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회상노트(4월 13일, 4월 20일, 5월 4일, 5월 18일) - 수도교회

9월 19, 2026

1997년 회상노트


  • 1997년 4월 13일 / 수도교회: “배고픔의 세계에 나눔을”
  • 1997년 4월 20일 / 수도교회: “차별의 세계에 통합을”
  • 1997년 5월 4일 / 수도교회: “죽임의 세계에 생명을”
  • 1997년 5월 18일 / 수도교회: “치욕 수용과 저항 인생”












수도교회의 비전을 찾고자 했다.

수도교회에 문제가 발생했고 담임목사가 설교를 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임시당회장을 맡게 되고 수도교회 예배의 설교를 다시 맡게 되었다. 나는 이때쯤 수도교회가 비전을 잃고 있다고 판단했다.

내가 목회할 때와는 사회 형편이 많이 달라졌다. 거기에 따른 비전을 찾고 그걸 구현해 나가는 교회가 된다면 교회 안에 분란 같은 것이 일어날 여유가 없었을 게다.

수도교회의 비전이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 수도교회, 아니, 모든 교회의 비전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다시!’ 유기체로 회복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표적 예로서 남과 북, 장애우와 비장애인을 들었다. 교회가 그리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설교했다.

그 전 해에 한반도에 큰 장마가 있었다. 피해가 극심했다. 특히 북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었다. 힘겹게 헐떡이며 보릿고개를 감내하고 있었다. 돕자고 호소했다. 화해의 첫 발걸음이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이 간단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마음이 퍽 슬펐다. 북의 저 배고픔을 돕자 하는 말과 캠페인을 통해 오히려 북을 공격하는 기회로 삼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수도교회를 목회할 때 수도교회는 나의 반정부 투쟁을 도왔다. 최소한 적극적으로 막진 않았다.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성문 밖에서 치욕을 당하심으로 끝내 의로 부활하신 주님의 삶을 받아들이고자 애썼다.

그러나 어느새 수도교회는 변하고 말았다. 5ㆍ18이 국가기념일이 되는 것을 보면서도 수도교회는 뒷걸음을 치고 있다는 판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침 새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 때여서 진심으로 권고했었다.

그러나 헛일이었던가. 2007년의 수도교회는 또 다시 분단에 휩싸이고 있다. 안타깝다.

나는 그즈음에 5ㆍ18 광주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에 전념했다. 드디어 정동년 등이 전두환ㆍ노태우 등 35명을 고소했다. 나는 2천여 명의 동의를 받아 그들을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직접 접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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