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권을 붙잡은 야곱
1978년 2월 26일 / 창세기 25장 29-34절
김상근 목사
[회상 노트]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사람들
장래에 대한 불안이 생겼다. 지금처럼 인권투쟁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10년, 20년 후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40세에 다가가지 않는가. 훗날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닐까. 실력을 기르고 내일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마지막 시간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1977년 말이었다. “유학을 떠나라. 여기서 더 활동하면 목회 못하게 된다. 감옥에 갈 수밖에 없게 된다. 가족 생계는 내가 알아서 할테고, 유학비용은 장학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공부를 더 해야 앞으로 큰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 아닌가.” 최태섭 장로님의 은밀한 권유였다. 교계는 물론 한국의 재계에서도 존경받는 어른이셨다. 집권세력의 흐름도 아셨고, 일정한 정보도 얻을 수 있으셨다. 김 목사도 결국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이라는 판단을 가지시게 되셨던 것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 김관석 총무님과 상의하여 나를 유학 보내기로 하셨던 것이다. 장학금은 김 목사님이 외국에서 얻어 내고 가족 생활은 최 장로님이 맡으시기로 했다는 말씀이셨다.
최 장로님은 나를 아들처럼 아끼셨고 나 역시 아버지처럼 여겼었다. 돌아가실 즈음에 이르러서는 아예 아들이라 하셨고 나도 아버님이라 불렀다. 나이로 보면 나는 그 분의 둘째 자식과 셋째 자식 사이였다. 그런데도 담임목사에 대한 온갖 예를 다하셨다. 두텁고 깊은 사랑과 깍듯한 예는 세상에 미담으로 알려져 있다.
하여간 이로 인해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인생의 목표, 나의 목표가 과연 무엇이냐? 학식을 쌓고, 박사 학위를 얻고, 그래서 좀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따라서 공헌도 더하게 되고……. 나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부활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지. 그러나 사실 답답했다. 숨이 막혔다. 신앙적 깨달음이 그러했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 유학을 떠나는 것은 도피다. 동지들에 대한 배신이다. 역사에 대한 책임회피다. 이런 생각이 나를 위와 같은 결론으로 강제했던 것 같다. 그 즈음에 함께 인권운동을 하던 친우가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나는 열심으로, 진심으로 속히 떠나라 했다. 나와 같은 깨달음이 그의 발목을 잡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나의 결론에 강제당하면서도 그것이 불만스러웠고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유학을 이미 마치고 상당한 명성을 가진 선배나 스승에 대한 부러움도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반발도 있었다.
[말씀을 향한 물음]
오늘 같은 산업사회, 돈이 있어야만 하는 사회에서는 부모의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를 데 없이 유리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속을 받고자 하고 또 상속을 주고자 한다. 오늘은 3ㆍ1절을 사흘 앞둔 날이다. 이날 우리는 우리 선조들을 생각하자. 그리고 대대로 이어질 후손들을 생각하자. 선조들은 무엇을 상속해 주었으며 우리는 또 무엇을 상속해 주려 하는 것인가?
[슬라이드]
[설교 전문]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후손에게 무엇인가를 상속해 주려 하고 또 상속받고자 한다. 부광석 씨는 “학생과 사회정의”라는 글에서 상속에 의한 사회적 부정의를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사회 속에서 부한 자의 후손은 그 부를, 가난한 자의 후손은 가난을 상속받게 되는 데서부터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부정의가 상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부를 축적한 사람은 어떻게 세금과 사회의 이목을 피하여 후손들에게 더 많은 부를 상속해 줄까 부심한다. 부동산, 골동품, 그림, …… 변칙적인 상속 방법을 창출해낸다. 거의 예외없이 이 사회에서는 유리한 조건을 상속받은 사람이 좋은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보증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부모는 존경을 받는다. 상속해 줄 만한 ‘부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자식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고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마저 생기게 된다.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내 손에 쥐어주지 못한 부모에게 그렇게 고마움을 갖게 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식을 생각해야지” 하는 충고는 부모로 하여금 멈칫멈칫하게 하는 말이 된다. 그래서 부모로서 무엇인가 자식의 생에 보탬을 주고자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돌봐준다. 결혼시킨 후에라도 항상 무엇이 있다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속이라는 말은 반드시 경제적 상속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상속”이라는 말은 이런 경제적 상속 이전에 이미 인간의 모든 것은 다음 세대에 이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쓰여져야만한다. 사람의 대뇌는 1,400-l,500cc 정도 된다고 한다. 아기는 처음부터 이런 인간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여기까지 크기에는 수천 년 혹은 수만 년의 기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어느 짐승이라도 아무리 머리가 크다 하더라도 사람의 대뇌의 크기를 따라오지 못한다. 오늘 내 대뇌의 그 우수함은 내 선조로부터 상속받은 것이요 그것을 나는 내 후손에게 상속해 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인간이란 무엇이냐? 이마 → 코 → 귀의 각도가 90도 혹은 그에 가까운 각도를 이루고 있는 동물이라고 한다. 하급동물로 내려갈수록 그 각도는 0에 가깝다. 인간은 0에서부터 꾸준히 발전하여 직각에까지 다다르게 된 것이고, 이것은 수만 년 전의 선조로부터 상속되어 나에게 이른 것이고, 나는 또 그것을 내 후손에게 상속해 주는 것이다. 한 생명을 눈여겨 보노라면 참으로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 또한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혜택이나 문화를 보아도 그것은 단시일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천 년을 두고 상속되어온 끝인 것이다. 나는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를 퍽 좋아한다. 그들의 음악적인 악상이 100-200여 년 후인 오늘 우리에게 전해져 우리는 적어도 그들로부터 한 문화를 상속받고 그 문화의 바탕 위에 서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상속에 대한 말씀이다. 에서가 받을 복을 가로챈 야곱의 이야기이다. 이 말씀들은 여기에 왜 수록되게 되었을까?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기에 기록한 것이라고 단순하게 볼 수 없다. 또한 일부다처제 시대였으니 그렇다고 해서 야곱처럼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 열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일 수도 없다. 당시에도 그 정도의 도덕 관념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야곱의 확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수 없다. 왜냐하면 야곱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믿은 것이 아니다. 에서도 그것을 믿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말씀을 기록한 저자나 편집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것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 저자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져 내려왔느냐 하는 데 관심하고 있다. 이 저자의 입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각 세대에 한 인간을 선택하여 오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또 이삭을 택하셨다. 그리고 야곱을 택하셨는데 야곱의 경우에 하나님은 왜 그를 택하시게 되었는가 하는 데 대하여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야곱의 행위를 결코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떡과 불콩죽을 주고 상속권을 샀다든가 나이 많은 이삭을 속여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그것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지 않다. 그러나 야곱, 그는 상속권을 소중히 여겼고 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에서가 자기의 상속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심판한 34절 말씀으로 증명이 된다. 여기에서 상속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에서와 그것을 붙잡은 야곱이 대조가 된다.
에서는 왜 그랬을까? 그가 상속을 몰랐을 리 없다. 다만 지금 배가 고프다는 이 사실이 그를 거룩한 상속권을 내팽개치게 만든 것이다. “에서는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상속권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였다는 말씀 속에 에서의 철학이 있다. 그가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거룩한 구속사적인 것이 아니라 당장의 허기를 메우는 것이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정말 상속권을 팔아버릴 만큼 배고픔이 절정에 이르렀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죽을 지경에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브라함, 이삭으로 이어지는 상속권에 대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는 말밖에 다른 말이 아니다.
이러한 삶의 철학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이 구속의 역사 一 하나님의 구속의 거룩한 일을 전승하는 자리에 있었던 에서, 즉 상속을 받고 또 상속을 해주어야 할 자리에 있었던 에서이지만 그는 그 사명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저자는 바로 이 점에 힘을 주어 이 말씀을 쓰고 있다. 말하자면 구속의 역사는 에서와 같은 사람이 아닌 야곱과 같은 인물에 의하여 상속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선조와 후손 사이에서 상속권자로 서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내 후손에게 상속시켜 줄 것을 마련하느라 법석을 떤다. 재산을 모아 물려 주고 또 그것으로 교육을 시켜 그 물려준 것을 불릴 수 있도록 해준다. 무엇인가 기득권을 주어야 하겠고 주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마음이 괴롭다. 그것은 또한 전적으로 경제적 측면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자칫 에서의 자리에 떨어진다. 지금 내가 무슨 거룩한 것, 숭고한 얼 따위를 생각할 때냐 하는 것 때문이다.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상속권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에서의 말이 우리의 말이 된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후손을 위해서 무엇을 상속시키려 하는가? 그 상속이 바로 내 후손들의 장래를 결정지어 주는 요인이 된다고 할 때 이것은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과연 무엇을 상속시키려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나는 가진 것이 없으니 상속해 줄 것도 없다, 나는 이것을 상속시켜 주어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예외없이 선조로부터 무엇인가를 상속받고 또 후손들에게 상속시켜 주는 자리에 서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하나의 결단이 요구되고 있다. 에서처럼 지금 당장 급한 것, 허기를 채울 것을 찾아 상속권을 포기할 것이냐 아니면 야곱처럼 오는 상속을 붙잡고 내 후손에게 넘겨줄 것이냐?
오늘 나는 특히 3ㆍ1절 59주년을 사흘 앞두고 이 문제를 증언하도록 성령의 이끄심을 받은 것이다. 사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3ㆍ1 정신 운운하는 것이 우습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은 정치가나 학자나 또 혹 목사들이나 하는 소리지 밥지어 먹고 빨래하는 주부나 회사에서 수판 돌리는 직업인들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곧 에서의 논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3ㆍ1정신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양심의 자유”와 “저항”이라고 본다. 그것은 비단 서명한 33인만의 것이 아니라 2천만 한민족 모두의 가슴속에 있었던 양심과 자유를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 선언을 하는 의도를 이렇게 쓰고 있다.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장하여 차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을 합하여 차를 포명함이며, 민족을 항구여일한 자유발전을 위하여 차를 주장한다 …… 양심이 아와 동존하며 진리가 아와 병진한다.”
눌려질 수 없는 양심의 폭발, 억압받을 수 없는 자유의 본성이 3ㆍ1 정신이다. 이 운동의 소식을 듣고 독립운동을 하던 인도의 네루는 옥중에서 자기 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1919년의 봉기였다. 코리아의 민중, 특히 청년 남녀들은 우세한 적에 항거하여 용감하게 투쟁했다.”
이 저항정신이 우리 민족의 핏속에는 흐르고 있다. 이 정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에서의 생리이다.
그러나 일제 36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의 지도자들은 마치 우리 민족은 자유정신도 없고 저항할 줄도 모르는 쑥맥으로 절하시켜 놓고 말았다. 한민족은 굴종의 민족이다, 한민족은 힘이 없는 민족이다, 양심을 짓밟혀도, 자유를 박탈당해도 순응하는 민족이다 …… 이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쳐 왔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는 그런 민족이겠거니 하고 체념하며 살게끔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자유정신이 있다. 우리의 핏속에는 양심의 맥박이 치고 있다. 우리의 혼 속에는 비리에 대하여 항거하는 저항정신이 출렁이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후손의 귀에 속삭여 주자! 저들의 마음에 새겨주자! 아니 우리가 작은 것이라도 그렇게 살아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한 가지 강한 상을 주자! “이렇게 에서는 자기의 상속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쓴 것처럼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의 어버이들은 자기의 상속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쓰지 않도록 하여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