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간섭
출애굽기 12장 29-34절 / 1985년 2월 7일 / 목요기도회
[회상 노트]
오랜만에 목요기도회에서 설교하게 되었던 게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바로 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이런 학정과 불의의 세력에게 하늘의 철퇴가 내리지 않는 것을 항상 안타까워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저들이 승승장구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신 것인가? 이런 몸부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목요일마다 드리는 우리의 기도회가 무엇인가? 희생을 무릅쓴 학생들의 운동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과연 유효한 것인가? 밝혀 보고 싶었다. 우리의 울부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간섭”이 지금 이렇게 … 그러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싶었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앞으로 꼭 5일 후에 1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게 된다. 다음 목요기도회는 선거 후에 모이게 되겠기 때문에 불가불 금번 선거와 관련하여 증언을 드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증언을 준비하면서 퍽 고심을 했다. 고심한 첫째 이유는, 이러이러한 당 후보에게는 절대로 투표해 주지 말자고 하는 말을 해야 할텐데, 말하나마나 여기 오신 여러분들은 적어도 내가 지적하고 싶은 정당에는 절대로 표를 주지 않을 분들이라는 공통점을 이미 가지고 있다. 그러니 어느 당에 투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맥없이 하고 있을 수도 없다.
다른 이유는, 오늘 예배에 설교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은 퍽 오래전이고, 그때 당시 생각에는 총선거 국면이라지만 여간해서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엄청난 폭력의 전과자들 앞에서 감히 해야 할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고 있다. 듣고 싶었던 말들이 마치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여기서 이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것이 나의 걱정이다. 선거 때조차 말하지 못하는 말을 오늘 예배에서 해야 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거의 모든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내가 할 말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렇다고 증언을 아니 할 수도 없고 또 증언할 말씀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현상을 성서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하고자 한다.
오늘 우리의 기도와 투쟁은 무엇인가? 자식들이 옥에서 하루 속히 나오게 해 주십사 하는 기도를 포함하여 결국은,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평화에로, 전제와 독재로부터 민주에로 해방하는 해방운동이다. 오늘 봉독해 드린 구약성서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인들을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해방하실 때 일으키셨던 기적의 기록이다. 소위 10대 재앙이라 한다. 이 재앙의 시작은 작은 외침으로부터 발단된다.
그것은 모세라 이름하는 한 청년 지도자가 전능한 이집트의 왕(이를 ‘파라오’라고 부른다.)에게 이스라엘인의 해방을 주장하는 사건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모양에 불과한 일이 었다. 천군만마로 위협을 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을 빈손으로, 다만 입만 가지고 버티어 섰으니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시쳇말로 웃기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정신병자와도 같았을 것이다.
1980년 5ㆍ17 사태 이후 이 땅의 모든 해방운동은 완전 정지를 당하였다. 그러나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학생운동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이후 조금씩 조금씩 평화운동, 민주운동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목요예배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도 격주로 모여서 외치고 증언하고 기도했던 것이다. 이 일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 본다면 모세가 맨손으로 이집트의 왕 앞에 섰던 것과 같은 일이었다. 모세가 내 백성을 해방하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는 춥게, 쓸쓸하게 그 무서운 5ㆍ17의 무리들 앞에서 이 예배를 시작했고, 부정과 폭력을 고발하고 민주 쟁취와 인권 보장을 위해 소리쳤다.
파라오가 모세의 말을 들을 리 없다. 우습게 여겨지고 같잖게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회, 여기에서 외친 모든 것이 당국자에게는 우습게 여겨지고 같잖게 보였을 것이다. 우리의 민주화운동, 평화운동을 모세의 그것에 비교하는 것이 조금은 과장 같으나 실세(實勢)는 분명히 그랬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1979년 10ㆍ26 이후 국민의 민주 열망은 가장 뜨겁게 익었으나 1980년 5ㆍ17을 기점으로 하여 폭력 앞에서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이즈음 “하나님도 무심하시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것이냐?” 하는 푸념을 자주 들었다. 성서에는 즉결심판도 자주 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날에는 왜 그 하나님이 이렇게도 느리시냐는 탄식이다. 하늘에서 재앙이 내려 못된 놈들을 왜 벌하시지 않는 것일까 하는 원망이 우리에게 있었다.
성서는 이집트의 왕이 이스라엘인들의 해방을 거부할 때마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이 피가 되고, 온 땅을 개구리가 덮으며, 모기가 극성을 핀다. 등에가 모든 이집트인을 쏘아대고, 가축들이 병들고, 피부병이 전염되며, 때 아닌 우박이 쏟아지고, 메뚜기가 하늘을 메운다. 어둠이 온 땅을 덮어 버리는가 하면, 모든 맏물이 죽게 되는 10대 재앙이 내려진다. 끔찍한 재앙들이다. 마지막 재앙의 기록은 이렇다.
“한밤중에 야훼께서 이집트 땅에 있는 모든 맏아들을 모조리 쳐 죽이셨다. 왕위에 오를 파라오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땅굴에 갇힌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에 이르기까지 다 쳐 죽이셨다.”
왜 지금은 이런 하나님의 간섭이 없고 하늘의 재앙이 내리지 않는 것이냐라고 하는가? 나는 금번 12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간섭이 분명해졌고 선거에 대한 재앙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첫째 재앙은 ‘방학 재앙’이다. ‘어떻게 하면 바람이 일어나지 않게 할까? 제11대 선거처럼 쟁점도 이슈도 없이 조용히 지나가고 그래서 선거가 있는지 없는지, 또 국민의 기대 같은 것은 아예 노출되지도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가장 골치 아픈 대학생들을 방학을 주어 각각 흩어 놓고 선거를 할까, 아니면 학교에 모아 놓고 선거를 할까 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결론은 학기 중에 하면 데모를 하고 바람을 일으킬 터이니 모두 흩어 놓고 선거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전국으로 흩어진 후에야 동원 가능성이 없어질 것 아니냐 하는 계산이었다. 흩어진 후에까지 극성스럽게 투쟁하지 않을 것 아닌가 하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것이 금번 선거에 바람을 일으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말았다. 유세장마다 가득 메운 청중은 대부분 20-30대라는 것이고, 그들이 연사의 말을 끌고 가는 형세를 이루어 놓았다. 연일 데모가 그치지 않고 군 출신 후보자, 광주 사태 책임자가 후보자로 나선 지역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혈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간섭의 증거요, 이 시대에 내리고 있는 재앙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초한 재앙이다.
둘째 재앙은 ’날씨 재앙’이다. ‘추울 때 할 것인가, 날씨가 풀린 후에 할 것인가?’ 이 문제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을 것이다. 죄 지은 것은 많고, 국민들은 그 죄가 고발되고 심판되기를 마음속에서부터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후보자들이 국민의 심중을 간파하는
경우 바로 그 말을 할 것이고, 그러면 크게 불리할 것이니 모일 수 없는 엄동에 유세를 하도록 하자고 했던 것 같다. 추측컨대, 가장 추운 기간이 언제가 될 것이냐 하고 관상대에 물어 봤을 것 같다. 관상대에서는 컴퓨터를 동원하고 온갖 기술을 다 동원하여 이때가 가장 추울 것이라고 회신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유세가 시작되었을 때 유권자들을 모이지 못하게 할 만큼 충분히 춥고 얼었었다. 몇 십 명이 모였고 후보자들조차 나오지 않거나 나와도 너무 추워서 말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끝내 버리는 현상이었다. 무릎을 펴고 기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춥던 엄동이 갑자기 풀렸다. 유세장에는 몇 만 명을 헤아리는 인파가 몰려들고 있다. 어떤 신문의 만화에는 얼음이 녹는 것과 함께 여당의 애간장이 녹고 있다고 익살을 부린다. 날 풀린 것도 하나님의 간섭의 증거이며 동토의 선거를 계획했던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다. 자초한 재앙이다.
셋째 재앙은 ‘김대중, 김영삼 씨 재앙’이다. ‘어떻게 하면 상대의 힘을 줄일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는 거물은 계속 묶어 두자.’ 참으로 비열한 구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 김영삼 씨 등을 해금시키지 않은 것이다. 상대팀의 감독, 코치, 주장을 납치하여 경기에 임하지 못하게 해 놓고 “정정당당하게 경기를 하자.”고 제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서는 양심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형편은 꼭 그렇다. 그런 점에서 금번 선거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와 정의를 함께 좋아하는 사람’(먼 뒷날 이 원고를 읽는 필자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당시 여당의 이름이 ‘민주정의당’이었다.)을 빼고는 너나 할 것 없이 유세장에서 김대중, 김영삼 이름을 들먹이고 있다. 물론 이념이 같아서 말하는 이도 있고, 또 그래야 박수도 표도 받을 수 있겠기에 무단히 들먹이는 사람도 있다.
결국 그 두 김 씨를 묶어 놓은 것이 아니라 손오공처럼 수백의 김 씨가 탄생되어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만들었다. 그들이 만약 해금이 되었더라면 선거 지원을 다닌다 해도 전국 92개 지 역을 모두 지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92개 지역을, 유세가 있을 때마다 몇 번이고 지원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의 기대를 갖고 있는 그들이 해금되지 않음으로써 움직일 수 없는 최상의 지도자가 되었고 국민의 마음은 그들에게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말았다. 이것은 자초한 재앙이다.
넷째 재앙은 ‘민주 역량의 재앙’이다. ‘누가 감히 이 무서운 정권자 앞에서 광주 사태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는가?’ 지난 11대 국회 4년에 걸쳐 광주 사태 진상 조사를 하자고 발의조차 해보지 못했던 국회였다. 국민을 보지 않고 인왕산 기슭, 중앙청 뒤쪽 눈치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 앞에 서 보니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말을 않고서는 “내가 국민 당신들 편이다.” 하고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일부는 해금이 되었다. 마지막 판에나 나옴직한 국민의 가슴에 담긴 말,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시간이 없다 보니까 급해서 아예 초반부터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가장 듣기 싫은 이야기, 광주 사태 조사단을 구성하겠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이 정부는 광주 사태로 시작하여 광주 사태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이기 때문이다.
4년 동안 입 밖에도 나오지 않던 광주 사태 진상 조사 이야기가 공약의 핵이 되고 말았다. 지금 유세장은 청중이 연설을 끌어가고 있다. 박수와 함성, ‘우~’와 야유가 온통 유세장을 뒤덮는다. 이것을 가리켜 공명선거 분위기를 해치는 일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수 치는 것이 유권자의 긍정의 자유라면 ‘우~’ 하는 소리는 유권자의 부정적 자기 표현이다. ‘예’는 되고 ‘아니오’는 공명선거의 적이라는 사고는 유신헌법을 찬성은 할 수 있으나 반대 발언은 안 된다고 하는,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유신 정권적 사고다.
박수와 ‘우~’, 함성과 야유가 어느 당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고,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광주 사태 진상 조사단’을 12대 국회에서 구성하겠다는 공약을 끌어낸 것이다. 이렇게 유권자가 후보자를 끌어간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의 민주 역량이 선진국을 앞질러 가는 것이다. 국민의 민주 역량이 이렇게 성숙한 것은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다.
다섯째 재앙은 ‘텔레비전 재앙’이다. ‘TV가 너무 지나치다.’ 지난 1월 31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 자유를 주장하고 나섰다는 고무적인 소식을 들었지만 TV는 정말 너무한다. 그런데 지나치다 보니 역효과가 나고 있다. TV 내용은 국민을 완전히 세뇌하겠다는 식이다. 그러니 KBS 보도 본부장이 민정당 전국구로 국회의원이 되는지는 몰라도 TV 공해는 무던하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 지나친 그것이 저들에게 되돌려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이 식상해 하고 역겨워 하기 시작했다. TV 기자들이 대학생들의 폭력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즉석 인터뷰를 하는데 하나같이 민정당 사람들 같은 말을 하여 저거 필시 당원들을 청중으로 가장시켜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어젯밤 KBS-TV 뉴스의 맨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뉴스를 방송했다. 동아일보 기사를 해명하고 부인하며 비난하는 보도였다.
내용은 이런 것이다. 나는 동아일보 기사를 못 보았고 여러분 중에도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중요한 기사를 놓치고 그냥 넘어갔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고맙게도 반격을 한답시고 시청자 모두에게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무실에 나오자마자 어제치 동아일보부터 보았다. 이제 TV는 악의 기능의 한계에 왔다. 아니 어느새 그 TV는 특정당의 표를 깎고 있다. TV 재앙이다. 자초한 TV 재앙이다.
내가 간파한 재앙으로 10을 다 채울 수 없다. 시간도 없거니와 그럴만한 권한이 없다. 사람의 지혜 있음이 하나님의 어리석음만 못하다는 성서의 말씀대로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간섭을 확인하고 파라오의 패배를 내다볼 수 있다. 파라오는 맏이가 죽임을 당하는 재앙을 보고 나서야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열 번째 재앙이 내리기 전에 정권자들은 무언가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것은 폭력을 중단하는 것이다. 평화에로의 해방의 역사를 거역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전제와 독재를 포기하는 것이다. 민주에로의 해방을 감히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재앙은 내리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어둠 가운데 있다. 아직도 곤욕 가운데 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자. 1980년 5ㆍ17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 보자. 저 무서운 광주 사태를 저지른 저들의 폭력과 오늘 저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자. 그때 생각에는 광주 시민은 억울하게만 죽고 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만 있을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첫 재앙에서 우리는 어느새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개입하심, 바로 그것은 해방의 약속이다. 우리는 기어코 민주를 이룰 수 있다. 평화를 좇을 수 있게 된다.
위축이 아닌 승리의 확신을 갖기 바란다. 냉소가 아닌 하나님의 간섭에의 동참이 있기 바란다. 이 역사는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역사라는 신앙을 갖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