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1:1-2, 22:20-22 ; 요한복음 21:15-19] 민중과 함께 – 1983년 8월 21일, 김상근 목사

민중과 함께

출애굽기 21장 1-2절, 22장 20-22절 ; 요한복음 21장 15-19절 / 1983년 8월 21일 / 수도교회


[말씀을 향한 물음]

우리는 나를 위해 예수를 믿고 기독교 신앙 가운데 있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를 믿게 된다는 것은 곧 소명, 특별한 사명에로 부름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의 관심, 성령이 지금 하시고 계시는 그 일에의 부르심이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가? 여전히 그 동기와 목표가 ‘나’인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인가?


[슬라이드]













[설교 전문]

7월 19일에 떠나 8월 16일에 돌아왔다. 만 29일의 긴 여행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지방 출장이 있고 또 금방 중요한 회의들이 있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하여간 29일간 몇 번의 회의가 있었고, 우리 교단과 관계가 있는 미국 교회 총회를 방문했다. 그리고 금번 123년 만에 미국연합장로교(UP-USA)와 남장로교(PC-US)가 통합하여 미국장로교(PC-USA)가 되었는데, 그 교회와 정식으로 선교 협약을 맺기로 합의하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워싱턴 수도교회 창립 1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하여 문동환 목사님과 모든 교인들도 만나고 또 설교의 순서도 맡았다. 3대 총무였던 이영민 목사님이 격려사를 하셨고, 또 김재준 목사님께서 축도를 하는 등 예배 순서나 분위기가 퍽 성대했다. 목사님과 사모님, 온 가족이 건강하시고 이곳 교인들을 잊지 못하여 여러 소식을 묻기도 하시고 안부를 부탁하기도 하셨다.

우리 교인들 중에 어떤 분은 만났고 어떤 분은 전화만 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회의를 마치고 그곳 김종덕, 최영화 집사님 댁 식구를 만났고, 최영택 선생 댁에도 가 보았다. 그리고 클레어먼트에서 공부하고 있는 최일붕 선생과는 그의 기숙사에서 이야기하며 하룻밤을 보냈다. 또 김종필 씨도 만났다. 미네아폴리스에서 비행기를 바꾸어 타면서 잠깐 빈 시간에 김옥란 권사님과 손정은 집사 부부와 통화를 했다. 너무들 반갑고 또 섭섭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했지만 서울, 부산 같은 거리도 아니고 하여 그런 식으로 심방하고 돌아왔다. 참으로 바쁘고 힘든 일정이었으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건강을 잃지 않고 오늘 여러분 앞에 서게 되었다.

우리 교회가 주일날 모시는 목사님들은 쉽게 모실 수 있는 분들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귀한 줄을 모르는 것 같다. 더구나 더운 여름에 유명한 강사를 모셔 놓고 예년처럼 교인들이 적으면 인사가 아니고 또 모처럼의 귀한 증언을 여러분이 듣지 못하는 유감된 사태를 막기 위해서 권 준목님이 3주를 맡아 이 여름을 넘기기로 했다. 나는 이번 증언 기회에 도대체 총회에 가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무엇을 하려 하는 것인가를 여러분께 말씀드리려고 한다.

오늘 봉독한 구약성서의 말씀은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히브리인들을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구해 내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신 대목이다. 히브리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자기들이 이룩해 갈 세상에 대한 하나의 이상과 꿈을 밝혀 놓은 것이다.

몸 붙여 사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과부와 고아, 어렵게 사는 백성, 학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 새 말로 하면, ‘민중’ 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사람들과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지침을 주고 있다. 구박하거나 학대하지 않고 괴롭히지 않는다. 어렵게 사는 사람에게는 채권자 행세를 하지 않고 생의 가장 기초적인 것을 침해하지 않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도 민중과 민중 아닌 계층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두 계층이 함께 사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신약성서 본문을 보자.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곤 했었는데, 본문은 바로 그러한 한 장면이다.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한다. 이러기를 세 번 거듭했다. 그럴 때마다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을 먹여라”, “내 양을 쳐라”, “내 양을 먹여라”는 말씀을 하신다.

여기 “내 양’이 누구냐? 지금까지의 성서 주석가들은 그리스도인이요 교회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를 세상의 주가 아닌 교회의 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세상의 생명이 아닌 예수 믿는 자들만의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예수가 이 세상을 위하여 인간 세계에 오셨고 하나님께서 오늘도 이 세계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고 계시다면 예수께서 “내 양”이라 말씀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나 교회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말한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는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양”으로 여기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계의 생명이신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15절에 이 양을 수식하기를 “어린 양”이라 했다. 제 스스로 설 수 없고, 아직은 약하고, 전체 무리 가운데서 밀려나 있는 양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다.

교회는 베드로가 받은 이 목회적 사명을 계승하는 공동체다. 그렇다면 교회의 목회적 사명은 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 있거나 밖에 있거나 하나님이 관심하시는 어리고 약하고 밀려나 있는 모든 양에 대하여 교회는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그 양들을 먹이고 쳐야 할 것이다.

최근 교회가 헌금을 부당하게 징수하여 치부한다는 비판이 일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하여 빗발치게 일어났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하는 데는 세금원을 포착하려는 등의 정부의 용의주도한 사주가 그 뒤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취지는 교회가 양을 치는 것이 아니라 양을 속여 착취하고 그래서 살찌고 있다는 비판이다.

유럽을 여행하신 분이면 누구나 유럽의 관광이란 교회 문화의 관광이라는 사실을 금방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웅장하고, 수백억 원을 투자했을 교회 건물들은 예술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충분하다. 그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를 얼마나 아꼈느냐 하는 것을 설명없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관광은 불교의 사찰 관광이다. 굉장한 절들이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 우리나라의 불교가 사찰을 짓고, 유럽의 교회가 교회 건물을 짓는 데 그 많은 비용을 들인 것 자체를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의 어린 양들을 위하기보다 그들을 착취한 흔적이요, 그 양들을 먹이고 치기보다는 그 양들을 오히려 목자인 교회를 살찌게 하는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여기에 공산주의가 설 자리가 생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교회가 경이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은 어쨌든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는 교회가 세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제다. 교회가 세워지면 세워지는 만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정비례로 버림을 받는다는 사실에 우리는 충격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 올해에 우리는 10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라는 감사의 기도가 있다면 똑같은 시간에 ‘하나님, 우리는 목자를 또 잃게 되었습니다.’하고 통탄하는 기도가 거의 열 곳에 있게 된다. 약하고 힘없는 교회를 떠나 힘 있는 곳, 예산을 많이 세울 수 있는 곳에 새 교회를 세우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만 해도 전체 교회의 40.2%가 목사 없는 교회다. 그 중에는 우리 교회 같은 특수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약하고 힘 없는 자들이 모인 교회이기에 거기 목사를 모시지 못하고, 목사는 거기에 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나는 여기서 심각한 위기와 경종을 보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교회의 힘이 이렇게 확대되어 전체 인구의 사분의 일이 교회의 절대적 영향권 아래 있는데도 교회가 중세의 교회처럼, 조선 시대의 불교처럼 그 땅의 양을 먹이고 치지 못한다면 교회의 운명도 운명이려니와 인류 공동체가 기어코 파멸하게 되겠기 때문이다.

올해가 내가 교단의 살림을 맡은 첫해인데 마침 우리가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추방되면서 새 역사를 선언하고 새 출발을 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앞으로 우리 교단의 방향과 좌표는 무엇이 어야 할 것인가를 마땅히 생각하고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계기다. 올해 제68회 총회와 새 역사 30년의 주제를 “기장 - 민중과 함께ㆍ민족을 위하여ㆍ땅 끝까지”라고 정하였다. 기장 교회는 하나같이 무엇을 지향하여야 할 것이냐? 민중과 함께 사는 교회를 지향하자는 결의다.

교단적 사업으로 지금 실시하고 있는 ‘교역자 최저 봉급제’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바로 약하고 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도 목회자가 갈 수 있도록 최저 봉급을 보장하자는 제도다. 모든 목회자가 자기 사례비의 5%를 총회에 보내고 총회는 이것을 관리하여 최저 봉급에 미달하는 목회자를 도움으로 해서 힘 없는 양들도 꼴을 얻고 물로 인도받을 수 있게 하자는 제도다. 그리고 노동자, 농민들을 위한 선교, 그들을 먹이고 치는 사업도 더욱 본격적으로 하려고 한다.

우리 교회가 그간 주간 학교를 한 일이나 의료 봉사 사업, 장학 헌금을 한 일이나 장애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등은 “내 양을 먹여라.”는 주님의 말씀에 충실하려는 노력들이다. 내가 없는 기간에 장학 헌금을 하였는데 첫해 목표액을 초과했다는 말씀을 들었다. 수고들 하셨다. 물론 헌금을 자기 분수에 맞게 하여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헌금을 내면 주머니는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었는데 풍성해지는 법이다. 그것은 반드시 100원을 내면 200원이 생긴다는 뜻은 아니다. 100원이 없어졌는데도 100원으로 살 수 없는 생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된다는 뜻이다. 움켜쥐고 있는 것만이 그를 풍요하게 해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금번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큰 토의 중의 하나도 역시 ‘어떻게 어린 양을 먹이고 치는 기독교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민중과 함께 사는 삶, 민중을 치고 민중을 먹이는 목회적 삶을 주님으로부터 요청받고 있다. “내 양, 내 어린 양”을 치라는 것은 주님의 마지막분부다.

그러나 18절을 보면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다. 자기를 깎는 아픔의 길이다. 이것이야말로 철저한 회개의 삶이기 때문이다. 입으로만의 회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 가운데 있는 막연한 회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삶으로 고백되는 회개이기 때문이다. 생의 가치와 눈이 뒤바뀌는 혁명적 신앙이 이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절에 그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 증언하고 있다.

민중과 함께 살도록 우리를 회개의 자리에 내놓자! 그리고 민중과 함께 살자! 교회가 살고,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삶에로 우리는 과감한 행진을 하자!


[회상 노트]

미국으로 추방당한 김대중 선생은 매일 같이 강연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김영삼 총재는 단식으로 연금에 항의했다. 부산 미 문화원에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국의 학원 사찰은 노골적이고 대담해졌다. 급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80년 광주의 학살이 부메랑이 되어 이제는 군부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때 우리들은 민족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시작했다.

서울의 송암교회에 경찰이 난입한 사건도 발생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 서울연합회가 ‘6ㆍ3사태 19주년’을 기념하는 강연회를 열었다. 강연은 “한일협정 19년과 오늘의 한ㆍ일 관계”였다. 민족의 내일을 가늠해 보자는 것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나가는 청년들에게 경찰이 최루탄을 던지고 교회에 난입했다. 민족문제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당국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이런 와중에서 나는 9월에 있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를 준비해야 했다. 그해는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새 역사’를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새 역사 30년’ 기념 총회였다. 또 내가 준비하는 첫 총회였다. 기장이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한국 교회가 이 시대에 어떤 신앙을 고백해야 할 것인가? 총회 주제에 나의 고백을 담고자 했다.

“기장 - 민중과 함께, 민족을 위하여, 땅 끝까지”

온 총회가 이를 공유하게 되기를 갈망했다. 지(支)교회로 이어져 나가게 되기를 열망했다. 사실 총회가 어떤 고백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지교회가 이를 소화해 내지 못한다면 별 소용이 없게 된다. 지교회가 고백의 일선이다. 그러나 총회가 지향하는 고백을 시도조차 미루는 것이 지교회의 실정이었다. 이런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교회가 그럴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수도교회는 나와 호흡을 함께 하는 교회로 서 주었으면 했다. 들리는 소문은 내 기대와 같지 않았다. 다른 교회들과 다르지 않은 교회로 변해 갔다. 어느새! 아니, 더 움츠려드는 것 같았다. 안타까웠다. 나는 수도교회의 목회자였지만 목사와 교인이라는 관계 이상의 관계를 가지고자 했었다. 교인들과 동지적 관계를 갖고자 했고 어느 정도 그리된 면도 없지 않았다. 이제 수도교회의 담임목사가 아니다. 총회 총무의 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신앙고백적 후원자가 절실히 필요했다. 수도교회 교인들에게 나의 신앙고백적 후원자가 되어 달라고 호소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고백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 놓은 것은 아니다. 수도교회에서 평소 설교해 왔던 것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었다. 교인들에게는 무거운 설교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서 당황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속내를 털어 놓은 것이다.

아니! 그것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길이라 믿었기에 그리 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