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천 전임강사
전성천[1]은 경북 출신으로 일본에서 중학을 마치고 청산학원 신학부 예과[2]와 본과를 차근차근 밟아 졸업하고 서울 남대문교회 전도사로 있었다.
그런데 서울 최석주[3] 목사가 동경교회 목사로 있을 때, 주일학교에서 조선역사를 가르쳤다는 트집으로 서대문서에 구속 감금됐다.
그 당시에 아오야마 신학생으로 있었던 전성천은 최석주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기에 증인으로 불려 간 것이었다.
그는 “모른다”, “내가 아는 한, 그런 일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고문이 시작된다. ‘비행기 태운다.’ 어깻죽지가 빠지고 기절한다. 내려놓고 냉수를 끼얹는다. ‘이 청취서에 도장 찍으라’고 다시 조른다. ‘나는 거짓증거 못한다’고 또 거부한다. 다음은 물을 먹인다. 백지로 얼굴을 덮고 그 위에 걸레 빤 흐들흐들[4]하는 물을 퍼붓는다. 숨 쉴 때마다 들이마신다. 배가 태산처럼 부푼다. 또 기절한다. 세멘바닥에 눕혀 놓고 구두발로 마구 밟는다. 물이 쏟아져 나온다. 정신을 차린다. 또 도장 찍으란다. 거절한다. 벌거벗겨 얼음으로 잰 도롬통[5]에 넣는다. 사지가 뻣뻣하게 언다. 끌어내서 또 도장 찍으라고 조른다. 또 거부한다….
그들은 서장에게 보고한다. 서장이 들어오란다. 서장은 잘 차린 식사를 같이 나누면서 친절하게 바른대로 말하란다.
“나는 배를 가르는(切服, 일본무사들이 흔히 자랑삼아하는 자살방법, 소위 세뿌꾸란 것이다) 한이 있더라도 거짓증거는 못하겠소!” 했단다.
서장은 집에 돌아가라고 말한다.
“너는 일본서 중학, 고등학교, 전문학교를 마쳤기 때문에 일본 기질이 박혀 버렸다. 조선 사람은 ‘목을 잘려도…’란 말을 하지만 ‘배를 가른대도’란 말을 못한다. 습속[6]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 기질이 박힌 사람은 고문해도 별 수 없다”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석방됐다는 것이었다. 최석주 목사는 뺨 한 번 맞은 일이 없다고 했다.
전성천은 풀려나왔지만, 남대문교회 전도사 자리는 없어졌다. 여섯 달이나 자리를 비웠으니까.
나는 조선신학원 전임강사로 일하라 했다. 그는 충성스레 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