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22-23] 빼앗긴 입 – 1986년 6월 15일, 김상근 목사

빼앗긴 입

사도행전 2장 22-23절 / 1986년 6월 15일 / 전북 지역 교역자 대회


[회상 노트]

2월 11일에 ‘KBS-TV 시청료 거부 기독교범국민운동본부’가 발족되었다. 전국적으로 불붙고 있는 이 운동의 핵심은 교회였다. 전국 조직망을 가진 기독교 운동본부가 제일 활발했다. 나는 본의 아니게 이 운동의 한 가운데 있게 되었다. 이 운동과 함께 뉴스 보도와 광고사업을 박탈당한 CBS 기독교방송의 기능 정상화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나에게 있어서 이 일은 일석삼조였다. 언론계에 강한 경종도 울리고, CBS도 살리고, 정권의 부정의를 국민에게 알려 퇴진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능 정상화운동이 제일 활발했던 전북 지역의 연합예배와 거리 캠페인에 초청되어 설교하고, 어깨에 띠를 두르고 거리에 나섰다.

정권은 이 일로 인해서 꽤 아픈 타격을 빋았다. 그러나 버텼다. 결국 김영삼 정권에 와서야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협상은 실패했다. 오래 끌었다. 결국 KBS에 노조를 설립하고, 매년 운영 상황을 국민에게 공개한다는 조건, 그리고 우리는 시청자연대회의를 만들어 감시를 계속한다는 장치를 두고 시청료 거부운동을 풀었다.

시청료를 거부하자 할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중압감과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고만두기로 했다.”는 선언을 누구도 하려 하지 않았다. 모든 책임을 질 각오로 선언했다. 동지들과 선배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군산은 나의 고향이다. 여기서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가끔 오게 되지만 올 때마다 감회와 특별한 정을 느끼게 된다.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특히 이 값진 자리, 하나님께 호소하고 기도하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다짐하는 특별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우리의 호소를 들어주시기를 간원한다. 오늘은 집회의 성격상 반은 강연이고 반은 설교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몇 년 전 우리의 입을 빼앗겼다. 빼앗겼던 우리의 입을 되찾아야 하겠다. 그래서 우리가 이 특별한 집회를 마련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어떻게 빼앗겼던가?

1980년 5월, 민주화를 열망하는 전 국민적 열기 속에서 유신 체제하의 질곡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언론 자유 운동이 각 언론사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 운동은 마침 발생한 5ㆍ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일방적 보도 요구를 거부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집권 세력에 의한 5ㆍ18 광주민중항쟁의 무자비한 진압과 더불어 언론 자유 운동은 금방 좌절되고 말았다. 그 후 일부 언론인이 연행ㆍ구속되고, 700여 명에 달하는 언론인 강제 해직 사태가 빚어졌다. 이에 대한 주요 이유는 이른바 ‘사회 혼란조성’ 혐의였다.

이 같은 탄압 국면 속에서 1980년 11월 14일 한국신문협회와 방송협회에서 언론사 통폐합을 결의했다. 물론 그런 형식 절차를 밟아 간 것뿐이었다. 그리고서 곧 언론사통폐합 조치가 취해졌다. 이와 함께 국가보위입법위원회는 이 해 12월 26일, 언론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언론의 완전 통제 시대에 들어갔다.

어느 정도인가? 기독교방송의 일반 방송 정지, 1개 지방에 1개 지방지 허용, 그리고 신문ㆍ방송 겸영 방지 등이다. 그리고 통신 및 방송을 일원화한다는 명목으로 KBS를 정점으로 한 방송ㆍ통신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것은 KBS가 TBC(동양방송), DBS(동아방송) 등 5개 민간 방송을 흡수함은 물론, 주식 소유에 있어 MBC 70%, 서울신문사 99%, 연합통신사 30%, 데이터 통신 25%, 방송사업단 100%의 주식을 소유하였던 것이다. 사실 우리만 입을 빼앗긴 것이 아니다.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귀도 빼앗겨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법적 통제와 더불어 1981년 1월 6일 정치적, 제도적 통제를 위하여 홍보조정실이 신설되었다. 유신 체제하에서는 음성적으로 언론통제를 해 왔는데, 이제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언론 통제로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치적 언론 통제는 이 같은 공식적인 행정 기구에 의하여 제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유신 체제 하에서처럼 이른바 권력 기관들에 의한 언론 통제 역시 언론 기관에 수시로 출입하는 기관원을 통하여, 혹은 전화 통보 등의 방식을 통하여 필요에 따라 항상 수행되고 있다. 보도 금지 사항을 지시하는가 하면, 기사의 내용, 단수, 크기, 제목, 사진, 구성 등 구석구석 통제를 안 하는 것이 없다.

지난 4월 18일 한국일보 분회는 안의섭 편집위원의 원상 회복, 기관원 출입과 홍보 지침 등 일체의 외부 간섭 거부 등을 주장하고 나선 일이 있다. 이는 1985년 2월 15일 중앙일보 일부 기자들이 발표한 성명에서 기사 삭제, 객관성을 상실한 보도, 정치 칼럼에서의 균형 감각 상실 등으로 “독자들로부터 언론으로서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질타를 받아 왔다.”는 성명을 낸 것을 보아도 언론 통제가 어느 정도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언론 탄압을 위한 기본 기술은 어떤 것인가? 첫째는, 전혀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에게 은폐하고 알리지 않는 방법을 쓴다. 외국에 나가 본 사람은 서울에선 전혀 듣지 못한 이런저런 놀랄 이야기가 보도되고 있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지금 언론은 당국이 완전 장악하고 있어 보도되기를 원치 않는 사실은 일단으로조차도 보도되지 않는다. 신문 통제가 100% 실현되고 있다.

가끔 기독교 관계 단체나 또는 일반 재야 단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어떤 성명을 발표할 때가 있다. 물론 일부러 기자들을 초청할 정도이니 중요한 내용의 성명임에 틀림없고 따라서 각 신문사마다 기자들이 찾아와 취재를 해 간다. 그러나 많은 기자들이 취재해 갔는데도 그날 석간에 중요한 내용을 담은 그 기자회견 사실이 약속이나 한 듯 한 줄도 보도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지난 3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는 개헌 서명 성직자 명단을 공개했다. 그런 정보가 새나가면 곧 우리 기독교회관을 봉쇄하고 온 건물을 경찰이 완전 포위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새벽에 들어갔다. 내 사무실을 들어가는 데 마치 남의 집을 들어가는 도둑처럼 한심한 일이다. 하여간 기자들도 꽤 많이 왔고 TV 카메라도 모두 설치해 놓아서 과장한다면 대통령 회견장과도 같았다. 우리는 긴장 속에서 1,050명의 개헌 서명 성직자 명단을 공개했다. 당시로는 서명자 엄단을 말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이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충격이 생길 것이고, 개헌 국면에 변화가 올 것이라 잔뜩 기대했다. 그런데 TV, 신문, 방송 아무 데도 한 줄도 내지 않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런 때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그럴 때마다 무기력한 기자들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언론을 억압해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고 자기들의 잘못을 은폐하려고만 하는 권력 당국에 불만을 쏟아 놓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아무리 그래 보아도 결국 개헌은 아니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보도를 막아도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왜 그렇게 되나? 이 역사를 하나님께서 끌어가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헌 보도를 못하게 하여도 이제는 개헌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 이것은 기적이다. 이 기적을 누가 일으켰나? 하나님 이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둘째는, 보도하라든가 사실로 다루어 달라는 지시가 내려가는 수도 있다. 언론의 상식으로는 크게 다룰 만한 문제가 못 되거나, 사설로 다루지 않아도 무방한 문제인데도 그것이 집권 당국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러한 지시가 내려간다는 것이다.

얼마 전 호랑이를 수입하려 했는데 수송 과정에서 죽었다는 것을 TV, 라디오, 신문 등에서 대단하게 다루었다. 바로 그때 서울대 두 학생이 분신을 기도했다. TV, 라디오는 그들 사건은 전혀 다루지 않았고 일부 신문만이 1단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정보를 주지 않는다.

이 같은 왜곡 보도의 챔피언은 KBS다. 아마 서울신문도 그럴 것이고 경향신문도 그럴 것이지만 보지 않으니 모르겠다.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던지면서 시위를 벌이는 현장을 원인에서 단절시켜 고립시킨 후, 이것을 클로즈업하여 모든 잘못이 학생들에게 있다는 인식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왜 데모가 그토록 격렬하게 벌어지는가 하는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절대 외면하고 문제의 데모 현장만 되풀이 되풀이 보도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진실한 입을 절실하게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정보를 바르게 전할 언론이 필요하다.

최근 개헌이 가장 큰 관심사다. 민주 개헌을 하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그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정말 이 정권이 민주 개헌을 할 뜻이 있다면 언론 자유부터 실현해야 한다. 정부 안에 소위 홍보조정실 따위는 없애야, 보도 지침은 보내지 않아야, 기관에서 간섭을 안 해야 한다. 국민이 알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데 무슨 합의인가? 여야의 합의는 합의가 아니다. 국민 여론과의 합의여야 한다.

국민들이 합의를 어떻게 이루나? 언론을 통해서다. 그런데 그것은 묶어 놓고 자기들끼리 합의했다고 해서 이것을 합의라고 한다면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주권은 여당과 야당에 있다는 것인가? 언론 자유가 선행되지 않는 개헌은 국민을 또 속이겠다는 것이다. 국민을 속이면 또 불행이 오게 되어 있다. 진정으로 국민과 합의하는 개헌을 하겠으면 언론, 특히 기독교방송(CBS) 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 1970년대말 유신 독재가 절정에 달해 모든 신문, 방송, TV가 보도 기능에 있어 제구실을 못할 때 CBS의 공정하고 사실 전달에 충실한 그 보도 활동은 청취자의 큰 관심과 인기를 모은 바 있다.

이것은 일종의 예언 운동이다. 대대로 나쁜 왕은 언론을 조작했다. 아합 왕의 이야기를 우리도 잘 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관제 여론을 일으킨다.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욕하였다고 왜곡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를 죽이고는 왕은 포도원을 차지한다. 왜곡 선전으로 나봇을 죽인 것이다. 이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 진실을 폭로하고 왕을 힐책한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입이었다. 사실 CBS는 그 예언자의 역할을 잘 감당했던 것이다. 당국이 기독교의 입을 빼앗은 것은 예언 활동을 봉쇄했던 것이다. 그리고 관제 언론, 요새는 제도 언론이라 하는데, 온갖 제도 언론을 동원하여 사실을 왜곡해 오고 있다.

KBS TV가 그렇게 사실을 왜곡하고 편향적으로 보도할 때 우리 CBS가 보도 기능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렇게 말하면 오히려 정상화를 더 안 시키려고 할 것인데 내가 정상화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말을 해도 지금은 어물어물 한다고 상대가 속아 주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당당하게 우리 속마음을 털어 놓고 정정하게 나가야 한다.

언론의 자유 없이 민주화도 불가능하지만 진정한 종교의 자유 보장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언기법이 발표된 이후, 언론이 새로운 체제로 통폐합 개편된 후 CBS는 뉴스 보도를 못하게 되었고 예배, 설교, 성경 이야기, 음악만 방송하라고 강압받고 있다. CBS는 신앙을 토대로 하여 모든 진실된 사실들과 공익을 위한 모든 정보를 소통시켜 줄 수 있도록 그 기능을 회복해야 할 시대적 요망을 안고 있다. 그러자면 뉴스, 평론 등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1980년 기독교방송에 가해진 제재는 기독교방송의 언론 기능을 박탈한 것뿐 아니라 기독교의 독립적인 의견 표시의 통로, 기독교방송을 통한 국민의 의견 개진의 길을 막은 것이 된다. 이것은 기독교의 선전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진실을 말하고, 그들의 의사와 감정, 그들의 양심과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 나아가서는 권력자가 사실을 왜곡, 조작하여 국민을 오도하고, 정보를 통제하여 국민의 알 권리가 부인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독교방송을 ‘선교 방송’이라고 규정할 때, 국가 권력은 그 선교의 내용에 대하여 규정할 수 없다. 국가 권력이 그 내용을 규정하면 그것은 곧 종교에 대한 간섭이 되고, 따라서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된다. 종교의 자유는 신앙의 자유, 예배 등 종교의식의 자유, 신앙적 양심의 표현의 자유, 신앙을 개인적으로, 신앙 공동체로서 실천하는 자유,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기독교방송의 선교적 목표는 단순히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하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감히 선교의 범위, 하나님의 주권의 범위를 설정한단 말인가? 해와 달과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은 우리 하나님 야훼이시다. 그분은 온 우주의 주권자다. 그분이 하시는 일이 선교다. 최고 권력자라 할지라도 피조물이다. 어떤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당신의 영역은 여기까지’라고 규정지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요 죄악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다. 기독교방송은 자율적 경영권을 침해당했다. 1980년 방송 통폐합시 광고 방송을 못하게 제약하였다. 이 같은 조치는 기독교방송의 자립 기반을 실제적으로 붕괴시켰을 뿐 아니라 재정적 어려움을 낳게 하여 기독교방송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발휘하지 못하게 하였다. 상업 방송을 못하게 되어 수입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외국 종교 재단에서의 자금 지원도 금지되었다. 대신 “필요하다면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로 되어 있어 CBS는 지난날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정부의 재정적 지원에 매달려야 그 명맥이 겨우 유지되는 신세로 전락되어 이제까지의 CBS 기능과는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그동안 기독교방송은 한국 교회의 헌금과 지원으로 연명하여 왔다. 연간 약 20억 원이 모이고 있다. 이것은 가히 한국 교회의 저력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든 우리의 방송을 말려 죽일 수 없다는 결연 한뜻의 표현이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왜 이렇게 한 것인가? 이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모조리 감추어 버리겠다는 것이다. 사실을 숨길 뿐 아니라 왜곡시켜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 나라가 위기로 떨어지더라도 자신들의 정권만 유지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손오공이 날고 뛴다. 그러나 아무리 날고 뛰어도 삼장법사 손바닥 안에 있다는 식으로, 아무리 숨기고 거짓으로 만들어 보아도 하나님의 지혜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다”(고전 1:25).

예수를 재판할 때도 관제 여론-지금 말로는 관제 언론이다-을 동원했었다. 갖은 허위로 예수를 구석에 몰아넣는다. 그때 CBS가 있었더라면 진실을 보도했을 텐데. 예수는 관제 왜곡 언론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무덤에 묻힌 그를 군대를 풀어 지킨다. 그러나 그들의 지킴도 허사였다. 예수가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은 다시 진실을 숨기고 왜곡보도를 감행한다.

“대제사장들은 원로들과 만나 의논한 끝에 병사들에게 많은 돈을 집어주며 ‘너희가 잠든 사이에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시체를 훔쳐 갔다고 말하여라.’ …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키는 대로 하였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마28:11-15).

예수 운동은 무엇인가? 예수에 대한 증언은 무엇인가? 이 왜곡당한 진실을 바로 증언하는 일이다. 제자들의 첫 증언은 사도행전 2장 14절에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가 긴 설교를 한다. 그 취지는 무엇인가? 세상에 널리 퍼진 대로 한다면 그는 죽었고 그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 갔기 때문에 무덤이 비어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것이 진실이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에 대한 왜곡, 거짓 보도를 바로잡는 운동이다.

이러한 진실에 대한 증언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베드로를 잡아다가 “앞으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강압한다. 입을 뺏는 것이다. 거짓 세력은 진실의 입을 뺏는다. 예나 지금이나 그것이 거짓 세력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의 집권 세력이 거짓 세력이 아니라면 언론 탄압을 중지해야 한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말씀의 종교’다. 말의 종교다. 언론을 탄압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에 도전하는 일이다. 예언자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그 뜻을 풀이하고, 그 말씀에 비추어 사람의 잘못을 지적한다. 사회의 부정을 심판한다. 기독교는 언론의 종교다.

언론 탄압은 입을 뺏는 일이다. 언론 통폐합은 국민의 귀와 함께 입을 빼앗은 범죄였다. CBS의 기능을 위축시킨 것은 무엇인가? 기독교의 입을 빼앗은 것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입이니 찾자는 것만이 아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 자유 없이 민주화는 없다.

입을 빼앗으려는 자들에게 베드로는 어떻게 했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 판단해 보라.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입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랬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였고, 그랬기 때문에 그 역시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베드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진실을 증거하려다가 고난을 당한다. 죽임을 당한다.

우리는 지금 입을 빼앗겼다. 빼앗긴 입을 다시 찾자. 항상 기도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입을 내놓으라고 말하자. KBS가 연간 1,300억 원을 시청료로 거두어 간다. KBS TV 시청료를 CBS에 내자. 그렇게 해서라도 입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권력이 입을 빼앗고, 귀를 막아도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진실은 지금 온 세상에 퍼지지 않았는가? 진실은 일시적으로 막히지만 끝까지 막히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CBS가 지금 어렵다. 우리는 지금 입을 빼앗긴 상태다. 그러나 몇 달 가지 않아 우리는 입을 찾게 될 것이다. 이것을 믿자. 용기를 내자. 우리의 입을 찾는 그날, 민주 언론도 크게 창달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여기 이렇게 모인 것이 승리의 증거다. 성령의 인도를 믿고 감사하자. 지금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게 된 것을 감사하자. CBS 기능 정상화 운동에 온 교인이 함께 참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