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하는 그리스도인 [이미지]
[고린도전서 9:16-23]
이기영 목사
[1] 회심의 시작 : 사상의 전환
참된 자유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은 지적, 사상적 배경의 온전한 회심에서 출발한다. 설교자 이기영 목사는 고린도전서 9장을 바탕으로 ‘자유의 역설’을 선포하며 성 어거스틴의 일화를 소개한다. 위대한 신학자 성 어거스틴은 꿈속에서 천사로부터 “너의 머리와 생각은 예수의 교훈이 아니라 철학자 키케로의 사상으로 가득 차 있구나”라는 매서운 심문을 받는다. 그는 인간의 안녕과 복지만을 구하던 로마 철학(키케로의 공화국)의 한계를 깨닫고, 자기희생적인 아가페 사랑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구원의 역사관(그리스도의 도성)을 바라보며 사상의 회심을 이루게 된다.
[2] 두 개의 질서 : 제국 vs 살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두 가지 상반된 질서가 격돌하고 있다. 하나는 이기심과 탐욕, 명예욕을 동기로 삼아 약육강식과 타자 배제 시스템으로 움직이며 타자를 지배하려는 ‘제국의 질서’다. 반면에 다른 하나는 아가페 사랑과 자기희생을 동기 삼아 봉사와 나눔으로 타자의 짐을 대신 지고,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와 섬기는 종이 되려는 ‘살림의 진리’다. 그리스도인은 타자를 억압하는 제국의 길을 버리고 타자를 살리는 진리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3] 루터의 역설 : 절대적 자유와 예속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복음적 자유의 본질을 완벽한 역설로 선언한다.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서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운 군주이며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절대적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람을 봉사하는 종이 되어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는 ‘절대적 예속’의 삶을 산다. 자유와 예속이 완벽하게 공존하는 이 신비로운 원리야말로 기독교가 말하는 진짜 자유다.
[4] 사도 바울의 생산적 생의 투자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말씀을 통해 복음의 역설을 삶으로 증명해 낸다. 그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라고 선언하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발적 권리를 스스로 제한한다. 그리고 이어서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고백한다. 종이 되어야 영적인 주인이 되고, 영혼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바울이 우리에게 보여준 가장 차원 높고 생산적인 생의 투자다.
[5] 예수 그리스도의 하향성(Kenosis)
스스로를 비우고 낮추는 이 역설적인 삶의 원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하향성(Kenosis)’에 존재한다. 본래 만왕의 왕이자 삼위일체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가난한 목수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평생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셨고, 결국 십자가의 수난을 통해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다. 이 철저한 비움과 죽음을 통해서만 전 우주적인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가 탄생할 수 있다.
[6] 교회의 4대 사명과 역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무리인 교회는 이 땅에서 4가지 핵심 사명을 부여받았다. 하나님의 구원 말씀을 전파하는 ‘선포(Kerygma)’, 고난 속에서 나와 너의 진실한 만남을 이루는 ‘교제(Koinonia)’,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종으로 헌신하는 ‘봉사(Diakonia)’,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정예적으로 훈련하는 ‘교육(Didache)’이다. 이때 교회의 모든 직분은 남 위에 군림하는 지위나 명예가 아니라, 오직 섬김을 실천하기 위한 기능적 역할이자 통로일 뿐이다.
[7] 공동체를 살리는 5가지 섬김의 사다리
독일의 순교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서 《신도의 공동생활》을 통해 공동체를 진정으로 살려내는 5가지 구체적인 섬김의 단계를 제시한다. 내 옳음과 악한 생각을 침묵으로 통제하는 ‘혀에 굴레 씌우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낫게 여기는 ‘온유한 섬김’, 형제의 아픔과 고백을 인내로 들어주는 ‘귀 기울이는 섬김’, 사소한 일에도 적극 행동하는 ‘돕는 섬김’,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몸에 지니는 ‘짐을 지는 섬김’이다. 이 십자가의 사귐을 통해 교회는 든든히 서 간다.
[8] 안일한 기독교의 거부 : 본회퍼의 결단
1939년 7월 7일, 본회퍼 목사는 안일한 은혜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며 행동으로 신앙을 증명한다. 그는 안전이 보장된 미국 뉴욕 유니온 신학교의 초청을 과감히 뿌리치고, 죽음과 십자가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급박한 전운의 고국 독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른다.. “안전한 가운데서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없다”라며 고난의 역사 한복판으로 뛰어든 그의 결단은, 오늘날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강력한 울림을 준다.
[9] 스스로 매이는 역설의 행복
참된 자유와 행복의 완성은 고난이 없는 안락함이 아니라, 그 고귀한 자유를 타인을 위해 스스로 버릴 줄 아는 권리에서 온다. 억지로 지는 불가피한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고 고백하며 주도적으로 선택한 십자가만이 진짜다. 나의 수고로 타인이 얻고, 나의 희생으로 타인에게 생명이 주어지는 ‘스스로 매이는 역설’의 기쁨을 깨달을 때, 우리는 참으로 자유하는 그리스도인 봉사자가 될 수 있다.
본 이미지 묵상 이면에 흐르는 깊이 있는 설교 전문을 읽으시려면, [텍스트로 읽는 설교] “자유하는 그리스도인”(고전 9:16-23) 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