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23-33] 자유와 자제 - 1993년 6월 6일, 김상근 목사

9월 12, 2026

자유와 자제

고린도전서 10장 23-33절 / 총회 교육원

[슬라이드]












오늘 우리는 1993년 전반기 12주의 교육을 끝내게 된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있겠지만 여러 가지 우리의 현실을 종합하여 연 24주의 교육 기간을 갖고 있다. 따라서 지금 이후 9월 6일 후반기 12주를 시작할 때까지를 방학이라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선교 현장에서 일하는 중 12주를 교육에 쪼개어 썼고, 이제 다시 선교 현장에 전념하는 기간으로 들어간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지난 12주를 여러분은 열심히 노력했다. 물론 강의에 자주 빠지고 또 빠지지는 않았더라도 성의를 다하지 못한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감으로 생각한다.

오늘 이른바 종강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에 나는 고린도전서 10장 23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여러분께 드리기로 작정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가르침이다. 참 자유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아니할 수 있는 영성이다. 참 자유는 나의 이로움과 다른 많은 사람의 이로움이 충돌할 때 후자를 택할 수 있는 영적 힘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제약이 있을 수 없다. 무엇이나 할 수 있다. 이제까지 관습으로 금해 왔던 것이라 하더라도 큰 신앙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여기 본문에서 문제되고 있는 것은 음식을 가려 먹는 일과 제사에 올렸던 음식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제까지 혹 금기해 왔던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신앙 때문에 금해야 할 음식이란 없는 것이다. 제사에 올렸던 음식이라 하더라도 문제될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사실 제사에 놓았던 음식을 먹었다 해도 그것이 곧 그 신과 결합하는 것도 아니고, 그 신에게 삼킴을 받을 만큼 약한 신앙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면 그까짓 것 정도야 넘어설 수 있고 넘어서야 한다는 뜻이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나 할 수 있다. 무엇이든 음식이라면 먹을 수 있다. 아무것도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막을 수 없다. 어떤 것에 의해서도 자유를 제약받지 않을 만큼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크고 강한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다.

그러나 나는 아무 구애도 받지 않기에 아무것이나 먹을 수 있지만, 내가 아무것이나 먹는 것 때문에 놀라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제하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더 큰 자유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유익만 구한다면 그 사람은 자유한 신앙인이 아니라 남을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고 가르친다.

음식을 가린다거나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아옹다옹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근본적인 데 있게 하는 것이 아니다. 지엽 말단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신앙의 본질의 문제에는 접근해 가지 않으면서 작고 주변적인 문제를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할 문제인 것처럼 다루는 것은 옳지 않다.

신앙의 자유는 한없이 넓다. 그 자유를 제약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자제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참 자유다. 자제할 것은 능력이 없는 자유는 참 자유가 아니다. 자유와 방종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이나 할 수 있으나 경우에 따라 자제할 힘을 가진 자유가 자유다. 무엇이나 할 수 있지만 자제하는 힘을 수반하지 못한 자유는 방종인 것이다.

우리는 어쨌거나 교회의 지도자들이요, 신자들은 물론이고 불신자 사이에서도 주목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다. 기독교 신앙으로, 금기하여 왔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렇지만 우리의 행위로 인하여 갈등을 갖고 감당하지 못해 하는 사람이 있게 될 것 같으면 자제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경건이고 그것이 영성이다. “나 스스로의 이로움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구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라는 바울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삼복 더위라고 하여 팬티 하나만 걸치고 서대문을 오고가는 나를 상상할 수 있는가? 내 편함만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풍양속이라는 보편적 감각에 크게 벗어나는 짓이다. 그것도 내 자유라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당연히 자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시간, 우리는 12주의 과정을 마치면서 지난 12주 동안 나는 그리스도인의 참다운 자유를 살았던가를 돌이켜보기 바란다. 자제를 강조하려 하지 않는다. 진짜 자유, 참 자유를 가지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자제할 수도 있는 자유가 참 자유다. 걸림돌이 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혁파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이로움을 구하는 성숙함을 가져라.

“누구나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해서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이익을 도모해야 합니다”(고전 10:23-23).

우리 교육원은 생활과 유리된 신학만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목회와 관계없는 신학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세상 한복판에서 활용되고 살아지는 신학을 우리는 몸에 익히려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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