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 깊이 읽기] 예찬(禮讚)의 말씀

예찬(禮讚)의 말씀


☞ 본 글은 『김재준 전집』에 처음 등장하는 글로 1926년 ‘재일본 조선기독교청년회(YMCA)’의 잡지인 「使命」에 김재준이 기고한 글이다. 아쉽게도 현재까지 「使命」잡지의 글은 찾지 못했지만, 이 글은 1971년에 발행된 『장공 김재준 저작전집』에 실려 있으며, 1992년에 발행된 『김재준 전집』에도 실려 있다. 두 자료를 비교해서 정리한 글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목 : 예찬의 말씀]

  • 제목의 의미 : ‘예찬(禮讚)’은 훌륭하고 거룩한 덕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칭송하고 찬양한다는 뜻이다. 즉, 이 제목은 세속적인 부귀영화와 명예를 모두 버리고 철저한 무소유, 겸손, 그리고 만물을 향한 사랑을 실천한 성 프란치스코의 숭고한 생애를 기리며 바치는 헌사(獻辭)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시대적 배경 : 이 글이 쓰인 1926년은 시대적으로 거룩한 가난(성빈)의 정신이 사라지고, 세상 모든 것이 재물(맘몬) 앞에 무릎을 꿇은 극단적인 물질만능주의 시대였다. 화자는 당시 사회를 사람과 사람 사이가 기계처럼 차가워지고 위선과 갈등이 난무하는 ‘말세’이자 ‘영혼의 폐허’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절망적이고 삭막한 현실 속에서 참된 진리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뼈아픈 탄식이 이 글을 쓰게 된 핵심 배경이다.
  • 결론적으로 ‘예찬의 말씀’이라는 제목은 단순히 과거의 위대한 성인을 추억하거나 개인적인 종교심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선다. 이는 타락하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이, 700여 년 전 가장 낮고 거룩한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었던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사모함으로써 당시의 어두운 세상을 일깨우고 잃어버린 참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했던 간절한 시대적 외침이자 신앙적 고백이다.


[내용 분석]

“아씨시의 성자여, 볼딩구라 거친 초방(草房)의 한 구석에서 제단도 사제도 없이 주(主)의 성찬을 지키시고 깊은 침묵가운데 저 세상으로 옮기신 성자여, 당신이 가신 지 700유여년 움부리아의 봄풀은 해마다 푸릅니다. 그러나 흐르고 흐르는 큰 물결의 한 구비인 이 세상은 너무 변하지 않았습니까.”

  • 이 문장은 1926년에 쓰인 김재준의 글 「예찬의 말씀」의 도입부로, 성 프란치스코를 향한 깊은 존경과 당시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 “아씨시의 성자여” : 이탈리아 아시시 출신의 성 프란치스코를 부르는 말이다.
  • “볼딩구라 거친 초방(草房)의 한 구석에서” : ‘볼딩구라’는 성 프란치스코가 수도회 공동체를 처음 시작하고 마지막 숨을 거둔 성지인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의 과거 한글 음역 표현이다. ‘초방(草房)’은 초가집이나 띠집을 뜻하며, 성인의 극단적인 청빈과 소박한 삶의 마지막 모습을 나타낸다.
  • “제단도 사제도 없이 주(主)의 성찬을 지키시고 깊은 침묵가운데 저 세상으로 옮기신 성자여” : 화려한 종교적 의식이나 권위주의 없이, 가장 낮고 조용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 성 프란치스코의 순수하고 겸손한 신앙을 묘사한다.
  • “당신이 가신 지 700유여년 움부리아의 봄풀은 해마다 푸릅니다.” : ‘움부리아’는 성 프란치스코의 고향이자 영성의 무대인 이탈리아 중부의 행정 구역인 움브리아주(Umbria)를 의미한다. 성인이 세상을 떠난 지 700여 년이 지났어도, 그곳의 자연은 변함없이 아름다운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그러나 흐르고 흐르는 큰 물결의 한 구비인 이 세상은 너무 변하지 않았습니까.” : 변함없이 푸른 자연의 섭리나 성인의 거룩한 뜻과는 대비되게, 인간 세상은 너무나 부정적으로 변질되었다는 탄식이다. 이어지는 본문의 내용처럼, 거룩한 가난인 성빈(聖貧)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맘몬(재물) 앞에 엎드리며, 사람과 사람 사이가 기계처럼 차갑게 변해버린 삭막한 현실을 개탄하는 것이다.
  • 결론적으로 이 문장은 가장 낮고 청빈한 모습으로 십자가의 길을 걷다 떠난 성 프란치스코의 고결한 영성과, 700년이 흐른 뒤 재물과 이기심에 물들어 본질을 잃어버린 차가운 현대 사회를 대비하며 안타까움을 고백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자여, 당신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主)의 가슴에 안기셨습니다. 거만(巨萬)의 부(富)를 가질 수도 있었으며 영예로운 무사(武士)도 될 수 있었습니다. 청춘의 붉은 노래 속에서 향연(饗宴)의 왕이라고 젊은이의 찬탄(讚嘆)을 받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막히게 맑은 움부리아 창공에 흰 구름이 흐르고 무너진 아씨시 성(城) 틈에 묵은 풀이 푸른 봄날, 교외(郊外)로 거니는 병여(病餘)의 당신 가슴 속에는 하염없는 공허가 느끼어졌습니다.”

  • 이 문장은 부유하고 화려한 청년 시절을 보내던 성 프란치스코가 세속적인 삶의 허무함을 깨닫고 영적인 회심을 경험하게 된 극적인 전환점을 묘사하고 있다.
  • “성자여, 당신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主)의 가슴에 안기셨습니다.” : 성 프란치스코가 세속적인 욕망과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오직 신앙만을 따르는 삶을 선택했음을 의미한다.
  • “거만(巨萬)의 부(富)를 가질 수도 있었으며 영예로운 무사(武士)도 될 수 있었습니다. 청춘의 붉은 노래 속에서 향연(饗宴)의 왕이라고 젊은이의 찬탄(讚嘆)을 받던 때도 있었습니다.” : 회심하기 전 프란치스코의 세속적인 과거 삶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그는 실제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막대한 재산을 누릴 수 있었고, 기사(무사)가 되어 명예를 좇으려 했으며, 젊은 시절에는 화려한 잔치를 주도하며 사람들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던 인물이었다.
  • “그러나 기막히게 맑은 움부리아 창공에 흰 구름이 흐르고 무너진 아씨시 성(城) 틈에 묵은 풀이 푸른 봄날, 교외(郊外)로 거니는 병여(病餘)의 당신 가슴 속에는 하염없는 공허가 느끼어졌습니다.” : 화려했던 삶 이면에 찾아온 깊은 영적 위기와 회심의 순간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움부리아’와 ‘아씨시’는 성 프란치스코의 고향이자 영성이 싹튼 무대이다. 여기서 ‘병여(病餘)’란 ‘병을 앓고 난 뒤’를 뜻하는데, 질병이라는 육체적 고난을 겪고 난 후 맑고 푸른 자연 풍경 속을 거닐면서 그동안 추구해 온 세속적인 성공과 쾌락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뼈저린 공허함을 느끼게 된 상황을 나타낸다.
  • 즉, 이 문장은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와 쾌락을 누릴 수 있었던 한 청년이 고난을 겪은 후 세속적 삶의 허무함을 깊이 깨닫고, 비로소 참된 신앙과 청빈의 길(성자의 길)로 나아가게 된 내면적 변화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다.


“헛되고 헛되어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 사람이 수고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해가 뜨고 해가 지나 같은 곳을 허덕이며, 바람은 남으로 갔다 또 북으로 오되 같은 곳을 돌고 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
“아, 나의 과거도 헛된 것뿐이다. 생각하면 하염없는 일이다.”

  • 이 문장은 부와 명예, 젊음의 쾌락 등 세속적인 삶을 누리던 성 프란치스코가 깊은 영적 허무를 느끼고 참된 신앙의 길로 돌아서게 되는 결정적인 회심의 순간을 보여주는 내면의 독백이다.
  • “헛되고 헛되어 모든 것이 헛되도다. ~ 해 아래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 : 세상에서의 온갖 수고와 노력,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연의 순환조차도 궁극적인 진리 앞에서는 결국 덧없고 무의미할 뿐이라는 근원적인 허무함을 표현한 것이다.
  • “아, 나의 과거도 헛된 것뿐이다. 생각하면 하염없는 일이다.” : 이러한 절대적인 허무함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자신이 과거에 그토록 좇았던 부유함과 영예, 젊음의 향연 역시 아무런 가치가 없는 빈껍데기였음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탄식하는 모습이다.
  • 배경적 의미 : 질병을 앓고 난 뒤 맑은 자연 풍경 속에서 세속적 삶에 대한 하염없는 공허를 느낀 성 프란치스코는, 이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 과거의 모든 것이 헛됨을 절감한 그는 이 고백 직후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조그마한 암자의 성상 앞에 엎드리게 된다.
  • 결국 이 문장은 덧없는 세상의 허무를 깨달은 그가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실재'임을 고백하며, 평생을 머무는 곳 없이 떠도는(일소부주, 一所不住) 청빈한 순례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 극적인 내면적 배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리하여 당신은 모든 것을 버리고 조그마한 암자(庵子) 속에 모신 성상(聖像) 앞에 꿇어 엎디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실재(實在)이시며, 내 생명을 받으실 주인이시라고. 이래(以來) 당신은 성루(聖淚) 머금은 두 눈으로 만상(萬相)을 보시며 일소부주(一所不住)의 순례자로 세상을 마치셨습니다.

  • 이 문장은 세속적인 삶의 헛됨을 깊이 깨달은 성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평생을 철저한 순례자이자 무소유의 수도자로 살아가게 된 회심 이후의 삶을 요약하여 묘사하고 있다.
  • “이리하여 당신은 모든 것을 버리고 조그마한 암자(庵子) 속에 모신 성상(聖像) 앞에 꿇어 엎디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실재(實在)이시며, 내 생명을 받으실 주인이시라고.” : 앞서 세상 만사가 헛됨을 절감한 프란치스코가 부와 명예 등 세상을 향한 모든 미련을 버리고 신앙에 완전히 귀의하는 모습이다. 세상의 것들은 변하고 사라지지만, 오직 그리스도만이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실재)임을 깨닫고 자신의 삶 전체를 바치기로 다짐한 것이다.
  • “이래(以來) 당신은 성루(聖淚) 머금은 두 눈으로 만상(萬相)을 보시며” : ‘성루(聖淚)’는 ‘거룩한 눈물’을 뜻하며,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핵심 키워드이다. 그는 만년에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렀는데, 의사들이 눈병이 나으려면 눈물을 그만 흘려야 한다고 만류했음에도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흘리는 눈물을 어찌 멈출 수 있겠는가”라며 계속 눈물을 흘려 결국 눈이 멀게 되었다. 즉, 이 구절은 그가 세상 만물(만상)을 바라볼 때마다 항상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지극한 사랑으로 살았음을 보여준다.
  • “일소부주(一所不住)의 순례자로 세상을 마치셨습니다.” : ‘일소부주’란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소유를 버린 프란치스코가 안락한 거처를 마련하여 안주하지 않고, 평생을 이곳저곳 떠돌며 오직 복음을 전하는 청빈한 나그네(순례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했음을 의미한다.
  • 결과적으로 이 문장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절대적인 헌신,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뜨거운 영성(성루), 그리고 무소유의 방랑(일소부주)으로 완성된 성 프란치스코의 숭고한 생애를 압축적으로 기리고 찬양하는 내용이다.


성자여! 당신은 사랑으로 만상(萬相)을 포옹하셨습니다. “형제인 태양이여, 자매인 달이여”하고, 아름다운 피조물 찬탄(讚嘆)의 노래를 부르셨으며, 숲속에 새를 모으시고 주(主)의 사랑을 말씀하시며, 이리(狼)를 찾아가서 순순(淳淳)히 가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안(慈顔)을 대(對)할 때 자연(自然)의 모든 것은 기뻐 뛰놀았으며 죄(罪) 많은 사람은 가슴에 얼음이 풀리었습니다.

  • 이 문장은 성 프란치스코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 만물까지도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깊이 사랑하고 교감했던 그의 범우주적인 사랑과 온화한 성품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 “성자여! 당신은 사랑으로 만상(萬相)을 포옹하셨습니다. “형제인 태양이여, 자매인 달이여”하고, 아름다운 피조물 찬탄(讚嘆)의 노래를 부르셨으며” : 성 프란치스코가 해와 달 같은 자연 만물을 한낱 사물이 아닌 ‘형제’, ‘자매’로 부르며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의 한 가족으로 여기고 깊이 사랑했음을 보여준다.
  • “숲속에 새를 모으시고 주(主)의 사랑을 말씀하시며, 이리(狼)를 찾아가서 순순(淳淳)히 가르치셨습니다.” : 새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설교하고 사나운 이리를 찾아가 부드럽게 타일렀다는 일화를 통해, 그의 사랑이 말 못 하는 짐승들에게까지 미쳤으며 만물과 영적으로 깊이 교감했음을 나타낸다.
  • “당신의 자안(慈顔)을 대(對)할 때 자연(自然)의 모든 것은 기뻐 뛰놀았으며 죄(罪) 많은 사람은 가슴에 얼음이 풀리었습니다.” : 여기서 ‘자안(慈顔)’은 자애로운 얼굴을 뜻한다. 성 프란치스코의 그 온화하고 자비로운 얼굴 앞에서는 자연 만물이 기뻐했고, 죄지은 자들의 얼어붙은 차가운 마음조차 따뜻하게 녹아내려 위로를 얻었음을 묘사하고 있다.
  • 결과적으로 이 문장은 모든 차별과 경계를 넘어 자연과 동물, 그리고 죄인에게까지 뻗어 나간 성 프란치스코의 무한하고 자애로운 사랑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성자여! 당신은 주(主)의 십자가를 생각하시고 대로(大路)에서 통곡하셨으며 머리에 재를 뿌리시고 참회를 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실 때 “오, 주여!” 하는 첫 말씀에 감(感)이 극(極)하셔서 더 많은 말씀 못하시고 눈물 흘리셨습니다.

  • 이 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깊이 동참하며 끊임없이 참회했던 성 프란치스코의 뜨거운 신앙심과 눈물의 영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 “당신은 주(主)의 십자가를 생각하시고 대로(大路)에서 통곡하셨으며 머리에 재를 뿌리시고 참회를 끊지 않으셨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겪은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대로)에서도 소리 내어 울 만큼 깊이 슬퍼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머리에 재를 뿌리는’ 행위는 기독교 전통에서 깊은 회개와 슬픔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그가 철저히 스스로를 낮추고 평생토록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참회하는 겸손한 삶을 살았음을 나타낸다.
  • “기도하실 때 “오, 주여!” 하는 첫 말씀에 감(感)이 극(極)하셔서 더 많은 말씀 못하시고 눈물 흘리셨습니다” : 기도를 시작하며 하느님을 부르는 그 짧은 순간에도 벅차오르는 영적 감동을 이기지 못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는 뜻이다. 이는 앞선 단락에서 설명된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상징하는 핵심 키워드인 ‘성루(거룩한 눈물)’와 깊이 연결되는 부분으로, 하느님을 향한 그의 절대적인 사랑과 깊은 영적 교감을 묘사하고 있다.
  • 결과적으로 이 문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자신의 고통으로 깊이 체휼하는 영성과, 하느님의 크신 사랑 앞에 압도되어 평생 회개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성 프란치스코의 숭고한 내면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성자여, 당신은 가장 작은 이의 형제가 되셨습니다. 걸인과 나병자와 빈자(貧者)와 죄인의 가장 살뜰한 형제이셨습니다. 당신은 갈의승대(褐衣繩帶)에 일장일표(一杖一瓢)로 표박(漂泊)하시면서도 가난한 형제의 양식을 빼앗는가 하여 늘 염려하셨습니다.

  • 이 문장은 스스로 가장 가난하고 낮은 자가 되어 소외된 이들을 섬겼던 성 프란치스코의 극단적인 청빈(淸貧)과 이타적인 사랑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 “성자여, 당신은 가장 작은 이의 형제가 되셨습니다. 걸인과 나병자와 빈자(貧者)와 죄인의 가장 살뜰한 형제이셨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소외되고 고통받는 계층인 걸인, 나병 환자, 가난한 자, 죄인들의 곁으로 다가가 스스로 낮아지며 그들의 다정하고 진실한 형제가 되어주었음을 의미한다.
  • “당신은 갈의승대(褐衣繩帶)에 일장일표(一杖一瓢)로 표박(漂泊)하시면서도”
    • ‘갈의승대’는 갈색의 거친 베옷(털옷)을 입고 새끼줄로 허리를 묶은 차림새로, 성 프란치스코와 그를 따르는 수도자들의 가장 청빈하고 소박한 모습을 상징한다.
    • ‘일장일표’는 지팡이 하나와 바가지 하나라는 뜻으로, 아무런 재물도 소유하지 않고 오직 복음을 위해 나서는 극단적인 무소유의 나그네 삶을 의미한다.
    • ‘표박’은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유랑을 뜻한다.
  • “가난한 형제의 양식을 빼앗는가 하여 늘 염려하셨습니다.” : 자신이 이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떠도는 혹독한 삶을 살면서도, 혹여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적은 몫 때문에 다른 가난한 이들의 먹을거리를 빼앗게 되는 것은 아닌지 늘 걱정할 만큼 깊은 이타심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 즉, 이 문장은 철저한 무소유와 방랑의 삶 속에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며, 세상에서 가장 낮고 가난한 자들과 온전히 하나가 된 성 프란치스코의 위대한 사랑과 청빈의 영성을 기리는 것이다.


성자여! 당신은 참으로 순진하셨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서 거짓을 찾을 수 있사오리까. 당신의 행실에서 꾸밈을 볼 수 있사오리까.

  • 이 문장은 성 프란치스코의 거짓 없고 가식 없는 순수한 내면과 진실한 삶의 태도를 깊이 찬양하는 내용이다.
  • “성자여! 당신은 참으로 순진하셨습니다.” : 여기서 ‘순진(純眞)’하다는 것은 세속적인 계산이나 이기심 없이 마음이 티 없이 맑고 깨끗함을 의미한다.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버리고 오직 복음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맑은 영혼을 간직했던 성 프란치스코의 본성을 기리는 것이다.
  • “당신의 마음속에서 거짓을 찾을 수 있사오리까. 당신의 행실에서 꾸밈을 볼 수 있사오리까.” : 질문의 형식을 빌려 긍정의 의미를 강조하는 설의법을 통해 그의 철저한 진실함을 묘사하고 있다. 남에게 돋보이기 위한 허영이나 가식 없이,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완벽하게 일치했던 그의 투명한 삶을 찬미하는 표현이다.
  • 결과적으로 이 문장은, 앞서 언급된 성 프란치스코의 철저한 무소유나 만물을 향한 이타적인 사랑이 종교적 허세나 인위적인 꾸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깊이 자리한 완전한 순수함과 진실함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임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성자여! 당신은 참으로 겸손하셨습니다. 당신은 종교개혁가나 예언가로서의 의식(意識)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오직 당신의 영(靈)을 응시하시고 당신의 몸을 편달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정적(靜寂) 속에는 영원한 활동이 품기어 있었으며 당신의 여윈 몸에는 그윽한 후광(後光)이 둘리어 있습니다. 당신의 고요한 기도와 함께 어두운 종교계에 새벽이 왔습니다.

  • 이 문장은 세상을 뒤집으려는 거창한 목적 대신 오직 자신의 영혼을 성찰하며 겸손하게 살아간 성 프란치스코의 태도와, 그 고요한 헌신이 오히려 타락한 종교계를 깨우는 거대한 개혁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역설적으로 찬양하는 내용이다.
  • “성자여! 당신은 참으로 겸손하셨습니다. 당신은 종교개혁가나 예언가로서의 의식(意識)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 성 프란치스코는 당시 부패한 교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스스로를 위대한 개혁가나 예언자로 내세우는 교만을 부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 “당신은 오직 당신의 영(靈)을 응시하시고 당신의 몸을 편달하셨습니다.” : 외부를 비판하거나 가르치려 하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철저한 금욕과 고행으로 자신의 몸을 엄격하게 다스리며(편달) 스스로의 신앙을 지키는 데에만 집중했음을 보여준다.
  • “그러나 당신의 정적(靜寂) 속에는 영원한 활동이 품기어 있었으며 당신의 여윈 몸에는 그윽한 후광(後光)이 둘리어 있습니다.” : 겉보기에는 고요하게 침묵하는 듯한 그의 삶(정적) 속에 세상을 바꾸는 강력하고 영원한 생명력(활동)이 내재해 있었으며, 가난과 고행으로 깡마른 육체에서 오히려 거룩한 빛(후광)이 빛나고 있음을 묘사한다.
  • “당신의 고요한 기도와 함께 어두운 종교계에 새벽이 왔습니다.” : 거창한 권력이나 투쟁이 아닌, 스스로를 낮추고 드린 그의 고요하고 순수한 기도가 타락하고 어두웠던 중세 종교계에 새로운 희망과 부흥(새벽)을 가져왔음을 찬미하는 부분이다.
  • 결과적으로 이 문장은, 스스로를 개혁가로 여기지 않았던 가장 낮고 고요한 자의 철저한 자기 성찰과 기도가 어둠 속에 있던 세상을 밝히는 진정한 빛이 되었음을 감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성자여! 그러나 당신의 자광편조(慈光遍照)하시는 거룩한 인격(人格) 속에는 아무도 손대지 못할 준엄(峻嚴)한 힘이 숨어 흐름을 봅니다.

  • 이 문장은 한없이 온화하고 자애로우면서도, 그 내면에는 세상의 어떤 유혹이나 타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성 프란치스코의 단호하고 엄격한 영적 권위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 “당신의 자광편조(慈光遍照)하시는 거룩한 인격(人格) 속에는” : ‘자광편조’는 한자 그대로 ‘자애로운 빛이 온 누리를 두루 비춘다’는 뜻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이 세상 만물에 가득히 퍼져나가는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한 단어로, 그의 끝없이 자비롭고 온화한 성품을 의미한다.
  • “아무도 손대지 못할 준엄(峻嚴)한 힘이 숨어 흐름을 봅니다” : 겉으로는 그지없이 따뜻하고 겸손해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부패한 세속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 매서운 신앙적 결단과 엄격함(준엄함)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묘사한다. 앞서 언급된 철저한 청빈의 실천과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는 고행 등, 오직 그리스도의 길만을 따랐던 그의 흔들림 없는 신앙적 태도가 바로 이 범접할 수 없는 ‘준엄한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 결과적으로 이 문장은 모든 것을 품어주는 부드러운 사랑(자애)과 진리 앞에서의 단호한 엄격함(준엄)이라는 역설적인 특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성 프란치스코의 위대한 인격을 기리는 대목이다.


성자여! 당신이 가신 후 700여 년, 세상에는 성빈(聖貧)을 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맘몬의 발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기계와 기계의 접촉같이 차갑게 되었습니다. 유혈(流血)과 다툼이 진리(眞理)가 되었습니다. 자비(慈悲)는 자기(自己) 죄악(罪惡)의 엄식물(掩飾物)이 되었으며 위선자(僞善者)의 피난처만 불었습니다. 나팔과 꽹과리 소리에 가두(街頭)는 소연(騷然)합니다. 영리(怜悧)한 조그만 요마(妖魔)가 지붕에서 지붕으로 원숭이같이 춤을 춥니다. 수만(數萬)의 발자국 소리는 망령(亡靈)의 영탄(詠嘆)과 함께 멸절(滅絶)로 흘러갑니다.

  • 이 문장은 성 프란치스코가 세상을 떠난 지 700여 년이 흐른 뒤, 성인의 숭고한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심으로 타락해 버린 비극적인 현대 사회의 현실을 뼈아프게 비판하며 개탄하는 내용이다.
  • “당신이 가신 후 700여 년 세상에는 성빈(聖貧)을 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맘몬의 발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 성 프란치스코가 목숨처럼 여겼던 거룩한 가난(성빈)의 영성은 자취를 감추고, 세상 모든 것이 재물과 탐욕을 상징하는 우상인 맘몬 앞에 굴복해버린 극단적인 배금주의(물질만능주의) 시대를 비판한다.
  •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기계와 기계의 접촉같이 차갑게 되었습니다. 유혈(流血)과 다툼이 진리(眞理)가 되었습니다.” : 따뜻한 사랑과 생명력을 잃고 인간관계가 기계처럼 삭막하고 비인간적으로 변해버린 현실을 지적한다. 나아가 평화가 아닌 피를 부르는 폭력과 약육강식의 갈등이 마치 세상의 지배적인 이치(진리)처럼 굳어졌음을 탄식한다.
  • “자비(慈悲)는 자기(自己) 죄악(罪惡)의 엄식물(掩飾物)이 되었으며 위선자(僞善者)의 피난처만 불었습니다.” : ‘엄식물(掩飾物)’이란 단점이나 본모습을 감추고 예쁘게 꾸미기 위해 사용하는 물건, 즉 허례허식이나 겉치레를 뜻하는 표현이다. 사람들이 베푸는 자비조차도 진실한 이타심이 아니라, 자신의 이기적인 죄악을 덮고 포장하기 위한 위선적인 방패막이로 전락했음을 예리하게 꼬집는 것이다.
  • “나팔과 꽹과리 소리에 가두(街頭)는 소연(騷然)합니다. 영리(怜悧)한 조그만 요마(妖魔)가 지붕에서 지붕으로 원숭이같이 춤을 춥니다.” : ‘소연(騷然)’은 시끄럽고 어수선하여 들끓는 모양을 의미한다. 거리는 무의미한 소음으로 가득하고, 얕은수를 부리는 교활하고 세속적인 가치들(요마)이 세상을 어지럽히며 날뛰는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을 비유적으로 묘사한다.
  • “수만(數萬)의 발자국 소리는 망령(亡靈)의 영탄(詠嘆)과 함께 멸절(滅絶)로 흘러갑니다.” : 참된 진리와 영성을 잃어버린 수많은 군중이 맹목적으로 무리를 지어, 결국 헛된 탄식 속에서 파멸과 죽음(멸절)을 향해 휩쓸려가고 있다는 깊은 절망감을 보여준다.
  • 결과적으로 이 문장은 생명과 사랑을 잃은 채 돈과 위선, 갈등과 혼란으로 얼룩져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고 있는 타락한 세상에 대한 짙은 절망을 고백하며, 상대적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순결한 삶과 영성을 더욱 애타게 그리워하는 내면적 배경을 담고 있다.


성자여, 당신이 세상(世上)에 계실 때 교회당 안에는 도박(賭博)과 고리대금(高利貸金)이 공개(公開)되었으며 승직(僧職)을 매매(買賣)하며 빛다른 여자(女子)가 방황(彷徨)하였다 합니다. 당신의 거룩한 눈으로 어찌 그 현상(現狀)을 참고 보셨습니까. 그러나 당신은 겸손하게 말없이 앉으셔서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나라를 나타내셨습니다.

  • 이 문장은 성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시대 종교계의 극심한 타락상을 조명하면서, 그 끔찍한 현실 앞에서도 요란한 정죄나 투쟁 대신 철저한 침묵과 겸손한 실천으로 참된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성인의 위대함을 역설적으로 찬양하는 내용이다.
  • “성자여, 당신이 세상(世上)에 계실 때 교회당 안에는 도박(賭博)과 고리대금(高利貸金)이 공개(公開)되었으며 승직(僧職)을 매매(買賣)하며 빛다른 여자(女子)가 방황(彷徨)하였다 합니다.” : 성 프란치스코가 활동했던 시대 교회의 극심하게 타락한 배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거룩해야 할 교회당 안에서 도박과 고리대금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돈으로 신성한 성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횡행했으며, 타락한 여성들(빛다른 여자)이 방황할 만큼 당시 종교계가 세속적인 욕망과 물질주의로 심각하게 부패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 “당신의 거룩한 눈으로 어찌 그 현상(現狀)을 참고 보셨습니까.” : 그토록 순수하고 거룩한 영성을 지닌 성인이 이처럼 참혹하게 썩어버린 교회의 현실을 목격하며 얼마나 큰 영적 고통을 겪었을지에 대한 작가의 탄식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 “그러나 당신은 겸손하게 말없이 앉으셔서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나라를 나타내셨습니다.” : 부패한 종교계에 분노하여 거칠게 목소리를 높이거나 세속적인 방식으로 맞서 싸우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대신 스스로 가장 낮아져 빈민의 형제가 되고 철저한 무소유와 고행을 실천하는 ‘침묵과 겸손’을 통해, 타락한 세상 한가운데서 진정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하느님의 나라(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몸소 증명해 보였음을 찬미하는 것이다.
  • 결과적으로 이 문장은, 어둡고 부패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남을 비판하기보다 스스로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종교적 빛을 밝혀낸 성 프란치스코의 고결한 실천적 영성을 깊이 기리는 대목이다.


성자여, 지금은 말세(末世)라고들 말합니다.
미래(未來) 세계(世界)의 물결소리가 원뇌(遠雷)같이 들립니다. 이제 우리는 거친 우리 영혼의 폐허(廢墟)를 바라보며 성자(聖者)의 발자취를 사모하여 예찬(禮讚)의 말씀을 드립니다. 주(主) 그리스도의 영광(榮光)을 위하여……. 아멘.

  • 이 문장은 김재준이 1926년에 작성한 글 「예찬의 말씀」의 결론부로, 영적으로 황폐해진 당대의 현실을 깊이 성찰하며 성 프란치스코의 거룩한 삶을 본받고자 하는 다짐과 기도를 담고 있다.
  • “성자여, 지금은 말세(末世)라고들 말합니다.” : 앞서 묘사된 것처럼 맘몬(재물)을 숭배하고 인간관계가 차갑게 식어버렸으며 위선과 폭력이 난무하는 타락한 시대 상황을 깊은 영적 위기로 인식하여 '말세'라고 개탄하는 대목이다.
  • “미래(未來) 세계(世界)의 물결소리가 원뇌(遠雷)같이 들립니다.” : ‘원뇌(遠雷)’는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천둥소리를 뜻한다. 다가올 미래의 불확실한 변화와 거대한 시대적 격랑이 마치 먼 곳의 천둥소리처럼 두렵고도 엄숙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문학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 “이제 우리는 거친 우리 영혼의 폐허(廢墟)를 바라보며 성자(聖者)의 발자취를 사모하여 예찬(禮讚)의 말씀을 드립니다.” : 참된 사랑과 진리를 잃어버리고 황폐해진 현대인(우리)의 내면 상태를 '폐허'로 진단하는 뼈아픈 자기반성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이기에 역설적으로 철저한 청빈과 겸손의 삶을 살았던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더욱 간절히 그리워하며 이 예찬의 글을 바치게 되었다는 집필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 “주(主) 그리스도의 영광(榮光)을 위하여……. 아멘.” : 프란치스코 성인을 향한 이 모든 찬양과 시대적 성찰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결국 주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임을 보여준다. 성인에 대한 존경을 넘어 철저한 기독교 신앙의 고백으로 글을 엄숙하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 결론적으로 이 문장은 어둡고 절망적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우리 자신의 영적 빈곤함을 회개하고, 성 프란치스코가 보여준 참된 영성을 길잡이 삼아 다시금 그리스도의 빛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화자의 간절한 기도이자 결단의 선언이다.


在日本 조선기독청년회, 「使命」誌 제3호, 1926년

  • 이 문장은 앞서 분석한 김재준의 에세이 「예찬의 말씀」이 처음 발표된 출처와 발행 연도를 밝히는 서지 정보(출판 기록)이다.
  • “在日本 조선기독청년회” :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이던 조선의 기독교 청년들이 조직한 단체인 ‘재일본 조선기독교청년회(YMCA)’를 뜻한다. 식민지 지식인이자 신앙인으로서, 조국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기독교적 진리를 탐구하고 민족의 앞날을 치열하게 고민하던 청년들의 모임이다.
  • “「使命」誌 제3호” : 이 청년회에서 발행한 기관지(잡지)인 『사명』의 세 번째 호를 의미한다. 잡지의 이름인 ‘사명(使命)’에서 알 수 있듯, 당시 기독교 청년들이 시대적 고난과 식민지 현실 속에서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종교적, 민족적 역할을 굳게 다짐하고 모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1926년” : 이 글이 발표된 구체적인 시기이다. 1926년은 일제의 식민 지배로 인해 조선 민족의 고통과 상실감이 극심했던 때이다.
  • 종합적인 배경과 의미 : 결과적으로 이 짧은 출처 정보는 앞선 본문에서 화자가 부르짖었던 ‘말세’, ‘영혼의 폐허’, ‘맘몬의 지배’라는 탄식이 단순히 일반적인 종교적 타락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해준다. 이는 주권을 잃고 물질적, 정신적으로 억압받던 식민지 조선의 비극적인 현실과 깊이 맞닿아 있는 시대적 절망의 표출이다.
  • 청년 김재준은 일본 땅에서 이 잡지를 통해 성 프란치스코의 철저한 청빈, 이타적인 사랑, 그리고 부패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준엄한 영성을 소개했다. 즉, 이 출처 표기는 절망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 지식인과 조선의 기독교인들에게 헛된 세속적 가치를 버리고 참된 신앙의 '사명'을 다하자는 영적 각성의 촉구였음을 확인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