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족쇄를 깬 우주적 샬롬, 거룩한 안식과 ‘심히 좋았더라’의 대관식
[본문] 창세기 1장 31절-2장 3절
- 31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 1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 2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 3절: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성서 명상]
창조의 장엄한 서곡은 여섯째 날의 끝자락에서 피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찬란한 긍정으로 그 절정에 도달합니다. 31절에 등장하는 평가적 관용구는 이전의 날들과 비교할 때 세 가지 중대한 방식으로 변형되며 마지막 사역의 완전성을 극대화합니다. 첫째, 이 선언은 개별적인 피조물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전 창조(그 지으신 모든 것)”에 광범위하게 적용됩니다. 둘째, 통상적으로 쓰이던 히브리어 접속사 ‘키(כי, that)’ 대신, 여기서는 흥분과 감탄을 나타내는 ‘웨힌네(והנה, 그리고 보니/behold)’가 사용되어, 당신이 손수 지으신 작품을 경이롭게 바라보시며 크게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마음을 암시합니다. 셋째, 완성된 우주의 하모니는 단지 “좋았더라”를 넘어 “심히 좋았더라”라는 전 우주적 승인을 획득합니다. 이 완벽한 조화와 완전성야말로 창조주의 성품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웅장한 거울이며, 이를 기념하듯 종결적 관용구에도 정관사가 첨가되어 “그 여섯째 날(the sixth day)”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됩니다.
이러한 환희의 정점 위에서 전개되는 2장 1-3절은 내용과 형식 면에서 앞선 엿새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독특한 대관식의 장입니다. 이 단락은 창세기 1장 1절과 교차대구법적(역순환적) 포섭(inclusion) 관계를 이루며 미려한 종결을 맺습니다. 1장 1절의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천지를”이라는 순서가 2장 1-3절에서는 “천지와, 하나님이, 창조하시니라”로 완벽하게 반향되며 거룩한 역사의 첫 번째 단락이 완성됨을 알립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종결부에 숫자 ‘7’이 지배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1장 1절이 7개의 히브리어 단어로, 1장 2절이 14개(7x2)로 구성된 것에 이어, 2장 1-3절은 정확히 35개(7x5)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일곱째 날”이라는 단어가 세 번 등장하는데, 이 역시 각각 일곱 개의 단어로 구성된 문장 속에 한 번씩 등장하며 안식일의 절대적이고 특별한 성격을 눈부시게 강조합니다.
특히 2절과 3절에서 하나님이 마치신 일에 대해 서술할 때, 천지 창조와 같은 장엄한 신적 사역에 어울리지 않는 ‘믈라카(מלאכה)’라는 단어가 세 번 연속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출애굽기 20장 9절 등에서 인간의 ‘일상적인 노동’을 지칭할 때 쓰는 통상적인 단어입니다. 창세기 저자가 이 단어를 의도적으로 선택한 이유는 명백합니다. 베스터만(Westermann)의 지적처럼, 이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이 일곱째 날에는 반드시 자신의 일상적인 일(믈라카)을 멈추고 쉬어야 한다는 엄위한 율법적 암시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일을 “그만두시다(샤바트, שבת)”라는 표현은 창조 사역의 피로 때문이 아니라, 피조물에게 안식의 모형을 제정하시기 위한 거룩하고 의도적인 멈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단락에서 가장 예리한 신학적 논박은 정작 ‘안식일(Sabbath)’이라는 명칭 자체가 본문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기이한 사실에 있습니다. 카수토(Cassuto)를 비롯한 학자들은, 창세기의 저자가 당대 바벨론의 달력에서 매월 보름(15일)을 지칭하던 ‘샤팟투(šapattu)’라는 용어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안식일이라는 단어 사용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고 주장합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권에서 매월 7일, 14일, 19일, 21일, 28일은 흉조가 깃든 ‘불길한 날’로 간주되어 행동을 극도로 제약받았습니다. 창세기의 ‘일곱째 날’은 이교도들의 이러한 미신과 맹목적 공포에 대한 가장 강경한 반대이자 논박입니다. 이스라엘의 일곱째 날은 달의 위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주권적인 주기였으며, 불길하고 두려운 날이기는커녕 하나님에 의해 친히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신”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생명체가 아닌 특정한 ‘시간(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카다쉬, קדש) 구별하신 것은 성경에서 일곱째 날이 유일합니다. 안식일이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곧 이 안식을 지키며 누리는 사람들의 삶 속에도 동일한 생명의 축복이 흘러갈 것임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안식의 대관식 앞에서, 오늘날 현대인들의 병든 일상을 처절하게 직면하게 됩니다.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우리는 다신론적 미신에서 벗어났다고 착각하지만, 실상 우리의 내면은 바벨론의 ‘샤팟투’보다 더 가혹하고 끔찍한 강박과 불안에 짓눌려 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우상은 우리에게 “쉬는 것은 곧 뒤처지는 것이며, 멈추는 날은 곧 네 인생의 불길한 날이 될 것”이라고 끊임없이 협박합니다. 우리는 내가 하루라도 노동(믈라카)을 멈추면 내 삶의 기초가 무너질 것이라는 불신앙적 공포에 사로잡혀, 스스로 안식 없는 노예가 되어 육신과 영혼을 갈아 넣고 있습니다. 일의 중독에 빠진 채 불안 속에서 밤잠을 설치는 우리의 모습은, 피조 세계의 완전성을 바라보며 “심히 좋았더라”라고 감격하시던 하나님의 만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치명적인 죄악입니다.
참된 안식(샤바트)은 단순히 지친 육체를 쉬게 하는 휴일(Holiday)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삶을 지탱하고 먹여 살리는 분이 나의 치열한 노동이 아니라, 만물을 완벽하게 “다 이루신(칼라, כל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몸으로 고백하는 가장 급진적이고 거룩한 신앙 고백입니다. 내가 내 손의 도구를 내려놓고 일상을 멈추어도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선하게 돌보실 것을 믿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지금 당신은 두려움의 쳇바퀴 위에서 헉헉거리며 뛰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심히 좋았더라’는 전 우주적 승인 안에서 거룩한 멈춤의 샬롬을 누리고 있습니까? 이제 삶의 모든 통제권을 하나님께 반납하십시오. 불안이라는 바벨론의 거짓된 신화를 찢어버리고, 일곱째 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안식 안으로 담대히 걸어 들어가십시오. 나의 완벽함이 아니라 창조주의 완전함에 기대어 쉴 때, 비로소 우리의 무너진 일상에도 참된 하늘의 샬롬이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마무리 기도]
안식의 주인이시며 온 우주의 창조를 ‘심히 좋았더라’는 기쁨으로 완성하신 영광의 하나님. 엿새 동안의 창조 사역을 아름답게 마치시고 친히 안식하심으로, 저희에게 생명과 쉼의 거룩한 모형을 보여주심을 찬양합니다. 주님, 입술로는 전능하신 창조주를 고백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제가 제 인생의 구원자인 양 한순간도 내 손의 도구를 놓지 못했던 불신앙과 교만을 철저히 회개합니다. 내가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라는 바벨론적 두려움과 세상의 헛된 협박에 속아,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육신과 영혼을 혹사하며 살아온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 제 삶을 옭아매고 있는 헛된 강박과 탐욕의 쳇바퀴에서 과감히 내려오기를 원합니다. 저의 치열한 노동이 아니라 주님의 신실하신 은혜가 저를 살리심을 온전히 믿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이 안식의 신비를 매일의 삶 속에서 결단함으로, 제 영혼 깊은 곳에 참된 샬롬과 하늘의 평안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며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석적 해설]
- 1:31 ‘심히 좋았더라’의 문학적 변형: 접속사 ‘웨힌네(그리고 보니)’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역동적인 기쁨을 나타냈으며, 개별 요소가 아닌 ‘전 창조’의 완벽한 조화에 대해 “심히 좋았더라”는 승인을 내림으로써 창조주의 성품을 가장 잘 드러냅니다.
- 2:1-3의 교차대구법 및 7중 구조: 이 종결부는 1:1과 어휘 배열을 역순으로 하여 완벽한 포섭(inclusion)을 이루며, 전체 35단어(7x5)로 구성되고 ‘일곱째 날’이 7단어로 된 문장에 3번 반복되는 등 안식일의 특별한 성격을 구조적으로 각인시킵니다.
- ‘믈라카(일)’의 의도적 사용: 천지 창조 사역에 인간의 일상적 노동을 뜻하는 ‘믈라카’를 세 번이나 사용한 것은(베스터만), 인간 역시 일곱째 날에는 자신의 일상적인 생업을 멈추어야 함을 암시하기 위한 의도적 선택입니다.
- 바벨론 ‘샤팟투’ 관습에 대한 반대(비신화화): 메소포타미아에서 특정 날짜를 불길한 날로 여기던 관습을 철저히 논박하며, 창세기는 일곱째 날을 공포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날로 선포합니다.
- 특정 날짜(시간)에 대한 이례적 ‘축복’과 ‘성화’: 생명체가 아닌 ‘날’ 자체를 축복하고 거룩하게(카다쉬) 구별하신 것은 성경에서 전례가 없으며, 이는 안식일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것이라는 구속사적 약속을 내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