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31-33] 확장과 변혁 – 1995년 3월 3일, 김상근 목사

9월 15, 2026

확장과 변혁

마태복음 13장 31-33절 / 한국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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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문]

작년 가을 학기에 이 자리에 섰을 때, 나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특히 그를 좇아 ‘성직의 길을 간다는 것’이 어떤 것이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다.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베푸셨던 최후의 만찬의 메시지가 바로 그 내용이었다. 그리고 소설 『동의보감』의 유의태와 허준과의 관계를 예수와 교회, 혹은 우리들과의 관계의 유비(類比)로 삼아 말씀드렸다.

오늘 설교는 그 설교의 연장이다. 우리는 주님을 몽땅 통째로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오늘의 삶의 현실 가운데 존재해야 한다. 교인들에 대해서 예수의 본체는 아니나 예수와 똑같아야 한다. 역사에 대해서도 감히 예수의 본체는 아니나 예수로서 현존해야 한다. 이런 전제 아래 같은 시대에 같은 교단에 몸담고 있는 우리들의 현존적 위상을 생각해 보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 교회와 한국 역사 속에서의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의 위상이 무엇이며 교회사적인 사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한다. 물론 무슨 교파주의 따위를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젊은 후배들과 비교적 폭넓은 교분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고 또 그렇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젊을수록 신앙고백이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며 개혁적이다. 특히 신학대학 졸업 후 민중 교회나 농어촌 교회로 진출하는 후배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존경하기도 하고 또 사랑한다. 결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목회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회의 더 본래적인 모습이 거기 있고 그것이 예수의 분부를 바르게 따르는 길이라는 고백으로 어려운 길을 택해 나섰다. 비록 주관적인 고백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실제로 그들이 그 길을 감으로써 한국 교회에 신선한 충격이 있게 되었고, 또 1970-80년대 한국 역사에 한국교회의 긍정적 참여가 이만큼이라도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길게는 20년을 그리고 대부분 10년 안팎의 세월 동안 그들은 이 길을 꾸준하게 걸어왔다.

그러나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교회적인 차원에서도 인간적인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나는 간파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란다. 그들의 눈도 어김없이 경쟁 시대의 눈이 된다. 자기 부모가 다른 아이들의 부모만 못하고, 자기들의 꼴도 다른 아이들의 꼴에 비해 초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유를 묻는 아이들에게 설명할 말을 좀처럼 찾지 못하여 당황하게 되는 경험을 갖는다.

교회당은 대부분 전세다. 높아지는 전셋돈 정도는 척척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목사가 세차를 하고 호떡 장사를 하여 제 생활비나 교회 유지비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10년을 목회하여 교인이 겨우 10명을 넘어섰을 뿐이다. 여기에 어떻게 인간적 갈등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에게 이런 것은 사실 아무 문제가 아니다. 목사가 세차를 하면 어떻고 호떡 장사를 하면 어떠냐고 이를 악물 수 있다. 바울도 그랬지 않느냐고 자위할 수 있다. 그렇다. 이미 교인인 사람들을 모은 것이 아니니 10여 명도 대견하고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니 목사가 운영비를 마련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자신의 내면에 대고 외쳐왔을 것이다.

그러나 부딪혀 오는 비교의 잣대를 도무지 이겨내기 어렵다. 그래도 학교 다닐 때 내로라 하던 자기들이 이렇게 초라하게 비쳐지는 것을 견디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헌신으로 한국 교회가 갱신되어 나간다는 증거도 없다. 세계가 바뀔 것이라는 확증도 없다. 이런 열악한 환경이라면 민중에게로 가는 교회 운동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막을 내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갖는 교회 차원의 갈등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 세계의 큰 교회 중에 한국의 교회들이 20여 개나 들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모든 교회가 커지기 위해서는 온갖 수단을 모두 동원한다. 성령 운동을 해보기도 하고, 무슨 찬양 집회를 해보기도 한다. 영성을 개발한다 하지만 교회에 많이 나오게 하는, 그래서 큰 교회가 되고자 하는 것이 진짜 의도다.

기장 교단은 이제 40년의 새 역사를 살아왔다. 100여 년 전 한국의 처음 교회가 일구어 놓았던 ‘민중민족사적 해방 전통’은 1920년 이후 40여 년 동안이나 실종되고, 한국 교회는 세상의 소금도 아니요 빛도 아닌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I960년대 중반부터 한국 교회는 다시 소금의 역사, 빛의 역사를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I960년대 이후 이 나라 민중민족사의 과제인 인권, 정의, 민주, 자유, 통일은 곧 한국 교회의 선교적 과제가 된다. 민중민족사적 해방 전통에 한국 교회가 다시 서게 된 것이다. 이 일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중심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기장의 참여를 말할 때 여기 수유리 한국신학대학, 장공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여러분은 지금 민중민족사적 해방 전통의 진원지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장은 저 민중 교회 목회자들이 갖는 갈등과 비슷한 갈등을 갖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적 잣대로 스스로를 잰다. 다른 교단과 비교한다. 그리고 스스로 위축감을 갖는다. 성공하지 못했다고 자탄한다. 교인이 적고 돈이 없다, 다른 교단은 여기저기 대교회당을 건축하는데 우리는 고작 이만한 교회당밖에 갖고 있지 못하다, 다른 교단은 해외에 수백명의 선교사를 보내는데 우리는 1-20명에 불과하다는 자괴 섞인 탄식 소리가 들려온다.

예수의 제자들도 그랬던 것이리라. 스승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성취되는 것인가? 도무지 그것이 오는 것 같지 않고 올 것 같지도 않다. 제자들의 회의요 갈등이 여기에 있었다.

예수는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라고 가르치신다. 이어서 그는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라고 말씀하신다. 겨자씨는 ‘확장’의 상징 언어이며 누룩은 ‘변혁’의 상징 언어라고 생각한다. 하늘 나라 운동의 특성은 확장이라는 측면도, 변혁이라는 성격도 모두 갖는다는 말씀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겨자씨와 누룩이 각각의 성격을 분명하게 갖고 그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확장은 하늘 나라와 무관하다거나 반대로 변혁으로 하늘 나라 운동이 될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교단마다 성격이 있기 마련이다. 기장의 맛은 변혁이다. 누룩이다. 겨자씨의 특성을 완전히 아니 갖는 것은 아니다. 두 특성을 모두 갖되 개혁성, 변혁의 힘을 더 가질 때 그것이 기장이리라. 겨자씨를 지향하는 교회도 있어야 하고 누룩을 지향하는 교회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장은 전체로 보아 변혁의 자리에, 변혁의 맛으로 있어야 한다. 이것을 존경하고 이에 합의하는 분위기가 기장의 분위기이어야 한다.

그럴 때야만 자본주의적 잣대에 시달리는 우리의 동역자들이 온갖 자본주의적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제 길을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럴 때야만 기장이 건강하게 되고 기장이 건강할 때야 한국 교회가 건강할 수 있다. 그래야 한국이 변혁으로 가게 되고 하늘 나라의 기적이 여기에 일어날 수 있게 된다.

모두가 변혁군에 서게 되는 이변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확장군에 서려는 현상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분명히 교회의 위기다. 기장은 한국 교회의 누룩을 자임해야 한다. 그것이 기장을 구태여 또 하나의 교단으로 따로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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