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6일 월요일

[범용기 제1권] (5) 어릴 때 추억 - 몇 가지 토막 이야기

몇 가지 토막 이야기

力士(역사)이야기

아버님 소년 시절에 친히 뵙고 따르시던 분이라니까 아마 조부님 시절에 사신 분이었을 것이다. 『김선달』로 불리우는 힘센 분이 우리 집안에 계셨다고 한다. 가히 『역발산』(力拔山)이랄 수 있는 분이었다고 아버님은 말씀하신다.

그는 아무 것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 무렵에는 호랑이가 득실거렸는데 그는 호랑이 목덜미를 잡아 거꾸로 물항아리에 박아 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몹시 가난했다. 그런데 동네에 소위 『흉가』라고 딱지 붙은 큰 기와집이 헐값에 팔린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는 당장 샀다. 왜 『흉가』였나 하였더니 부뚜막 안에 뱀 굴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그는 뱀 구멍 가에 뱀 먹이를 소담지게 차려놓고 뱀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닌 게 아니라 꼬마 뱀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두들겨 잡는다. 차츰 큰 놈들이 나온다. 그 놈들도 도끼로 대가리를 까면 죽는다. 왕초가 나온다. 어미 뱀인 모양인데 길이가 두 발이나 되고 둘레가 서까래만한 놈이다. 그는 도끼로 머리를 때리고 밧줄로 올가미질해서 잡아 당겼지만 몹시 힘들여서야 빼냈다. 맨 나중에는 아비 뱀이 머리를 내민다. 대가리에 소고삐 올개미[1]를 걸어 당겼지만 움직도 않는다. 올개미 밧줄을 우차에 비끌어 매고 소를 메워 끌었다. 빠져나온 놈을 두들겨 잡았다. 큰 뱀, 작은 뱀, 한 짐 가득 우차에 실어 키들이 웅덩이에 묻고 『뱀무덤』이란 비석을 세워 주었다. 그래서 그 집 뱀이 소탕되고 살기 좋은 열간 기와집이 헐값에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새벽같이 김매러 간다. 부인이 아침 점심을 날라다 드린다. 보통 식기 두 곱쯤 되는 분량을 단번에 훌떡 삼켜버린다. 하루는 부인이 한 말 밥을 나무 함박에 담아다 드렸다. 앉은 자리에서 다 자시고 한잠 낮잠 자다 일어났다. 『난생 처음 배불리 먹었소』 하며 부인에게 치사했다. 『그 전에 것은 십 분지 일도 못 되는 분량이었는데 얼마나 시장하셨을까』 하고 부인이 눈물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 아이 때에도 우리 집안에 『무갑』이라는 이름의 『역사(力士)』가 있었는데 『단오』철이면 강가 여섯 고을 씨름판을 찾아다니며 간 데마다 소를 타다가 한 밑천 번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도 자주 들리곤 했는데 몸이 장대하고 어깨가 짝 벌어지고 허리는 가늘고 엉덩이는 떡판 같이 크고 두 다리는 기둥처럼 굵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김선달』은 『무갑』 따위가 아니었다고 아버님은 말씀하셨다.

다섯 살 때 토막 기억

내 다섯 살 때 일로전쟁이 있었다. 러샤 패잔병들이 동네 장정들을 우리 집에 모여 놓고 무언가 공갈치고 있었다. 여자들은 윗방에 모여 서 있었는데 나는 어머니 가슴에 안겨 무섭지가 않았다. 후에 안 일이었지만 러샤 병정들은 동네 장정들을 징용하여 군수품을 운반시키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튿날 일본 군함이 웅기를 포격하고 해병대가 상륙하는 바람에 러샤 군대는 허둥지둥 강 건너로 도망치고 군수품 남은 것들은 동네 사람들이 많이 나누어 가졌다. 길다란 군인 외투 『삽개』[2], 『흘레발이』(빵), 『고삭개 술』, 군용탄재(블랭캣) 등속이 집집마다 감춰져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깨끗하게 없었다.

며칠 후에 나는 아버님과 집 앞 언덕 위에 나란히 앉아 일본 군대가 줄지어 발마춰 행진하는 것을 보았다. 신기해서 오래 오래 보고 싶었다. 그때 일본 군대는 깔끔해서 어디서나 민폐끼치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들었다.

나는 다섯 살 때 아버님이 손수 붓글씨로서 써 주신 『천자』 또는 『백수문』을 외웠다. 읽었다기보다도 앵무새처럼 외운 것이다. 다 떼고서 『통강』까지 했다.

다음에는 『동몽선습』을 가르치신다. 『천자문』을 졸졸 외우는 게 귀여워서 자꾸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각주]
1. 올개미 - ‘올가미’의 방언
2. 삽개 - ‘모자’의 방언

[범용기 제1권] (38) 동경 3년 - 한국 학생들

한국 학생들 박원혁 씨는 이미 언급한대로 연통제 사건에 걸려 육개월 징역한 분으로서 언행이 청백(淸白) 그것이었으나 몸은 완강한 축이 아니었고 졸업 후에 함흥 영생 여학교 [1] 에서 교사 겸 교목으로 있다가 T.B. [2] 로 40대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