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31-36, 에베소서 2:14-22] 3ㆍ1 운동과 진리 운동 - 삼일절 기념주일, 이기영 목사

3ㆍ1 운동과 진리 운동 - 삼일절 기념주일

[요한복음 8:31-36, 에베소서 2:14-22]

이기영 목사


[슬라이드]

지하수에서 대하(大河)로: 미완의 3.1운동과 평화통일을 향한 진리 운동

3.1운동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

국가적 주체의 상실, 민족적 생명의 잉태

세 종교를 하나로 묶은 원동력: 온전한 자기희생

순서가 무슨 순서냐? 죽는 순서야

비폭력 저항과 간디의 길 : 나도 살고 남도 살게 함

역사를 움직이는 두 가지 힘: 이데올로기와 제국 vs. 진리 운동과 샬롬

3.1운동은 결코 과거의 우물일 수만은 없습니다. 분단의 벽이 가로놓여 있는 한 3.1정신은 평화통일을 향한 진리의 진행형이어야 합니다.

막힌 담을 허는 십자가의 수직축

해방과 평화를 떠받치는 세 기둥: 3.1정신, 사티아그라하, 성서적 샬롬

고난의 여왕, 한반도의 구속사적 사명

분단을 넘어, 죄책 고백 공동체로서의 교회

3.1운동의 진정한 계승자는 과거를 향해 제사를 지내는 자가 아닙니다. 이데올로기의 폭력에 비폭력 진리로 저항하며, 남북의 평화통일이라는 미완의 교향곡에 마지막 음표를 찍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진리는 남을 죽이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살고 남도 살게 하는 생명의 강물입니다. 이제, 그 지하수의 물결 소리에 응답할 때입니다.


[설교 전문]


[1] 3ㆍ1운동 95주년의 기념


금년은 3ㆍ1운동의 95주년을 맞는 해이므로 어느 때보다도 ‘무슨 뜻 깊은 기념행사가 반드시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관리들끼리 하는 기념식이나 교회에서도 별반 새로울 것이 없는 기념예배 정도 말고, 좀 더 역사적 사건의 거족적이고 무엇보다도 전 민족이 공감하고 열기가 솟는 사건의 의미 있는 3ㆍ1 운동이 전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문제와 과제가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3ㆍ1 운동 정신은 모든 것에 앞서 진리 운동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3ㆍ1운동 당시의 상황과 기독교의 역할


3ㆍ1운동 당시 조선 말년의 정치는 극도로 타락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되고 악한 것은 지배계급이었지, 민중들은 다만 가난하고 무식해 비참할 뿐이었습니다. 당시 종교인 불교와 유교도 다 타락해 있어서 민중을 구원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때에 기독교가 들어왔으나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거기는 인생의 뜻을 모르고 비참함에 헤매는 민중 속에 새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가르침을 줄 진리 운동을 펴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현대사를 말할 때 기독교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동학이라는 천도교도 기독교의 영향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순수한 인생의 종교이기보다는 다분히 정치적인 동기가 들어 있고, 그 정신적 순수함이나 도덕적 높이에 있어서 기독교에 이르지 못합니다.

3ㆍ1운동은 물론 민족이 거족적으로 일어났지만, 기독교, 천도교, 불교 세 종교의 연합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세 종교의 연합은 기독교가 앞장을 서서 성사된 것이었음을 회상해야 합니다. 더욱이 신앙은 인격적인 것이므로 기독교인 안에도 한 몸을 온전히 내놓고 나서서 했던 남강 이승훈 선생이 아니고는 세 종교를 하나로 묶을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도대체 세 종교의 연합이 어떻게 이루어 졌을까요? 당시 운동의 주동력이 기독교에 있었는데, 그 기독교를 움직여 통일된 힘으로 내세운 데는 남강 이승문 선생의 힘이 참으로 큽니다. 다음의 이야기가 그것을 단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모든 조직과 방법이 다 결정이 되고 독립선언문도 다 만들어지고 상동교회에서 그 마지막 서명을 하게 되었는데 그 민족 대표의 이름을 쓰는 순서에서 서로 주장이 엇갈려 밤새도록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승훈을 먼저 쓰자는 것이고. 천도교에서는 손병희를 먼저 쓰자는 것입니다. 때마침 남강 이승훈이 어디 밖엘 나갔다가 돌아오면서 밤늦도록 논쟁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무엇 때문에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대답하는 사람이 대표 서명의 순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말을 듣자 남강 선생은 한마디로 “순서가 무슨 순서냐? 죽는 순서야. 손병희 씨를 어서 먼저 쓰라고 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곧 결정이 나고 일사천리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강이 일제 법정에서 왜 독립운동을 했는가 심문을 받았을 때 무엇이라 대답했느냐 하면 “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했다”고 했습니다. 그만 했으면 그의 속마음의 진리 추구 정신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강은 판결 후 3년 징역을 사는 동안 구약성경을 22번 신약성경을 100번 통독했고, 감방에서 날마다 똥통을 맡아 놓고 손으로 닦으며 한 기도가 “하나님이 다음 나가서도 이 민족을 위해 길이 똥통 청소를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의를 위해 여기 들어왔거니 생각하니 정말 춤이 절로 나 내 감방 안에 일어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라고 증거할 수 있었고, 자기 동상 제막식을 하는 날 구름 같은 군중 앞에 서 “내가 한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주셨을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3ㆍl 운동이 삼천리 강산을 뒤흔들고 전 세계에 파문을 던진 정신의 원천은 바로 이 순수 신앙, 진리 운동에 있었습니다.


[3] 한국 역사 반성을 먼저


이상재 선생이 말한 것으로 전해진 바로는 “한국이 국가라는 한 나라로서의 역사는 없어졌지만, 그 민족으로서의 생명은 지하수가 되어 땅속에서 왕양(王洋)한 대하를 이루어 흐르고 있다. 나는 그 물결소리를 듣는다”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한국가의 정치사로서 주체성이란 자랑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단일 민족국가로서 5천여 년의 긴 세월을 이어 왔고, 환단시대부터 높은 문화를 창조하고 전승해 왔습니다. 이러한 고대사는 차치하고 삼국시대부터 보면, 고구려는 대국으로서 충분히 나라로서의 자주성을 발휘했습니다. 부여족으로서 만주와 연해주를 판도로 중국과 일대일로 대결했습니다. 평양으로 수도를 잡은 다음에도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와 대결하여 그들의 침범을 물리치고 나라의 위신을 드높였습니다. 그 당시에 만일 삼국동맹으로 한 몸 되어 당에 대결했더라면 조상 때, 부여족이 산둥 반도를 통하여 중원에 은나라를 세우고 찬란한 은문화를 꽃피운 것 같이 고구려, 백제, 신라 연합군이 중국 중원에 나라를 세울 수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됨’의 큰 심장과 넓은 비전과 통일된 지혜를 못 가졌기에 결국 신라는 당을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를 멸망케 했습니다. 그리고 만주를 당에 넘겨주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 민족의 자주성은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발해는 만주 전체를 주름잡은 ‘해동성국’(海東盛國)이었지만, 만주족인 여진에게 패망했습니다. 고려조의 왕건은 가장 정치가다운 임금이었지만, 그 말기에는 몽고족으로 중원을 정복한 원나라에 종속되었고, 이성계는 고려왕조를 뒤엎고 왕조를 세웠지만 중국에 대하여 신하로 자칭하고 조공을 바치고 이 왕조를 세운 데 대하여 ‘천자’의 승인을 받으려고 충성을 서약하였습니다. 지금의 독립문은 그 전에는 ‘영사문’(迎思門) 이었습니다. 중국 칙사를 맞이하는 문이란 말인데. 우리 왕조는 중국 천자의 베푸는 은혜로 존속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습니다(《김재준 전집 18》, 228-247 참조).

나라 자체가 종속국이었으니 완전한 자주국가라 할 수 없었고 민족도 종속민족으로 생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 나라의 자주성에 충성한다는 것보다도 큰 세력에 종속되어 개인이나 가문의 출세를 누리려는 분위기가 일반 사대부나 민중 심리 가운데 누룩같이 배어들어 발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말 개화운동을 계기로 세계적 폭풍이 한반도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청국, 러시아, 일본 세 나라의 각축장이 되었고 결국 승자인 일본에 합방되고 말았습니다. 이상이 3ㆍ1 운동 당시 한국의 정치, 사회, 역사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철저한 역사 반성과 역사 바로 세우기의 역사관 정립이 필요한 때입니다.


[4] 3ㆍ1 운동은 민족 자주성을 선포한 사건


1919년 3ㆍ1 운동은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우리나라의 독립성, 즉 주체성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사건입니다. 그것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에서 열린 국제연맹에 호소하자는 데 있었습니다.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에 의하여 세계 여론에 호소하면 되리라는 것이 그 신념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국제적인 협동, 협화를 믿는 정신에서였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우리를 도와주려니 믿는 정신이었습니다.

일제는 만주와 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전진기지이자 교두보로서 한반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일제가 만주를 먹고 중국 본토를 침략했을 때 세계는 궐기하여 침략자를 응징했습니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고 패망했습니다.

헌데 한국은 1945년 8ㆍ15에 해방되었으나 종속국으로 환원되었습니다. 38선을 기준으로 미ㆍ소가 남북을 점령했고, 우리는 지금 독립된 것이 아니고 독립하려고 전진하는·상태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3ㆍ1 운동은 진리 운동으로 계승되어야 하는 진행형이고 마침표(Period)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에게 진정으로 독립정신이 옛날부터 불붙고 있었다면 벌써 불을 뿜으며 터졌어야 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 민족의 과제는 남북이 공조, 자주성을 가지고 통일된 독립 통일된 민족이 되는 탈출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변 강대국이 마련해 주지 않습니다. 물론 한반도 주변 나라들과의 올바른 관계 정립을 위한 민족 자주와 혜지가 필요합니다. 우리 민족 스스로가 자주성을 마련하고 자주민으로서의 평화통일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평화통일은 히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부여해 수신 사명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5] 종교 간의 화합


한국기독교의 독립운동사 중에서 중요한 두 사건은 1911년의 105인 사건과 1919년 3ㆍ1 독립운동입니다. 105인 사건은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된 기독교를 탄압하기 위해 기독교가 일본 데라우지 총독 암살을 음모했다고 조작한 사건입니다. 이것이 일제의 한국기독교 지도자들에 대한 박해와 탄압이었습니다.

그로부터 8년 후 일제는 기독교가 주축이 된 3ㆍ1 운동을 무단으로 강압하고 박해했습니다. 〈독립선언서〉 전반부는 천도교 측이 주축이 되어 작성되었고, 후반부는 기독교 측이 주측이 되어 작성되었으며, 마지막 공약삼장은 불교 측이 주축이 되어 작성된 것입니다. 민족 대표를 뽑을 때도 33인을 뽑았습니다.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고, 15명은 천도교인이고, 2명이 불교인입니다.

본래 시작은 1919년 2월 8일에 동경 학생들이 했고, 국내에서 어른들이 함께하자고 해서 천도교 손병희 선생, 기독교 이승훈 선생이 그리고 불교의 한용운 선생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세 종교의 연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대로 남강 이승훈의 힘이 크게 움직여 통일된 힘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의와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진리는 내가 말하는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이 선포하신 계명이요 진실입니다. 그것은 남을 죽임으로 내가 산다는 것이 아니고, 남도 살고 나도 사는 진리입니다. 3ㆍ1 운동은 진리 운동입니다 일본도 살고 힌국도 사는 진리 선언이었습니다. 3ㆍ1 운동은, 우리의 민족혼이 그리스도의 혼 속에 스며들어 한국에 그리스도적인 새 민족혼을 창조 또는 성숙시키는 산고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재준 전집 18》, 317-324 참조).


[6] 비폭력 저항과 간디의 길


간디의 길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사티아그라하’이며 ‘진리파지’이고, 참을 지킴인 것입니다. 비폭력운동, 혹은 무저항주의란 말입니다. 간디는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저항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그는 죽어도 저항해 싸우자는 주의입니다. 다만 폭력 곧 사나운 힘을 쓰지 말자는 주의이니, 비폭력 무저항주의입니다. 혼의 힘을 가지고 모든 폭력 곧 물력으로 되는 옳지 않음을 싸워 이기자는 것입니다.

세계문화 면에서 인도문명이 우수한 것이 많은데, 왜 300년을 영국의 압박 밑에 꼼짝 못 하고 야만 대우를 받으며 살았을까요? 그러나 또 그 300년 종살이에서 칼 하나 쓰지 않고 해방됐으니 더 놀랄 일입니다. 물론 거기는 우리 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관계의 도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네루는 《인도의 발견》 속에서 ‘나도 살고 남도 살게 함’(live and let them live)이라고 말한 바 있고, 계속해서 네루는 인도의 모든 독립운동자들이 옥에 들어갔던 그 햇수를 다 합한다면 1천 년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인도의 국민은 독립운동을 위해 지불한 값어치에 대하여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디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열을 막으려다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스텐리 존스는 “간디는 전체 인도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교훈으로 삼을 것은, 마치 미국의 건국의 조상들이 국교가 없이 새 미국을 건설했듯이, 새 인도를 건설할 때에 비종교 국가로 정한 것이었습니다. 인도에서 종교 없는 나라를 주장한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세계에 인도 같은 종교의 나라가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그 인도에서 비종교 국가를 세운 것도 놀랍거니와 세우게 둔 국민도 놀랍습니다. 국교 없는 나라를 세우려는 정치가보다도 그 정치를 용납하는 그 국민이 더 위대합니다.

간디는 25세의 청년으로 남아프리카에 가서 비폭력무저항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80세에 어리석은 반대자의 총알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간디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한몸을 바쳐온 사티아그라그라하 운동이 아니었더라면 인도는 도저히 독립할 수도, 오늘같이 놀라운 의기를 가지고 일어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티아그라하 운동은 간디가 즐겨서 그 상징으로 썼던 물레로써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영국 맨체스터의 방적기는 자본가의 손으로 갑자기 가져다 놓은 것으로서 인도 지역사회의 자치를 깨쳐 인도 민중을 착취하고 얽어매는 사탄이 되지만, 인도인이 제 손으로 젓는 물레는 그것으로서 실을 뽑아 끌어오면 헐벗은 민중을 입히고 인도를 종살이에서 해방하는 천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간디는 바로 진리 운동, 자주민이 되는 길을 제시한 선구자였습니다.

인도 없이 간디는 없지만 또 간디 없이 새 인도도 없습니다. 그러면 간디는 무엇으로써 그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간디는 성의의 사람이고 인도를 참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는 로망 롤랑이 지적하듯이 근본이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도의 해방을 위해 모든 것을 잊으면서도 자기의 근본 목적은 자아의 실현, 곧 하느님과 얼굴을 대하고 보는 지경에 가기를 원하는 것이라 했고, 그 하느님을 그는 참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참’에 반대가 된다면 인도도 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참’은 인도를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간디의 사명은 그 인도를 새롭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인도가 자는 잠을, 즉 혼을 깨우는 일이었습니다. 인도 민중의 가슴에서 무지를 몰아내는 일입니다. 그것 없이는 새 역사가 있을 수 없고 역사적인 새 창조가 없는 한 종교를 믿거나 아니 믿거나 간에 구원은 없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높은 지성입니까? 그러므로 낡은 악의 껍질을 벗기고 역사의 새 아기를 낳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간디의 인도 사랑의 성의는 인류의 나가는 길에 한줄기 새 빛을 던져 줄 것입니다. 아니 간디는 진리 운동의 효시라 할 수 있습니다(《함석헌 전집 7》, 9-43 참조).


[7] 평화로 하나 되는 길


비폭력저항은 생명 사랑의 원리입니다. 우리나라 옛날 종교인 선도의 핵심은 평의주의입니다. 전쟁 정복의 이야기 없이 나라의 시작울 말하는 단군부터 그러했고, 삼국시대 고구려의 온달로 대표되는 그 사상이 다 평화입니다. 중국에서는 노자, 장자, 공자, 맹자, 묵자의 근본사상은 다 평화주의에 있습니다. ‘아힘사’ 곧 생명을 해하지 않음을 핵심 원리로 삼은 인도사상은 더 오래된 사상입니다. 그리스어에서 평화는 영원한 전쟁 상태의 중지로서, 휴식과 사람들 간의 우호관계가 이루어진 상태로 생각되었습니다. 히브리어 샬롬은 복지, 행운, 구원을 포괄할 뿐만 아니라 특별히 야훼의 선물로서, 종말론적 대망의 구성 부분으로서 파악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말할 필요 없고, 그보다 거의 8백 년이나 앞서 살았던 이사야 때 벌써 높은 평화주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20세기 문명의 가장 큰 죄악은 한국, 월남, 독일에서 하나의 민족을 인위적으로 둘로 나눈 일인데, 그 원인은 이데올로기의 싸움 때문이었습니다. 월남과 독일은 이미 통일이 되었고, 한반도만이 아직 분단국으로 남았습니다. 억울하게도 남북의 분열은 내적 원인에 있지 않고 밖에서 온 분열이기에 강대국이 저지른 큰 죄악입니다.

프랑스 혁명의 표어가 자유, 평등, 박애입니다. 미국은 그 자유를 표방했고 자유진영의 으뜸이 되었습니다. 소련은 평등을 팔아지고 공산진영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세계는 자유와 평등이 싸운 아이러니의 역사였습니다. 자유 없는 평등 없고 평등 없는 자유 없건만 그것이 국가라는 집단주의, 다시 말하면 이기주의의 종이 되어 그런 모순이 생긴 것입니다. 이제 하나 남은 사랑을 누가 사용해서 자유와 평등을 다 살려 이 자멸에 임한 인류를 건져 낼 것입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평화통일만이 단 하나의 길인 것을 주장해 왔고, 그것을 위해서는 호전적이요 권력주의적인 두 정권에 맡겨 둘 것이 아니고 남북의 민중이 직접 일어나서 서로 돕는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며, 상생의 원칙에 따라 서로 교류 왕래하는 방식을 주장해 왔습니다.

함석헌 옹은 세계의 한복판에 앉은 수난의 여왕 같은 한반도요, 세상의 온갖 죄악을 다 집결시킨 고난의 여왕 같은 존재라며, 이는 세계를 구원할 능력을 키우려는 신의 섭리라 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극심한 민족의 고난 속에서 이사야 53장의 수난의 종, 메시아의 태동을 꿈꾸었듯이, 우리 한민족도 냉전체제에 마지막 남은 한반도의 분단의 쓰라림도 세계를 구원하는 대속의 수난으로 믿고 해석하며 인류의 새 희망을 여기에서 태동할 수 있게 해야 할 사명이 있다 하겠습니다.

3ㆍ1절에 즈음하여 우리 한국교회는 그동안 분단에 대한 저항보다는 분단을 정당화하고 고착화하는 작업에 휩쓸려 버린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이러한 죄책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분단 극복과 통일의 성취, 이 양면성의 화해 역사가 곧 죄책 고백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실현해야 할 과제입니다.

바울은 화해의 사역과 평화를 주시는 그리스도가 곧 화해의 주님이라고 곳곳에서 고백하며 증언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셨고, 십자가로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원수 되었던 모두 요소를 없이 하셨습니다(엡 2:14-17).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고후 5:19). 요한복음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된다”(요 8:31)고 했습니다. 신앙의 극치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이며 그가 곧 그리스도인입니다. 말씀 안에 거한다 함은 예수님과 더불어 인격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그의 뜻대로 생환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씀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임과 동시에 그에게 순종하는 경건생활입니다. 그에게 진리가 알려지고 이 진리는 또한 그들을 자유케 합니다. 정치, 경제적인 의미의 자유뿐 아니라 죄와 죽음에서의 자유이며 영생의 희망입니다. 요한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일 때에 자유가 주어졌다고 증언합니다.

3ㆍ1 운동과 그 정신은 그리스도 윤리의 회복입니다. 교회가 3ㆍ1절을 성일의 하나와 같이 기념하는 것은 한국 민족의 역사를 그리스도의 역사로 승화시키는 거룩한 사업의 표시입니다. 3ㆍ1 운동은 진리의 외침이며, 3ㆍ1 정신은 진리의 선포이며, 그 시위는 평화통일을 향한 진리의 진행형입니다. 3ㆍ1 운동은 결코 과거의 우물일 수만은 없습니다. 미완의 역사 현실, 분단의 벽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최대의 폐쇄적 공산독재 속에서 민중의 일부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불통사회 현실, 역사왜곡의 현실도 안타깝고 철처한 비폭력무저항의 대상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그리스도는 대답하십니다. 3ㆍ1 운동은 진리 운동으로 계승ㆍ승화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