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7:1-7] 축소 원리와 고백 신앙 – 1986년 2월 1일, 김상근 목사

축소 원리와 고백 신앙

사사기 7장 1-7절 / 1986년 2월 1일 / 낙산교회


[회상 노트]

교단을 양적으로 성장시키라는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도 성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교회 성장이 교회의 존재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교회가 그 시대에서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을 다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역사적 책임과 교회의 성장을 함께 가지고 갈 것인가?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어느 쪽에 역점을 둘 것이냐 하는 것은 소명감과 결단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책임을 감당하는 것을 우선하겠다고 결단하고 있었다.

기장이 무엇이어야 하느냐? 캐나다에 계셨던 장공(長空) 김재준(金在俊) 목사님이 나의 총무 취임 초에 주신 편지에서 “기장은 한국 교회라는 화살의 촉”이라 하셨다. 스승의 가르치심에 동의했다. 기장을 한국 교회라는 화살의 촉이 되게 하리라. 나의 기도였고, 정책의 기조로 삼았다. 나는 교단을 역사의 현장에 서게 하고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물론 우리 교단은 대체로 이미 그리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각 지 교회들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총회 차원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교회 성장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심지어 내가 떠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수도교회까지도 보수화로 급속히 내닫고 있는 듯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은 매우 안타까운 것들이었다. 당시 정점을 향해 가고 있던 KBS TV 시청료 거부운동 참여조차 제동이 걸렸다고 했다. 시청 거부 스티커를 나누어 주는 일조차 하지 못할 만큼 너무 빨리 보수화의 길, 안주의 길을 간다는 것이었다. 내 마음은 급했다. 이리 되어서는 안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반인들은 한국 교회에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는 한국 교회, 정의를 증언하지 못하는 한국 교회, 오히려 불의한 권력에 빌붙어 안주하는 한국 교회에 실망과 증오를 가지게 되었던 것인가. 특정 교회에 불을 지르겠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아 다녔다. 훌쩍 커진 교회가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의 노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일이 있게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 교회가 서둘러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고백적인 집단은 그 고백을 어떻게 보존하고, 나아가서는 더욱 예민하게 하느냐 하는 문제에 예외 없이 부딪히게 된다. 예수의 집단도 그랬다. 열두 제자가 똘똘 뭉쳐 강력한 고백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그 12명이 점점 늘어난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폭발적인 확장을 기하게 된다. 하루에도 수천 명씩 그 집단에 들어온다.

그러한 확대 현실과 함께 곧장 제기되는 문제가 복음을 어떻게 원복음대로 보존시키며 확대된 집단을 여하히 고백적 집단이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맨 처음 씌어진 성서인 갈라디아서는 확대된 집단의 본연성을 지키기 위하여 어느새 상당한 긴장 상태를 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우리 자신이나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보다 다른 것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 그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1:8-9).

이러한 상황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반복되어 왔다. 활발한 고백 운동도 고백체의 확장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그러나 본연성을 왜소화한다. 여기에 고백 집단의 고뇌가 있다. 고백 운동은 불가피하게 본연성의 상실이라는 원심력을 갖게 된다는, 이 불행한 경험적 원리가 고백 집단의 고뇌라는 말이다.

결국 우리는 소위 ‘개혁주의 교회’를 창출해 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본연성이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그 몸의 비대와 함께 퇴락하여 가고, 거기서 다시 고백을 찾아가는 개혁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개혁주의가 생기게 된 것이다. ‘고백 배태 → 활발한 고백 운동 → 그 운동에의 호응에 의한 고백체의 비대 → 본연성의 왜소화 → 고백의 새로운 배태’라는 한 살아 있는 도식을 우리는 발견한다.

이 불행한 원리의 톱니바퀴에 끼어 들어가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있었다고 본다. 고백체의 비대화를 근원적으로 배제하기 위하여 세상을 떠나 고백 운동의 범위를 스스로 제약한 경우도 있었다. 일정 한계 속에서만 그 운동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기독교 초기의 ‘쿰란 종파’ 같은 것은 그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경우는 거의 비슷한 성격이지만 고백 운동을 아예 자기 한 인격 속으로 실존화하여 자신의 종교적 내면으로 침전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을 우리는 ‘에세네파’에서 보게 된다.

한국 교회의 경우를 보자. 한국 교회 초기, 그러니까 신학이랄 것도 없고 전문적인 조직이랄 것도 없었던 시기에 우리 교회는 생명력과 고백 신앙이 있었다. 거기에 수많은 가시적 힘이 지속적으로 첨가되어 왔다. 그에 정비례하여 생명력과 고백 신앙은 현저하게 위축되어 오고 있다.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비대화가 가져온 결과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비대화를 스스로 버릴 수도 없고 버려지지도 않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오히려 몇 천 교회 운동이니 몇 백만 신도 운동이니 하는 것을 교단마다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다.

기장 교단도 마찬가지다. 고백 운동은 왜소화되어 가고 있는데도 우리 집단을 계속적으로 늘려 가고 교인수를 배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전도와 교세 확장이라는 것이 오늘 한국 교회에서는 일종의 구조악이 되어 버린 느낌조차 든다. 이것이 우리의 고뇌의 현장이며 딜레마다.

우리 낙산교회도 아마 고백 신앙을 더욱 날카롭게 하는 것과 교인을 늘리는 일을 동시에 추구하고자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늘어나고 있는 우리가 과연 누구냐 하는 데 대한 바른 대답이다.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고백 신앙과 본연성을 동시에 확대해 갈 수는 없을까?

판관기를 신명기 역사가가 편집하기 시작하기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간 기원전 586년의 비극적 사건 후였다. 신명기 역사가는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그들 비극의 이유를 깨우치고자 해서 편집을 시도했던 것이다.

편집자가 지적하고 있었던 것은 외부 침략 세력이 강해서 이스라엘이 망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었고 고백 신앙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기드온에 대한 기록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내용이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압박 아래 있었을 때 그 압박을 견디다 못하여 하나님께 울부짖는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기드온을 택하여 이스라엘 구원의 대사명을 주신다. 우여곡절 끝에 기드온은 결국 이 해방과 구속의 사업에 나서게 된다. 그의 군대는 원래 삼만 이천 명이었다. 그 군대를 하나님은 줄이도록 명하신다. 처음 이만 이천 명을 줄이고 다시 더 줄여 결국 삼백 명만을 남긴다. 그 밖의 군인들은 군인이지만 자기 족속으로 귀환시켜 버린 것이다.

원래 군대의 수란 어차피 다다익선이다. 그러나 줄이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의 논리는 결국 미디안을 이기게 되는 때 “제 힘으로 승전했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제 힘으로 승전했다고 하는 거기에는 이스라엘이 회복해야 할 고백 신앙의 자리가 없다. 숫자가 커지면 커질수록, 승전을 하면 할수록 그렇게 되어 버린다. ‘고백 운동→비대화→본연성의 상실’이라는 현상 바로 그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본연성을 회복하시기 위하여 ‘축소의 원리’를 적용하시는 것을 본다. 본연성의 회복은 축소의 원리에서 찾아진다. 삼백명의 숫자로 막강한 미디안을 이긴 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줄 것을 간청한다. 그러나 기드온은 “내가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니요, 내 자손이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닙니다. 그대들을 다스리실 분은 야훼시오.”(8:23)라고 그 청을 거절한다. 이것은 삼백 명으로 미디안의 대군을 이긴 기드온의 고백이다. 축소의 원리를 통하여 고백 신앙을 다시 일으키게 된 것이다.

나는 오늘에도 축소 원리가 고백 신앙 회복의 길이라고 믿는다. 오늘의 축소 원리는 무엇인가? 이것 없이는 쇠퇴해 가는 고백 신앙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 원리를 어떻게 현실화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운동의 주변에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칩거했던 쿰란 종파나 종교적 내면에로의 침전을 시도했던 에세네 운동은 결국 고백 신앙을 다시 활력으로 끌어내 오지 못하였다. 이 두 경우 모두 절세(絶世)주의다. 고백 운동이 결과적으로 본연성을 왜소화시킨다고 하여 운동의 장을 포기하거나 그것을 종교적 내 면으로 침전시킨다면 그것은 이미 운동이 아니다.

실제로 예수 집단의 고백 운동은 그것이 비록 중세에 있었던 종교개혁을 비롯한 수많은 개혁의 칼에 의해 쪼개지고 상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비비고 부대끼면서 나온 운동의 줄기에 의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개혁의 상처가 역연한 그 운동 줄기가 예수 집단의 본류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은둔적이거나 내면적 침전화를 시도했던 절세주의적 운동 줄기는 본류를 이루지 못하였다. 비대화의 위협이 있을지라도 운동의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렇다고하여 비대화에로 치닫고 있는 기성의 기드온 삼만 이천 명 군대의 일원이 된다는 것도 바람직한 길이 아니지 않느냐라는 반론의 여지도 충분히 있다.

여기에 우리가 당면한 진퇴유곡의 현실이 있다. 이것은 교단을 섬기고 있는 나의 고뇌이면서 동시에 한 고백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여러분의 질문일 것이다. 아무리 별 소리를 한다 해도 낙산교회도 한국 기독교 총수에다가 지금 하나를 더하고 있는 것이고 천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는 한국 교회의 비만증에 살을 더 붙이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해결의 길은 삼백 명의 고백의 핵을 삼만 이천 명 가운데 현존시키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백 명의 핵을 뚜렷하게 만들어 내지 않고서는 “야훼가 역사의 주”라는 신앙고백이 나올 수 없다. “우리를 다스리실 분은 야훼”시라는 고백 운동이 일어날 수가 없다.

나는 한국 교회는 물론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 안에 축소 원리에 의한 삼백 명 핵을 현존시키는 것이 화급한 과제라고 본다. 많은 것 속에 묻혀 있는 삼백 명을, 비만한 덩어리 속에 매몰되어 있는 삼백 명을 축소 원리를 통하여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한국 교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선교 전선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전체에 고백이 생길 수 있고 생명력이 살아날 수 있다. 자라면서도 동시에 본연성과 고백 신앙을 확대시키고 예민하게 할수 있다.

나는 낙산교회를 축소화 원리에 의한 삼백 명의 핵의 하나라고 감히 믿고 또 그래야 된다고 주장한다. 바로 그 핵을 통하여 한국 교회와 그가 속하는 교단에 고백 운동이 소생하게 될 것을 믿는다. 이 같은 전망과 사명 속에서 새로운 고백 운동의 대오에 서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