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원 여록
1976년 – 나는 주로 경용 효순 집에 있다. 아내는 이집 저집 애기 봐달라는 요청에 따라, “일소부재”(一所不在)[1]의 탁발승(托鉢僧, Mendican Priest)[2]처럼 떠돌이 노릇을 한다. “직업”이 아니라 “봉사”다.
둘째 며늘애 효순은 “할머니”를 부엌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할머니”를 아껴서 하는 일이다. 오늘도 혼자서 떡국 준비에 바쁘다.
Finch 막치기[3] Apt에 사는 은용, 행강은 못왔다. 하륜애가 열나고 기침하고 누워 앓기에, 곁을 떠날 수 없었단다. 점심 후에 인철ㆍ혜원과 지영, 영철 식구들, 저녁 때에 상철, 신자와 3자매, 모두 화려한 한복차림으로 세배한다.
수유리 막내들은 편지로 세배한다. 크리스머스 5일 전에 부친 편지가 바루[4] 오늘 아침에 들어왔으니, 그들도 세배꾼들 축에 든 셈이 됐다.
밖은 눈 속에 언 땅이다. 매섭게 춥다. 다 흩어지고 아이들도 자고 나 혼자 불꽃 튀기는 Fire-Place[5] 앞에 앉아 침울에 잠긴다. 고독의 축복이랄까, “언어불통”의 바벨족속이랄까? 어쩐지 내 왕국은 아닌 것 같았다.
1월 2일(금) - 하륜 생일이라고 은용이네로 갔다. 행강이 터키[6] 굽고. 11시까지 맥주 마시며 T.V.보며 “설”맛을 다셨다.
막내 식구들이 보고 싶지만 그런 내색을 안 보이려는 데서 우울이 뚜껑을 들먹이는 게 아닐까.
1월 4일(일) - 토론토 한인연합교회에서는 예배, 장로 임직, 집사 취임, 성찬식 등 행사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장로들의 다과 향연이 있었고 대학생회와 신필균 양의 좌담모임도 있었다. 나는 이 좌담회에 배석해서 신필균을 대학생들에게 소개했다.
1월 5일(월) - 금호동 “정자”에게 편지 회답을 보냈다. “정자”는 늙은 부모에 대한 관심이 깊다.
2PM에 이남순[7] 여사가 와서 통일방안을 얘기하고, 민간지도자의 왕래가 빈번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7PM에 NKT. 전충림 사장 주선으로 “토론토 민건” 간부 몇 사람과 함께 신필균 양을 주빈으로 중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나누며 간담했다. 나도 초정돼서 동석했다.
1월 6일(화) - 스웨덴의 신필균이 12시 비행기로 토론토를 떠났다.
1월 8일(목) - 하령의 아빠 “경용”의 생일이다. 효순은 선물 사고 “디너” 차리고 정성껏 남편을 즐겁게 한다.
나는 이빨이 쑤셔서 기분이 “제로”다.
나의 건강기후에는 변덕이 많다. 아푸다, 안 아푸다, 우울하다, 즐겁다, 뭔가 잘못된 데가 있는 것이 아닐까! 아내는 나보다 더 쇠약해진 것 같다.
다섯 살짜리 손주 “하령”은, 늦은 밤인데도 두 번이나 “할아버지” 침대 옆에 들어와 “Good Night Kiss”를 하고서는 “할아버지 가지 말아요!” 한다. 조손(祖孫)간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