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 깊이 읽기] 뿍맨 운동과 그 비판

뿍맨 運動[운동]과 그 批判[비판]

[출처]

  • 『신학지남』 17권 1호, 1935. 1.
  • 『낙수』 1940년, 96-122.
  • 『장공김재준저작전집(전5권)』 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년, 제1권, 62~75.
  • 『김재준전집(전18권)』 한신대학출판부, 1992년, 제1권, 45~64.


숙독을 위한 안내

이 분석 자료는 장공 김재준 목사가 집필한 「뿍맨 운동과 그 비판」의 전체 구조를 해부하고, 논리적 전개 과정을 상세히 정리한 기록이다. 장공은 20세기 전반 전 세계 기독교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킨 프랭크 북맨의 옥스퍼드 그룹 운동(북맨 운동)의 명칭 유래와 실천적 내용, 심리적 기교를 객관적으로 조명한다. 아울러 이 운동이 지닌 치명적인 한계와 부작용을 예리하게 비판하면서도, 조선 교회가 회복해야 할 영적 생명력과 목회적 가치를 균형 있게 도출해 낸다. 본 자료를 읽는 독자는 1930년대 교회의 침체 속에서 실천적 신앙 갱신의 길을 모색했던 지성인의 치열한 신학적 성찰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본문이 전개하는 서언부터 전망에 이르는 논리적 흐름을 따라가며, 무분별한 맹신과 편협한 비판을 넘어 교회의 본질과 영적 갱신을 성찰하는 안목을 깊이 있게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緖言[서언] : 세계 기독교계의 동향과 북맨 운동을 향한 목회적 시각


[1] 세계 기독교계의 이대 운동과 조선 교회의 위치

輓近[만근] 基督敎界[기독교계]에 있어서 世界的[세계적]으로 그 感化[감화]를 미친 問題[문제]의 二大[2대] 運動[운동]이 있으니 하나는 獨逸[독일]을 中心[중심]으로 한 칼 빠르트의 신학운동이오 하나는 영미(英美)를 중심으로 한 푸랭크ㆍ뿍맨의 所謂[소위]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이 그것이다. 世界[세계]의 基督敎界[기독교계]가 沈滯[침체]한지 오래니만치 이 運動[운동]들은 萬人[만인]의 期待[기대] 가운데 急速[급속]한 發展[발전]을 보이고 있다.

  • '만근(輓近)'은 요즘이나 즈음을, '침체(沈滯)'는 활기를 잃고 가라앉아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 20세기 전반기 세계 기독교계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갈구하던 중, 독일의 바르트 신학운동과 영미의 북맨 운동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영적·사상적 물결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진단한다.
  • 『신학지남』, 『낙수』에는 “미국”을 “米國”으로 표기하고 있다. 당시 미국과 대결하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의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스위스 출신의 개혁주의 목사이자 신학자로, 20세기 기독교 신학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장 칼뱅과 더불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며, 19세기부터 이어져 온 ‘자유주의 신학’의 낙관론을 무너뜨리고 ‘신정통주의(Neo-Orthodoxy)’라는 새로운 신학적 흐름을 열었다.
  • 프랭크 북맨(Rev. Frank Nathan Daniel Buchman, 1878~1961)은 미국의 루터교 목사로, 20세기 전반에 걸쳐 전 세계적인 영적·도덕적 부흥을 이끈 기독교 지도자이다. 그는 옥스퍼드 그룹(Oxford Group)과 도덕재무장운동(Moral Re-Armament, MRA)의 창시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그의 가르침은 종교를 넘어 사회, 정치, 그리고 현대 심리 치유 프로그램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 장공은 당대 기독교계가 마주한 영적 기갈의 현상을 정확하게 포착하며 글의 거시적 배경을 열어 보인다.


[2] 바르트 신학운동과 북맨 운동에 대한 조선 교회의 차별적 접근

빠르트의 神學運動[신학운동] 같은 것은 우리 朝鮮[조선] 같이 比較的[비교적] 單純[단순]하고 統制[통제]된 正統神學[정통신학]을 가지고 있는 敎會[교회]에서는 別[별]로 物論[물론]에 올릴 必要[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所謂[소위] 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에 있어서는 이것이 實際[실제] 信者生活[신자생활]에 새 方面[방면]을 展開[전개]시키는 것이니만치 捨短取長[사단취장]하여서 他山[타산]의 石[석]을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 '통제된 정통신학(統制된 正統神學)'은 교단의 엄격한 교리적 틀을, '사단취장(捨短取長)'은 짧고 나쁜 것은 버리고 길고 좋은 것은 취함을, '타산지석(他山之石)'은 남의 비판할 만한 언행도 내 수양에 도움 됨을 의미한다.
  • 조선 교회가 지닌 단순하고 통제된 정통 신학의 토양에서는 바르트의 급진적 신학운동이 당장 논의될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지만, 실제 신자들의 삶에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북맨 운동은 그 장점을 취하여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 이론적 교리 논쟁에 치우치기보다 한국 교회의 실제적 영적 갱신에 유익한 실천적 운동을 분별력 있게 수용하려는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신학적 태도를 드러낸다.


[3] 서언의 집필 목적과 목회적 참고의 의지

이런 意味[의미]에서 그 大略[대략]의 輪廓[윤곽]을 紹介[소개]함과 同時[동시]에 그 後[후]의 發展相[발전상]을 다시 深査批判[심사비판]하여서 實際[실제] 牧會[목회]의 參考[참고]에 供[공]코저 하는 바이다.

  • '윤곽(輪廓)'은 대강의 줄기를, '심사비판(深査批判)'은 깊이 조사하고 엄정하게 평가함을, '공(供)코저'는 제공하고자 함을 의미한다.
  • 북맨 운동의 전반적인 개요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후의 전개 과정과 양상을 깊이 있게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당대 목회자들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침으로 삼게 하겠다는 명확한 목적을 제시한다.
  • 학문적 소개를 넘어 교회 현장의 구체적인 목회적 유익과 갱신을 도모하려는 장공의 실천적 목회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命名[명명] : 운동의 명칭 유래와 역사적 연원


[1] 영미권의 명칭 차이와 백 년 전 옥스포드 운동의 역사적 배경

이 運動[운동]은 英國[영국]에서는 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이라 하고 美國[미국]에서는 뿍맨主義[주의] 或[혹] 初代基督信徒友愛團[초대기독교신도우애단, First Century Christian Fellow-ship]이라 부른다. 距今[거금] 百年前[백년전]에 키불 뉴-맨 等[등]의 宗敎的[종교적] 巨人[거인]이 輩出[배출]하여 옥스포-드 大學[대학]을 中心[중심]으로 所謂[소위] 「옥스포-드 運動[운동]」이란 偉大[위대]한 宗敎復興運動[종교부흥운동]을 이르킨 일이 있음은 우리의 익히 아는 바이다.

  • '거금(距今)'은 지금으로부터를, '거인(巨人)'은 사회나 역사상에 큰 업적을 남긴 뛰어난 인물을 의미한다.
  • 해당 운동은 영국에서는 '옥스퍼드 그룹 운동'으로, 미국에서는 '북맨주의' 혹은 '초대기독교신우애단'으로 다르게 불린다는 점을 밝힌다.
  • 옥스퍼드 그룹 운동(Oxford Group Movement)은 프랭크 북맨(Frank Buchman) 목사가 1920년대에 창시한 기독교 영적 부흥 및 도덕 갱신 운동이다. 초기에는 ‘제1세기 기독교 신앙 단체’(이 글에서는 ‘초대기독교신우애단’, First Century Christian Fellow-ship)로 불렸으나,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학생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부흥하자 ‘옥스퍼드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운동은 신앙이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삶의 실천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개인의 삶을 점검하는 엄격한 도덕적 기준으로 다음 네 가지를 강조했다. [절대 정직(Absolute Honesty), 절대 순결(Absolute Purity), 절대 무사/이타주의(Absolute Unselfishness), 절대 사랑(Absolute Love)]
  • 백 년 전 존 키블과 존 헨리 뉴먼 같은 종교적 거인들이 옥스퍼드 대학교를 중심으로 위대한 종교부흥운동(제1차 옥스퍼드 운동)을 일으켰던 역사적 배경을 환기한다.
  • 존 키블(John Keble, 1792~1866)은 영국 성공회의 사제이자 시인, 신학자이다. 1833년, 그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행한 “국가적 배교(National Apostasy)”라는 제목의 설교가 바로 19세기 ‘옥스퍼드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는 당시 국가가 교회를 통제하려 하고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했다. 그의 신앙적 헌신을 기리기 위해 사후에 옥스퍼드 대학교 내에 ‘키블 칼리지(Keble College)’가 설립되기도 했다.
  •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은 19세기 영국 종교계에서 가장 지성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이다. 키블과 함께 옥스퍼드 운동을 이끌며,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전통과 가톨릭적 유산을 성공회 안에서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논문(Tracts)을 발표했다. 성공회 사제였으나, 자신의 신학적 탐구 끝에 1845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영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후 가톨릭 추기경이 되었으며,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가톨릭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2] 교회의 생기 상실과 영적 기갈 속에서 옥스퍼드 운동을 향한 민심의 기대

그後[후] 百年[백년]을 지낸 오늘 宗敎[종교]의 靈驗[영험]이 여이고 敎會[교회]는 자못 生氣[생기]를 잃은 感[감]이 있어 民心[민심]은 다시 心靈[심령]의 飢渴[기갈]을 느끼자 自然[자연]히 저 有名[유명]한 宗敎運動[종교운동]의 發祥地[발상지]인 옥스포-드를 쳐다보며 그 盤石[반석]에서 샘물 솟아 흐르기를 期待[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 '여이고'는 기운이나 효험이 쇠하여 엷어짐을, '기갈(飢渴)'은 굶주리고 목마름을 뜻한다.
  • 한 세기가 지난 당시 종교의 영험이 쇠하고 교회가 생기를 잃어 대중이 심령의 깊은 기갈을 느끼며, 과거 종교 운동의 발상지인 옥스퍼드에서 다시 영적 샘물이 솟아오르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던 시대적 분위기를 묘사한다.
  • 당대 기독교계가 직면한 영적 침체와 부흥을 향한 대중의 갈증을 생생하게 진단한다.


[3] 북맨의 활동과 '옥스퍼드 그룹 운동'이라는 명칭의 발생 배경

때 마침 美國人[미국인] 뿍맨이 歷史[역사]깊은 大學[대학]에 와서 生新[생신]한 氣分[기분]을 가지고 學生[학생], 敎授[교수] 其他[기타] 上流社會[상류사회]의 人士[인사]들에게 偉大[위대]한 信仰的[신앙적] 感化[감화]를 끼처 그 結果[결과]로 이 運動[운동]이 南[남]아프리카 캐나다 等地[등지]에까지 퍼졌기 때문에 남다른 期待[기대]를 가지고 이 大學[대학]을 쳐다보던 英人[영인]들은 이에 百年前[백년전]의 옥스포-드 運動[운동]을 聯想[연상]하며 이 運動[운동]을 옥스포-드 그룹 運動[운동]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 '생신한(生新한)'은 싱싱하고 새로운 것을, '연상(聯想)'은 어떤 기억이나 현상을 보고 그것과 연관된 다른 것을 마음에 떠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 마침 미국인 북맨이 옥스퍼드 대학에 와서 학생과 교수 등 상류사회 인사들에게 신앙적 감화를 끼쳐 남아프리카와 캐나다 등으로 운동을 확산시키자, 영국인들이 백 년 전의 옥스퍼드 운동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옥스퍼드 그룹 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 역사적 명칭의 발생이 지닌 대중적 연상 작용과 확산 과정을 실증적으로 추적한다.


[4] 명칭의 역사적 실상과 '북맨주의'라는 호칭의 타당성

그러나 이 運動[운동]의 淵源[연원]을 歷史的[역사적]으로 正確[정확]히 따진다면 美國人[미국인] 뿍맨이 英國[영국]의 옥스포-드 大學[대학]에 가서 功[공]을 세운 것이오 옥스포-드 大學[대학] 自體[자체]가 이 運動[운동] 發祥地[발상지]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이 運動[운동]을 「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이라 이름하는 이보다는 뿍맨이즘(뿍맨主義[주의])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妥當[타당]할 것이다.

  • '연원(淵源)'은 사물의 근본이나 유래를, '타당(妥當)'은 이치에 맞고 알맞음을 뜻한다.
  • 운동의 역사적 연원을 정확히 따지면 미국인 북맨이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가 공을 세운 것이지 옥스퍼드 대학 자체가 발상지는 아니므로, '옥스퍼드 그룹 운동'이라는 명칭보다는 '북맨주의(Buchmanism)'라고 부르는 것이 실상에 더 부합하고 타당하다고 결론 내린다.
  • 대중적 명칭의 허구를 바로잡고, 실제적 주창자의 개인적 기여와 사상의 실체를 정확히 명명하려는 학술적 엄밀성을 보여준다.


뿍맨의 宗敎經驗[종교경험] : 프랭크 북맨의 생애와 십자가 체험, 그리고 삶의 변화


[1] 북맨의 평범한 성장 과정과 교역자로서의 초기 야심

뿍맨의 主義[주의], 或[혹] 뿍맨 運動[운동]이란 것은 曾前[증전]에 美國[미국] 펜실베니아洲[주] 루터宗派[종파] 牧師[목사]로도 있었고 또 一時[일시]는 基督敎靑年會[기독교청년회] 總務[총무]로도 勤務[근무]하던 푸랭크ㆍ뿍맨[Rev. Frank Buchman]이란 이의 個人的[개인적] 宗敎經驗[종교경험]을 通[통]하여 誕生[탄생]하였고 또 發展[발전]한 것이니만치 우리는 于先[우선] 푸랭크ㆍ뿍맨 自身[자신]의 信仰體驗[신앙체험]을 살필 必要[필요]가 있다. 뿍맨은 極[극]히 平凡[평범]한 사람으로 어느 方面[방면]으로 보던지 아주 特出[특출]하다고 할 點[점]은 없는 人物[인물]이다. 그는 어려서 幼兒洗禮[유아세례]를 받고 基督敎家庭[기독교가정]에서 자라나 成年[성년]에 達[달]하매 例[예]에 따라 堅信禮[견신례]를 받은 順調[순조]롭고도 平凡[평범]한 信仰生活[신앙생활]을 이어 왔었다. 다만 그가 敎役者[교역자] 되기로 작정하고 준비하는동안 좀 남달리 有名[유명]한 敎役者[교역자] 되려는 壯圖[장도]가 있었던 것만은 事實[사실]이다. 豫期[예기]하는 바가 크니만치 그에 對[대]한 自己[자기]의 不適任[부적임]을 痛感[통감]하며 스스로 煩悶[번민]한 적이 또한 많았던 것은 勿論[물론]이다.

  • '증전(曾前)'은 일찍이 전에는, '장도(壯圖)'는 웅대하고 씩씩한 계획이나 포부를 의미한다.
  • 북맨 운동은 펜실베이니아주 루터교 목사이자 YMCA 총무였던 프랭크 북맨의 개인적 종교 경험을 통해 탄생하고 발전했기에 그의 신앙 체험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힌다.
  • 북맨은 어린 시절부터 유아세례와 견신례를 거친 지극히 평범한 신앙인이었으나, 교역자를 준비하며 유명한 교역자가 되려는 웅대함과 그에 따른 부적임의 번민을 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2] 동창의 공격을 계기로 선택한 빈민 교회 사역과 청년 사업의 확장

그런데 어느날 그의 同窓[동창] 某[모]가 그를 評[평]하여 利己的[이기적] 野心家[야심가]라고 公公然[공공연]하게 攻擊[공격]한 일이 있었다. 이때 그는 분然[연]히 일어나 내가 實生活[실생활]로서 이를 反證[반증]하여 그를 부끄럽게 하겠다 하고 그때부터 깊이 決心[결심]한 바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남들이 다 싫어 버린 第一[제일] 어려운 敎會[교회]를 맡아보게 된 것이다. 그를 청빙한 교회의 請聘書[청빙서]는 자못 奇拔[기발]한 것이어서 『俸給問題[봉급문제]는 一切[일절] 未定[미정]입니다』 하는 文句[문구]가 明記[명기]되어 있었다. 建物[건물]도 없는 敎會[교회]로서 獻金額[헌금액]은 銅錢[동전]이 大部分[대부분] 總額[총액] 十七弗[17불] 넘는 때가 없었으니 「俸給問題未定[봉급문제미정]」은 率直[솔직]한 告白[고백]임에 틀림 없었다. 그러나 뿍맨은 平素[평소]의 決定[결정]대로 信仰[신앙]으로의 冒險[모험]을 試[시]하여 自己[자기]의 非利己的[비이기적] 生活[생활]을 實現[실현]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意味[의미]에서 躊躇[주저]없이 이 敎會[교회]의 請聘[청빙]을 受諾[수락]하였다. 그는 아무데도 곁눈 팔지 않고 熱心[열심]을 품어 敎會[교회]를 섬기었다. 그러는 中[중]에 누가 自己[자기]의 新築[신축]한 거릿집 한 채를 敎會[교회] 建物[건물]로 提供[제공]하였으므로 그는 이 집을 總本營[총본영] 삼아 家庭訪問[가정방문]과 個人傳道[개인전도]에 全力[전력]을 다하였다. 이 貧弱[빈약]한 敎會[교회]는 날로 자라 얼마 後[후]에는 「善[선]한 牧者[목자]의 敎會[교회]」라는 稱號[칭호]를 듣는 有數[유수]한 大敎會[대교회]로 發展[발전]되었다. 그는 이에 敎會[교회]의 附屬事業[부속사업]을 擴張[확장]시켜 一種[일종]의 靑年寄宿舍[청년기숙사]를 경영하였는데 이것이 널리 퍼져 靑年寄宿舍組合[청년기숙사조합]까지 成立[성립]되고 나중에는 純基督敎的[순기독교적] 社會舘[사회관]이 確立[확립]됨에 이르렀다. 그 동안 그는 이 靑年[청년]들과 同居同宿[동거동숙]할 期會[기회]를 많이 가져 여기서 靑年[청년]과 壯年[장년]을 取扱[취급]하는 妙方[묘방]을 얻었다.

  • '분연히(奮然히)'는 발끈 화를 내거나 용기를 내어 일어나는 모습을, '청빙(請聘)'은 정중히 초대하여 채용함을 의미한다.
  • 동창에게 이기적 야심가라는 공개적 공격을 받은 북맨은 실생활로 이를 반증하겠다는 결심을 품고, 봉급 일절 미정의 극도로 어려운 빈민 교회를 주저 없이 수락하여 헌신한 끝에 '선한 목자의 교회'라는 대교회로 발전시키고 청년기숙사와 사회관 사업까지 확장하였다.
  • 초기 사역에서의 성공과 청년 지도 경험이 그의 목회적 역량을 다지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3] 사업가 측과의 갈등으로 인한 사임과 방랑 생활 중 찾아온 심령의 위기

그러나 이렇게 事業[사업]이 擴張[확장]됨에 따라 그 經營[경영]과 統制[통제]가 또한 複雜多端[복잡다단]하게 되었음으로 이를 爲[위]하여 敎役者[교역자] 및 平信徒[평신도]로 組織[조직]된 委員會[위원회]가 생기게 되어 經營方法[경영방법] 一切[일절]은 온통 委員會[위원회]의 손에 옮겨지게 되었다. 五年間[5년간] 이렇게 經營[경영]해 오는 中[중] 한번은 豫算問題[예산문제]로 事業家側[실업가측]과 뿍맨과 意見[의견]이 相衝[상충]되여 結局[결국] 事業家側[사업가측] 委員[위원]의 命令[명령]에 絶對[절대] 順服[순복]하지 않으면 안될 形勢[형세]에 이르렀다. 뿍맨은 이 無理[무리]한 壓迫[압박]을 不肯[불긍]하여 斷然[단연]히 辭任[사임]하고 一種[일종]의 怨恨[원한]을 품은 채 放浪[방랑]의 生活[생활]로 옮기었다. 그는 歐羅巴[구라파] 各地[각지]를 巡遊[순유]하고 英國[영국]으로 돌아와 「켙윅」에 가서 一小敎會會集[일소교회회집]에 參席[참석]하였다. 그의 마음 가운데는 아직까지도 울분과 怨恨[원한]이 가득차 있었다.

  • '상충(相衝)'은 서로 맞부딪쳐 마주 됨을, '불긍(不肯)'은 마음에 내키지 않아 허락하지 않음을 뜻한다.
  • 사업 확장 이후 위원회(사업가측)와의 예산 마찰로 부당한 압박을 받은 북맨이 이에 불복하여 단연히 사임한 후, 유럽을 순유하며 울분과 원한을 품은 채 방랑 생활을 하던 중 영국의 캐스릭 소교회 집회에 참석하게 된 과정을 묘사한다.
  • 인간적 좌절과 분노가 그의 내면에 깊은 상처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4] 무명 부인의 단상과 십자가 환상을 통한 심령의 대전환 체험

그러나 그가 그 적은 敎會[교회]에 들어가 앉아있는 동안 그는 그의 心靈[심령]을 一變[일변]시키는 偉大[위대]한 信仰[신앙]의 體驗[체험]을 맛보게 된 것이다. 이제 뿍맨 自身[자신]의 經驗談[경험담]을 그대로 紹介[소개]하려 한다. 『작은 村敎會[촌교회], 午後[오후]의 特別[특별] 集會[집회]였다. 그 集會[집회]에서 이야기하는 이는 한 無名[무명]의 婦人[부인]! 거기에는 雄辯術[웅변술]도 說敎學[설교학]도 없었다. 다만 單純[단순]하고 眞摯[진지]한 座談式[좌담식] 이야기였으며 聽衆[청중]은 나(뿍맨)까지 넣어서 十七名[17명]이었다. 그 婦人[부인]은 그리스도의 十字架[십자가]에 對[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이때부터 알고 있던 敎理[교리], 우리 敎會[교회]가 다 믿고 나도 늘 배워 온 敎理[교리]였다. 그러나 이것이 이날 나에게 한 偉大[위대]한 事實[사실]로 化[화]하여졌다. 나는 이 작은 敎會[교회]에 들어갈 때 分裂[분열]된 心理[심리], 傲慢[오만], 利己[이기], 惡意[악의]를 가득 품고 있었다. 말하자면 基督敎[기독교] 敎職者[교직자]로서의 資格喪失者[자격상실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날 이 婦人[부인]의 單純[단순]한 談話[담화]는 나에게 十字架[십자가]를 事實[사실]로 나타내 보였다. 나는 忽然[홀연]히 十字架[십자가]에 목박힌 이의 痛烈[통렬]한 心魂[심혼]에 그대로 부닥치는 幻像[환상]을 보았다. 쳐다보는 主[주]의 낯에는 無限[무한]한 苦痛[고통]이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큰 深淵[심연]이 主[주]와 나 自身[자신]과의 사이에 가로 막혀 있음을 깨달았다. 幻像[환상]은 그 뿐이었다. 그러나 이때 나는 心神[심신]에 一種[일종]의 震動[진동]을 느꼈으며 强烈[강렬]한 生命[생명]의 波濤[파도]가 突然[돌연]히 내 머리에 뒤덮이는 것 같았으며 얼마 後[후]에는 眩惑的[현혹적]인 偉大[위대]한 靈的[영적] 振興感[진흥감]이 全身[전신]에 充滿[충만]하였다. 이제는 意志分裂[의지분열]의 感[감]도, 打算[타산], 論爭[논쟁]의 念[념]도, 抑鬱無情[억울무정]의 恨[한]도 雲散霧消[운산무소]되고 말았다. 그 瞬間[순간] 나에게는 全部[전부]를 받아들이려는 決心[결심]과 함께 强烈[강렬]한 感情[감정]의 물결이 지금껏 격리되었던 靈的[영적] 生命[생명]의 바다로부터 내 마음 가운데로 波濤[파도]쳐 들어옴을 느꼈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 있는 間隙[간극]을 채워 그 結果[결과]로 새 힘이 넘치는 새 生活[생활]을 맛보게 되었씀으로 나는 이 經驗[경험]을 어서 速[속]히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慾望[욕망]에 불타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 '진지한(眞摯한)'은 성실하고 절실함을, '운산무소(雲散霧消)'는 구름이 흩어지고 안개가 사라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 17명의 청중이 모인 작은 촌교회의 무명 부인이 전하는 소박한 십자가 담화를 들으며, 분열된 심리와 오만, 악의를 가득 품었던 북맨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고통과 자신 사이의 깊은 심연을 깨닫고 강렬한 영적 진흥감과 함께 내면의 모든 恨과 갈등이 눈 녹듯 사라지는 중대한 회심을 경험한다.
  • 이론적 교리에 머물렀던 십자가가 실존적 사실이자 생명의 파도로 다가오는 극적 전환점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5] 회개의 실천과 미국 위원들에 대한 사죄 편지 및 앙금의 해소

나는 곧 이때껏 내가 惡意[악의]를 품고 있던 美國[미국]의 委員[위원] 六人[6인]에게 편지로 이 經驗[경험]을 알리는 同時[동시]에 十字架[십자가] 아래에 선 나는 내 罪[죄] 밖에 다른 것 생각할 수 없음을 告白[고백]하였다. 편지마다 「榮光[영광]의 主[주]님 十字架[십자가]를 보면은」 云云[운운]의 아이작ㆍ왓즈의 詩句[시구]를 쓰고 그 아래다가 「나는 當身[당신]께 대하여 惡意[악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지금 나는 悔改[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만 그칩니다. 年[년] 月[월] 日[일] 푸랭크 敬具[경구]」라 하였다. 이 편지에 對[대]하여 아무에게도 回答[회답]은 안왔었다. 그러나 後[후]에 알아본 바에 依[의]하면 그들은 이 편지를 읽고 많은 感銘[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後[후]에 나는 美國[미국]에 돌아와서 聖誕節[성탄절] 때에 길가에서 생각지않은 中[중]에 그때 나를 第一[제일] 못견디게 굴던 번대머리 委員[위원]을 만났다. 나는 반갑게 가장 自然[자연]스럽게 「메리 크리쓰마쓰」하고 人事[인사]하였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땅에서 무슨 떨어뜨린 것이나 찾는 양을 하더니 반갑게 人事[인사]를 하고 내 마음 가운데에 조금도 꾸부러진 생각이 없음을 事實[사실]로 알아주었다.』

  • '경구(敬具)'는 편지 끝에 삼가 올린다는 뜻으로 쓰는 맺음말을 의미한다.
  • 체험 직후 과거 갈등을 빚었던 미국 위원 6인에게 자신의 악의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보내 감명을 주었으며, 귀국 후 성탄절 길가에서 자신을 가장 괴롭혔던 위원을 만나 가식 없이 자연스러운 인사를 나누며 마음의 앙금을 완전히 씻어내는 실천적 변화를 이뤄낸다.
  • 영적 체험이 개인의 내면적 감동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화해와 회개의 실천으로 이어졌음을 증명한다.


뿍맨 運動[운동]의 發展[발전] : 북맨의 외모와 런던·캠브리지 대학 참관실화 및 세계적 확산


[1] 북맨의 현대적 풍모와 증언 운동의 전개

뿍맨은 나이보다는 퍽 젊어 보이는 中年[중년]의 快男兒[쾌남아]로 키는 훨씬 크면서도 무게 있어 보이는 人物[인물]이다. 머리는 언제나 말끔하게 깎고 말숙하게 면도하고 眼鏡[안경] 쓰고 衣服凡節[의복범절]도 티하나 붙지 않게 한 淸爽快活[청상쾌활]한 現代的[현대적] 美國人[미국인]의 風貌[풍모]를 그대로 나타내는 사람이다. 언제나 快活[쾌활]하여 陰鬱[음울]한 氣分[기분]이 없으며 말소리는 낮으나 힘있고 特[특]히 俗語[속어]를 섞어 말할 때에 友情[우정]과 喜悅[희열]에 넘침을 느끼게 한다. 그는 自己[자기]의 經驗[경험]을 나누려는 熱情[열정]을 품고 靈導[영도]를 받는대로 사람들에게 體驗談[체험담]을 이야기 하였는데 거기에 큰 感化[감화]가 있어 듣는 사람마다 새 마음을 가지게 되었었다. 聖靈[성령]이 自己[자기]를 通[통]하여 막힘없이 役事[역사]하심을 깨달은 그는 곧 이에 使命[사명]을 느끼고 일하러 나섰다. 1915년으로 1919년까지에 그는 印度[인도]와 極東[극동]으로 巡廻[순회]하면서 이 證言運動[증언운동]을 試[시]하여 成果[성과]를 얻고 또 이 運動[운동]의 諸方式[제방식]을 組織的[조직적]으로 硏究陳述[연구진술]하였다. 1920年[년]과 1921年[년]에 英國[영국] 켐부릿지와 옥쓰포-드 兩[양] 大學[대학]에서 經驗[경험]을 나누는 運動[운동]을 試[시]하였다.

  • '청상쾌활(淸爽快活)'은 맑고 시원하며 활기 넘침을 의미한다.
  • 북맨은 세련된 외모와 유쾌한 성품, 그리고 속어를 섞어 쓰는 친근한 화법을 지닌 현대적 미국인의 풍모를 지녔으며, 성령의 영도를 받아 자신의 체험담을 나누는 증언 운동을 1915년부터 인도와 극동, 그리고 1920~1921년 영국 캠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으로 확산시키며 체계화했다.
  • 그의 독창적인 매력과 소통 방식이 초기 운동 전파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2] 캠브리지 대학 철학집회에서의 프랭크 북맨의 파격적 담화와 반응

이제 當時[당시] 이-튼 中學[중학] 敎師[교사]로 있던 (지금은 스컷트랜드의 그룹 運動[운동] 指導者[지도자]) 하밀톤 氏[씨]의 參觀實話[참관실화]를 紹介[소개]하려 한다. 『우리는 二週日[2주일]에 한번씩 開催[개최]하는 哲學集會[철학집회]에 이 켐부릿지에 온 美國[미국] 敎授[교수]를 招待[초대]하였다. 우리는 처음은 몹시 窮寒[궁한]한 氣分[기분]에 눌리어짐을 느끼었다. 哲學討論[철학토론]이니 만치 다들 몹시 꼬장꼬장한 낯으로 理論[이론]캐기에 눈을 붉히고 있었다. 밤 十一時[11시]가 되었다. 푸랭크는 그때까지 아무말 없이 앉아있었다. 그때 좌중은 프랭크에게 一座[일좌]의 談話[담화]를 請[청]하였다. 聽衆[청중] 中[중] 九十[90]퍼센트는 豫備將校[예비장교]로 있는 學生[학생]이오 最高官[최고관]이 少佐[소좌]였다. 二十一[21], 二歲[2세]의 勇士[용사]로서 다들 有能[유능]의 士[사]였다. 그 中[중]에는 競技[경기], 短艇[단정] 등 選手[선수]로 大學[대학]에 牛耳[우이]를 잡고 있는 者[자]도 몇 사람 있었다. 主日[주일]날 敎會[교회]에 出席[출석]하는 이는 極少數[극소수], 거의 없다고 해도 過言[과언]이 아닐만치 少數[소수]였다. 이 군인들은 포근한 팔 椅子[의자]에 푹석 들어 앉아서 卷煙[권연]의 보드러운 煙氣[연기]로 室內[실내]의 공기를 향기롭게 하며 상급인으로서의 점잖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랭크가 입을 열었을 때 空氣[공기]는 一變[일변]하였다. 그는 우리가 여태껏 論議[논의]하던 理論[이론]의 실마리를 찾아내어 이곳저곳 무늬를 놓으면서 變化[변화]한 生活[생활]로 들어간 사람들의 事實談[사실담]을 이야기 하였다. 그 이야기는 抽象的[추상적] 神學的[신학적]인 것이 아니요 우리와 꼭 같은 人生[인생]들의 實際[실제] 變化[변화]한데 對[대]한 事實談[사실담]이기 때문에 우리의 興味[흥미]는 곧 이에 쏠리게 되였다. 그가 萬一[만일] 說敎[설교]나 向上的[향상적] 警告[경고]나 번쇄한 哲學理論[철학이론]이나를 말했다면 우리는 다들 鼻笑[비소]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이런 座席[좌석]에서 이런 이야기는 期待[기대] 以外[이외]의 새것, 적어도 新鮮[신선]한 것이었다. 座中[좌중]은 哲學理論[철학이론] 같은 것은 다 잊어버렸다. 돌아올 때 우리는 默默[묵묵]한 가운데 各其[각기] 自己[자기]를 살피어 「그 사람 너 어떻게 생각하니?」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거기 疑問符[의문부]를 붙혀두고 그쳐 버리기에는 너무나 깊은 感銘[감명]을 받았다.

  • '우이를 잡다'는 어떤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고 뛰어나게 활동함을 의미한다.
  • 철학 토론으로 딱딱했던 캠브리지 대학의 모임에서 북맨은 추상적 신학 이론 대신 삶이 변화된 사람들의 생생한 실제적 사실담을 나누어, 예비장교들과 운동 선수 등 냉냉하던 청중의 마음을 깊이 사로잡고 엄청난 감명을 안겨주었다.
  • 이론적 설교보다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다루는 증언이 지적 계급에게 지니는 설득력을 잘 보여준다.


[3] 옥스퍼드 대학으로의 확산과 무신론자들의 개심 및 영적 포화상태

그 中[중] 第一[제일] 默重[묵중]한 親舊[친구]가 푸랭크를 朝飯[조반]에 請[청]하자고 하여 그대로 하였다. 우리는 그가 「兄[형]님 靈魂[성혼]은 지금 어떤 形便[형편]에 있습니까?」하고 常套的[상투적] 牧師[목사] 냄새를 피우나 하고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그런 말도 안하고 不自然[부자연]스러운 言行[언행]은 조금도 찾지 못하였다. 그는 어떤 未亡人[미망인]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 未亡人[미망인]이 그에게 對[대]하여 「下女[하녀]가 물건 훔쳐가는 건 어떻게 處置[처치]하면 좋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그의 對答[대답]은 「당신 最近[최근]의 盜賊[도적]질 하기는 언제였읍니까?」 하는 것이었다는 이야기. 우리는 異常[이상]하게 各者[각자]의 罪[죄]에 눈뜨게 되었다. 이때 켐부릿지에는 벌써 세 사람의 改心者[개심자]가 있었다. 푸랭크는 이 세 사람을 옥쓰포-드로 데려가다가 우리와 함께 週末[주말]을 지내게 하였다. 이 세 학생은 自己[자기]네의 새로운 心境[심경]을 조금도 꾸미는 것 없이 人情[인정]답고도 自然[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中[중]에 한 사람은 럭비 選手[선수]였는데 그는 옥쓰포-드의 學生[학생]들과 어깨를 끼고 네모난 運動場[운동장] 周圍[주위]를 散策[산책]하며 이야기하였다. 그는 우리가 二年[2년] 동안이나 애써서 成就[성취]한 友誼[우의] 以上[이상]의 親愛[친애]와 理解[이해]를 며칠 동안에 이 옥쓰포-드 學生[학생]들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이 다녀간 後[후]부터 옥쓰포-드에서는 몇 사람씩 한 덩어리 되어 運動場[운동장]을 이리저리 거닐며 이 이야기만 論議[논의]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이제 議論[의론]에 끄치고 말지는 않았다. 無神論者[무신론자], 不可知論者[불가지론자]들의 數人[수인]이 아주 변해버렸다. 이때부터 大學全體[대학전체]에는 一種[일종] 異常[이상]한 期待[기대]가 彌漫[미만]하게 되였다. 云云[운운]』 이렇게 「風滿樓[풍만루]」 格[격]으로 靈的[영적] 飽和狀態[포화상태]에 達[달]한 이 大學[대학]에서는 「이때부터 生活改變者[생활개변자]」가 續出[속출]하며 이 學生[학생]들이 各其[각기] 흩어져 가는 곳마다 이 運動[운동]이 일어나서 數年來[수년내] 全世界的[전세계적]으로 問題[문제]된 것이다.

  • '풍만루(風滿樓)'는 '비바람이 몰아치기 전에 바람이 누각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큰 사건이나 변화가 일어날 조짐을 의미한다.
  • 상투적 권면 대신 일상의 예리한 도덕적 자각을 일깨우는 북맨의 대화 방식은 캠브리지와 옥스퍼드 학생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이 개심하며 대학 전체가 영적 포화상태에 이르러 수많은 '생활개변자(Life Changer)'가 배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 지성인 공동체 내에서 인격적 교감과 죄의 자각을 통한 실천적 신앙 운동의 파급력을 입증한다.


[4]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 극복과 극적 화해의 현장

오늘 全世界[전세계] 大都市[대도시]치고서 이 運動[운동]이 多少[다소] 感化[감화]를 주지 않은 데가 없지마는 特[특]히 成功[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데는 南阿[남아]인데 1928年[년]에 옥쓰포-드에서 拳鬪[권투] 主將[주장]으로 있던 學生[학생]이 同志[동지] 七人[7인]과 더불어 小團體[소단체]를 組織[조직]하여 가지고 主要[주요] 都市[도시]를 訪問[방문]한데서 이 運動[운동]의 感觸[감촉]을 보게 된 것이다. 그 後[후] 이 運動[운동]이 크게 發展[발전]되어서 그 結果[결과]로 人種差別[인종차별]이 第一[제일] 苛酷[가혹]한 南阿[남아]에서도 百餘[백여]의 英人[영인], 阿人[아인], 印度人[인도인], 和蘭人[화란인] 等[등]이 一齊[일제] 起立[기립]하여 主[주]안에서 아무 差別愚劣[차별우열]이 없음을 宣言[선언]하고 絶對友愛[절대우애]를 宣誓[선서]하는 等[등]의 劇的[극적] 場面[장면]까지 보게 되었다.

  • '남아(南阿)'는 남아프리카를, '아인(阿人)'은 아프리카인을 의미한다.
  • 1928년 옥스퍼드 권투 주장 출신 학생을 포함한 소단체가 남아프리카를 방문하면서 이어진 운동의 결과, 인종 차별이 가장 가혹했던 곳에서 영국인, 아프리카인, 인도인, 네덜란드인 등 다양한 인종이 다 함께 일어나 주 안에서 차별이 없음을 선언하고 절대우애를 서약하는 극적 장면이 연출되었다.
  • 신앙 운동이 사회적·인종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초국가적 화해의 능력을 발휘했음을 보여준다.


[5] 캐나다 몬트리올 상륙과 명사들의 참여 및 사회적 대성황

캐나다에는 1932年[년] 10月[월] 21日[일]에 몬트롤에 上陸[상륙]한 그룹의 一團[일단]으로 말미암아 이 運動[운동]이 始作[시작]되었다. 그 때의 團員[단원]들은 그야말로 齊齊[제제] 名士[명사]여서 푸랭크ㆍ뿍맨을 비롯하여 월터 윈함 卿[경, Sir Walter Winpham] 뜨루리로우 陸軍中將[육군중장, Vice general Drury Lowe] 前[전] 南阿長老敎會[남아장로교회] 總會長[총회장] 맥밀렌 牧師夫妻[목사 부처, Rev. E. Macmillan and Mrs. Macmillan] 실레시아의 본크래몬 氏[씨, Frank von Cramon] 前[전] 에딘바라의 共産主義[공산주의] 指導者[지도자] 쩨임스ㆍ와트 氏[씨, Mr. James Watt] 和蘭[화란]의 본 헥케렌 男爵夫人[남작부인, Baroness Lillan von Heeckeren] 等[등]과 옥스포-드의 男女靑年[남녀청년] 多數[다수]와 米國[미국]의 男女[남녀] 等[등] 合[합] 四, 五十名[4, 50명]의 多數[다수]였다. 이때에는 벌써 이 運動[운동]이 어느 한 구석에서 되는 일이 아니오 전 世界的[전세계적]으로 큰 衝動[충동]을 준 때 이므로 캐나다 總督[총독] 以下[이하] 各新聞社[각신문사] 社會及[회사급] 敎會團體[교회단체]에서 盛大[성대]한 歡迎[환영]을 하였으며 많은 生活改變者[생활개변자]를 내어서 어떤 出版業者[출판업자]는 二十五年間[25년간] 關稅脫稅額[관세탈세액] 一萬二千弗[2만2천불]을 政府[정부]에 自白[자백] 納付[납부]한 일 其他[기타] 이 비슷한 일이 많이 생기는 逸話[일화]를 남기게 되었다. 토론토日報[일보](Toronto Daily Mail)의 記事[기사]에 『三百餘名[3백여명]의 敎役者[교역자], 十數名[수십명]의 國會議員[국회의원], 二十餘名[20여명]의 第一類[제일류] 財界名士[재계명사]를 비롯하여 數千[수천]의 토론토 市民[시민]은 當夜[당야] 「킹 에드와-드」 호텔 上層集會室[상층집회실]로 雲集[운집]하였다. 터 놓을 수 있는 隣室[린실]은 다 헤쳤으나 곧 立錐[입추]의 餘地[여지]가 없게 되고 길 건너便[편], 센트 쩨임스 敎堂[교당]을 열어 거기에도 瞬息間[순식간]에 門[문]어구까지 차고 넘쳤다. 그리하여 未曾有[미증유]의 大會衆[대회중]이 모여서 세班[반]에 나누어 그룹員[원]들의 새 生活[생활] 찾은 單純[단순]한 이야기를 傾聽[경청]하였다. 云云[운운]』한 것을 보면 그 盛況[성황]이 어떠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제제(齊齊)'는 가지런하고 훌륭함을 의미한다.
  • 1932년 캐나다 몬트리올에 상륙한 북맨 그룹은 영국 해군 장독, 장로교 총회장, 전직 공산주의 지도자, 귀족 남작부인 등 각계 각층의 저명한 명사들로 구성되었으며, 캐나다 총독과 언론, 교회의 환영 속에 25년간의 관세 탈루 자백 등 자발적 회개의 일화를 남기며 토론토 대집회에 수천 명의 인파를 운집시키는 폭발적 성황을 거두었다.
  • 월터 윈덤 경(Sir Walter Windham, 1868~1942). 문헌의 ‘Winpham’은 Windham의 오기이다. 영국의 영웅적인 해군 장교이자 영국 초기 항공(비행) 역사의 개척자이다. 영국 왕실 통신관(King's Messenger)을 지냈으며, 세계 최초의 항공 우편 서비스를 시도한 인물로 유명하다. 노년에 북맨의 옥스퍼드 그룹 운동에 헌신하며 전 세계 순회 전도에 동행했다.
  • 시드니 드루리-로우 제독(Vice-Admiral Sidney Drury-Lowe, 1871~1945). 문헌에는 ‘육군중장’으로 번역되었으나 실제로는 영국 왕립 해군의 해군 중장(Vice-Admiral) 출신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고위 장성으로, 퇴역 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에서 일하다가 옥스퍼드 그룹 운동을 접하고 영적 각성을 경험했다. 해군 제독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삶을 간증하는 모습은 당시 캐나다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 에비 맥밀런 목사 부부(Rev. Ebenezer Macmillan). 남아프리카 연방 장로교회(South African Presbyterian Church)의 총회장을 지낸 스코틀랜드 출신의 저명한 성직자이다. 북맨이 192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했을 때 깊은 감명을 받고 운동에 합류하였으며, 부인이 함께 캐나다 캠페인에 동행했다.
  • 프랑크 폰 크라몬(Frank von Cramon). 옛 독일제국의 귀족 영지였던 실레시아(Silesia) 출신의 독일 귀족 가문 청년이다. 그의 어머니는 제1차 세계대전 독일 육군 중장(아우구스트 폰 크라몬)의 부인인 ‘모니 폰 크라몬(Moni von Cramon)’으로, 북맨과 매우 깊은 영적 교류를 나누며 독일 내 옥스퍼드 그룹 운동을 이끌었던 핵심 인물이었다. 프랭크는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국제 단원으로 캐나다에 동행했다.
  • 제임스 와트(James Watt).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딘바라) 지역에서 공산주의 노동운동을 이끌던 과격파 정치 지도자였다. 그러나 옥스퍼드 그룹을 만난 뒤 “계급투쟁과 혁명보다, 사람의 내면과 도덕이 먼저 변해야 진정한 사회 개혁이 가능하다”고 깨닫고 공산주의를 버린 뒤 기독교 신앙 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그의 간증은 1930년대 지식인들과 노동계에 극적인 사례로 자주 선전되었다.
  • 릴리안 폰 헤이케렌 남작부인(Baroness Lilian von Heeckeren, 1883~1982). 화란(네덜란드)의 명문 귀족 가문 출신으로, 네덜란드 왕실의 궁정 간부였던 헤이케렌 남작의 딸이다. 네덜란드 사회의 화려한 사교계 생활을 회의적으로 느끼던 중 북맨을 만나 철저한 삶의 변화를 겪었고, 이후 옥스퍼드 그룹 운동을 네덜란드와 유럽 최고위층에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 이 운동이 단순한 학생 운동을 넘어 당대 사회의 지성계와 상류층, 나아가 대중 전체를 흔드는 거대한 세계적 부흥 운동으로 자리잡았음을 증명한다.


뿍맨 運動[운동]의 內容[내용] : 신학 논쟁의 지양과 절대 복종, 정사의 시간, 그리고 사절대(四絶對)의 윤리적 표준


[1] 이론과 신학 논쟁의 거부 및 삶을 통한 변증

저들은 神學[신학]을 論[논]하지 않으며 理論[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오직 生活[생활]로 하여금 모든 것을 辨證[변증]하게 한다. 그러므로 뿍맨 運動[운동]을 正當[정당]하게 理解[이해]함에는 무엇보다도 그네들의 生活[생활]을 살필 수 밖에 他途[타도]가 없는 것이다.

  • '변증(辨證)'은 사실이나 논리를 증명함을, '타도(他途)'는 다른 길을 의미한다.
  • 북맨 운동은 추상적인 신학이나 이론을 논하지 않고 오직 실제적인 삶을 통해 모든 것을 증명하려 하므로, 이 운동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방식을 살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강조한다.
  • 교리적 논쟁보다 삶의 실천과 행실을 중시하는 운동의 실용적이고 행동 중심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2] 초대교회 모방과 성경 대조 및 특별 묵시(영도)에의 의존

그러면 뿍맨主義[주의] 團圓[단원]들은 어떤 規範[규범]하에서 어떤 方式[방식]의 生活[생활]을 하는가. 저들은 事事件件[사사건건]에 初代敎會[초대교회]를 模倣[모방]하므로 그 理想[이상]을 삼는다. 저들은 우선 하나님의 뜻에 絶對服從[절대복종]하겠다는 態度[태도]로 그 生活[생활]을 始作[시작]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첫째로는 성경에 써 있는 敎訓[교훈]과 우리의 生活相[생활상]을 對照[대조]해 봄으로 因[인]하여 우리 生活[생활]을 指導[지도]하시는 하나님의 大體[대체]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現代[현대]의 複雜多端[복잡다단]한 生活[생활]에 있어서는 不期[부기]의 事變[사변], 善惡[선악] 어느 것이라고도 미리 斷定[단정]할 수 없는 일, 우리의 理性[이성]으로서 判斷[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事件[사건]이 無數[무수]히 닥쳐오는 것이다. 이런 때에는 부득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黙示[묵시]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初代敎會[초대교회]에 있어서 빌립이 광야에 나아가 구스 女王[여왕]의 宦官[환관]을 만난 것이라든지 바울이 아시아 道[도]로 가지 못하고 마게도니아로 가게된 것 같은 것이 다 「特別黙示[특별묵시]」에 屬[속]한 것이다. 이 特別黙示[특별묵시]는 지금에 있어서도 하나님 앞에 自己[자기]를 아주 내어놓고 그에게 絶對[절대] 服從[복종]하려는 態度[태도]를 가진 信者[신자]에게는 조금도 例外[예외]없이 나타난다. 이것이 뿍맨團員[단원]들의 信仰[신앙]이오 또 體驗[체험]이다.

  • '부기(不期)'는 예상하지 못함을, '묵시(默示)'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나 인도하심을 뜻한다.
  • 이들은 사사건건 초대교회를 모방하여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태도로 삶을 시작하며, 일반적인 성경 교훈과의 대조뿐만 아니라 이성의 판단을 넘어선 복잡다단한 현실 속에서 빌립과 바울의 사례처럼 특별한 묵시(인도)를 구하고 경험하는 것을 신앙의 핵심으로 삼는다.
  • 초대교회의 영적 직관과 초자연적 인도를 현대 삶 속에서도 그대로 재현하려는 신앙적 태도를 드러낸다.


[3] 정사의 시간(Quiet Hour)과 수첩에 기록하는 영도(Guidance)의 실천

이리하여 저들은 每日[매일] 아침 또는 무슨 必要[필요]한 事件[사건]이 있을 때마다 「靜思[정사]의 時間[시간]」[Quiet hour]을 가진다. 저들은 聖經[성경]을 읽고 祈禱[기도]하고 手帖[수첩]과 鉛筆[연필]을 들고서 「靈導[영도]」(Guidance)를 기다린다. 오늘 누구를 찾아볼 것인가? 무슨 일할 것인가? 이 일은 어떻게 判斷[판단]할 것인가? 等[등]에 對[대]하여 靈導[영도]를 기다려 받는대로 手帖[수첩]에 記錄[기록]해 가지고 곧 實行[실행]한다.

  • '정사(靜思)'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생각함을, '영도(Guidance)'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 『신학지남』에는 “「靈導[영도]」(Guidance)”, 『낙수』에는 “「靈導[영도]」(Cuidance)”로 표기되었는데 『낙수』가 G를 C로 오기한 것이다.
  • 매일 아침이나 주요 사건이 있을 때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수첩과 연필을 들고 '정사의 시간'을 가치며, 만날 사람과 할 일 등에 대한 영도를 수첩에 기록한 즉시 실천에 옮기는 구체적인 영적 수련 루틴을 지닌다.
  • 추상적 경건에 머물지 않고 일상의 실천적 지침을 매일 기도로 확정하는 엄격한 영적 훈련 방식을 보여준다.


[4] 이교적 신비주의를 막기 위한 네 가지 윤리적 표준 '사절대(四絕對)'

그러나 다만 이런 것 만에 置重[집중]한다면 結局[결국] 異敎的[이교적] 神秘主義[신비주의]의 轍[철]을 밟음에 지나지 못할 것이므로 저들은 論理的[윤리적] 要素[요소]를 高調[고조]하여 네 가지 倫理的[윤리적] 標準[표준]을 세워 가지고 自己[자기]의 良心[양심]을 點檢[점검]한다. 이 네 가지 標準[표준]이란 것은 所謂[소위] 「四絶對[4절대]」라는 것으로 「絶對正直[절대정직]」(Absolute Earnesty) 「絶對純潔[절대순결]」(Absolute Purity) 「絶對非利己[절대비이기]」(Absolute Unselfishness) 「絶對愛[절대애]」(Absolute Love)가 그것이다. 即[즉] 言思行[언사행]에 至極純眞[지극순진]하여 꿈임과 거짓이 없게 하며 性的關係[성적관계]나 金錢關係[금전관계]에 있어서 純潔無垢[순결무구]하게 하며 무슨 사업에 나설 때나 운동할 때 利己的[이기적] 野望[야망]을 가지고 하지 말며 모든 사람, 自己[자기]의 원수까지라도 씻은 듯이 容恕[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對[대]하자는 것이다. (以上[이상] 뿍맨의 宗敎經驗[종교경험] 參照[참조])

  • '철(轍)'은 수레바퀴 자국으로 이전의 그릇된 전례를, '사절대(四絕對)'는 절대 정직, 절대 순결, 절대 비이기, 절대 사랑의 네 가지 도덕적 척도를 뜻한다.
  • 주관적 영도 추구가 자칫 이교적 신비주의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언행의 진실성(절대 정직), 성적·금전적 무구함(절대 순결), 이기적 야망의 배제(절대 비이기), 원수까지 용서하는 사랑(절대 사랑)이라는 '사절대'의 엄격한 윤리적 표준으로 양심을 끊임없이 점검한다.
  • 신비적 영성 수련이 독단으로 빠지지 않도록 철저한 도덕적 실천 윤리를 장치로 마련해 둔 북맨 운동의 균형 감각을 증언한다.


뿍맨 運動[운동]의 內容[내용] : 죄와의 직면, 공석에서의 자백, 그리고 배상의 실천


[1] 삶의 표준 앞에 드러나는 일상의 광범위한 죄와 해방의 원리

그러면 이 標準[표준]에 비추어 보아 거리낌이 있으면 어찌할까? 이에 우리는 「罪[죄]」와 直面[직면]하게 된다. 都會[도회]의 罪[죄], 異敎徒間[이교도간]의 罪[죄], 基督敎徒間[기독교도간]의 罪[죄], 銀行[은행], 會社[사회], 工場[공장], 家庭[가정], 敎壇[교단], 大學[대학], 神學校[신학교], 가는 곳마다 罪[죄]는 그 魔手[마수]를 벌려 움켜잡고 있다. 罪[죄]는 至極狡猾[지극교활]하여 생각지 못한 틈으로 새어 들어 온다. 說敎家[설교가]는 이를 攻擊[공격]하면서 自己[자기]는 이를 征服[정복]하지 못함이 罪[죄]다. 異敎徒[이교도]는 享樂[향락]의 잔과 함께 罪[죄]를 마신다. 크리스챤은 이를 보고 苦笑[고소]하며 公公然[공공연]하게 叱責[질책]하는 것이 罪[죄]다. 罪[죄]에 對[대]하여 賢明[현명]한 忠告[충고]를 줄 수 있는 이는 極[극]히 드물다. 이를 征服[정복]하는 이 方略[방략]을 보여주는 이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寥寥[요요]하다. 罪[죄]! 「罪[죄]에서 解放[해방]되는 程度[정도]는 解放[해방]되려는 慾求[욕구]에 正比例[정비례]한다. 하나님을 思慕[사모]하는 생각이 弱[약]하기 때문에 罪[죄]의 暴君[폭군]을 모셔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萬一[만일] 全心靈[전심령]을 받들어 正義[정의]를 渴望[갈망]한다면 罪[죄]는 忽然[홀연]히 그 자취를 감출 것이다」 하고 프랭크는 말하였다.

  • '마수(魔手)'는 남을 해치려는 나쁜 손길을, '요요(寥寥)'는 쓸쓸하고 드묾을 의미한다.
  • 윤리적 표준에 비추어 볼 때 도회, 가정, 교회, 심지어 신학교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곳에 교활한 죄가 만연해 있음을 직면하게 되며, 죄에서 해방되는 정도는 하나님을 향한 사모와 정의를 갈망하는 욕구에 비례하므로 전심으로 정의를 갈구할 때 죄는 사라진다고 북맨은 강조한다.
  • 일상의 모든 영역에 파고든 죄의 실상을 고발하고, 영적 갈망을 통한 내적 해방의 원리를 제시한다.


[2] 공석에서의 죄 고백이 주는 세 가지 유익과 배상의 의무

그리하여 프랭크는 「罪[죄]를 미워하라」 「罪[죄]를 告白[고백]하라」 「罪[죄]를 버리라」하고 忠告[충고]한다. 그 中[중]에서 이 運動團圓[운동단원]들이 特[특]히 重要視[중요시]하여 힘써 實行[실행]하는 것은 「公席[공석]에서 罪[죄]를 告白[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을 實行[실행]함에는 莫大[막대]한 勇氣[용기]를 要[요]한다. 그러나 實行[실행]만 하면 罪[죄]를 이기는 데에 가장 큰 效果[효과]를 나타낸다. 于先[우선] 罪[죄]를 다시는 짓지 않으려는 決心[결심]이 念頭[염두]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 그것은 罪[죄]를 또 다시 짓는다면 또 다시 그 不愉快[불유쾌]한 告白[고백]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을 두려워 함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他人[타인]을 警告[경고]하는 것이 된다. 셋째로는 良心[양심]이 解放[해방]을 받고 淸潔[청결]해짐을 느끼며 平和[평화]와 喜悅[희열]을 맛보게 된다. 勿論[물론] 罪自體[죄자체]는 그리스도의 十字架[십자가]에 依[의]하여 淨潔[정결]함을 얻은 것이지마는. 이런 信仰[신앙]위에서 저들은 日常生活[일상생활] 中[중] 罪[죄]를 犯[범]한 때에는 하나님 앞에 悔改[회개]할 뿐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自白[자백]하고야 마음 놓는다. 罪[죄]를 自白[자백]할 뿐 아니라 自己[자기]의 罪過[죄과]로 말미암아 害[해]받은 相對方[상대방]에 對[대]하여 그 罪過[죄과]를 「賠償[배상]」해야 할 것을 主張[주장]한다. 罪[죄]를 容恕[용서]함은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이나 損害[손해]를 賠償[배상]하는 것은 悔改[회개]한 者[자]의 義務[의무]다. 悔改[회개]한 稅吏[세리] 사캐오가 토색한 것이 있으면 四倍[4배]로 하여 갚겠나이다 한 것이라든지 남에게 罪犯[죄범]한 것이 있으면 그 物件[물건] 代價[대가]에 五分之一[오분지일]을 더 加[가]하여 그에게 주어 賠償[배상]하라 한 民數記[민수기] 5장 6, 7절, 規例[규례]라던지가 다 이를 가르침이다.

  • '염두(念頭)'는 마음에 생각하고 있는 지점을 의미한다.
  • 북맨 운동 단원들은 죄를 미워하고 버릴 뿐만 아니라 막대한 용기가 필요한 '공석에서의 고백'을 실천하는데, 이는 재범 방지, 타인에 대한 경고, 양심의 평화와 희열이라는 세 가지 큰 효과를 낳으며, 나아가 하나님 앞의 회개에 그치지 않고 사개오의 예처럼 피해를 입은 상대방에게 구체적인 손해를 '배상'하는 것을 회개한 자의 의무로 강력하게 주장한다.
  • 신앙적 고백이 개인의 내면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앞의 자백과 실질적인 물질적·도덕적 배상 행위로 완성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3] 북맨 자신의 철도회사 할인권 부정사용 고백과 중국 가정집회의 파장

이에 對[대]하여 프랭크는 自己[자기]의 쓰린, 그러나 기쁜 經驗[경험]을 이야기 한 것이 있다. 『中國[중국]에서도 가장 景勝[경승]의 地[지]인 揚子江岸[양자강안] 어느 谿谷[계곡]의 某[모] 中國[중국] 外交官[외교관]의 집에서 열린 宗敎的[종교적] 家庭集會[가정집회]에 列席[열석]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이 景勝[경승]의 地[지]에서 靈肉[영육] 아울러 喜悅[희열]과 平和[평화]에 잠겨서 이틀을 지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나는 甚[심]히 不愉快[불유쾌]해지며 「辨償[변상]」 「辨償[변상]」 「辨償[변상]」하는 생각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암만 이 생각을 물리치려고 애써도 漸漸[점점] 더해지며 아주 못견디게 되었다. 事件[사건]은 某[모] 鐵道會社[철도회사]의 割引券[할인권] 使用[사용]에 關[관]한 것이었는데 나는 不正當[부정당]하게 特權[특권]을 獲得[획득] 使用[사용]한 것이었다. 金額[금액]을 따져가지고 辨償[변상]하려 하였으나 그 會社[회사]의 副總裁[부총재]하고는 여러번 會食[회식]까지 하고 또 尊敬[존경]받는 處地[처지]인데 그가 이것을 알면 내 面目[면목]이 무어란 말인가. 차라리 匿名[익명]의 편지와 함게 돈을 보내지 하고 편지쓰기 始作[시작]하였다. 그러나 편지 써보았자 조금도 良心[양심]에 滿足[만족]이 없었다. 에라 할수 없다. 하고 赤裸裸[적나라]하게 고백의 편지를 써서 내 이름을 똑똑하게 署名[서명]한 다음에 小切手[소절수]와 함께 부치고야 마음이 편안하였다. 이제 이것을 이 中國[중국] 外交官[외교관]과 및 面目[면목]을 生命[생명]으로 아는 모든 中國[중국] 紳士[신사]들 앞에서 所謂[소위] 靈的[영적] 指導者[지도자]로 推仰[추앙]을 받는 내가 참아 告白[고백]할 수가 있나! 하고 얼마 躊躇[주저]하다가 主[주]의 命令[명령]인지라 結局[결국] 大勇氣[대용기]를 내여 이것을 그들 앞에 告白[고백]하였다. 告白[고백]은 그 座中[좌중]에 異樣[이양]의 感化[감화]를 일으켰다. 病[병]으로 療養[요양]왔던 某[모] 中國人[중국인]은 自己[자기]의 預金[예금] 全部[전부]를 털어내어 前[전]에 不當取得[부당취득]한 것을 淸算[청산]하고 悔改[회개]의 實蹟[실적]을 나타내었다. 中國[중국]에 와서 敎鞭[교편]잡고 있는 某[모] 瑞典婦人[서전부인]은 本國[본국]에서 僞證事件[위증사건]으로 말매암아 避身[피신]하여 이리 왔었는데 이 때에 그 關係[관계]를 全部[전부] 바로잡고 새 生活[생활]로 옮기었다.

  • '경승(景勝)'은 경치 좋고 아름다운 곳을, '적나라(赤裸裸)하게'는 숨김이나 가림이 없이 아주 솔직하게를 뜻한다.
  • 북맨은 과거 철도회사 할인권 부정 사용 사건으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익명 대신 실명으로 소첼수와 함께 변상금을 부치고 나서도, 중국 양자강변 가정집회에서 영적 지도자로서의 체면을 내려놓고 이 부끄러운 과오를 대중 앞에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 지도자의 철저한 자기 고백이 좌중에 강력한 감화를 일으켜 다른 중국인과 서전(스웨덴) 부인까지 부당 취득물 청산과 위증 사건 해결이라는 연쇄적인 회개의 실적을 낳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4] 배상 실천을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 약동

그 外[외]에도 이런 實例[실례]가 數三[수삼]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云云[운운]』 이런 經驗[경험]으로 보아 「賠償[배상]의 實行[실행]」은 至大[지대]한 壓力[압력]을 가지고 自己[자기]와 다른 이를 그리스도에게로 밀어가는 것임을 疑心[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經路[경로]를 밟아 저들은 罪[죄]의 生活[생활]에서 떠나 새 生命[생명]의 躍動[약동]을 느끼는 새 生活[생활]노 들어간다. 

  • '지대한(至大한)'은 매우 크고 대단함을 의미한다.
  •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배상의 실행'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그리스도께로 강력하게 이끄는 거대한 압력과 영향력임을 확신하게 되며, 이 과정을 거쳐 비로소 죄의 삶을 완전히 떠나 새로운 생명이 약동하는 삶으로 진입하게 된다.
  • 철저한 도덕적 배상과 실천적 회개가 동반될 때 진정한 신앙적 갱신과 새 생명의 역사가 완성된다는 결론을 맺는다.


뿍맨 運動[운동]의 內容[내용] : 개변된 생활과 분급, 가정회담, 그리고 사회적·경제적 규범


[1] 개변된 생활의 분급과 일소불주의 순례자 생활

이것을 저들은 「改變[개변]된 生活[생활]」(Changed Life)이라고 부른다. 「改變[개변]된 生活[생활]」 即[즉] 新生[신생]을 體驗[체험]한 사람은 혼자서만 즐길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이 事實[사실]을 나눠줄 義務[의무]가 있다. 이것을 「分給[분급]」(Sharing)이라 한다. 이것은 恩惠[은혜]받은 것은 간증하는 것이니 이 團員[단원]들 事業[사업]의 가장 重要[중요]한 部分[부분]이다. 저들은 몇사람씩 小旅行團[소여행단]을 組織[조직]해 가지고 聖靈[성령]의 引導[인도]하는 대로 이리 저리 이 나라 저 나라 一所不住[일소불주]의 巡禮者[순례자] 生活[생활]을 하며 가는 곳마다 私的[사적] 會談[회담] 즉 「家庭集會[가정집회]」(House Party)를 연다.

  • '분급(分給)'은 나누어 줌을, '일소불주(一所不住)'는 한곳에 머물지 아니함을 뜻한다.
  • 신생을 체험한 이들이 개변된 생활을 혼자 누리지 않고 타인에게 나누는 것을 '분급'이라 부르며, 단원들은 소여행단을 조직해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한곳에 머물지 않는 순례자로서 이국을 다니며 곳곳에서 사적 회담인 '가정집회'를 개최한다.
  • 영적 체험이 개인의 만족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간증과 순례 전도로 확장되는 공동체의 선교 방식을 보여준다.


[2] 의식적 예배를 지양하고 자연스러운 담소와 경험담을 나누는 가정회담 방식

사람들은 親[친]한 동무의 집에 이야기 하러 모혀오는 氣分[기분]으로 所定[소정]의 호텔이나 私家[사가]에 모여온다. 그러면 거기서는 무슨 順序[순서]를 짜가지고 法[법]대로 莊重[장중]하게 儀式的[의식적] 禮拜[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거저 通商[통상] 때와 같이 談笑[담소] 話樂[화락]하며 團員中[단원중] 누구나 조용히 靜思[정사]의 時間[시간]을 通[통]하여 靈導[영도]를 받는대로 自己[자기]의 經驗談[경험담] 또는 다른 同志[동지]의 改變[개변]된 生活[생활]을 事實[사실] 그대로 이야기한다. 이어서 두서너 사람이 各其[각기] 같은 方式[방식]의 實驗談[실험담]을 이야기하고 무슨 묻는 것이 있으면 아주 純直率直[순직솔직]하게 友情[우정]을 가지고 彼此應答[피차응답], 거기에는 雄辯術[웅변술]로 鍊鍛[연단]한 說敎[설교]도 없고 秋毫之末[추호지말]을 갈라내는 理論[이론]도 없다. 그저 터놓고 座談[좌담]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自然[자연]히 異常[이상]한 感化力[감화력]이 있어 參與[참여]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대로 黙過[묵과]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그들의 「經驗[경험]나누는」 方式[방식]이며 이 일을 通[통]하여 聖神[성신]은 많은 사람의 生活[생활]을 改變[개변]하는 까닭에 저들은 이런 團員[단원]들을 「生活改變者[생활개변자]」(Life Changer)라고 부른다.

  • '화락(和樂)'은 화목하고 즐거움을, '추호지말(秋毫之末)'은 가을철 털끝처럼 아주 사소하고 작은 부분을 의미한다.
  • 가정집회는 장중한 의식적 예배 대신 친한 동무의 집에 모인 듯 담소하며 정사의 시간을 통해 얻은 경험담과 실험담을 순직하고 솔직하게 나누는 좌담 형식으로 진행되며, 이론이나 웅변 대신 이 소박한 나눔 속에 내재된 이상한 감화력이 참여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생활개변자'를 만들어낸다.
  • 형식적 종교 의식을 탈피하고 인격적 교감과 진솔한 삶의 나눔을 통해 역사하는 생생한 영적 감화력을 역설한다.


[3] 사회적 제도의 부조리와 복음의 소유권 규범 및 실천적 갱신

그러나 지금과 같이 複雜[복잡]한 社會[사회]에 있어서 다만 個人[개인] 個人[개인]의 生活[생활]을 現[현] 社會道德[사회도덕]에 順應[순응]하도록 改變[개변]하므로 因[인]하여 能[능]히 全的[전적]으로 새 世紀[세기]를 齋來[재래]할 수 있을까 또는 以上[이상]에 말한바 「四絶對[4절대]」라는 倫理的[윤리적] 標準[표준]은 社會制度[사회제도]를 全的[전적]으로 改善[개선]하기 前[전]에는 實行[실행] 不可能[불가능]이 아닌가? 하는 疑問[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저들의 社會生活[사회생활] 規範[규범]은 무엇인가? 저들은 獨特[독특]한 社會學[사회학]이나 社會的[사회적] 計劃[계획]을 세운 것이 없다. 저들의 말에 依[의]한다면 繁榮[번영]은 人生最高[인생최고]의 價値[가치]라고 생각한다거나 貧[빈]은 例外[예외]없이 道德的[도덕적]이오 富[부]는 必然的[필연적]으로 惡[악]이란다거나 하는 現代[현대]의 二大[2대] 潮流[조류]는 둘다 基督敎的[기독교적]이 아니다. 福音[복음]에 가르친 것은 簡單[간단] 明瞭[명료]하여 어길데가 없다. 即[즉] 모-든 物件[물건]은 온통 다 하나님께 屬[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聖慮[성려] 聖旨[성지]에 基[기]하여 하나님의 財産[재산]을 오직 그 나라와 義[의]를 爲[위]하여 賢明[현명]히 處理[처리]할 것이다. 이것은 理論[이론]으로서는 아무 새맛이 없는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實踐[실천]하는 데서 生命[생명]이 넘치는 새 맛이 난다. 우리가 다 自己[자기]의 있는 자리에서 聖旨[성지]를 體[체]받아 이것을 實踐[실천]한다면 지금까지의 煩瑣[번쇄]한 社會學的[사회학적] 理論[이론] 社會的[사회적] 計劃[계획]은 말없이 成就[성취]하고 말 것이라 한다.

  • '재래(齋來)'는 맞아들임을, '번쇄한(繁瑣한)'은 복잡하고 번거로움을 뜻한다.
  • 개인의 도덕적 개변만으로 새 세기를 열 수 있는지, 사절대 표준이 사회제도 개선 전에는 불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에 대해, 이들은 별도의 사회학적 계획 대신 모든 물건이 하나님께 속하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나라와 의를 위해 현명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단순 명료한 복음의 원리를 제시하며, 이론적 계획보다 각자의 자리에서의 실천이 번쇄한 사회학적 이론을 성취한다고 주장한다.
  • 복잡한 사회 변혁 이론보다 개개인의 철저한 청지기적 소유관과 실천적 순종이 참된 사회적 갱신의 길임을 역설한다.


[4] 돈에 의존하지 않는 신앙의 모험과 영적 가족의 생활비 분담

그러고 이 團員[단원]들은 事業[사업]을 할 때 돈 때문에 사람에게 먼저 가서 請[청]드는 일을 하지 않는다. 手中[수중]에 一分錢[일분전] 없을 때에도 「信仰[신앙]과 祈禱[기도]」로 이 일을 冒險[모험]한다. 저들은 이 冒險[모험]을 해서 主[주]께 버림받은 일이 없노라고 늘 證據[증거]한다. 團員[단원]들은 또한 境遇[경우]에 따라 生活費[생활비]를 나누어 진다. 저들은 自己[자기]네가 一大[일대] 靈的[영적] 家族[가족]에 屬[속]한 것을 늘 意識[의식]하고 한 사람이 괴로우면 全體[전체]가 괴로움을 如實[여실]히 느끼는 까닭이다.

  • '일분전(一分錢)'은 한 푼의 돈을 의미한다.
  • 이들은 사역을 할 때 재정을 위해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직 신앙과 기도로 모험하며 주께 버림받지 않았음을 증거하고, 자신들이 거대한 영적 가족에 속해 있음을 의식하여 처지에 따라 생활비를 서로 나누며 고통을 체휼한다.
  • “生活費[생활비]를 나누어 진다”를 『신학지남』, 『낙수』에는 “生活費[생활비]를 서로 分擔[분담]한다. 靈驗[영험]을 난호는 때와 같은 心念[심념]으로 生活費[생활비]도 난호아 진다”로 표기되어 있다.
  • 물량주의적 재정 의존을 거부하고 전적인 신앙적 모험과 철저한 공동체적 연대를 실천하는 북맨 운동의 경제적 영성을 보여준다.


뿍맨 運動[운동]에 對[대]한 批判[비판] : 뿍맨 운동의 5가지 한계와 문제점


[1] 방법론에 치우친 편협성과 개성의 무시

나는 以上[이상]에서 가장 同情[동정]있는 態度[태도]로 뿍맨 運動[운동]의 全貌[전모]를 紹介[소개]한 줄 믿는다. 그러나 이 運動[운동]도 批判[비판]할 餘地[여지] 없으리만치 完全無缺[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① 우선 저들은 너무 方法論[방법론]에 치우친 點[점]이 있다. 저들의 重要團員中[중요단원중] 某[모]의 말이 「方法[방법]이 使命[사명]이요 使命[사명]이 方法[방법]이다」라고 斷言[단언]하였다. 그리하여 저들의 行[행]하는 方法[방법]이 아니고는 하나님께서 그 役事[역사]를 하시지 못할 것 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各人各色[각인각색]으로 사람은 個性[개성]이 다르다. 그러므로 主[주]께로 나아오는 길도 千千萬[천천만] 갈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큰 機械[기계]를 가지고 多量生産[다량생산]을 하시는 이가 아니다. 우리는 다 그의 手工品[수공품]이다」. 어떤 사람은 뿍맨이 닦은 길로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옛길로도 올 수 있고 새 길로 혼자 허덕이며 올 수도 있는 것이다.

  • '다량생산(多量生産)'은 많은 양을 한꺼번에 만들어냄을, '수공품(手工品)'은 손으로 직접 만든 물품을 의미한다.
  • 북맨 운동은 '방법이 사명이다'라고 단언할 정도로 지나치게 방법론에 집착하여 자신들의 방식만이 하나님의 역사 통로인 것처럼 여기나, 사람은 개성이 각양각색이므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길은 수없이 다양하며 하나님은 기계로 다량 생산하듯 일률적으로 역사하지 않으신다고 비판한다.
  • 신앙의 다양한 경로와 개인의 고유한 개성을 무시하는 획일적 방법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2] 지나치게 주관적인 영도(Guidance)와 자기 투영의 오인 위험

② 너무 主觀的[주관적]이다. 저들의 所謂[소위] 「靈導[영도]」라는 것은 勿論[물론] 可能[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靈導[영도]」는 主[주]께서 特別[특별]히 重大[중대]한 使命[사명]을 내리우실 때에 나타내시는 것이오 日常生活[일상생활]의 細細[세세]한 일은 우리의 智慧[지혜]에 맡기시는 것이다. 우리의 智慧[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우리 智慧[지혜]로서 할 수 있는 일은 決[결]코 하나님께서 干涉[간섭]하시지 않으실 줄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智慧[지혜]를 聖別[성별]하여 主[주]께 바치고 그 最善[최선]을 다하도록 努力[노력]할 것이다. 그러다가 아무리 하여도 智慧[지혜]가 미치지 않는 境遇[경우]에는 하나님의 黙示[묵시]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줄 안다. 그런데 이 그룹 사람들은 勿論[물론] 이런 信念[신념]에서 出發[출발]은 했을 것이나 事實[사실]에 있어서 너무 主觀[주관]으로 흘러간다. 스노-덴(James H. Snowden) 博士[박사]의 글에 보면 푸랭크는 郵票[우표] 한 장을 사도 「靈導[영도]」를 기다려서 산다고 했으니 이것이 或[혹] 酷評[혹평]일는지 모르나 그들의 所謂[소위] 「靈導[영도]」에는 이런 種類[종류]의 것이 大部分[대부분]이다. 牧師[목사]가 每日[매일] 아침 「오늘은 누구누구의 집을 訪問[방문]하오리까?」 하고 하나님께 여쭈어 「靈導[영도]」를 얻은 다음에 訪問[방문]하고 「누구에게 가서는 무슨 말 하오리까?」 하고 「靈導[영도]」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主觀的[주관적]이며 그 所謂[소위] 「靈導[영도]」라는 것은 自己[자기] 投影[투영]의 誤認[오인]이 되어 結局[결국]은 하나님의 거룩한 交際[교제]를 冒瀆[모독]하는데 이르기 쉬운 것이다. 勿論[물론] 저 團員[단원]의 대部分[부분]은 上類階級[상류계급]의 名士[명사]들이니만치 理智[이지]가 이미 높은 程度[정도]로 發達[발달]되었으니까 이런 危險[위험]에서 避[피]할 수도 있을 것이나 無智[무지]한 庶民[서민]에게는 至極危險[지극위험]한 方法[방법]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 '자기 투영(自己投影)'은 자신의 생각이나 욕구를 대상에 빗대어 나타냄을 뜻한다.
  • 제임스 H. 스노든(James Henry Snowden, 1852~1936) 박사는 미국의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자로, 20세기 초반 미국 신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저명한 학자이다. 주로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위치한 웨스턴 신학교(Wester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교수를 역임했다.
  • 일상의 사소한 일까지 '영도'를 기다린다는 명목으로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오인하는 자기 투영에 빠지기 쉬우며, 이는 지적 수준이 높은 상류층 명사들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무지한 서민들에게는 극히 위험한 방법이라고 비판한다.
  • 분별력 없는 주관적 신비주의가 초래할 신앙적 왜곡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3] 사절대 표준에 따른 신앙적·도덕적 교만과 배타적 분열

③ 信仰的[신앙적] 道德的[도덕적] 驕慢[교만]에 빠지기 쉽다. 正直[정직], 純潔[순결], 非利己[비이기], 愛[애]의 「四絶對[4절대]」를 그 道德的[도덕적] 標準[표준]으로 세우는 것과 그것을 참으로 所有[소유]하는 것과는 딴 問題[문제]이다. 그런데 저들은 이것을 저들이 이미 所有[소유]한 것 같이 생각하여 無意識中[무의식중]에 自慢[자만]에 빠진다. 現今[현금]에 가나다에서는 겨우 聯合[연합]된 敎會[교회]가 이 그룹 運動[운동]으로 말미암아 內的[내적] 分裂[분열]이 생겨서 적잔은 頭痛[두통]을 느끼고 있다 한다. 自己[자기]네 그룹에 들지 않으면 牧師[목사]고 長老[장로]고 할 것 없이 다 非基督敎人[비기독교인]같이 생각하며 排擊[배격]하는 例[예]가 不少[불소]하며 信仰的[신앙적] 驕慢[교만]에 빠지는 者[자]가 많다 한다. 그러므로 윌손 敎授[교수][Douglas J. Wilson]는 「四絶對[4절대]」만으로 不足[부족]하니 또 한가지 絶對[절대] 即[즉] 「絶對謙卑[절대겸비]」(Absolute Humility)를 더하여야 하겠다고 까지 말하였다. 

  • '배격(排擊)'은 남을 배척하여 물리침을 의미한다.
  • 더글라스 J. 윌슨(Douglas J. Wilson, Ph.D.)은 1930~1940년대 캐나다에서 활동했던 심리학 교수이자 언론인이다. 그는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University of Western Ontario)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후 몬트리올의 유력 일간지였던 ‘몬트리올 스타(Montreal Star)’의 수석 논설위원으로도 활발히 활동한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 사절대(정직, 순결, 비이기, 사랑)의 도덕적 표준을 세우는 것과 실제로 소유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에도 이들이 이미 그것을 소유한 것처럼 자만에 빠져 자신들 그룹에 속하지 않은 목사와 장로까지 비기독교인처럼 배격함으로써 교회 내적 분열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절대 겸비'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 도덕적 우월감이 낳는 영적 교만과 교회 공동체의 분열이라는 부작용을 고발한다.


[4] 신학을 도외시하는 불건전성과 무비판적 신비주의의 위험

④ 神學[신학]을 度外視[도외시] 함은 不健全[불건전]하다 - 저들은 敎會生長[교회생장]의 歷史[역사]를 잘못 認識[인식]하였다. 저들은 初代敎會[초대교회]와 웨슬레 復興時代[부흥시대]의 敎會[교회]만을 眼中[안중]에 두고 다른 時代[시대]의 敎會史[교회사]는 無視[무시]한다. 그러나 初代敎會[초대교회]의 潑潑[발발]한 生命[생명]을 第二[제2], 三世紀[3세기]에 輩出[배출]한 卓越[탁월]한 神學者[신학자]들이 理論的[이론적]으로 整頓[정돈]하고 擁護[옹호]하지 않았던들 그 生命[생명]이 能[능]히 자리잡힌 바를 물길을 따라 흘렀을는지가 疑問[의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全的[전적]으로 公平[공평]하게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神學[신학]과 理論[이론]으로 사람을 救援[구원]하시지 않는다』 한 저들의 말은 치우친 말이다. 神學[신학]은 언제나 運動[운동]의 脊髓[척수]여서 生命[생명]이 없는 것 같으나 굳게 뻗쳐 全身[전신]을 지탱하는 役割[역할]을 하는 것이다. 순 感情[감정]만을 主唱[주창]하면 無骨虫[무골충]이 되기 쉽고 無批判的[무비판적] 神秘主義[신비주의]에 흐르기도 쉬운 것이다. 特[특]히 自己[자기]의 經驗[경험]에 置重[치중]하는 運動[운동]은 確乎[확호]한 神學體系[신학체계]를 가진 者[자]에게서만 그 健全[건전] 堅實[견실]한 效果[효과]를 期待[기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神學校[신학교] 敎授[교수] 밴ㆍ틸[Van Til] 博士[박사]가 아홉가지 論點[논점]을 들어 餘地[여지]없이 이 運動[운동]을 排擊[배격]한 것도 그 主要點[주요점]이 여기 있다.

  • '도외시(度外視)'는 상관하지 않고 무시함을, '척수(脊髓)'는 척추뼈 속에 있는 중추신경의 일부분으로 뼈대를 지탱하는 핵심을 뜻한다.
  • 밴 틸 박사(Cornelius Van Til, 1895~1987)는 네덜란드계 미국인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20세기 보수적인 장로교 및 개혁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그는 미국의 명문인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수학했으나, 프린스턴이 점차 자유주의 신학으로 기울자 이에 반발하여 메이천(J. Gresham Machen) 박사 등과 함께 정통 신학을 수호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를 설립한 핵심 멤버이다.
  • 신학을 도외시하고 초대교회와 웨슬레 부흥기만 고집하는 이들의 태도는 교회사에 대한 무지이며, 신학은 비록 생명이 없어 보여도 운동의 뼈대를 지탱하는 척수와 같아서 확호한 신학 체계가 없을 때 순수 감정과 무비판적 신비주의, 혹은 무골충으로 흐르게 된다고 밴틸 박사의 비판을 인용하여 역설한다.
  • 건전한 신학적 토대 없는 감정적·경험적 신앙 운동의 취약성을 비판한다.


[5] 공중 앞에서 행하는 성적 관계 고백 등의 부작용과 폐해

⑤ 公衆[공중] 앞에서 罪[죄]를 告白[고백]하는 것은 甚[심]히 삼갈 일이다. 이것은 어떤 때에는 德[덕]을 세우는 도움이 되나 흔히는 敎會[교회]에 큰 弊害[폐해]를 끼치는 것이다. 敎會史[교회사]에 나타난 經驗[경험]으로 볼지라도 初代敎會[초대교회]에서 이 方式[방식]을 썼었으나 차츰 建德[건덕]보다도 害[해]끼치는 일이 많으므로 主後[주후] 450年[년] 法王[법왕] 레오 一世[1세]는 書面[서면]으로 써서 神父[신부]의 認可[인가]를 맡은 것이 아니면 公衆[공중]앞에서 告白[고백]하지 못하게 發令[발령]하였고 그것도 갖은 훼방과 批評[비평]의 씨를 뿌리는 까닭에 1215年[년]에는 敎會[교회]에서 公衆告白[공중고백]을 全然禁止[전연금지]하고 一年[일년]에 한번씩 私的[사적] 告白[고백]을 義務的[의무적]으로 實行[실행]하게 한 것이다. 特[특]히 그 告白[고백]이 性的關係[성적관계]의 것인 때에는 그 弊害[폐해]가 莫大[막대]하다. 그런데 이 團員[단원]들의 告白中[고백중]에도 性的關係[성적관계]의 것이 많아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곰 차마 머리를 들 수 없을 만치 창피스럽게 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 푸린스톤 大學內[대학내]에서 이 運動[운동]을 指導[지도]하던 한 幹部學生[간부학생]의 證言[증언]한 바이다. 우리는 個人[개인]으로 찾아가서 잘못한 것을 謝罪[사죄]할 義務[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반듯이 公席[공석]에서 發表[발표]할 必要[필요]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懺悔[참회]의 마음으로 告白[고백]한다는 것보다 自己[자기]가 告白[고백]할 罪過[죄과] 있음을 자랑하는 態度[태도]로 뻔뻔스럽게 구는 것이랴?』

  • '건덕(建德)'은 덕을 세움을 의미한다.
  • 공중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관행은 교회사 속에서도 점차 폐지되었던 위험한 방식이며, 특히 성적 관계와 관련된 은밀한 고백들이 대중 앞에서 여과 없이 다뤄짐으로써 듣는 이에게 수치심을 주는 등 막대한 폐해를 낳고, 참회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죄과를 뻔뻔스럽게 자랑하는 태도로 변질될 수 있으므로 공석 발표는 삼가야 한다고 경고한다.
  • 1215년 교회의 결정 : 당시 교황이었던 인노첸시오 3세(Innocent III)는 교회의 기강을 바로잡고, 이단(카타르파 등)에 대응하며,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체계적으로 규립하기 위해 공의회를 소집했다(제4차 라테란 공의회, Fourth Council of the Lateran). 이 공의회에서는 이전까지 지역마다 중구난방이었던 고백의 방식을 통일하였는데,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나이(통상 7세)에 이른 모든 가톨릭 신자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주로 부활절을 앞두고) 자신의 본당 사제에게 반드시 자신의 모든 죄를 비밀리에 고백해야 한다고 의무화했으며, 동시에 사제에게는 고해소에서 들은 신자의 죄를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고해 비밀 엄수(사크라멘툼)’ 의무를 강력히 규정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성직 박탈과 평생 수도원 유폐라는 엄벌에 처하도록 하였다.
  • 무분별한 공중 고백이 초래하는 윤리적 부작용과 공동체의 파괴적 결과를 예리하게 고발한다.


뿍맨 運動[운동]의 心理的[심리적] 技巧[기교] : 현대 지식인의 심리를 포착한 7가지 전파 전략


[1] 평론(Views)보다 소식(News)을 선호하는 심리에 맞춘 실제담 전달

뿍맨은 現代人[현대인], 特[특]히 知識階級[지식계급]의 心理[심리]를 가장 잘 捕捉[포착]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① 그는 現代[현대]의 知識層[지식층]의 사람들이 뷰-스(Views - 評論[평론])보다도 뉴스(News - 消息[소식])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新聞[신문]을 읽어도 「消息欄[소식란]」부터 보고 「論說欄[논설란]」은 맨 나중에 보든지 아주 안보든지 하는 것이 現代人[현대인]의 心理狀態[심리상태]다. 그러므로 뿍맨은 「說敎[설교]」를 그만두고 「實際談[실제담]」 即[즉] 消息[소식]을 傳[전]한다.

  • '포착(捕捉)'은 눈치채어 알아챔을 의미한다.
  • 현대 지식층이 신문의 논설(평론)보다 소식란을 먼저 보듯 평론보다 소식을 더 좋아하는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여, 딱딱한 설교 대신 생생한 실제담과 소식을 전하는 방식을 취한다.
  • 이론적 담론보다 현장감 있는 소식을 통해 청중의 이목을 끄는 심리적 접근 전략을 보여준다.


[2] 공공의 소식보다 개인의 사적 사건(Personal Affairs)에 흥미를 느끼는 심리 활용

② 實際談[실제담] 中[중]에서도 特[특]히 어떤 個人[개인]의 人格[인격]에 關係[관계]된 일 듯기를 무척 좋아 하는 것이 現代人[현대인]이다. 即[즉] 私的事件[사적 사건, Personal affairs]을 좋아한다. 어디서 火災[화재] 났다거나 큰 물이 졌다거나 하는 消息[소식]보다도 崔某[최모] 李某[이모]의 어떤 個人的[개인적] 事件[사건]에 더욱 興味[흥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뿍맨은 李某[이모], 金某[김모], 特[특]히 全國的[전국적] 或[혹]은 全世界的[전세계적]으로 有名[유명]한 이들, 英國貴族[영국귀족]들, 敎授[교수]들, 學生[학생]이라도 옥쓰포-드 學生[학생]들의 個人的[개인적], 私生活[사생활]의 가장 깊이 감추인 데를 털어내어 이야기하게 한다.

  • 현대인들이 대형 재난 소식보다 개인의 인격이나 사생활에 관련된 사적 사건에 더 큰 흥미를 느낀다는 점을 파악하여, 영국 귀족, 교수, 옥스퍼드 학생 등 유명 인사들의 감추어진 사생활과 개인적 고백을 이끌어내어 이야기하도록 유도한다.
  • 타인의 은밀한 사생활에 호기심을 느끼는 대중의 심리를 선교적 매개체로 교묘하게 활용한다.


[3] 이론보다 실생활을 통한 신앙의 입증 강조

③ 「理論[이론]보다도 生活[생활]」 - 『生活[생활]을 通[통]하여 知識[지식]』에, 『네 生活[생활]로 네 信仰[신앙]을 立證[입증]하라』하는 것이 現代人[현대인]의 부르짖음이다. 그러므로 그는 될수 있는대로 理論[이론]을 避[피]하고 實生活[실생활]을 보이려 한다. 그러므로 「生活[생활] 改變者[개변자]」 「改變[개변] 生活[생활]」 等[등] 言必稱[언필칭] 生活[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 '언필칭(言必稱)'은 입만 열면 늘 말함을 뜻한다.
  • '이론보다 생활'을 부르짖는 현대인의 요구에 발맞추어 이론을 최대한 피하고 실생활로 신앙을 입증해 보이려 하기에, 입만 열면 '생활 개변자'나 '개변된 생활'을 강조한다.
  • 관념적 교리 전파에서 벗어나 실생활의 변화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실천적 소통 방식을 드러낸다.


[4] 지상 공론에 실증 난 청년들을 위한 신학 지양과 영험 고조

④ 그는 現代[현대] 靑年[청년]들이 基督靑年[기독청년]들까지도 무슨 「論[론]」이니 무슨 「設[설]」이니 무슨 「主義[주의]」이니 하는 紙上[지상]의 空論[공론]에 실증낸 것을 보았다. 特[특]히 基督敎界[기독교계]에 있어서도 根本主義[근본주의]니 現代主義[현대주의]니 社會的[사회적] 福音[복음]이니 하고 너무들 理論[이론]에 熱中[열중]해 왔기에 이제 다들 실증낸 것을 그는 잘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神學[신학]을 말하지 않고 敎派[종파]를 캐지않는 代身[대신], 一種[일종] 神秘[신비]한 靈驗[영험]을 高潮[고조]한다.

  • 근본주의, 현대주의 등 각종 신학적 공론에 실증 난 청년들의 피로감을 간파하고, 신학이나 교파를 따지는 대신 신비한 영험을 북돋우는 방식을 택한다.
  • 복잡한 교리 논쟁에 지친 현대 청년들에게 직관적이고 신비로운 영적 체험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5] 억압적 의식적 종교를 거부하는 청년을 위한 가정회담(파티) 활용

⑤ 그는 現代靑年[현대청년]이 무었에든지 抑壓[억압] 當[당]하기를 싫어하며 特[특]히 儀式的[의식적] 宗敎[종교]에 反感[반감] 가지는 것을 아는 同時[동시]에 탁 터놓고 장난하는 뿌릿지[카드 노름]나 여기서 말하면 「마작」같은 노름판에 모이기를 좋아하는 줄 안다. 그러므로 그는 敎會堂[교회당]에 오라고 廣告[광고]하는 代身[대신]에 「파-티」(家庭會談[가정회담])에 오라고 한다. 오면 禮拜堂[예배당]에 온 것처럼 不自然[부자연]스럽거나 서먹서먹한 氣分[기분]이 없고 다들 이야기하고 웃고 하여 自然[자연]히 마음에 맞아서 쉽게 感動[감동]된다. 

  • 억압적인 의식적 종교에 반감을 가진 청년들이 편안한 모임을 좋아하는 성향을 파악하여, 교회당 광고 대신 '가정회담(파티)'을 개최함으로써 예배당 특유의 서먹한 기분을 없애고 자연스럽고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쉽게 감동을 받도록 유도한다.
  • 종교적 장벽을 낮추고 사교적 모임의 형태로 청년층에게 접근하는 심리적 기교를 보여준다.


[6] 군중심리 선동을 배격하고 요단강물 같은 세련된 감정 유도

⑥ 現代[현대]의 知識層[지식층]에서는 洗鍊[세련]된 感情[감정]을 가진 까닭에 聖潔敎會式[성결교회식]으로 손벽치고 뛰놀면서 群衆心理[군중심리]를 利用[이용]하여 感情[감정]을 煽動[선동]시키는 데에 反感[반감]을 가지고 野俗視[야속시]하는 줄을 그는 잘 안다. 그러므로 그는 조금이라도 煽動的[선동적] 演說[연설]이나 不自然[부자연]한 言行[언행]을 하지 안는다. 『고요히 흐르는 요단江[강]물에 沐浴[목욕]시키려는』 것이 그의 뜻인 것 같다.

  • '야속시(野俗視)'는 야비하고 세속적이라고 낮추어 봄을 의미한다.
  • 세련된 감정을 지닌 지식층이 군중심리를 이용한 감정적 선동이나 야속한 부흥회 방식을 혐오한다는 점을 인지하여, 선동적 연설을 피하고 '고요히 흐르는 요단강물에 목욕시키듯' 자연스럽고 차분하게 감화를 이끌어낸다.
  • 지식층의 취향과 정서적 방어기제를 존중하는 세련된 설득 전술을 구사한다.


[7] 묵은 이상을 새 말(신조어)로 포장하여 청신한 맛 부여

⑦ 그는 時代[시대]를 따라서는 묵은 理想[이상]을 새 말(語[어])에 담아서 새 理想[이상]을 만드는 功效[공효]를 利用[이용]하였다. 그리하여 「祈禱[기도]와 瞑想[명상]」 代身[대신]에 「靜思[정사]의 時間[시간]」, 「靈感[영감]」 代身[대신]에 「靈導[영도]」 「悔改[회개]」 代身[대신]에 「生活改變[생활개변]」 「新生[신생]」 代身[대신]에 「改變[개변]된 生活[생활]」 傳道[전도] 代身[대신]에 「分給[분급]」 「傳道者[전도자]」 代理想[대이상]이 「生活[생활] 改變者[개변자]」 等[등]을 써서 事實[사실]은 오래오래 묵은 理想[이상]이지마는 淸新[청신]한 맛을 가지게 한다.

  • '공효(功效)'는 보람이나 효과를, '청신한(淸新한)'은 산뜻하고 새로운 것을 뜻한다.
  • 기도와 명상을 '정사의 시간'으로, 회개를 '생활 개변'으로 바꾸어 부르는 등 유서 깊은 기독교의 묵은 이상들을 현대적인 새 용어로 포장하여 대중에게 산뜻하고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가게 만든다.
  • 전통적 개념에 세련된 현대적 어휘를 입혀 거부감을 줄이고 새로운 운동으로 인식시키는 탁월한 심리적 브랜딩 기교를 발휘한다.


뿍맨 運動[운동]의 心理的[심리적] 技巧[기교] : 북맨의 적응적 지혜와 심리학적 비판, 그리고 운동의 본질


[1] 바울의 적응주의와 스탠리 존스의 불가피한 사건 복음화

이런 點[점]으로 보아 그는 智慧[지혜]있는 者[자]임을 알겠다. 바울의 所謂[소위] 「律法[율법]있는 者[자]에게는 律法[율법]있는 者[자] 같이 하고 律法[율법]없는 者[자]에게는 律法[율법]없는 者[자]같이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게 하겠다고 애썼노라는 것이 곧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스테인리ㆍ죤스[Stanley Jones]의 이른바 「不可避[불가피]의 事件[사건]을 福音化[복음화]하라」(Evangelize the inevitable)는 것이 또한 이것을 意味[의미]한 것이다.

  • '불가피의 사건을 복음화하라'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나 인간의 실존적 조건을 거부하지 않고 복음 전파의 도구로 수용함을 의미한다.
  • E. 스탠리 존스(Eli Stanley Jones, 1884~1973)는 미국의 감리교 목사이자 20세기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선교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스탠리 존스는 딱딱한 교리나 서양의 문화를 강요하는 대신, 상대방의 상황(불가피한 현실) 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다가감으로써 예수의 사랑을 전했던 지혜롭고 위대한 선교사였다.
  • 북맨이 시대와 대상의 심리에 맞춘 이러한 기교를 구사한 것은 사도 바울이 율법 있는 자나 없는 자에게 각각 맞추어 사람을 얻으려 했던 태도나, 스탠리 존스가 주장한 '불가피한 사건을 복음화하라'는 선교적 지혜와 정확히 일맥상통한다고 평가한다.
  • 시대적 대중의 심리와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북맨의 전략이 선교적 차원에서 지닌 지혜로운 면모를 조명한다.


[2] 스티븐슨 박사의 심리적 불건전성 비판과 전문가 영역의 유보

캐나다 聯合敎會[연합교회] 會員[회원]이오 神經病[신경병]과 心理解剖學[심리해부학]의 專門家[전문가]인 스티븐슨(C. H. Stevenson M.D.) 博士[박사]는 뿍맨 自身[자신]의 心理狀態[심리상태]를 解剖[해부]하여 그 不健全[불건전]한 部分[부분]을 여섯 가지로 指摘[지적]한 論文[논문]을 캐나다 聯合敎會[연합교회] 機關紙[기관지]인 「뉴 아우트룩」(The New Outlook)에 發表[발표]하였다. 너무 酷評[혹평]인 것 같으나 專門家[전문가]가 아닌 우리로서는 可否[가부]를 말하기 어려우므로 그만둔다.

  • '심리해부학(心理解剖學)'은 인간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고 해부하듯 살핌을, '혹평(酷評)'은 가혹하게 평함을 뜻한다.
  • 스티븐슨 박사는 1930년대 캐나다에서 활동했던 정신의학 및 심리학 전문가였다. 참고로 역사적 기록과 정황상, 당시 캐나다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의 교수였던 G. H. 스티븐슨(George Herbert Stevenson)의 첫 글자가 과거 문헌으로 번역 및 조판되는 과정에서 알파벳 ‘C’로 오기(오타)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캐나다 연합교회 회원인 신경병 및 심리해부학 전문가 스티븐슨 박사가 북맨 자신의 심리상태를 해부하여 불건전한 부분을 6가지로 지적한 논문을 교회 기관지에 발표했으나,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가부를 쉽게 단정하기 어렵기에 상세한 평가는 유보한다고 밝힌다.
  • 의학적·심리학적 전문가가 제기한 북맨 개인의 심리적 취약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객관적으로 전달한다.


[3] 기교를 압도하는 발발한 영적 생명력의 본질

그러나 以上[이상]에 말한 心理學的[심리학적] 技巧[기교]가 單純[단순]히 技巧[기교]에만 그친 것이 아니고 潑潑[발발]한 靈的[영적] 生命[생명]이 그 技巧[기교]를 技巧[기교]인줄도 모르게 하는 데에 이 運動[운동]의 生命[생명]이 있는 것이다.

  • '발발한(潑발한)'은 생기, 활력 등이 활발하게 넘쳐남을 의미한다.
  • 앞서 언급한 다양한 심리학적 기교들이 단순한 술수에 그치지 않고, 그 기교 자체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그 이면에 생기 넘치는 '발발한 영적 생명력'이 역동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야말로 이 운동이 지닌 진정한 생명력의 원천이라고 결론 내린다.
  • 외적인 심리적 기교나 방법론을 넘어 그 본질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영적 실체와 생명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 『신학지남』에는 뒤에 다음 문장이 추가되어 있다. “即[즉] 生命[생명]이 技巧[기교]를 通[통]하야 能率[능솔]있게 나타난것이오 技巧自體[기교자체]가 이 運動[운동]의 原動力[원동력]인 것은 아니다.”


뿍맨 運動[운동]의 特殊[특수]한 價値[가치] : 조선 교회가 북맨 운동에서 배워야 할 3가지 목회적 교훈


[1] 절대 신의에 복종하며 백지 같은 심령으로 기다리는 아침 기도

人生[인생]의 機械化[기계화]가 날로 甚[심]해가고 末梢神經[말초신경]만 쟌뜩 銳敏[예민]해져 가는 現代人[현대인]에게 이러한 靈的[영적] 運動[운동]이 있음을 충心[심]으로 感謝[감사]안할 수 없는 일이다. 이 運動[운동]의 成敗[성패]는 今後[금후]의 天國運動[천국운동]에 至大[지대]한 關係[관계]가 있을 것이므로 예수의 나라와 그 義[의]를 思慕[사모]하고 사랑하는 者[자]로서는 누구나 이 運動[운동]의 成功[성공]을 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意味[의미]에서 나는 길게 紹介[소개]한 것이며 이 意味[의미]에서 또한 그 短點[단점]을 指摘[지적]한 것이다. 이제 나는 우리 敎會[교회]가 이 運動[운동]에서 特[특]히 배워야 할 點[점], 이 運動[운동] 自體[자체]의 特殊[특수]한 價値[가치]라고 볼만한 點[점]을 몇 가지 들고저 한다. ① 저들이 絶對[절대] 神意[신의]에 服從[복종]하려는 態度[태도]로 主[주] 앞에서 고요히 기다리는 아츰 祈禱[기도]다. 우리 敎役者[교역자]가 날마다 그날의 生活[생활]을 始作[시작]하기 전에 참으로 고요히 백지와 같은 심령을 가지고 30분 내지 한 시간 主[주]의 손가락이 그 위에 움직이기를 기대린다면 그 교역자, 그 敎會[교회]에는 오래지 않아서 靈的[영적] 奇蹟[기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敎役者[교역자]들의 모힘에서 또한 그렇게하면 彼此[피차] 새로운 友愛[우애]가 생길 것을 疑心[의심]하지 않는다.

  • '말초신경(末梢神經)'은 감각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경을, '모힘'은 모임의 오기를 의미한다.
  • 기계화가 심해지고 말초신경이 예민해진 현대인에게 이 영적 운동이 있음을 감사하며, 첫 번째로 배워야 할 점은 절대 신의에 복종하며 아침마다 백지 같은 심령으로 30분에서 1시간 동안 주의 인도하심을 고요히 기다리는 아침 기도라고 강조한다.
  • 교역자들이 이러한 기도를 실천할 때 교회에 영적 기적이 일어나고 교역자들 간에 새로운 우애가 싹틀 것이라고 역설한다.


[2] 형식적 집회를 넘어선 개인전도와 신자 간의 깊은 우애(Fellowship)

② 個人傳道[개인전도]와 信者間[신자간]의 友愛[우애, Fellowship]다. 우리 敎會[교회]는 점차 「集會[집회]」는 있으나 「友愛[우애]」는 없어진다. 거죽으로 모이나 속으로 갈라지고 입으로 말하나 行實[행실]에 나타나지 않는다. 個人接觸[개인접촉]으로 말미암은 傳道[전도]의 必要[필요]는 우리 朝鮮[조선] 敎會[교회]에서 累累[누누]히 說明[설명]하는 바이므로 더 말하지 않으나 그 「技巧[기교]」에 있어서는 特[특]히 이 그룹의 方式[방식]에서 參照[참조]할 바가 많은 줄 안다.

  • '누누히(누누이)'는 여러 번 되풀이하여를 뜻한다.
  • 두 번째 가치로 개인전도와 신자 간의 깊은 우애를 꼽으며, 조선 교회가 집회는 번성하되 겉으로만 모이고 속으로는 갈라져 참된 우애를 잃어버린 실정을 지적하고, 개인 접촉을 통한 전도의 방식에 있어서 북맨 그룹의 기교를 적극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형식적 모임에 치우친 교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격적 교제와 진정한 우애를 회복해야 함을 촉구한다.


[3] 배상과 권모술수 없는 천진한 언행사로 나타나는 회개의 열매

③ 生活[생활]에 나타나는 悔改[회개]의 열매다. 生活[생활]은 信仰[신앙]의 열매다. 열매 없는 나무는 베어버릴 것이다. 特[특]히 저들의 「辨償[변상]」하려는 心情[심정]은 거룩한 祝福[축복]을 받기에 不足[부족]함이 없는 열매다. 그리고 權謀術數[권모술수]를 떠난 天眞[천진]한 言行思[언행사]는 聖神[성신]의 열매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권모술수(權謀術數)'는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이롭게 다루어 부리는 수단과 방법을 의미한다.
  • 세 번째 가치로 생활 속에 나타나는 회개의 열매를 들며, 신앙은 곧 삶의 열매여야 하기에 북맨 단원들이 보여주는 철저한 '변상(배상)'의 심정과 권모술수를 떠난 순수하고 천진한 언행은 성령의 명백한 열매라고 평가한다.
  • 신앙의 진정성이 구체적인 물질적 배상과 도덕적 결백이라는 삶의 열매로 증명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뿍맨 運動[운동]의 展望[전망] : 북맨 운동의 두 가지 가능성과 장공의 균형 잡힌 최종 평가


[1]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인정과 단점 미반성 시 초래될 혼란의 경고

나는 이 運動[운동]이 聖靈[성령]의 役事[역사]이심을 疑心[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以上[이상]에 指摘[지적]한 諸短點[제단점]과 不健全[불건전]한 點[점]에 늘 留意[유의]하여 反省[반성], 自警[자경]하지 않으면 얼마 아니하여 惡魔[악마]의 詭計[궤계]에 빠져서 敎會[교회]에 많은 혼단을 일으키리라고 생각한다.

  • '자경(自警)'은 스스로 경계함을, '궤계(詭計)'는 간사한 꾀나 흉계를 의미한다.
  • 북맨 운동이 성령의 역사임을 의심하지 않으나, 앞서 지적한 단점과 불건전한 점에 유의하여 끊임없이 반성하고 경계하지 않는다면 악마의 궤계에 빠져 교회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엄중히 경고한다.
  • 성령의 운동이라도 인간의 방심과 교만으로 인해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음을 통찰하는 신학적 경각심을 보여준다.


[2] 프란시스 교단과 같은 봉사적 단체가 될 때의 축복과 편협한 고집이 낳을 신교파 분열의 위험

그러나 만일 「謙遜[겸손]」하게 自己[자기]들의 特殊[특수]한 使命[사명]에만 全力[전력]을 다하고 남을 평론하지 않으며 다른 길로 主[주]께 나아가는 者[자]를 억지로 끌어오려고 하지 않고 어디까지든지 「敎會[교회]」를 奉仕[봉사]하려는 푸랜시스 敎團[교단]과 같은 團體[단체]가 된다면 우리 敎會[교회]는 이 運動[운동]으로 말미암아 큰 祝福[축복]을 받을 줄 믿는다. 말로는 神學[신학]을 超越[초월]하고 宗派[종파]를 超越[초월]한다 하지만 저희가 줄곧 저희의 方式[방식]만을 固執[고집]하는 때에는 結局[결국] 새 宗派[종파]하나 생기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니 그렇지 않아도 分裂[분열]에 頭痛[두통] 알른 新敎派[신교파]에서 그리 祥瑞[상서]로운 일이라 볼 수 없는 것이다.

  • '상서로운(祥瑞로운)'은 복되고 좋은 기운이 있는 것을 뜻한다.
  • 겸손하게 자신들의 사명에 전력하며 남을 비판하거나 억지로 끌어오지 않고 프란시스 교단처럼 교회 중심의 봉사 단체가 된다면 큰 축복이 되겠지만, 말로는 초교파를 표방하면서 자신들만의 방식을 고집한다면 결국 가뜩이나 분열로 골치 아픈 신교계에 또 하나의 해로운 새 종파를 만드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 운동이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겸손한 보조적 역할을 할 때와 배타적 교파로 분열될 때의 명확한 명암을 대조한다.


[3] 캐나다 연합교회의 특별위원회 조사 연구 언급과 필자의 유감

캐나다 聯合敎會[연합교회] 機關紙[기관지]인 「뉴-아우트룩」 主筆[주필] 크라이톤[W. B. Creighton] 博士[박사]는 最初[최초]부터 이 運動[운동]의 危險性[위험성]에 對[대]하여 警告[경고]하였으며 最近[최근]에 와서 캐나다의 各[각] 敎派[교파]에서 代表[대표] 三十名[30명]을 뽑아 特別委員會[특별위원회]를 組織[조직]해 가지고 敎理的[교리적], 倫理的[윤리적], 心理學的[심리학적], 敎會治理的[교회치리적], 四方面[4방면]으로 細密[세밀]히 調査[조사] 硏究[연구]하여 그 不健全[불건전]한 點[점]을 일일히 指摘[지적]함과 同時[동시]에 그 讚賞[찬상]할 點[점]을 또한 公平[공평]하게 紹介[소개]하여 單行本[단행본]으로 發表[발표]하였다. 허나 筆者[필자]는 아직 얻어 읽지 못하고 이글 쓰게 된 것을 遺憾[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 '교회치리적(敎會治理的)'은 교회의 운영과 질서 유지를 뜻한다.
  • W. B. 크라이톤 박사(William Black Creighton, 1864~1946)는 20세기 초중반 캐나다 기독교계의 여론을 이끌었던 영향력 있는 목회자이자 언론인이었다. 그는 1925년 캐나다 내의 감리교, 장로교, 회중교회가 통합하여 탄생한 거대 교단인 캐나다 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의 공식 기관지(신문)인 『뉴 아웃룩』의 편집장(주필)을 오랫동안 역임했다.
  • 캐나다 연합교회 주필 크라이톤 박사의 경고에 이어, 캐나다 각 교파 대표 30명이 특별위원회를 조직해 교리적·윤리적·심리학적·교회치리적 4방면으로 이 운동을 세밀히 조사하여 불건전한 점과 찬상할 점을 공평하게 담은 단행본을 발표했으나, 필자가 이를 직접 읽지 못한 채 본고를 쓰는 것을 유감으로 언급한다.
  • 해외 교계가 이 운동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기울인 체계적 연구 노력을 소개하며 글의 학술적 신중함을 더한다.


[4] 열매로 나무를 판단하는 원칙과 북맨 운동을 향한 최종적 감사와 기원

要[요]컨대 우리는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判斷[판단]하는 것이 原則[원칙]임을 믿는 바 지금까지의 이 運動[운동]으로 보아 좋은 열매가 惡[악]한 열매보다 훨씬 더 많음을 事實[사실]로 認定[인정] 안할 수 없는 以上[이상], 이 運動[운동]의 發展[발전]과 完熟[완숙]을 祈願[기원]함과 同時[동시]에 나 自身[자신]의 恩惠[은혜]받은 바를 感謝[감사]안할 수 없는 것이다.

  • '완숙(完熟)'은 무르익어 완전히 익음을 의미한다.
  • 열매를 보고 나무를 판단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볼 때, 지금까지 나타난 북맨 운동의 좋은 열매가 악한 열매보다 훨씬 많음을 부인할 수 없으므로, 이 운동의 건전한 발전과 완숙을 기원하며 필자 자신도 이 글을 통해 은혜받은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것으로 논문을 매듭짓는다.
  • 비판적 한계를 예리하게 지적하면서도 운동이 맺은 실질적인 영적 결실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장공의 넓은 신학적 안목을 보여준다.


최종 결론: 오늘날의 시대에 이 글이 던지는 의미

오늘날의 현대 상황은 1930년대 장공이 진단했던 기계화와 물질주의의 도전을 넘어, 극도로 개인화되고 디지털화된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처해 있다. 현대 교회와 교인들은 눈부신 문명의 발전 속에서도 내면의 영적 기갈과 형식주의적 신앙의 탈색을 겪으며 깊은 공허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시대에 장공의 「뿍맨 운동과 그 비판」은 신앙이 추상적 교리나 번쇄한 이론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구체적인 삶의 변화와 도덕적 실천으로 입증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외친다. 동시에 방법론적 맹신이나 주관적 신비주의, 그리고 영적 교만이 낳는 교회 내 분열의 위험성을 냉철하게 경고함으로써, 신앙 운동이 지녀야 할 건전한 신학적 토대와 절대 겸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고통받는 현대 교회와 영혼들에게 이 글은 형식적인 집회를 넘어 고요한 기도로 백지 같은 심령을 회복하고, 권모술수를 떠난 천진한 삶의 열매를 맺으며,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실천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실존적 결단의 시급함을 엄숙하게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