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1-8]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을 굴려 줄 것인가? - 1984년 4월 21일, 김상근 목사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을 굴려 줄 것인가?

1984년 4월 21일 / 마가복음 16장 1-8절

김상근 목사


[말씀을 향한 물음]

우리의 희망을 가두어 버린 문은 수없이 많다. 폭력과 체제, 체제 언론과 다국적 기업, 강대국의 이권과 핵무기들이 무덤문을 지키고 서 있다. 누가 우리의 무덤문을 가로 막고 있는 돌을 굴려 줄 것인가? 오늘날 우리의 부활신앙이란 어떠한 것인가?


[슬라이드]















[설교 전문]

오늘 우리는 모처럼 교파의 담을 넘어서서 주님의 부활을 찬양하는 예배를 준비하였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리라 믿는다.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하여 주님의 부활을 우리 자신과 세계만방에 선포하게 된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증언하는 바를 바로 듣게 되는 것이다.

중세기 때 부활절 설교는 즐거운 농담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찬양과 감사 일변도의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만큼 절박함이 없었다고 할까, 다 이긴 자의 여유 같은 것을 과시한 몸짓이다. 그러나 그 중세기의 교회는 우리가 아는 대로, 사실은 종교개혁을 자초했던 가장 부패한 기독교 역사를 살고 있었다. 물의 표면만을 스치듯 인간과 역사의 심층에 가 닿지 못한 채 생기는, 깊이를 결여한 감사는 오히려 부패와 타락의 신호이다.

현대의 신자들은 합리적 신앙을 추구한다. 그 태도는 옳다고 생각한다. 합리성이 무시된 신앙이란 위험 천만하고, 나아가서는 사교로 전락할 가능성까지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앙이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는다. 주님께서 죽음을 극복하시고 부활하셨다는 대단히 비합리적인 신앙을 우리는 갖는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첫 그리스도인들도 너무나 엄연하고 확실한 사실을 전할 길이 없어서 고시했던 것 같다. 예수님의 무덤 입구를 막아섰던 큰 돌이 굴러지게 된 경위를 설명하여 주는 과정에 잘 나타나 있다. 복음서 중 가장 먼저 씌어졌고 다른 복음서의 기본 자료가 되었던 마가복음에서는 그저 “그렇게 큰 돌이 이미 굴러져 있었고”라고 씌어 있다. 거기에 아무런 설명도 없다. 그러나 마태는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하늘에서 주의 천사가 내려와 그 돌을 굴려내고”(28:2)라고 썼다. 훨씬 설명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설득하려는 의도가 여기에 있다.

마가복음 16장 1절 이하에 의하면 주님의 부활에 대한 기록은 이렇다. 이른 새벽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 등 몇몇 여인들이 예수의 몸에 향료를 발라드리기 위해 안식일 다음날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을 막은 돌을 굴려 내어 줄 것인가” 걱정하였다. 그런데 무덤에 당도하여 보니 그렇게 큰 돌이 이미 굴러 있더라는 것이다. 여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 누워 있어야만 할 죽은 예수는 없고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나사렛 예수는 다시 살아 나셨고 그는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너희가 그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더라는 것이 본문의 내용이다.

여기서 몇 가지 점에 주목해야 하겠다. ① 예수와 여인들은 커다란 돌로 갈라져 있다. ② 그 여인들은 돌을 옮길 힘이 없다. 여인들뿐 아니라 그 누구도 쉽게 그 돌을 옮길 수 없다. ③ 그러나 그 여인들은 무덤을 찾아갔다. ④ 이때 이미 그 돌은 옮겨져 있었다. ⑤ 그렇기에 예수를 당연히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를 만날 수가 없었고 그를 만나자면 갈릴리로 가야만 한다.

예수를 따르던 여인들에게 예수와 사별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절망이요 죽음이었다. 그들이 추구하던 진리, 참다운 인간적 삶을 이제는 더 이상 좇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진리는 무덤에 갇혀 버렸기 때문이다. 온갖 희망이었던 예수가 무덤 속에 갇히고 말았기 때문이다. 추종자들은 이제 더 이상 예수를 따를 수가 없게 되었다. 무덤 때문, 돌 때문이다.

그들은 가로막은 장애를 뚫고 나갈 힘이 없었다. 예루살렘 종교가 버티고 섰다. 빌라도 총독의 군대가 막아 서 있다. 산헤드린 체제가 철통같이 막아 서 있다. 예수의 무덤 문을 막아 선 “그렇게 큰 돌”은 이러한 장애들을 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 장애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누구도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들은 돌문, 그 큰 돌을 향해 올라간다. 처음부터 논리로 따져 시작을 포기하거나 도중에 중단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올라갔다. 진인사(盡人事)다. 사람이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리라.

형국은 여기서 갑자기 인간의 상식을 넘어선다. 놀랍게도 이미 돌이 옮겨져 있는 것이다. 그들의 무모한 출발은 무모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어리석은 출발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비산술(非算術)은 결국 비산술이 아니었다. 당도했을 때 돌은 이미 굴러져 있었다. 인간의 상식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기적이다.

그러나 이제 마땅히 만날 수 있어야 하는 예수는 거기 있지 않고 갈릴리로 가셨다. 부활하신 예수는 갈릴리로 가셨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것이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갈릴리는 이방의 땅이라 불릴 만큼 유대에서 소외된 변두리 지역이다. 멸시받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다. 예수 당시 이미 우범지대였다. 그러므로 갈릴리라 하면 불온분자, 범법자, 가난한 자, 죄인, 창녀를 연상케 하였다. 어느 누구도 편들어 주지 않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부활하여 그들에게 가셨다. 사도행전은 예수의 제자들이 갈릴리로 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기록들이다.

우리는 성서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온갖 가치와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서곤 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처음 경륜을 따라서 역사는 소용돌이쳐 왔다. 우리의 한국 역사에서 전봉준의 동학혁명은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처음 기도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일제하 3ㆍ1 운동, 최근에 와서는 4ㆍ19 의거에서, 그리고 10ㆍ26 이후 민주, 자유, 평등의 실현을 우리 는 기대하고 그것을 좇았었다. 그러나 이승만 독재에서 우리의 역사는 굳어질 대로 굳어져 버렸고 민주, 자유, 평등은 여지없이 뿌리가 뽑혀가고 있었다. 우리네 어른들은 이런 권세에 자신을 맞추어 안주와 안일을 찾아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시절 이 땅의 젊은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독재에 항거하여 수렁으로 빠져드는 이 역사에 다시 새 출발의 기회를 일구었다. 장한 도전이었다.

5ㆍ16 군사 쿠데타는 또다시 이 역사를 수렁으로 떨어지게 하고야 말았다. 경제 제일주의를 내세워 우리의 가치와 의식구조를 완전히 바꾸어 버리고 말았다. ‘꿩 잡는 게 매’라는 결과주의가 우리의 인격을 파괴하였다. 과정이야 어떻든, 남이야 죽든 살든 나의 결과만이 문제다. 다른 사람의 시체를 딛고서야 성공하는 사회, 그것을 오히려 감사하는 의식구조는 하나님의 형상을 여지없이 파괴하고 말았다.

10ㆍ26 이후 우리는 성급한 기대였는지는 몰라도 이제는 이 나라에 민주, 자유, 정의를 구현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가슴이 부풀어졌었다. 단시일에 해결날 일은 아니겠지만 노동자ㆍ농민의 문제, 체제의 문제, 왜곡되어 버린 가치체계의 문제, 심화되어 버린 분단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우리는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우리는 그 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을 버리시지 않으시는 것이라고 감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 자유, 그 민주, 그 정의의 희망은 5ㆍ17을 기하여 십자가에 달리고 죽임을 당하고야 말았다. 너무나 비극적이었다. 우리의 희망은 광주의 망월동 공동묘지에 여지없이 묻히고야 말았다. 횡포와 폭력의 시대는 절정에 이른다. 예수를 따르고 좇던 그 무리들 앞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무덤에 묻혀버리는 그것에 비교할 수 있는 충격이었다. 우리의 절망은 예수의 제자들이 가졌던 절망과 비슷했으리라. 그리고 우리의 두려움도 그들의 두려움과 비슷했을 것이다.

우리의 희망을 가두어 버린 무덤 문은 수없이 많은, 또 용의주도한 조처들로써 굳게 막혀버렸다. 우리는 5ㆍ17을 보내면서 세계 정치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우리의 민주, 자유, 정의, 통일의 문제가 결코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비로소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문제, 통일이 되지 않는 문제를 우리 자신의 원인과 국제관계, 특히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찾아보게 되었다. 국내외에 있는 이것은 실로 ‘그렇게 큰 돌’이다. 너무나 막연하고 너무나 암담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인들처럼 ‘그렇게 큰 돌’의 현실을 향하여 가야 한다. 갈 수 있는 때 미루지 말고 가야 한다. 간다는 것은 곧 시위만이 아니다. 가는 길이, 그 방법이 각자에게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목적은 같아야 한다. 여하간 가야 한다. 여인들이 냉기가 가득 찬 예수 사형 직후 일어나 무덤으로 갔듯이, 여러분은 5ㆍ17의 그 무서운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무덤을 향하여 갔다. 여러분에게 우리 기성 세대는 부끄럽기만 하다. 4ㆍ19 때 그러더니 또다시 우리는 안주와 안일을 찾아 도무지 일어나려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러분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가고 있다. 매를 맞으며 최루탄에 눈물을 홀리며 가고 있다. 강제 징집이라는 신종 살인무기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가고 있다. 여섯 명의 동지들이 백골로 돌아왔는데도 가고 있다. 좌경이라고 막가는 말로 몰아세움을 받으면서도 여러분은 지금 가고 있다.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쫓겨나면서도 가고 있다. 고 전태일의 의거를 기점으로 매를 맞으면서도 가고 있다. 똥물을 뒤집어 쓰면서도 무덤을 막은 그렇게 큰 돌을 향해 가고 있다. 급기야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기본 인권인 취업의 자유조차 빼앗겨 가면서도 그들은 그 큰 돌을 향해 가고 있다. 해직 교수들, 해직 언론인들, 그들은 생계의 위협까지 무릅쓰면서 지금 그렇게 큰 돌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다. 이것은 민주와 평화를 향한 우리의 신앙의 행진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분단이 동서 강대국의 충돌장이요, 공해와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는 뇌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통일의 문을 절대적으로 막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분단의 현실을 극복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이 동북아는 물론 세계의 평화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또 역시 열릴 것 같지 않은 무덤 문을 향하여 올라가야 한다. 갖은 탄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그 끔찍한 사건의 때처럼 두렵기만 한 오늘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무덤을 오르는, 그렇게도 큰 돌에 도전하는 도도한 행렬을 이루어야 한다. 민주와 평화를 향한 십자가 행진을 기어코 감행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걸음은 경쾌할 수가 없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을 막은 돌을 굴려 줄 것인가?’ 이 자문을 우리는 수없이 되뇌일 수밖에 없다. 이 죽음의 시대에 누가 우리를 위하여…….

누가 우리를 위하여 민주의 무덤 문을 막은 폭력의 돌을 굴려내 줄 것인가? 누가 우리를 위하여 자유의 무덤 문을 막은 체제의 돌을 굴려내 줄 것인가? 누가 우리를 위하여 정의의 무덤 문을 막은 체제 언론과 다국적 기업의 돌을 굴려내 줄 것인가? 누가 우리를 위하여 통일의 무덤 문을 막은 강대국 이권의 돌을 굴려내 줄 것인가? 누가 우리를 위하여 평화의 무덤 문을 막은 핵무기의 돌을 굴려내 줄 것인가? 폭력과 체제, 체제 언론과 다국적 기업, 그리고 강대국의 이권과 핵무기는 큰 돌이 되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누구도 그것을 굴려낼 사람이 없다. 세계를 완전히 점령하고 있는 그 힘을 이겨낼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올라가면서도 주저하고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의 사건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그렇게도 큰 돌’이 이미 굴러져 있는 것이다. 악의 무리들은 그 돌이면 충분할 줄로 안다. 사실 그렇다. 그 엄청난 폭력, 물샐틈 없는 체제, 온갖 장비, 과연 믿을 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굴러지게 되어 있다. 아무리 탄탄하게 대비했더라도, 군인을 세워 놓았다 하더라도 굴러지게 되어 있다. 물론 사람의 생각으로는 할 수 없다. 아무리 사방이 완전히 막혀버린 것과 같은 현실이라 할지라도, 그렇게도 큰 돌이 이미 굴러져 있다는 말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이다. 악에 지지않는 믿음, 아무리 큰 돌이라도, 아무리 엄청난 장애라도 그것이 우리 주님을 가두듯이 하나님의 뜻을 막아서고 있는 것이라면, 그 돌은 이미 굴러져 있는 것이다. 이것을 믿으라. 이 확신을 가지라. 이것이 부활신앙이다. 오늘 우리 청년들이 연합으로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 역사의 주역인 여러분이 함께 이 믿음을 갖자는 것 아니겠는가? 이 신앙을 갖자는 것 아니겠는가? 돌을 굴려 내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그러나 우리의 부활신앙은 무덤 문에 도달하는 것으로 종착역에 다 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거기 문 열린 무덤 속에 있지 않고 갈릴리로 가셨다. 갈릴리로 가야 부활의 주님을 만난다. 갈릴리로 가야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다. 이것이 주님이 이끄시는 역사의 방향이다. 버림받은 땅, 눈물과 한숨이 있는 땅,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다니는 땅, 그곳으로 가야 한다. 주님이 거기서 만나자 하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들을 섬긴다. 그들과 함께 산다. 그들을 세우시기 위해 지금도 갈릴리에 계신다.

그러므로 바로 그들과 우리가 강한 일체감을 가져야 한다. 백보를 양보하여 그들과 최소한 철저한 연대의식 속에 있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주님을 위하여 내 부모와 소유에서 자유해야 한다.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갈릴리로 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부활을 믿는 신앙이다. 부활신앙은 추상적 신앙이 아니다. 형이상학은 더구나 아니다. 정신적 논설도 아니다. 그것은 삶이다. 삶의 고백이다. 이 신앙을 삶으로 가질 때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부활의 주님을 만난다.

청년들이여! 이 시대의 청년들이여! 돌을 염려치 말아라. 무덤을 올라 갈릴리로 가자. 우리를 막아선 그 큰 돌들을 조소하자. 비웃어 버리자. 그 앞에 당당히 당도하자. 그리고 갈릴리로 가자. 비록 그것이 고난이라 할지라도 주님과 같은 고난을 받음으로 주님과 같은 부활에 참여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회상 노트] 내 사랑하는 이들이여

부활절 청년연합예배 설교가 앞의 것이고, 수도교회 고별설교가 뒤의 것이다.

내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 총무에 뜻을 둔 것은 역사와 삶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게 하겠다는 결단이었다. 1981년 기장 총회는 부끄러운 총회였다. 1980년 가을 총회는 5ㆍ18 직후였기 때문에 도무지 공포의 시간이었다 말할 수 있다. 그러나 1년이 지났는데도 1981년 총회는 예언자성을 회복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젊은 피가 끓었다. 기장 교회를 하나님의 선교의 현장에 있도록 하리라.

그때의 뜨거운 신앙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을 굴려 줄 것인가?”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우리 앞에는 물론 수많은 돌, 크고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은 돌이 널려 있다. 갈릴리의 길을 막고 있다. 그러나 그 돌이 이미 굴러져 있음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이리라. 그러기에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갈 수 있는 것이 부활신앙이리라.

총무가 되어 그렇게 하고자 했다. 불의에 맞서고 악에 도전했다. 움츠러든 기(氣)를 살려내고자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부활신앙이 바탕이었다. 나는 총무로서 언제나 선두에 섰다. 군사정권에 맞서 싸우는 맨 앞에 섰다. 기장은 가히 반정부 전선의 선도였다. 80년대 한국교회의 복음증거를 나는 두고두고 감사한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마지 않는다.

5월 27일은 수도교회 창립기념일이다. 총무로 당선된 지 1년 8개월이 지났다. 그때까지도 내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옳지 않았다. 나는 후임목사를 청빙하자고 졸랐고, 부목사로 나를 돕던 권오성 목사를 급기야 정했다. 창립기념일에 취임식을 하기로 했다. 담임목사를 청빙했으면서도 나에 대해서는 교회가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 행정적으로야 노회에서 모든 것이 정리되었지만 교회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 식구나 다름없으니 그 후에도 계속하여 교회에 나오기를 기대했고 또 그러리라 여겼다. 그러니 무슨 송별예배를 가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5월 27일 11시 예배 설교를 스스로 고별설교라 했다. 일방적으로 고별을 선언했던 것이다. 참으로 아쉬움이 컸다. 후회되지는 않았으나 아쉬웠다. 15년 9개월 동안 내 설교는 무엇이었을까? 정직하고 바른 설교를 했던가? 설교자의 정직과 고통이 여기 점점이 혼적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