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근 목사의 역사와 성서읽기 3, 4] 머리글

[김상근 목사의 역사와 성서읽기 3] 믿음은 행동이다


[김상근 목사의 역사와 성서읽기 4] 평화의 집을 짓는 꿈


[머리글]

편집위원들의 끈질긴 기다림이 이 책을 세상에 나오게 했습니다. 내 원고를 정리해 놓고 <회상 노트>만 어서 보태라 한 것이 3, 4년은 족히 지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냥 미적거렸던 겁니다. 바쁘기도 했습니다. 우선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급한 일들도 때마다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이 작업에 대한 생각을 아주 접고 지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각 많이 했습니다. 책을 왜 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미적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을 서둘지 않는 좋은 핑곗거리로 삼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겁니다. 그런데 더 이상 미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종명 사장이 찾아왔습니다. 나에게 교정지를 갖다 놓은 지 6년이 지나고 있다고 윽박지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지냈던 겁니다. 후배들의 후의를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될까봐 더럭 겁이 났습니다.

편집위원들은 나의 설교 중에서 사회문제와 연관 있는 것들을 모조리 활자화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1982년 이후의 내 사정은 그 이 전과 퍽 달라졌습니다. 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무로 선출되어 한 교회에서 정기적인 설교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은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한국 교회’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총회를 어디로,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 것인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총무는 한국 교회, 나아가서는 한국 역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총회 총무 8년을 마친 후에는 총회 교육원 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목회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 것이며, 교회 내의 여러 교육을 어떻게 도와야 할 것이냐?’ 머릿속엔 이런 것이 꽉 차 있었습니다.

총회 교육원장 7년을 보낸 후에는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에는 신학교육을 도와야 하는 교회연합 기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 했습니다. 그 기간은 비교적 짧았습니다. 4년이었습니다.

사장 2년 차에 ‘국민의 정부’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겸직 3년을 포함하여 4년 반 동안이나 정부의 한쪽 구석을 지켜야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선교’를 나의 정부 참여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제2의 건국’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나의 신앙고백의 실천이었습니다. 내 처지와 형편이 한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설교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고, 또 다양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나의 설교나 강연은, 한 교회에서 교인들과 ‘역사와 성서’를 바르게 이어내려고 애쓰던 때의 것과는 퍽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당히 전술적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설교도 줄곧 매 주일 하지 않았습니다. 드문드문 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특정한 행사에서 설교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연속성’이나 ‘지속성’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편집위원들은 이런 시기의 설교를 제3권과 4권으로 편집해서 내 앞에 던진 것입니다. ‘역사’와 관련 있는 것, 그 중에서 몇 편을 골라 엮었다 했습니다. 그러나 제1권과 2권처럼 ‘주제 설교’를 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적당히 묶어 <회상 노트>를 썼습니다. 어떤 것은 묶여서, 또 어떤 것은 설교마다 <회상 노트>를 달았습니다.

이미 발간한 <김상근 목사의 역사와 성서 읽기> 제2권의 맨 마지막 설교가 1984년 5월 27일 치였습니다. 편집위원들이 그 날 설교를 2권의 마지막에 배치한 것은 그 설교를 나 스스로 ‘수도교회 고별 설교’라고 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대기적으로 본다면 1984년 5월 27일 이후 것부터 편집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편집위원들은 제3권에 1983년 치 여섯 편과 1984년 치 한 편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왜 그리했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편집자가 편집한 대로 수용할 뿐입니다. 이러고 저러고 토를 달 형편이 아닙니다. 하여간 깊은 배려와 호의와 애정으로 오랫동안 기다리고 채근해 준 편집위원들에게 감사드릴뿐 입니다.

나는 지난 2006년 10월 17일에 시무 목사를 은퇴했습니다. 법정 은퇴는 2, 3년 남아 있지만 자원 은퇴했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의 내 삶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나를 지켜 주고 기도해주고 용납해 준 선후배와 여러 동지들과 가족들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습니다.

2007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