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7일 토요일

[범용기 제2권] (131) 몬트리올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에 - 몬트리올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

몬트리올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

몬트리올로 날았다.

밤에 도착했다. 어둠 속의 찬란한 진주의 바다는 은하수 가에 놀러온 것 같았다.

비행기 안에서, 같은 회의에 가는 사모아 섬 대표 한 사람을 만나 동무가 됐다.

회의 장소는 맥길신학교 대강당이었고 숙소는 기숙사였다.

회의 중 출석에는 빠짐이 없었지만 발언한 적은 거의 없었다. 워낙 수줍기도 했지만, 토론 내용을 잘 알아듣지도 못했고 영어로 연설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과토의에서는 ‘교회와 교직’ 분과에 속해 있었다. 거기에서는 뜨문뜨문[1] 의견 진술도 했다. 어느 날엔가 나는 좀 탈선이랄까 특이(特異)랄까한 내용의 짧은 에세이를 준비해 갖고 갔다.

“이 회의 참석 중 나는 시종 일종의 ‘이방인’적인 소외를 느꼈다. 그 책임이 내게 있는지 회의 자체의 성격에 있는지는 아직 확언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기서 다루는 교회와 사회, 신앙과 직제 등등의 과제와 토의 내용은 서구 부요사회, 즉 지배적 위치에 있는 사회와 서구적인 전통과 역사 속에서 수천 년 성숙한 ‘교회’를 소재로 그 신앙과 직제를 현시대에 대응시키려는 논의가 거의 전부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부요사회 아닌, 빈곤 사회인데다가 교회는 비기독교적 복수 종교의 전통과 역사 속에서 자랐다. 나는 한 사건을 예시하겠다. 남대문 밖 한 신자는 소학교 교사로서 애기 다섯 가진 중년 부부였다.

그들은 지성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온건한 시민이었다. 그런데 오랜 실직자로서 아무리 애써도 직업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린 애기들이 길가에서 구두 닦고 세살백이는 단풍잎 같은 앙증스런 손을 지나가는 손님들께 내민다. 견디다 못해 그 부부는 그 애기들과 함께 온 집이 자살해 버렸다. 이 경우에 목사가 와서 뭐라 하겠는가? 자살은 살인에 해당하는 범죄니 장례식을 치룰 수 없다고 할 것인가?

애기들까지 같이 죽일 권리가 어디 있느냐 하고 나무랄 것인가? 너희 사회가 부조리해서 그런 것이니 네 사회의 책임이다. 자기 사회 건사도 못하는 바보 족속이라고 스스로 경멸할 것인가?

그렇잖으면 신앙도 직제도 윤리도 따지기 전에 ‘인간’과 ‘인정’ - 사랑의 격정으로 같이 울며, 몸으로 이 부조리한 현실에 도전하여 고난에 동참할 것인가? 나는 이런 절박한 현실에 몸으로 부딪치지 못하는 한, ‘대회’는 ‘공염불’[2]이 아닐까 우려 된다”고 했다.

후에 일본대표 ‘다께나까’ 씨와 리차드 쉘(?)인가 하는 젊은 친구, 그리고 스웨덴 대표 꺼스타프 씨 등이 일부러 찾아와 악수하며 동감과 협력을 다짐했다.

이 모임이 끝나던 날 저녁에 몬트리올 병원에 근무하는 한인 의사와 그 가족 몇 분이 어느 의사님 댁에 모여 나를 환영하는 만찬을 차렸다. 나는 그들에게 비교적 자세한 본국 소식을 전해 주었다.

대체로 언짢은 소식이었지만 모두들 한숨지으면서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바로 일 년 전 그날에 결혼했노라는 어느 의사님 댁에서는 결혼 케익을 일년 내 냉장고에 간직했다가 오늘사 피로(披露)[3]한다면서 그 첫 ‘피스’를 내게 주는 눈물겨운 감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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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의 회고 중에 '신앙과 직제' 회의(몬트리올)는 1963년이고 '교회와 사회' 회의(제네바)는 1966년이다. 따라서 그의 회고 중 W.C.C. “교회와 사회” 세계대회에 대한 내용은 1966년이고 '신앙과 직제' 회의는 1963년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각주]
1. 뜨문뜨문 – 시간적으로 잦지 않고 사이가 상당히 뜬 모양을 나타내는 말, 공간적으로 촘촘하지 않고 사이사이가 상당히 떨어진 모양을 나타내는 말
2. 공염불(空念佛) - 실천한 생각이나 능력이 없이 떠들어대는 주장이나 선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염불을 신심이 없이 입으로만 욈.
3. 피로(披露) - 문서 따위를 펴 보임, 일반에게 널리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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