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1-6] 한을 품은 사람의 희망 – 1980년 6월 1일, 김상근 목사

한을 품은 사람의 희망

1980년 6월 1일 / 시편 13편 1-6절

김상근 목사


[회상 노트] 한과 하나님의 정의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강원도의 사북 탄광에서 폭동이나 다름없는 사태가 일어났다. 며칠 전에는 서울 시내에 대규모 학생시위가 있었다. 나는 물론 시위의 여기저기를 살피고 다녔다. 5월 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주일인 18일, 군의 이른바 진압작전이 광주에서 발생하였다. 광주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무서운 것이었다. 이미 170여 명이 총격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지금 정권은 경상도 정권이다. 왜 하필 광주에 군을 진입시켜 양민을 죽이는 것인가! 내 가슴은 분노로 찼다. 아니, 나의 분노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죽임을 당한 사람, 그 가족, 그리고 광주, 그리고 호남인의 한의 깊이가 나를 압도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다른 설교를 할 수가 없었다. 수도교회는 마침 새 교회당을 신축하고 4주 전에 입당을 했다. 새 교회당에 입당하는 것은 그 교회에 있어 결코 자주 오지 않는 기회인 것이다. 그로써 교회가 단합도 하고, 새 전망도 가지게 된다. 온 교회를 쇄신하여 크게 전진한다. 이에 적절한 설교를 몇 주일째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설교를 더 이상 이을 수 없었다. 성서는 이런 때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질서? 사랑? 화해? 용서? 아니다. 정의다! 인간의 정의가 아니다. 하나님의 정의다! 하나님의 정의다!

5월 25일 설교는 하나님의 정의를 외친 것이다. 아침에 교회에서 나를 본 장로님들이 화들짝 놀라신다. 왜 왔느냐는 것이다. 여기 나타나면 잡혀 갈테니 도망치라는 것이다. 목사가 예배를 한두 시간 남겨 두고 어떻게 도망을 가란 말이냐고 했다. 나는 무서운 설교를 했다. 듣기에도 무서웠을 게다. 예배 후 나는 교회당 정문으로 나가지 못했다. 기관원들이 골목을 이미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장로님들은 나를 교회 뒷켠 쪽으로 도망치게 했다.

사태가 더욱 악화되어가던 일주일을 기관원을 피해 이 집 저 집으로 전전했다. 성직자가 못할 노릇이었다. 언젠가는 체포당하게 될 것이다. 체포되지 않으려면 목회를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또 나를 숨겨주는 사람들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나는 6월 1일 주일 아침, 내 교회당으로 잠입을 감행했다. 그리고 또 설교했다. 그래, 한을 품은 광주에,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 희망이 없다면 하나님이 아니 계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 것 아닌가! 숨 쉴 이유를 찾았던 것이다. 나는 그 설교가 당분간의 고별 설교가 될 것이리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지금 원고를 다시 보니 “광주의 시민이여, 자유와 정의를 열망하는 한국민이여, 평화와 사랑을 기리는 여러분이여, 주의 사랑을 믿으시라. 여러분, 건져 주실 줄 믿고 기뻐하시라” 이렇게 설교했었다.

예배 후 체포당했고 다음 주일 설교를 할 수 없었다. 잠시 풀려났었으나 7월 한 달은 나라가 주는 밥을 매일 세 끼씩 꼬박꼬박 얻어 먹었다. 교인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말씀을 향한 물음]

우리 민족은 한(恨)의 민족이다. 한 많은 민족을 위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신 것인지 안타깝다. 광주의 한은 우리의 한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외면해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 따위는 관계치 않으신다고 하나님을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 처절한 현실에 신앙의 자리는 있는 것인가?


[슬라이드]

한(恨)을 품은 사람의 희망 : 절망의 심연에서 쏘아 올린 신앙의 역설

1980년 5월, 두 개의 엇갈린 현실

수배와 도피, 그리고 잠입

한은 적당히 없어지는 법이 없다. 기어코 폭발하고야 만다.

한민족 골수에 박힌 한(恨)의 지층

풀리지 않는 풀리지 않는 원한의 공포 : 황씨 부인당 전설

1980년 5월, 새롭게 뿌려진 한의 씨앗들

이 많은, 이 두터운 민족의 한과 하나님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인가?

한(恨)을 다루는 4가지 방식 : 전통적 접근, 현대 세속적 접근, 기회주의, 신앙적 접근

시편 13편의 재해석 : '나'에서 '연대적 우리'로

하나님을 포기한 자는 결코 탄식하지 않는다.

한을 품은 자의 역설적 희망

광주의 시민이여, 자유와 정의를 열망하는 한국민이여, 평화와 사랑을 기리는 여러분이여, 주의 사랑을 믿으시라. 여러분, 건져 주실 줄 믿고 기뻐하시라.

[설교 전문]

총회 사무처에서 총회장 명의의 공문이 지난 수요일 도착했다. 내용은 6월 8일 주일에 광주사건을 주제로 하여 예배를 드리고 헌금해서 현지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오늘 전국에 있는 기장교회는 물론 다른 교단의 많은 교회들이 아마 광주사건을 위해서 기도하고 설교할 것이다. 나는 마침 지난 주일 설교부터 “인간의 한과 하나님의 정의”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 오고 있다.

금번 광주사건은 우리에게 ‘한’이라는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케 해준다. 이 사건은 크게 보면 우리 국민 모두의 한이 광주에서 터진 것이요, 좁게 보면 그 지역의 한이 터진 것이다. 크게 보면이라는 것은 민주사회, 민주국가를 위해 당한 국민 모두의 고난과 한들의 몸부림이 광주에서 터졌다는 생각이고, 좁게 보면 고난과 한들의 몸부림이라고 한 것은 결국 그 동안 갖은 푸대접과 수모를 당한 한 지역의 한이 폭발했다는 판단이다. 한이라는 것은 마치 요새 부엌에서 쓰는 프로판가스와 같다. 통속에서 액체로 얌전히 있는 것 같지만 구멍이 나기만 하면 돌연히 기체로 변하여 외부로 폭발하고야 만다. 한도 그런 것이다.

우리 국민은 뼈 속에 사무친 한을 민족적으로 결코 지워버릴 수가 없다. 대대로 중국에, 러시아에, 일본에게 우리는 찢기고 빼앗겼다. 근대에 와서 우리의 가장 뼈아픈 상처인 38선이라는 것조차도 미ㆍ일ㆍ중ㆍ소 네 나라에 의해 나뉘어진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이 나라 구석구석에 뿌려진 한의 양은 측량할 수가 없을 것이다. 또 해방 후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위해 뿌려진 한은 4ㆍ19의 아픔을 비롯하여 결코 간과할 수 없으리 만큼 골수에 박혀진 것이다. 한(恨)의 민족, 한인(恨人)의 모임이 여기 한국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이라고 하는 것이 프로판가스 같고 또 화산과 같다고 했지만 우리 민족의 전설이나 사실들을 보면 참으로 “한”이란 무서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역대의 어느 왕이든 한을 사지 않도록 다스리라는 충언을 듣는다. 한을 사지 않는 것이 왕도정치의 정경이요 대도라는 것이다. 그것은 한을 사면 그 결과가 기어코 가공할 사태를 몰아온다는 오랜 경험에서 난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런데도 우리 문화와 역사는 한으로 얽혀 있다. 왕과 신하,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누이와 올케, 당파와 당파 사이에 수없는 한들이 맺혀 있다. 이제는 끝났는데 「주간 조선」이라는 주간지에 서강대 김열규 교수의 “한맥원류”(恨脈怨流)라는 것이 기획기사로 80회나 실렸었다. 이 글을 보면 개인과 개인 사이의 한, 왕과 신하 사이의 한, 당파와 당파 사이의 한이 얼마나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한을 쉽게 남의 가슴에 박아 놓는다. 우리 백성들은 서로 한을 쉽게 심는다. 그래서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한이라는 것은 풀어져야만 하는 것이지 풀어지지 않고는 끝까지 해꼬지를 한다. 우리 선조들은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선조 중에 한을 품은 일이 없나를 찾는다. 나라에 우환이 있어도 나랏님은 한풀이를 해야 한다. 병이 낫지 않는 때 무당을 불러 한 품은 원혼을 불러 그 한을 듣고 그것을 풀어주고서야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한은 갚아지지 않는 법이 없고 적당히 없어져 주는 법이 없다는 것이 한에 대한 우리의 통념이다.

시인 조지훈이 쓴 “황씨 부인당”이라는 글이 있다. 이것은 자기 고향 이야기다. 황씨 처녀를 두 총각 바우와 억쇠가 좋아했다. 둘 가운데 바우가 신랑이 되어 첫날밤에 용변을 보러 갔다 오는데 신방 문에 칼날 그림자가 얼씬하는 것을 보았다. 바우는 억쇠가 비수를 들고 잠복해 들어온 것으로 오해한다. 바우는 그 길로 도주하였는데 사실은 담 곁의 대나뭇잎의 그림자가 비친 것이었다. 신부는 원삼 입고 족두리를 쓴 채 무작정 기다리고, 바우는 도망가 타향살이를 한 채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신부는 기다리다 죽었고 바우는 새 장가를 갔다. 그런데 바우가 아기를 낳는 족족 잇달아 숨져갔다. 이상한 일이었다. 무당의 말은 바우가 버리고 도망간 그 신부가 해꼬지를 한다는 것이었다. 바우는 그 길로 옛 신방으로 달려갔다. 닫힌 신방 문을 열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신부는 첫날밤 그대로의 모습대로 앉아 있었다. 바우는 며칠을 참회하며 울고 불고했다. 또 다른 무당을 통해 높은 상상봉 꼭대기에 시신을 모셔달라는 것을 안 바우는 당집을 짓고 업어다가 모셨다. 모신 그 순간 족두리 원삼 연지 곤지 그냥 그대로 앉음새 하나 흐트리지 않았던 모습은 오간 데 없이 한줌 재로 삭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원한을 품고 죽은 시신은 썩지도 않고 한을 풀 때까지 해꼬지를 한다는 것이고 결국 한을 풀고서야 썩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이해된 한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금번 광주사태를 여러 가지로 해석한다. 또 그 동기에 대하여도 해석이 구구하다. 그러나 나는 한의 폭발이라고 생각한다. 해방된 지 36년 동안의 한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마치 프로판가스처럼 가라앉아 있다가 그것이 광주에서 폭발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폭발을 계기로 또다시 엄청난 한을 이 땅에 남겨 놓았다. 계엄사 발표대로 한다면 174명의 한, 찢어 없어진「타임」(TIME)지 기사의 표현대로 한다면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사람들, 그들이 다시 한의 씨들을 뿌렸다.

억울하게 죽고 억울하게 당하고 더구나 누명까지 쓴다면 그것이 어찌 한이 되지 않겠는가? 열일곱 살, 열여덟 살, 스무 살, 죽어간 저들에게 한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차가운 아들의 시체, 딸의 언 살을 만지는 그 부모에게 어떻게 한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니 이 나라 누구의 가슴엔들 한이 뿌리박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한을 어떻게 풀 것이냐? 우리 나라의 문화 전통에서 보면 그 많은 원혼들이 해꼬지를 할 텐데 어떻게 이 한을 풀 것이냐? 이 많은, 이 두터운 민족의 한과 하나님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인가? 우리의 하나님도 인간의 한 따위에는 아랑곳도 않으시는 것인가? 우리의 한을 풀어주지 못하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결국 이 민족으로부터 버림을 받고야 말 것이다.

과거 사람들은 한을 풀자고 무당을 찾았고 소위 무당굿을 했었다.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굿은 무엇인가? 그것은 폭력이요 보복이요 피의 끝없는 악순환이다. 현대인의 한에 하나님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결국 이 나라의 한은 폭력과 보복, 피흘림의 악순환이라도 그 무당굿을 해내고야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처절한 한의 순간에 ‘하나님은 누구냐’ 하는 것을 철저하게 회의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처음부터 신앙인이 아니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 아들, 내 자식이 죽지 않았으면 그만이고 정의니 진실이니 하는 것은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믿는 신앙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과 같은 처절하고 절망적인 순간, 한이 주렁주렁 열리는 이 현실에 대하여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심각하게 회의하지 않는다면 그는 신앙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아들이 죽지 않았고 서울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요 또 나는 먹을 것 입을 것 있으니 내 알 바 아니라고 오불관언(吾不關焉)을 선언하고 있다면 그는 기독교 신앙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평화와 민주의 사회, 정의와 자유의 사회를 우리가 얼마나 염원했었는가? 어쩌면 역사 이래 처음 맞게 된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가 이처럼 무산되어 가는데도 당신은 우리의 한과 아무 상관이 없단 말인가? 당신은 우리의 한 같은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하나님이란 말인가? 계시다면 한을 풀어 주십시오. 계시다면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외치지 않는 신앙이란 있을 수 없다. 이 민족의 한은 다시 프로판가스처럼 액체가 되어 가라앉기 시작한다. 휴화산처럼 화산의 흔적만 남기고 땅 속 깊이 한이라는 폭발력을 감추기 시작한다. 한을 품고 허탈하여 모든 아름다운 희망을 버리고 침전해 버리는 이 순간 신앙의 선조들은 어떻게 했을까?

시편 13편으로 우리의 눈을 돌려 보자. 이 시는 형식이 일인칭으로 되어 있다. “나를 잊으시렵니까?”, “나를 외면하시렵니까?” 등 ‘내’가 주체가 되고 있다. 그러나 모빙켈은 모든 ‘나-형식’(I-Form)의 시들은 그 성격상 민족적인 탄식시라고 한다. 말하자면 여기에서의 “나”는 한 개인이 아니라 연대적 개인(Corporate Personality)의 성격을 띤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뜻으로 고쳐 읽어 보자.

“야훼여, 언제까지 우리를 잊으시렵니까? 영영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우리를 외면하시렵니까? 밤낮없이 쓰라린 우리의 이 마음, 우리의 이 아픔, 언제까지 견뎌야 합니까?”

이것은 고통과 아픔을 당한 한의 사람들이 그 한의 복판에서 부르짖는 울부짖음이다. 이들의 처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와 있다. 영영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견뎌야 합니까라는 표현은 정말 절망의 극한에 서 있다는 느낌을 준다.

우리는 이번 광주사태를 겪으면서 이같은 감정을 갖지 않을수 없다. 이 민족의 이 처절한 비극, 이 슬픔, 그것은 우리를 절망과 좌절의 골짜기로 몰아 넣기에 족했다. 정의니 자유니 사랑이니 하는 말도 그래도 상식이 통할 때의 이야기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개나 돼지처럼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선한 의지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각자 나만이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정의도 자유도 못본척하고 지나쳐 버리고 절망과 좌절의 골짜기에 머물러 있어야만 된다. 이런 경험이 우리에게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5천년 역사는 그러한 좌절의 역사였다. 중국이, 러시아가, 일본이 우리를 몰아쳤었고 해방이 되자 정치권력이 또 우리를 좌절시키고 괴롭혀 왔었다. 10ㆍ26 이후 이 나라에는 서광이 비치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훈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암혹의 골짜기로, 비극의 역사 속에 발을 디디고 말았다. 아, 불쌍한 민족이여, 아, 불쌍한 우리의 후손이여, 여기에서 우리는 자칫 주저앉아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인은 아직도 그의 숨결을 모으고 그의 기진한 맥박의 힘을 다하여 야훼 하나님을 생각하는 일에 먼저 관심하는 놀라운 신앙심, 자랑스런 의지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논리로 증명하고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실재를 믿을 수 없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우리의 숨결을 모으고 우리의 기진한 맥박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고 부른다면 그것은 위대한 신앙이다.

“야훼여, 언제까지 우리를 잊으시렵니까? 영영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우리를 외면하시렵니까?”

이 말을 소극적으로 이해하면 하나님과 시인 사이를 가로막는 절망의 언어로 되어버린다. ‘영영 잊으시는군요, 나를 외면하시는군요.’ 그러나 수난을 당하는 시인의 영혼 깊이에서 터져 나온 신뢰심의 표현이라고 하면 이 부르짖음은 일체의 절망의 먹구름을 몰아내는 태풍과 같은 신앙이다. 절망의 복판에서 “야훼여, 언제까지입니까?”를 외칠 수 있는 영혼, “언제까지 우리를 외면하시렵니까?”를 외칠 수 있는 민족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확신에 찬 영혼이요 소망이 있는 민족이다. 급기야 시인은 이렇게 읊조린다.

“이 몸은 주의 사랑만을 믿사옵니다. 우리를 건져 주실 줄 믿고 기뻐합니다. 온갖 은혜 베푸셨으니 야훼께 찬미드리리이다.”

이것이 한을 품은 자의 희망이다. 당신의 개인적 한도 하나님은 결코 지나쳐 버리시지 않으심을 믿으시라.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우리의 한을 이렇게 버려 두시지만은 않을 것임을 믿는 신앙, 패배의식도 아니고 몸을 도사려 해바라기처럼 새 권력에 빌붙지 않고 기어코 우리를 건져 주실 하나님을 믿고 벌써 기뻐하는 신앙 -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있어야 할 신앙이다.

광주의 시민이여, 자유와 정의를 열망하는 한국민이여, 평화와 사랑을 기리는 여러분이여, 주의 사랑만을 믿으시라. 여러분, 건져 주실 줄 믿고 기뻐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