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23-24] 민족을 위한 회개 – 1989년 11월 14일, 김상근 목사

민족을 위한 회개

마태복음 5장 23-24절 / 1989년 11월 14일 / 한신대학교


[회상 노트]

한신대학교의 채플에 가게 되었다. 학생들 사이에 채플 거부가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안타깝다. 왜 거부하는 것인가? 왜 거부하게 만드는가? 어줍잖게 기독교 의식을 강요하려 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런 것도 아닌데 다른 기독교 학교 학생들이 그러는 대로 거부해 보겠다는 것인가? 채플의 자리는 우리에게 소중하고 또 기다려지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민족의 문제를 던졌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동독이 무너졌다. 베를린 장벽이 부서졌다. 분단 44년 만에 독일은 드디어 통일을 이루었다. 냉전 시대의 산물인 분단국은 이제 지구 위에 오로지 우리 민족뿐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다. 예수의 가르치심은 무엇인가? 그것이 정녕 길인가? 우리가 예수의 가르치심을 현실적으로 실천해 낼 수 있는 것인가?


[슬라이드]














[설교 전문]

사람들의 삶의 내용과 질이란 각각 다르고 또 폭이 대단히 넓다. 넘어서야 할 과제도 각각 다를 수 있다. 순전히 나 개인만이 갖는 개인적 과제가 있는가 하면 우리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과제도 있다. 이것을 우리는 ‘시대적 과제’라 하기도 하고, 우리 같은 단일 민족인 경우 ‘민족적 과제’라 한다.

우리는 어느 것을 먼저 감당해야 하고 어떤 것은 뒤로 미룬다거나, 혹은 이것은 내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과제이지만 저것은 내 소관이 아니라는 태도를 가질 수 없다. 선후나 차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 과제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민족적, 역사적 과제에 임해야 한다. 바꾸어 민족적, 역사적 과제와 개인적 과제를 함께 가슴에 안아 내는 삶이 되어야 한다. 지금 내 개인의 문제가 이만큼 심각하기 때문에 민족적ㆍ역사적 과제 따위는 내가 알 바도 아니요 관여할 여지도 나에게는 없다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태도는 극단의 비사회적 개인주의로 전락하게 한다. 반대로 피해서도 피할 수도 없는 개인적 과제에 직면해 서지 않으면서 민족적 - 역사적 과제만을 관심한다는 것도 옳지 않다. 이런 삶의 태도는 내실 없는 허구적 삶을 가져오기 일쑤다.

이런 의미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그 개념이 비민주적이고 봉건적이다. 그것은 단계적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하면서 수신하는 것이고 수신하면서 치국도 하는 것이다. 평천하의 과정이 곧 수신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이 모든 것이 동시적으로 연계되는 삶의 질이 아니 될 때, 거기에 인격의 분열이 일어나고 어느 차원도 진실된 성취가 불가능하게 된다.

이런 말을 내가 서두 삼아 길게 말하는 것은 대학의 삶이란 이 모든 것을 동시적으로 끌어안아 씨름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바로 실존적인 나를 찾고 동시에 집단적 자이를 발견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기독교 학교다. 기독교 학교라고 하여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를 그 학생들에게 강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건교의 이념과 운영의 원리 그리고 모든 교수 행위가 기독교적 가치 위에 있게 하고 그 가치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게 하는 특징을 가진 학교라는 말이다. 이런 예배의 자리는 따라서 예배라는 기독교 고유의 의식을 강조하기보다 학생들에게 개인적 과제와 동시에 역사적ㆍ민족적 과제를 볼 수 있도록 돕고 기독교적 대응 이념과 길을 제시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예수의 가르침이나 성서의 말씀을 언제나 실존적 자아가 집단적 자아로서 역사와 만나고 듣고 부딪쳐야 한다. 그것을 개인화해 버려서도 안 되고 또 내가 빠진 채 민족과 역사라는 차원에서만 이해하려해서도 안 된다. 나는 여러분 각자가 지금 부딪쳐 있는 개인적 과제에 대하여 각론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나 민족적ㆍ역사적 과제를 생각하며 거기서 개인적 과제를 비추어 보게 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는 동서독을 갈라놓은 냉전 체제의 벽이 무너져 내리는 저 엄청난 굉음을 듣고 있다. 갈라놓은 당사자인 강대국들은 이미 냉전 체제를 벗어나 국가실익주의로 나간 지 오래이지만 아직도 냉전 체제의 모양은 독일에, 한반도에 그냥 남겨 놓고 있다. 동서독은 그들의 외침대로 하나다. 하나라는 몸짓은 이미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획기적으로 하나에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역사의 큰 전환 사건을 보는 우리는 대단히 착잡하다. 우리 신문에 이미 기사화된 것이지만 서베를린의 어느 신문은 이 사건을 접한 또 다른 분단국 한국의 반응을 싣고 있다.

“서울 시민들의 놀라움은 … 분단된 한국에 대한 비애와 좌절로 연결됐다. 한국인들은 북한에 살고 있는 그들의 친족과 만날 수 있는 전망조차 어둠 속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를린을 향해 서울 사람들이 통한과 비애를 갖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통한과 비애의 심정을 가지고 저 먼 독일의 역사를 보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의 큰 과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민주화, 민중 생존권, 분단의 극복 어느 것도 속 시원한, 전 민족 구성원이 후련하고 감사하게 느낄 만한 진전이 전혀 없다. 그야말로 소아의 포로가 되어 이렇게 못나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 봉독한 성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나 충격적이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절대적 가치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거기에 엄격한 규정에 따라 드려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사를 떠나서는 도대체 삶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는 제사드리는 도중에 이런 것이 불현듯 생각나거든 제사를 중지하고 그것부터 하라고 가르친다. 그런 후에야 다시 와서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누가 나에게 “어떤 원한을 품은 것”이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서 그 가슴속에 원한을 갖게 된 사실, 그런 것이 생각나거든 가서 그 문제부터 해결한 후에 와서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다. 형제와의 화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우선되어야 한다. 선후가 아니다. 형제와는 결코 화해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제사만 드린다면 그 제사는 아무 효과가 없다. 하나님이 결코 받으시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제의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격이고 혁명이다.

우리는 피차의 가슴속에 원한을 그렇게도 깊게 심어 놓은 채 분단 44년을 지나고 있다. 여전히 상대를 비방하고 증오하고 적대하고 있다. 이 비방과 증오와 적대는 처음에는 내 자의와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미ㆍ소가 시키는 대로 그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앵무새가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준 동기에 따라 급기야 약탈하고 강간하고 학살하고 죽였다. 그래서 한은 쌓이고 증오와 살의는 이제 확고한 신념, 신앙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남북 모두에게 같은 현상이다.

이러한 부끄러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다. 우리는 남쪽의 단세포적 반공주의적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해방 직후 북한에서 비공산주의자나 단체, 종교는 혹심한 탄압을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 많던 교회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6ㆍ25 전쟁 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다. 내가 어릴 때였기 때문에 과장되어 비쳐졌겠지만 수복 후 동네 야산은 온통 흰옷의 시신들로 뒤덮여 있었다. 굴비 엮듯 철사로 엮어 집단 사살하기도 했고 시루떡 앉히듯 사람들을 돌로 쟁이어 우물에 빠뜨려 죽이기도 했다. 어떤 경우는 얼굴의 껍질을 벗기기까지 했다. 그들의 가족이나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원한으로 남게 된다. 이들의 반공 정서를 무조건 나무라고 반통일 세력으로 매도해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우리만 당했고 북의 동포들의 가슴에 우리와 똑같은 질의 한을 우리는 절대로 쌓아 주었을 리 없다는 확신이다. 사실 북이 해방 후 그랬던 것처럼 남도 그렇게 했다. 1946년 9월의 총파업과 10월 항쟁, 제주도 4ㆍ3 사건, 여수 순천 반란 사건, 거창 양민 학살 사건 등 수많은 사건들은 공산주의자를 숙청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었고 그로 인해서 많은 양민이 무참히 죽어갔던 것이다.

6ㆍ25 전쟁 때 죽은 민간인의 수는 350만 명이다. 이들 중 남한 50만명을 제하면 북의 민간인 300만 명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당시 평양에는 2차 세계대전 때 전 유럽에 투하한 폭탄 수보다 더 많은 폭탄을 투하했고, 그것은 평양 인구보다도 더 많은 것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원한에 찬 반공 정서가 있다면 북에도 원한에 찬 반제 정서가 있을 것은 당연하다.

1964년 경향신문의 수기 당선 작가 임두홍 씨는 「내가 겪은 4ㆍ3 항쟁」에서 “제 이름자 하나 쓸 줄 모르는 그들 젊은이들이 공산주의의 어떤 ‘이데올로기’나 ‘데모크라시’의 이론을 과연 몇 번이나 생각해 보았을까?”라고 실토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남북한 모두에게 있는 이 정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철부지 같은 살생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독일에서 30여 년의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통한과 비애를 갖게 된다. 우리도 어떻게 분단을 극복해 낼 수 있을까? 그 첫걸음이 민족을 위한 회개라고 생각한다. 제물을 제단에 그대로 두고 가서 형제에게 잘못을 피차 말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그래 우리가 바보였다. 꼭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내가 참으로 잘못했소.’ 이렇게 해야 한다. 이것은 진실을 밝히고 그것을 드러내는 행위다. 이것이 민족을 위한 회개다. 이 행위가 있을 때 정치적 야합이 아닌 민족을 위한 화해가 가능하게 된다.

친애하는 우리 한신 가족 여러분!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시대적ㆍ역사적 과제인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 엄숙하게 서자.

먼저 진실을 밝히고 그것을 온 국민이 받아들이게 하자.

그럼으로써 부끄러운 과거를 회개하자.

그 후에야 비로소 이 비난과 매도의 땅, 증오의 땅, 살의의 땅, 여기에 정의와 평화의 시대를 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