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3-5절] 무(無)의 심연을 가르고 피어난 주권적 생명의 빛, 거룩한 분리의 시작

11월 03, 2026

무(無)의 심연을 가르고 피어난 주권적 생명의 빛, 거룩한 분리의 시작


[본문] 창세기 1장 3절-5절

  •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 4절: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 5절: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성서 명상]

창세기 1장 3절에서 5절은 창조에 대한 열 개의 신적 말씀 중 그 첫 번째를 장엄하게 보도하는 본문입니다. 이 짧은 단락은 창조 기사를 구성하는 일곱 가지 전형적인 관용구 요소(고지, 명령, 성취, 실행, 승인, 후속 말씀, 날 수)가 단일 단락에 모두 나타나는 유일하고도 완벽한 서론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 거룩한 서막은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고지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사용된 ‘가라사대(아마르, אמר)’는 단순한 발화나 의견의 표출이 아닙니다. 이는 무(無)에서 유(有)를, 흑암에서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절대적이고 효력 있는 신적 명령의 말씀입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미래를 선포하며 그 미래가 필연적으로 실현되도록 강권하는 창조적 능력을 지니는데, 이러한 말씀의 주권적 특성이 첫째 날의 기사에서 가장 찬란하게 폭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적 말씀의 완벽한 성취로 발현된 창조주의 첫 작품은 다름 아닌 ‘빛(오르, אור)’이었습니다. 빛은 그 자체가 신적이거나 영원한 것은 아니지만, 빛이 없었다면 세상은 오직 영원한 흑암과 치명적인 혼돈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종종 생명, 구원, 진리,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은유할 때 이 빛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차용합니다.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은 당신이 손수 지으신 이 찬란한 첫 피조물을 바라보시며 “좋았더라(토브, טוב)”라고 감탄하십니다. 이 ‘토브’라는 단어는 피조물이 창조주의 의도와 목적에 완벽히 부합함을 나타내는 핵심 용어입니다. 특별히 흑암(호셰크)이 아닌 오직 빛만이 ‘좋은 것’으로 선언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어둠보다 빛을 기뻐하시며 당신의 절대적인 선하심을 피조 세계에 뚜렷이 반영하셨음을 입증합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창조하신 빛과 기존의 어두움을 ‘나누십니다(와야브델, ויבדל)’. ‘분리’ 혹은 ‘나눔’은 창세기 1장 전체의 문학적 구조와 신학을 이끌어가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구약성경의 다른 본문들을 깊이 살펴보면, 이 ‘분리’의 행위는 곧 하나님의 거룩한 ‘선택(election)’과 동일한 의미 층위를 지닙니다. 하나님께서 훗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한 것과 부정한 것,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도록 요구하셨듯, 태초의 우주에 빛과 어둠의 경계를 지으신 행위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의 구분을 넘어, 혼돈을 몰아내고 생명의 질서를 세우시는 구속사적 분별의 웅대한 모형인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빛을 낮으로, 어두움을 밤으로 ‘칭하심(이름 지으심)’으로써 당신의 창조 행위를 영광스럽게 인치십니다. 고대 근동의 사상과 구약성경의 세계관에서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을 주장하고 통치권을 영구히 행사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새롭게 창조된 빛뿐만 아니라, 비록 창조되었다고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이미 깊음 위에 존재하고 있던 어두움에까지 ‘밤’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십니다. 이는 혼돈의 표상인 어둠마저도 철저히 창조주의 주권과 질서 아래 통제되고 있음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또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구절은 하루가 해질 무렵(저녁)에 시작된다는 고대 유대적 시간관을 반영하며, 첫째 날이 흑암 속에서 시작되어 빛의 창조와 함께 해질 무렵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세밀한 문학적 묘사입니다.

이 장엄한 태초의 기사는 소음과 거짓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에게 예리하고도 실존적인 도전을 던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말과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정작 사람을 살리고 무너진 영혼을 치유하는 ‘창조적 말씀’은 메말라버렸습니다. 거짓 뉴스와 혐오의 언어, 사람을 도구화하는 자본주의의 수사들이 우리의 내면을 지독한 흑암과 공허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그러나 붕괴된 우리 영혼에 참된 생명과 회복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얄팍한 긍정주의나 심리적 위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무(無)를 향해 “빛이 있으라” 명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말씀(아마르)뿐입니다. 당신의 내면이 깊은 우울과 불안, 실패감으로 칠흑같이 어둡습니까? 억지로 내면에 없는 빛을 짜내려 애쓰지 마십시오. 대신, 절망을 찢고 생명을 존재하게 하시는 전능자의 말씀이 내 영혼의 중심에 선포되도록, 성경을 펴고 그 말씀의 권위 앞에 철저히 엎드려야 합니다.

또한, 빛과 어둠을 예리하게 ‘분리(바달)’하신 하나님의 행위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짓는 거룩하고도 엄중한 부르심입니다. 관용과 다원주의라는 이름 아래 진리와 비진리, 거룩과 세속의 경계가 교묘하게 허물어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적당한 회색 지대에 머물기를 타협합니다. 세상의 어두운 쾌락을 즐기면서도 주일에는 빛의 자녀로 행세하려는 우리의 이중성이야말로 태초의 ‘혼돈(토후)’으로 회귀하려는 치명적인 타락입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이 섞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소비 습관, 은밀한 시간의 사용,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과감히 베어내는 ‘분리’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당신의 일상에는 지금, 거짓된 평화를 깨뜨리고 혼돈 속에 거룩한 질서를 세우는 이 피 흘리는 ‘나눔’의 영적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까? 빛의 자녀는 결코 어둠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마무리 기도]

영원한 빛의 근원이시며, 말씀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빚어내신 전능하신 하나님. “빛이 있으라” 명하신 그 한마디가 우주의 흑암을 찢고 찬란한 생명의 아침을 열었음을 경외함으로 찬양합니다. 주님, 거룩한 빛의 자녀로 부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의 어둠을 기웃거리며 빛과 어둠을 섞어버린 회색빛 신앙으로 살아온 저의 위선과 교만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세상의 거짓된 소리와 절망적인 환경이 저를 덮어올 때, 내 안에서 스스로 빛을 찾으려 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오직 주님의 창조적인 말씀(아마르)만이 제 영혼을 소성케 하는 능력이 됨을 믿습니다. 제 심령 깊은 곳에 다시 한번 “빛이 있으라” 선포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제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단호히 분리해 내는 결단이 있게 하시고, 주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거룩한 질서가 제 일상 속에 온전히 회복되게 하옵소서. 저의 유일하고 참된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석적 설명]

  • 7중 관용구의 완벽한 서막: 창세기 1장 3-5절은 고지, 명령, 성취, 실행, 승인, 후속 말씀, 날 수라는 창세기의 7가지 전형적 관용구가 한 단락에 모두 담긴 유일한 구절로 완벽한 서론을 이룹니다.
  • 창조적 말씀 ‘아마르(אמר)’: “하나님이 가라사대”에 쓰인 동사는 단순한 발화가 아니라, 미래를 선포하며 그 일이 필연적으로 실현되도록 강권하는 절대적이고 효력 있는 신적 창조의 명령입니다.
  • 빛에 대한 하나님의 선호 ‘토브(טוב)’: 빛(오르)은 하나님 임재와 구원의 은유이며,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의도에 부합한 이 빛을 “좋았더라(토브)”고 선언하심으로써 빛에 대한 뚜렷한 선호를 나타내십니다.
  • 구속사적 분별로서의 ‘나누사(ויבדל)’: 빛과 어두움을 나누신 행위는 단순한 구분을 넘어 하나님의 ‘선택(election)’을 의미하며, 이는 이스라엘이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는 거룩한 삶의 모형이 됩니다.
  • 이름 부여를 통한 절대 주권 선포: 낮과 밤을 ‘칭하신(이름 지으신)’ 행위는 그 대상의 역할을 규정하고 절대적 통치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창조되지 않았던 어두움마저 하나님의 완전한 통제 아래 있음을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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