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ㆍ민주ㆍ민족의 시대를 열자
마가복음 2장 23-28절 / 1989년 3월 20일 / 한국기독교사회운동연합 창립예배
[회상 노트]
우리는 참으로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그것이다. 민주화의 첫 관문일 수밖에 없는 대통령 직선제 선거를 쟁취해 냈다. 그러나 그해 말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는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참담했다.
그러나 민주화의 물결은 거셌다. 둑이 무너진 형세였다. 대학가에도 ‘직선제’를 보편적 가치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전두환 직전 대통령은 백담사로 이른바 은둔을 안 할 수 없게 되었다. 노 정권은 한참 이 민주화 물결에 쓸려 갔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보수 언론의 거센 반격이 시작되었다. 언제까지 저 붉은 깃발을 방치할 것이냐며 민주화 세력을 친북 세력으로 각인시키는 시도도 자행되었다. 우리의 지나침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보수의 반격이었다. 민주화운동이 승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반동과 전진이 뒤엉켜있는 이 새로운 국면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기독교의 민중ㆍ민주운동 진영은 ‘한국기독교사회운동연합’이라는 대규모의 연합운동체를 결성했다. 이 설교는 그 개회예배 때 한 설교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예수의 가치는 민중ㆍ민주ㆍ민족임을 설교하고자 했다. 우리의 대오를 다시 가다듬어 함께 다시 매진하게 되기를 기도했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우리는 지금 우리 민족사에 가장 격동하는 시간대에 있다. 민중의 생존권 확보와 민주화를 향한 거대한 몸부림, 민족의 자주와 평화 그리고 통일을 위한 용틀임을 펼쳐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는 위기의 시점에 있기도 하다. 반민생, 반민주, 반자주, 반통일, 반평화 통일 등 반동의 발악도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 두 힘이 지금 엉키고 부딪치는 역사의 현장에 우리는 있다. 우리 민족 5천년 역사에 처음 보는 형세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가장 격동하는 시간대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를 살고 간 선배들보다 더 중차대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잠시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이 격동의 시간대를 제대로 책임 있게 감당하자면 우리는 이 시대에 태어난 제 몫을 다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채 역사를 반동으로 끌려가게 한다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더 큰 고통과 어두움을 유산으로 주게 될 것이며 역사의 죄인이 된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무엇인가? 민중 생존권을 기어코 고양시키고야 말겠다는 역사의 순리가 우리를 손짓하여 부르고 있다. 그러나 민중의 수세 거부와 고추 수매 운동, 현대 노조와 지하철 노조 쟁의를 또 다시 폭력적 공권력으로 짓밟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반동적 역습’이다.
지성과 양심을 속임으로 독재에 편승한 반역사적 인물들을 청산하는 민족 정기 회복의 힘찬 역사의 순리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어용 교수들이, 그야말로 교권이 뿌리째 짓밟힐 때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던 비겁한 지식인들이 언필칭 교권을 확립해야 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면서, ‘총장을 제 손으로 뽑겠다는 학생 놈들은 자기 애비도 선거로 뽑으라.’고 강변한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 동류를 총장에 앉히려고 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반동적 역습’이다.
참으로 40여 년 만에 우리를 부르는 자주 혼의 외침을 우리는 듣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우리의 천사이어야 하며 우리는 그 수호 아래 있어야 비로소 평안할 수 있다는 매국 논리, 평화를 위하여 군사력을 감축하고 평화를 위하여 주한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하지 않고, 평화가 보장될 때 군비도 축소하고 미군도 철수해야 한다는 선후 도착 논리가 여전히 힘을 갖는다. ‘반동적 역습’이다.
지금 이대로 방치하면 저 붉은 깃발을 누가 막아낼 것인가? 공권력을 확립하지 않고는 마음대로 나부끼는 붉은 깃발을 결코 막아낼 수 없고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공산화가 되고 만다는 논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반동적 역습’이다.
이러한 반동의 심리는 우리 교계에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통일과 평화를 위한 역사의 부름은 너무나 또렷하다. 그 부름을 우리는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비판적인 평화 운동, 통일 운동은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나아가 너희만이 평화, 통일 운동을 할 것이 아니다, 우리도 마땅히 끼어야 한다고 제 권리까지 주장하고 나온다. 우리가 끼지 않았는데 ‘한국 교회’라는 말을 쓸 수 없고 써서도 안 된다고 한다. 그들은 진실로 동참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걸고 넘어지려는 것이고 불행하게도 그들 대부분이 박정희, 전두환의 주구들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구토증을 일으킨다. 하여간 이 시대에 감히 그 더러운 이름 석 자를 신문 광고란에 버젓이 내놓고 있는 현실에 직 면하고 있다. ‘반동적 역습’이다.
심지어 대통령을 지낸 사람인데 그만한 재산과 집을 지닐 수 있지 않느냐, 어느 대통령 친인척 치고 그만한 돈을 먹지 않은 경우가 있느냐, 더구나 전두환 씨는 절에 들어가 자신의 죄과를 뉘우치고 있지 않느냐, 이제는 우리가 그를 용서할 때라는 반론까지 나오고 있다. 이것은 특히 교회 내의 ‘반동적 역습’이다.
광주 문제야말로 화해로 풀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예수도 정죄하지 않는데 누가 감히 돌을 들어 칠 수 있는가라는 목청 돋운 소리까지 들려오고 있다. ‘반동적 역습’이다.
이러한 ‘반동적 역습’ 속에서 노태우에게 역사의 순리를 따르라 하는 것이 현문우답의 형세다. 연목구어다. 사실 그는 5공화국의 제2인자였다. 그의 손에도 비리의 때가 있고 광주의 피가 묻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더 철저히 5공화국을 단절하고 광주를 해결해야만 이 역사가 순리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노태우에게 새 시대를 감당할 자격과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하여간, 선거에 의하여 대통령이 되었으니 새 시대를 막아서지 말고 역사의 순리에 순응하는 최대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이다. 그는 역사의 힘에 밀려서, 민주화와 통일의 물결에 휩쓸려서, 한때 정신을 잃고 떠내려갔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의 민주화와 통일에의 진전은 전적으로 거대한 물결의 결과이지 이에 순응한 노태우의 노력의 결실이 아니다. 사실 자격과 능력이 없는 대통령은 떠내려가는 것이 최상의 정책이다.
중간 평가에 대한 처음 약속은 이런 성격이다. ‘내가 이 거대한 물결을 어떻게 거스를 수 있겠소, 나는 다만 떠내려가겠소. 광주 해결이라는 물결, 5공화국 단절이라는 물결, 언론 자유라는 물결, 지자제 실시라는 물결 — 이 물결에 반드시 떠내려갈 테니 이 노태우를 믿어 주세요.’ 라고 호소했던 것이다. ‘그 결과를 보고 나에게 점수를 주십시오.’ 라고 했던 것이다. 이런 성격의 약속이 중간 평가 약속이었다. 실제로 처음 몇 달 정신을 못 차린 채 떠내려간 것이 사실이다. 거대한 물결에 까무러쳤던 것이다. 제정신으로 떠내려갔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노태우와 그의 집단은 조금씩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이렇게 떠내려가는 것은 우리의 본질을 잃고 있는 것이라는 못난 깨달음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누구냐? 이 나라를 북으로부터 지켜 온 군(軍)이 아니냐! 독재, 독재 하지만 어쨌든 이 나라를 어거하고 지배해 온 군이 아니냐! 획일 문화, 군사 문화를 이루어 낸 군이 아니냐! 가장 거대한 조직과 힘을 가진 우리가 아니냐! 그런데 지금 우리 꼴이 무엇이냐? 우리의 전우를 백담사로 보내고, 잘 지었다고는 하지만 안양 구치소로 보내고, 이러다가는 우리도 가야 하는 꼴이 되지 않겠느냐! 우리가 이렇게 무기력하지 않지 않느냐! 우리가 이제 자신을 다시 찾지 않으면 자멸할 단계에 왔다.’고 그들은 반동적 발악을 하고 있다.
더 떠내려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떠내려 왔으니 이제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5공화국 문제, 광주 문제를 다루지 않겠다는 것이고 이제 용공 좌경 분자는 다 드러났고 다 파악했으니 척결하겠다는 것이고 어떤 방법으로라도 여소야대의 정국을 바꾸어 놓겠다는 것이다. 가장 큰 ‘반동적 역습’으로 중간 평가를 치르려 했던 것이다.
이런 격동의 시간에 우리는 한국기독교사회운동연합을 조직하기 위하여 여기 모였다. 예수의 운동은 무엇이었는가? 대단히 복합적이고 총체적이지만 팔레스틴 민중 해방 운동이라는 성격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철저하게 노동자, 농민, 빈민의 편이었다. 그들과 함께 살았다. 자신을 위하여 돌로 떡을 만들라고 했을 때는 거부했으나 5천 명 이상의 배고픈 군중을 먹이기 위해서는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서슴없이 기적을 행하셨다.
오늘 본문도 그렇다. 제자들이 간식을 든 것이 아니다. 예수의 배고픈 제자들이 그 배고픔을 달래고자 밀을 잘라 먹은 것이다. 예수는 배고픔을 면하는 것을 안식 일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게 여기셨다. 민생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반민생, 반민주, 반민족의 구조적 악에 도전하신다. 결국 죽게 될 것을 뻔히 내다 보셨으면서도 기어코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그리고 처절하게, 그러나 장렬하게 정치범으로 죽임을 당하셨다. 민주와 민족이 율법보다, 자기 자신보다 더 중요하였다. 율법도 안식일도 민생, 민주, 민족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사실 율법과 안식일의 주인도 바로 민생, 민주, 민족을 위하여 죽임당하는 ‘나’라고 선언하신다.
우리가 철저히 민중에 편들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에게 속하게 된다. 우리가 분명히 민주의 대열에 설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에게 속하게 된다. 우리가 당당히 민족적 과제를 감당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에게 속하게 된다. 그래서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 그래야 오늘의 그리스도인이다.
민생, 민주, 민족의 역사가 지금 도도히 흐르고 있다. 반면 반민생, 반민주, 반민족의 보수 반동의 책동이 거기에 부딪치려는 순간이기도 하다. 격동의 시간이거나 위기의 시간이다. 창조의 순간이거나 후퇴와 고뇌를 잉태하는 순간이다. 여기서 우리는 반동의 맥을 끊어야 한다. 그래서 이 역사로 하여금 민생, 민주, 민족의 역사가 되게 해야한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한국기독교사회운동 연합을 조직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민중 편을 들고 민주 대열에 서며 민족적 과제를 감당하기 위하여 강고하게 단결하자. 기어코 민중, 민주, 민족의 시대를 열어내자.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