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1-8] 빈 무덤 사건과 공포 사이에서 – 1991년 4월 14일, 김상근 목사

빈 무덤 사건과 공포 사이에서

마가복음 16장 1-8절 / 1991년 4월 14일 / 향린교회

김상근 목사


[회상 노트]


홍근수 향린교회 담임목사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국보법으로 구속되고 감옥을 살고 있었지만 역시 부담되는 죄목이었다. 목사에게는 더 그랬다. 교회란 불특정인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교인들의 반응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서 설교해 달라는 초청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러나 향린교회는 단단했다. 교인들이 자기들의 목사를 지지하는 시위까지 했다. 장로님들이 앞장섰다. 고마웠다.

교인들의 반응이 성서적 확신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바랐다. 이렇게 싸우고 고통당하는 목사는 과연 누구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를 밝혀 신앙적 확신에 이르게 되기를 바랐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향린교회 교우 여러분께 먼저 위로와 찬사를 드린다. 목사는 수사기관에 끌려가거나 감옥에 가게 되면 제일 걱정하는 것은 교회다. 그런데 여러분은 홍 목사님의 걱정을 상당히 덜어 주고 있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여러분은 그렇게 하고 있다.

나도 수도교회에서 목회하는 기간 동안 23번이나 당국에 의해 연행당했다. 짧게는 한나절, 길게는 11일간 조사를 받았다. 어느 때는 그저 내보내 주고 어느 때는 피의자 조서를 꾸며 입건한 후 내보내 주었다. 6월 항쟁이 있던 2월 말에는 국민평화대행진을 앞에 두고 즉결재판에 회부되어 7일간 경찰서 유치장에서 간이 옥살이를 한 것이 내 최고의 경력이다. 빈번하게 잡혀가지만 다시 나오곤 하니까 나중에는 부끄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끄럽더라도 나오는 것이 더 좋았다.

너무 자주 잡혀 다녔는데도 그때마다 ‘교회는 평안해야 할 텐데, 나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교인이 없어야 할 텐데…’ 이런 조금은 소심한 걱정을 했다. 물론 교인들에게는 불이익도 감수하라고 했지만 속마음은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교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회자의 본능 같은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 사건에 대해서 우리 교회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행동을 해줄까? 목사가 목회는 안 하고 밖의 일만 열심히 하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 혹시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일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목회자인 나와 교인들이 오히려 더 단단하게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곤 했다. 이것이 목회자의 일반적인 심성일 것이다. 목사에게 무서운 것은 안기부나 감옥이 아니다. 교회다. 그것을 저자들이 아니까 교인을 회유하거나 협박하여 목사를 간접 조종하려 덤비는 것이다. 목사에게는 교회가 가장 무섭다.

금번 홍 목사님 사건이 나자 과연 우리 향린교회가 얼마나 홍 목사님을 이해하고 뒷받침해 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민주화 운동 등 공감대가 넓은 사안이 아니고 국가보안법 사건이고, 또 교회 사무실이 수색을 당한 일에 대해서 교인들이 분개하면서도 그 책임을 목사님에게 돌리면 어떻게 하나 하여 더 크게 걱정했다. 대부분 교회들은 불행하게도 그렇게 한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인 염려는 우리 향린교회인 한 부질없는 기우였다. 여러분은 우선 홍 목사님을 신뢰하고 그의 진실을 믿는 데 인색하지 않다. 혹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내 사랑 홍 목사”라고 당당하게 선다. 홍 목사님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마 너무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여러 차례 시위도 했다. 시위까지 하는 교회는 결코 흔치 않다. 다섯 손가락으로 헤어도 손가락이 남는다.

시위 같은 것은 좀 점잖지 못한 교회나 하는 것인데 제법 인테리들이 모였다는 향린교회 교인들이 십자가를 들고 장로님이 앞서서 목사님의 석방과 통일을 주장하는 시위를 했다. 향린 교인들이 시위까지 했다는 소식을 들은 홍 목사님은 기뻐 뛰었을 것이다. 홍 목사님 자신도 놀랄 것이다. 우리 교인들이 이렇게 당당하고 분명하게 나오는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고와 노력 이상의 결실을 주시는구나! 우리 사이에 고백과 사랑의 놀라운 연대를 이렇게 이루어 주시는구나! 홍 목사님은 이런 감사와 감격으로 감옥이지만 천국같이 오늘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바울이 빌립보 사람들에게 써 보낸 말씀을 홍 목사님은 감옥에서 외우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내가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간구합니다”(빌 1:3-4).

참으로 감사하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예사스럽게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정말 고맙다. 여러분은 이 시대를 사는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를, 기장 교회란 어떤 교회이어야 하는 것인가를 지금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 주 전에 우리는 부활주일을 보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알게 된 여인들의 반응에 대하여 복음서들은 각각 현격하게 다른 기록을 남기고 있다. 오늘은 마가복음을 보자. 안식일 다음날 새벽에 여인 셋이서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 드리기 위해서 무덤으로 간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했을 것이라는 예상은 전혀 갖지 못했다. 비참하게 죽어 있을 예수님을 생각했을 것이다. 또 무덤으로 가지만 무덤 문을 막은 돌을 굴려낼 방법이 없어 걱정했다.

그런데 무덤에 도착해 보니 무덤 문을 막은 돌이 이미 굴러져 있었다.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 흰옷 입은 한 청년이 앉아 있었고 예수가 부활하신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어서 가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 라고 부탁한다. 과연 예수의 시신이 놓였던 곳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여인들은 이 빈 무덤을 보고는 놀라 정신없이 무덤에서 뛰어 나왔다. 그리고는 무서워서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빈 무덤을 본 그들은 공포에 떤다. 이것이 마가가 전한 예수 부활 사건과 관련된 기록이다.

나는 예수의 죽음과 빈 무덤 사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여인들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죽음과 빈 무덤과 우리의 공포를 본다. 우리 민족은 1945년 강대국들에 의해 허리를 잘렸고 죽임을 당해 냉전 45년 동안 무덤에 던져졌다. 참으로 그 45년은 죽음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조작과 세뇌, 부화뇌동, 흥분과 살의, 이런 것들이 우리 민족을 지배했다. 미워하게 되고 급기야는 서로를 죽였다. 죽음이 이 땅과 우리를 지배했다.

나는 6ㆍ25 그때, 민족의 죽음을 보았다. 그냥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처참한 죽음, 처절한 민족의 죽음이었다. 죽음의 모양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죽음을 본 내 마음속에 증오와 살의가 끓어올라 왔기에 우리 민족의 죽음은 처참한 죽음이 된 것이었다. 이것은 북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처자를 죽음에 빼앗기고 강간당하고 찢긴 아낙들의 형편은 죽음이었다. 처참한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 처자, 형제의 죽음의 모양이 처절했다는 이유 때문에 처참한 죽음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 가슴속에 증오라는 것이 자리하여 민족의 죽음은 처참해졌다. 그래서 남과 북, 우리 민족은 계속하여 서로를 죽였다. 그래도 도덕적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증오하면 할수록 가슴에 단 훈장만큼이나 증오의 행위가 자랑스럽고 동족상잔이 떳떳한 애국의 길이라 확신했다.

이 얼마나 처절한 비극인가! 비극의 주인공이 스스로 비극 가운데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비극이다. 그것은 나아가 비극을 가속화시킨다. 비극의 심연으로 빠지면서도 행복으로 가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갖는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죽음 현실이다. 이것이 민족의 무덤이다.

그런데 감히 민족의 무덤을 찾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1960년 4ㆍ19혁명을 일으켰던 학생들이 먼저 무덤에 가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금방 좌절당했다. 그리고 그 전통을 이어받은 학생들이 있다. 기독교 성직자, 교인들이다.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민족의 무덤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과연 죽어 있는 것인가? 우리의 죽음은 무엇이고 어디로부터 왔는가? 민족의 무덤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 문을 막은 돌을 굴려낼 힘이 없어서 탄식했던 저 여인들처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을 옮겨 줄 것인가?”라는 절망을 가지고 무겁게 발을 옮겼다. 무덤에 가는 것 자체가 공포다.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1986년에 기장 총회가 ‘우리가 어떻게 해서 분단당했으며 우리의 모습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찾아서 작은 책으로 냈다. 『분단의 원인과 민족 공동체의 실상』이라는 제목을 부쳤다. 그 일에 참여했던 비그리스도교인 학자들이 그때 입을 모아 한 말이 이것이었다. “지금 교회나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우리가 하면 금방 감옥이다.”

어렵게 무덤에 간 것이다. 그런데 가보니 산 아래에서 걱정하던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벌써 무덤 문을 막고 있던 돌은 굴러져 있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민족의 죽음은 이미 거기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분명히 있을 민족의 죽음이 거기에 없다. 민족은 이미 부활했다. 부활의 사건은 이미 일어났다.

남북 교회의 지도자들이 참으로 40여 년 만에 만났을 때 어떠했는가? 과거 가해자요 피해자였기에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가슴속에 증오를 품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저것들이 온전한 목사일 수 없다, 저들은 민중의 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이렇게들 서로 생각했을 것이다. 죽음의 현실이 엄존한 것이다. 그러나 만나는 순간 서로 부둥켜안게 되었다. 눈물로 끌어안게 되었다. 여기 죽음은 이미 없다. 무덤은 이미 없다. 빈 무덤일 뿐이다.

빈 무덤을 경험한 사람들은 교회뿐이 아니다. 두어 차례 있었던 고향 방문 때의 광경을 연상해 보라. 거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대결하고 있지 않았다. 40여 년 떨어져 있었지만 만나는 순간 피가 돌았고 감정이 일치했다. 그들은 이미 빈 무덤을 경험한 것이다.

통일 축구 운동장에서 뛴 남북의 선수들이 모두가 빈 무덤의 증인이다. 응원을 나갔던 모든 사람들이 이미 남도 북도 아닌 통일 민족이었다. 음악인들도 같은 경험을 한다. 지금 탁구 선수들이 일본 땅에서 빈 무덤을 경험하고 있다. 민단계와 조총련계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민족의 죽음은 더 이상 없다. 빈 무덤이 있을 뿐이다.

여인들은 무엇을 무서워했나? 왜 아무 말도 못했나? 예수의 죽음을 먹고 사는 무리들이 무서웠던 것이다. 그들에게 당할 고통이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 우리의 경우도 같다. 무섭다. 두렵다. 그래서 빈 무덤 사건을 경험했지만 아무에게도 이미 무덤은 비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늘의 문제는,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본 여인들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던 것처럼, 이미 빈 무덤일 뿐인데 그것을 말하고 나아가 죽음의 삶을 청산하려 하지 않는 데 있다. 무덤이 이미 비었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죽음의 지배를 받는데도 말이다.

홍근수 목사는 누군가? 무덤은 이미 비었다고 외친 사람이다. 우리 민족은 이미 부활했다고 외친 사람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라고 진실을 말한 사람이다. 그에게 왜 저 여인들에게 있었던 무서움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빈 무덤을 증언하지 않으면 무덤의 허위가 우리를 계속해서 지배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비참한 죽음의 삶을 살 것 아닌가 그러기에 문익환이 외쳤다. 임수경이 외쳤던 것이다. 그러기에 홍근수가 외친 것이다. 무덤은 이미 비었다고. 우리는 이미 하나라고.

여인들의 예상대로, 말하면 잡아간다. 빈 무덤 소문이 퍼지면 민족의 죽음을 먹고 사는 무리들은 제자리를 빼앗긴다. 그래서 겁을 주어 입을 틀어막는 것이다. 감옥에 가두는 것이다. 그것이 무서워 죽음의 시대를 살면 민족의 부활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증언자가 있다. 홍근수들이 있다. 그러기에 민족은 이미 하나다.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온갖 공포를 떨쳐 버리고 여러분도 말하라. 어떻게 말할까? 분단된 민족이 아닌, 하나의 민족, 부활된 민족으로 살아라. 그것이 말하는 것이다. 홍근수들의 진실을 신뢰하라. 그것이 말하는 것이다. 아까운 홍근수들을 사랑하라. 그것이 말하는 것이다. 홍근수들을 도울 거리를 찾아 도와라. 그것이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빈 무덤 사건과 공포 사이에 있다. 그러나 빈 무덤 사건의 증인으로 살 것을 지금 결단해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