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5;33-41] 예수 죽음의 목격자만이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 1996년 4월 7일, 김상근 목사

9월 19, 2026

예수 죽음의 목격자만이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마가복음 15장 33~41절, 16장 1-2절 / 천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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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문]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죽음을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이다. 이 예배에서, 우리는 죽임을 당하신 아들을 부활시키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자 한다. 이 예배에서 우리는 무덤에 갇히셨으나 다시 살아나신 주님 예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자 한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 그러나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부활 신앙으로 극복하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자 한다.

그렇다! 누구라서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죽음 후의 사태에 대한 공포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주님의 부활은 이러한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이러한 두려움으로부터, 공포로부터 해방받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부활 신앙이다. 예수의 부활로 인해서 인류는 비로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 놀라운 사건을 처음 발설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였다. 이 세 여자가 예수 부활의 첫 증인이다. 위대한 여자들이다. 이들은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실 때, 멀리서였지만 지켜보고 있던 여자들이었다. 예수 죽음을 지켜본 여자 셋이 예수 부활의 첫 세 증인이었다. 그들이 본 예수 죽음은 어떤 죽음이었나?

병사들이 예수를 모욕한다. 왕이 입는 홍포를 두르고 왕관 대신 가시관을 씌운다. “유대인의 왕 만세”라고 비아냥댄다. 머리를 친다. 침을 뱉는다. 그리고서는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린다. 실컷 희롱한다. 결국 자색 옷을 벗기고 누더기 같은 예수의 옷을 도로 입힌다. 십자가 형틀에 못을 박는다. 죄명은 “유대인의 왕”이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예수를 모욕한다. 온갖 말로 비아냥댄다.

세 여인은 견딜 수가 없다. ‘저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의롭다는 하나님은 무얼 하시는 건가? 하나님, 저분을 도와주십시오 당신은 의로우신 하나님 아니십니까? 하나님,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그들은 기도한다. 예수께서는 더 버티시지 못한다. 급기야 큰소리로 부르짖으신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그것은 외마디 소리다. 예수는 기어코 고개를 떨어뜨리신다. 숨을 거두신다.

여인의 가슴은 찢어질 것 같다. 우리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를 당당하게 살게 하시기 위해 그렇게 애쓰시던 저분이 왜 저렇게 죽임을 당해야 하느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렇게도 당당하시던 저분이 저렇게 맥없이 죽임을 당하시다니,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저분조차 저렇게 죽어 간다면 누가 선하게 살 것입니까? 누가 의롭게 살 것입니까? 누가 우리 같은 천한 사람, 가진 것 없는 사람, 배운 것 없는 사람을 위해줄 것입니까? 누가 슬피 우는 사람을 위해 일할 것입니까? 누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줄 것입니까?’

세 여인은 사흘째 되던 날 새벽, 예수의 무덤을 찾는다. ‘오, 불쌍한 예수여! 하나님도 돌보시지 않으시지만, 하나님도 버리셨지만 우리는 당신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안쓰럽습니다. 너무나 불쌍합니다. 너무나 억울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삶이 옳고 바른 것을 압니다. 당신의 가슴에 가득한 사랑을 한껏 느낍니다.’ 여인들은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 같다. 무덤 속에서 세 여자는 웬 청년을 만난다. 그 청년에게서 예수가 살아나셨다는 것을 듣게 된다. 무덤에서 도망쳐 나온다. 무서운 마음이 든다. 벌벌 떨린다. 넋을 잃는다.

기쁨이나 감격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니다. “아멘, 할렐루야”라는 탄성이 나오지 않는다. 부활의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라는 분부를 듣는 순간, 그들은 벌벌 떨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고 해서 떨리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들이 해야 할 말 때문에 떨리는 것이다.

당신들과 우리가 죽인 예수가 살아났다는 것을 전하는 것은 무슨 뜻을 전하는 것인가? 사람들을 선동하고 정권을 뒤엎으려 한다고 하여 죽였다. 그래서 다른 처형도 아닌 십자가 처형을 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자고 했다. 서기관, 당신들도 그랬다. 제사장, 당신들도 그랬다. 빌라도, 당신도 그랬다. 그런데, 그 예수가 살아나셨다. 이미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더불어 사시던 갈릴리로 가셨다. 이렇게 외쳐야 한다. 벌벌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를 죽인 사람들 복판에서 예수가 옳았다고, 너희가 죽여버린 예수가 옳았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 그것은 말만 하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예수가 그렇게 살았기에 체포되고 모욕당하고 십자가에 처형된 바로 그 삶을 사는 것이리라. 그분이 사랑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분이 돌본 사람을 돌보고, 그렇게 하라는 것 아닌가! 가난한 사람, 슬피우는 사람, 굶주리는 사람, 누명을 쓴 사람, 그런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던 것처럼 그렇게 살라는 것 아닌가! 그렇게 살면 박해가 올 것이다! 고난이 올 것이다! 그 여인들은 무덤 밖으로 나와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그 세 여인이 예수 부활의 첫 증인이 된다.

예수가 왜 죽임을 당하셨는지, 예수의 죽음의 참 의미를 아는 사람만이 예수 부활의 참 증인이 될 수 있다. 오늘 아침, 우리 모두는 체포되시는 예수를 먼저 보시기 바란다. 모욕을 당하시는 예수를 먼저 보시기 바란다. 재판 받으시는 예수를 먼저 보시기 바란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명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시는 예수를 먼저 보시기 바란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지만,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버리시지만, 그러나 그 길을 끝까지 가시는 예수를 먼저 보시기 바란다.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바르게 보아내는 사람만이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죽임을 당하신 바로 그 예수가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으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그렇게 죽임을 당하신 바로 그 예수를 살리셨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가? 그러면 부활의 증인이 되라. 예수처럼 살라. 성령께서, 이 거룩한 날 아침,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바란다. 힘을 주시기 바란다. 용기를 주시기 바란다. 우리 모두를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이 땅에 정의가 서고, 사랑이 넘치게 되기를 바란다. 기쁨이 넘쳐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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