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뻔 했던 제주도
인민군의 총반격 때문에 피난민은 초조했다. ‘동’으로 단양까지, ‘중부’로 밀양까지, ‘서부’로 통영까지 인민군에게 점령됐다. 이제 부산 입성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피난교회의 ‘시국대책위원회’에서는 목사와 그 식구들은 제주도에 옮기기로 하고 당장 부두에 나오라고 급보한다. 그때 ‘안병부’도 부산피난 중이었다. 그의 주선으로 우리 식구는 너절한[1] 보따리를 꾸려들고 부두에 나갔다. 인간이 어찌나 많은지 그지없이 천해보였다. 장로들이 반발한다. “양떼를 버리고 저만 살겠다고 앞서 도망하는 목자가 어디 있느냐!”
안병부[2]와 나는 목사들 축에 끼어 서지도 못하고 변두리 높은데서 보기만 하고 있었는데, 안병부는 껄껄대며 말했다.
“선생님, 우리 도루 들어갑시다. 우리는 부산에서 새 길을 찾아봅시다. 제주도에 가면 귀양살이 같아서, 기회가 와도 놓치고 말겁니다….”
그래서 나는 부산서 신학교를 계속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