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17] 회개와 역사의 전진 – 1998년 8월 6일, 김상근 목사

9월 20, 2026

회개와 역사의 전진

마태복음 4장 17절 / 5ㆍ18구속자석방기도회 / 1998년 8월 6일


[회상 노트]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의 첫 조각이 우리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종필 씨를 국무총리로 삼겠다고 했을 때 우리 모두는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건국 이래 선거에 의한 첫 정권 교체에 거는 국민,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 민주화 세력의 기대에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국민의 정부’는 개혁으로 가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DJP라고 하는 연합으로 탄생한 정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절대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김대중의 ‘대중경제’를 펼 조건이 못 되었다. 아마 ‘대중경제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의 실의는 깊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오랜 연구 소산이요 신념이었다. ‘국제금융기구’(IMF)의 도움과 그들이 내놓은 요구를 수용해서야 그 국가 부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핵심적 요구는 신자유주의 수용이었다. 과거 청산은 고사하고 양심수 석방조차 녹녹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권이 하는 일이 도무지 못마땅했다. 그러나 나는 정권의 한계와 대통령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나는 우리 민주화 세력과 정권 사이에 서서 당기고 밀고 끌면서 우리가 기대하고 바랐던 우리의 비전을 현실화시키고자 애썼다. 혹은 정권을 힐책하고, 혹은 격려하고, 혹은 싸우고, 혹은 대화했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거의 반년이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8ㆍ15 광복절에 양심수를 크게 석방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정보는 그렇지 않았다. ‘구속자 석방을 위한 기도회’를 다시 하자 한다. 착잡했다. 날 더러 설교하란다. 설교했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기독교의 역사관은 궁극적으로는 낙관론이다. 그러나 역사는 잘못된 것을 청산함으로 전진한다. 역사에 있어서의 청산을 우리 기독교 언어로 말하면 ‘회개’다. 방금 봉독한 말씀,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는 무슨 뜻인가? 하늘 나라가 다가왔으니 회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회개함으로 하늘 나라가 다가오는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하늘 나라란 언제나 코앞에 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그 하늘나라는 없는 것이다.

오늘의 잘못된 역사를 청산할 때 역사는 전진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의 전진은 없다. 역사에는 시(是)와 비(非)가 언제나 함께 있기 마련이다. 모든 것이 몽땅 옳은 현재도 없고, 몽땅 그른 현재도 없다. 시와 비가 함께 있다. 시를 세우고 비를 청산하는 것이 역사의 창조요 전진이다.

우리는 건국 50년 동안 역사의 청산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건국 초기의 역사의 청산은 무엇이었나? 독립투사, 일제에 항거했던 민초들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었다. 일제 아래에서 그들은 억압을 받아야 했고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들을 제 값으로 평가하는 것이 해방이었어야 했다. 그것이 회개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던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정치적 조건의 불가피성이 그것이었다. 친일 세력이 온 나라를 틀어잡고 있었다. 사회, 경제, 문화, 사법, 교육, 종교, 체육, 어떤 영역도 그들의 손 밖에 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들을 제쳐놓고 나라를 세울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는 두려움을 가질 만했다. 그래서 일본 저항 세력을 나라의 중심에 세우지 못하고 친일 세력, 부일 세력을 역사의 주역이 되게 했던 것이다.

이 나라 역사의 전진이었을 리가 없었다. ‘시’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고 ‘비’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 회개가 없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올 수 없었다. 청산하면, 회개하면, 거기, 바로 거기에 있을 하늘 나라를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역사는 5ㆍ16으로 이어졌고 5공, 6공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역사의 회개를 위한 투쟁이었다. 정권 교체를 갈망했던 것은 역사의 청산, 하늘 나라를 여기에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건국 50년 만에 처음으로 정권의 교체를 이루어냈다.

현 정권은 많은 역사 청산을 시도하고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구속자를 석방하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소 자기가 집권하면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겠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나는 평소에 밝혀 왔던 그의 소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1. 나는 비전향 장기수들은 모두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냉전 시대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직 지나가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 한다면 지나가게 해야 한다고 내 표현을 정정하겠다. ‘비전향 장기수’는 지난 시대의 유물이다. 새 시대를 열려고 한다면 지난 시대의 유물은 벗어 던져야 한다.

2) 그들은 모두 장기수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나이가 많아졌다. 구속 당시의 그 사람이 아니 다. 30년, 40년을 철장 속에 가두어 둔다는 것은 비인도적이다. 어느 나라든 장기수가 있다는 것은 그 나라의 부끄러움이다. 역사가 변화하지 않고 그 세력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3) 비전향자니, 전향자니 하는 것이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시대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는 사상의 자유를 감당할 만큼 힘을 가졌다. 물론 사상의 자유가 곧 범법의 자유는 아니다. 나와 다른 사상을 범법으로 몰던 시대는 청산해야 한다.

4) 더구나 날조된 사상범이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가 아닌데 공산주의자로 몰린 것도 억울한데, 그래서 10년 이상씩이나 옥살이를 한 것도 억울한데, 공산주의자였는데 이제는 돌아섰다고 하라니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성공회대학교의 신영복 교수도 이른바 비전향 장기수다. 그러나 그는 건강한 시민, 건강한 국민, 국민을 지도하는 지도자의 삶을 살고 있다. 한 사람의 양심의 자유라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회개요 청산이다.

모든 비전향 장기수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석방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여기에 다가온 하늘 나라를 활짝 열게 되기를 바란다.

2. 모든 양심수는 조건 없이 석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지난 시기의 양심수는 피동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실정법을 어겼다고 하더라도 그 시기의 정치 상황이 그렇게 몰고 간 바가 없지 않다.

지난 시기에 당국의 허가 없이 북한으로 달려간 학생들이 있었다. 많은 경우 반통일적인 정부와의 투쟁 수단이었다. 북한을 다녀온 젊은이들을 만나보라. 그것은 대정부 투쟁이었지 사상적 행동은 아니었다. 폭력을 행사한 경우도 그렇다. 상황이 폭력을 유도했고 폭력 행사가 불가 피하다고 판단케 했던 바가 없지 않았다. 양심수로 분류되는 모든 구속자를 석방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역사의 청산이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그들이 바뀐 시대, 바뀌어야 하는 시대에서도 그대로 감옥에 있다면 해방 후의 역사적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다. 석방은 회개다. 청산이다. 다가와 있는 하늘 나라를 활짝 열게 되기를 바란다.

3. 이른바 준법 서약서 제출을 석방의 조건으로 하는 것을 나는 반대한다.

전향서를 폐지한 것은 잘한 것이다. 또 마음에도 없는 글을 일정한 양식에 따라 쓰게 하던 것을 폐하고 자유롭게 쓰되 준법하겠다는 내용을 담으면 된다고 한 것도 잘한 것이다.

1) 그러나 준법 서약서 요구는 양심수들에게 갈등을 일으킨다. 법을 어긴 적이 없는데, 따라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괴로워하는 그에게 앞으로는 법을 지키겠다는 뜻의 글을 쓰라는 것은 양심의 갈등을 일으킬 뿐이다. 전향서를 쓸 이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전향서를 쓰게 되었을 때 일으키는 갈등과 같은 것이다. 민주화의 동지들에게 훈장을 주지는 못할 망정 괴로운 덫을 씌울 수는 없다.

2) 동지들 사이에 분열이 생기게 한다. 쓴 사람과 쓰지 않은 사람을 갈라놓는다. 자칫 쓴 사람은 투항자요 쓰지 않은 사람은 지사라는 분열 구조가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동지들을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소지를 제공한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3) 물론 나는 기회가 있는 대로 양심수들에게 준법 서약서를 쓰고 나오라고 권한다. 준법 서약서 요구는 잘못된 것이나 그 동기는 풀자는 것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준법 서약서라도 받지 않으면 석방할 수가 없는 현실이고 그리되면 개혁의 가능성도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양심을 억압하자거나 괴로움을 주자는 발상으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되면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한다.

비전향 장기수와 양심수의 전원 석방, 준법 서약서의 철폐를 온전하게 이행하지 못하는 정부의 한계를 한편 이해한다.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박준규 씨를 국회의장으로 세우고, 김종필 씨를 총리로 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무엇인가? 박준규 씨가 국회의장에 당선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총리의 인준을 바라는 마음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국민의 현실이다. 국민의 판단이다. 국민의 표다. 갖가지 선거에서 유신 본당과 국민회의가 손을 굳게 잡고서야 유신 잔당을 이길 수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아직 국민의 다수는 개혁의 편이 아니다. 보수의 편이다. 자민련 없는 김대중 정권은 금새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나는 이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탄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기술을 용인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회개를 미루면 안 된다. 척결을 주저하면 안 된다. 개혁을 포기하면 안 된다. 지난 시기의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는 것이 시대의 회개다. 역사의 척결이다. 그것이 양심수 개혁이다. 현실을 내세워 저 건국 초기와 같이 친일, 부일 세력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집권 5년 내내 반개혁 세력의 볼모로 지난다면 정권 교체의 의미는 크게 퇴색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주장이 현실성 없는 주장으로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또한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1천만 기독 신자들을 개혁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오늘의 우리 성직자들의 몫이다. 교인이 개혁으로 나아가고 그것을 토대로 국민을 변화시켜야 한다. 국민을 변화시키는 일도 우리의 몫이다. 국민이 개혁을 지지하게 하는 일도 우리의 몫이다. 이 정부가 개혁으로 가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일도 우리의 몫이다. 이 몫을 우리가 감당하지 않으면 결국 친일, 부일 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반개혁 세력과 엉거주춤한 동거를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초의 정권 교체는 의미 없이 깃발을 내리고 말 것이다.

우리는 오늘 구속자 석방을 기도하고 외친다. 그러나 그것은 구속자 석방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하늘 나라-역사의 전진-역사의 창조를 목표로 한다. 구속자 석방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역사 창조로 이어질 때, 하늘 나라로 이어질 때 더 온전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전진을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되 개혁으로 가고, 그렇기에 그 정부를 국민이 지지할 수 있게 만들자. 이것 은특정인을 지지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역사를 전진케 하자는 것이다. 철저한 회개가 현실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할 때 역사는 전진한다. 그럴 때 ‘국민의 정부’다. 그것이 회개다. 하늘 나라가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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