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7일 화요일

[범용기 제3권] (108) 北美留記 第三年 1976 - 첫 머리에

첫 머리에

N.Y.나 와싱톤, 그 밖에 이 나라 저 나라에 여행하는 동안에 개인 친구들로부터 식사 대접받은 일, 하루 이틀, 어떤 경우에는 더 오래 유련(流連)한 일 등등을 기억나는 대로 기록에 남긴다.

머리 둘 곳 없는 방랑객에게 애뜻이[1] “가정”을 열어 맞이해 준다는 것은 쉬운 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 말씀이 생각난다. “누구든지 내 제자라는 이름 때문에 이 보잘 것 없는 사람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준다면 그는 결코 자기 보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42).

물 얻기 어려운 사막이나 광야에서의 냉수 한 그릇은 풍요 사회에서의 진수성찬에 못지않은 대접일지 모른다. 어쨌든, 예수의 제자라는 이름 때문에 의에 목마른 한 방랑자를 맞이하여 식사나 숙소를 제공한다는 것은 “하늘”의 “보상”이 약속된 사랑임에 틀림없겠다. 범용자는 그들에게 축복을 보내며 적어둔다.

[1976.1.]



[각주]
1. 애틋하다 – 애가 타는 듯이 깊고 절실하다, 정답고 알뜰한 맛이 있다.

[범용기 제3권] (109) 北美留記 第三年 1976 - 스웨덴에 입양한 우리 애기들

스웨덴에 입양한 우리 애기들 1976년 1월 3일(토) - 제1선 민주운동 동지인 신필균 [1] 양이 점심때쯤에 토론토의 내 사무실에 찾아왔다. 신필균은 이화대학을 졸업하고 스웨덴(서전)에 유학중이다. 이화대학 재학 중에도 민주운동의 선봉을 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