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의 죽음과 부활
요한복음 12장 23-24절 / 1988년 11월 22일 / 한신대 대학원
[회상 노트]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민주 진영은 단일 후보를 내는 데 실패했다. 군부 인사가 또다시 대통령이 되었다. 이로 인한 우리의 좌절은 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은 민주화였다. 9년 전 광주의 학살은 상당 기간 동안 금단 사안이었다. 입도 뻥긋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광주의 학살을 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는 여소야대였다. 전두환은 백담사로 가서 은둔한다.
어떻게 이리될 수 있었던가? 시대의 대의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밀알이 죽어야 정의와 진리로 비로소 부활한다. 우리의 아픈 경험이다. 아프지만 값진 경험이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비유대인 몇 사람이 예수를 만나보고 싶어서 말하자면 면담 신청을 한다. 그들의 뜻을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께 전한다. 그런데 예수는 그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불쑥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되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 말씀을 하실 때의 예수의 시간대는 고난의 시간대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벌써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요한복음서 기자는 쓰고 있다. 그리고 죽은 자의 몸을 향유로 씻는 유대인들의 장례 예식이 있는데, 어떤 여인이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기는 사건이 있었다. 이것도 두말할 것 없이 예수가 죽임을 당할 때가 임박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예수의 절대적 지지자들도 죽이려는 음모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환영하는 소요가 일어난다. 예수는 자신이 지금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이라고 했을 때의 밀알은 예수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고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해석하고 있는 말씀임이 분명하다. 자기가 죽임을 당할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많은 열매를 맺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여기서 자신의 죽음의 경우에 한정하지 않는다. 이어서 이러한 밀알 현상을 일반화시키는 말씀을 하신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그 목숨을 보전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나를 따라야 한다.”
이것은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밀알 현상이 딱히 예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섬기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는 뜻이다.
‘민주화’라는 외침은 어찌 보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40년간의 투쟁 언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민주화 시대에 들어선 것을 실감하고 있다. 온갖 반민주적이며 반민중적이고 반자주적 정책과 행태를 서슴없이 휘둘러 댔던 반역사를 청산하는 청문회가 연일 국민들의 밤잠을 설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벌어진 국민 저항권 행사를 무차별 학살로 대응했던 역사적 사실과 원흉의 수만 겹 위장과 조작, 은폐의 베일이 한 겹씩 벗겨지고 있다. 국민의 재산과 혈세를 식은 죽 먹듯 먹어 넘겼던 거지 같은 집권자들의 모습도 국민 앞에 드러나고 있다. 배고픈 배를 실컷 채워 주고 더 많은 이권을 거머쥐곤 했던 재벌들의 추악상도 이제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언론 장악을 통한 파쇼의 확립은 실로 전근대적 유령일 뿐이다. 그런데 21세기 대명천지에 유령을 실재하게 했던 정신병자들도 찾아지고 있다.
저들이 민주화를 질식시켰고 민중을 빈곤으로 몰아넣었으며 이 나라를 여전히 강대국의 종속국으로 전락시켰다. 국민은 안기부장, 3허 씨, 경호실장, 보안사 요원, 장관들 - 이런 사람들이 여전히 거짓말을 계속하는 것을 보고 분노하고 심지어 허탈해 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양심’이니 ‘진실’이니 ‘회개’니 하는 말이 만에 하나라도 가당한 말일 수 있다면 그런 일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인데 이제 와서 갑자기 사람이리라고 기대하는 국민이 어리석다. 거짓말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민 앞에 나올 수밖에 없고 국민은 멱살을 끌어 우리 앞에 세운 것이다. 이것만으로라도 사실 나는 조금 시원하다.
또 대통령을 지냈다는 두 사람이 국민 앞에 나오지 않겠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을 밝히는 데, 객관적 근거를 기록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뿐이다. 최규하 씨가 허수아비였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아무도 없으며, 전두환이 살인과 정권 찬탈의 원흉이라는 것을 부인할 국민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지 않는가!
옛날에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병에게 지휘관이 자신의 관등성명을 외우게 한 후 도열을 시켜 놓았다. 지휘관이 한 신병에게 다가가서 지휘봉으로 가슴을 푹 찌르며 “내가 누군가? 나의 관등성명을 대라.” 했더니 그 신병이 입가에 웃음을 흘리면서 “지가 다 암시롱.”이라고 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렇다. 다 암시롱이다. 우리는 다 안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도 알고 땅도 안다. 그렇기에 이제 이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정치 군인과 그 아부 세력을 두둔하고 그들이 옳다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시대를 잡아매어 놓는 재주라도 있는 양 지금도 그 더러운 지조를 지키고 마지막 저항을 하는 반민주 세력들이 있다. “우익은 죽었는가?” 따위를 휘갈겨 쓰는 사이비 지식인이 있다. 정신문화원이다, 조찬기도회다, 정치헌금이다, 서둘러 따라다니던 교계 인사들이 지금도 반민주적, 반자주적, 반민중적 집회를 열고 버젓이 지도자 행세를 한다.
그러나 이런 몰지각한 일부 극렬분자를 제외한다면 이제까지의 비리 인사들까지 입을 열면 민주화다. 재벌도, 교수도, 목사도, 기업인도 - 그렇게도 그들 주변에 접근하고 갖은 추태를 다 부렸던 저들까지도 - 민주화다. 언제부터 저들이 민주화를 말했나? 또 그것 때문에 분통이 터지기도 하지만, 하여간 저런 더러운 입에서까지 민주화가 나오고 심지어 통일과 평화가 나오게 되었으니 이것이 역사의 실상이요 진리의 승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통쾌하기까지 하다. 역사는 결국 진리며 진실이다.
그러나 불현듯 우리의 몽롱한 승리감에서 한발 물러서 보자. 어떻게 하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가를 보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글을 쓰고, 말을 할수 있는 사람은 말을 했고, 돌과 화염병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돌과 화염병을 던졌고, 삭발할 수 있는 사람은 삭발하고, 금식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금식 기도하고, 조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조직을 하고, 돈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돈을 내놓아서야 여기에 온 것이다. 돌과 화염병은 빼야 되겠는데 사실 그것의 공로가 없는 것 아니다. 하여간 그러다가 잡히고 매 맞고 퇴학당하고 직장을 잃고 투옥당하기를 마다하지 않은 저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문으로 죽임을 당하고 사형대에서 사라지고, 심지어 자신의 몸에 불을 댕기고, 혹은 투신하여 몸을 부수어트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밀알이었다. 밀알은 민주화를 외쳤다. 밀알은 책을 덮고 노동자가 되어 저들 속에 자신을 산화시켰다. 군부 독재 물러가라, 직선제 개헌하라, 민중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학살 원흉 처단하라고 몸부림쳐 외쳤다. 밀알은 독재 정권 비호하는 미국 놈들 물러가라고 그 두터운 친미 지상주의의 벽에 몸을 내던졌다. 이것은 물론 1970, 80년대의 땅에 떨어져 죽는 모습들이다.
그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오늘 민주화의 열매, 새 시대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열매는 우연한 산물이 아니다. 악마의 시혜는 더구나 아니다. 엉겅퀴에서 열린 포도가 아니다. 밀알 하나의 죽음이 지금 부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설 자리를 확연히 본다. 예수의 부활도 죽음의 결과다. 우리는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라는 예수의 말씀을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다시 들어야 한다. 땅에 떨어져 죽는 죽음은 다양하다. 핑계와 회피가 아닌 분명한 죽음, 예수를 따르는 다양한 길 가운데 한 길을 택해 가야 한다.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 없이 역사의 승리, 진리와 진실의 승리란 결코 불가능하다.
우리는 땅에 떨어질 수 있는 능력을 여기서 키워야 하고 그래야 산 학문이 된다.
오늘 민주화를 열어 가는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땅에 떨어진 밀알의 신비를 경외스럽게 보게 되기를 바란다.














