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구경
나온 김에 일본도 구경하고 싶었다.
동경 한인교회 이인하[1] 목사에게 안내를 청했다. 그는 이도오(伊東半島) 반도의 ‘아다미 온천’ 지대에서 며칠 휴양하도록 순서를 짰다. 온천 뒷산을 저켠에서부터 넘어 계곡의 온천여관에서 자고 쉬고 했다. 산 골짜기지만 간 데마다 온천이다. 여관마다 온천 풀과 독탕이 풍요하다. 식사 땐 일본 의상의 젊은 하녀가 옆에 꿇어 앉아 밥을 떠 준다.
무슨 중세기 영주 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격에 맞지 않는다. “우리끼리 떠 먹을테니 나갔다가 부르거든 오라”고 했다.
“오소레이리마스”[2](죄송합니다)하고 두손 집고 이마가 다다미에 닿도록 절하고서 종종걸음으로 나간다. 잘 때에는 두툼한 이부자리를 곱게 펴 놓고 “오야스미나사이마세”[3] 하며 또 절하고 나간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하는 인사다.
여하튼[4], 일본 하녀의 ‘써비스’는 그만이랄 수 있겠다. 거리에는 진짜 미국식 관광 버스와 관광 기차도 다닌다. 관광 호텔도 하늘 높이 치솟았다.
여로에 잘 쉬었다. 이인하 목사댁에서 벽에 거는 작은 벽걸이 판대기에 미숙한 휘호를 숱해 썼다. 젊은 교회 청년들이 제각기 써 달라기에 마다할 수 없어서였다.
그리고서는 ‘교오도’(京都)의 옛 도읍 거리와 히에이잔(比叡山), 그리고 그 밑에 갇힌 비와꼬(瑟琶湖)[5]를 보았다. 그것은 ‘오오미 형제단’(近江兄弟團)의 발상지라는 인연 때문이다. 그리고서는 아무데도 들리지 않고 도꾜에 돌아와 김포비행장에로 날았다.
일본은 정리된 나라라는 인상이 남는다. 제 살림은 제 손으로 깔끔하게 꾸려가는 족속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점진적인 교화(敎化) 정치 프로그램 중에서 치국(治國)까지는 해낸 셈이다. 그러나 ‘평천하’의 자격은 아직 미달인 것 같다. 너무 자기중심이어서 평천하의 큰 덕(德)이 길러지기 어려운 탓이 아닐까? 무력과 경제의 억지 통치로서는 ‘평천하’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차대전 후에 이만큼한 진리는 경험으로 알았어야 할 텐데 아직도 깨닫는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