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49-53]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1997년 2월 13일, 김상근 목사

9월 12, 2026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누가복음 12장 49~53절 / 대전 NCC / 1997년 2월 13일


[회상 노트]

김영삼 대통령은 그 정권 초기에 ‘하나회’를 해체하고, 안기부법을 개정하는 등 제법 민주적인 조치들을 단행했다.

그러나 정권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퇴행을 거듭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여전히 김영삼 장로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다분히 지역 감정이 작용하는 것이라 판단할 때 답답함은 절정에 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어떤 행사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대전 기독교교회협의회(NCC)가 나를 청하여 개회 설교를 해 달라 했던 것 같다. 나는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오늘의 역사를 좀 거시적인 안목으로 볼 수 있게 되기를 갈망했다. 거꾸로 가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신 주님의 심정을 이해하고 거기 서게 되기를 간구했다.

결국 국민이다. 국민을 바로 이끌 책임이 우리 교회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 머리 속에는 그 해 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대한 구상이 가득했었다.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 교체, 여와 야가 바뀌는 거사에 반드시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리되어야 민주주의가 비로소 뿌리 내리고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여러분께서 오늘 집회를 준비할 때는 작년 성탄절 바로 다음날 새벽에 국회에서 여당 단독 날치기로 통과된 안기부법과 노동법의 무효화를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정경 유착 대형 사건이 터져서 온 나라가 뒤죽박죽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꼴이다.

우리 주님은 물론 평화의 왕이시다. 저 유명한 성 프랜시스의 기도처럼 온갖 갈등과 불화가 있는 곳에 평화를 일구시는 주이시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대고, 네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 주면서라도 평화를 만들라고 하셨다.

그러나 바로 그 주님께서 성전에서 돈 바꾸는 상을 둘러엎기도 하셨고, 채찍을 들어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리치기도 하셨다. 방금 봉독해 드린 말씀은 우리를 크게 당황하게 한다.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더 있겠느냐? …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불을 지르러 왔다”느니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느니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나는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주님께서는 또다시 그렇게 말씀하시리라고 믿어 마지않는다. 주님은 그런 분이시다. 평화를 일구기도 하시고, 불을 지르기도 하시고, 분열을 일으키기도 하신다. 오늘 이 나라의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오히려 불을 지르실 것이다. 그분의 정의가, 그분의 공의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할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우리의 현실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거가 무효화되어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1990년의 3당 합당은 민주 질서의 파괴였다. 국민은 분명히 야당 국회의원을 선출하였고, 국회는 여당보다 야당 의석을 더 많게 만들었다. 여당에게는 과반수에 훨씬 못 미치는 의석만을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야당 의원이 여당 의원이 된다. 국회는 여당 다수 국회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선거라는 민주제도의 기본을 무너뜨린 것이다. 총칼 없는 쿠데타였다. 이것이 현 정권의 태생적 한계요 원리다.

1995년 총선거에서 국민은 집권 여당에 과반수 의석을 주지 않았다. 이것이 국민의 결정이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야당과 무소속 의원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걸어 협박하거나 혹은 매수하여 하나 둘 여당으로 끌어들였다. 결국 과반수를 훌쩍 넘는 여당 다수 국회를 만들고 말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쿠데타다.

오늘의 여당은 상습 쿠데타 집단이다. 현 정부를 문민 정부라 하고 대통령을 문민 대통령이 라 하는 것은 너무 잘못된 규정이다. 고 박정희 씨도 쿠데타를 한 번밖에 못했다. 전두환 씨도 쿠데타를 한 번밖에 못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쿠데타를 두 번이나 저지른 상습범이다. 김대통령은 국민의 선거를 두 번이나 무효화시킨 범법을 자행했다.

이것은 선거 부정이다. 야당을 찍은 표를 훔쳐 여당 후보가 당선되게 했다면 그것이 범법이 아닌가? 그런데 표를 몇 장 훔쳐간 것이 아니다. 당선한 야당 의원을 통째로 업어 갔다. 그것은 범법이 아니란 말인가? 법에 규정된 도둑질이 아니니 범법이 아니라할 것인가? 민주 대의정치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될 정치 범죄요 국민 주권 절도다.

왜 이따위 짓을 한 것인가? 안기부법, 노동법을 힘으로 숫자로 밀어붙이려 했던 것 아닌가? 숫자를 확보하고도 성탄절 직후 이른 새벽에 슬금슬금 국회로 잠입하여 저희들끼리 단 7분 만에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 아닌가? 구룡은 무슨 구룡인가?

이 나라는 내일을 건강하게 만들어 갈 기회를 포기하고 오로지 집권 연장에만 급급하는 행태다. 날치기한 안기부법은 바로 3년 전에 개정했던 부분을 다시 복원한 것이었다. 북한을 고무 찬양하거나 간첩을 신고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수사권을 안기부가 다시 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 하는 설명은 국가 안보가 위태롭다는 것이었다. 교수라는 신분으로 활동한 간첩 깐수 사건과 북한 잠수함 침투를 예로 들었다. 국가의 안보 상황이 위급한데 안기부의 수사권이 없어서 능률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을 개정했던 것은 3년 전이고 깐수는 10여 년 전부터 간첩 활동을 했지만 잡지 못했다. 고무찬양 처벌법 조항이 없어서, 불고지 처벌 조항이 없어서 못 잡은 것은 아니다. 잠수함 침투는 더더구나 불고지와 고무 찬양과도 관계가 없다. 국방 태세와 관계가 있다. 그것들은 간첩 체포와는 무관하다. 북한을 고무 찬양하고 다닐 간첩이 어디 있겠는가? 불고지죄는 잡힌 간첩에 누구누구를 만났다고 자백할 때 드러나는 것이다. 체포를 위해서는 아무 용도가 없다.

아니, 정말 이 나라에 용공 분자가 그렇게도 많아서 고무 찬양과 불고지자를 잡아넣는 법을 아니 만들고는 아니 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인가? 정말 그런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것 아닌가? 아니, 정말 이런 법을 날치기라도 해서 통과시키지 아니하면 안 될 만큼 국가 안보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것 아닌가?

차라리 지금 남과 북을 어떻게 통합해 내야 할 것인가를 궁리하고 법을 제정해야 한다. 남과 북의 교류, 이산 가족 상봉, 이질화된 문화의 접근, 적대 의식의 해소, 북의 식량 위기 해소, 남북 기본합의서 이행 등 50년의 갈등을 극복하고 이 민족과 이 나라를 건강하게 통합해 갈 법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할 기회도 왔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 정권은 그럴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오로지 승부사처럼 덤빈다. 북에 대해서도 국민에 대해서도 그렇다. 큰 정치가 없다. 모두 죽이고 나 혼자 남는 승리감만을 추구한다. 북은 섬멸의 대상이 아니라 이제는 통일의 짝이다. 통일의 주체는 국민이다. 국민의 마음을 좁히고 생각을 막고 행동을 제약하려는 것은 도대체 나라를 통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일 뿐이다. 이 같은 현실에 주님께서는 불을 지르지 않으시겠는가!

현 정권은 정치철학이 없는 집단이다. 대통령은 현 세계를 세계화 시대라 규정한다. 그리고 무한 경쟁 시대라 말한다. 마치 자기가 세계화를 주창한 것처럼 말한다. 무한 경쟁이 마치 구원의 비결이나 되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다.

세계화는 20세기의 강대국들이 또 다른 지배 구조를 만들기 위해 내놓은 세계 지배 전략이다. 과거에는 무력으로, 이데올로기로 세계를 지배해 왔지만 앞으로는 경계 없는 시장을 통하여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경계 없는 시장은 경쟁에 제한이 없다.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경쟁하는 것이 무한 경쟁이다. 이것에 맞추어 가려면 노동법을 이렇게 만들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골자는 정리 해고제, 변형 근로제, 대체 근로제다.

오고 있는 ‘무한 경쟁’ 시대에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생산성을 강화하고, 경영합리화를 기하고, 신기술 도입에 따라 불필요하게 된 인력을 줄이기 위하여 기업 구성원 중 일부를 해고하겠다는 것이 정리 해고제의 내용이다. 이런 이유라면 기업주의 판단에 따라 식구 중 일부를 쫓아내더라도 좋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사고다. 무한 경쟁, 적자생존, 약육강식 따위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세계는 이런 방향으로 강제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철학이 21세기 인류를 이끌어갈 수 있는 철학인가? 이런 철학으로 인류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과연 이런 것인가? 이 나라, 50년 이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부대껴 온 이 나라에서 나오는 철학이 고작 자본주의 서구 국가들의 세계 지배 정책에 맹종하는 것인가?

성서는 온 피조세계는 한 몸과 같다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인간은 모두가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인류는 물론이고, 자연과도 더불어 거대한 한 몸을 이루어 나가자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다.

기업이 왜 있으며 재화가 왜 있는 것인가? 이것이 오늘 우리가 지향해 가야 할 바다. 기업을 키워서 뭐 하자는 것인가? 기업도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있는 것이다. 사람이 기업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 아닌가!

오늘 날치기 노동법에 담긴 철학은 천박하기 짝이 없다. 또한 오늘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한보가 망하고, 나라 전체가 그 여진 속에 매몰되는 것은 정리해고제가 없었기 때문인가? 거대한 불의의 구조 때문이다. 기업이 거대한 불의의 구조 속에 있고 그 위에 놓여 있다. 어느 노동자가 몇 조 원씩 먹어 치울 수 있는가? 주님께서 지금 불을 지르지 않으시겠는가!

천주교에서 눈이 번쩍하는 구호를 내걸었다. 명동 성당에 가면 “우리가 대통령을 잘못 뽑은 것입니다.”라는 대형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김추기경과 대통령이 만난 이후 그 현수막은 걷어졌다고 하지만, 그렇다. 우리의 잘못이다. 3당 합당을 해서 민주주의의 기본을 파괴해 버렸는데, 그 장본인을 대통령으로 뽑아 주었다. 우리가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니 최근 야당, 무소속 의원을 또 빼간 것이다. 이렇게 해야 이길 수 있다는 철학이 생긴 것이다. 일종의 경험이다. 우리가 그런 틈을 준 것이다. 결국 악법을 감히 날치기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국민이 무시당할 일, 얕보일 일을 했다. 날치기 후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 태도가 오만하고 방자했다.

흔히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옳은 신앙 태도라고 오해를 가지기 쉽다. 노동자도 문제고 기업인도 문제다. 정치 인도 문제고 국민도 문제다. 여당도 나쁘고 야당도 나쁘다는 식의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라는 점잖은 입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런 태도, 관념적인 화해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기득권자들, 역사의 반동 세력에 협조하는 것이더라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했다. 자신들은 중도를 걷는 척하지만 그것은 위선이요 거짓이다. 그것은 기득권자와 불의의 구조에 편드는 것이다.

5, 6조 원을 투자하여 철강 상품을 생산해도 경쟁력이 있다는 계획이 어떻게 가능했던가? 그따위 계획을 정부가 어떻게 승인할 수 있는가? 또 5, 6조 원을 턱턱 꾸어 주는 은행이 있는가? 이 구조가 문제다. 이 구조를 캐야 한다. 실제 비용은 얼마고 그것을 빙자하여 조성한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은 얼마고 누구에게 공급되었는가를 종합적으로 캐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하다. 수서 사건 때 노태우 정치 자금이 드러났을 터지만 검찰과 현 정권은 덮었다. 가볍게 풀려났다. 노태우 정치 자금조사 때 오늘의 한보 부정이 수사되었을 터였다. 그러나 덮었다. 그때 척결했으면 몇 조 원은 축내지 않을 수 있었다. 검찰 현 정권을 믿을 수 없다.

주님 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평화를 주러 온줄로 생각하느냐? …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불을 지르러 왔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그냥 넘어가지 않으신다. 정체되고 주저앉아 있는, 거짓 평화의 상태에 불을 지르신다. 분열을 일으키신다. 놀라 일어나고 바른 편에 서라는 것이다.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바른 편에 서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런 때,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 생각하느냐? … 그렇지 않다.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외치신다.

주님의 뜻, 주님의 심정, 주님의 아픈 가슴을 우리의 것으로 감히 받아들이자. 오늘 교회가 잘못된 이 사회에 불을 지르자. 차라리 분열을 일으키자.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의 의를 세우자. 민족에게 희망을 일으키자. 살아 있는, 생동하는 사회를 만들자.

문제는 국민이다. 국민을 깨우치는 교회, 바르게 인도하는 교회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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