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잊으시고 버리시나이까?
1975년 4월 27일 / 예레미야 애가 5장 19-22절
김상근 목사
[회상노트] 고통의 밤에 드리는 구원의 기도
그 해 2월에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가 있었다. 나는 물론 투표를 거부했다. 담당경찰이 매달렸다. 반대표를 던져도 좋으니 투표장에 가 달라는 것이다. 끝내는 경찰서장이 왔다. 그래도 거부했다. 아마 투표율이 높지 않으면 책임추궁을 당하게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투표율을 따질 필요도 없었다. 기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나는 기어코 내 뜻을 관철시켰다. 강압으로 치룬 국민투표를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도 국민투표 무효선언을 했다. 정권과의 전면전이었다.
결국 NCC 총무 김관석 목사 등이 구속되었다. 혐의는 업무상 횡령이었다. 그래도 언론인들이 살아있었다. 정권은 정론을 펴려는 언론인들을 언론현장에서 내몰았다. 동아일보 기자들을 필두로 모두 거리로 쫓겨났다. 막가는 횡포요 폭거였다. 대통령 긴급조치 7호가 발동되었다. 대학교에 다시 군대가 진주했다. 대학들은 자진 휴강 형태로 문을 닫았다. 한국신학대학에는 휴업령이 내려졌다.
민생문제와 씨름하는 정권이 아니다. 탄압, 탄압, 탄압이 이어졌다.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 군이 양심선언을 하고 할복자살했다. 나도 문동환, 이해동 목사와 함께 반공법 위반혐의로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연행당했다. 그들은 목요기도회 주관을 포기케 하려 했다. 나는 기독교회관에서 목요기도회를 할 수 없다고 공고를 냈다. 저들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지만 두고두고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풀려 났다. 풀려 나와서는 장소를 옮겨 다니며 기도회를 이어갔었다. 골방에 틀어박혀 드리는 기도도 있다. 그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그리하라. 그러나 내놓고 기도회를 가지지 않는다면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없다. 그리고 공고를 냈던 나의 부끄러운 행위를 만회할 수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의한 힘에 의해 수난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난의 의미가 있는 것인가? 언제까지 이런 고난의 행진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 우리의 고난이 값없는 것이 되고 만다면 그것이야말로 절망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길고 험한 수난을 보시고 계시지 않는다면 절망, 그렇다 절망이 아닐 수 없다.
성서는 어떤 계시를 주고 있는가? 속죄제물들인가? 나의 이런 고뇌가 교인들에게 커다란 압박으로 가 닿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교인들이 이러한 고통을 비켜가게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함께 고뇌하자니 그들에게 너무 무거운 일이고, 그렇다고 비켜가게 하자니 그것은 구원의 길이 아니다.
[말씀을 향한 물음]
우리 생은 기쁜 순간과 괴로운 순간, 감사한 순간과 안타까운 순간으로 이어져 간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일생을 순탄하게 사는 분도 있고 혹은 어렵게 사는 분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의 괴로움과 감사에 빠져버릴 수 없게 되었다. 우리 공동체를 같이 생각하고 같이 느끼고 같이 감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가 바로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를 전체적으로 살필 때 우리는 역시 아픔과 고통의 밤에 있다. 전쟁의 불안, 가난의 공포, 사회의 혼란, 생의 건조一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 속에 파고 들어와 있다. 이 고통의 밤에 우리는 구원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만 하겠다. 어떻게 드릴 수 있을 것인가?
[슬라이드]
지난 주 설교에서 유대 민족이 이방국가인 바빌론에게 멸망당한 후 모든 백성이 포로로 끌려간 나라의 꼴을 보고 탄식했던 한 애국 시인의 애끓는 호소를 말씀드렸다. 그의 안타까운 호소에 의하면 자기 민족의 정신과 혼, 얼이 이제 다 빠져나가버려 이제까지 긍지로 여겨왔던 종교적 양심이 그 설 자리를 잃고 말았으며, 법은 압제자의 편의에 따라 마음대로 제정, 운용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유대 사회는 윤리의 타락과 사회 부조리의 현상으로 가득 차게 되고 말았다. 이 시인은 둘째로, 이러한 모든 비극은 자신들의 역사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훌륭한 백성이었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 대한 불평, 불만, 격렬한 호소도 결국 자신의 과오를 인식하는 데로 귀착된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을 어느 특정인에게서 찾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민족이 걸어온 행위의 결과에서 찾고 있었다. 이 애국시인은 당시의 모든 악은 바로 온 민족의 범죄와 죄의 결과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 죄의 결과가 온 사회와 온 국가에 편만해져서 이제는 그 결과 때문에 누군가가 속죄제물로 바쳐져야 하게끔 된 것이다. 그 속죄의 제물은 바로 당시 역사 속에서 부당하고 억울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곧 쫓는 자, 횡포를 강행한 자에 의해 목이 눌려 사는 자며, 먹고 살기 위해 이집트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야합하는 자며, 주림의 열기 때문에 얼굴이 까맣게 그을은 노동자며, 대적에게 정조를 팔고 빼앗긴 여자들이며, 지나친 노동에 허리가 굽는 나이 어린 소년 노동자들, 포로로 잡혀 바빌론에서 억지 삶을 살고 있는 자들, 바로 이런 자들이 유대 민족의 속죄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 열조들이 범죄한 그 모든 죄과에 대하여 누군가가 오늘의 역사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아픔을 삼켜야 그 역사는 다시 살아난다는 통찰이다.
인간의 역사만큼 정직한 것이 없다. 저지른 범죄만큼은 속죄해야 그 역사가 바로 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앞서 말한 감당키 어려운 이 고통과 아픔에 부딪혀 살면서 여느 백성처럼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그 고통 속에서 새 의미를 찾아냈던 것이다. 그 새 의미란 만약 유대 민족이 겪고 있는 고통이 유대 공동체를 속죄키 위한 고통이라면 그것은 무가치한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행해지는 고통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고난의 심연 속에 있던 유대 민족 공동체의 삶의 근거였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 백성의 고통을 살피시고 계시다면, 이 이름 모를 백성들이 당하는 이 비극을 하나의 종교적 속죄 제물로 받으시고 계시다면, 그것은 헛고생이 아니고 헛고통이 아니며, 비극을 위한 비극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의미가 있고 값이 있는 고통인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기약이 있는 고난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20절) 하는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이 표현은 분명히 탄식 섞인 기도요 하소연이다. 그러나 이 탄식과 하소연의 바닥에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의 백성을 영원히 잊으실 수 없다는 확신이 깔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고통받는 자기 백성을 오래 버려두실 수는 없다는 신앙이 깔려 있다. 시인은 고통의 복판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그의 시선을 고정시켰던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의 고통과 비극을 낱낱이 열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나는 최근 주님께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방황하는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주님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 우리 백성과 우리 역사를 보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안고 견디지 못해 몸부림치고 있는가! 올해는 바로 광복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청나라, 러시아, 일본의 긴 식민생활, 해방 속에 겪은 여러 격변들, 이런 지난 일들은 그만두고라도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 대학가는 4ㆍ19 혁명 이후 한 번도 평온을 찾지 못했고, 단 몇 달도 진정한 면학 분위기를 이루어보지 못한 채 10여 년을 지나오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 정부 당국은 각 대학에 제명을 요구하여 이 대학 저 대학에서 무더기 제명 처분을 하고 있고, 우리 교단의 직영신학교는 그 제명 명령에 불복하여 휴교령이 떨어졌다. 결국 12명을 제명시켜야 하는 실정이다. 이 제명이란 학생에게 마치 사형과 같은 극형인 것이다. 다시는 그 학교에 복교될 수 없는, 영원한 퇴학이 바로 제명인 것이다. 제명당한 본인과 그 부모의 고통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정부 당국은 그렇게 해서라도 면학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매를 들어 종아리를 치고 더 큰 몽둥이로 때려서라도 잠잠히 공부만 하도록 책상머리 앞에 앉혀 놓고야 말겠다는 결의이다.
그러나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이 같은 강경 조처가 발동되었어도 대학가는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이제는 도저히 조용하고 잠잠할 수는 없는, 다시 말하면 어떤 대가, 속죄의 제물을 드려야만 할 단계에 접어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 역사 속에서 누군가가 제명을 당하고 쫓겨나는 고난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게 우리 역사의 상처는 깊이 응어리가 지고 말았다. 정부 당국도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요 학생들도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 편만해 있는 가난의 문제를 보자. 정부의 발표에 따른다면 5인 도시 가정의 최저 생활비가 78,000원이라고 한다. 이 78,000원을 매달 벌어대는 집은 근근히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하는 집은 빚이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한 달 수입이 78,000원이 되는 가정이 과연 몇이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 교인 가운데 어떤 분의 경우 작년까지는 한 달 7만원 정도면 살 수 있었는데 올해는 10만원은 있어야 살겠다고 한다. 그런데 수입은 작년에 비해 도무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가 지속되면 소위 가난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가난하기에 유산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하게 되고, 유산도 없고 교육도 못 받았기에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이 부모에게서 몇 명의 자녀로 또 그 자녀에게서 더 많은 후손으로 번져나가 결국 가난은 일반화되고 만다. 그것도 역시 오늘과 같은 경제구조,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제도 속에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경쟁 중심의 경제제도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온 것이며, 오늘의 가난 속에서 살고 있는 어려운 이웃들은 역시 종교적 속죄제물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는 부쩍 전쟁의 공포 속에 휘말려 들고 있는 것 같다. 크메르가 공산군에 완전히 항복했고 월남의 사태도 결코 낙관할 수 있는 것은 못 된다. 북한의 김일성은 호전적인 말을 흘리며 중공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그러니 조금 자유가 억압된다 해도 그것을 푸념하지 말고 정부에 따라 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에 따르게만 되면 정부는 분명히 더 독재화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백성들의 인간다운 삶의 파괴는 물론 자유 우방과의 유대가 무너져버려 국가 안보에도 중요한 문제가 제기되고 말 것이라는 판단도 있게 된다. 그저 이 같은 갑론을박 속에서 국민은 불안에 떨게 된다. 무서움과 공포 속에서 살게 된다. 산다는 것이 도무지 즐겁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그 즐거움을 찾자고 젊은이들은 통기타에 청바지를 끼어입고, 산과 바다로 향한다. 잘 살고 좋아서 그런 것 아니다. 숨막혀 질식할 것 같은 현실도피의 수단일 뿐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이기적이 되고 인심은 각박해지기만 한다. 누구 하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생각해 보려 하지 않고 우선 좋고, 우선 편하고, 우선 안일한 것만을 찾는 종말적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리의 몸이 옥죄어 옴을 느낀다. 참으로 고통의 깊은 밤 속에 갇혀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예레미야 애가 시인처럼 “하나님! 이 모든 고통이 무엇에서 연유한 것입니까?” 하고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는 이 고통의 밤에 앉아 우리의 시선을 신실하신 하나님께 돌려야 하겠다. 시인처럼 좌절하지도 말고 절망하지도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 가정이 겪는 고통을 통해, 우리 학생들이 겪는 고난을 통해, 우리 농촌과 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통해, 우리 교회가 겪는 아픔을 통해 우리 역사의 죄악이 속죄되고 있는 것이라면 예수님처럼 그 고통을, 그 고난을, 그 어려움을, 그 아픔을 견디어 이겨내자! 그것은 거룩한 고통이며, 그것은 숭고한 고난이며, 그것은 새 역사를 여는 아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 백성을 영원히 잊으실 수 없을 것이며, 고난 속에 있는 우리를 오래 버려두시지 않으실 것을 확신하자! 시인처럼 고통의 밤에, 그 어둠을 뚫고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힘을 주실 것을 기도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