]에도 매이지 안은 敎會[교회]로서 다만 悔改[회개]하고 예수들 참으로 믿는 者[자]면 누구나 그 會員[회원]으로 迎接[영접]한다. 現在[현재] 四千名[사천명]의 會員[회원] 一千七百名[1700명]의 主日學校生[주일학교생]이 있으며 富者敎人[부자교인]은 없으니 이는 禮拜堂門牌[예배당문패]에 색인 標語[표어] 「他鄕[타향] 손님과 가난한 이들 언제나 없이 환영합니다」한 것이 그 정신인 까닭인가 한다. 이 敎壇[교단]아래에서 百十四名[114명]의 宣敎師[선교사]가 特別[특별]히 가난하고 病[병]든이들 가운데로 나가 그들의 親舊[친구]가 되여있다.

聖經文書運動團[성경문서운동단]에서는 四十一年間[41년간]에 百六十一種[161종]의 信仰文書[신앙문서]를 六國語[6국어]로 一千萬部[일천만부]를 刊行頌布[간행송포]했으며 聖經[성경], 찬송가, 傳道用單行本等[전도용단행본등]은 七十萬部以上[70만부이상]이 여긔서 부 全世界[전세계]에 퍼지였다.

무-디의 感化[감화]로 主[주]께 獻身[헌신]한 사람은 반다시 牧師[목사]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中間補充者[중간보충자]들이다』 하는 것이 무-디가 늘상하는 말이였다. 즉 牧師[목사]와 平敎人[평교인]과의 사이를 메꾸는 것이 그들의 使命[사명]이란 말이다. 牧師[목사]는 聖別[성별]된 職分[직분]이니만치 아모 事業[사업]에나 分別[분별] 없이 손댈수 없으며 平敎人[평교인]은 修養[수양]과 訓鍊[훈련]이 없고 또 世俗生活[세속생활]에 汨沒[골몰]하니만치 直接奉仕[직접봉사]의 能力[능력]이 缺乏[결핍]하다. 그러므로 무-디는 스데반 빌립 等[등]과 같이 使徒[사도]와 平信徒[평신도]의 사이에 있어 社會奉仕[사회봉사]와 傳道[전도]를 兼行[겸행]할 初代敎會式[초대교회식] 獻身的[헌신적] 執事級[집사급]을 訓鍊[훈련]하려는 것이였다. 진실로 名案[명안]이다. 그러므로 무디와 關聯[관련]된 사람들은 社會各方面[사회각방면]에 들어가 그 信仰[신앙]을 實踐[실천]한다. 最近[최근]에 某英國記者[모영국기자]의 發表[발표]한 바에 依[의]하면 『론돈의 모든 慈善機關[자선기관]에서 만일 무-디와 關係[관계]된 사람들을 다 除外[제외]한다면 全[전] 론돈의 慈善機關[자선기관]은 그 〇體[〇체]를 일허버릴 것이다』 하였다. 우리에게는 더욱이 이런 訓鍊機關[훈련기관]이 必要[필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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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후에 내 願[원]하는 碑石[비석]은 두발가지고 걸어다니는 碑石[비석]이다』하고 무-디는 말하였다. 救援[구원]받은 罪人[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救援[구원]을 왼 世界[세계]에 傳[전]하는 그 두발가진 무-디의 사람들이 곳 그의 不滅[불멸]의 碑銘[비명]이다. 『聖神[성신]이 너이게 臨[임]하시면 너이가 權能[권능]을 얻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서 내 證人[증인]이 되리라』 聖神[성신]에 感激[감격]한 무-디는 偉大[위대]한 비쥰에 불타는 先知者[선지자]였다. 그러고 이 先知者[선지자]의 비쥰은 갈사록 더 크게 밝게 우리를 비최이고 있다. 

一月 十日



십자군 제2권 제1호 목차

십자군 제2권 제1호 목차 소화 13년 2월 - 1938년 2월 ☞ 각 제목을 클릭하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교[架橋] - 장공 본지의 선언 선지자적 심정 – 주간 설교 : 생명의 샘 예수 – R. 레아드 박사 그리스도의 향기 – 편집실 맨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