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5:2-18] 우리의 범죄를 인함이니이까? - 1975년 4월 20일, 김상근 목사

우리의 범죄를 인함이니이까?

1975년 4월 20일 / 예레미야 애가 5장 2-18절

김상근 목사


[회상노트] 고통의 밤에 드리는 구원의 기도

그 해 2월에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가 있었다. 나는 물론 투표를 거부했다. 담당경찰이 매달렸다. 반대표를 던져도 좋으니 투표장에 가 달라는 것이다. 끝내는 경찰서장이 왔다. 그래도 거부했다. 아마 투표율이 높지 않으면 책임추궁을 당하게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투표율을 따질 필요도 없었다. 기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나는 기어코 내 뜻을 관철시켰다. 강압으로 치룬 국민투표를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도 국민투표 무효선언을 했다. 정권과의 전면전이었다.

결국 NCC 총무 김관석 목사 등이 구속되었다. 혐의는 업무상 횡령이었다. 그래도 언론인들이 살아있었다. 정권은 정론을 펴려는 언론인들을 언론현장에서 내몰았다. 동아일보 기자들을 필두로 모두 거리로 쫓겨났다. 막가는 횡포요 폭거였다. 대통령 긴급조치 7호가 발동되었다. 대학교에 다시 군대가 진주했다. 대학들은 자진 휴강 형태로 문을 닫았다. 한국신학대학에는 휴업령이 내려졌다.

민생문제와 씨름하는 정권이 아니다. 탄압, 탄압, 탄압이 이어졌다.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 군이 양심선언을 하고 할복자살했다. 나도 문동환, 이해동 목사와 함께 반공법 위반혐의로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연행당했다. 그들은 목요기도회 주관을 포기케 하려 했다. 나는 기독교회관에서 목요기도회를 할 수 없다고 공고를 냈다. 저들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지만 두고두고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풀려 났다. 풀려 나와서는 장소를 옮겨 다니며 기도회를 이어갔었다. 골방에 틀어박혀 드리는 기도도 있다. 그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그리하라. 그러나 내놓고 기도회를 가지지 않는다면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없다. 그리고 공고를 냈던 나의 부끄러운 행위를 만회할 수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의한 힘에 의해 수난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난의 의미가 있는 것인가? 언제까지 이런 고난의 행진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 우리의 고난이 값없는 것이 되고 만다면 그것이야말로 절망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길고 험한 수난을 보시고 계시지 않는다면 절망, 그렇다 절망이 아닐 수 없다.

성서는 어떤 계시를 주고 있는가? 속죄제물들인가? 나의 이런 고뇌가 교인들에게 커다란 압박으로 가 닿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교인들이 이러한 고통을 비켜가게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함께 고뇌하자니 그들에게 너무 무거운 일이고, 그렇다고 비켜가게 하자니 그것은 구원의 길이 아니다.


[말씀을 향한 물음]

우리는 오늘날 불가사의한 많은 현실들을 경험하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혼동되어 가는 것 같고 정직한 자가 욕을 보며 선의가 배신을 받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죄없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치 않을 수가 없다. 가난한 사람은 항상 가난하게만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과연 주무시기만 하시는 것인가? 참으로 우리의 모습은 ‘고통의 밤’, ‘고통의 심야’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과도 같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거기에 구원의 길이 있겠기 때문이다.


[슬라이드]

우리의 범죄를 인함이니이까? - 예레미야 애가와 1975년 대한민국의 정치

참으로 우리의 모습은 '고통의 밤', '고통의 심야'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과도 같다

이중적 멸망의 역사(기원전 586년 & 기원후 70년).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은 이 이중적 멸망의 비극적 역사 속에서 애가(슬픈 노래)를 복창하며 절망과 뉘우침을 기록해왔다.

붕괴의 증상 1. 혼과 얼의 상실

붕괴의 증상 2. 가치관의 예속

붕괴의 증상 3. 생존을 위한 타협과 인권 추락

진리와 진실, 인본주의가 결여된 곳에는 반드시 절망적 현실이 반복된다.

피와 희생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념을 핑계로 제물이 된 백성의 수는 얼마인가?

4.19이후 15년이 지났음에도 사회의 부정의는 혁파되지 않았고, 자유의 질적 발전 없이 강요된 통제만이 남았다.

생존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

고대 유대와 1975년 한국

사회 붕괴의 메커니즘

피할 수 없는 질문: 밖을 향하던 분노의 시선을 거두고, 본질을 마주할 시간

외부를 향한 시선에서 내부를 향한 시선으로: 항의에서 고백으로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까?


유대 민족은 오랜 역사가 흘러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고통을 받아 왔다. 오늘 본문이 씌어지던 상황도 굉장한 수난의 현장이었다. 유대 민족의 일부는 이미 앗시리아라는 나라에 의해 포로가 되어 있었으며, 기원전 586년에는 예루살렘이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점령당했고 많은 백성들이 바빌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 갔다. 우리에게는 일제의 침략과 6ㆍ25 사변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피정복 민족, 혹은 포로의 형편이 어떠한 것이냐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유대 민족의 절망과 뉘우침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예레미야 애가는 그 같은 비극적 역사 속에서 아직 바빌론으로 끌려가지 않은 애국시인에 의해 씌어진 한 애끓는 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방금 말씀드린 바빌론 포로와 기원후 70년에 로마에 의해 또 다시 멸망당했던 이 이중적 멸망을 기념하는 절기에 애가(슬픈 노래)가 복창되어 왔다. 오늘 본문은 애가 중에서 유대 민족이 당한 재난에 대한 긴 설명 부분이다. 여기서 시인은 자기 민족이 겪고 있는 재난의 이유를 찾아 보려 하고 있다. 이유를 찾기에 앞서 재난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외인에게, 우리 집들도 외인에게 돌아갔나이다. 우리는 아비 없는 외로운 자식이오며 우리 어미는 과부 같으니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섶을 얻으오며 우리를 쫓는 자는 우리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곤비하여 쉴 수 없나이다. 우리가 이집트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더 나아가 종들이 우리를 관할하고 있는데도 우리를 그 손아귀에서 건져낼 자가 없게 되고 말았나이다.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을 수 있고, 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게 되고 말았나이다. 대적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에서 처녀들을 욕보이고 있나이다. 방백들의 손이 매어달리게 되었고 장로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되었나이다. 소년들이 맷돌을 지게 되었고, 아이들이 섶을 지다가 엎드러지게 되었고, 노인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소년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게 되었나이다”(개역성서, 애 5:2-14).

여기서 본 유대 민족의 재난은 내일이 없는 민족, 오늘의 즐거움이 없는 민족, 굶주림과 타락으로 옥죔을 당하고 있는 민족으로 묘사되어 있다. 죽임을 당하고, 약탈을 당하고, 짓밟히고, 파괴되었다. 어느 곳을 가나 정상적인 인간관계, 정당한 사회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고 안전감이란 있을 수 없다.

2절에서 “우리의 기업과 집이 외인에게 돌아갔다”는 것은 곧 종교적인 전통, 유대 민족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정신적인 전승을 이방인들 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유대 민족에게는 엄청난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종교적 양심 —그것을 떠나 유대 민족은 존재할 수 없다. 그 양심을 저버리는 때 비록 이 육체는 남아 있을지 모르나 혼은 없어진것이며 민족의 얼은 없어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집이 이방인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은 더없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말인 것이다.

8절에서 “종들이 우리를 관할함이여, 그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라고 함은 이제 모든 행위의 규제와 통제가 유대의 신앙적 풍토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철학, 이방인의 가치관, 이방인의 사고 판단에 의해서 강제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법도 신앙적 진실성에서 제정되는 것이 아니다. 정복자, 압박자에게 편리하도록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법의 함정에서 유대 민족을 건져 낼 자가 없다는 탄식이다. 꼼짝없이 칼을 쥔 이방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겨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유대를 다스리는 정신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예배하며 그분을 경배하는 겸손한 피조자의 정신이 아니다. 백성을 사랑하고 피지배자, 피고용인들을 아끼고 돌보는 심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당시 유대가 이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나라의 모습을 떠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대 사회에는 윤리의 타락과 사회부조리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백성들은 아비없는 외로운 자식처럼 되어버렸고, 부인들은 과부 같이 되어버렸다. 최소한의 생존의 조건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다 같이 먹으라고 준 물을 마시기 위해서 은을 주어야 하게 되었다. 백성들은 무엇엔가 쫓겨 항상 목을 졸리는 악몽 속에서 피곤한 삶을 살게 되었고, 무언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악과 타협하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 유대 민족의 피부가 아궁이 색깔처럼 새까맣게 되고 말았다. 윤리는 퇴락하여 부녀자며 처녀들이며 그 정조를 지켜 나가기도 힘들게 되었고, 소년들이 힘에 겨운 노동을 해야 하고, 노인들마저 지게라도 지어야 하게 되었고, 지도자들은 도무지 백성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이런 비극적 현실은 인간 역사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반복되는 현상인 듯싶다. 진리를 높이고 진실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철학, 무엇보다 인간을 사랑하고 아끼는 인본주의가 결여된 곳에는 반드시 이러한 절망적 현실이 빚어지고야 만다. 우리의 가정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학원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국가도, 진리와 진실, 그리고 인간에 중심을 둔 사회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바로 오늘 본문에서 보는 유대의 현실이라는 말이다.

어제 열다섯 번째 4ㆍ19를 보냈다. 우리 가정의 아픔과 여러분이 속해 있는 작은 공동체의 아픔들을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아픔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일제시대에 뿌린 피가 얼마며, 6ㆍ25 때 죽어간 선량한 넋이 얼마인가? 이북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죽은 사람들은 고사하고 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제물이 된 백성의 수는 얼마인가? 거창 양민학살 사건하며, 방위군은 얼어 죽어가는데 그들의 피복이며 식비를 가로채 부자가 된 부조리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순진한 학생들, 의를 의라 말하고 진실을 진실이라 주장한 학생들이 4ㆍ19 때 몇 명이나 죽어 갔던지를 생각해 보자. 이것이 다 무엇인가?

4ㆍ19가 15년이나 지난 오늘날도 우리 사회의 부정의를 혁파하지 못하고 있다. 군대가 다시 대학에 진주해 장악하고 있고 많은 대학이 휴강을 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구속, 구류, 제적, 퇴학, 정학에 몰려 가고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에게 드리는 공개장”을 써놓고 배를 갈라 목숨을 끊음으로 간언을 하는 학생이 있다. 이것이 4ㆍ19 15주년의 모습이다. 15년 전에 목숨을 걸고 외쳤던 ‘독재정권 타도’란 말이 지금껏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고,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 확립이 지금도 숙제로 되어 있다. 4ㆍ19 당시의 부정부패 문제가 지금도 심각하다. 북한 공산주의의 남침 야욕 경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되풀이되고 있다. 그래서 총화를 강요하고 강요받게 되어 있다. 자유의 제한도 강요받고 있다. 강요만 받고 있지 그 동안 자유의 질과 양이 발전되어 적극적인 면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이겨 보려는 노력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러한 오늘날의 부조리 현상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서 누구는 강도가 되었고, 누구는 사회 유지세력이 되었는가? 어떻게 해서 누구는 지배자가 되었고, 누구는 지배를 받게 되었는가? 어떻게 해서 누구는 끼니를 잇지 못하게 되었는가? 내 밥 한술 덜 먹고 자식에게 한 술 더 주려는 눈물겨운 현실이 있다면 여러분은 실감이 가는가? 나는 나에게 무엇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을 잘 대해 주는 편은 아니다. 보태주는 것이 곧 그들을 도와 주는 것이라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얻어 먹는 것이 가장 편하니 그 길을 택해 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사이는 나에게 오는 그 여러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정말 절망적인 사람이 있다면 거절당할 때의 그 절망감이 오죽하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여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오늘날 먹고 살기 위해 얼굴이 아궁이 색깔이 된 사람들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먹고 살려고 정조를 파는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대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를 쫓는 자에 의해 우리 목이 눌린 것을 우리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심한 자유의 제약은 곧 목을 누르는 행위이다. 만약 최근 대량 생산해내는 법이 국민을 사랑하고 나라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의를 위한 행위라면 우리 백성의 형편이 유대 민족의 형편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본문 15절처럼 “우리 마음에 희락이 그쳤고 우리의 무도가 변하여 애통이 되었사오며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지고 말았다.” 참으로 이 백성의 아픔을 생각하면 우리 마음에 희락이 그칠 수밖에 없고 우리의 무도도 애통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경험을 우리는 지금 하고 있다.

우리는 이 현실을 보고 안타깝고 답답하게 여기고 있다. 도대체 그 원인이 무엇인가? 본문 7절과 16절에서 그 대답을 신앙의 눈으로 찾고 있다. 그것은 곧 “선조들의 죄악”과 “우리 자신의 범죄함” 때문이라는 통찰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현실에 대한 불평, 하나님께 대한 항의를 그칠 수가 없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이 감추어지는 오늘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일일노동자의 처절한 신세를 벗지 못하는 사회를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숱한 백성들이 죽어가는 우리의 역사를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회에 대한 고발, 하나님께 대한 격렬한 호소와 함께 자신의 과오를 인식하는 신앙적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까?” 이 고백과 이 기도가 우리의 입에 담아지고 우리의 가슴에 아려와야 하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이 아픈 현실을 풀어 나가려 할 때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 선조들이 범해 놓은 죄악, 그것을 뉘우치는 신앙적 반응이 우리에게서 나타나야 하겠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 기도드리자. ‘하나님,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