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의 기도
[마태복음 6장 5-13절]
이기영 목사
[1]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자리, 기도의 서막
첫 페이지는 유한한 인간이 삶의 가장 중대하고 깊은 순간에 마주하는 종교적 실존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더 이상 다른 길이 없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진정 어린 기도를 시작한다. 키에르케고르가 설파했듯, 기도는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후이자 최고의 종교 행위다. 이 장은 주님 앞에서 자신의 하찮음을 절절히 느끼게 해달라는 고백으로 문을 연다. 그러나 그 하찮음은 절망으로 귀결되지 않고, 도리어 주님의 크고 선하심을 더욱 강하게 느끼는 통로가 된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신비로운 자리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다.
[2] 기도의 방향이 완전히 뒤집히는 역설
두 번째 페이지는 인간이 가진 이기적 본성의 방향이 기도를 통해 어떻게 완전히 뒤집히는가를 추적한다. 우리는 본래 위로받고, 이해받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철저한 수혜 중심의 존재다. 그러나 성 프란시스코의 기도는 미움과 상처와 분열이 가득한 땅을 향해 거꾸로 사랑과 용서와 일치를 심는 방향성의 일대 전환을 선포한다.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달라는 간구는 자기를 온전히 내어줌으로써 영생을 얻는다는 거룩한 역설을 담고 있다. 기도는 받는 자의 탐욕에서 주는 자의 평화로 나아가는 영적 혁명이다.
[3] 주기도문,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영적 청사진
세 번째 페이지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단순한 읊조림이 아닌,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영적 청사진임을 보여준다. 주기도문은 지상의 세계가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를 명확하게 선언하는 기틀이다. 하늘에 계신 신의 거룩한 뜻이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비루하고 거친 현실 속에 고스란히 구현되도록 설계된 영적 뼈대와 같다. 하늘의 가치가 땅의 한복판에 기둥을 세우고 안착하는 장엄한 우주적 소통 구조가 바로 주기도문의 본질이다.
[4] 지상명제가 된 지상으로의 강림
네 번째 페이지는 하나님 나라가 저 멀리 있는 추상적 공간이 아니라 지상으로 내려온 현실임을 선포한다. 성경이 말하는 영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랑과 눈에 보이는 이웃 사랑의 완벽한 상관관계로 완성된다. 보이는 형제와 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불가능하다. 기도는 마르틴 부버가 통찰했듯 대상을 물질화하는 ‘나와 그것’의 관계를 넘어, 인격적으로 대면하는 ‘나와 너’의 거룩한 만남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사랑을 통해 비로소 지상에 임한다.
[5] 물질을 품는 영성, 일용할 양식의 무게
다섯 번째 페이지는 기독교의 참된 영성이 물질적인 현실이나 세상의 고통을 결코 초연하게 외면하지 않음을 역설한다. 주기도문이 물질의 핵심인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는 사실은 교회가 영적이고 신비한 영역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됨을 시사한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기아선상에 있고 수많은 동포가 굶주림으로 신음하는 현실 속에서, 일용할 양식을 고루 나누는 것은 가장 치열하고 구체적인 지상명제다. 굶주린 자의 배를 채우는 물질적 과제야말로 참된 신앙의 척도다.
[6] 파괴된 세상을 버텨내는 양대 축
여섯 번째 페이지는 죄악과 무지로 가득하여 파괴된 세상 속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붙잡아야 할 두 가지 영적 기둥을 제시한다. 첫 번째 축은 관계적 회복을 뜻하는 용서다. 이는 이념과 종족을 넘어 원수까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품어내는 최고의 연대다. 두 번째 축은 개인적 보호를 의미하는 시험과 악으로부터의 방어다. 끝없는 인간의 탐욕과 예고 없이 엄습하는 세상의 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신의 도우심을 구하는 영적 방어막이다.
[7] 주기도문 마스터 매트릭스
일곱 번째 페이지는 주기도문이 내포한 전방위적이고 우주적인 선언을 하나의 거대한 매트릭스 표로 도식화한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영역인 영적 차원(거룩한 이름, 악으로부터의 구원, 영원한 권세와 영광의 송영)과 인간의 영역인 물질 및 현실 차원(뜻이 땅에 이루어짐, 일용할 양식, 용서)을 완벽하게 가로지른다. 영적인 신비와 물질적인 일상이 직조기처럼 촘촘하게 얽혀 우주 전체의 질서를 바로잡는 전방위적 기도의 대강령이 이 매트릭스 안에 들어있다.
[8] 소란을 거두고 마주하는 침묵의 벗
여덟 번째 페이지는 위선적인 태도와 아무 의미 없이 중언부언하는 소란을 넘어 기도의 참된 방식인 내면의 비움을 가르친다. 마음이 들뜨고 소란스러우면 신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없다. 자연의 나무와 풀, 풀잎과 태양, 밤하늘의 별들이 잠잠히 침묵 중에 자라고 움직이듯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침묵의 벗이시다. 스스로를 가난하고 무력한 자로 인정하며 내면을 온전하게 비워낼 때, 비로소 침묵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현존이 온전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9] 빛을 품은 흙, 겸손의 영적 생태학
아홉 번째 페이지는 겸손이라는 단어가 지닌 위대한 대지의 속성을 생태학적 시각으로 예찬한다. 안토니 블룸의 고찰대로 겸손(Humilitas)의 어원은 가장 낮은 곳에 깔린 땅(Humus)에서 비롯되었다. 땅은 세상의 온갖 오물과 비극, 병고와 절망을 군말 없이 다 받아들인다. 그러나 대지는 하늘을 향해 열려 있기에 은총의 비와 빛을 흡수하여 그 썩은 곳에서 도리어 생명의 싹을 밀어 올린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대지의 포용성이야말로 예수가 보여준 자기 비움의 실체다.
[10] 삶과 분리된 종교적 타성의 고발
열번째 페이지는 일상의 삶과 완전히 유리되어 공허하게 겉도는 종교 행위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아무리 산속에서 밤을 새워 철야하고 며칠 동안 금식하며 기도할지라도, 일상의 삶 속에서 신의 정의와 사랑, 상식에 부합하는 실천이 없다면 그 기도는 거짓에 불과하다. 자신의 언행심사를 철저하게 점검하고 뉘우치지 않는 종교성은 언제든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자 타성적인 위선으로 전락하고 만다. 기도와 삶은 결코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
[11] 광야의 성자와 도심의 구두수선공
열한 번째 페이지는 도심의 소란함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의 영성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안토니 수도사의 일화를 통해 대조한다. 광야의 성자 안토니는 인적 없는 거친 곳에서 극한의 금식과 철야에 매진했으나, 하늘은 그의 선행이 도심의 구두수선공보다 못하다고 선언한다. 수선공은 아침 일찍 짧은 기도를 드린 후, 온종일 이웃의 구두를 고치는 일상에 최선을 다하며 겸손하게 살았다. 하나님의 시선에서 성자란 특별한 종교인이 아니라, 일상의 대화와 노동 속에서 신실하게 기도를 살아내는 평범한 이웃이다.
[12] 코람 데오, 호흡이 된 일상의 영성
열두 번째 페이지는 라틴어 ‘코람 데오(Coram Deo)’의 개념을 통해 기도가 일상의 호흡으로 안착해야 함을 설명한다. 코람 데오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엄숙한 뜻을 지니고 있다. 진리와 사랑의 신과 대화하는 기도를 인간의 숨쉬는 호흡에 비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터에서나 가정에서나 세상의 모든 자잘한 일을 처리할 때 마치 신의 면전에서 하듯 정직하고 겸손하게 행할 때, 비로소 인간의 삶과 기도는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살아있는 증거로 완성된다.
[13] 겟세마네와 십자가, 삶과 기도의 일치
열세 번째 페이지는 삶과 기도가 완벽하게 일치했던 궁극의 모델로 예수의 생애를 조명한다. 인간 예수의 기도는 언제나 군더더기 없이 명료했다. 하강의 자리인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의 쓴 잔을 피하고 싶어 하던 유한한 실존의 고뇌를 겪으면서도, 그는 결국 자신의 뜻을 완전히 꺾어 대지(Humus)에 복종시키고 하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겼다. 그리고 처절한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찌르는 원수들을 용서하고 제자들을 위해 중보함으로써, 자신의 삶 전체로 기도를 완벽하게 증명하셨다.
[14] 눈을 뜬 채 드리는 일상의 기도
열네 번째 페이지는 우리가 눈을 감고 드리는 기도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세상 속에서 눈을 뜨고 살아가기 위함임을 선포한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이 마음의 초점을 흐리지 않고 삶을 밀고 나가기 위해 눈을 감고 다짐하지만, 기도의 진짜 종착지는 우리가 발을 디딘 일상이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고립된 상아탑 안의 묵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이라는 거칠고 단단한 땅(Humus)의 한복판에 하늘의 평화와 사랑의 씨앗을 심는 가장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의 방식이다.
[15]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결말
마지막 페이지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대전제이자 결론을 장엄하게 장식한다. 기도의 위대한 주제는 온 인류가 날마다 먹을 물질적 양식의 공평한 분배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는 진정한 평화와 화평이다. 나아가 이기적인 죄의 유혹과 세상에 가득한 모든 악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과 구원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아버지께 있음을 찬양하며, 하늘의 뜻이 우리가 사는 이 땅 위에 온전하게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눈 뜬 기도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본 이미지 묵상 이면에 흐르는 깊이 있는 신학적 논지와 키에르케고르, 안토니 블룸의 주석이 담긴 설교 전문을 읽으시려면, [텍스트로 읽는 설교] 오늘, 우리의 기도(마 6:5-13) 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