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記的(전기적)으로 본 예레미아의 內面生活(내면생활)
『신학지남』 15권 5호, 1933. 9.
『장공김재준저작전집(전5권)』 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년, 제1권, 39~47.
『김재준전집(전18권)』 한신대학출판부, 1992년, 제1권, 13~26.
다윗 王業(왕업)이 바야흐로 기우러저가는 저녁, 눈물과 피와 힘으로 짜내인 예레미아의 一生(일생)은 너무나 深刻(심각)하고 多端(다단)하였다. 그리하여 탄식없이 읽을 수 없는 것이 그의 豫言詩(예언시)이다. 그러나 그의 豫言書(예언서)를 材料(재료)로 하고 系統(계통) 선 傳記(전기)를 쓰려는 것은 決(결)코 容易(용이)한 일이 아님을 나는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이제 未備(미비)하나마 뜻 두었던 것이니 써 이 大豫言者(대예언자)의 片影(편영)[1]이나마 나타낼 수 있으면 幸甚(행심)[2]일가 하고 붓을 든 것이다. <筆者(필자)>
[1]
앗시리아의 平原(평원)에 감도는 低氣壓(저기압)이 刻一刻(각일각)으로 가나안地(지)를 向(향)하여 나아오는 것을 유다의 一寒村(일한촌) 아나돗의 靑年(청년) 詩人(시인) 예레미아는 거의 直感的(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貴人(귀인)의 피를 니은 그의 마음은 모르는 체하고 지낼 수 없었다. 다윗 王(왕)때로부터 나려온 貴(귀)한 家族的(가족적) 傳統(전통)과 썩을 대로 썩은 現下(현하)의 國情(국정)과를 서로 比較(비교)해 보고서는 그 差(차)의 너무나 懸隔(현격)한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先輩(선배) 豫言者(예언자) 特(특)히 호세야의 불같이 뜨거운 豫言詩(예언시)가 그의 가슴에 깊은 感懷(감회)를 이르켰을 것은 勿論(물론)이였을 것이다. 때때로 거칠은 유다 曠野(광야)를 거니는 그는 最後(최후)로 한번 우렁차게 웨치고도 싶었을 것이나 그에게는 아직도 그렇게 自信(자신)이 생기지 않었었다. 그는 아직도 客觀的(객관적) 權威者(권위자)인 여호와의 召命(소명)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2]
때는 主前(주전) 626年(년) 느진 겨울 萬相(만상)이 다 자는데 혼자 깨인듯이 꽃피인 아몬나무를 바라보며 거칠은 유다 曠野(광야)를 거니는 그에게는 갑작히
『너를 배안에 形成(형성)하기 前(전)에 내가 너를 알었고 네가 그의 胎(태)에서 나오기 前(전)에 내가 너를 聖別(성별)했으며 萬國(만국)의 豫言者(예언자)로 내가 너를 任命(임명)하였다』(1장 4~5절)[3]
하는 嚴肅(엄숙)한 소리가 들니였다. 아직도 젊은이인 그의게는 너무나 壯嚴(장엄)하고 期待(기대)에 넘치는 召命(소명)이었음애 그는 臆塞(억색)[4]한 마음으로 辭退(사퇴)[5]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손은 벌써 그를 붇잡고 놓지 않음을 어찌하랴.
[3]
「쇠기동」 「구리담」의 約束(약속)과 함께 그는 豫言者(예언자)의 生活(생활)을 始作(시작)하였다. 當時(당시) 「庶民(서민)의 宗敎(종교)」인 바알, 아쉬타데 崇拜(숭배)는 倫理的(윤리적) 宗敎(종교)인 여호와의 禮拜(예배)까지도 極度(극도)로 墮落(타락)시켜서 山(산)우이나 나무밑 가는 곳마다 邪神淫祠(사신음사)[6], 거기서 떠드는 淫蕩(음탕)한 誦歌(송가)소리는 밤낮으로 이 豫言者(예언자)의 귀를 괴롭게 하였었다(2:2~3:23 참조).
靑年(청년)들께서 흔히 보는 節制(절제)없는 信念(신념)과 興奮(흥분)을 가지고 그는 이 더러워진 백성에게 나릴 懲罰(징벌)을 宣言(선언)하였다. 끌어 넘치는 가마같이 北方(북방)으로부터 밀녀오는 兵亂(병란)!
『들으라! 단에서 달녀오는 斥候(척후)!
에부라임 언덕에서 오는 凶報(흉보)의 前哨(전초)!
百姓(백성)들에게 警告(경고)하라 보아라 저들이 온다.
알게해라 예루살넴에!』(3장 15~16절)[7]
『내 창자여 내 창자여 오 내 괴로움이여!
오 내 가슴이여!
내 心臓(심장)이 너무나 뛰놀매
것잡을 길 없구나
저 북소리 내 귀에 들니네
저 戰爭(전쟁)의 警鐘(경종)소리.』(3장 19절)[8]
〈註〉 스킨너(Skinner)는 이 詩(시)와 그의 다른 類似(유사)한 詩(시)를 比較硏究(비교연구)한 結果(결과) 이 詩(시)는 特(특)히 過度(과도)의 興奮(흥분)과 想像的(상상적) 氣分(기분)을 나타냄을 指摘(지적)하고 따라서 極初期(극초기)의 作(작)임을 말하였다. 그리고 이 兵亂(병란)은 스구디아 侵略(침략)(626 B.C.)이였다고 한다. (Prophecy and Religion 44ff)
그는 이 風前(풍전)의 燈火(등화)같은 自國(자국)의 運命(운명)을 보고 懲罰(징벌)의 宣告(선고)를 나리면서도 속마음은 限(한)없이 압헛을 것이다. 그리하여 想像(상상)컨대 다시 들밖에 나가 北(북)으로 에부라임의 連山(연산), 東(동)으로 요단의 溪谷(계곡), 그 건너便(편) 길니아드의 高原(고원)을 바라보며 깊은 感懷(감회)에 잠긴 때 그에게는 이 「混沌(혼돈)」의 비준(Vision)이 보였었을가 한다.
『내가 땅을 보았다. 그러나 아 混沌(혼돈)!
한울을- 그러나 아 빛이 없더라.
내가 언덕을 보았다- 그러나 아 저들은 떨었다.
그리고 모든 山(산)들은 몸부림치더라.
내가 보았다- 그러나 아 사람이라곤 없었다.
그리고 空中(공중)의 온갖 새들도 다 나라가 버렸더라.
내가 곡식밭을 보았다- 그러나 「沙漠(사막)」!
그리고 그의 모든 都市(도시)는 허물어져 버렸더라.』(4장 23~26절)[9]
「混沌(혼돈)과 荒廢(황폐)」 이것을 눈앞에 보면서도 그는 一縷(일루)[10]의 希望(희망)을 가지고 國家的(국가적) 悔改(회개)를 부르짖기 마지 않었다.
예루살렘에 다니러 온 그는 爲先(위선) 그 社會(사회) 各層(각층)의 實情(실정)을 探査(탐사)하였다.
그는 어디서 하나 義(의)를 行(행)하며 眞理(진리)를 찾는 者(자)를 만나 볼넌가 해서 거리를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은 것은 오직 歷史的(역사적) 事變(사변)을 通(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攝理(섭리)에 全然没覺(전연몰각)한, 『그 낯을 바윗돌 같이 굳세게 하며 돌아오기를 拒絶(거절)』하는 者(자)들이였다. 그는 다시 발을 도리켜 敎養(교양)있는 所謂(소위) 指導者層(지도자층)을 찾어 보았으나 그 亦是(역시) 조금도 다를 것 없는 沒覺無道(몰각무도)한 者(자)들이었다(5:14 참조)고 歎息(탄식)하였다.
이렇게도 各(각) 階級(계급)을 通(통)하여 極度(극도)의 腐敗(부패)와 無能(무능)을 보였음에 그는 오직 홀노 街頭(가두)에 웨치는 反響(반향)없는 소리 노릇을 하였을 것이다 「悔改(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俗塵(속진)[11]에 메인 人生(인생)의 귀를 울니기에는 너무나 유달는 말인가 한다.
[4]
이렇게 하기를 5年(년)! 때는 主前(주전) 621年(년) 봄 聖殿(성전)구석에서 모세의 옛 律法冊(율법책)을 發見(발견)했다는 所聞(소문)이 地方(지방)의 구석구석까지 퍼지게 되며 그때 유월절을 利用(이용)하여 一世(일세) 明君(명군) 요시아 王(왕)의 主裁下(주재하)에 全國的(전국적) 會議(회의)가 열니였다. 그리하여 前古(전고) 未曾有(미증유)의 莊嚴(장엄) 且(차) 崇高(고)한 유윌절을 직히였다는 代表者(대표자)들의 傳言(전언)은 곧 사람들의 한글같은 話題(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政府(정부)로부터의 疾風迅雷的(질풍신뢰적)[12] 宗敎(종교) 廓淸(확청)[13] 運動(운동)이 일어나 聖殿(성전)의 淨化(정화), 邪神淫祠(사신음사)의 破壞(파괴), 地方(지방)에 널녀있는 여호와 祭壇(제단)의 破棄(파기)와 禮拜(예배)의 集中(집중) 그러고 高貴(고귀)한 倫理的(윤리적) 生活(생활)의 提唱(제창)! 이런 偉大(위대)한 改革運動(개혁운동)이 놀날만치 迅速(신속)히 進行(진행)되고 있었다.
이 世紀的(세기적) 改革運動(개혁운동)을 본 예레미아는 果然(과연) 어떠한 態度(태도)를 가졌을가 學者(학자)들 사이에 많은 興味(흥미)를 이르키는 아직도 歸結(귀결)을 짓지 못한 問題(문제)의 하나이다.
그가 果然(과연) 이 運動(운동)에 直接(직접) 參加(참가)한 與否(여부)는 未知(미지)의 일이라 할지라도 全然(전연)히 傍觀的(방관적) 態度(태도)를 取(취)했으리라고는 到低(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건대 그와같이 熱烈(열렬)한 預言者(예언자)로서 그렇게 큰 宗敎運動(종교운동)을 거저 冷情(냉정)하게 袖手傍觀(수수방관)했으리라는 것은 그의 性格上(성격상)으로 보아서나 그의 預言者的(예언자적) 使命(사명)으로 보아서나 도무지 不合理(불합리)한 推斷(추단)이라 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이 運動(운동)에 贊意(찬의)를 表(표)했거나 或(혹)은 反對(반대)를 表明(표명)했을 것이다.
그가 運動(운동)에 贊意(찬의)를 表(표)했으리리는 것이 大多數(대다수) 學者(학자)의 말하는 바인데 이제 그 理由(이유)를 列擧(열거)한다면 1) 爲先(위선) 이 運動(운동)의 根本的(근본적) 情神(정신) 적어도 바알 宗敎(종교)의 撲滅(박멸)이라는 消極的(소극적) 方面(방면)에 있어서는 예레미아의 情神(정신)과 符合(부합)되는 것이며 또 이 律法(율법)의 倫理的(윤리적) 宗敎的(종교적) 敎訓(교훈)도 範圍(범위)는 좁다 할지라도 決(결)코 預言者(예언자)의 敎訓(교훈)보담 低劣(저열)한 것이 아니며, 2) 더군다나 그의 요시아 王(왕)에 對(대)한 높은 讚詞(찬사) (22:15~16), 3) 621~608年(년)까지에 그가 比較的(비교적) 沈默(침묵)을 지킨 것, 4) 改革運動(개혁운동)의 中心人物(중심인물)인 샤반 一家(일가)가 그에게 바친 꾸준한 忠誠(충성) (36:10~20) 이런 것들이다. 그가 決(결)코 改革運動(개혁운동)을 公公然(공공연)하게 反對(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贊意(찬의)를 表(표)했다는 것을 暗示(암시)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그의 故鄕(고향) 아나돗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까지 한 理由(이유)도 亦是(역시) 그가 그 地方(지방) 祭司(제사)의 直系(직계)이면서 그 地方(지방)의 여호와 祭壇(제단)을 破壞(파괴)하는 데 直接贊同(직접찬동)했다는 것을 憤激(분격)해 한 所行(소행)이 아니었을가 한다. 그러고 그가 유다 모든 城邑(성읍)과 예루살넴에서 傳播(전파)했다는 所謂(소위) 「이 언약」(This Covenant, 11:8)이 그때 宣布(선포)한 申命記(신명기) 原本(원본)이었다는 것은 그다지 不當(부당)한 推斷(추단)[14]이 아닌 줄 안다. 勿論(물론) 이 部分(부분)은 예레미아의 自作(자작)이 아니오 申命記的(신명기적) 加筆(가필)이라는 것은 그 文體(문체)와 內容(내용)을 보아 是認(시인)안 할 수 없는 事實(사실)이나 本是(본시) 예레미아書(서)가 그의 書記(서기)로 있는 그리고 申命記(신명기) 運動(운동)과 密接(밀접)한 關係(관계)를 가진 바룩의 手記(수기)한 것이며 예레미야의 自作(자작)이 아니라 할지라도 예레미아의 宣布(선포)한 事實(사실)에 照(조)하여 그의 容許(용허)를 얻어 바룩이 스사로 써넣을 수도 있는 것이니 自作與否(자작여부)는 그다지 큰 問題(문제)될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모든 證左(증좌)[15]로 보아 예레미아가 改革運動(개혁운동)에 參與(참여)했다는 것을 認定(인정)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가 거저[16] 政府(정부)나 祭司長(제사장)의 指揮(지휘)를 받어 一個(일개)의 使喚(사환)꾼처럼 움죽였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 이는 그의 性格上(성격상)으로 보던지 그의 豫言者的(예언자적) 權威(권위)로 보던지 決(결)코 妥當(타당)치 못한 推斷(추단)인 까닭이다. 생각건대 이때에 그는 預言者(예언자)의 權威(권위)로 이 運動(운동)에 對(대)한 여호와의 是認(시인)을 宣言(선언)하고 그윽히 그 하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5]
그 本鄕(본향) 사람들의 可憎(가증)한 陰謀(음모)를 겨우 버서난 예레미아는 沈默(침묵)과 瞑想(명상)과 祈禱(기도)로 近十年(근10년)동안의 고요한 生活(생활)을 니어 갔었다. 요시아 王(왕)의 賢政(현정)과 宗敎改革(종교개혁)의 運動(운동)에 그윽한 期待(기대)를 가지고 고요히 그러나 날카롭게 모든 傾向(경향)을 살피면서 그는 마음조리는 沈默(침묵)을 지키여 온 것이다.
「庶民(서민)의 宗敎(종교)」 이것은 그렇게 容易(용이)히 없어질 것이 아니였다. 독기를 들어 그 나무는 벼혀 너머틀일 수 있었으나 그 뿌리는 너무나 깊히 庶民(서민)의 마음속에 뻐치여 있었던 것이다. 改革運動(개혁운동)은 期待(기대)하던 效果(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數(수)없는 地方(지방)의 失業祭司(실업제사)들은 首都(수도) 예루살넴으로 모여 들었다. 이 祭司群(제사군)의 生活(생활)을 保障(보장)하려면 不得不(부득불) 祭物(제물)을 많이 받어 들여야 할 것이며 祭物(제물)을 뿔니려면 儀式(의식)의 必要(필요)를 高潮(고조)하고 律法(율법)과 聖殿(성전)에 對(대)한 狂信的(광신적) 態度(태도)를 助長(조장)하여야 할 것은 當然(당연)한 趨勢(추세)이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宗敎(종교)는 또 다시 儀式(의식)과 迷信(미신)에 빠지여서 그 道德的(도덕적) 生命(생명)은 窒息狀態(질식상태)에 들고 말었던 것이다.
[6]
예레미야의 瞑想(명상)이 이 宗敎改革(종교개혁)의 墜落(추락)에 미치인 때 그의 가슴은 極度(극도)로 沈鬱(침울)하였다. 申命記(신명기) 法典(법전)이 아무리 훌륭하고 여호와의 聖意(성의)에 符合(부합)된다 할지라도 因緣(인연)없는 百姓(백성)들은 마치 戰場(전장)에서 날뛰는 말처럼 것잡을 수 없이 제 마음대로 다라나고(8:6) 奸巧(간교)한 書記官(서기관)들은 그들의 거짓 붓을 들어 祭物(제물)의 種類(종류)만 添記(첨기)하고 있다.
民衆(민중)은 날로 聖殿(성전)과 律法(율법)에 對(대)한 迷信(미신)으로 빠저 들어가고 欺瞞(기만)과 犯罪(범죄)가 兄弟(형제)사이에 公公然(공공연)하게 늘어가되 저들은 「토라(律法冊-율법책)가 우리에게 있으니 平安(평안)은 우리의 것이라」고 壯談(장담)한다.
聖殿(성전)은 바알의 祭壇(제단)을 代身(대신)하여 「物神(물신)」이 되고 律法(율법)은 바알을 代身(대신)하여 偶像(우상)이 되여간대도 過言(과언)이 아니였던 것이다.
그의 고요한 생각이 이에 및인때 그는 預言者的(예언자적) 義憤(의분)에 못이기여 이렇게 부르짖었는가 한다.
『어떻게 너희가 말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智慧(지혜)있노라
여호와의 律法(율법)(Torah)이 우리에게 있노라고
보아라 書記官(서기관)들의 거짓 붓이
이것을 거짓되게 하고 말았다』(8장 8절)[17]
當時(당시)에 記錄(기록)된 여호와의 典(전)이라면 申命記(신명기)밖에 없었을 것이며 이것이 예레미야가 申命記(신명기) 運動(운동)에 對(대)한 一種(일종)의 失望(실망)을 말한 것이라 함은 그리 不當(부당)한 論斷(논단)이 아닐 것이다.
[7]
이러한 危機(위기)에 메기도[18]로부터 悲報(비보)가 날러왔다. 다윗 後(후)에 처음보는 明君(명군) 요시야 王(왕)은 棺(관)속엣사람으로 宮中(궁중)에 돌아오게 되었다. 恐怖(공포)와 混亂(혼란), 陰酸(음산)과 迷信(미신), 首都(수도)의 雰圍氣(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웟다.
나훔의 니느베[19]에 對(대)한 預言(예언)이 成就(성취)된 것을 본 거짓 預言者(예언자)들은 이사야의 「시온 不可侵(불가침)」의 預言(예언)을 狂信(광신)하고 오히려 樂觀的(낙관적) 預言(예언)만 말하고 있었으나 참된 預言者(예언자)에게는 오직 慘劇(참극)만 預感(예감)되였었다.
悲劇(비극)의 王子(왕자) 여호아하쓰, 새 님군 여호야김 시온의 기우러지는 王業(왕업)은 走馬燈(주마등)같이 展開(전개)되었다. 그러나 事態(사태)는 오직 이 悲嘆(비탄)의 預言者(예언자)에게 무거운 짐을 하나씩 둘씩 더하는 것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오- 내 머리가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샘(泉) 되었던들!
내 百姓(백성)의 殺戮(살육)을 爲(위)해
밤과 낮을 울고나 지낼 것을』(8장 23절)[20]
悲嘆(비탄)이 그 極(극)에 達(달)한 때 그는
『오- 내가 저 沙漠(사막)에
길손의 居處(거처)나 가졌든들
차라리 내 百姓(백성)을 떠나
아주 가 버리고나 말 것을』[21]
이 悲痛(비통)은 萬代(만대)를 通(통)하여 뜻있는 이로 하여곰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게 하는 深刻(심각)한 場面(장면)의 하나이거니와 그렇다고 그가 아주 주저앉은 것은 勿論(물론) 아니었다. 그에게는 새로운 曙光(서광)이 빛외이며 새로운 힘이 생기기 始作(시작)하였다. 이 말할 수 없는 苦痛(고통)은 새 眞理(진리)의 탄생을 爲(위)한 괴로움이었든가 한다. 그는 이 申命記(신명기) 運動(운동)에 對(대)한 「幻滅(환멸)의 悲哀(비애)」랄가를 通(통)하여 儀式主義(의식주의)의 아주 無意味(무의미)한 것과 여호와 宗敎(종교)와 道德生活(도덕생활)의 絶對(절대) 不可分的(불가분적) 關係(관계)와 여호와와 그 禮拜者(예배자)와의 사이에 있는 「言約(언약)」의 精神化(정신화)에 한 躍進的(약진적) 理解(이해)를 가지게 된 것이였다.
[8]
그에게는 다시 한 번 일어나 싸움할 때가 왔다. 그는 聖殿門(성전문) 於口(어구)에 서서 儀式主義(의식주의)와 聖殿狂信者(성전광신자)들을 向(향)하여 가장 날카로운 宣言(선언)을 나리었다.
『여호와가 말씀하시기를
이런 잘못 引導(인도)하는 말을 믿지말나 「여호와의 聖殿(성전), 여호와의 聖殿(성전), 여호와의 聖殿(성전)이 이것이라」고 … 무엇이란 말이냐 도적질하고 殺人(살인)하며 姦淫(간음)하며 盟誓(맹서)하며 바알에게 祭祀(제사)하고 그러고서는 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는 救援(구원)을 얻었다고」고 - 이런 가증한 일을 犯(범)하랴고! 너희는 내 집을 强盜(강도)의 巢窟(소굴)로 역이느냐』(7장 8~11절)[22]
이 勇敢(용감)한 挑戰(도전)은 勿論(물론) 貪心(탐심)이 가득한 王(왕)과 祭司(제사)들이며 迷路(미로)에 든 狂信輩(광신배)들의 激怒(격노)를 샀을 것이다. 特(특)히 그는 아직도 預言者(예언자)로서의 權威(권위)가 確立(확립)되지 못한 初期(초기)이였음으로 嘲笑(조소) 凌辱(능욕) 非難(비난)의 소리가 公(공)으로 私(사)로 그에게 퍼부어젔을 것이며 어떤 者(자)는 그의 첫 宣言(선언)인 北方(북방)으로의 兵亂(병란)이 成就(성취) 안된 것을 들어 증거삼아 非難(비난)도 했을 것이다.
[9]
이렇게하여 當時(당시)의 指導階級(지도계급)과 正面衝突(정면충돌)한 그는 받은 것이 오직 凌辱(능욕)과 冒瀆(모독)이었다. 東洋人(동양인)의 軟(연)한 感情(감정)을 가진 그는 또 다시 疑惑(의혹)과 苦憫(고민)에 잠기게 되었다. 그의 믿는 여호와는 惡(악)을 罰(벌)하고 善(선)을 賞(상)하는 全能(전능)하고 義(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惡人(악인)의 勢力(세력)은 善(선)을 눌느고 버처나가는데, 오직 하나 여호와의 使者(사자)인 그는 홀로 우숨거리 밖에 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무슨 일이냐.
그의 마음의 振子(진자)는 멀니 그의 出生(출생)에까지 돌아갔다. 왜 내가 났느냐.
『너를 배안에 形成(형성)하기 前(전)에 내가 너를 알었고 네가 그의 胎(태)에서 나오기 前(전)에 내가 너를 聖別(성별)하였다.』[23]
이것이 여호와의 말슴이였다. 아-얼마나 한 祝福(축복)이냐. 그러나 지금까지의 生活(생활)은 어떠한가 悲哀(비애), 嘲笑(조소), 凌辱(능욕)의 連鎻(연쇄)가 아닌가(20:7~8 참조).
『咀呪(저주)받어라 내 난날-
내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은
祝福(축복)에서 떠나라』(20장 14절)[24]
『내가 오날 너를 세워 … 鐵(철)기동 구리담이 되게 하리니 … 저희가 싸호나 이기지 못하리라.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니라』[25]
이것이 預言者(예언자)로서 召命(소명)받을 때 여호와의 말슴이었다. 그러나 實狀(실상)은 어떠한가. 여호와의 말슴은 끈임없는 恥辱(치욕)을 招致(초치)[26]한 것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여호와는 自己(자기)가 冒瀆(모독)을 받으시고 自己(자기)의 使者(사자)가 恥辱(치욕)을 當(당)하게 하시기 鳥(위)하여 預言者(예언자)를 세우셨는가? 萬無(만무)한 일이다. 그러면 차라지 預言(예언)을 그만두자. 그리하여 여호와에게 辱(욕)을 돌니지 않고 그의 使者(사자)에게 부끄러움을 더하지 않고 百姓(백성)들게 罪(죄)를 더하지 않게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당신이 나를 속히섰오이다. 여호와여
그러고 나는 속았오이다』(20장 7절)[27]
그러나 여호와의 神(신)으로 불타는 그의 內的(내적) 衝動(충동)은 마치 피여 오르는 숫불을 가슴에 담고 뼈속에 넣은 것 같아서 가만히 앉어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自己(자기) 衝突(충돌)과 矛盾(모순)에 苦憫(고민)하는 그는 여호와를 불느며 모든 惡法(악법)에 對(대)한 復讐(복수)를 懇願(간원)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正義感(정의감)을 滿足(만족)시키고 따라서 苦憫(고민)에서 버서나려는 것이였다. 말하자면 그는 自然人(자연인)의 本能的(본능적) 衝動(충동)을 苦執(고집)함으로 因(인)하여 義(의)의 問題(문제)를 解決(해결)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안될 일이다.
때가 지남을 따라 그에게는 다시 고요한 理性(이성)과 거룩한 良心(양심)이 恢復(회복)되었다. 그의 批評(비평)의 눈을 다른 사람에게서 떠나 自己(자기)에게로 옮기게 되었다. 果然(과연) 나는 絶對(절대)로 義(의)로웁고 다른 사람만이 不義(불의)한 것이었는가 나의 理性(이성)은 여호와의 秘義(비의)[28]와 窮極(궁극)의 目的(목적)까지도 解得(해득)할 수 있을만치 맑어지고 깨끗한가 그리하고 내 마음의 尺度(척도)는 여호와의 마음을 재일 만치 正確(정확)하고 또 거륵한가 그가 自己(자기) 마음의 깊은 속을 고요히 들여다 본때 그는 謙遜(겸손)하게 머리를 숙이였다.
『무엇보다도 믿지 못할 거란 마음이다
그리고 또 病(병)들었나니
누가 能(능)히 알니오』(17장 9절)[29]
마음을 살피고 생각을 試驗(시험)하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라(17:10 참조)고 그는 謙遜(겸손)하게 여호와 앞에 꿀어 업대여 그의 祭壇(제단)우에 赤裸裸(적나라)한 自己(자기)의 生活(생활)을 펼처놓고 祈願(기원)을 들이었다.
『당신은 나의 찬송이오매.
고쳐주십소서 여호와여!
그리하면 내가 났겠나이다
구원해줍소서
그리하면 내가 救援(구원)받겠나이다.』[30]
그는 이제 그의 性格(성격)과 私生活(사생활)에 貴(귀)한 것과 賤(천)한 것이 섞여 있음을 自認(자인)하였으나 豫言者的(예언자적) 公生涯(공생애)에 있어서는 決(결)코 私意(사의)로 한 것이 없음을 여호와 앞에 呼訴(호소)하며 그의 憐憫(연민)을 求(구)하게 되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당신 앞에 그대로 놓여 있오이다
나에게 두려움이 되지 말아 주소서
患難(환난)때에 당신은 나의 避亂處(피난처)로소이다』(17장 16~17절)[31]
이렇게 하여 겟세마네의 쓴잔은 지나갔다. 여호와의 慰勞(위로)와 憐憫(연민)은 그에게 다시금 이슬같이 나리였다.
『네가 萬一(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도르키리라
그리하여 내 앞에 서게하리라
네가 萬一(만일) 값싼 것이 섞이지 않은
貴(귀)한 것을 말한다면
내 입같이 네가 되리라』(15장 19절)[32]
『내가 너를 이 百姓(백성)들 앞에
銅城(동성)같이 굳세게 하리니
저희가 너를 向(향)해 싸울지라도
이기지 못하리라』(15장 20절)[33]
[10]
自然(자연)의 衝動(충동)이 聖靈(성령)으로 淨化(정화)된 거륵한 人格(인격)은 참으로 銅城(동성)같이 움지김이 없었다. 그는 또 다시 聖殿(성전)에 서서 罪惡(죄악)으로 가득찬 聖殿(성전)과 首都(수도)에 나릴 審判(심판)을 宣告(선고)하였다(26:46).
祭司(제사)와 民衆(민중)은 『네가 반다시 죽으리라』하고 웨치며 『一齊(일제)히 몰려들었다』(九절) 그러나 인저 그는 感傷的(감상적) 詩人(시인) 노릇하기에는 너무나 굳세고 높았었으며 世人(세인)은 그의 敵(적)노릇하기에는 너무나 弱(약)했었다. 그는 고요한 그러나 確信(확신)에서 나오는 힘있는 목소래로
『보아라 나는 여기 너의 손에 있으니 너의 願(원)하는대로 무에던지 하여라 그러나 너희가 나를 죽이면은 한 無辜(무고)한 피를 너희 머리우에, 또 이 都市(도시)에 더하는 것을 똑똑히 알아두어야 하리라. 이는 眞實(진실)로 여호와가 나려보내서서 이 모든 말을 너의 귀에 말해 들린 까닭이다』(26장 14~15)[34]고 對答(대답)하였다.
[11]
北方(북방)으로의 兵禍(병화)를 豫言(예언)한지 二十年(12년) 아직도 그 成就(성취)를 보지못한 그는 거짓말쟁이. 믿지 못할 豫言者(예언자)라고 嘲笑(조소)와 凌辱(능욕)을 밥 먹듯 하고 있었다. 들니는 말은 『어듸[35] 여호와의 말슴이 있느냐 곳 臨(임)하게 해 보아라』(17:14)[36] 하는 愚弄(우롱)의 소리였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슴이였던 것을 疑心(의심)하지 않었었다. 때는 二十年(12년)을 지난 主前(주전) 605~604年(년) 갈디아와 埃及(애급)의 두 獅子(사자)는 앗시리아란 죽은 고기덩이를 가운데 놓고 카케미쉬[37]에서 最後(최후)의 決鬪(결투)를 試(시)하였다. 그리하여 後者(후자)의 敗走(패주)와 함께 北方(북방)의 끌는 가마는 마침내 地中海(지중해)가로 넘처 쏟아지게 되었다. 北方(북방) 兵禍(병화)의 豫言(예언)이 여호와의 말슴되기에 不足(부족)한 것이 무엇이냐? 그러고 聖殿(성전)과 首都(수도)가 滅亡(멸망)하리란 豫言(예언)이 妄發(망발)이라던 者(자)들이 至今(지금) 어디 있느냐 이때부터 예레미아는 得意(득의)[38]의 豫言者(예언자)이었으며 따라서 여호와에 對(대)한 確信(확신)이 날로 더하고 國家將來(국가장래)에 對(대)한 통찰이 더욱 明哲(명철)하게 되었었다.
[12]
몰려치는 暴風雨(폭풍우)가운데 있어서 그는 참으로 鐵柱(철주)[39], 銅城(동성)같은 存在(존재)이었다. 不義(불의) 橫暴(횡폭)한 王(왕)을 責妄(책망)하며 썩어지고 俗化(속화)한 祭司(제사)들을 꾸짖으며 自意(자의)로 豫言(예언)하는 거짓 豫言者(예언자)들과 싸우며 귀먹어리 같은 庶民(서민)들을 爲(위)해 嘆息(탄식)하며 淺見短慮(천견단려)[40]의 政客(정객)을 敎導(교도)하는 피와 눈물로 짜내인 多端(다단)한 平生(평생)도 이제 虛事(허사)이였던가 紀前(기전) 587年(년) 反逆(반역)의 族(족) 유다는 北方(북방)으로 잡혀가고 여호와의 新婦(신부)같은 聖都(성도)는 荒廢(황폐)한 옛터만 남기게 되었다. 暴風雨(폭풍우)는 지나갔다. 幕(막)은 닫치였다.
[13]
그윽히 囑望(촉망)하던 異國(이국)의 治者(치자) 게달리야[41]가 미즈바에서 凶劒(흉검)에 너머진 後(후) 이 老豫言者(노예언자)의 靈的(영적) 經驗(경험)은 그 絶頂(절정)에 達(달)했으니 곧 「새 言約(언약)의 預言(예언)」이 그것이다.
『내가 내 法律(율법)을 저히 속에 두고 저들의 마음속에 삭이리라 그러고 나는 저히의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 百姓(백성)이 되리라 그때는 各(각) 사람이 서로 또 各其(각기) 그 이웃을 向(향)하여 여호와를 알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적은 者(자)로부터 큰 者(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내가 저히 不義(불의)를 容恕(용서)하고 저희 罪(죄)를 다시 記憶(기억)지 않으리라』(31장 31~34절)[42]
이리하여 不純(불순)한 儀式的(의식적) 國家的(국가적) 宗敎(종교)는 道德的(도덕적) 靈的(영적) 個人的(개인적) 宗敎(종교)로 淨化(정화)되여서 그리스도의 길을 豫備(예비)하였다. 우리는 이제 神(신)의 遠大(위대)한 經輪(경륜)을 讚嘆(찬탄)함과 同時(동시)에 不世出(불세출)의 大豫言者(대예언자) 예레미야의 一生(일생)을 仰慕(앙모)하여 말지 않는다.
昭和(소화) 8年(년)[43] 6月(월) 10日(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